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21장 - 엇갈림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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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의 땅에는 수십 개가 넘는 부족들이 존재했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강한 네 부족이 있었다.
강력한 전사들로 구성된 성난뿔소 부족.
바람과 함께 살아가며 조화를 추구하는 위대한폭풍 부족.
대대로 뛰어난 사냥꾼들을 배출해온 고요한늑대 부족.
신비로 무장한 주술사들의 부족인 붉은달 부족.
네 부족 가운데서 근래 들어 특히 세를 넓히고 있는 것은 성난뿔소 부족이었다.
주변의 부족들을 힘으로 굴복시켜 통합시키니, 확장을 시작한 지 겨우 몇 개월 밖에 지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세력권은 기존의 두 배에 달했다.
“성난뿔소를 위해!”
“대족장 일곱뿔을 위해!”
야생의 땅에 거하는 부족들에게는 저마다의 야생신들이 있었지만, 모든 야생신들이 각자의 성역을 구축할 정도로 강한 것은 아니었다.
더욱이 성난뿔소 부족의 야생신인 성난뿔소는 야생신들 사이에서도 손에 꼽힐 정도로 강력한 존재였다.
성역도 제대로 구축하지 못 한 야생신으로서는 저항할 방법 자체가 없었다.
“아아! 나의 아이들이! 나의 아이들이!”
머리에 작은 뿔이 난 소녀 형상의 야생신이 불타는 마을을 보며 울부짖었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이미 주박에 걸려 대부분의 힘이 봉인된 지금, 그녀는 평범한 소녀보다도 못 한 존재였으니 말이다.
“천벌이 내릴 것이다! 황금의 용왕께서 너희를 벌하실 것이다!”
“시끄럽다!”
“꺄악!”
눈에 핏발을 세우는 야생신을 발로 걷어찬 성난뿔소 부족의 전사- 날카로운뿔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소녀의 황금빛 머리칼을 마구 붙잡아 머리를 들게 한 뒤 소녀의 얼굴보다도 커다란 주먹을 몇 번이나 휘둘렀다.
“커흑··· 컥······.”
무참한 폭력 앞에 피투성이가 된 야생신 소녀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 했고, 마지막으로 소녀를 걷어찬 날카로운뿔이 주변에 있던 전사들에게 말했다.
“데려가라! 처지를 깨닫게 해줘라!”
“알겠습니다.”
이미 타락한 성난뿔소 부족의 전사들이었다. 야생신에 대한 경의를 잊은 그들에게 있어 눈앞의 소녀는 받들어 모실 존재가 아닌, 자신들 마음대로 가지고 놀아도 되는 장난감에 불과했다.
수하들이 야생신 소녀를 끌고 가자 손에 묻은 피를 닦아낸 날카로운뿔은 본진 한가운데 큰 깃발이 세워진 곳으로 향했다.
아무리 약하다고는 하나 야생신의 힘 그 자체를 봉인해버린 강력한 존재를 배알하기 위함이었다.
“야생신을 포획하고 족장을 죽였습니다. 말씀하신대로 전사들은 부상은 입힐지언정 최대한 생포하고 있습니다.”
커다란 가죽 막사 안에 들어간 날카로운뿔은 양 무릎을 꿇고 앉아 최대한의 경의를 표했다.
“그런가, 잘했다. 날카로운뿔. 이번에도 날 실망시키지 않았구나.”
“모두 하라겐님의 덕분입니다.”
인자한 목소리에 날카로운뿔은 다시 머리를 조아려 예를 표했다.
눈앞의 존재- 예언자 하라겐이 나타난 이후 성난뿔소 부족은 변했다.
훨씬 더 강대해졌고, 계속된 정복 전쟁의 결과 훨씬 더 풍요로워졌다.
그리고 변한 것은 날카로운뿔 역시 마찬가지였다.
본래 날카로운뿔은 그리 강한 전사가 아니었다. 병약한 몸을 타고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라겐이 모든 것을 바꿔주었다.
그가 날카로운뿔의 몸을 크고 강인하게 만들어주었고, 날카로운뿔은 성난뿔소 부족에서도 손에 꼽는 강력한 전사가 될 수 있었다.
때문에 날카로운뿔은 하라겐을 숭배했다.
야생신들이 거짓된 신들이라는- 그저 조금 강한 힘을 가진 짐승들일 뿐이라는 그의 이야기 역시 진실로 여겼다.
