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9장 - 유적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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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는 모두 아홉 단계로 등급이 구분되었고, 눈앞에 자리한 무덤의 수호자는 최하급에 속하는 9급 천사였다.
하지만 9급이라고는 하나 천상의 존재.
타고난 기량만을 논한다면 인계의 존재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상위의 존재라 할 수 있었다.
유더와 코델리아는 원작에서 마주했던 무덤의 수호자를 떠올렸다.
각자의 본캐라면야 무덤의 수호자 군단과 싸워도 싹 쓸어버리는 것이 가능할 터였지만, 이제 겨우 30레벨인 두 사람이었다.
“레벨로만 따지면 절대 못 이겨.”
무덤의 수호자는 사실상 40레벨로 취급되는 몬스터였으니까.
더욱이 이곳은 솔라리의 힘이 깃든 유적지였다. 무덤의 수호자가 받을 버프 효과까지 계산하면 두 사람이 이길 길은 요원했다.
하지만 한 번 불이 붙기 시작한 썩은물의 근성은 그리 녹록한 것이 아니었다.
“그래도 해야지?”
“해야지. 최소한 피라도 받아내야지.”
맡긴 적도 없지만 유더는 그리 말했고, 코델리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잡아야겠네.”
“잡아야지”
피만 받아내는 건 말 그대로 최소치였으니까.
두 사람은 다시 정면을 보았고, 갈레온의 석관 위에서 위엄 넘치는 자세로 앉아 있는 무덤의 수호자를 보았다.
솔라리의 버프 덕분인지 전신에 황금빛을 두르고 있는 것이 정말 강해보였다.
“옛날 생각난다.”
“언제?”
“영웅전기2 처음 했을 때.”
이제 막 시작한 영린이였던 코델리아에게 무덤의 수호자는 실로 절망 그 자체라 할 수 있을 무시무시한 보스였으니까.
“그러게.”
유더도 영린이 시절을 떠올렸다. 은퇴 후 우연한 기회로 시작한 영웅전기2.
‘누구를 만나지 않았다면 이렇게 오래하지도 않았겠지.’
전생의 유더- 아웃복서009가 영웅전기2를 미친 듯이 파고든 이유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재미있어서고, 다른 하나는-
“왜? 뭔가 이상한 생각하고 있지? 눈빛이 음흉한데?”
“그럴지도.”
“뭐?”
유더는 다시 웃었다.
어떻게든 1등을 차지한 뒤에 2등인 노란폭풍을 놀리는 것이 삶의 낙이었으니까.
솔직히 유더 자신이 봐도 정말 유치한 행동이었다.
예전 동료들이 알면 다들 뭐하는 짓이냐며 실망한 표정들을 지을 터였다.
하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노란폭풍이 존재하는 영웅전기2는 정말로 재미있었으니 말이다.
“너 때문이야.”
영웅전기2를 그렇게 오래한 것도, 현실에서는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별의 별 지식들을 전부 머릿속에 욱여넣은 것도.
“아니, 아까부터 뭐가! 우리 보스전 해야 하는 상황이거든?”
코델리아의 재촉에 유더는 고개를 끄덕인 뒤 다시 석관 쪽을 보았다.
무덤의 수호자는 ‘수호자’라는 이름과 직책답게 선공하는 몹이 아니었다. 이쪽이 먼저 공격을 하기 전에는 저렇게 석관 위에 앉아 주시만 할 터였다.
“즉, 준비할 시간이 있다는 거지.”
“미리 강력한 주문 외우는 건 안 돼. 주문에는 반응하니까.”
“알아, 그러니 이렇게 하자.”
유더의 눈짓에 코델리아는 미간을 찌푸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렇게 하자.”
“알아들었어?”
“대충은. 거기다··· 무덤의 수호자 잡은 횟수만 따지면 내가 네 두 배··· 아니, 세 배는 될 걸?”
현재 유더와 코델리아의 전력과 가지고 있는 것들로 할 수 있는 일들.
역시 전투라는 면에 있어서는 타고났다고 밖에 할 수 없는 코델리아였다. 유더는 재차 고개를 끄덕인 뒤 말했다.
“좋아, 그럼 바로 시작하자.”
아무리 눈빛만으로 텔레파시 수준의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두 사람이었지만 그래도 직접 말로 맞춰봐야 할 부분이 있었다.
빠르게 대화를 주고 받은 두 사람은 동시에 작업을 시작했고, 1분 남짓한 시간 만에 모든 준비를 마쳤다.
“뭐랄까, 조금 이상한 이야기지만 정말 기다려주네.”
“착한 녀석이야. 천사잖아.”
