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엔딩메이커-79화 (79/473)

< 제26장 - 와일드 블랙 카우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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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다 필요한 것이니?”

“네, 전부 다 필요해요.”

코델리아가 활짝 웃으며 말하자 와일드 페어리 퀸은 재차 고개를 위 아래로 왕복시켰다.

반짝반짝.

그야말로 반짝반짝.

코델리아의 가늘고 긴 손가락에는 엄지부터 약지까지 전부 반지가 껴져 있었고, 가슴께에 브로치를 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목걸이를 따로 또 걸고 있었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팔찌.

벨트.

귀걸이.

심지어는 장화를 신은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발찌까지 찬 상태였다.

저걸 대체 어떻게 찬 걸까.

혹시 신발 속 발가락에도 뭔가 차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어찌되었든 반짝반짝 빛나는 장신구들 사이에서 환히 웃는 코델리아의 머리 위에는 토끼 귀 머리띠 외에도 파란 보석이 박힌 티아라가 하나 얹어져 있었다.

알록달록 반짝반짝에 치렁치렁.

끔찍한 혼종이어야 할 패션이었지만 이 와중에도 예뻐 보이는 코델리아의 미모에 유더가 감탄하고 있을 때, 페어리 퀸은 참담한 얼굴로 유더를 돌아보았다.

“그대도?”

“네, 저도.”

사실 유더도 그리 다를 것이 없었으니까.

열손가락 모두 반지를 끼고 양쪽 귀에 서로 다른 귀걸이를 찬 뒤 목에는 목걸이를 걸고 허리에는 허리띠를 차고 팔에는 팔찌를 끼고 다시 허리에는 동방무사의 검과 바이콘의 뿔 단검 외에도 아름다운 엘븐 소드 한 자루를 찼고, 허벅지에도 새로 끈을 달아 단검 하나를 묶어두었다.

그리고 의복.

코델리아는 화려한 빨간 망토를 등에 둘렀고, 유더는 무척 커다란 보라색 코트를 입고 있었다.

모두 하이 엘프들의 유산들로, 강하든 약하든 마법이 걸린 물건들이었다.

“반짝반짝해.”

“자체발광.”

“예쁘다! 잘생겼다!”

페어리들이야 생각 없이 꺅꺅 거렸지만 페어리 퀸은 여전히 의아한 얼굴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장비의 통일성이라는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완전 꼬맹이 그 자체인 페어리들과 달리 페어리 퀸은 어른이었다.

그녀의 눈에는 냉기 속성을 강화하는 반지와 화 속성을 강화하는 반지 두 개가 서로 상쇄 효과를 일으키는 것이 아주 잘 보였다.

그런데 저게 다 필요하다고?

“필요해요. 정말정말 필요해요.”

코델리아가 두 손을 모아 쥐며 필요성을 강조하자 유더는 속으로 뒷말을 이었다.

‘지금 말고 나중에.’

사실 하나하나만 놓고 보면 그리 대단한 물건은 없었다.

페어리 퀸이 본 것처럼 서로 상쇄 효과를 일으키는 물건도 많았고 말이다.

하지만 그게 뭐 어떻단 말인가.

일단 챙기고 본다.

정 쓸 곳이 없으면 팔기라도 하면 되니까.

‘챙길 수 있을 때 챙길 수 있는 곳에서 최대한 챙긴다.’

남아서 버리는 것이 모자라서 빌빌 거리는 것보다는 무조건 나으니까.

‘훌륭한 마음가짐이야.’

스스로에게 고개를 끄덕인 유더는 다시 코델리아와 페어리 퀸을 보았다.

코델리아의 설득(?)이 잘 통한 것인지 페어리 퀸은 의아한 얼굴로나마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다. 그럼 괴물이 있는 곳으로 가보자꾸나.”

“네, 여왕님.”

“기대에 부응하겠습니다.”

코델리아와 유더가 즉답하자 페어리 퀸도 마음이 조금 풀렸는지 다시 자애로운 미소를 머금었다.

“눈을 감으렴.”

“네, 여왕님.”

“대답을 정말 잘 하는구나. 예쁘기도 하지.”

