< 제13장 - 태양화초 >
제13장 - 태양화초
프로스트 앤빌을 파멸로 몰고간 파멸의 대군주 리바이어 던은 마지막 한 수로 거대한 백사를 소환했다.
고대 드워프들의 어떠한 무기도 튕겨내는 단단한 비늘과 근처에 있는 것만으로 몸이 녹아내릴 정도로 강력한 독, 여기에 마주한 이를 마비시키는 마안까지 지닌 백사는 프로스트 앤빌의 종말 그 자체였다.
수많은 고대 드워프들이 목숨을 잃었다.
하지만 그들은 맥없이 죽기만 하지 않았다. 프로스트 앤빌 가장 깊은 동력실에 백사를 몰아넣은 그들은 사악한 마수와 함께 죽기를 선택하였다.
‘우리의 죽음이 가치 있기를.’
고대 드워프들은 마력로를 폭주시켜 프로스트 앤빌의 온도 조절 시스템 자체를 망가트렸고, 그 결과 프로스트 앤빌은 이름 그대로 극한의 냉기가 지배하는 얼어붙은 땅이 되었다.
“그리고 천 년. 고고히 흐르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백사는 약해지고 말았지. 무적의 방패였던 껍질은 더 이상 예전 같지 않았고, 오랜 굶주림 속에 체력은 물론 마력까지 턱 없이 약해지고 말았어. 그리고··· 프로스트 앤빌의 냉기 역시 이전보다는 나아졌지.”
천 년 전의 프로스트 앤빌은 정말로 극한 지옥이었으니까.
동력로를 폭주시켰던 고대 드워프들은 고통을 느낄 새도 없이 얼음 조각상이 되었으리라.
“백사.”
파멸의 대군주 리바이어 던의 마수.
프로스트 앤빌의 종말.
몸길이가 수십 미터에 달하는 진짜배기 괴수.
“하지만 이제는 제 경험치일 뿐이죠.”
머리가 반파된 백사 앞에서 음음하고 고개를 끄덕인 코델리아는 왼손을 길게 쭉 뻗어 셀카를 찍기 시작했다.
오는 길에 발견한 고대 드워프들의 휴대용 마법 사진기였다.
그리고 그 광경을 지켜보던 유더가 말했다.
“뭐하냐?”
“기념 스샷. 같이 찍을래?”
“새삼스럽지만 이상한 곳에서 비위가 강하단 말이지.”
머리가 반파된 거대 괴수 앞에서 예쁜 척하며 셀카를 찍는 절세미소녀라니.
하지만 스샷은 중요했으니까.
고개를 끄덕인 유더는 얼른 코델리아 곁으로 다가가 함께 셀카를 찍었다.
“잘 나왔다. 앞으로는 보스 잡을 때마다 찍어야지.”
“음, 뭐랄까. 사자 잡고 그 위에서 포즈 잡는 밀렵꾼이 생각나는데.”
“넓게 보면 이것도 밀렵 아닐까?”
야생의 뱀을 잡았으니까.
코델리아가 의외로 수긍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자 순간 말문이 막힌 유더는 그냥 고개만 끄덕이고 말았다.
“아무튼 밥 먹자.”
“네, 아빠. 오늘은 무슨 반찬이에요?”
“뱀 반찬.”
“맨날 뱀이야!”
“우리 공주님, 편식하면 못 써요. 알았죠?”
“야, 맨날 뱀만 먹는 게 오히려 편식이거든?”
“어쩔 수 없잖아. 먹을 게 뱀 밖에 없는데.”
3층부터 6층 사이에 존재한 몬스터들은 대체로 스노우 고블린 같은 인간형들이었다.
먹을 게 아예 없다면 모를까, 아무리 몬스터라 해도 인간형의 무언가를 먹는 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무리였다.
결국 한숨을 길게 내쉰 코델리아는 유더와 함께 두 사람의 보금자리인 텐트를 향해 걸으며 물었다.
“유더야, 유더야. 태양화초 대체 언제 피니?”
“내일··· 정확히 오늘 자정이면 필거야.”
백사를 잡고 벌써 며칠이 지났으니까.
