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3장 - 태양화초 #2 (여기서부터 유료 연재 시작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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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더 바이엘.
바이엘 백작가의 차남.
무의 명가에서 태어났지만 지병 탓에 열일곱이 되도록 제대로 된 무공을 익히지 못 한 바이엘 백작가의 고뇌.
악마의 손이 유더에 대해 알고 있는 사실들이었고, 잘못된 것은 하나도 없었다.
때문에 파라고트는 더욱 더 지금의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어떻게?’
주먹을 내지르기 직전 질풍이 일었다.
한줄기 바람이 코델리아를 데려가 버렸다.
보법.
그것도 무척이나 상승의, 결코 범상치 않은.
사용한 것은 유더 바이엘이었다.
바이엘 가의 고뇌가, 지병 때문에 늘 골골거리는, 무공 하나 익히지 못 한 코델리아의 약혼자가 질풍이 되어 그녀를 구했다.
‘실력을 숨겼다?’
무공을 쓸 수 있다는 사실을 숨겨온 것일까?
어째서.
그게 대체 무슨 이득이 된다고.
통상적으로 생각하면 가능한 경우의 수는 하나였다.
근래 들어 무공을 익혔다.
여행을 다닐 정도로 몸이 좋아진 것을 계기로 무공 수련을 시작했다.
‘말도 안 돼.’
그렇게 따지면 아무리 길게 잡아봐야 두어 달이었다.
겨우 두어 달 만에 무공에 문외한이었던 인물이 저 정도 수준에 오른다는 것이 가능하다는 말인가?
파라고트가 혼란에 빠진 그때 유더와 코델리아는 넋이 나간 마인 대신 서로를 보고 있었다.
캄캄한 어둠 속이라 제대로 보는 것은 불가능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의 얼굴을 명확히 떠올릴 수 있는 두 사람이었다.
“이제 곧.”
“이제 곧?”
“눈 감아.”
유더의 말에 코델리아는 눈을 깜박였다.
무슨 의미일까.
평소라면 눈빛으로 알아차리기라도 할 텐데 워낙 어둡다보니 지금은 그것도 불가능했다.
‘서, 설마?’
이런 식으로 끌어안은 상태에서 눈을 감으면-
‘아니거든? 지금 싸우는 중이거든? 말도 안 되는 소리거든?’
발개진 얼굴로 스스로에게 태클을 건 코델리아는 애써 침착함을 유지한 채 눈을 감았다.
그리고 그 순간이었다.
팟! 팟! 팟!
날카로운 소리가 연달아 울리더니 방의 어둠이 일시에 사라졌다. 천장에서 쏟아지는 빛이 어찌나 밝은지 순간이나마 시력을 잃을 정도였다.
“악! 내 눈!”
하지만 신음을 토하는 것은 파라고트 뿐이었다.
코델리아는 진즉에 눈을 감았고, 리모컨 조작으로 조명을 켠 유더 역시 미리 대비할 수 있었다.
“으아아!”
파라고트는 노성을 지르며 마구잡이로 주먹을 휘둘렀다.
공격이라기보다는 유더의 접근 자체를 차단하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유더는 굳이 그런 파라고트에게 달려드는 대신 코델리아를 소위 말하는 공주님 안기로 고쳐 안은 뒤 가만히 그를 관찰하였다.
그리고 그제서야 빼꼼 눈을 뜬 코델리아가 작게 말했다.
“내려줘.”
“아직은 안 돼.”
코델리아는 지쳤으니까.
아직 파라고트의 여력을 확실히 파악하지 못 했으니까.
그리고-
“그쪽이냐!”
소리침과 동시에 지면을 박찬 파라고트가 성난 황소처럼 돌진해왔다.
일직선.
반사적으로 몸을 움츠린 코델리아를 더욱 꽉 끌어안은 유더가 마찬가지로 지면을 박찼다.
질풍이십사보.
바람이 불었다.
세 가닥의 선풍이 동시에 일었고, 유더는 한줄기 바람이 되었다.
쾅!
파라고트의 거대한 주먹이 애꿎은 바닥을 찍었다.
코델리아를 안은 유더는 그런 파라고트로부터 한참이나- 거의 10미터 이상 떨어진 곳에 멈춰 서서 파라고트를 보았다.