“나가 보아라. 내일도 새로운 땅으로 떠나야 할 터이니.”
“예, 하라겐님. 편히 쉬십시오.”
재차 머리를 조아린 날카로운뿔은 고개를 숙인 채 공손이 물러났고, 혼자가 된 하라겐은 인상을 찡그렸다.
‘성가시군.’
날카로운뿔에게 하는 말이 아니었다.
하라겐은 날카로운뿔의 충성에 만족하고 있었다.
애당초 일부러 약한 자에게 힘을 불어넣은 것부터가 지금 같은 충성심을 이끌어내기 위함이었으니 말이다.
하라겐의 신경을 건드는 것은 멀리 떨어진 곳에서 들려온 비보였다.
‘자라쿨.’
악마의 눈의 중급 마인인 놈의 연결이 끊어졌다.
정황상 죽은 것이 분명했다.
‘어찌된 것이냐.’
덩치가 크고 하얀 수염을 길게 기른 노인의 모습을 하고 있던 하라겐이었지만, 애당초 진실된 모습이 아니었다.
사람의 눈이 있어야 할 곳에 자리한 겹눈을 깜박이며 그는 생각해보았다.
거친눈사태의 성역.
오늘 사냥한 부족의 야생신처럼 나약한 존재는 아니었다.
보살피는 부족이 없다는 것은 곧 숭배해줄 이가 없다는 뜻이었지만, 동시에 괜히 힘을 낭비할 필요 역시 없다는 뜻이었다.
홀로 수행을 거듭한 거친눈사태는 결코 약하지 않았다.
오히려 강한 축에 드는 야생신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자라쿨이 실패할 거란 생각은 한 적이 없었다.
거친눈사태를 제압하고도 남을 강력한 주문진을 넘겨주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찌 된 것일까.
누가 자라쿨을 죽인 것일까.
거친눈사태는 아니었다.
놈이 범인이라면 자라쿨의 죽음이 훨씬 더 빨랐을 터였다.
다른 누군가.
거친눈사태를 타락시키던 자라쿨을 죽인 누군가.
“붉은폭풍.”
위대한폭풍 부족 최강의 전사.
하지만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에게는 분명 푸른 피안화의 저주를 걸지 않았던가.
‘가장 가까이에 있는 것은 마드가던가.’
강력한 야생신인 고운눈바람을 공략 중인 중급 마인.
사실 거친눈사태와 고운눈바람 모두 성난뿔소 부족의 본거지와는 먼 곳에 위치한 야생신들이었지만, 굳이 공략에 나선 이유는 위대한폭풍 부족 때문이었다.
인근의 야생신들을 타락시켜 놈들을 고립시킨다.
성난뿔소 부족의 행보에 방해가 될 수 없도록 그 힘을 꺾어버린다.
‘일단은 마드가에게 맡긴다. 야생의 땅 북동 지역을 통일한다.’
성난뿔소 부족은 북동 지역에 위치했고, 똑같이 북동 지역에 위치한 고요한늑대 부족을 최종목표로 진격 중이었다.
‘용맥을 오염시키고 야생신들을 타락시킨다. 황금의 용왕조차 그분의 노예로 만들어 버린다.’
야생신들의 왕인 황금의 용왕.
마음을 정리한 하라겐은 수정구를 꺼내들었다. 먼 곳에 위치한 마드가에게 뜻을 전하고자 강대한 마력을 발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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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산을 떠나고 사흘.
본래라면 위대한폭풍 부족의 마을에 도착하고도 남을 시간이었지만, 거친눈사태는 그러하지 못 했다.
단순한 이유였다.
“흑흑! 여긴 대체 어디야!”
바위산을 내려온 뒤 유더가 알려준 방향으로 똑바로 나아갔다.
아주 오래전 일이지만 한 번 방문해본 적도 있기에 기억을 따라 이동했다.
하루가 지났다.
설원 밖에 없었다.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본래 이 근처는 설원뿐이었으니까.
이대로 쭉 나아가면 위대한폭풍 부족의 마을에 도착하겠지.
위대한폭풍은 많이 자랐으려나?
조막만하던 꼬맹이를 떠올린 거친눈사태는 푸근한 미소를 지은 뒤 계속해서 걸었다.