근엄한 표정으로 이쪽을 내려다보는 무덤의 수호자에게 한마디씩을 던진 유더와 코델리아는 동시에 숨을 삼켰다. 천천히 내쉬며 각자 전투 태세를 갖추었다.
유더의 전신에 황금빛 성투기가 피어올랐다.
코델리아의 머리칼이 검게 물들며 푸른 안광이 빛났다.
“가자.”
“헤이스트!”
가속 마법이 유더의 전신을 휘감았다. 유더는 그대로 질풍이십사보를 밟았고, 쏜살처럼 나아가는 유더에게 무덤의 수호자가 반응했다.
“아아아-!”
성스러운 메아리.
전방으로 퍼져나가는 일종의 음파 공격. 적중한 적의 능력치를 저하시키는 디버프 효과.
무덤의 수호자의 공격은 늘 성스러운 메아리로 시작되었고, 때문에 유더는 이미 대비하고 있었다.
‘성십자 지르기.’
유더의 주먹에서부터 발현된 거대한 황금 십자가가 마치 방패처럼 유더의 정면을 가로막았다. 성스러운 메아리와 충돌했고, 그 순간 무덤의 수호자가 날아올랐다.
팟!
유더가 정면으로 치달았다. 무덤의 수호자의 두 번째 공격인 빛의 난사는 광역기였다. 천장에서 비처럼 쏟아지는 빛의 칼날들이 코델리아에게 닿지 않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빛의 난사의 시작점 자체를 바꾸는 것이었다.
파파파파파!
예상대로 빛의 칼날들이 앞으로 치달은 유더를 향해 쏟아져 내렸다.
감각을 날카로이 한 유더는 정신없이 질풍이십사보를 밟았다. 선풍과 함께 빛의 칼날을 피했고, 위대한폭풍이 선사한 바람장벽으로 빛의 칼날을 흘려보냈다.
쾅! 쾅! 쾅!
빛의 칼날들이 지상과 충돌하며 폭발했다.
굉음 속에서 질풍이 된 유더는 속으로 수를 헤아렸고, 소리쳤다.
“빨리!”
“간다!”
코델리아가 손을 날린 그때 마녀의 검은 칼날이 허공에 자리한 무덤의 수호자를 향해 돌진했다.
무덤의 수호자는 검은 칼날을 돌아봄과 동시에 빛의 장벽을 발동시켰다.
파팟!
어둠의 힘으로 이루어진 검은 칼날과 성스러운 장벽이 충돌하며 번갯불이 튀었다.
그리고 코델리아는 미소지었다.
“빙고.”
유더의 말버릇.
검은 칼날이 정면으로 돌진한 그때 바닥을 기듯이 날아가 무덤의 수호자의 배후를 노린 날개바람의 화살이 솟구쳐 올랐다. 무덤의 수호자가 채 반응하기도 전에 놈의 등을 꿰뚫었다!
“칵!”
날개바람의 화살은 약했다.
고블린의 두개골에 막힐 정도로 관통력 역시 애매했다.
하지만 애당초 코델리아는 날개바람의 화살을 공격용으로 쓰지 않았다.
날개바람의 화살은 이동을 위한 셔틀.
진짜는 날개바람의 화살대에 묶은 바이콘의 뿔이었다.
“크아아!”
바이콘의 저주가 무덤 수호자의 체내에 파고들었다.
하지만 아직이었다. 천상의 존재를 끌어내리기에는 부족했다.
“그래서 한 발을 더 준비했습니다.”
코델리아가 말한 그 때 유더가 바이콘의 뿔을 던졌다.
무시무시한 속도로 날아간 바이콘의 뿔이 집중을 잃은 무덤 수호자의 옆구리를 파고들었고, 바이콘의 저주가 배가 되었다.
“크어어!”
무덤 수호자가 유더를 향해 난폭하게 돌진했다.
코델리아는 마녀의 저주를 읊조렸고, 바이콘의 뿔들로부터 시작된 검은 기운이 무덤 수호자의 전신을 옭아맸다.
“크헝!”
하지만 무덤 수호자였다.
천상의 존재는 고통을 견디며 입을 크게 벌렸고, 놈의 입에서부터 거대한 빛의 파장이 뻗어나갔다.
무덤 수호자의 최강기인 홀리 브레스였다.
“유더!”
눈앞을 뒤덮는 무시무시한 빛의 파장에 코델리아가 다급히 외쳤고, 유더는 코델리아가 잊고 있던 한 가지를 상기시켜주었다.
요정의 발걸음으로 빛의 파장 자체를 지나쳐 무덤 수호자에게 돌진했다!
쾅!
