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5장 - 교차점 #3 >
&
랑게부스트 경매장에는 한 가지 특별한 규칙이 있었다.
‘참가자들은 전원 가면으로 얼굴을 가려야 합니다.’
얼굴을 어느 정도 알아볼 수 있는 부분 가면 같은 것은 허용되지 않았다. 얼굴 전체를 뒤덮는 형태의 가면만이 허용되었다.
물론 그래봐야 키와 체형 덕분에 성별이나 나이 등이 어느 정도 유추되기는 했지만 그래도 가면의 존재는 상당한 익명성을 보장하기 마련이었다.
“얼굴 내놓고는 못 살 물건을 판다는 거네?”
“뭐··· 뒤가 구린 물건들이 꽤 있긴 하니까. 당장 노예만 해도 그렇고.”
세일룬 왕국에서 노예제는 슬슬 사라져가는 구시대의 악습 정도로 여겨지고 있었다.
더욱이 랑게부스트에서 거래되는 노예들은 대부분 노동력을 위한 노예가 아닌, 성적인 유희를 위한 노리개나 인체실험의 실험체, 검투사 시합의 전투노예처럼 더럽고 음습한 목적을 위한 노예들이었다.
“빨리 구해주고 싶어.”
유더가 구체적인 예시를 들지는 않았지만, 그 정도는 이미 코델리아도 알고 있는 사실들이었다.
한시라도 빨리 붉은바람을 구해주고 싶었다.
“괜찮을 거야. 돈은 충분하니까. 괜한 입찰 싸움 하지 말고 그냥 바로 즉시구매가 제시해서 사버리자.”
“응응, 괜히 경쟁 붙으면 피곤하니까.”
원작의 흐름대로라면 이 시점에서 붉은바람은 한 번 팔려가기는 한다.
반품되어 돌아와서 그렇지.
‘어찌되었든 구매자가 있긴 있다는 거니까.’
괜한 경쟁이 붙으면 코델리아 말처럼 피곤해질 우려가 있을 뿐만 아니라 쓸데없이 시선을 모을 수 있었다.
이러나저러나 도망자(?) 신세인 유더와 코델리아였으니 가능한 조용히 일을 처리하는 것이 좋았다.
“음, 좋아. 오늘도 잘 묶었다. 역시 나야.”
유더의 타이를 예쁘게 맨 코델리아가 빙긋 웃으며 자화자찬했고, 유더는 두말없이 감사한 뒤 가면을 꺼내들었다.
아무런 무늬 없이 얼굴 전체를 가리는 하얀 가면들이었다.
“머리칼도 염색했으니까 이거 쓰면 진짜 아무도 몰라볼 거야.”
“평소에 분홍색 드레스는 잘 못 입었는데, 염색한 보람이 있네.”
다소 엉뚱한 소리를 한 코델리아는 가면을 쓴 뒤 어떠냐는 듯 유더를 바라보았고, 유더는 작게나마 손뼉을 쳤다.
“어울리네.”
“얼굴 다 가리는데 어울리긴 개뿔이.”
킥킥 웃으며 답한 코델리아는 얼른 가자는 듯 앞장섰고, 유더는 그런 코델리아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새삼 다시 감탄했다.
‘예쁘긴 진짜 예쁘네.’
얼굴 전체를 가리는 가면을 썼는데도 예쁘다는 느낌이 들었으니까.
괜히 절세미소녀가 아닌 터라 분위기와 몸 그 자체도 예쁜 코델리아였다.
“물론 나는 절세미소년이지만.”
“갑자기 뭐라는 거야.”
“자신감의 충전?”
“빨리 와, 헛소리 말고.”
“네, 마님.”
얼른 답한 유더는 자기 몫의 가면을 뒤집어 쓴 뒤 코델리아를 따라잡았다.
그렇게 십여 분.
카지노 바로 옆에 붙어 있는 경매장에 입장한 유더는 일단 숨부터 깊이 들이쉬었다.
