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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딩메이커-80화 (80/473)

< 제27장 - 카플란 효과 >

제27장 - 카플란 효과

유더에게도 양심이란 것이 있었다.

“정말?”

“왜 넌 남의 일인 척 하니. 너도 공범이거든?”

“코델리아는 아무것도 몰라요. 그냥 아빠 따라왔어요.”

대놓고 귀여운 척을 하며 능청을 떠는 코델리아였지만 유더는 어쩔 수가 없었다.

“히히, 진짜 귀여우니까 어쩔 수가 없지?”

“아니거든?”

“히히히.”

얄밉게 웃은 코델리아는 유더의 가슴을 톡톡 두드렸다.

“아무튼 여기에도 양심이란 게 있긴 있구나.”

유더의 양심.

그랬다. 유더에게도 양심이란 것이 존재했다.

대지의 가호를 받고 연이어 양쪽 합쳐 스무 개가 훌쩍 넘는 마도구를 받아낸 이 마당에 다시 한 번 의뢰에 대한 보상이라며 페어리 퀸에게 무언가를 뜯어내는 것은 아무리 유더라 해도 무리였다.

‘사실 더 뜯어낼 게 없어서지만.’

보물이라면야 몇 개 더 있을 터였지만, 페어리 퀸에게도 내줄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이 있었으니까.

괜한 욕심을 부려서 좋은 관계(?)를 망가트릴 필요는 없었다.

“그래서 얻어낸 게 이거야?”

“충분하지.”

씩 웃으며 답한 유더는 페어리 퀸에게 받은 지도를 활짝 펼쳤다.

“마도왕국 마젤란.”

고대 엘프라고도 불리는 하이 엘프들이 세운 강대한 마도왕국.

지도에는 칼날부리 협곡뿐만 아니라 과거 존재했던 마도왕국의 수도- 마도 엔디미온의 지리가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레나가 여기 어딘가에 있겠지?”

“아마도. 설사 없다 할지라도··· 레나를 구하기 위해서는 엔디미온에 대해 잘 알아야만 해.”

유더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코델리아는 지도의 왼쪽 구석으로 시선을 돌리더니 마음에서 우러난 미소를 지었다.

“우리가 지금 있는 온천이야. 그리고 이게 목욕탕 표시니까··· 헤헤헤, 엔디미온에만 목욕탕이 열 개도 넘게 있어.”

비록 와일드 페어리들이 관리하는 이곳처럼 온전히 과거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지는 않을 터였지만, 그래도 욕조가 있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잘 됐네.”

“응응, 너무 좋아.”

활짝 웃는 코델리아를 보니 유더 역시 기분이 좋아졌다.

“가는 길에 겸사겸사 들리자고. 아무튼 수확이 큰 만남이었어.”

“응, 그러게.”

대지의 가호와 주문의 메아리를 필두로 한 여러 마도구들, 마도 엔디미온의 지도.

‘거기에 정보까지.’

칼날부리 협곡에 거하는 마물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이 주변에서 혹여 조심해야 할 지형이 있는지 등등.

생각 이상으로 많은 것들을 얻어낸 유더와 코델리아였다.

“일단 장비 세팅부터 바꾸자 상쇄되는 건 빼고, 최고 효율로 세팅해보자고.”

“누나한테 맡겨. 네 거까지 최고 효율로 세팅해 줄 테니까.”

가슴을 탕탕 두드린 코델리아가 챙겨온 장비들을 분류하는 동안 유더는 여전히 바닥에 쓰러진 채 기절해 있는 카플란에게 다가갔다.

“카플란은 어때?”

“괜찮아 보여. 그냥 잘 자고 있네.”

코델리아에게 답한 유더는 그래도 일단 카플란의 맥을 한 번 집어 본 뒤 밧줄을 풀어주었다.

‘인디아나 카플란.’

아르곤 제국 출신의 모험가, 고고학자.

아르곤 제국에서 유적 탐사를 하다보면 적어도 한 번은 만나는 캐릭터였는데, 언제나 사건사고를 몰고다니다보니 초보들에게는 재앙신으로, 썩은물들에게는 지복신으로 불리는 인물이었다.

“깨우게?”

“이야기를 나눠봐야 하니까.”

카플란이 야생의 땅에 온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마도 엔디미온에 대해 무엇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잠깐만, 깨울 거면 내가 마법으로 깨울게.”

새로 챙겨온 마법의 가방에 분류하던 장비들을 쏟아넣은 코델리아는 빠른 걸음으로 유더에게 다가왔다.

“어웨이크.”

카플란의 번들거리는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속삭이자 이내 효과가 발동했다.

“으어어··· 어······.”

앓는 소리를 내며 눈을 뜬 카플란은 잠시 비몽사몽하더니 이내 벌떡하고 상체를 일으켰다.

“허억?! 여긴?! 괴물은?!”

유더와 코델리아는 일단 내버려 두었고, 카플란은 거친 숨을 토하며 주변을 둘러보더니 스스로 안정을 찾아갔다.

“모, 목욕탕? 하이 엘프 양식의?”

역시 고고학자.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지은 유더는 식은땀으로 범벅이 된 카플란에게 말했다.

“인디아나 카플란 경. 맞죠?”

부드러운 부름에 흠칫한 카플란이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경황이 없어 바로 옆에 앉아있던 유더와 코델리아를 제대로 보지 못 했던 그였다.

