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24장 - 정산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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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운눈바람 부족이 마련해준 숙소 안.
얼굴과 목과 손등과 기타 등등이 침으로 범벅이 된 유더는 해탈한 얼굴로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담요 위에 몸을 웅크린 코델리아가 행복한 얼굴로 잠들어 있었다.
“후우··· 색불이공 공불이색 색즉시공 공즉시색······.”
새삼 반야심경을 외운 유더는 코델리아에게 담요를 덮어준 뒤 다시 의자에 앉아 늘어졌다.
“힘들다.”
육체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그래도 마지막에 가서는 결국 미소가 지어졌다.
웅크린 채 잠든 코델리아의 얼굴이 너무나 행복해보였기 때문이다.
‘내일 일어나면 난리를 치겠지?’
비스트 모드의 부작용으로 행동이 개냥이 수준이 되긴 했지만 기억이 어디 가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이미 몇 번의 실험 결과 밝혀진 사실이었다.
내일의 코델리아를 생각한 유더의 얼굴에 제법 사악한 미소가 떠올랐다.
사실 이미 어떻게 놀릴지 계획까지 짜둔 유더였다.
“평화롭구나.”
바로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중급 마인과 생사를 건 전투를 했지만 당장 지금 이 순간은 평화롭기 그지 없었으니까.
새삼 빙긋 웃은 유더는 대야의 물로 세수를 한 뒤 코델리아를 등지고 바닥에 자리를 잡았다.
‘푸른 달의 정수.’
손에 쥐어진 푸른 보석을 가만히 바라보던 유더는 등허리를 곧이 펴고 눈을 감았다.
현실인만큼 게임과 완전히 같지는 않지만, 여전히 게임과 비슷한 점이 많은 이 세계였다.
그 대표라 할 수 있을 것이 바로 레벨.
코델리아에게 이야기했듯이 레벨이 오르면 전반적인 능력치가 모두 상승했다.
레벨이 깡패라는 말도 있듯이 애당초 타고난 육체가 약한 유더였지만 레벨 40을 넘어 42에 도달한 지금, 그 육체의 강건함은 바이엘 백작가의 여간한 기사들은 전부 아래로 볼 정도였다.
근력 역시 많이 강해져 현실 기준으로는 괴력에 가까운 힘을 발휘할 수 있었다.
‘진짜 무슨 내장형 근육도 아니고.’
유더가 꽤 강건해지긴 했지만 그렇다고 란디우스처럼 근육쟁이가 된 것은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그 힘은 일반적인 성인남성의 근 두 배에 달할 지경이었다.
‘요즘엔 코델리아가 솜털처럼 느껴지니까.’
업는 것도 안는 것도 모두 ok.
요즘들어 휙휙 들고(?) 다니는 일이 많은 것도 사실 그래서였다.
‘뭐··· 콩깍지도 조금 있겠지만.’
스스로의 생각에 흠흠 헛기침을 토한 유더는 다시 정신을 가다듬었다.
애당초 코델리아를 등지고 앉은 것은 잡념을 없애기 위함이 아니었던가.
‘어찌되었든.’
레벨 업은 강해지기 위한 가장 확실하고 기본적인 방법이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해.’
레벨 업을 하면 육체가 강해진다.
단순히 체력과 근력만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육신 자체가 강해져 내구력과 방어력도 올라간다.
하지만 기술이 생기지는 않는다.
‘이게 제일 뼈아프단 말이지.’
게임에서는 레벨만 올라도 새로운 스킬들이 쑥쑥 생겨났는데 아무래도 현실이라 그런지 레벨 업을 아무리 해도 새로운 스킬이 생기지 않았다.
‘코델리아는 경우가 조금 다르지만.’
코델리아에게는 마녀의 주술서가 있었다.
특정 레벨마다 펼칠 수 있는 페이지가 늘어나는 신기한 주술서였던 터라 코델리아는 마치 게임처럼 특정 레벨마다 새로운 마법들을 배울 수 있었다.
하지만 유더 자신은 아니었다.
‘결국 지금 당장 강해질 수 있는 수단은 레벨 업과 구천구문뿐.’
구천구문의 새로운 문을 개방한다.