“흐으음··· 좋아, 냄새가 난다.”
“무슨 냄새?”
“보물의 냄새.”
유더의 발언에 코델리아는 코웃음을 치더니 똑같이 코를 킁킁거렸고, 이내 눈을 깜박이며 말했다.
“어, 진짜네.”
“응?”
“보물 냄새가 나.”
코델리아의 말에 유더는 저도 모르게 긴장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코델리아의 말이었으니까.
“어디서? 등급은 어느 정도? 혹시 신화급도 있어?”
“미친놈이 뭐라는 거야. 그냥 장난친 거지 사람이 어떻게 보물 냄새를 맡아.”
“너 짐승이잖아.”
너무나 자연스러운 지적에 코델리아는 유더를 깨물고자 입을 앙 벌렸지만 입까지 가리는 가면 때문에 무리였다.
“아무튼 흰소리 작작하고 일단 붉은바람부터 챙기자.”
보물 탐색도 물론 할 생각이었지만 최우선 목표는 붉은바람의 확보였으니까.
코델리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유더는 새삼 다시 경매장을 돌아보며 말했다.
“랑게부스트 경매장은 크게 두 가지 방식을 취하고 있어.”
“시장통이랑 제대로 된 입찰식 말하는 거지?”
“뭐··· 정확히 말하면 용어 정정을 좀 해야겠지만 대충은 맞아.”
당장 유더와 코델리아 눈앞에는 마치 미술관이나 박물관처럼 매물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전시되어 있었다.
‘원하는 물건에 가격을 적어두면 일정 시간이 지났을 때 최고 입찰가를 낸 사람에게 물건을 넘긴다.’
단순하면서도 명확한, 그리고 제법 긴 시간을 요하는 경매법이었다.
“제대로 된 경매에는 참가 안 할 거지?”
“어, 괜한 시선을 끌 테니까. 정말 갖고 싶은 게 나온다면 모를까.”
영화에 흔히 나오는 사회자가 매물을 소개하고, 구매희망자들이 저마다 패널을 들어 입찰을 시도하는 경매는 앞으로 두 시간 뒤에 개최될 예정이었다.
“그 전에 살 거 다 사고 경매장을 빠져나가자.”
“가능하면 아예 랑게부스트도 빠져나가고?”
“바로 그거지.”
흐레스벨그 백작가는 둘째치고 악마의 손이 마음에 걸리는 유더였다.
놈들에게 발각되기 전에 국경을 넘는 것이 최선이었다.
“좋아, 아무튼 일단 붉은바람부터 사러가자.”
“아마 이쪽일 거야.”
머릿속으로 붉은바람으로 플레이할 때의 랑게부스트 경매장을 떠올린 유더는 조금은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내딛는가 싶더니 이내 자신 어린 태도로 코델리아를 인도했다.
지하 1층.
1층의 분주한 분위기와 달리 좀 더 어둡고 음습한, 그리고 착 가라앉은 분위기를 내는 장소.
일정한 간격으로 세워져 있는 유리 케이스 안에는 매물인 노예들이 거의 발가벗다시피 한 상태로 서 있었다.
“마음에 안 들어.”
작게 잇소리를 낸 코델리아는 성큼성큼 발걸음을 내디뎌 단번에 붉은바람이 있는 장소로까지 나아갔다.
“붉은바람.”
유더의 눈에도 그녀가 보였다.
올해로 열여섯 살인 위대한폭풍 부족의 소녀.
윈터 엘프의 피를 이은 존재답게 새하얀 상앗빛 피부와 맑고 푸른 하늘을 연상케 하는 하늘빛 머리칼이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일부러 기다란 귀를 잘 보이게 하기 위함인지 엉덩이까지 오는 긴 머리칼은 하나로 묶어 늘어트린 상태였다.
붉은바람의 가느다란 발목에 묶인 쇠사슬을 보며 이를 악문 코델리아는 다시 붉은 바람의 얼굴을 보았다.
