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엔딩메이커-59화 (59/473)

< 제17장 - 계시 #2 >

&

신.

초월적인 존재.

존재유무를 놓고 왈가왈부가 이어지는 현실과 달리 플레이아데스에는 신이 실존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 플레이아데스의 신은 현실에서 생각하는 전지전능한 신과는 거리가 멀었다.

분명 강력하지만 한계가 명확한 존재들.

불멸자라 불리지만 소멸 역시 가능한.

‘완전 까놓고 말하면 엄청나게 강력한 초능력자라고도 할 수 있지.’

하지만 그래도 신은 신이었다.

신앙의 대상이었고, 인간으로서는 감히 범접하지 못 할 위대함을 갖춘 존재들이었다.

‘플레이아데스의 신은 크게 세 종류.’

하나는 천상의 창조주라 불리는 창세신 루.

하지만 그 혹은 그녀는 자아가 존재하는지조차 의문인 개념적인 존재에 가까웠다.

천상을 이끄는 것은 창세신 루가 아닌 사대천사들이었으니 말이다.

‘신이라 불리는 천사들.’

본래 신이 아닌 천사이나, 인간들의 무지로 인해 신으로 숭배된 존재들이었다.

그중 대표격인 존재가 태양신 솔라리였다.

본디 천상의 대천사들은 인간들을 사육이 필요한 가축으로 밖에 보지 않았는데, 일곱 번째 대천사인 솔라리는 달랐다.

그녀는 인간들을 아직 어린 자식이나 동생처럼 여겨 이끌고 보살피고자 했다.

‘솔라리는 혼자가 아니었어. 그녀의 뜻에 동참한 천사들이 여럿 있었고, 지상에 강림한 그들은 인간들에게 각기 신으로서 숭배 받았지.’

하지만 모두 과거의 이야기였다.

오랜 시간 이어진 악마들과의 전쟁으로 인해 지상에는 더 이상 신이 존재하지 않았다.

‘마지막 하나는 외신들.’

천상도 지옥도 아닌 제3의 세계에 존재하는 초월자들.

하지만 이들이 지상에 미치는 영향력은 미미했다.

그저 외신이란 존재가 있다더라- 정도의 수준에 그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리고 야생신.’

지금까지 나열한 세 종류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존재들.

‘일단 세일룬 왕국과 아르곤 제국 모두 야생신의 존재를 인정하고 있지 않아.’

정치적인 이유도 있긴 했지만, 어찌되었든 양국 모두 야생신들을 야만인들의 샤머니즘이 만들어낸 허구의 존재 정도로 인식했다.

‘존재 자체를 인정하는 자들도 강한 힘을 가진 정령 정도로만 생각하고.’

그리고 유더 역시 비슷하게 생각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원작에 나오지 않으니까.’

매뉴얼이나 설정집, 아이템 설명 등등에 가끔씩 언급되기만 할 뿐 직접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는 야생신들이었다.

‘타락의 벨리알에게 모두 죽었다는 설도 있었지만······.’

어찌되었든 그것은 모두 북부 야만족의 대침공 후의 이야기.

과거 시점이라 할 수 있을 지금은 아직 건재할 가능성이 있었다.

‘아니, 건재하나.’

당장 지금 눈앞에 야생신을 자처하는 존재가 있었으니까.

위대한폭풍.

위대한폭풍 부족이 받들어 모시는 바람의 야생신.

“뭔가 무례한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소년의 모습이라 그런지 처음 등장했을 때와는 달리 말투가 제법 가벼워진 위대한폭풍이었다.

유더는 급히 부정하며 말했다.

“아닙니다, 너무 놀라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습니다.”

사실 완전히 거짓말은 아니었다.

놀라기는 정말 놀랐으니까.

설마 위대한폭풍이 정말로 등판할 줄이야. 그것도 이런 식으로 말이다.

“흥, 말은 잘해요.”

어쩐지 모르게 코델리아같은 반응을 보인 소년은 손가락질 몇 번으로 땅에서 바위가 솟구치게 하더니 그 위에 걸터앉으며 말했다.

“아무튼 나는 위대한폭풍이다. 너희가 열심히 이름을 팔고 다닌 존재지.”

턱을 괸 채 짓궂게 말하는데, 표정이며 눈빛이며 딱 장난꾸러기 악동이었다.

