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9장 - 유적 >
제19장 - 유적
세일룬 왕국이 북부 야만의 땅으로까지 세를 넓히지 않는 이유는 단순했다.
“살기 힘드니까.”
괜히 썬더둠 요새에서 멈춘 것이 아니었다.
야만의 땅이 살기 힘든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는데, 하나는 혹독한 자연환경이었고, 다른 하나는 사방에서 출몰하는 마물들이었다.
“춥고 척박한데 괴물들까지 많으니 사람 살 곳이 아니지.”
야만족들이 몇 년에 한 번씩 북부 국경을 두드리는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북부는 살기 힘든 반면 남부는 살만했으니까.
더 살기 좋은 땅을 찾아 내려오는 것이었다.
“하아··· 하아······ 힘들다. 진짜 무슨 눈 밖에 없어.”
발자국 하나 없는 새하얀 설원 위에 새로이 발자국을- 그것도 푹푹 들어간 발자국을 새기며 코델리아가 헉헉 거렸다.
처음에는 예쁘다고 좋아했는데, 예쁜 것도 잠깐이지 막상 걷다보니 끝없이 펼쳐진 설원이 밉기만 했다.
야만의 땅의 환경은 정말로 혹독했다.
위대한폭풍 부족의 마을은 그래도 좀 살만한, 흐레스벨그 백작령으로 따지면 최북단에 위치한 마을 정도의 느낌이었다.
그런데 마을의 영역을 벗어나자마자 과장 조금 보태서 프로스트 앤빌이 펼쳐졌다.
사정없이 몰아치는 눈보라와 수북이 쌓인 눈들.
겨울의 가호가 아니었다면 숨조차 제대로 쉬기 힘들었을 터였다.
“야만족이 하아··· 센 하아··· 이유가··· 흐으··· 있어.”
이런 환경에서 사니 자연 강해질 수밖에.
아니, 애당초 약한 자는 살아남지도 못 하리라.
유더는 헉헉 거리면서도 끝까지 하고 싶은 말을 다하는 코델리아와 달리 그냥 입을 꾹 다문 채 나침반으로 방향을 확인했다.
위대한폭풍 부족의 마을 기준으로 북서 방향.
머릿속으로 거리까지 가늠해본 유더는 이내 코델리아에게 수신호를 보냈다.
“뭐? 좀만 더 가면 된다고? 아까부터 계속 하아··· 하··· 그러지··· 하악 않았어?
유더는 이번에도 답하는 대신 수신호로 답했고, 코델리아는 성질을 냈다.
“아 샹! 차라리 그냥 눈빛으로 말해!”
뭔지 모를 수신호보다 그쪽이 더 이해하기 쉬웠으니까.
‘생각해보니 신기하네. 어떻게 그런 거지? 이것도 막 동물적인 감 같은 건가? 역시 짐승?’
“뒤진다?”
유더의 눈빛을 찰떡같이 알아먹은 코델리아가 유더의 등을 힘겹게 때렸다.
유더는 계속해서 눈빛으로 말했다.
‘정말 조금만 더 가면 돼. 저쪽에 살짝 솟아있는 곳 보이지? 저기 가면 아래로 내려가는 길이 있어. 지하 동굴?’
유더의 눈빛에 코델리아는 미간을 찌푸리더니 끙끙 앓다가 되물었다. 역시 장문이 되다보니 제대로 이해가 안 되는 모양이었다.
“어··· 그러니까 저기 가면 내려가는 길 있다고?”
‘맞아.’
“씨발, 그냥 너도 말로 해. 말로 하라고. 아빠도 말로 해요!”
“응.”
코델리아의 앙탈에 짧게 답한 유더는 다시 앞장서기 시작했고, 코델리아는 헉헉 거리며 유더의 뒤를 따랐다.
태양화초 덕분에 체력 면에서 완전히 역전된 두 사람의 관계였다.
그리고 약 5분 여.
유더와 코델리아는 마침내 커다란 동굴 입구에 도달했다.
