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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딩메이커-78화 (78/473)

< 제26장 - 와일드 블랙 카우 >

제26장 - 와일드 블랙 카우

플레이아데스에는 다양한 종류의 페어리들이 존재했지만, 그래도 크게 보아 여덟 종류로 분류할 수 있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상징하는 네 종류의 계절 페어리들과 풍수지화의 속성력을 상징하는 사원소 페어리.

와일드 페어리는 속성력 페어리들 가운데 하나로, 야생의 거친 생명력을 상징하는 땅의 힘을 가지고 있었다.

‘페어리들 중에서는 육체 능력이 제일 세지?’

그래봐야 페어리기는 했지만.

“무슨 생각해?”

“피부 너무 예쁘다. 만져도 돼? 응? 된다구? 알았어, 만질게.”

“나도 나도.”

지들 멋대로 구는 걸 보니 역시 페어리는 페어리였다.

어찌되었든 코델리아는 뺨이며 어깨를 마구 비벼대는 페어리들을 보며 생각했다.

‘얘네가 왜 여기서 나오지?’

야생의 땅에서 야생의 페어리들이 튀어나온 셈이니 말이 되는 것 같기는 했지만.

‘하긴, 페어리들은 여기저기 흩어져서 사니까.’

본래 영웅전기2에서 와일드 페어리들을 만나기 위해서는 아르곤 제국과 야생의 땅의 접경지에 가야만 했다.

하지만 페어리퀸이 단수가 아니듯, 와일드 페어리들의 왕국도 단수가 아니었다.

“예쁜 애 보는 거 되게 오랜만이야.”

“맞아, 맞아. 여긴 우리 말고는 동물들밖에 안 사니까.”

“목욕물은 어때? 마음에 들어? 우리가 관리했어.”

페어리들이 재잘재잘 떠들기 시작하니 고요하던 목욕탕이 금방 시끄럽게 변했다.

자연 최대한 신경을 끄기 위해 노력하던 유더에게도 목소리가 들렸다.

“코델리아? 괜찮아? 무슨 일이야?”

“어? 어··· 그러니까······.”

코델리아가 말끝을 흐릴 때였다. 유더 쪽으로 시선을 돌린 와일드 페어리들이 거의 동시에 입을 열었다.

“와!”

“잘생겼다!”

“쟤는 누구야?”

“쟤랑도 놀자!”

“···페어리?”

마지막은 유더였다.

코델리아는 결국 포기한 사람처럼 한숨을 길게 내쉰 뒤 말했다.

“와일드 페어리들 같아.”

“오! 와일드 페어리!”

유더의 얼굴에 화색이 돈 이유는 단순했다.

춘하추동 사계절 페어리들의 가호를 모두 모으면 얻을 수 있는 사계의 가호.

풍수지화 사대속성 페어리들의 가호를 모두 모으면 얻을 수 있는 사성의 가호.

그리고 하나.

사계의 가호와 사성의 가호를 모두 모은 자만이 얻을 수 있는, 영웅전기 시리즈 최강의 삼대 가호 가운데 하나이자 누구도 얻은 적이 없는 환상의 가호인 요정왕의 가호.

‘역시 카플란!’

여기서 와일드 페어리를 만나게 될 줄이야.

그러고 보니 문득 고운눈바람이 한 말이 생각나는 유더였다.

‘칼날부리 협곡에는 여러 신비한 종족들이 거하고 있다고 했지?’

어쩌면 와일드 페어리들 외에도 제번 기분 좋은 기연들이 기다리고 있을지 몰랐다.

“우리를 알아?”

“너도 우리랑 놀래?”

“같이 목욕하자!”

“그럴까?”

“미쳤어?!”

페어리들의 제안에 유더가 씩 웃으며 응답하자 코델리아가 바로 반응했고, 유더는 쯧하고 혀를 찼다.

“안 통하네.”

“지랄 말고 눈가리개나 하고 와.”

“눈가리개는 왜?”

“나 계속 목욕할 거니까. 이제 막 물에 들어왔단 말이야.”

유더와 코델리아의 대화에 와일드 페어리들은 서로를 돌아보며 말했다.

“뭐야뭐야, 눈을 왜 가리는 거야.”

“나 이런 거 책에서 본 적 있어.”

“정말? 혹시 표지가 빨간색이었어?”

순간 무어라 반박하고 싶어진 코델리아였지만 상대는 페어리였다.