그로 말미암아 란디우스가 말한 것처럼 이능을 손에 넣는다.
‘질풍이십사보를 진화시킬 수 있어.’
제일문을 열자 천하삼십육보가 질풍이십사보가 되었다.
제이문을 열자 질풍이십사보에 선풍이 더해졌다.
이 기세라면 제삼문을 열었을 때 역시 질풍이십사보가 보다 진보할 가능성이 높았다.
‘좋아, 삼문을 열자.’
푸른 달의 정수에는 순수한 별의 힘이 담겨 있었다. 전부 흡수하면 제삼문에 도달할 수 있을 터였다.
유더는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했다.
등 뒤에서 새근새근 들려오는 코델리아의 숨소리가 정신을 살짝 어지럽혔지만 이내 마음을 가라앉혔다.
명경지수의 경지를 지향하며 푸른 달의 정수로부터 별의 기운을 받아들였다.
정순한 별의 기운이 밀려들었다.
너무나 맑고 순수해 평범한 이들에게는 오히려 해가 될 것만 같은 기운이었다.
하지만 유더에게는 아니었다.
극음과 극양의 기운의 만남으로 이미 정순한 기운을 보유하고 있던 유더였다.
맑음과 맑음이 만나니, 무리없이 서로 하나가 되어갔다.
유더는 천천히 호흡을 다스렸다.
구천구문의 구결을 암송하며 몸의 안과 밖에 자리한 기운들을 하나로 이끌었다.
유더는 시간을 잊었다.
흐름에서 유리되었다.
맑고 맑은 별의 기운을, 달의 힘을 받아들여 전신에 퍼트렸다.
호흡과 함께 거두었고, 호흡과 함께 나누었다.
유더는 느꼈다.
구음절맥으로 인해 막혀 있던 마지막 대맥이 뚫렸다.
별의 기운이 유더의 전신에 고루 퍼지니 세맥들 역시 개통되기 시작했다.
전신 기맥의 완전한 개통.
자유로운 기의 순환.
유더의 심상 속에 하나의 문이 떠올랐다.
제삼문.
구천구문의 세 번째 문.
유더는 천천히 그 문을 열었다.
제삼문을 설치함과 동시에 개문했다.
이미 두 번이나 해보았던 일.
일문과 이문을 연 것과 같은 삼문의 개문.
아니었다.
지금까지와는 달랐다.
유더는 느낄 수 있었다.
온통 칠흑이었다.
새카만 그곳에 하얀 빛이 생겨났다.
하늘을 덮었고 땅을 덮었다.
칠흑 위에 펼쳐진 하얀 세상 속에 오롯이 선 자가 있었다.
그 혹은 그녀.
아직은 알 수 없었다.
삼문의 경지로 알아볼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가, 그녀가 유더를 보았다.
미소를 머금었다.
하얀 세상 속에 자리한 사람.
거친 먹선으로 그린 것 같은 사람의 실루엣.
그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녀가 잘 보라는 듯 천천히, 하지만 분명한 동작을 취하였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이었다.
머릿속에 새로운 구결이 떠올랐다.
청아한 목소리가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조금 더 뚜렷하게 보였다.
여인이었다.
거친 먹선으로 그린 여인의 형상이 유더에게 가르쳐주었다.
새로운 동작을, 새로운 구결을, 새로운 초식을.
흑룡출수.
여인이 말했다. 일장을 내뻗었다. 그 순간 그녀의 손바닥에서부터 솟구쳐 오른 거대한 흑룡이 하얀 세상을 진감시켰다.
콰가가가가가-!
흑룡이 포효했다. 용솟음친 그것이 하얀 세상을 부수고 깨트렸다.
여인이 유더를 돌아보았다.
다시 한 번 맑게 웃더니 손을 들어 유더를 가리켰다. 가볍게 일장을 펼치는 시늉을 하였다.
한 번 해보렴.
너도 할 수 있단다.
구천구문 흑룡출수.
유더는 구결을 외웠다.
기가 절로 움직였다. 천무지체가 반응했다. 무엇을 어찌해야 하는지 자연스럽게 알 수 있었다.
“흑룡출수.”
유더가 말했다.
일장을 내뻗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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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아침.