유더가 말한 것처럼 아래로 내려가는 커다란 동굴이었는데, 마치 던전의 입구 같았다.
‘원작에서는 여기까지였다.’
뭔가 있는 것 같다-라는 대사까지 뜨는 주제에 더 이상 진입이 불가능했으니까.
마른침을 삼킨 유더는 작게나마 미소를 지었다. 지금까지 가보지 못 하던 곳에 간다는- 미지로의 발걸음에 새삼 가슴이 두근거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코델리아는 그런 유더와 달리 그냥 제자리에서 방방 뛰며 말했다.
“아무튼 빨리 들어가자. 눈보라 맞기 싫어. 들어가면 좀 낫겠지.”
“···낭만이 없구만.”
“낭만도 등 따숩고 배불러야 챙기는 거지. 추워 죽겠는데 무슨 놈의 낭만이야.”
꿈도 희망도 없는 말을 속사포처럼 내뱉은 코델리아는 얼른 마법의 불빛을 만든 뒤 앞장서서 내려가기 시작했다.
“조심해.”
“응, 너두.”
일단 내려가기 시작하자 자연스럽게 유더가 전열로 나섰다. 코델리아보다 세 걸음 앞. 꼬리를 쳐다보는 코델리아의 노골적인 시선이 느껴졌지만 여기서부터는 나란히 걷고 자시고 할 때가 아니었다.
전열로 나서 후열인 코델리아를 보호한다.
위험으로부터 코델리아를 지키는 방패가 된다.
“조금 듬직할지도?”
“응?”
“아니, 꼬리 귀엽다고.”
히히 웃은 코델리아는 눈보라가 사라져서 그런지 성질을 내는 대신 호기심 어린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래로 이어진 동굴은 천장이 무척 높은데다가 신기하게도 아래로 내려갈수록 넓어지는 구조였다.
“으··· 슬슬 무서워지는 것 같아.”
거의 30미터 쯤 내려오고 나니 동굴이 너무 커져 작은 마법의 불빛으로는 다 비출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어둡고 습하며 주변에 뭐가 있는지 알 수 없는 동굴.
멀리서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규칙적으로 들리는가 싶더니 이내 사각사각 거리는 벌레 소리가 들려왔다.
“코델리아, 불빛 조금만 더 키워줄래?”
“응, 잠깐만.”
불빛을 키우면 자연 소모되는 마력도 더 커졌지만, 그보다는 주변의 시야 확보가 우선이었다.
코델리아가 주문과 함께 마력을 주입하자 은은한 빛을 발하던 마법의 구가 단번에 두 배 이상 커졌고, 광량은 세 배 이상이 되었다.
파아-!
마치 어두운 방안에 불을 켠 것처럼 순간적으로 빛이 어둠을 집어삼켰다. 주변의 경관이 보다 또렷이 드러났고, 그 순간 코델리아는 비명을 지를 뻔 했다.
사방에 자리한 수십 쌍의 눈들.
어째서 지금까지는 눈치 채지 못 했는지 의아할 정도로 많은 수의 마물들이 벽과 천장 곳곳에 붙어 이쪽을 주시하고 있었다.
“코델리아! 붙어!”
유더가 순간 외쳤고, 코델리아는 바로 이해했다. 빙글 돌아서서 유더와 등을 맞댔고, 유더는 동방무사의 검을 뽑아드는 대신 두 주먹을 움켜쥐었다.
어림 세어도 스물을 훌쩍 넘어 서른에 달할 것 같은 숫자.
다행히 몬스터 자체는 이미 알고 있는 종이었다.
“스노우 고블린!”
“무리 생활! 푸른 빛이 감도는 하얀 피부! 푸른 눈!”
“당연히 빙속성!”
“손톱과 이빨에 독이 있음!”
“겁이 많고 비겁한 성격! 조금만 불리해지면 바로 도망감!”
유더와 코델리아가 번갈아 외쳤다.
하지만 이내 내용을 정정할 수밖에 없었다.
“야! 눈이 붉어!”