지면을 세게 박찼다. 무덤 수호자의 측방으로 몸을 날림과 동시에 주먹을 당겼다.
무덤 수호자의 시선이 유더에게 향했다. 하지만 너무 늦었다. 유더의 주먹은 이미 반쯤 박힌 바이콘의 뿔에- 정확히는 바이콘의 뿔을 가공해 만든 단검과 닿기 직전이었다.
쾅!
다시 굉음이 터졌다. 유더의 주먹이 바이콘의 뿔 단검을 때렸고, 마치 망치가 못을 때린 것처럼 바이콘의 뿔이 무덤 수호자의 몸 깊은 곳으로 파고들었다.
“크아아!”
무덤의 수호자가 몸을 뒤틀었다. 유더를 향해 마구잡이로 두 발을 휘둘렀고, 날카로운 발톱들이 허공을 갈랐다.
유더는 침착하게 대응했다. 질풍이십사보를 밟아 공격을 피함과 동시에 다음을 준비했다. 머릿속으로 수를 헤아렸다.
‘바이콘의 뿔이 둘.’
무덤 수호자가 두르고 있는 천상의 기운은 모두 제거했다.
하지만 이 정도로는 부족했다. 놈을 좀 더 끌어내려야만 했다.
천상의 존재를 잡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
고전 속에 답이 있었다.
타락시킨다.
몰락시킨다.
천상의 존재를 지상으로 끌어내린다.
바이콘의 뿔로 저주를 퍼부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유더는 마구잡이로 펼쳐지는 놈의 공격 사이로 길을 찾아냈다. 선풍과 함께 몸을 날려 파고들었고, 다시 한 번 공격의 기회를 포착했다.
주먹.
하지만 평범하지 않았다.
플레이 아데스에서 눈을 뜬 이후 벌써 몇 달이란 시간이 흘렀다. 그 시간동안 유더는 많은 것들을 익혔고, 한 가지 결론을 내렸다.
반드시 게임처럼 갈 필요는 없다.
현실이니까.
게임에서는 시스템적으로 불가능한 일들을 할 수 있는 곳이었으니까.
그러니 저질러 버린다.
할 수 있는 일들은 모조리 동원해 전투력을 끌어올린다.
쾅!
유더의 주먹이 무덤수호자의 뒷다리 허벅지를 강타했다. 동시에 유더가 위대한폭풍 부족의 대장간에 부탁해 특별히 만든 너클에서 변화가 생겼다. 주먹 전면부에 돌돌 말린 채 꽂혀 있던 마법진 가운데 하나가 불타올랐다.
사용한 것은 적의 능력치를 소폭 감소시키는 기본적인 저주 마법.
지근거리에서 직접 마법진을 때려 박는다.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물리 저주랄까?
“크아!”
저주가 무덤 수호자를 좀먹었다. 유더는 멈추지 않고 주먹질을 계속했다.
펑! 펑! 펑!
마치 총알처럼 장전된 마법진이 계속해서 불타올랐다.
“커스! 포이즌! 커스! 포이즌!”
그리 강한 마법이 아니었지만 이미 바이콘의 뿔 때문에 천상의 수호가 걷힌 무덤 수호자였다. 저주와 독이 중첩되자 눈에 띄게 상태가 안 좋아졌다.
더욱이 유더는 전투의 기본을 알았다.
때린 곳을 또 때린다.
망가진 곳을 더 망가트린다.
“크어··· 크······.”
연속해서 허벅지를 강타당한 무덤 수호자가 제대로 서지 못 하고 주저앉았다. 제대로 된 공격을 할 수 없게 된 놈은 다급히 날갯짓을 해 날아올랐다.
“크헝!”
날아올라 다시 한 번 홀리 브레스를 내뿜는다.
유더는 날아오르는 놈을 향해 허리에 차고 있던 손도끼와 단검을 연속해서 투척했다.
어느새 다시 만들어진 빛의 장벽들이 원시적인 투사 무기들을 막아냈지만 상관없었다.
어차피 목적은 놈의 시선을 끄는 것뿐이었으니 말이다.
“이제 충분하지?”
유더의 물음에 코델리아는 행동으로 답했다. 유더에게 완전히 정신이 팔려있던 놈을 향해 코델리아가 소리쳤다.
“칼라마이트의 창이여!”
마녀의 주문.
땀으로 범벅이 된 코델리아의 오른 손에는 길고 거대한 검은 빛의 덩어리가 쥐어져 있었다.
무덤의 수호자가 급히 코델리아 쪽을 돌아보았지만 이미 늦었다. 코피를 주륵 흘린 코델리아가 놈을 향해 칼라마이트의 창을 던졌다.