고운눈바람 부족의 배웅을 받으며 분지를 나선 유더와 코델리아는 칼날부리 협곡을 향해 발걸음을 내디뎠다.
그런데 두 사람의 표정이 꽤 달랐다.
유더는 얼굴 한 가득 미소를 짓고 있었고, 코델리아는 어색한 얼굴로 자꾸만 유더의 눈치를 보았다.
“흥흥~ 흐흐흥~”
유더가 평소답지 않게 콧노래까지 부르자 코델리아는 저도 모르게 움찔했다.
그리고 다시 유더의 눈치를 살폈다.
왜 저렇게 신이 난 것일까.
왜 저렇게 활짝 웃는 것일까.
음, 역시 이럴 때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행동해야 하지 않을까?
‘맞아! 기억 안 나는 척을 하자!’
마음을 다잡은 코델리아는 흠흠 헛기침을 토한 뒤 뻔뻔한 표정을 지었고, 유더는 악당같이 웃더니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할짝할짝.”
코델리아의 얼굴이 빨개졌다.
하지만 아직 포기하지 않은 코델리아였다.
“갑자기 뭔 개소리니?”
“할짝할짝.”
“이 나쁜 놈! 망할 놈!”
결국 포기한 코델리아가 유더의 등짝을 마구 때리기 시작했고, 유더는 그저 시원하게 웃었다.
“이익! 야! 너 이제 내가 때리는 걸로는 안 아프지? 여태까지 아프다고 한 것도 거짓말이지?”
“아니야, 많이 아파. 아이 아파라. 아이 아파라.”
“진짜 미워 죽겠어!”
목까지 빨개진 코델리아의 손에 점점 더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악! 야! 야! 아파! 진짜 아파!”
“안 아프잖아!”
“아니거든? 진짜 아프거든? 너도 레벨 높거든?”
아무래도 마법사다보니 무인인 유더보다 덜하긴 해도 일단 레벨 업 할 때마다 신체능력이 상승한 것은 코델리아 역시 마찬가지였으니까.
유더가 필사적으로 외치자 코델리아는 반사적으로 손을 멈춘 뒤 물었다.
“진짜로 아파?”
“진짜 아파.”
“잘 됐네!”
“아! 아! 야! 야!”
“더 아파라! 더 아파라!”
“할짝할짝!”
“이익! 안 아프지? 너 사실은 안 아픈 거지?”
“아프지만 그래도 할짝할짝!”
“죽어!”
그렇게 폭력과 그에 굴하지 않는 놀림이 어우러진 지 몇 분.
제풀에 지친 코델리아가 헉헉 거리자 유더가 말했다.
“괜찮아, 엄청 귀여웠으니까.”
“씨발놈. 내가 다시는 비스트 모드 하나 봐라.”
눈을 마구 흘긴 코델리아는 유더를 더 때리는 대신 이야기 자체를 돌리기로 마음먹었다.
“어쨌든!”
“어쨌든.”
“이제 우리 칼날부리 협곡으로 가는 거지?”
“어, 아무래도 칼날부리 협곡에 있었다는 엘프들의 마도왕국과 레나가 관련이 있는 것 같으니까.”
“마도왕국의 유적이라······ 이것저것 레어템이 많이 있겠지?”
“쯧쯔··· 가진 것이 물욕뿐이로구나.”
“지는.”
코델리아가 다시 눈을 흘기자 유더는 유쾌하게 웃은 뒤 말했다.
“뭐, 이래저래 나도 기대 중이야. 아무래도 마도 왕국이니 코델리아 네가 쓸 만한 물건이 많이 있을 테니까.”
“문라이트는 아직 쓸 만하니까 다른 거 많이 나오면 좋겠다. 방어구나 장신구.”
“마녀의 주술 쪽으로 가고 있으니까 마력 회복 속도를 높여주는 템들이 좋겠지?”
“응응, 마나통 자체를 키워도 좋고. 마녀의 주술들이 강한 건 좋은데 마력 소모가 다들 심해.”
거기까지 말한 코델리아는 문득 제자리에 멈춰 서더니 유더를 돌아보았다.
“그러고 보니 너, 푸른 달의 정수는 잘 먹었어?”