“타락 버전! 저러면 도망 안 쳐!”
“버서크 모드!”
타락의 대군주 벨리알의 힘에 노출되어 변질된 스노우 고블린들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졌다.
놈들은 마지막 한 놈이 죽을 때까지 덤비고 또 덤비는 독종들이었다.
“온다!”
“나만 믿어!”
유더가 외친 그때 코델리아가 자신만만하게 외치며 허리춤에 차고 있던 날개바람의 화살을 허공에 날렸다. 바로 마녀화를 펼치며 소리쳤다.
“다 쓸어버리겠어!”
“코두!”
유더는 기대에 찬 눈으로 날개바람의 화살을 바라보았고, 코델리아는 소위 말하는 검결지를 취한 뒤 날렵하게 손을 움직여 날개바람의 화살을 조종했다.
츄화-!
날개바람의 화살이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무시무시한 속도로 비행하는가 싶더니 유더의 정면에 자리한 스노우 고블린의 미간 사이로 정확히 날아들었다.
“카악!”
머리를 강타당한 놈이 쓰러졌다. 유더는 환호성을 질렀고, 영화에서 본 것처럼 날개바람의 화살이 연달아 다른 놈들을 꿰뚫기를 기대했다.
하지만 그 이상은 없었다. 날개바람의 화살이 스노우 고블린의 두개골에 막혀 더 이상 나아가지 못 했기 때문이다.
“어··· 이게 아닌데.”
코델리아가 말했고, 그 순간 스노우 고블린들이 동시에 괴성을 지르며 돌진을 개시했다.
“씨발! 이럴 줄 알았어!”
“위대한폭풍 엉터리!”
오랜만에 욕지거리를 뱉은 유더는 숨을 멈추고 질풍이십사보를 밟았다. 거센 선풍을 일으킴과 동시에 코델리아를 중심으로 빠르게 주변을 휩쓸었다.
코델리아에게 접근하지 못 하게 한다.
일격에 적을 쓰러트려 착실하게 적의 숫자를 줄인다.
쾅! 쾅! 쾅!
연달아 굉음이 터졌고, 사방에서 밀려오던 스노우 고블린들의 선발대 넷이 저마다 머리와 목, 가슴 등등이 박살나 나자빠졌다.
하지만 겨우 넷에 불과했다. 남은 스노우 고블린들이 아랑곳하지 않고 덤벼드니 마치 노도가 밀려오는 것 같았다.
“튀자!”
하나하나는 약했지만 역시 수가 너무 많았다. 적어도 싸우는 위치를 바꿔야만 했다.
유더는 재빨리 코델리아의 허리를 낚아채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그녀를 등짐처럼 어깨에 짊어졌다.
평소라면 무어라 한 소리 했을 코델리아였지만 전투 중이라 그런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유더는 일단 지면을 박차 높이 솟구쳐 올랐다.
“크아아!”
방금까지 유더가 서 있던 자리를 뒤덮은 스노우 고블린들이 사납게 짖어댔고, 유더는 놈들의 머리를 밟아가며 내려왔던 길을 거슬러 올라가려 했다.
하지만 무리였다. 새로이 나타난 스노우 고블린들이 이미 퇴로를 차단했기 때문이다.
‘아예 정착지였나?!’
스노우 고블린들은 여느 고블린들 이상으로 커다란 군락을 이루는 경우가 많았다. 정말 제대로 된 정착지라면 놈들의 숫자는 일백을 상회할 수도 있었다.
‘높은 곳으로.’
유더는 일단 놈들에게 포위되는 상황만은 피하기 위해 지대가 높은 곳을 찾았다. 그리고 그 순간이었다.
“됐어! 다시 할 거니까 업어 줘! 아니! 안아 줘!
코델리아가 돌연 외쳤고, 유더는 반사적으로 그녀의 말을 따랐다. 짐짝처럼 어깨에 얹고 있던 그녀를 소위 말하는 공주님 안기 자세로 고쳐 안았다.
“가라!”