이미 폴 페어리들과 윈터 페어리들을 겪어본 코델리아는 무어라 항변하는 대신 그저 기다렸고, 이내 눈가리개를 한 유더가 천천히나마 분명한 발걸음으로 코델리아가 자리한 욕조 근처에 도달했다.

“눈 가려도 잘 생겼네.”

“마음에 들어.”

페어리들이 유더의 얼굴 품평회를 하는 동안 머리까지 물속에 푹 담갔다가 빼낸 코델리아는 손으로나마 몸 곳곳을 닦으며 입을 열었다.

“페어리들아, 같이 놀자고?”

“응응, 밤놀이에 초대할게.”

“아! 그리고! 그것만이 아니야.”

“그것만이 아니라니?”

“여왕님께서 그러셨잖아. 도와줄 사람을 찾으면 데려오라고.”

“맞아맞아. 기억났어.”

도와줄 사람.

잠자코 있던 유더가 바로 끼어들었다.

“무언가 도움이 필요한 건가요?”

“응! 오래된 문제가 하나 있는데 우리들로는 해결이 안 되거든.”

“여왕님께서 도와줄 사람을 데려오면 상을 주신다고 했어.”

“그럼 상은 내 거네?”

“내 거지 왜 네 거야.”

페어리들이 투닥투닥 싸우기 시작하자 토끼 귀를 가진 페어리 하나가 살금살금 코델리아에게 다가와 말했다.

“싸우는 동안 나랑 빨리 가자. 응?”

“···하는 짓은 사람이랑 똑같네.”

“뭐가?”

순진하게 되묻는 토끼 귀 페어리에게 쓰게 웃어준 코델리아는 탕에서 일어난 뒤 마법으로 머리와 몸을 말렸다.

“으··· 새 옷 입고 싶은데.”

하지만 어쩌랴. 세탁할 틈이 없는 것을.

주섬주섬 옷을 주워 입은 코델리아는 근처 바닥에 눈을 감고 앉아 있는 유더에게 다가갔다.

“이제 벗어도 돼.”

“응? 같이 목욕하자고?”

“뇌절치지 말구. 자꾸 그러니까 아재 같잖아.”

“흠흠.”

헛기침을 토한 유더는 눈을 가리고 있던 안대를 벗은 뒤 와일드 페어리들을 마주했다.

“이야기는 잘 들었습니다. 저와 코델리아가 여러분을 돕기 위해 나서겠습니다. 여왕님을 만나 뵙게 해주세요.”

“응! 알았어!”

“가자!”

“잠깐!”

마지막은 코델리아였다.

페어리들과 유더가 함께 코델리아를 돌아보자 그녀는 저만치 입구 쪽을 가리켰다.

“카플란도 데려가야지.”

기절한 상태로 뻗어있는 카플란이었다. 저대로 두고 갔다가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쩐단 말인가.

“그러네, 카플란도 데려가야겠네.”

자리에서 일어난 유더는 어느새 어깨 위에 올라탄 와일드 페어리들을 데리고 카플란 쪽으로 이동했다. 그런데 와일드 페어리들이 카플란을 보자마자 난색을 표했다.

“쟤는 안 돼.”

“맞아, 쟤는 무리야.”

“왜요?”

“대머리잖아.”

토끼 귀 페어리의 말에 다른 페어리들이 모두 고개를 끄덕였고, 유더는 차마 입이 열어지지 않는 참담함을 느꼈다.

“아무튼 쟤는 안 돼.”

제법 단호한 와일드 페어리들이었다.

‘어떻게 안 될 것 같지?’

‘페어리들 몰라? 설득은 무리야.’

오히려 페어리 퀸이라면 설득이 가능했지만, 완전 꼬맹이 그 자체인 페어리들은 무리였다.

눈빛으로 대화를 마친 유더와 코델리아는 어찌할지를 잠시 고민하다가 바로 행동을 개시했다.

“뭐야, 뭐야. 대머리를 왜 묶는 거야?”

“구속 플레이라는 거야.”

“구속 플레이?”

“응, 그게 뭐냐면······.”

“어머나 세상에.”

“아직 아무 말도 안 했거든?”

“빨리 해봐.”

페어리들의 대화에 코델리아의 표정이 썩어 들어갔지만 유더는 카플란의 짐에서 꺼낸 밧줄로 카플란을 꽁꽁 묶은 뒤 목욕탕 안쪽에 그를 내려놓았다.