츠화아!
빠르지 않았다. 하지만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무덤 수호자는 다급히 빛의 메아리를 외쳤지만 이미 중첩된 디버프로 인해 천상의 힘을 거의 잃은 놈이었다.
빛의 메아리가 마치 유리창처럼 박살났다. 칼라마이트의 창이 그대로 돌진해 무덤 수호자의 얼굴을 강타했다!
“크아아!”
칼라마이트의 창이 놈의 벌린 입을 꿰뚫었다. 그리고 연이어 놈의 몸을 검은 불꽃으로 불살라버렸다.
쿵!
무덤 수호자가 지면에 추락했다.
코델리아는 헐떡이며 주저앉았고, 유더는 동방무사의 검을 뽑아들었지만 필요 없는 일이었다.
새하얀 빛의 고리.
연속해서 떠오른 그것이 유더와 코델리아를 감쌌다. 머릿속으로 새로운 타이틀에 대한 정보 역시 들려왔다.
‘‘천상을 공격한 자’와 ‘천사살해자’ 타이틀을 획득했습니다. 천사와의 전투 시 모든 능력치가 1% 상승합니다. 천사의 정신 공격에 대해 미약한 저항력이 생겼습니다.’
최하급이라고는 하나 역시 천사.
씩하고 미소 지은 유더는 빛의 고리의 숫자를 헤아려 보았다.
‘과연 40레벨.’
빛의 고리 세 개에 만족한 유더는 숨을 길게 내쉬며 코델리아 쪽을 돌아보았다.
“어··· 일단 괜찮지?”
“하아··· 하아··· 씨발.”
주륵 흘러내린 코피를 닦을 생각도 않고 코델리아는 뒤로 발라당 쓰러졌지만 얼굴은 웃고 있었다.
“막타 쳤다.”
“축하합니다, 마님.”
짝짝짝 박수를 친 유더는 빛의 고리 네 개에 휘감긴 코델리아에게 다가가는 대신 무덤 수호자의 시신에 다가갔다.
‘가고일 같은 놈이라 다행이네.’
지성을 가진 천사였다면 무척 껄끄러웠을 테니까.
‘아니, 그럼 아예 안 싸웠으려나.’
설득이 되었을지도 모르니까.
어찌되었든 쓰러트린 것은 쓰러트린 것이었다. 유더는 바이콘의 뿔을 회수하며 일단 급한대로 물통에 천사의 피를 담았다.
“반짝반짝하네.”
붉은 색이었지만 황금빛이 은은하게 어려 있었다.
“쓸 수··· 있을 거 같아?”
멀리서 들려온 다 죽어가는 목소리에 유더는 미간을 살짝 좁히며 말했다.
“일단 가져가서 이것저것 실험 좀 해봐야지.”
일단 선조회귀 자체는 가능할 것 같지만 이왕지사 더 좋은- 한 마디로 더 상위 천사의 피를 쓰는 게 나을 수도 있었으니까.
‘더욱이 지금보다 더 짐승이 될 수도 있고.’
이러나저러나 짐승형 천사의 피였으니까.
잠시 지금보다 더 짐승다워진 코델리아를 떠올린 유더는 빙긋 미소를 지었다. 의외로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아, 시간 됐다.”
무덤 수호자의 시신이 빛이 되어 사라졌다. 악마들이 죽으면 재가 되듯이, 천사들은 빛이 되었다.
유더는 무덤 수호자가 드랍한 천사의 깃털을 모두 챙긴 뒤에야 코델리아에게 다가갔다.
“마님, 일어나시죠.”
“빨리도··· 온다······.”
헐떡이며 답한 코델리아는 유더가 내민 손을 붙잡고 일어섰다.
“괜찮겠어? 일단 그냥 누워서 더 쉴래?”
“힘들어서 더 쉴 거야. 석관 내용만 확인하고.”
기껏 보스몹을 잡았는데 보상 확인을 안 하면 썩은물- 아니, 게이머 자체가 아니었으니까.
동의한 유더는 일어설 힘도 없는 코델리아를 아예 안아들었다.
“가시죠, 마님.”
“가거라, 돌쇠야.”
석관 앞에 당도한 유더는 코델리아를 바닥에 내려놓은 뒤 새삼 숨을 크게 삼켰다.
솔라리 최강의 챔피언인 가리우스의 세 제자이자, 수많은 악마들을 쓰러트린 성투사 갈레온의 석관.
과연 안에는 무엇이 들어있을까.
“연다?”
“잠깐, 잠깐. 아예 업어줘. 여는 순간에 같이 보게.”
“매달릴 수 있겠어?”
“없어, 그러니까 포대기 써줘.”