그리고 다시 하루.
여전히 설원뿐이었고, 거친눈사태는 조금씩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이상하다.”
이쯤되면 나와야 하는데.
위대한폭풍이 마중을 나와야 하는데.
하다못해 위대한폭풍 부족의 아이들이라도.
“바쁜가?”
사실 그보다 훨씬 더 가능성이 높은 이유가 하나 있었지만, 애써 무시한 거친눈사태는 계속해서 타박타박 나아갔다.
그리고 다시 하루.
현재.
“으아앙! 여기가 어디야! 어디냐고!”
수백년 동안 바위산에만 틀어박혀 있던 거친눈사태는 오늘에서야 비로소 깨달았다.
거친눈사태 자신이 방향치에 길치라는 사실을 말이다.
“어떡해, 진짜 어떡해.”
본체가 아닌 분신이었다.
더욱이 성역까지 떠난 터라 그렇지 않아도 약해져 있던 신성마저 더더욱 약해진 상황이었다.
본체였다면 그냥 신통력을 발휘해 날아오르든 아니면 위대한폭풍에게 연락을 하든 하다못해 위대한폭풍의 기척을 감지해 방향을 잡든 하겠지만 지금의 거친눈사태에게는 모두 불가능한 일들이었다.
지금의 거친눈사태는 그냥 말하는 아기곰일뿐, 위대한 야생신과는 너무도 거리가 먼 존재였으니 말이다.
“으으··· 배고파. 수백 년 만에 배고파.”
사실 배는 이틀 전부터 고팠다.
성역에 있을 때는 그냥 숨만 쉬어도 허기가 채워졌는데, 성역을 벗어나니 진짜 아기곰이라도 된 것처럼 허기가 졌다.
“흑흑 눈은 이제 싫어.”
먹어도 딱히 배가 부르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그래도 당장 먹을 것은 눈뿐이었다.
거친눈사태는 흑흑 울며 눈물 젖은 눈을 퍼먹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음?!”
순간 느껴진 오한에 거친눈사태는 고개를 번쩍 들었다. 등을 찌르는 것 같은 날카로운 감각 때문이었다.
‘서, 설마?’
마른 침을 꿀꺽 삼킨 거친눈사태는 뒤를 돌아보았고, 이내 발견할 수 있었다. 자신과 눈이 마주친 순간 은밀한 접근을 포기하고 전력질주를 개시한 서리늑대를 말이다!
“크헝!”
놈이 아예 짖기까지 했다. 본체였다면 한 주먹에 박살낼 놈이었지만, 지금의 거친눈사태에게는 대적할 수 없는 강적이었다.
얼른 일어난 거친눈사태는 허겁지겁 달리기 시작했다.
“크허헝!”
“으아앙!”
포효와 울음이 뒤섞였다.
거친눈사태는 열심히 달렸지만 아기곰인 터라 다리가 너무 짧았다. 서리늑대와의 거리가 순식간에 좁혀졌다.
“야생신 살려! 야생신 살려!”
필사적으로 외치던 거친눈사태가 어느 순간 바닥을 뒹굴었다. 눈에 덮여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단차에 걸려 넘어진 것이었다.
“으아아!”
또르르르 굴러간 거친눈사태는 바닥에 널브러졌고, 그런 거친눈사태의 머리 위를 서리늑대가 가로질렀다. 단숨에 앞지르더니 커다란 앞발로 거친눈사태의 가슴을 짓눌렀다.
“컥컥!”
“크르르······.”
서리늑대가 콧김을 내뿜으며 얼굴을 가까이했다. 날카로운 이빨 사이로 침이 흘렀고, 거친눈사태는 열심히 버둥거렸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이렇게 가는 건가.’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성역에서 죽는 것이었는데.
‘아니지, 죽다니 아니 될 말이지!’
죽을 수 없었다. 자신에게는 야생의 땅의 위험을 전할 숭고한 사명이 있지 않던가!
“에잇! 잇!”
거친눈사태는 다시 필사적인 버둥거림을 시작했지만 잠깐뿐이었다. 서리늑대가 가슴을 더욱 세게 짓밟자 발톱이 거친눈사태의 가죽을 파고들었다.
“크아아!”
너무 아팠다.
거친눈사태는 더 이상 참지 못 해 비명을 질러댔다.
“살려줘! 살려줘! 으아아아! 살려줘!”