“예쁘게 봐주셔서 감사해요.”

코델리아가 눈을 감으며 다시 살갑게 굴자 페어리 퀸의 미소 역시 짙어졌다.

“자, 이제 눈을 떠도 된단다.”

과연 페어리 퀸.

이동하는 느낌도 없었는데 눈을 뜨니 어느새 요정들의 숲이 아닌 거대한 공동 안이었다.

지하인지 지상인지 알 수 없었지만, 산이든 땅이든 파고 들어가 만든 거대한 공동인 것 같았다.

‘나 이거 반지의 제왕에서 봤어.’

코델리아의 눈빛에 고개를 끄덕인 유더는 좀 더 주변을 살펴보았다.

‘과연.’

천길낭떠러지 사이에 다리가 하나 놓여 있었는데, 다리 한 가운데에 거대한 악마가 몸을 웅크린 채 앉아 있었다.

‘락토.’

천계에 무덤의 수호자가 있다면 지옥에는 락토가 있었다.

주로 수문장 역할을 하는 악마였는데, 미노타우르스 사촌처럼 생긴 외모답게 우둔하지만 무시무시한 괴력을 자랑하는 녀석이었다.

“상대할 수 있겠니?”

페어리 퀸이 걱정스럽다는 듯 작은 목소리로 묻자 코델리아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에요. 구경만 하고 계세요.”

자신만만한 선언에 페어리 퀸뿐만 아니라 뒤에서 구경하러 온 페어리들 역시 환한 얼굴이 되었다.

“유더야, 유더야. 상대는 락토니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지?”

“알지.”

가볍게 손목을 푼 유더는 목까지 몇 번 흔든 뒤 재차 말했다.

“준비 됐어. 너는?”

“나도.”

문라이트를 새삼 고쳐 쥔 코델리아는 심호흡을 크게 한 뒤 발걸음을 내디뎠다.

그리고 그 움직임에 락토가 반응했다.

굳어서 돌이라도 된 듯 꼼짝도 하지 않고 있던 놈이 번쩍하고 눈을 뜨더니 다리로 다가오는 유더와 코델리아를 보았다. 천천히 날개를 펼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무장은 양날도끼에 대형방패. 허리에 채찍.”

“눈빛 보니까 락토 중에서는 중하급 같네.”

“그래도 악마는 악마야.”

“악마지.”

여간한 하급 마인 정도는 우습게 찢어발길 존재.

하지만 유더와 코델리아의 발걸음에는 긴장은 있을지언정 두려움은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다리 앞.

“크크큭··· 오랜만에 피 맛을 보겠구나.”

락토의 입에서 쇠를 긁는 것처럼 듣기 싫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뒤에서 구경하던 페어리들은 서로를 끌어안으며 두려워했지만 유더와 코델리아는 오히려 안심했다.

‘잔챙이 전용대사네.’

‘작전대로만 하자.’

다리 위의 락토.

시작은 유더였다. 땅을 거칠게 밟아 황금의 선풍을 일으켰다. 그것들을 전신에 두르며 기운을 개방하니 락토를 비롯한 모두가 유더에게 시선을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크크크··· 싸울 맛이 나겠구나.”

락토가 말했고 유더는 씩 웃었다. 앞으로 한 걸음을 내딛자 락토는 도끼를 내려놓고 채찍을 거머쥐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코델리아가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강력한 마력의 집결에 페어리들이 깜짝 놀라 코델리아를 보았고, 락토 역시 흠칫하며 방패를 들어올렸다.

“주문의 메아리.”

발동했다. 코델리아의 주문을 그대로 따라해 또 하나의 마법을 만들어냈다.

넘실거리는 마력.

일어나는 선풍.

락토의 전신에서 강력한 기운이 방출되었다. 무슨 공격을 하든 막아주겠다는 듯 방패에 보랏빛 기운이 어리게 하였다.

그리고 직후.

페어리 퀸을 비롯한 모두가 숨을 죽인 그때.

코델리아가 문라이트에 어린 강력한 마력을 방출했다. 락토를 향해 내뿜는 대신 지면을 찍어버렸다!