“여긴 우리 영역이라 동물들도 안 와.”

“응응, 그러니까 별 일 없을 거야.”

유더도 그렇게 생각했다. 목욕탕 안에 딱히 동물들의 털 같은 것이 발견되지 않았으니 말이다.

지금 카플란을 묶는 것은 정신을 차린 그가 멋대로 목욕탕을 빠져나갈 것을 우려해서였다.

‘아직 뽕도 제대로 못 뽑았는데.’

물론 덕분에(?) 와일드 페어리들을 만나기는 했지만 아직 마도왕국의 유적에는 도착도 못 한 상황이었다.

앞으로 쓸 일이 무궁무진하게 남은 카플란을 그냥 놓아보낸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역시 악랄해.”

“칭찬 감사합니다.”

코델리아에게 연극풍으로 예까지 표한 유더는 역시나 카플란의 짐에서 찾은 종이에 연필로 글씨를 써내려갔다.

귀족적인 수식어가 이래저래 붙었지만 결국 한 줄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았다.

‘우리가 당신을 구했다. 그러니 두려워말고 얌전히 기다려라. 금방 오겠다.’

“납치당했다고 생각하는 게 아닐까?”

“그래도 뭐 별 수 없고.”

일단 와일드 페어리들과의 일을 해결해야 했으니까.

유더는 단단히 구속한 카플란의 발목에 새로 밧줄을 하나 묶은 뒤 그 끝을 목욕탕 기둥에 고정시켰다.

“좋아, 이제 출발하자.”

“그런데 유더야. 밧줄 너무 잘 묶는데?”

“보이스카웃에서 배웠어.”

적당히 넘긴 유더는 와일드 페어리들에게 다가갔고, 저들끼리의 이야기에 잔뜩 열을 올리던 와일드 페어리들이 꺅꺅 거리며 유더와 코델리아를 보았다.

“무슨 이야기 나눴는지 묻고 싶지 않아.”

벌써부터 지친 것 같은 코델리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유더는 와일드 페어리들에게 부탁했다.

“여왕님께 데려다 주시겠어요?”

“응! 가자!”

와일드 페어리들이 날개를 파닥여 유더와 코델리아 곁으로 모여들었고, 그 뒤는 이제까지와 같았다.

눈을 한 번 감았다 뜨니 어느새 완전히 다른 공간에 서 있었다.

“오··· 이번엔 바로 온 건가?”

평범한 페어리들이 거하는 거주 공간이 아니었다.

여왕의 거처.

폴 페어리 퀸의 거처가 우아했고, 윈터 페어리 퀸의 거처가 단아했다면 와일드 페어리 퀸의 거처는 좋게 말해 생동감이 넘쳐흘렀다.

‘나쁘게 말하면 그냥 마구잡이라는 거지만.’

여러 종류의 꽃과 나무들이 아무렇게나 자리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역시 페어리 퀸은 페어리 퀸.

수많은 꽃과 나무들이 나름의 조화를 이루니, 난잡하다는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인간의 아이들아. 만나서 반갑구나.”

여느 페어리들과는 다른 깊고 그윽한 목소리에 유더와 코델리아는 같은 곳을 바라보았다.

커다란 해바라기 위에 암사자의 귀와 꼬리를 가진 페어리 퀸이 자리하고 있었다.

“유더 바이엘이 와일드 페어리 퀸을 뵙습니다.”

“코델리아 체이스가 인사드려요.”

유더와 코델리아가 각기 예를 표하자 페어리 퀸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풍성한 붉은 머리와 송곳니가 인상적인 그녀는 멋들어진 드레스를 입고 있던 다른 페어리 퀸들과 달리 활동적이고 편해 보이는 짤막한 미니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하지만 페어리 퀸은 페어리 퀸이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소녀 같은 장난기 대신 성숙한 자애로움이 가득했다.

“너희들은 평범한 인간들이 아니구나. 무척 강한 힘을 가지고 있어. 그러니 아이들아, 너희에게 부탁이 하나 있단다.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주려무나.”

지금까지와는 다소 다른 패턴이었다.

하지만 나쁘지 않은 패턴이었다.

어떤 문제냐에 따라 이야기가 조금 달라지긴 하겠지만, 뜯어먹기에는 이쪽이 훨씬 더 수월했으니 말이다.

‘눈빛이 사악해.’