‘일단 진짜로 화가 난 것 같지는 않은데.’

정말 화가 났다면 신의 이름을 사칭하다니 운운하며 벌부터 내리려 했을 터이니 말이다.

“어··· 흠흠, 위대한폭풍님을 뵈어 영광입니다. 저는 코델리아 체이스라 합니다. 이쪽은 제 약혼자인 유더 바이엘이고요.”

유더가 어찌할지 망설이는 와중에 코델리아가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공손히 예를 표하는 그 모습에 위대한폭풍이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도 여자애는 예의가 뭔지 아네, 마음에 들어. 신을 봤으면 멀뚱멀뚱 쳐다보는 게 아니라 이름부터 밝혀야지. 암.”

말을 마치며 끌끌끌 혀를 차는데, 코델리아는 마음에 들지만 유더는 별로라는 것 같았다.

유더는 동요하는 대신 예를 표한 뒤 말했다.

“위대한폭풍이시여, 청컨대 저희 이야기를 들어주셨으면 합니다.”

“말해봐.”

역시 예상대로의 반응이었다.

위대한폭풍은 자신들을 벌하기 위해 나타난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면야.’

숨을 한 번 크게 고른 유더는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지금부터 페어리퀸도, 마녀도 아닌 야생신에게 사기를- 아니, 선의의 거짓말을 해야 했으니 말이다.

“국경 너머 펼쳐진-”

“야생의 땅. 우린 그렇게 불러. 야만의 땅이 아니라.”

위대한폭풍의 한 발 앞선 지적에 유더는 감사를 표한 뒤 계속해서 말했다.

“야생의 땅에 위험이 닥쳐오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누구에게?”

“남부의 페어리 퀸과 마녀의 영혼에게서입니다.”

일단 유더 자신이 아는 바에 따르면 페어리 퀸들과 야생신들 사이에는 어떤 연관 고리도 없었다.

하지만 혹시 몰랐기에 구체적으로 누구라 점찍어 말하는 대신 페어리 퀸들에게 받은 요정의 발걸음과 요정의 결속을 보여주었다.

꿈속이라 복장도 달라졌지만 여전히 목과 팔에 자리한 두 기물이었다.

“흠··· 페어리 퀸들은 그렇다 치고 마녀의 영혼?”

“예, 음욕의 대군주 아스모데우스와 오랜 세월 동안 대적해온 대마녀의 영혼입니다.”

“걔들이 뭐라 했는데?”

“야생의 땅에 악마들의 위협이 다가오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특히 마녀의 영혼은 악마의 눈이라 불리는 조직이 위대한폭풍 부족의 족장인 붉은질풍에게 무언가 해코지를 한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고요.”

유더의 설명에 위대한폭풍의 미간이 좁아졌다.

그리고 유더는 확신했다.

‘넘어오고 있어.’

예상대로 마녀의 영혼이 누군지, 뭘 하던 자인지 잘 모르는 위대한폭풍이었다.

하지만 유더의 말에는 진실이 섞여 있었다.

악마의 눈.

야생의 땅에 해코지를 하고 있는 그들.

원인불명의 질병에 걸려 죽어가고 있는 붉은질풍.

“마녀의 영혼이 그랬단 말이지.”

“예, 그리고 여기있는 제 약혼녀 코델리아는 마녀의 영혼에게 힘을 일부 이어받은··· 마녀의 계승자입니다. 때문에 마녀는 저와 코델리아에게 야생의 땅으로 가 악마 추종자들의 음모를 막아줄 것을 부탁하였습니다.”

유더의 말에 위대한폭풍이 코델리아를 돌아보았고, 눈을 깜박이던 코델리아는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맞아요.”

말해놓고 보니 약간 바보같이 답한 것 같아 얼굴을 붉힌 코델리아였지만, 그 모습에서 오히려 신뢰감을 느낀 위대한폭풍은 턱을 긁적이며 말했다.

“그럼 정리해보면 이런 건가? 페어리 퀸이랑 마녀의 영혼이 야생의 땅의 위험에 대해 경고했다. 특히 마녀의 영혼은 내 부족 이야기까지 하며 가서 도와주라고 했다.”