거리를 벌린다.
약간의 움직임으로 적의 공격을 피하는 효율적인 움직임 대신, 다소 낭비라 해도 파라고트와 일정 거리 이상을 유지한다.
이유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코델리아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함이었고, 다른 하나는-
“쥐새끼 같은 놈이!”
파라고트가 다시 덤벼들었다. 그리고 유더는 다시 질풍이 되었다.
몇 번의 공격.
유더는 모두 피해냈다. 아니, 그보다는 달아났다는 표현이 더 어울렸다.
상당한 거리를 두고 이루어지는 술래잡기.
그리고 어느 순간.
“내려놓을게.”
유더가 코델리아에게 말했다. 떨어지지 않기 위해 유더의 품에서 얌전히 몸을 웅크리고 있던 코델리아가 눈을 깜박였고, 유더는 속삭이듯 덧붙였다.
“이제 될 거 같거든.”
충분히 관찰했으니까.
패턴을 머릿속에 입력했으니까.
코델리아조차도 지금은 유더가 무슨 말을 하는지 바로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래도 코델리아는 어쩐지 모르게 안심하는 자신을 느꼈다.
지금의 유더는 믿음직했으니까.
유더가 된다고 하면 정말도 될 것 같았으니까.
코델리아가 무어라 답하기도 전에 유더는 그녀를 바닥에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파라고트가 그런 둘을 보았다.
다시 주먹을 움켜쥐며 지면을 박찼다.
코델리아가 유더를 보았다.
유더가 그런 코델리아에게 미소지었다.
반전.
몸을 회전한 유더는 다시 질풍이십사보를 밟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도주가 아니었다. 파라고트를 향해 똑바로 나아갔다.
그리고 파라고트의 공격이 무위로 돌아갔다.
“아?”
파라고트의 공격 자체는 완벽했다.
괴력이 실린 스트레이트 펀치.
심플하지만 그렇기에 빠르고 강력한 공격.
유더가 그것을 흘렸다.
마치 어떻게 뻗어올지 알고 있었다는 듯 아주 약간의 개입으로 공격의 방향 자체를 어긋나게 만들었다.
그리고 계속되었다.
유더가 파라고트의 공격을 모조리 받아냈다.
회피하고 흘리는데 그치지 않고 일부는 아예 시작하기도 전에 끊어버리기까지 했다.
어떻게.
코델리아와는 조금 다른 느낌이었다.
본능적으로 어떤 공격이 올 것인가를 직감하고 그에 따른 대응을 즉각적으로 보이던 코델리아.
파라고트의 느낌대로였다.
유더는 달랐다.
코델리아처럼 직감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예상.’
사지를 가진 인간이 펼칠 수 있는 동작에는 분명한 한계점이 존재했다.
여기에 더해지는 것이 개개인의 습관.
어쩔 수 없이 만들어지는 패턴.
더욱이 파라고트는 극도로 지친 상태였다. 부상과 피로로 인해 평소 이상으로 단순한 공격만을 펼치고 있었다.
때문에 유더는 예상할 수 있었다.
마치 시뮬레이션을 미리 돌려보기라도 한 것처럼 파라고트의 다음 동작을 사전에 포착하여 차단하였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다.
그럴싸해 보이지만 현실에 구현하는 것은 극도로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유더는 가능했다.
천무지체가, 구천구문 제이문에 의해 깨어난 오성이 그것을 가능케 했다.
그렇지 않아도 좋았던 머리가 더 좋아졌으니까.
연산력 자체가 크게 상승했으니까.
그리고 코델리아는 그런 유더를 보며 생각했다.
‘천무지체 개사기네.’
유더가 들었다가는 아무런 계산 없이 단번에 결과에 도달하는 코델리아의 직감이야말로 개사기라 소리쳤겠지만, 이거 다 죽어라 계산한 결과라 호소하겠지만 어찌되었든 코델리아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파라고트는 더욱 더 노성을 터트렸다.
“으아아!”
코델리아에 이어 유더까지.
대체 뭐하는 놈들이란 말인가.
얼굴도 예쁘고 잘생긴 놈들이 무슨 전투에 관한 재능마저 하늘을 찌른단 말인가.
