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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딩메이커-66화 (66/473)

< 제20장 - 거친눈사태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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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의 대군주들에게는 성격이나 마력 외에도 외형면에서 각자의 특징이 있었다.

때문에 악마들과 마인들 역시 모시는 대군주들에 따라 다른 모습들을 보였다.

“음욕의 대군주 아스모데우스를 상징하는 것은 짐승.”

아스모데우스의 수하들은 짐승의 형상을 취했다.

마녀의 영혼을 봉인하고 있던 마수는 거대한 고릴라를 닮았고, 상급 마인인 솔루지아는 사슴의 뿔과 날짐승의 날개를 가지고 있었다.

“강대무비한 괴물. 지치지 않는 짐승.”

음욕의 대군주 아스모데우스는 또한 검사이기도 하였다.

성십자수호단의 전신이라 할 수 있을 솔라리 교단의 악마록에 따르면 그녀야말로 지옥 최강의 검호라 할 수 있었다.

최강의 검기와 최고의 미색을 가진 대군주.

그녀가 검기를 펼치는 모습은 너무나 아름다워 대적해 싸우던 적조차도 음욕에 빠져 싸울 의지를 잃는다는 이야기가 있을 지경이었다.

“하지만 벨리알은 달라. 정반대라고도 할 수 있지.”

타락의 대군주 벨리알.

그는 형언하기 어려울 정도로 끔찍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때문에 악마록에서는 아스모데우스와 마찬가지로 벨리알 역시 직시해선 안 될 존재라 이야기하고 있었다.

전자는 아스모데우스의 미색에 현혹되어 음욕에 미칠 것이 분명해서였고, 후자는 마주하는 순간 경험하게 될 끔찍함과 혐오감에 정신이 망가질 터였기 때문이다.

“아스모데우스가 짐승이라면 벨리알은 곤충.”

파리대왕이라고도 불리는 벨리알은 그 별칭처럼 곤충의 현상을 하고 있었다.

때문에 그의 악마들과 추종자들 역시 악마의 힘을 개방하면 곤충에 가까운 모습이 되었다.

“짓밟아주마. 제발 죽여달라며 애원하게 만들어 주겠다!”

노성을 토한 자라쿨의 모습이 급변했다.

뿔과 거대한 덩치는 그대로였지만 피부 위로 딱딱한 껍질이 생겨났고, 얼굴 역시 순식간에 바뀌었다.

눈이 있던 자리에는 잠자리의 커다란 겹눈이 생겨났고, 등에서는 곤충 특유의 투명한 날개들이 돋아났다. 입 역시 곤충처럼 변해 흉측하기 짝이 없었다.

‘과연 중급 마인.’

하급 마인들은 악마화를 해도 겉모습이 크게 변하지 않았는데, 중급 마인 정도 되니 모시는 대군주의 특징이 여실히 드러났다.

‘하지만 역시 약해져 있어.’

부상이 너무 심했다. 모습이 완전히 변하긴 했지만, 그 변한 모습부터가 온전하지 못 했기 때문이다.

전신을 뒤덮은 껍질은 곳곳이 깨져 있었고, 허리 사이에 돋아난 한 쌍의 다리 중에서 하나는 아예 끊어진 상태였다. 가만 보면 오른쪽 다리를 끄는 것이 제대로 걷는 것조차 어려울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순간. 유더가 냉정히 자라쿨의 상태를 살피고 있을 때 코델리아는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지, 징그러.’

게임에서도 징그럽다 생각했는데, 실제로 보니 훨씬 더 그랬다.

보스전 운운했지만 솔직히 지금은 싸우기는커녕 바로 도망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마치 방에서 ‘그 분’이 나타났을 때처럼 말이다.

더욱이 노린 것인지, 자라쿨은 더욱 끔찍한 짓을 시작했다.

“위대한 타락의 대군주께서 너희를 벌하실 것이다!”

자라쿨이 크게 외친 그때, 자라쿨의 몸 곳곳에서 수십 개에 달하는 구멍이 생겨났다. 그 끔찍한 광경에 얼굴이 하얗게 질린 코델리아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 했고, 유더조차도 순간 흠칫해 꼼짝도 하지 못 했다. 그런데 다음이 더 가관이었다.

위이이이잉-!

자라쿨의 몸에 난 구멍 수십 개에서 날벌레들이 쏟아져 나왔다. 수백 마리는 족히 될 그것들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허공에 벌레의 구름을 형성했다.

“가라! 먹어치워라!”

자라쿨이 기세등등하게 외치자 파리처럼 생긴 벌레 떼가 유더와 코델리아를 향해 돌진했다.

아예 작으면 모르겠는데, 어설프게 커서 형태가 명확히 보이는 것이 더 끔찍했다.