“네, 맞습니다. 야생의 땅으로 가던 중에 윈터 엘프의 피를 이은··· 위대한폭풍 부족의 소녀가 노예경매장에 잡혀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구출하였고요. 그녀가 바로 붉은바람입니다.”

“흐음······.”

위대한폭풍이 다시 턱을 긁적였고, 유더는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이야기의 얼개만 보면 딱히 트집잡을 구석이 없었으니까.

위대한폭풍 부족을 만나러 가는 길이니 위대한폭풍 부족의 소녀를 구했다.

여기에 무어라 트집을 잡는단 말인가.

잠시 기다리던 유더는 아예 쐐기를 박아 넣었다.

“노예로 붙잡힌 탓에 경계심이 강해진 붉은바람을 납득시키기 위해 위대한폭풍님의 이름을 멋대로 사용하고 말았습니다. 부디 용서해주셨으면 합니다.”

유더는 허리를 깊이 숙였고, 이심전심인 코델리아는 거의 똑같은 타이밍으로 고개를 숙였다.

두 사람의 정중한 사과에 위대한폭풍은 끙끙 앓는 소리를 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뭐, 내가 좀 호방한 성격이니까. 일단 용서해주도록 하지.”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해요, 위대한폭풍님.”

유더와 코델리아는 얼른 감사를 표해 위대한폭풍의 용서를 기정사실로 만들었다.

그리고 유더는 여기에 한 발 더 나서기까지 했다.

“위대한폭풍이시여, 감히 청컨대 이 미력한 자의 이야기를 조금 더 들어주실 수 있으신지요.”

“뭔데.”

“큰 죄를 사해주신 은혜에 보답하고 싶습니다. 부디 저와 코델리아가 위대한폭풍 부족을 위해 싸우는 것을 허락해주셨으면 합니다. 위대한폭풍님의 전사가 되고 싶습니다.”

얼핏 들으면 그냥 자원봉사하겠다는 이야기였지만 실상은 전혀 달랐다.

‘자칭이 공식이 된다.’

위대한폭풍이 이를 허락하는 순간부터 유더와 코델리아는 위대한폭풍의 선택을 받은 진짜 야생신의 전사가 되는 셈이었다.

‘어차피 야생의 땅에서 활동해야 하니까.’

해피엔딩을 위해 악마의 눈과 성난뿔소 부족을 저지해야 하는 두 사람이었다.

그렇다면 자칭 전사보다는 공식 전사가 낫지 않겠는가.

위대한폭풍으로부터 제대로 된 인증이라도 하나 받으면 야생의 땅에서의 활동이 훨씬 더 편해질 터였다.

‘그리고 공식이면 뭐라도 주겠지.’

설마 신이라는 작자가 그냥 전사로 임명하고 입 씻겠는가?

“으으음.”

유더의 청에 위대한폭풍은 눈을 가늘게 뜨더니 끙끙 앓는 소리를 냈다.

뭔가 감이 안 좋은데, 분명 꿍꿍이가 있는 것 같기는 한데 딱히 트집 잡을 곳이 없다.

‘그냥 돌려보내도 안 될 것 같고.’

야생의 땅에서 악마추종자들이 뭔가 일을 벌이고 있는 것은 사실이었으니까.

사실 위대한폭풍이 굳이 유더와 코델리아 앞에 나타난 것도 그 때문이었다.

‘으으음, 뭔가 말리는 기분이란 말이지.’

하지만 별 수 없었다.

위대한폭풍은 숙고 끝에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너희의 청을 허락하겠다. 너희는 오늘부터 나의 전사들이다.”

위대한폭풍이 선언한 순간이었다. 유더와 코델리아의 오른쪽 상완에서 돌연 강한 빛이 일었다.

연이어진 것은 순간적이지만 강렬한 고통.

마치 뜨거운 인두로 지지는 것 같은 아픔 속에서 유더와 코델리아는 얼른 옷을 걷어보았고, 이내 각자의 오른팔에 자리한 문신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바람을 휘감은 천둥새의 문양.

위대한폭풍을 상징하는 야생신의 문장이었다.

그리고 문장의 존재를 확인한 순간 유더와 코델리아는 썩은물답게 생각했다.

‘뭐 특수효과 없나?’

‘옵션 없어?’

당장 확하고 느껴지는 변화는 없었으니까.

유더와 코델리아는 서로를 보았고, 이내 서로의 문장을 확인했다. 그리고 이내 다시 깨달았다.