밖에서는 안을 볼 수 있어도 안에서는 밖을 볼 수 없는 케이스에 갇혀 있기 때문인지 푸른 눈동자에는 분노와 적개심으로도 가릴 수 없는 진한 두려움이 묻어났다.
“바로 사자.”
“그래, 그러니까 조금만 진정해. 알았지?”
“알았어.”
짧게 답한 코델리아는 그대로 다시 붉은바람을 올려다보았고, 유더는 케이스 옆에 놓인 입찰란에 즉시 구매가를 기입했다.
“이제 경매장 직원이 올 거야.”
유더의 말에 코델리아는 굳이 답하는 대신 입을 꾹 다물었다. 괜한 트러블 일으키지 말라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몇 초.
과연 유더의 말마따나 말끔하게 차려입은 경매장 직원이 다가왔다.
“오, 탁월한 선택이십니다. 북방 야만족 중에서도 이 정도의 미인은 찾아보기 힘든 법이죠. 다만 조금 사나우니 그 부분에 대해서는 조심해주셨으면 합니다.”
경매장 직원의 말에 반사적으로 욱하려는 코델리아를 재빨리 몸으로 가린 유더는 유들유들 웃으며 말했다.
“사나우면 사나울수록 길들이는 맛이 있는 법이지요.”
“하하, 맞습니다. 그게 바로 사육의 맛이겠죠.”
빙글빙글 웃은 경매장 직원은 몇 가지 서류를 내밀고 유더의 지불능력을 확인한 뒤 다시 말했다.
“포장에 시간이 다소 걸리니 그동안 다른 매물들을 둘러보심은 어떠신지요. 앞으로 20분 후부터 경매가 끝나기 전까지 사이에 1층에 있는 판매소에 찾아오시면 됩니다.”
“예, 그러도록 하죠. 친절한 안내 감사합니다.”
“저야말로 감사합니다. 즐거운 쇼핑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고개 숙여 예를 표한 직원이 손짓하자 붉은바람이 들어가 있던 케이스의 불빛이 꺼졌다.
아마 바닥이든 뒤쪽의 벽이든 통해서 붉은바람을 데려갈 터였다.
“자, 그럼 우리도 갈까?”
“···그래.”
낮게 답하는 코델리아의 손을 붙잡은 유더는 서둘러 1층으로 올라왔다.
“후, 좋아. 별문제 없이 거래도 끝냈으니 이제 정말 경매를 즐겨보자. 좋은 물건들이 많이 있을 거야.”
유더가 짐짓 기운찬 목소리로 말하자 코델리아는 입술을 몇 번 삐쭉이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붉은바람이 처한 상황 때문에 화가 났긴 했지만 그게 유더 때문은 아니었으니까. 괜한 곳에 화풀이 할 수는 없었다.
“이왕 온 거 진짜 보물을 찾아보자. 네 감만 믿을게.”
유더가 다시 말을 보태자 코델리아도 장단을 맞추기 위해 제법 발랄한 목소리를 내었다.
“막 소설이나 만화에 흔히 나오는 것처럼 볼품없는 모양새 때문에 남들은 가치를 모르지만 사실 엄청난 성능을 가진 보물 같은 거 말이지?”
“바로 그거지.”
물론 그런게 정말 흔할 리는 없었다.
경매장 사람들도 바보는 아니었으니까.
아니, 오히려 전문가들의 집단이었으니까.
하지만 딱 그렇게 생각한 순간이었다.
“어, 저거 천상의 심판 아냐?”
“어, 그러네.”
저도 모르게 멍하니 답한 유더는 이내 눈을 부릅떴다. 그리고 그건 코델리아도 마찬가지였다.
““저게 왜 여기서 나와?!””
거의 동시에 말한 두 썩은물들은 최대한 눈에 띄지 않도록, 하지만 누가 봐도 서두르는 것 같은 발걸음으로 유리 케이스 앞에 다가갔다.