유더의 대답에 코델리아는 고개를 돌려 동력로 중앙에 자리한 커다란 꽃을 바라보았다.
봉오리를 꼭 오므리고 있는 태양화초.
원작에서는 태양이란 이름 그대로 노랗고 빨간 꽃이었는데, 지금은 파랑에 가까운 보라색이었다.
“빨리 피면 좋겠다.”
“그러게.”
“저거 먹으면 구음절맥 낫는 거지?”
“아마도. 거의 완치 가까이 될 걸?”
“낫기만 해봐.”
“나으면 어쩌려고?”
“그간 밀린 거 다 받아내야지.”
흥흥거린 코델리아는 텐트가 가까워지자 발걸음을 더 빨리 했다.
유더가 여기까지 오며 모은 각종 자재를 더해 만든 텐트는 말이 텐트지 사실상 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식당도 있고 목욕탕도 있으니까.’
새삼스러운 이야기였지만 정말 손재주가 좋은 유더였다.
“내 별명이 코리안 맥가이버였거든.”
“그게 누군데?”
“있어, 외국 애들이 좋아하는 고전 미드 주인공. 너도 노래 정도는 들어 봤을 걸?”
“노래?”
“따따라 따라따라~ 따라라~ 따라라라라라라라라~ 라라라~ 라라라~ 따라라 따라라~ 따라라~ 따라라~”
“뭐라는 거야.”
“그, 그래.”
코델리아의 표정이 뚱해지자 저도 모르게 열중했던 유더는 머쓱한 얼굴로 식당 문을 열었다.
프로스트 앤빌 전체가 냉장고 상태인 터라 음식물의 온기를 보존하기 위해 만든 일종의 온실이었다.
“아무튼 밥 먹자.”
“네, 아빠. 차린 건 없지만 맛있게 드세요.”
“야, 내가 차렸거든?”
“그러니까 반성해. 각성하라구. 각성하란 말이야.”
“앓으니 죽지.”
언제나와 같은 흰소리를 주고받은 두 사람은 유더가 만든 테이블에 마주 앉은 뒤 식사를 시작했다.
그리고 그날 밤.
미리 낮잠까지 잔 유더와 코델리아는 태양화초 앞에 쪼그려 앉은 뒤 똘망똘망한 눈으로 개화의 순간을 기다렸다.
“아직이야?”
“이제 곧이야. 카운트다운 할까?”
“제야의 종 기다리는 것 같아.”
어쩐지 모르게 히히 웃은 코델리아는 유더가 내민 회중시계의 초침을 보더니 어느 순간 다시 입을 열었다.
“5.”
“4.”
“3.”
“2······.”
그리고 몇 초.
끙끙 앓는 표정으로 태양화초를 바라보던 두 사람이 다시 입을 열어 외쳤다.
““1!””
태양화초의 봉오리가 펼쳐졌다.
보랏빛 꽃잎이 서서히 노랗게 물들었고, 꽃봉오리 자체에서 마치 달빛처럼 은은한 빛이 일기 시작했다.
“와······.”
아름다웠다.
초등학교 때 관찰일기를 쓰기 위해 밤을 꼬박 새우며 보았던 튤립의 개화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었다.
은은한 빛이 점점 더 강렬해지며 주변을 밝히는 그 광경은 흡사 일출과도 같았다.
“예뻐.”
눈을 반짝하고 빛낸 코델리아가 방긋 미소 짓자 태양화초 대신 코델리아를 보았던 유더 역시 빙긋 웃었다.
“좋아, 그럼 어디 구음절맥을 고쳐보실까.”
“저걸 먹는 거야?”
“정확히는 정기를 흡수하는 거지만. 너도 원작 봐서 알지?”
“알긴 아는데··· 뭔가 아깝다.”
“어차피 삼일이면 지는 꽃이야.”
“그래두.”
이야기를 주고받는 사이에도 태양화초의 개화는 계속되었고, 마침내 만개하자 동력실 전체가 훈훈한 온기로 가득 찼다.
“태양의 꽃.”
극한 속에서 피어나는 극양의 정수.