코델리아가 외쳤다. 동시에 날카로운 바람이 유더와 코델리아 주변을 휩쓸었다.
츠파하아아아아-!
날개바람의 화살이었다.
처음 쓰러트렸던 놈의 머리에서 빠져나온 그것이 스노우 고블린들 사이를 무시무시한 속도로 지나쳤다.
아니, 그냥 지나친 것이 아니었다.
“칵!”
“컥!”
“키엑!”
날개바람의 화살촉이 스노우 고블린들의 목이나 허리 등등 피부를 찢고 상처를 냈다.
‘미친.’
실로 무시무시한 조종 실력이었다.
꿰뚫지 못한다면 베어서 상처를 준다.
이론 자체는 단순했지만, 다른 무엇도 아닌 화살촉이었다. 저렇게 빠른 속도로 움직이면서 가죽위로 상처를 내는 것은 사실상 곡예에 가까웠다.
‘하지만.’
스친 상처를 내는 정도로는 의미가 없었다.
겨우 그 정도로 뻗어버릴 정도로 약한 스노우 고블린들이 아니었다.
코델리아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때문에 그녀는 한 가지 조치를 더 취해둔 상태였다.
“커헉!”
“키엑!”
날개바람의 화살에 상처를 입은 스노우 고블린들이 돌연 숨넘어가는 소리들을 내었다.
단순한 이유였다.
“독!”
“그거지!”
포이즌 블레이드.
마녀의 주문으로 화살촉에 강한 독성을 부여한 코델리아였다. 더욱이 코델리아의 콤보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거듭된 레벨 업 덕분에 배울 수 있게 된 새로운 주문이 있었기 때문이다.
“폭발사산!”
코델리아가 검결지를 풀고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러자 스노우 고블린들의 상처가 부풀어 오르는가 싶더니 이내 보랏빛과 함께 터져나갔다.
포이즌 익스플로젼.
한 마디로 독 폭발.
적에게 중첩시킨 독을 폭발시키는 마법으로, 중첩된 독의 양이 많으면 많을수록 더 큰 위력을 발휘하는 기술이었다.
쾅! 쾅! 쾅!
수십 개의 폭발음이 마치 하나인 것처럼 연이어졌다.
이제 막 익힌 단계였기 때문에 코델리아의 독 폭발은 그 위력이 약했지만, 이미 그 정도는 계산해둔- 아니, 본능적으로 파악한 코델리아였다.
날개바람의 화살은 아무 곳에나 상처를 내지 않았다.
작은 폭발로도 치명적인 타격을 입을 수 있는 곳들만을 표적으로 했다.
“키에에!”
목이 터진 스노우 고블린이 자기 목을 조르며 나자빠졌고, 옆에 있던 놈은 사타구니가 터져 비명조차 제대로 지르지 못 했다. 허리나 발목이 상해 제대로 거동하지 못 하는 놈들도 있었다.
“하아··· 하악··· 하··· 어, 어때?”
단번에 대량의 마력과 집중력을 소모한 코델리아가 식은땀을 흘리며 유더를 돌아보았고, 유더는 일단 주변부터 보았다. 수십 마리가 넘던 스노우 고블린들이 죄다 자빠져 신음하고 있었다.
‘과연 노란폭풍.’
사냥 하나로 유더 자신을 따라잡은, 일대다 사냥이라는 영역에서만큼은 영웅전기2 최강이라 할 수 있는 존재.
“역시 양민학살의 제왕.”
“아니···거든? 센 놈들도 잘··· 잡거든?”
거기까지였다. 힘겹게 말하던 코델리아의 코에서 주르륵 코피가 흘러내렸고, 코델리아의 두 팔이 축하고 쳐졌다.
“막타는 내가 칠게, 일단 쉬어.”
“씨, 씨발······.”
한스러운 외침과 함께 코델리아는 그대로 혼절했다. 너무 무리한 탓이었다.
‘그래도 대단하네.’