“잘 먹었지.”
“진짜? 그럼 삼문도 열었어? 너 더 세졌어?”
코델리아가 유더에게 바짝 다가서더니 반짝반짝 눈을 빛내며 물었다.
유더는 충동적으로 그런 코델리아의 뺨을 꼬집으며 답했다.
“열었지.”
평소라면 왜 꼬집고 지랄이냐며 성부터 낼 코델리아였지만 이번에는 그렇지 않아도 큰 눈을 더 크게 뜨며 활짝 웃었다.
“와! 삼문! 제삼문! 어떻게 됐어? 뭔가 변했어? 새로운 스킬 같은 거 익혔어?”
“보여줘?”
“어, 보여줘. 보고 싶어. 코델리아 보고 싶어요.”
토끼 귀를 달아서 그런지 제자리에서 폴짝폴짝 뛰기까지 하는 코델리아의 모습에 새삼 다시 웃은 유더는 돌연 한 팔로 코델리아의 허리를 덥썩 끌어안았다.
“보여줄게.”
익힌 것은 흑룡출수만이 아니니까.
질풍이십사보 역시 새로운 변화를 맞이했으니까.
‘구천구문.’
아홉 개의 세상과 아홉 개의 문.
과거 지상에 강림한 지옥의 대군주를 격파한 선인의 신공.
“질풍이십사보, 흑풍도래.”
작게 말한 유더는 코델리아를 두 손으로 안아 들었다. 절로 자신에게 매달리는 코델리아를 바짝 끌어안으며 바람을 일으켰다.
일어나는 것은 수십 가닥의 황금빛 선풍.
그리고 그 사이에서 일어나는 칠흑의 바람.
“꺄?”
한박자 늦은 코델리아의 비명에 유더가 웃었다.
시원하게 발걸음을 내디뎌 바람 그 자체가 되었다.
츠화아-!
굉음 대신 터진 것은 대기를 가르는 파공음.
황금빛 선풍을 두른 칠흑의 바람이 불었다. 질풍이 되어 하얀 설원 위를 가로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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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더와 코델리아가 칼날부리 협곡으로 향한 그때.
게일과 아델리아는 붉은바람을 마주하고 있었다.
“어··· 그러니까 코델리아가 널 샀다는 거니?”
“그렇다. 언니가 날 샀다. 경매장에서 날 구하기 위해.”
붉은바람은 서툰 공용어로나마 코델리아에 대한 애정을 열심히 드러냈다.
가만히 그녀의 이야기를 듣던 게일이 물었다.
“그런데 붉은바람 양, 혹시 유더와 코델리아가 어디서 돈을 마련했는지 들으셨나요?”
노예 거래에 관여해본 일이 없는 게일이었지만 그렇다고 아예 문외한인 것은 아니었다.
북부12가문 가운데 하나를 이어받을 자로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정도는 파악해두어야 했으니 말이다.
윈터 엘프의 피를 이은 붉은바람은 무척이나 아름다운 소녀였고, 랑케부스트 노예 경매장의 성격상 그녀의 몸값은 상상 이상으로 클 가능성이 높았다.
그런데 유더와 코델리아가 정상적인 거래로 그녀를 구매했다?
게일의 물음에 아델리아 역시 새삼 감탄한 표정을 지었다.
“생각해보니 그렇네요. 용돈을 모아서 될 수준이 아니니까요.”
더욱이 그간의 여정을 돌아보면 은근히 돈을 많이 쓰고 다닌 유더와 코델리아였다.
값비싼 노예를 살 돈이 어디서 생겼는지 의문이었다.
“어··· 코델리아 언니가 말했다. 도박을 했다고.”
“도박? 어, 설마 카지노 말인가요?”
“맞다. 카지노라고 했다. 거기서 돈 벌어서 날 샀다. 유더 오빠가 날 살 돈 벌자고 카지노 가자고 했다고 했다.”
붉은바람이 활짝 웃자 게일과 아델리아는 다시 서로를 돌아보았고, 이내 아델리아의 얼굴에 노여움이 일었다.
‘도박쟁이였어?!’
카지노에 그냥 놀러가는 것도 아니고 노예 살 돈을 벌러 가자고 했다고?