새삼 숨을 크게 고른 유더는 태양화초를 향해 걸어갔고, 코델리아는 제자리에 멈춰 서서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코델리아.”
“응?”
“태양화초의 정기를 흡수하면 난 아마 한동안 꼼짝도 하지 못 할 거야.”
“얼굴에 낙서해 놓으라고?”
“···가능하면 자제해 줬으면 하지만······ 아무튼 그러니 부탁할게.”
“누나만 믿어. 안전하게 지켜줄게.”
코델리아가 가슴을 탕탕 두드리자 빙긋 웃은 유더는 태양화초를 향해 두 손을 뻗었다.
“믿을게, 코델리아.”
유더의 두 손이 태양화초의 봉오리에 닿았다. 그리고 그 순간 태양화초의 양기가 유더의 두 손으로 집중되었다.
극한의 기운인 구음절맥에 태양화초의 양기가 반응한 것이었다.
“아아, 아아아······!”
유더가 열락에 찬 숨을 토한 그 순간 빛이 작렬했다.
태양화초의 온기가 단번에 유더의 전신에 파고들었고, 픽하고 쓰러진 유더의 몸 위로 푸른 기운과 노란 기운이 한데 뒤섞여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극한과 극양······.”
태양의 목걸이를 통해 서서히 녹아내리던 극한의 기운이 단번에 밀려든 극양의 기운과 한데 엉키며 생긴 현상이었다.
‘위험해 보여도 일단은 그냥 내버려 둬. 치료의 과정일 테니까.’
유더가 했던 말을 상기한 코델리아는 마른침을 꿀꺽 삼킨 뒤 제자리에 서서 유더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따분해진 코델리아가 쪼그려 앉아 바닥에 낙서를 하기 시작할 즈음.
‘위이이이잉-!’
머릿속에 경고음이 울렸다.
유더가 7층으로 통하는 여러 통로에 설치해둔 알람 마법진에서 울리는 소리가 분명했다.
번쩍하고 고개를 든 코델리아는 생각했다.
누구일까.
분명 3층에서 6층까지에 존재한 몬스터들은 씨를 말리다시피 했는데.
숨어 있던 놈일까?
아니면 전혀 예상 밖의 누군가일까.
고민할 때가 아니었다.
새로운 알람이 울렸다. 놈이 이곳에 근접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유더.”
여전히 푸른빛과 노란 빛이 뒤섞여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언제 끝날지는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코델리아는 일단 눈을 감았다. 숨을 골랐고, 어느 순간 서 있던 자리를 박차고 나아갔다.
유더를 지킨다.
누가 되었든 동력실에는 접근조차 하지 못 하게 한다.
고대 드워프들의 노란 작업복으로 무장한 코델리아가 문라이트를 움켜쥐었다.
알람 소리를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
파라고트는 죽지 않았다.
전투원 모두와 동료인 마녀 빌케일을 잃었지만, 그래도 그는 살아 있었다.
순간적인 기지 덕분이었다.
마법의 불꽃이 작렬하는 순간 빌케일을 방패삼은 그는 얼마 안 남은 여력을 총동원해 마법진을 파괴하였고, 어렵사리 만들어낸 안전지대에서 죽은 빌케일의 남은 마력과 혼 모두를 흡수했다.
물론 힘을 온전히 회복하기에는 턱 없이 부족한 양이었다. 때문에 그는 마법진 속에서 겨우 살아남은 전투원들 역시 자신의 양식으로 삼았다.
‘고대 드워프들이 아냐.’
주변 지형에 녹아든, 애당초 설계 당시부터 기획된 함정들이 아니었다. 누군가 마법진을 붙여 만든 새로운 함정들이었다.
그레이드 게이트 밖에서는 시시오트가 난동을 부리고 있을 터였기에 파라고트는 일단 좀 더 안 쪽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그는 발견했다.
‘불을 피운 흔적.’
누군가가 야영을 한 것으로 보이는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었다.
먹다 남은 음식 찌꺼기.
타다 만 장작.
각종 물건을 쌓아 만든 안전지대에서 발견된 붉고 긴 머리칼.
“크큭··· 크크크큭······.”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생각할 수 있는 결론은 하나뿐이었으니까.