“확실해, 봉인 풀리기 전 상태야.”
유더의 말에 코델리아는 눈을 깜박였다. 눈앞에 갑자기 나타난 천상의 심판 때문이 아니었다.
유더가 대륙 공용어 대신 한국어로 말했기 때문이다.
“한···국말?”
입 밖에 내는 것이 하도 오랜만이라 그런지 코델리아가 약간은 어눌한 발음으로 한국어를 내뱉자 유더가 고개를 끄덕였다.
“누가 들으면 안 되니까.”
예전에 처음 편지를 쓸 때 한글을 암호 대용으로 사용한 것과 같았다.
플레이아데스에서 한국어를 알아들을 수 있는 것은 유더와 코델리아뿐이었으니, 완벽한 방첩 대책이라 할 수 있었다.
“아, 뭔가 어색하면서 낯서네. 아무튼 천상의 심판 맞아, 확실해.”
“봉인 풀리기 전에 어딜 돌아다니나 했더니 여기에 있었네.”
새삼 감탄한 유더는 천상의 심판에 대한 설정을 떠올렸다.
“천상의 심판.”
지옥의 다섯 대군주와 대칭을 이루는 천상의 사대천사 가운데 하나인 심판의 대천사 아우리엘이 그녀의 전사들을 위해 벼린 일백 자루의 검.
대천사가 직접 벼린 검답게 검 자체로서의 성능도 어마어마했지만, 천상의 심판의 진정한 가치는 따로 있었다.
‘심판의 날.’
천상의 심판에 내재되어 있는, 오직 천상의 심판으로만 펼칠 수 있는 궁극기의 이름.
시전자의 역량에 따라 위력이나 범위에서 다소 차이가 생기기는 했지만, 어찌되었든 사용하면 이름 그대로 심판의 날이 도래했다.
하늘에서 폭우처럼 쏟아져 내리는 수많은 빛의 칼날들.
천상에 속한 존재들에게는 조금의 피해도 입히지 않았지만, 악마나 언데드처럼 천상과 상극인 존재들에게는 하늘에서 죽음이 빗발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기술이었다.
“오랜 세월동안 이어진 천상과 지옥의 전쟁으로 인해 일백 자루 가운데 대부분이 파괴되어 남은 것은 불과 몇 자루에 불과하다······.”
“그리고 그중 한 자루가 여기 있고.”
코델리아와 유더는 동시에 침을 꿀꺽 삼켰다.
“봉인된 상태라 다행이야. 그냥 예장용 유물 정도로 인식한 모양이니까.”
“이건 꼭 사야 해.”
현재 눈앞의 천상의 심판은 봉인된 상태인 터라 유더의 말마따나 조금 화려한 예장용 검에 불과했다.
칼날은 뭉툭하여 몽둥이나 다름없었고, 장식도 지나치게 화려해 사용에 방해가 될 지경이었다.
“하지만 봉인을 풀면 달라지지.”
“맞아, 그리고 그 봉인을 풀 수 있는 건 오직 천상의 존재들뿐.”
천상의 존재.
천사.
그리고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코델리아는 봉인을 풀 수 있어.”
물론 선조회귀를 하여 천사로 각성한 이후의 이야기였지만, 어찌되었든 풀 수 있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하악하악, 빨리 사고 싶어. 사서 밤마다 끌어안고 잘 거야.”
코델리아의 말에 적극 동의한 유더는 얼른 입찰판을 돌아보았다.
즉시 구매가가 없었지만, 바로 주저없이 기존 구매가의 두 배 금액을 기입했다. 남들 눈에는 어떻게 봐도 그냥 평범한 예장용 검에 불과했으니, 이 정도 금액에 도전할 사람은 없으리라.
“빨리 다른 곳도 둘러보자. 뭔가 진짜 더 있을 것 같아.”
“그러게, 정말 보물의 냄새가 나는 것 같아.”
코를 킁킁거린 코델리아는 정말 감을 잡기라도 했는지 홀린 사람처럼 특정 방향을 향해 나아갔다.