퍼뜩 정신을 차린 유더는 일단 회피하기 위해 코델리아를 보았고, 코델리아는 벌레 떼를 본 순간 반사적으로 외우기 시작한 주문을 완성시켰다.

“파이어 볼!”

마녀의 마력을 지나치게 담은 것 같은 거대한 불덩이가 정면을 향해 돌진했고, 벌레 떼와 충돌한 순간 폭발했다.

콰강!

제법 큰 폭발이었다. 하늘을 뒤덮을 기세로 솟구치던 벌레 떼 일부가 지워지듯 사라질 지경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자라쿨은 여유를 잃지 않았다.

“하하하! 겨우 그 정도냐!”

자라쿨이 외쳤다. 놈은 직접 움직이는 대신 더 많은 벌레 떼를 불러냈다. 불꽃의 열기를 뚫고 수많은 벌레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꺄아!”

코델리아는 결국 비명을 질렀다.

자라쿨에 대해서는 이미 알고 있었고, 게임에서 수십, 수백 번을 잡은 상대라 조금 끔찍한 정도로는 아무 문제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역시 현실은 달랐다. 마주친 시점이 달라서 그런지 게임에서는 이런 식으로 벌레 수백 마리를 부린 적은 없는 놈이었다.

“코델리아!”

유더가 소리쳤다. 동시에 질풍이십사보를 밟아 코델리아에게 접근했다.

“주문 외워!”

소리침과 동시에 코델리아의 허리를 낚아챈 유더는 벌레 떼를 피해 질주했고, 몇 개나 되는 선풍이 일어 어지러운 바람을 만들어냈다. 날벌레들을 조금이나마 흔들기 위함이었다.

‘적응에 시간이 필요해!’

산전수전 다 겪은 유더 자신도 막상 저 벌레들에게 주먹질을 하라고 하면 몸이 굳는 마당이었는데 코델리아는 오죽하겠는가.

하지만 아무리 끔찍한 것이라도 계속 보다보면 익숙해지기 마련이었다. 일단은 회피에 집중하며 시간을 벌 요량이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그럴 필요가 없었다.

코델리아가 갑자기 눈앞의 현실에 적응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여전히 하얗게 질린 얼굴로 울기 직전인 그녀였다.

하지만 공포와 혐오 이전에 발동하는 것이 있었다.

유더조차 몇 번이나 감탄한 코델리아의 전투본능은 이미 놈과 마주한 그 순간부터 발동하고 있었다.

불꽃.

코델리아의 양손에서 불꽃이 솟구쳐 올랐다. 유더가 일으킨 선풍을 타고 거칠게 뻗어나갔다.

그 순간 유더도 이해했다.

코델리아의 본능이 무엇을 하려 하는지.

그녀가 과정을 넘어 단번에 도달한 결론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아! 해보자!”

쾅!

유더가 지면을 박찼다. 마치 공간을 가로지르듯 단숨에 벌레 떼와 거리를 벌렸고, 제법 지대가 높은 곳에 코델리아를 내려놓은 직후 자라쿨을 향해 돌진했다.

“오냐! 얼마든지 와 봐라!”

크게 외친 자라쿨의 전신에서 보랏빛 사기가 피어올랐다.

곤충술사이기 이전에 강력한 전사인 그였다.

하지만 유더는 놈에게 달려들지 않았다. 그대로 놈의 주변을 계속 달렸다. 마치 자라쿨을 중심에 놓고 원을 그리는 것 같았다.

“같잖은 재주구나!”

정신없게 만든 뒤 등을 칠 생각인 것이냐?

자라쿨은 유더를 비웃었다. 수백 마리는 족히 될 벌레 떼로 자신의 사방을 완전히 뒤덮어 배후 자체를 없애버렸다.

유더의 바람대로 말이다.

“코델리아!”

유더가 외쳤다.

코델리아가 즉각 반응했다. 마녀의 검은 불꽃을 허공에 꽃피웠다.

츠화아아아-!

불꽃이 피었다.

작은 불꽃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바람을 탔다.

유더가 만들어낸 선풍.

유더의 궤적을 따라 회전하기 시작한 그것.

“위대한폭풍이시여! 도와줘요!”

코델리아가 두 팔을 높이 들어올렸다. 그러자 그녀의 왼팔에 자리한 황금빛 문신에서 강한 빛이 일었다. 유더가 이미 일으킨, 그리고 지금도 더하고 있는 선풍의 흐름을 조종하기 시작했다.

바람부림의 가호였다.

콰하아아아아아아-!

선풍이 합쳐졌다.

이미 일정한 궤도를 따라 흐르고 있던 그것들이 한 데 뭉쳐 거대한 흐름이 되었다.

“좀 더! 좀 더! 좀 더!”