이제 막 30레벨이 된 유더와 코델리아였다. 이 정도 레벨에서 지금과 같은 광경을 만들어낼 수 있는 건 아마 코델리아뿐이리라.
‘장래가 기대된다, 장래가.’
나중에는 얼마나 강해질까.
억울한 얼굴로 혼절한 코델리아를 보며 빙긋 미소 지은 유더는 골골 거리는 고블린들에게 막타를 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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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코델리아는 눈을 떴다.
머리가 아프고 온 몸에 힘이 없었다.
“으.”
다시 목소리를 내었다. 그러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깼어?”
코델리아는 답하는 대신 눈을 한 번 세게 감았다가 떠 주변을 보았다.
여전히 동굴 안.
유더의 등에 업혀있는 자신.
“으··· 어디야?”
“동굴 안쪽. 깊숙이 들어갈수록 오히려 스노우 고블린들이 줄어들더라.”
“왜.”
“···뻔하지 않니?”
“머리 아파. 생각하고 싶지 않아.”
코델리아가 칭얼거리며 유더의 어깨를 턱으로 몇 번 때리자 유더는 끌끌끌 혀를 차며 말했다.
“성스러운 기운이 강해지고 있어. 그, 라이제강의 봉인지 기억나지? 거기처럼.”
“그럼 제대로 온 거야?”
“어, 솔라리의 유적이 있는 게 확실해.”
“야, 신난다.”
힘없이 답한 코델리아는 다시 스스로를 돌아보았고, 이내 자신이 포대기 같은 것에 묶여 유더의 등에 매달려 있음을 깨달았다.
“미안, 기저귀는 못 구했어.”
“에바 치지 말고.”
코델리아는 마법의 불빛을 만들어내는 대신 유더가 들고 있는 횃불을 보며 말을 이었다.
“그래서 얼마나 더 가야 해?”
“다 온 거 같아.”
유더의 말대로였다. 코델리아가 정면을 보니 척 보기에도 문 같이 생긴 것이 떡하니 자리하고 있었다.
“솔라리의 문장이네.”
“단순한 유적이 아니야. 무덤 같아.”
석문에 새겨진 문장에 횃불을 가져다 댄 유더는 한 차례 눈을 가늘게 뜬 뒤 말을 이었다.
“코델리아, 혼자 걸을 수 있겠어?”
“아마도?”
“그럼 일단 내리자.”
유더가 포대기를 풀자 코델리아는 다소 위태로운 모습을 보이긴 했지만 이내 자기 발로 서는데 성공했다.
“후, 날개바람의 화살 마력 소모가 너무 심해.”
“위력은 좀 약하던데. 기동성이야 놀라웠지만.”
“마력···을 더 부으면 위력도 강해질 것 같기는 한데··· 그러려면 레벨을 한참 더 올려야 할 것 같아.”
거기까지 말한 코델리아는 허리춤에서 꺼낸 마력 포션을 꿀꺽꿀꺽 마셨다.
“으··· 써. 아무튼 이제 들어가 보자.”
솔라리의 유적.
그것도 무덤이라면 분명 앞으로 악마들과 싸우는데 도움이 될만한 물건들이 잠들어 있을 터였다.
“잠깐만.”
가볍게 어깨를 푼 유더는 조심스럽게 석문을 열었다.
“와.”
석문 너머도 동굴인 것은 같았지만, 생긴 것이 완전히 딴판이었다.
푸른빛을 발하는 보석이 곳곳에 박혀 있어 어둡고 음습하기는커녕 신비로운 분위기를 야기했다. 더욱이 벽을 따라 흐르는 물줄기는 어찌나 맑은지 1미터 쯤 되는 물속이 훤히 다 보일 정도였다.
“솔라리의 기운이 분명해.”
태양의 목걸이 덕분에 솔라리의 힘에는 익숙한 유더였다.
“누구 무덤인지는 알 수 없어?”
코델리아의 물음에 유더는 바로 답하는 대신 시선을 멀리 던졌다. 저만치 끝 부분에 자리한 석관을 향해서였다.