최후의 울부짖음이었다.
서리늑대는 더 이상 시간을 끌지 않고 입을 크게 벌렸다.
그리고 불꽃이 그런 놈의 입속을 파고들었다.
쾅!
폭발!
서리늑대의 목구멍 속에 파고든 화염구가 그대로 폭발했다. 무섭도록 정밀한 마법이었다.
화염구가 서리늑대의 입 속을 파고든 것은 우연이 아닌 필연이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위력의 조절까지 깔끔했다.
서리늑대는 화염구 폭발에 즉사했지만, 그 피해는 결코 놈의 몸 밖으로까지 미치지 않았다.
“끄어-.”
목구멍은 물론 내장이 모조리 불타버린 서리늑대가 외마디 신음과 함께 무너져 내렸고, 덕분에 목숨을 건진 거친눈사태는 눈을 껌벅였다. 거친 숨을 토하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누, 누구냐! 아니, 누구세요?!”
화염구가 날아온 방향을 보니 한 쌍의 남녀가 보였다.
때문에 거친눈사태는 생각했다.
‘날 찾으러 왔구나!’
유더와 코델리아.
두 사람이 이번에도 날 구해줬구나!
“코델리아! 코델리아!”
거친눈사태가 반가워서 외친 그 순간이었다.
“사람이 아냐?”
“공격하면 안 됩니다!”
“저도 알아요, 단서를 가지고 있을 테니까요.”
남녀 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유더와 코델리아 두 환장의 커플과 닮았지만 다른 목소리였다.
이제 보니 머리색과 생긴 것 역시 달랐다.
여자는 예뻤다.
코델리아와 닮았다.
하지만 머리가 금발이었고 훨씬 더 날카로운 인상이었다.
남자는 잘생겼다.
역시 유더와 닮았다.
하지만 검은 머리가 아닌 푸른 머리였다. 눈동자 색 역시 녹색이 아닌 푸른색이었다.
‘덩치도 훨씬 더 크고.’
눈을 깜박이던 거친눈사태는 이내 정신을 차렸다. 자신을 향해 무시무시한 속도로 다가오는 두 사람 앞에서 어찌해야 할지 고민하다 일단 두 팔을 높이 들어올렸다.
“잠깐! 난 적이 아니다!”
“말하는 아기곰? 귀엽··· 아니, 이게 아니지.”
어느새 지근거리까지 다가온 금발의 여인- 아델리아는 고개를 한 번 흔들어 정신을 집중시킨 뒤 손에 들고 있던 짧은 지팡이로 거친눈사태를 위협하며 물었다.
“넌 누구지? 코델리아와는 무슨 관계야? 만난 적이 있는 건가?”
대답 여하에 따라서는 당장에라도 죽일 수 있다는 눈빛이었다.
저도 모르게 흠칫한 거친눈사태는 다급히 말했다.
“나는 야생신 거친눈사태다! 나와 코델리아는 치, 친구다!”
“야생신? 친구?”
아델리아가 눈을 가늘게 떴다.
야만의 땅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별로 없었지만 야생신의 존재 자체는 얼핏 들어본 적이 있는 그녀였다.
그리고 게일이 말했다.
“거친눈사태, 코델리아 양은 누구와 함께 하고 있었지? 함께하고 있던 이의 이름은?”
선하게 생긴 남자- 게일이었지만 눈빛이 실로 무시무시했다. 언제 뽑아들었는지도 모를 검은 더더욱 그러했고 말이다.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 치다 주저앉은 거친눈사태는 빠르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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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유더! 유더와 코델리아! 환장의 커플!”
눈을 질끈 감은 거친눈사태는 몸을 최대한 웅크렸고, 게일과 아델리아는 서로를 돌아보았다.
“맞는 것 같죠?”
“환장의 커플이라는 말에는 동의 못 합니다만.”
“그러게요.”
환장의 커플이라니. 누구 동생한테 함부로 막말이란 말인가.
이상한 곳에서 마음이 맞은 게일과 아델리아는 자기들도 모르게 미소를 교환했고, 이내 각자 헛기침을 토한 뒤 거친눈사태에게 시선을 돌렸다.
먼저 입을 연 것은 게일이었다.
“해치지 않습니다. 눈을 뜨세요.”
확실히 직전보다 한결 친근해진 목소리였다.