유더가 속도를 높였다. 질풍이십사보로 선풍을 계속해서 일으켰다.

그리하여 더해지는 바람.

코델리아의 조종 하에 점점 더 세를 키워가는 바람의 결계!

콰가가가가각-!

마침내 용권풍이 되었다.

거대한 소용돌이가 대기를 찢어발겼고, 자라쿨의 벌레 떼는 감히 날아오를 엄두도 낼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불꽃.

검은 불꽃이 바람을 탔다.

순식간에 번져 올라 바람과 함께하였다. 거대한 불꽃의 소용돌이로 거듭났다.

“야하!”

자리를 이탈하며 유더가 유쾌하게 외쳤다.

알 수 있었다. 유더 자신과 코델리아만이 아니었다. 저 하늘 높은 곳에서 거친눈사태가 힘을 보태주고 있었다.

무너졌다고는 하나 아직 이 땅은 그의 성역.

불꽃과 바람에 성역을 지배하는 야생신의 힘을 더해주니, 불꽃의 소용돌이가 무시무시한 화력을 발휘했다.

코델리아 혼자였다면 결코 만들 수 없는 거대한 불꽃의 소용돌이를 가능케 했다.

츠카카카카-!

불꽃의 소용돌이가 자라쿨을 완전히 가둬버렸다. 수백 마리에 달하던 곤충들은 순식간에 재가 되었고, 근방에 있던 눈들이 단번에 녹아내렸다.

조금만 근접해도 숨을 쉬기 어려울 정도로 무지막지한 열기가 방출되었다.

유더는 달리기를 멈추었다. 멀찍이 떨어져서 보았고, 유더가 충분히 거리를 벌린 것을 확인한 코델리아는 다시 한 번 있는 힘을 다해 소리쳤다.

“씨발 쾅!”

첫 번째는 폭발.

두 번째는 작렬!

불꽃의 소용돌이가, 용권풍이 자라쿨을 집어삼켰다. 마치 소용돌이 자체를 두 손으로 쥐어 짠 것처럼 검은 불꽃의 춤사위가 자라쿨을 사방에서 옥죄었다.

“으아아아아아-!”

자라쿨의 비명이 바람 소리에 묻혔다.

소용돌이를 타고 오른 산의 잔해들이 무시무시한 칼날이 되어 자라쿨의 몸을 부수고 짓뭉갰다.

마녀의 검은 불꽃이 놈을 불살랐다.

“어메이징.”

스펙타큘라.

거리가 상당함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열기에 몸이 익을 것만 같았다.

저도 모르게 감탄한 유더는 멍한 웃음을 흘렸고, 코델리아는 검붉은 머리칼을 마치 불꽃처럼 흩날리며 더욱 더 마력을 끌어올렸다.

“피니쉬!”

코델리아가 두 팔을 옆으로 크게 벌리며 소리쳤다.

동시에 불꽃의 소용돌이가 최후의 포효를 내질렀다.

콰하아-!

불꽃이 폭발했다. 소용돌이가 사라지며 대기가 다시 한 번 출렁거렸고, 사방팔방으로 미친바람이 불었다. 무시무시한 열기가 지표의 눈들을 모조리 녹여버릴 기세였다.

팡-!

그리고 자라쿨의 모습이 드러났다.

온 몸이 부서지고 불타 그 형태조차 제대로 알아볼 수 없는 상태가 된 놈은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이미 불꽃 속에서 숨이 다하였는지 바로 재가 되어 흩날렸다.

‘‘중급 마인을 쓰러트린 자’ 칭호를 획득했습니다. 마인들과 싸울 때 모든 능력치가 1% 상승합니다.’

머릿속에 목소리가 들려왔다. 동시에 유더와 코델리아 각자에게 빛의 고리들이 떠올랐다.

유더는 셋, 코델리아는 넷이었다.

“하아.”

어깨를 늘어트린 코델리아가 숨을 토했다. 그리고 마치 약속이라도 된 것처럼 코피가 주르륵 흘러내렸고, 코델리아의 두 다리가 풀려버렸다.

“아.”

하지만 코델리아는 쓰러지지 않았다.

바닥에 나자빠지는 대신 어느새 달려온 유더의 품안에 안착했다.

“고생했어요, 우리 공주님.”

“합···체기. 굿······.”

엄지를 치켜세운 코델리아는 그대로 유더의 품에 몸을 묻었고, 유더는 그런 코델리아를 고쳐 안은 뒤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나무판 위에서 고개를 빼꼼 내민 거친눈사태를 향해 미소를 머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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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안심하세요. 놈들은 성역을 망가트린 벌을 받았으니까요.”

“니들이 무너트렸잖아! 니들이!”

< 제20장 - 거친눈사태 #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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