직접 상대하는 파라고트이기에 알 수 있었다.
유더 역시 괴물이었다.
코델리아와 마찬가지로 성장한 이후가 두려워지는 존재였다.
‘지금 죽여야 한다.’
다행히 아직은 온전한 괴물이 아니었다.
아직은 찌를 구석이 남아 있었다.
파라고트가 조금씩 냉정을 되찾았다.
유더는 조금씩 정교해지는 놈의 공격을 정면에서 막아내며 집요할 정도로 명치와 목 같은 급소들을 노렸다.
파라고트의 주의를 집중시킨다.
놈이 명치 같은 급소의 방어에 신경 쓰게 만든다.
코델리아를 잊고 온전히 유더 자신만을 인식하게 한다.
그리한다면, 그렇게 틈을 만들어낸다면!
‘코델리아!’
최적의 순간 유더는 코델리아를 보았다.
동시에 파라고트 또한 코델리아의 존재를 떠올렸다.
둘의 시선이 순간이지만 동시에 코델리아를 향했다.
그리고 코델리아는 그런 두 사람 앞에서 눈을 깜박였다.
“어?”
나 왜.
나 뭐.
약간은 얼빠진 순진무구한 얼굴에 유더의 미간이 찌그러졌고, 파라고트가 광소했다.
“어설프구나!”
네놈이 주의를 돌리면 네 약혼녀가 치명적인 일격을 준비할 거라 생각했나?
그래, 너희의 재능은 인정한다.
너희는 괴물들이다.
천재들이다.
하지만 아직 어리다.
경험이 일천하다.
아직이란 말이다!
파라고트가 남은 마력 전부를 주먹에 실었다. 당황하는 유더를 몰아붙이고자 주먹을 당겼다.
그리고 그 순간.
파라고트가 정말로 코델리아를 머릿속에서 완전히 지운 그때.
“페이크다, 병신들아.”
빠르게 속삭이며 코델리아가 등 뒤에 감추었던 손을 앞으로 뻗었다.
적을 속이려면 아군 역시 속여야 했으니까.
검은 칼날.
무척이나 심플한 이름을 가진 마녀의 주문.
하지만 강대했다.
유더와 파라고트가 교착 상태를 이어가는 내내 준비한 비장의 주문은 쏜살처럼 날아 파라고트의 등을 파고들었다.
“크악!”
끔찍한 고통에 파라고트가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유더 또한 움직였다.
파라고트가 내지른 주먹을 흘리는가 싶더니 쏜살같은 연격을 퍼부었다.
콰가강!
뇌성과 함께 벼락같은 칠연격이 파라고트의 전신을 두들겼다. 턱을 맞고 비틀거리는 놈을 보며 유더는 재차 주먹을 당겼다. 이번에는 신격권의 차례였다.
성십자 지르기.
파라고트의 명치를 강타했다. 동시에 코델리아가 검은 칼날을 조종하기 위해 펼쳤던 검결지를 풀고 주먹을 움켜쥐었다.
“카악!”
검은 칼날이 파라고트의 내부에서 폭발했다. 내장을 헤집었을 뿐만 아니라 마정석에까지 타격을 입혔다.
“쿠헉! 컥!”
성십자 지르기에 당해 반대편 벽까지 날아간 파라고트가 바닥에 무너지듯 쓰러지며 연달아 피를 토했다.
더 이상은 무리였다. 파라고트의 명치에서부터 시작된 균열이 전신으로 뻗어나갔고, 사지 끝부터 조금씩 먼지가 되어 사라져 갔다.
“말도··· 안 돼······.”
고작해야 십대 애송이 둘에게 자신이 당하다니.
하급이라하나 마인인 자신이 완패하고 말다니.
하지만 잠시였다.
파라고트는 이내 자신의 죽음을 인정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광소를 터트렸다.
“크큭··· 크하하하하하!”
자신은 죽는다.
마정석이 부서진 지금 살아날 방도 따위 없다.
하지만 혼자가 아니었다.
이제 곧 코델리아와 유더 역시 자신의 뒤를 따르리라.
“너흰 절망과 공포 속에 죽을 것이다.”
유일한 출구인 그레이트 게이트 앞에는 시시오트가 버티고 있으니까.
봉인이 풀린 악마가 너희를 기다리고 있으니까.