무슨 수를 썼는지 모르겠지만 코델리아는 이미 프로스트 앤빌 내에 들어와 있었다.
1층에 함정까지 설치한 뒤 태양화초를 찾아 깊고 깊은 곳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내가 할 일은 하나뿐이지.’
코델리아를 포획한다.
함께 있을 유더는 죽여 그 힘을 흡수한다.
태양화초가 피어있다면 겸사겸사 그것 역시 흡수한다.
파라고트는 흔적을 따라 이동했다.
3층에서 6층으로.
춥고 어두운 프로스트 앤빌 내에서 길을 찾는 일은 쉽지 않았다.
하지만 파라고트는 서두르지 않았다. 인내심을 가지고 며칠에 걸쳐 나아간 끝에 마침내 7층에 도달하였다.
그리고 지금 이순간 마주하였다.
“코델리아.”
영상에서 본 것처럼 붉고 선명한 머리칼을 가진 아름다운 소녀.
파라고트는 다시 만족스러운 웃음을 흘렸다.
사냥의 시간이었다.
&
유더 정도는 아니었지만, 코델리아 역시 영웅전기2에 대해 아는 것이 많았다.
때문에 마주한 순간 알 수 있었다.
‘마인 파라고트.’
악마의 손의 하급 마인들 중에서는 가장 강한 자.
냉기 속임에도 불구하고 등을 따라 식은땀이 흘렀다.
지식을 떠나 본능이 알고 있었으니까. 그녀의 감이 말하고 있었으니까.
‘강해.’
지금까지 마인을 셋이나 물리친 유더와 코델리아였지만, 기실 제대로 상대한 것은 마인 미노스뿐이었다.
그리고 그 미노스조차도 벨라스틴의 마법진이라는 치트에 가까운 마법진의 도움을 받지 않았다면 이기지 못 했으리라.
지금 싸우면 어떨까.
역시 쉽지 않았다.
아무리 하급이라 하나 마인은 마인.
악마의 손이 인간과 악마를 결합해 만든 전술병기들.
하물며 눈앞의 파라고트는 미노스보다 강했다.
여기까지 오며 꽤 지친 것 같지만 속된 말처럼 클래스는 영원한 법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싸워야 한다.
절대안정을 취해야 하는 유더에게 여파가 미치지 않도록 먼 곳으로 유인해내야만 한다.
그렇다면 어디에서 싸워야 할까.
파라고트의 덩치는 컸다.
반면 코델리아 자신은 가냘펐다.
그러니 장애물이 많은 곳에서 싸우는 것이 어떨까.
기각이었다.
파라고트는 괴력을 자랑하는 육탄전 전문의 마인이었다.
어설픈 장애물 따위 단숨에 박살날 터이니, 비좁은 장소는 오히려 퇴로를 제한할 터였다.
넓은 곳.
코델리아 자신이 기동력을 한껏 살릴 수 있는 장소.
코델리아는 생각하지 않았다.
유더처럼 추론하는 대신 이 모든 것을 직감했다.
그리고 그랬기에 유더처럼 판단까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직감한 순간 움직임을 개시했다.
“어딜!”
파라고트가 크게 소리치며 지면을 박찼다.
동시에 코델리아는 스스로에게 헤이스트를 중첩해서 걸었다.
마녀화는 아직이었다.
마력 소모가 큰 마녀화를 벌써부터 사용하면 시간을 제대로 끌 수 없었다.
“크하핫! 토끼 같구나!”
파라고트의 마력이 강해졌다.
코델리아는 뒤돌아보지 않았지만 알았다.
아마 머리에 뿔이 돋아났을 터였다. 마인 미노스가 보여주었던 악마화.
마인이 진정한 힘을 끌어낸 상태.
달리는 와중에 등 뒤가 오싹했다.
파라고트의 강렬한 마력과 악의가 등 뒤를 찌르는 것만 같았다.
코델리아는 멈추지 않았다.
포식자에 쫓기는 사슴처럼 끝없이 발을 놀려 나아갔다.
7층의 지도.
샅샅이 외우고 있는 유더는 아무리 생각해도 비정상이었다.