높이가 1.5미터에 달하고 길이가 4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석관.
솔라리의 문장이 새겨져 있는 관에는 그 외에도 몇 개나 되는 신성문자가 새겨져 있었다.
“맙소사.”
“왜?”
“갈레온의 무덤이야.”
유더의 대답에 코델리아는 눈을 깜박이더니 이내 크게 뜨며 되물었다.
“갈레온? 가리우스의 제자? 성투사 갈레온?”
“어, 성투사 갈레온.”
데몬프린스 라이제강을 봉인한 솔라리의 챔피언 가리우스에게는 그의 진전을 이어받은 세 제자가 있었다.
성투사 갈레온, 성기사 베르파, 성전사 아멜리아.
“와, 그럼 막 대단한 거 있는 거 아냐?”
“아마도?”
갈레온 정도면 솔라리 교단에서도 네임드였으니까.
코델리아의 눈이 반짝반짝 빛나기 시작했다.
“빨리 열어보자.”
뭔가가 있다면 석관 안에 있을 테니까.
더욱이 성투사 갈레온은 성십자수호단이 사용하는 신격권의 선조라 할 수 있는 인물이었다.
지금의 유더에게 유용한 물건이 들어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이거 도굴 아닌가.’
무슨 봉인된 악마나 악당도 아니고 성인의 무덤인데.
“그래도 어쩔 수 없잖아?”
당장 거친눈사태의 상태를 살피는 와중에도 악마의 손과 격돌할 가능성이 있는 두 사람이었다.
파국으로 치닫을 미래를 막기 위해서는 악마들과 싸울 힘이 필요했다.
“그래도 일단 기도라도 드리자.”
“그래, 묵념도 하고.”
아무래도 게임과는 달랐으니까.
유더와 코델리아는 나란히 솔라리에게 기도를 올린 뒤 갈레온을 위한 묵념의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1분.
서로를 돌아본 유더와 코델리아는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빙긋 웃으며 관에 손을 대었다. 완전히 새로운 아이템을 발견할 수 있다는 흥분에 몸을 떨며 관에 걸린 봉인을 해제하고자 하였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이었다.
[성스러운 투사의 무덤을 건드는 자가 누구이냐!]
거친 노성이 유더와 코델리아의 머릿속뿐만 아니라 동굴 전체를 뒤흔들었다.
“유더!”
코델리아가 두 손으로 귀를 막은 그때 유더는 코델리아의 허리를 낚아챘다. 바로 질풍이십사보를 밟아 서 있던 자리를 이탈했고, 마치 합을 맞추듯 그 순간 천장에서 쏟아진 벼락이 유더가 서 있던 자리를 강타했다.
콰강!
푸른 뇌전.
연이어 갈레온의 무덤 위로 푸른빛이 모이더니 이내 날개달린 표범의 형상을 갖추었다.
[무덤을 욕보이는 자! 솔라리의 징벌을 피할 수 없을 터이니!]
푸른 털을 가진 거대한 표범이 관 위에 서서 유더와 코델리아를 노려보았다.
솔라리 관련 유적에서 종종 등장하는 무덤의 수호자가 분명했다.
“무덤의 수호자.”
“최하급 천사.”
“지성은 없음. 사실상 가고일. 멘트는 이미 녹음된 것일 가능성이 높음.”
“성속성. 솔라리의 천사니 태양 속성 추가.”
“어쩌지?”
“싸워야지.”
역시 기도와 묵념만으로는 부족했던 모양이다.
어찌되었든 이렇게 된 이상 갈레온의 관을 열든 도망치든 싸우는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일행에게는 싸워야만 하는 이유가 하나 더 있었다.
“그런데 말이야.”
“어.”
“천사네?”
천사.
최하급이긴 하지만 아무튼 천사.
가고일 같은 존재지만 일단 피와 살로 이루어진 존재.
“천사의 피.”
코델리아가 말했고, 유더가 고개를 끄덕였다.
썩은물들의 두 눈이 초롱초롱 빛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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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9장 - 유적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