“칼날의 악마가··· 너희를······.”
거기까지였다.
파라고트의 말을 듣던 유더와 코델리아는 서로를 보았고,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말했다.
“칼날의 악마면 시시오트?”
“아무래도 그렇지? 하급 마인이랑 같이 다닐 정도 수준이면.”
“시시오트면 바람 속성이었지?”
“어, 양팔을 칼날로 변신시키는 근접전 전문 악마야.”
파라고트는 죽어가는 와중임에도 불구하고 저도 모르게 멍한 표정을 지었다.
뭐지?
자신이 시시오트의 이름을 말한 적이 있던가?
“같이 안 들어온 거 보면 봉인이라도 해제했나?”
“봉인 해제? 아, 맞다. 걔 봉인 걸려 있지?”
“봉인 풀면 맛탱이가 가니까.”
뭐지. 왜 아는 건데.
봉인은 어떻게 알고, 봉인 푼 건 또 어떻게 아는 건데.
“표정 보니 맞네.”
“으으, 시시오트면 지금 우리 수준으로 절대 못 이기지 않나?”
“통상적으로는 그렇지만··· 다시 봉인할 수 있으면 승산이 아주 없지는 않을 거야.”
“봉인하려면 진명 알아야 하잖아.”
“그렇지, 진명이 필요하지.”
뭔가 말린 기분이었지만 파라고트는 다시 어설프게나마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그래, 이러나저러나 유더와 코델리아가 죽은 목숨이라는 것은 변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아니었다.
허공에 타이핑을 한 코델리아가 발랄한 목소리로 물었다.
“유더위키야, 그래서 시시오트 진명이 뭐야?”
“융카테르고 시시오노 지르반스톤.”
작중에서 진명이 공개된 몇 안 되는 악마들 가운데 하나였으니까.
유더의 대답에 코델리아는 확인이라도 하듯 파라고트를 돌아보았고, 파라고트는 귀신에 홀린 것 같은 표정을 짓는 것으로 코델리아의 의문에 답해주었다.
“맞나보네.”
“당근이지.”
“예전부터 생각했는데 그거 좀 아저씨 같은 거 알아?”
파라고트는 작금의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어떻게 된 것인가.
놈들이 어떻게 시시오트의 진명까지 정확히 알고 있는 것인가.
“봉인식도 알지?”
“알지.”
그걸 네가 왜 아는데.
거기까지였다.
기력이 다한 파라고트의 전신에 균열이 번졌고, 파라고트는 의문으로 가득 찬, 한 맺힌 얼굴로 세상을 떠났다.
촤르르르르-
파라고트의 시신이 가루가 되어 흩어지자 유더와 코델리아의 몸 주위로 몇 개나 되는 빛의 고리들이 생겨났다.
유더가 세 개에 코델리아가 네 개.
순간 코델리아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졌다.
“막타 쳤다! 내가 막타 쳤어!”
“좋니?”
“좋지.”
헤헤 웃으며 답한 코델리아는 그대로 픽하고 쓰러졌다.
이제는 정말로 여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아, 힘 하나도 없어.”
“뭐야, 쓰러진 거야? 인공호흡이라도 해야 하나?”
“인공호흡을 왜 해 미친놈아. 숨 쉬고 있거든?”
누워서 헐떡이는 코델리아의 대답에 유더는 빙긋 웃더니 그녀에게 다가섰다.
“골라봐.”
“뭘?”
“업어줄까, 아니면 안아줄까.”
“응?”
“아니, 일단 돌아가야 할 거 아냐. 시시오트 대책도 세워야하고. 이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나 아직 태양화초도 다 흡수 못 했거든?”
정말이었다. 태양화초의 정기 덕분에 제이문을 여는 것에는 성공했지만, 아직 극양의 기운을 모두 흡수한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괜찮아?”
“뭐··· 몸 안의 기운이 어디 가는 건 아니니까 나중에 다시 흡수하면 되긴 해. 그리고 어쩔 수 없잖아? 우리 공주님이 위험한 상황이었으니까.”
“흑흑, 아빠가 최고에요.”
“그래서 선택은?”
유더가 다시 한 번 물었고, 코델리아는 약간의 망설임 끝에 대답을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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