‘너도거든?’

재빨리 눈빛을 교환한 유더와 코델리아는 거의 동시에 페어리 퀸을 돌아보았고, 페어리 퀸은 진지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인간의 아이들아, 우리 와일드 페어리들의 거처와 하이 엘프들의 왕국을 잇는 길목에 사악한 기운을 가진 괴물이 나타났단다. 괴물을 해치워 길목을 다시 열어줄 수 있겠니?”

시공간을 넘나드는 페어리들이었지만, 그렇다하여 언제어디서든 자유롭게 공간을 뛰어넘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먼 거리를 도약할 수 있는 수단이 한정적인 만큼 물리적인 길목 역시 중요했는데, 괴물이 그 길목을 막고 있는 모양이었다.

“어떤 괴물인지 알 수 있을까요?”

코델리아의 물음에 페어리 퀸이 작게 주문을 읊조렸다. 그러자 유더와 코델리아의 머릿속에 동일한 영상이 떠올랐다.

황소의 머리와 거대한 박쥐 날개, 머리부터 발끝까지 칠흑인 몸통.

지옥의 하급 악마종인 락토가 분명했다.

‘과연.’

‘페어리들이 도움을 청할 만도 하네.’

비록 하급종이긴 해도 락토는 지옥의 악마였으니까.

그렇지 않아도 전투와 거리가 먼 페어리들에게는 어찌 상대해볼 도리조차 없는 상대였다.

“할 수 있겠니?”

페어리 퀸이 조마조마한 얼굴로 묻자 유더와 코델리아는 누가 먼저랄 것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할 수 있습니다.”

“해볼게요.”

“오··· 정말 고맙구나.”

페어리 퀸이 안도하자 유더와 코델리아는 다시 서로를 돌아보았고, 이번에는 유더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런데 페어리 퀸이시여.”

“말하려무나.”

“저희도 도움이 필요합니다.”

“도움?”

“네, 도움이요.”

유더의 얼굴에 미소가 깊어졌고, 코델리아의 눈이 살짝 가늘어졌다.

유더가 계속해서 말했다.

“페어리 퀸이시여, 대지의 가호를 부탁드려도 될까요?”

“물론이다. 가호를 내려주겠다.”

페어리 퀸이 선선히 말하자 유더와 코델리아는 바로 요정의 결속을 내밀었다.

“잘 부탁드려요.”

“어머나, 요정의 결속이라니. 오랜만에 보는구나.”

페어리 퀸은 천진한 미소를 지으며 대지의 가호를 내려주었다.

육체능력 전반을 강화하고 약하지만 재생력을 부여하는 가호였다.

“이제 되었니?”

“네, 이제 다음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래, 잘 되었··· 다음 도움?”

“네, 다음 도움.”

눈을 깜박이는 페어리 퀸에게 즉답한 유더는 말을 이었다.

“페어리 퀸이시여, 괴물과 싸우기 위해서는 무기가 필요합니다.”

“어··· 너흰 이미 무기가 있지 않니?”

페어리 퀸의 시선이 유더의 허리춤에 자리한 동방무사의 검과 코델리아가 들고 있는 문라이트를 빠르게 오갔다.

하지만 유더는 이번에도 단호하게 답했다.

“이것으로는 부족합니다. 상대는 악마니까요.”

“맞아요, 더 강한 무기가 필요해요.”

이제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맞장구를 치는 코델리아였다.

페어리 퀸은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

“음··· 인간의 무기는 잘 모른단다. 그럼 아이들아, 하이 엘프들이 남긴 물건들을 보여줄 테니 너희가 사용할 무기를 직접 골라보는 것은 어떻겠니?”

“감사합니다.”

“그 말을 기다렸어요.”

이번에도 즉답이었다.

순간 기분이 묘해진 페어리 퀸은 잠시 망설였지만 이내 유더와 코델리아를 데리고 공간을 넘었다.

“이제 눈을 떠도 된단다.”

돌로 된 건물이었다.

무척이나 오래되어 곳곳이 마모되었지만, 세월의 흐름으로도 채 지우지 못한 우아함이 기둥과 벽, 천장과 바닥 등등 눈이 닿는 모든 곳에 남아 있었다.

고대 엘프라고도 불리는 하이 엘프들의 건축 양식.