하지만 코델리아 역시 한 번 지나간 사냥터 정도는 기억할 수 있었다.
7층 구석에 자리한 커다란 방.
본래 무슨 용도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넓고 광활한 공터.
들어섰다.
어두웠다.
하지만 어둠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은 파라고트 역시 마찬가지였다.
“크하핫! 막다른 골목이구나!”
지면을 부수며 전차처럼 돌진하던 파라고트가 크게 웃으며 안광을 더욱 빛냈다.
어둠을 꿰뚫어 보는 마인의 눈이었다.
코델리아는 숨을 토했다. 괜히 겁먹고 움츠러드는 대신 마녀화를 발동시켰다.
파-!
강렬한 마력의 기파가 코델리아를 중심으로 폭풍처럼 일었다.
머리칼이 검게 물들었고, 눈에서는 푸른 안광이 일었다.
파라고트의 미소에 약간이지만 균열이 일었다. 마녀화를 발동시킨 순간 폭발적으로 증가한 코델리아의 마력 때문이었다.
“덤벼.”
코델리아가 말했고, 파라고트가 다시 웃었다. 코델리아를 향해 무시무시한 속도로 돌진했다!
쾅!
굉음이 터졌다.
바닥과 벽이 부서졌다.
그야말로 간발의 차.
코델리아의 곁을 스치듯 지나간 파라고트의 주먹이 벽에 커다란 균열을 새겼고, 코델리아는 다시 한 번 헤이스트를 펼쳤다.
삼중첩.
몸이 견뎌낼 수 있는지를 떠나, 여간한 마법사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 짓이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헤이스트 삼중첩의 속도에 적응할 수 없었으니까.
일반적인 인간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속도였으니까.
하지만 코델리아는 그렇게 했다.
그리고 적응했다.
파파파파파파팍!
코델리아가 무시무시한 속도로 움직였다.
파라고트 역시 육체파 마인답게 더욱 속도를 높여 코델리아를 노렸지만 공격을 명중시킬 수 없었다.
코델리아는 단순히 빠르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파라고트의 공격을 읽어내고 있었다.
‘어떻게?!’
초고속 전투 중이었다.
파라고트 자신의 미세한 움직임을 보고 다음 수를 예측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랬다.
유더라 할지라도 지금 이 순간 파라고트와의 싸움에서 다음 공격을 바로바로 읽어내지는 못 할 터였다.
하지만 코델리아는 할 수 있었다.
애당초 계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추론을 뛰어넘는 직감.
결과에 바로 도달하는 재능.
코델리아는 느꼈다.
파라고트의 공격을.
다음에 어떤 공격이 펼쳐질지 직감했다.
쾅! 쾅! 쾅!
권압이 벽과 천장과 바닥을 부쉈다.
폭풍처럼 쇄도하는 권압 속에서 코델리아는 나비처럼 춤췄다.
금방이라도 끊어질 것 같은 아슬아슬한 춤사위.
단 일격만 허용해도 박살이 날 것 같은 가냘픔.
하지만 코델리아는 부서지지 않았다. 폭풍 속에서 나비의 춤을 이어갔다.
“같잖은 것이!”
파라고트의 마력이 더욱 거칠어졌다.
그리고 그는 생각했다.
전술을 바꾼다.
맞출 수 없다면 공격의 범위를 더욱 넓힌다. 빗맞히더라도 공격의 여파에 휘말리게 만든다.
점이 아닌 면을 향한 공격.
코델리아는 느꼈다.
그리고 오직 코델리아만이 할 수 있는 방법으로 파라고트를 방해했다.
팡! 팡! 팡! 팡! 팡!
나비의 춤사위 사이로 벌의 독침이 더해졌다.
숨 가쁜 입체기동을 펼치는 와중에 십여 발에 달하는 매직 미사일들이 어지러운 춤사위를 더했다. 파라고트의 전신을 사정없이 두드렸다.
“미친?!”
파라고트는 경악했다.
매직 미사일에 의한 타격 때문이 아니었다.
지금 자신을 상대로 회피 동작을 펼침과 동시에 매직 미사일을 십여 발이나 사용했다는 말인가?