‘다르다?’

‘다른데?’

유더의 것은 은색이었고, 코델리아의 것은 황금색이었다.

두 사람이 나란히 위대한폭풍을 돌아보자 그는 웃으며 말했다.

“나의 문장이다. 내 부족원들에게 보여주면 너희를 나의 전사로 인정할 것이다.”

‘아니, 그것도 중요하기는 한데.’

‘은색이랑 황금색 차이가 뭐에요? 황금색이 더 좋은 거 맞죠?’

유더와 코델리아가 열심히 눈빛으로 말했고, 위대한폭풍은 아는지 모르는지 자기 이야기만 계속했다.

“너희가 나의 전사가 되었으니, 너희에게 맡기고 싶은 일이 있다.”

위대한폭풍이 이 자리에 나타나게 된 진짜 이유.

게임으로 따지면 퀘스트가 시작되려는 순간.

하지만 유더와 코델리아는 이제 시작하려는 퀘스트보다는 당장 손에 넣은 문장 쪽에 더 관심이 쏠렸다.

더욱이 은색과 황금색으로 갈리기까지 했으니 더욱 그러했다.

‘그냥 물어볼까?’

‘말 끊는다고 뭐라 할 것 같지만 그럴까?’

서로 눈빛을 교환한 순간.

마침내 두 사람이 안달 난 이유를 파악한 위대한폭풍은 소년답지 않게 껄껄껄 웃으며 말했다.

“뭐야, 문장의 힘이 궁금한 거냐?”

““네.””

유더와 코델리아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즉답하자 위대한폭풍은 다시 웃었다.

“바람을 부리는 나의 가호가 깃든 문장이니 바람은 이제부터 너희의 편이 되어줄 거다.”

‘바람 속성 높아진다는 이야기인가?’

‘바람을 조종할 수 있다든가?’

유더와 코델리아가 나름 열심히 해석을 해보는 와중에도 위대한폭풍은 계속해서 말했다.

“은색 문장에는 바람장벽의 가호가 있다. 사용하면 바람의 장벽이 펼쳐져 투사 공격을 막아줄 것이다. 금색 문장에는 바람장벽의 가호와 바람부림의 가호가 담겨 있다. 바람부림의 가호를 사용하면 주변의 부는 바람을 잠깐이지만 자유로이 조종할 수 있을 거다.”

야생신이라 해도 신은 신.

바람장벽의 가호 하나만 해도 쓸모가 있었는데, 바람부림의 가호는 응용의 여지가 무척이나 큰 능력이었다.

“와! 정말 감사해요!”

자기 팔에 새겨진 황금색 문장을 새삼 다시 살핀 코델리아는 활짝 웃으며 기뻐했고, 위대한폭풍 역시 그런 코델리아가 보기 예쁘다는 듯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유더는 달랐다.

‘어째서.’

코델리아는 황금색인데 유더 자신은 은색인 것일까.

숫자 제한이라도 있는 것일까?

이럴 때는 그냥 둘 다 똑같은 거 주지 않나?

윈터 페어리 퀸이 겨울의 가호를 공평히 내렸던 것처럼 말이다.

유더의 의문은 타당했고, 때문에 위대한폭풍 역시 쉬이 유더의 생각을 짐작할 수 있었다. 때문에 그는 웃으며 말했다.

“간단한 이유다.”

코델리아에게는 황금색 문장을 주고, 유더에게는 은색 문장을 준 이유.

“나는 남자고, 예쁘고 착하고 귀엽고 솔직한 소녀가 시커멓고 음흉한 사내놈보다 훨씬 더 좋으니까.”

솔직하기 짝이 없는 대답에 유더는 눈을 깜박였고, 코델리아는 다시 활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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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사실 그것만은 아니다만.”

유더의 짐작대로 황금색 문장과 은색 문장 각각 수량 제한이 있어 두 사람 모두에게 황금색 문장을 주는 것은 불가능했다.

“저 소녀랑은 어쩐지 파장이 잘 맞거든. 이상할 정도로 말이야.”

‘둘 다 폭풍이라 그런가.’

위대한폭풍과 노란폭풍.

코델리아 역시 비슷한 생각을 했는지 웃는 얼굴로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위대한폭풍님. 저도 위대한폭풍님하고 제가 잘 맞는 것 같아요.”