“손이 많이 가는 처자일세.”
끌끌끌 혀를 찬 유더지만 그래도 순순히 코델리아의 바람을 이뤄주었다.
단단히 업고 포대기로 고정까지 한 뒤 다시 석관 앞에 섰다.
“연다?”
“오케이!”
코델리아가 기대에 찬 얼굴로 말했고, 유더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천천히 석관을 열었다.
그리고 안에서 발견된 것은 두 사람의 예상을 완전히 벗어난 것이었다.
그것도 좋은 방향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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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시각 체이스 백작가.
바이엘 백작과 체이스 백작은 오랜만에 마주 앉아 담소를 즐기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슬슬 게일과 아델리아에게 연락이 올 때가 되었군.”
“유더와 코델리아가 북쪽 끝에 있다 보니 시간이 좀 걸리는 것 같지만 게일과 아델리아라면 문제없겠지.”
“그렇겠지.”
두 사람 모두 각자의 장남과 장녀를 무척이나 신뢰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어린 시절부터 각자의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낸 두 사람이지 않은가.
“아마 조만간 유더와 코델리아를 데려올 걸세.”
“흐레스벨그 백작에게 보낼 사과 편지도 슬슬 작성해야겠군.”
“이번 기회에 교류를 늘리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체이스 백작의 말에 바이엘 백작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세간에서는 변경백 자리를 빼앗긴 바이엘 백작가가 흐레스벨그 백작가를 원망하리라 생각했지만- 아니, 그러기를 바랐지만 정작 바이엘 백작 본인은 딱히 흐레스벨그 백작가에 유감이 없었다.
변경백 자리도 빼앗겼다기 보다는 물려주었다는 감각이었고 말이다.
“자네는 천상 무인- 아니, 검사란 말이지.”
체이스 백작의 말에 바이엘 백작은 어깨를 한 번 으쓱인 뒤 홍차를 즐겼다.
유더와 코델리아에 대한 걱정을 한 시름 덜어서 그런지 평소보다 홍차의 향이 좋았다.
그런데 직후였다.
쿵쿵 거리는 거친 발걸음 소리가 문 밖에서 들려왔고, 이내 벌컥하고 문이 열렸다.
체이스 백작가의 집사인 노던이었다.
평소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지 않는 그였거늘, 어쩐 일인지 다급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무슨 일이냐.”
체이스 백작 역시 조금은 놀란 얼굴로 묻자 노던 집사는 마른 침을 꿀꺽 삼킨 뒤 급보를 전하였다.
“아델리아 아가씨의 연락이 끊겼습니다.”
“뭐?”
“아델리아 아가씨의 연락이 두절되었습니다. 정황상 일부러 연락을 끊으신 것 같습니다.”
체이스 백작은 순간 이해할 수 없었다.
아델리아가 왜 연락을 끊는단 말인가.
그리고 때를 맞추듯 이미 열린 문으로 바이엘 백작가의 기사가 헐레벌떡 달려왔다. 바이엘 백작을 발견하자마자 소리치듯 말했다.
“게일 공자님의 연락이 끊겼습니다!”
아델리아만이 아니다. 게일 역시 연락이 끊겼다.
어째서.
무엇 때문에.
“랑케부스트로 향하신 뒤에 잠적하셨습니다.”
“아델리아 아가씨도 랑케부스트로 향하신다는 연락 이후 사라지셨습니다.”
기사에 이어 노던 집사가 말했다.
애당초 행동을 같이 하는 둘이니 연락이 끊긴 장소도 동일한 것이 이치에 맞았다.
하지만 왜. 무엇 때문에.
“설마.”
바이엘 백작이 순간 저도 모르게 말했고, 체이스 백작은 바이엘 백작을 돌아보았다. 체이스 백작 역시 저도 모르게 말하였다.
“혹시?”
바이엘 백작의 후계자로서 이미 십검호에 필적하는 기량을 보이고 있는 게일과 근위마법병단의 단장인 아델리아가 누군가에게 당했을 거란 생각은 하기 힘들었다.
그렇다면 남은 답은 의도적인 잠적.
젊은 선남선녀가 함께 여행하다가 돌연 잠적해 사라졌다.
이거 어디서 많이 본 상황이지 않던가?
“서, 설마.”
“그, 그럴 리가.”
진실은 국경을 넘는 것을 집에서 반대할까봐 둘이 내린 극단의 조치였지만, 그런 사정까지는 알 수 없는 두 백작이었다.
차남과 차녀에 이어 장남과 장녀까지.
서로를 마주한 두 백작의 얼굴에 황망함이 깃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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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9장 - 유적 #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