그것도 단순 발사가 아니었다.
코델리아는 매직 미사일들을 조종하고 있었다.
파라고트는 순간 소름이 돋았다.
등줄기를 따라 전율이 일었다.
미친 재능이었다.
양질의 제물인 것을 떠나, 코델리아 자체만으로도 무궁무진한 가치가 있었다.
이 소녀가 이대로 성장한다면.
미쳤다는 말 밖에 나오지 않는 전투재능에 강력한 마력이 더해진다면.
“쿠오오!”
감탄만 할 때가 아니었다.
미친 소리 같았지만 지금의 교전 속에서 코델리아는 강해지고 있었다.
영웅 소설 속에서나 나올 법한 일을 실제로 실현하고 있었다.
“갈!”
파라고트가 크게 외쳤다.
면을 제압하는 음파공격이었다.
과연 효과가 있어 코델리아의 춤이 잠시나마 끊어졌다. 비틀거렸고, 그 틈을 파라고트는 놓치지 않았다.
“죽어라!”
이미 생포 따위는 머릿속에 없었다.
전력을 다한 일격이 코델리아를 향해 엄습했다.
피할 수 없다.
막는 것은 가당치도 않다.
코델리아도 알았다.
그랬기에 두 눈을 똑바로 뜨고 주먹을 마주했다. 그대로 주먹을 통과했다. 마치 헛깨비라도 된 것처럼 돌진해 파라고트를 지나쳤다!
‘어떻게?!’
파라고트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코델리아는 알았다.
아니, 애당초 노리고 있었다.
유더는 편집증이 있었으니까.
더욱이 무척이나 효율성을 중시하는 합리적인 성격의 소유자였으니까.
‘네가 끼고 있어.’
태양화초의 정기를 흡수하는 동안에는 움직일 수 없으니까.
유일한 전투원인 네가 사용하는 편이 훨씬 더 효율적이니까.
‘요정의 발걸음.’
파라고트를 관통한 코델리아는 아름답게 회전했다. 파라고트의 텅 빈 등을 향해 두 팔을 내뻗었고, 마녀화의 남은 마력 전부를 일시에 발산했다!
콰가가가가가가!
붉고 선명한 마력의 파장이 파라고트는 물론이고 공터의 절반 가까이를 휩쓸었다.
어찌나 그 힘이 강한지 발사자인 코델리아조차 뒤로 크게 밀려날 지경이었다.
“하악··· 하악··· 학······.”
가까스로 주저앉는 것만은 면한 코델리아가 땀을 뚝뚝 흘리며 거친 숨을 쉬었다.
붉은 기파와 흙먼지가 뒤섞여 시야를 가렸다.
마녀화가 풀린 탓에 어둠 속을 보는 것 또한 무리였다.
하지만 코델리아는 알 수 있었다.
그렇기에 눈을 꽉 감고 말았다.
“노옴!”
전신이 피투성이가 된 파라고트가 노성을 토했다.
피격 당하는 와중에 마력을 폭발시켜 코델리아의 공격 일부를 상쇄, 어떻게든 버텨낸 그가 간신히 서 있을 뿐인 코델리아를 향해 맹진하며 주먹을 당겼다.
부순다.
저 가냘픈 몸을 박살내버린다.
새하얀 눈발을 더럽힐 때의 쾌감을 느끼며 파라고트가 광소했다.
그리고 코델리아는 다시 고개를 들었다. 저도 모르게 미소지었다.
쾅!
벽이 부서졌다.
무시무시한 위력에 벽은 물론이고 바닥과 천장에까지 균열이 번졌다.
그리고 그것뿐이었다.
코델리아는 부서지지 않았다.
파라고트의 주먹은 허공만을 꿰뚫었다.
“안아준다고 했지?”
유들유들한 목소리에 코델리아는 눈을 동그랗게 떴지만 결국 웃고 말았다.
자신을 품에 안은 남자의 목을 마주 끌어안았다.
그리고 그 순간 발동하는 것.
구천구문九天九門 제이문第二門.
더 이상의 설명은 필요하지 않았다.
&
< 제13장 - 태양화초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