그리고 대략하여 한 시간 뒤.
“저주받은 사신의 옷이랑 고대의 문장이랑 동방무사의 검까지.”
코델리아가 가면 속에서 실실 웃었고, 유더는 아예 코델리아를 와락 끌어안았다.
“우리 대박났어.”
“맞아요, 아빠. 우리 대박이에요!”
코델리아 역시 유더를 마주 끌어안고 기뻐했다.
정말로 대박이었으니까.
저주받은 사신의 옷은 이름 그대로 저주받은 옷이었다.
하지만 저주를 해소하면 사신의 옷으로서 활용할 수 있었는데, 사신의 옷의 효과는 다음과 같았다.
‘사신의 옷을 입은 자는 사신의 기운을 풍기게 됩니다. 사신의 옷을 입은 자를 공격하는 자들은 사신의 저주에 걸립니다.’
한 마디로 광역으로 미약한 피어 효과를 일으킴과 더불어 공격해오는 자들에게 디버프를 거는 방어구라는 뜻이었다.
하늘하늘한 로브인 터라 코델리아가 입으면 딱이었다.
‘마녀화랑 잘 어울리기도 하고.’
마녀든 사신이든 악마든 지옥의 힘과 연관이 있었으니까.
“고대의 문장은 선조회귀를 위해 필요한 아이템이고··· 동방무사의 검 이것도 정말 좋지.”
유더의 손에 들린 것은 일반적인 롱소드보다 훨씬 더 긴 일종의 대태도였다.
이름 그대로 세일룬 왕국이 소재한 대륙너머에 존재하는 환상의 동방대륙에서 넘어온 물건이었는데, 검 자체의 성능도 출중했지만 천사의 심판처럼 궁극기를 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혈랑지옥참.”
화려한 이름답게 강력한 참격 기술이었는데, 나중가면 줘도 안 쓰는 기술이었지만 시나리오 초반인 지금 시점에서는 좋다 못 해 과도하기까지 한 기술이었다.
“진짜 대박이다, 대부분 저주 걸려 있거나 봉인되어 있어서 가격도 쌌고.”
“그러게, 이렇게나 샀는데도 돈이 남았으니까.”
사신의 옷은 저주에 걸려 있었고, 고대의 문장은 일종의 퍼즐인 터라 제대로 된 해법대로 풀지 않으면 기능을 하지 못 했다. 동방무사의 검 역시 봉인된 상태인 터라 봉인해제를 위한 의식이 필요했다.
“유더위키야, 할 수 있지?”
“물론이지요, 마님.”
유더가 빙긋 웃으며 답한 때였다.
“그런데 유더야.”
“응?”
“너··· 계속 권각술로 갈 거야?”
“권각술?”
“어, 지금 계속 주먹질 위주로 싸우고 있잖아.”
코델리아의 지적에 유더는 새삼 스스로를 돌아보았다.
그녀의 말마따나 작금 유더의 무기는 두 주먹으로 펼치는 뇌성박과 뇌성권, 성십자수호단의 신격권이었다.
“이번 기회에 슬슬 검으로 갈아타는 건 어때? 란디우스도 검사잖아.”
워낙 충격적인 모습을 보여줘서 그렇지 란디우스도 일단 검사는 검사였다.
본인 말에 따르면 진짜 위기 때는 검을 쓰는 모양이었고 말이다.
더욱이 유더는 세일룬 왕국 십검호 가운데 하나인 바이엘 백작의 자식이었다.
바이엘 가문의 무공들 역시 대부분이 검공이었고, 전해져 내려오는 보물들도 대부분 검과 관련된 것들이었다.
즉, 가문 빨을 받으려면 검을 쓰는 것이 옳다는 이야기였다.
“흠··· 그럴까? 어차피 원작에서도 유더는 검, 창, 권 모두 쓰기도 했고.”
“천무지체니까.”