콰가가가가가-!

다리가 뒤흔들렸다. 검은 기파가 다리 전체에 퍼졌고, 주문의 메아리로 한 번 발동한 마법이 이미 한 번 지나간 자리를 다시 지났다.

콰지지지지직-!

균열이 생겼다. 다리 전체가 거미줄이라도 된 것처럼 수많은 선이 그어졌다.

그리고 유더가 일장을 내리쳤다.

바닥에 흑룡의 기운을 방출하니 균열 사이사이로 검은 기운이 치솟았다.

“어.”

페어리 퀸이 말했고, 락토가 자신의 발 아래를 보았다. 코델리아가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안녕.”

와르르.

문자 그대로 박살이 난 다리가 추락했고, 그 위에 자리하고 있던 락토 역시 추락했다.

연이어 들리는 비명 소리.

흡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 코델리아는 유더와 함께 페어리 퀸 쪽을 돌아보았다.

“무찔렀어요!”

해치웠다.

락토를.

다리채로.

“다, 다, 다리가 없어졌잖니!”

페어리 퀸이 유더와 코델리아 쪽으로 날아오며 소리쳤다.

길목을 막고 있는 괴물을 해치워 달랬더니 길목 그 자체를 파괴해버릴 줄이야.

잔뜩 흥분한 페어리 퀸이 다시 무어라 소리치려 하자 유더는 급히 손을 들어 그녀를 제지했다.

“아뇨, 아뇨. 괜찮아요.”

“대체 뭐가 괜찮단 말이니!”

다리가 없어졌는데!

페어리 퀸이 저도 모르게 뒷목을 잡자 코델리아가 말했다.

“그치만 페어리들은 날개가 있잖아요.”

“뭐?”

“날개가 있으니 날아가면 되잖아요.”

통행을 방해하던 락토는 사라졌다.

다리 또한 없어졌지만 애당초 날아다닐 수 있는 페어리들이니 다리가 꼭 필요한 것은 아니다.

“그쵸?”

제법 논리정연한 말에 페어리 퀸은 어지러움을 느꼈고, 유더는 웃으며 말했다.

“페어리 퀸이시여, 죄송하지만 잠시 물러나 주시겠습니까?”

“물러···나라니?”

“아직이거든요.”

마지막으로 말한 것은 코델리아였다.

그녀는 유더를 돌아보더니 급 숫자를 헤아리기 시작했고, 유더 또한 그런 코델리아에게 동참했다.

“5.”

“4.”

“3.”

“2.”

““1!””

동시에 외친 두 사람은 돌아섰고, 그 순간 거대한 포효가 울려퍼졌다.

“우오오오!”

락토였다. 박쥐의 날개를 활짝 펴며 날아오른 락토가 노성을 지르며 유더와 코델리아를 보았고, 코델리아는 미리 준비해두었던 마법을 발동시켰다.

“윈드 커터.”

주문의 메아리로 연속 시전.

날카로운 바람의 칼날이 목표를 향해 날아갔다. 서걱하는 소리와 함께 락토의 날개죽지에 큰 상처를 내었다.

“다시 한 번 안녕.”

“성십자 지르기.”

락토를 향해 유더가 성십자 지르기를 날렸다.

황금빛 십자가에 명중당한 락토는 대번에 균형을 잃었고,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 날개를 파닥 거리며 다시 한 번 추락했다.

“으아아아아아아!”

쿵!

유더와 코델리아는 다시 페어리 퀸을 돌아보았고, 페어리 퀸은 눈만 껌벅이다가 겨우겨우 입술을 열었다.

“어······.”

“하던 이야기 마저 하죠. 다리가 없어도 페어리들은 날개가 있으니 이 길목을 이용하는데 불편이 없을 겁니다.”

“그, 그치만······.”

“거기다 생각해보세요. 이제 다리가 없으니 락토 같은 괴물이 다리를 막을 일도 사라진 겁니다.”

꽃밭에 벌이 모여드니 꽃밭 자체를 없애버리자 급의 아무 말 대잔치였지만 이 말을 듣고 있는 것은 페어리들이었다.

“와아! 그러네?”