“그렇지? 나도 그렇게 생각한단다.”

어느새 다정다감해진 코델리아와 위대한폭풍의 대화였다.

유더는 소외감을 애써 씹어 삼킨 뒤 다시 이야기를 진행시켰다.

“위대한폭풍이시여, 저희에게 하명하실 일은 무엇인지요.”

“아, 그래. 그거 이야기하던 중이었지.”

짝하고 손뼉을 친 위대한폭풍은 바위 위에서 앉은 자세를 고치더니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너희 말대로 악마 추종자 놈들이 무언가 일을 벌이고 있는 것 같다. 야생의 땅에 존재하는 여러 성역들에 이상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성역들에요?”

“그래, 우리 야생신들에게는 각기 영역이 있다. 그 영역을 성역이라 부르지.”

굳이 따지면 한국의 산신령과 비슷한 존재인 야생신들이었다.

자신의 영역인 성역을 선정하고, 그 성역에서 힘을 기른다.

덕분에 자신의 영역 안에서는 신이라 불릴 정도의 힘을 발휘할 수 있지만 영역 밖으로 나가면 힘이 격감하고 만다.

“이웃한 곳에 성역이었던 장소가 하나 있다. 격한눈사태라 불리는 야생신이 살던 곳이지. 부족을 보살피는 대신 자연과 하나가 된 녀석인데, 어찌되었든 녀석이 사라진 뒤에도 야생신의 힘이 남아 성역으로써 기능하던 곳이다.”

극한 지대인 야생의 땅에서 야만족들이 삶을 이어갈 수 있는 것은 야생신들의 축복이 가득한 성역 덕분이었다.

“그런데 그곳에 이상이 생긴 것 같다. 자연의 기운이 뒤틀린데다가 최근 들어서는 마물들까지 출몰하는 것 같다.”

어쩐지 알 것 같은 이야기였다.

위대한 폭풍이 계속해서 말했다.

“처음 이야기한 것처럼 문제가 생긴 성역은 한둘이 아닌 것 같다. 이런 와중에 성역을 비울 수 없어 부족민들 몇을 보내 조사를 시켜보았지만 결과가 좋지 못 했다.”

격한눈사태의 성역에 간 전사들 가운데 돌아온 자가 없었다.

평소라면 부족 최고의 전사인 붉은질풍을 보낼 터였지만, 병으로 누운 지 벌써 몇 해 째인 터라 방법이 없었다.

“그릇된 성역의 뒤틀림이 점점 내 성역에도 영향을 끼치기 시작했다. 그러니 남부의 아이들아, 나의 전사들아. 격한눈사태의 성역을 조사해다오.”

유더와 코델리아는 서로를 돌아보았다.

영웅전기2에서는 야생의 땅이 제대로 등장하지 않았다.

자연 야생신들과 얽힌 퀘스트들 역시 존재하지 않았다.

때문에 이 앞에서 일어날 일들은 영웅전기의 썩은물인 유더와 코델리아에게도 미지의 영역일 가능성이 높았다.

미지는 공포였다.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다는 것은 두려움이었다.

하지만 그렇다 할지라도.

‘조금 이상한 소리지만, 새로 나온 확장팩 하는 기분이야.’

코델리아가 눈빛으로 말했고, 유더가 동의했다. 조금이지만 가슴 역시 두근거렸다.

그리고 사실 예견된 일이었다.

유더와 코델리아의 목적은 영웅전기2의 시나리오를 박살내는 것이었으니까.

‘더욱이··· 정보가 아예 없는 건 또 아니니까.’

야생의 땅이 무대로 나오지 않았지만 악마의 눈과 타락한 야만족들은 영웅전기2에도 분명히 등장했으니까.

그들에 대한 정보는 유더의 머릿속에 있었다.

‘보상도 있을 테고.’

야생신도 신은 신.

이번에 문장을 준 것처럼 적절한 보상을 줄 터였다.

‘간단하네.’

어차피 해야 하는 일인데 보상까지 얻을 수 있다면 무조건 해야하지 않겠는가.

‘하자.’

유더가 눈빛으로 말했고, 이번에는 코델리아가 동의했다.

두 사람의 시선이 위대한폭풍에게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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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7장 - 계시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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