이건 둘 중에 하나였다.
지나치게 머리가 맑고 순박하거나 아니면 도박중독자거나!
“어··· 음······ 아무튼 땄나보군요.”
게일이 헛기침을 하며 말하자 아델리아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리고 붉은바람이 다시 말했다.
“맞다. 코델리아 언니가 많이 땄다고 했다. 언니 도박 잘한다고 자랑했다.”
“잠깐, 코델리아 양이 땄다고요?”
“언니 도박 엄청 잘한다. 나중에 나도 데려가 준다고 했다.”
붉은바람의 순진한 발언에 게일의 시선이 다시 아델리아에게 돌아갔고, 아델리아는 움찔하더니 헛기침과 함께 말했다.
“흠흠, 운이 좋았나··· 보네요. 네.”
“···그렇군요.”
어찌되었든 패가망신하는 대신 돈을 잔뜩 따서 붉은바람을 구했다고 하니 좋은 게 좋은 거겠지.
“붉은바람 양, 다음 이야기도 부탁드려도 될까요?”
“알겠다, 이야기하겠다.”
붉은바람은 국경을 넘은 이후 겪은 일들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검귀 카마엘······.”
“유더가 란디우스 님의 제자가 되었을 줄이야.”
생각지도 못한 거물들의 등장이었다.
검귀 카마엘과 철인 란디우스.
그 누구도 부정 못 할 대륙 최정상 수준의 검사들.
“음··· 미안하다. 카마엘이란 사람과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는 제대로 이해하지 못 했다.”
“아뇨, 이 정도면 충분합니다. 이야기해줘서 고마워요.”
게일이 산뜻한 미소를 짓자 붉은바람은 저도 모르게 얼굴을 붉히더니 헤헤헤 웃은 뒤 방을 나섰고, 아델리아는 어쩐지 모를 불편함에 헛기침을 토한 뒤 말했다.
“확실히 보통 일이 아닌 것 같네요.”
“예, 단순히 악마 추종자들과 얽힌 정도가 아닌 것 같습니다. 국경을 넘은 것 역시 사랑의 도피라기보다는 중대한 임무 때문인 것 같고요. 어쩌면··· 우리도 여행 목적을 바꾸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가출한 철없는 청춘남녀의 회수에서 두 사람을 도와 작금의 문제를 해결하는 쪽으로.
“하아··· 코델리아······.”
아델리아는 입술을 깨물며 괴로운 목소리를 흘렸다.
차라리 단순한 가출이면 좋으련만.
지금 이야기대로면 코델리아는 더욱 더 큰 위험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셈이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시죠. 두 사람과는 금방 합류할 수 있으테니.”
“네··· 그래야죠. 고마워요, 게일 공자. 게일 공자가 있어서 다행이에요.”
“저야말로 아델리아 양이 있어서 다행입니다.”
게일과 아델리아가 서로를 바라보았다.
거친눈사태가 있었다면 참으로 불편한 표정을 지었을 것 같은 눈빛 교환.
먼저 고개를 돌린 것은 아델리아였다.
“흠흠. 아무튼 지체할 시간이 없는 것 같네요. 고운눈바람 부족이 있는 곳으로 출발하죠.”
“알겠습니다. 그게 좋을 것 같군요.”
여유롭게 미소지은 게일은 자리에서 일어선 뒤 아델리아에게 손을 내밀었다.
“가시죠.”
“네, 게일 공자.”
게일의 손을 잡고 어째 평소보다 다소곳이 일어선 아델리아는 방을 나서기 앞서 문득 제자리에 멈춰 섰다. 퍼뜩 떠오른 것이 있어서였다.
“저, 그런데 게일 공자.”
“네, 아델리아 양.”
“그··· 게일 공자는 도박 같은 거 안 하시죠?”
“네, 하지 않습니다. 그··· 아델리아 양도··· 안 하시죠?”
“네, 저도요.”
“잘 됐군요.”
“그러게요.”
대체 무엇이 잘 되었다는 것일까.
어쨌든 양쪽 모두 도박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안도한 두 사람은 작은 미소와 함께 발걸음을 내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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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4장 - 정산 #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