“똑똑해!”

“다리가 없으니 이제 괴물도 없을 거야!”

페어리들이 기뻐하자 코델리아는 빙긋 웃으며 페어리 퀸을 보았고, 유더는 다시 미소와 함께 말했다.

“이게 모두 페어리 퀸님 덕분입니다.”

“어?”

“이렇게 귀한 장비들을 아낌없이 내주신 덕분에 모든 일의 원흉인 다리를 파괴할 수 있었습니다.”

“맞아요, 모두 페어리 퀸님 덕분이에요.”

“페어리 퀸님을 위해 박수!”

“와아아!”

유더가 말하고 코델리아가 바람을 잡았다.

본래부터 흥이 많은 페어리들은 코델리아가 짝짝짝 물개박수를 치자 따라서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여왕님 만세!”

“만세!”

“만세!”

이것이야말로 몰아가기.

결국 페어리 퀸은 어색한 얼굴로나마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어··· 어··· 그, 그래. 잘 되었구나.”

“와와! 여왕님!”

“여왕님!”

“여왕님 너무 예뻐요!”

마지막은 코델리아였다.

페어리들에게 하도 시달리다보니 이제는 페어리들에 대해 너무 잘 알게 된 그녀였다.

“흠흠.”

페어리 퀸도 결국엔 페어리.

예쁘다는 말에 뺨을 붉히며 좋아했고, 유더와 코델리아는 서로에게 시선을 돌렸다.

‘잘 된 거 같지?’

‘어, 이제 마무리만 하면 돼.’

이번 일의 진정한 마무리.

하지만 그 전에 아직 처리해야 할 일이 하나 남아 있었다.

“여왕님, 조금만 물러나주세요.”

코델리아의 말에 페어리 퀸은 고개를 갸웃했지만 이내 뒤로 물러섰고, 유더와 코델리아는 서로를 보더니 다시 한 번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5.”

“4.”

“3.”

“2.”

““1!””

“우오오오오오!”

피투성이가 된 락토가 머리를 내밀었다. 떨어지다 다쳤는지 오른쪽 뿔이 동강 부러진데다가 머리에서는 피가 철철 흘렀다.

“크르르······.”

분노.

증오.

노여움.

절벽을 기어서 올라온 놈은 노성을 토하며 단숨에 뛰어오르고자 하였다.

하지만 무리였다.

놈이 손을 얹을 위치에 이미 자리를 잡고 서 있던 유더와 코델리아였다.

“이번에야말로 안녕.”

“잘 가.”

유더가 놈의 몸을 지탱하고 있던 손을 거칠게 밟았고, 코델리아가 염동력으로 놈을 밀어버렸다.

“으아아아아아아!”

애달픈 비명과 함께 락토가 다시 한 번 추락했다.

절벽 위에서 사악한 미소를 짓는 유더와 코델리아에게 무어라 저주의 말을 남기고자 했지만 그러기에는 낙하 속도가 너무 빨랐다.

그리고 다시 쿵.

“오, 레벨 업.”

“잡았당.”

서로의 가슴께에 떠오른 새하얀 고리를 발견한 유더와 코델리아는 만족스럽게 웃은 뒤 페어리 퀸을 돌아보았다.

“잡았어요.”

“이제 안심하셔도 됩니다.”

“그, 그래.”

저도 모르게 말을 더듬은 페어리 퀸은 이내 심호흡으로 스스로를 다스렸다.

어찌되었든 괴물이 사라졌으니 문젯거리를 하나 던 셈이었다.

그런데 왜일까.

왜 계속 불길한 기분이 이어지는 것일까.

그 답은 눈앞에 있었다.

“여왕님.”

“응?”

“그럼 이제 마지막 정산을 하죠.”

“정산? 무슨 정산?”

“좋은 정산이요.”

의뢰를 해결했으니 보상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유더와 코델리아는 본능적으로 뒷걸음치는 야생의 호구- 아니, 와일드 페어리들의 수장을 향해 산뜻한 발걸음을 내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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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 같아.”

“그래서 싫어?”

“아니, 너무 좋아!”

< 제26장 - 와일드 블랙 카우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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