가로 세로 너비가 10미터는 족히 되어 보이는 넓은 방이었다. 천장 높이도 제법 높아 7미터는 될 것 같았고, 기둥들은 모두 벽과 같이 붙어 있어 공간 자체가 확 트인 느낌이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들.

기둥과 기둥 사이에 놓인 장식대 위에는 갖가지 물건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제 보니 무기고라기보다는 정말 하이 엘프들이 쓰던 물건들을 이것저것 모아둔 장소 같았다.

“천천히 골라보려무나. 다 고르면 나를 부르고.”

거기까지 말한 페어리 퀸은 다시 훌쩍 공간을 넘어 사라졌다.

그리하니 결국 남게 된 것은 유더와 코델리아뿐.

더 이상 눈치 볼 사람도 없어지자- 사실 지금까지도 눈치를 안 보긴 했지만, 어찌되었든 훨씬 홀가분해진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말했다.

“내가 왼쪽.”

“내가 오른쪽.”

바로 분업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첫 번째 장식장에서 코델리아는 숨을 멈추고 말았다.

“말도 안 돼.”

이게 왜 여기서 나와.

장식장 위에 예쁘게 자리하고 있는 것은 커다란 붉은 보석이 달린 황금색 브로치였다.

하이 엘프들의 물건답게 마법의 기운이 느껴졌는데, 코델리아는 이미 이 브로치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주문의 메아리.”

효과는 단순하고 강력했다.

시전자가 사용한 주문을 반복해서 시전한다.

즉, 주문의 메아리를 찬 상태로 칼라마이트의 창을 시전하면 칼라마이트의 창이 두 개가 생긴다는 뜻이었다.

물론 마력 소모 역시 두 배가 되는 만큼 남용할 수는 없는 물건이었지만, 위급한 순간에 주문 두 개를 동시에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매리트였다.

“이거야, 무조건 이거야.”

다른 건 볼 필요도 없어.

감격한 코델리아는 떨리는 손으로 주문의 메아리를 집어든 뒤 가슴께에 조심스럽게 부착했다.

“유더야! 난 정했어! 주문의 메아리야!”

빙글 돌아서며 크게 소리치자 유더 역시 바로 반응을 보였다.

“뭐?! 주문의 메아리?!”

경악 그 자체라 해도 좋을 유더의 얼굴에 코델리아는 짜릿한 쾌감을 느꼈다.

“응응, 주문의 메아리야. 난 이걸로 정했어. 다른 건 볼 필요도 없어.”

이것보다 좋은 물건이 나올 가능성은 없다시피 했으니까.

유더도 동의했다.

현재 코델리아 수준에서 사용가능한 아이템들 중 주문의 메아리보다 더 좋은 녀석은 영웅전기 전체로 보아도 하나에서 둘 정도 밖에 없었다.

유저 성향에 따라서는 아예 졸업템으로 삼기도 하는 주문의 메아리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유더는 바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무슨 소리야. 계속 봐야지.”

“응? 아··· 응. 네가 쓸 거 같이 찾아볼게.”

“아니, 그게 아니라. 네가 쓸 걸 찾아봐야지.”

“어? 나는 주문의 메아리라니까?”

“그거만 가져가게?”

“어?”

“그거만 가져갈 거냐고.”

유더의 말에 코델리아는 몇 번이나 눈을 깜박였고, 이내 깨달았다.

게임이 아니라 현실이었다.

더욱이 페어리 퀸은 딱 하나만 고르라는 말은 한 적이 없었다.

“아아, 아아아!”

코델리아의 두 눈에 깨달음이 어리자 유더는 씩 웃으며 말했다.

“악마와 싸우기 위해서는 많은 무기들이 필요할 거야.”

“맞아, 상대는 악마니까!”

“그래, 악마와 싸우기 위해 풀무장을 하자.”

“응응, 머리부터 발끝까지 풀세트. 풀풀세트세트!”

발랄하게 외친 코델리아는 다시 장식장을 향해 달려갔고, 유더는 흐뭇한 얼굴로 그런 코델리아와 장식장들을 돌아보았다.

‘대지의 가호와 하이 엘프의 무구.’

하지만 이게 다가 아니었다.

아직 괴물을 물리친 이후의 보상이 남아 있었으니까.

‘페어리 너무 좋아.’

행복한 미소를 지은 유더는 오른쪽 장식장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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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다 필요한 것이니?”

“네, 전부 다 필요해요.”

< 제26장 - 와일드 블랙 카우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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