몸으로 하는 건 뭐든지 잘하는 천무지체.
원작에서도 유더는 막시밀리언이 그러한 것처럼 사실상 존재하는 모든 무구를 다 다룰 수 있는 멀티플레이어였다.
“그래, 코델리아 네 말이 맞아. 이왕 동방무사의 검도 얻었으니 슬슬 검사 루트를 타야겠네.”
“좋아, 좋아. 검이면 템 갈아 끼우기도 쉬울 거야.”
영웅전기 시리즈에서 제일 많이 나오는 무기는 검이었으니까.
당장 천상의 심판도 검이지 않은가.
코델리아의 말에 유더는 잠시 고민하다 말했다.
“저기, 코델리아.”
“응?”
“너··· 체술 배워보지 않을래?”
“체술?”
“어, 체술. 이왕이면 검술도 약간.”
이미 원작을 파괴하고 있는 두 사람이었다.
그렇다면 성장 루트도 굳이 원작을 따라갈 필요는 없지 않을까?
지금의 코델리아에게는 원작의 코델리아에게는 없던 미쳤다고 밖에 표현 못 할 전투감각이 있었다.
원작의 코델리아에게는 불가능했던, 사실상 밸런스 조절을 위해 봉인되었던 근접전이 지금의 코델리아에게는 가능할 수 있었다.
“어··· 나도 구천구문 배우라고?”
“아니, 그건 무리야. 천무지체거나 란디우스 스승님처럼 미친 근육의 소유자가 아니면 익힐 수 없는 무공이니까.”
이문까지 연 지금은 알 수 있었다.
구천구문은 오로지 천무지체를 위해 개발된 신공이었다. 란디우스 같은 철인이 아니라면, 구천구문의 부담을 이겨내지 못 해 오히려 몸이 망가질 터였다.
“질풍이십사보도 구천구문 관련 같으니 일단은 후보에서 빼고, 바이엘 백작가의 보법을 가르쳐줄게. 도움이 될 거야.”
“검술도?”
“마검사 코델리아가 되는 거야. 근사하지 않아?”
유더의 말에 코델리아는 잠시 상상해보았고, 이내 배시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유더는 그런 코델리아를 보며 생각했다.
‘진짜 프린세스메이커 하는 기분이네.’
물론 아무리 미친 전투감각의 소유자인 코델리아라 해도 루카스처럼 전문적인 검사로 성장하는 것은 무리였다.
무인의 내공과 마법사의 마력은 비슷하면서도 달랐기 때문이다.
기본적인 보법이나 평범한 무공까지는 어찌한다 할지라도 상승의 무공은 아무리 코델리아라 할지라도 제대로 익히지 못 할 터였다.
그러니 일단은 마법을 위주로 한다.
마법사를 메인으로 체술과 검술을 추가해 ‘근접전이 가능한 마법사’로 성장한다.
“딸아, 아빠가 무신도 잡게 해줄게.”
“네, 아빠. 아빠만 믿어요.”
이러나저러나 영웅전기2의 썩은물인 두 사람이었다.
캐릭터의 성장은 무엇보다 즐거운 일이었다.
“자, 그럼 얼른 가자. 바이엘 백작가의 보법인 질풍보의 진퇴로랑 구결을 알려줄게.”
“네, 아빠. 빨리 가요.”
강해진다.
그것도 원작에서는 쓸 수 없었던 수단을 동원해 강해진다.
흥분한 두 썩은물은 천상의 심판과 사신의 옷, 고대의 문장과 동방무사의 검을 챙겨든 뒤 서둘러 경매장을 나섰다.
그리고 다시 이십여 분 뒤.
숙소에 도착한 두 사람은 동시에 한 가지 사실을 떠올렸다.
““붉은바람!””
애당초 경매장에 찾아간 이유.
때 아닌 대박에 그녀의 존재를 까맣게 잊었던 두 사람은 왔던 길을 호다닥 돌아갔다.
&
< 제15장 - 교차점 #3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