거치눈사태는 조심스럽게 눈을 떴고, 게일과 아델리아를 보았다. 코를 한 번 킁킁거린 뒤 확신했다.
‘유더와 코델리아의 가족이구나!’
아마도 형과 언니.
두 사람과 거의 같은 냄새가 났다.
“거친눈사태라고 했지요? 전 게일 바이엘입니다. 이쪽은 아델리아 체이스 양이고요.”
게일의 소개에 아델리아는 무어라 답하는 대신 매서운 눈으로 거친눈사태를 노려보았고, 다시 움찔한 거친눈사태는 게일을 보며 용기를 내어 말했다.
“유더와 코델리아의 형이랑 언니인가?”
“예, 두 사람을 찾아 여기까지 왔습니다. 두 사람이 있는 곳을 알고 계신지요.”
여전히 친근한 목소리였지만 다시 눈빛이 날카로워진 게일이었다.
덕분에 마른침을 꿀꺽 삼킨 거친눈사태는 엉거주춤 일어서며 말했다.
“알고 있다. 두 사람은 고운눈바람을 돕기 위해 떠났다.”
“고운눈바람? 돕기 위해 떠났다니, 무슨 소리지?”
아델리아의 눈빛은 여전히 날카로웠지만 거친눈사태도 이제는 알았다.
아델리아는 코델리아를 걱정하고 있었다. 결코 악인이 아니었다.
“이야기가 길다. 잠깐 동안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다. 다만 한 가지 미리 말하자면, 유더와 코델리아는 야생의 땅을 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악마들의 위협으로부터 말이다.”
거친눈사태의 말에 게일과 아델리아는 서로를 돌아보았다. 동생들만큼은 아니었지만 함께 열흘 넘도록 여행하다보니 어느 정도 마음이 통하게 된 두 사람이었다.
‘뭔가 있는 것 같죠?’
‘단순한 가출은 아닌 것 같습니다.’
게일이 다시 거친눈사태에게 시선을 돌렸다.
“알겠습니다, 이야기를 듣도록 하죠.”
“잠깐! 그 전에 조건··· 아니, 부탁이 있다.”
“부탁? 우리가 목숨을 구해준 걸 잊은 건가?”
아델리아가 날카롭게 치고 들어오자 움찔한 거친눈사태였지만 그래도 관철해야만 했다.
게일은 다시 마법 지팡이를 들어 올리려는 아델리아를 만류하며 말했다.
“말씀해보시죠.”
“위대한폭풍 부족에게 가야한다. 나를 그들에게 데려다 다오. 가는 길에 유더와 코델리아의 이야기를 해주겠다. 그, 그리고 어차피 방향을 잡으려면 위대한폭풍 부족의 마을로 가야한다.”
여기가 어디인지도 모르는 거친눈사태였으니까.
게일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도록 하죠.”
“괜찮겠어요?”
“그쪽이 나을 겁니다. 이곳은 저희에게도 미지의 영역이니.”
아델리아에게만 들리도록 귀에 대고 작게 속삭인 게일은 다시 거친눈사태에게 말했다.
“당신의 제의를 받아들이겠습니다.”
“고, 고맙다.”
후-하고 안도의 숨을 토한 거친눈사태는 어깨를 늘어트렸고, 아델리아는 팔짱을 낀 채 그런 거친눈사태를 내려다보았다. 마음속으로는 귀엽다고 외쳤지만, 여전히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
“시간이 없다. 서둘러 안내를 시작해라. 이야기도 시작하고.”
악마의 위협 운운했으니 유더와 코델리아는 지금 이 순간에도 위험에 노출되어 있으리라.
아델리아의 다그침에 거친눈사태는 우물쭈물하다 답했다.
“그, 그게.”
“그게?”
“일단 여기가 어디인지 아느냐? 길을 잃어서······.”
자기가 말해놓고도 부끄러워진 거친눈사태는 한없이 쪼그라들었고, 게일과 아델리아는 서로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같은 시각, 전혀 다른 장소.
“부탁하겠네.”
“나만 믿게나.”
바이엘 백작과 이별을 나눈 체이스 백작은 양손 가득 짐을 챙겨든 채 하늘로 날아올랐다.
향하는 방향은 북쪽.
두 딸과 기타등등이 있는 방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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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1장 - 엇갈림 #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