“인디아나 카플란이오. 여긴··· 아, 아니. 기억난다. 화이트 자이언트 베어에게 쫓기던 중에······.”

“네, 저희가 카플란 경을 구했습니다.”

“우리가 구해드렸어요. 우리가 아니었으면 화이트 자이언트 베어에게 잡아먹히셨을 거예요.”

시키지도 않았는데 어련히 알아서 구해주었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코델리아였다.

‘왜?’

‘아니, 뿌듯해서.’

잘 자랐구나.

순수했던 애를 타락시킨 것 같아 살짝 마음 한 구석이 시큰하긴 했지만.

어찌되었든 코델리아의 은혜 강조는 효과가 있었다.

“오! 두 분이 제 은인이셨군요! 정말 감사합니다! 두 분 덕분에 살았습니다.”

“네, 맞아요.”

“흠흠, 아무튼.”

바로 고개를 끄덕이는 코델리아를 살짝 제지하며 유더가 앞으로 나섰다.

카플란은 페어리가 아니었으니까.

은혜 강조도 좋았지만 너무 노골적이면 살짝 역효과가 날 가능성이 있었다.

“명망 높은 고고학자이신 인디아나 카플란 경을 이렇게 만나 영광입니다.”

“허허, 그저 허명을 조금 얻었을 뿐입니다.”

카플란이 쑥스럽다는 듯 수염을 쓰다듬었지만 역시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하는 법이었다.

한결 기분이 좋아진 그였다.

“저는 유더고, 이쪽은 제 약혼녀인 코델리아입니다.”

“코델리아에요, 이렇게 만나 뵙게 되어 영광이에요.”

코델리아가 예를 표하자 카플란의 얼굴이 한층 더 푸근해졌다.

“약혼녀께서 정말 대단한 미인이시군요. 부럽습니다.”

“하하하, 감사합니다.”

사실 코델리아는 별 생각이 없어 몰랐지만, 누군가를 만날 때마다 반드시 ‘약혼녀’라는 사실을 강조하는 유더였다.

어찌되었든 화기애애해진 가운데 카플란이 말했다.

“그런데··· 두 분은 야생의 땅에 거하는 분들 같지가 않군요.”

“네, 저희는 세일룬 왕국 출신입니다.”

“허! 세일룬! 세일룬 왕국은 오래 전부터 야만족들과 전쟁 상태이거늘, 어찌하여 이곳까지······.”

“여러 가지 사정이 있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유적 탐사를 위해서입니다.”

“유적 탐사요?”

“네, 유적 탐사.”

유더의 대답에 그저 허허 웃고 있던 카플란의 얼굴에 호기심과 긴장감이 동시에 어렸다.

“그 유적이라 함은······.”

“마도왕국 마젤란의 수도. 마도 엔디미온.”

“오! 역시!”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 카플란이 초롱초롱 눈을 빛내자 코델리아가 바로 말을 보탰다.

“카플란 경도 엔디미온을 조사하기 위해 오신 건가요?”

“그렇습니다. 명확한 위치를 알지 못 해 조금 헤매고 있었습니다만··· 두 분을 보니 희망이 생기는군요.”

이 근방 어딘가에 엔디미온이 있다.

“네, 엔디미온은 실재합니다. 그리고 지금 있는 이 장소 역시도 조금 크게 보면 엔디미온의 일부이고요.”

“오오오! 역시! 역시 하이엘프들의 목욕탕이 맞는 겁니까?”

“네, 맞습니다.”

“우오오!”

잔뜩 흥분한 카플란은 바로 벽으로 달려가 조심스러운 손길로 벽화와 양각된 문자, 목욕탕을 꾸미기 위한 장식 등을 살피기 시작했다.

“완전 흥분했네.”

“고고학자니까.”

보기 싫은 모습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하던 이야기는 마저 진행해야 하는 유더였다.

카플란에게 다가서며 말을 이었다.

“저와 코델리아는 세일룬 왕국 왕도에 위치한 아카데미의 연구원들입니다. 우연한 기회에 칼날부리 협곡과 엔디미온 일대의 지도를 손에 넣어 이곳에 오게 되었습니다.”

“지도? 지도 말씀입니까?!”

“네, 지도요.”

유더가 곱게 접힌 지도를 꺼내들자 카플란이 당장에 달려들었다.

하지만 유더는 지도를 내어주지 않았다.

“그 전에 카플란 경. 저희도 조금 알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대단한 건 아닙니다. 그저 정보 교환을 하고 싶은 것뿐이죠.”

카플란은 엔디미온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는가.

그가 굳이 야생의 땅까지 온 이유는 그저 엔디미온을 보고 싶어서인가.

“음··· 두 분도 아시겠지만 마도왕국 마젤란은 전설 속의 존재입니다. 기록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워낙 부실하다보니 실존 여부가 의심되는 왕국이죠.”

맞는 말이었다.

당장 유더와 코델리아도 고운눈바람에게 듣기 전에는 마도왕국의 존재 자체를 몰랐으니 말이다.

“실존 자체가 의심되는 왕국이니 멸망한 원인 역시 전설로만 전해지고 있습니다.”

멀고 먼 옛날.

고대라 불리는 시대에 강림한 지옥의 대군주들.

“전설에 따르면 마도왕국의 마지막 여왕 안제로네는 왕국의 모든 힘을 모아 지옥의 대군주에 맞섰다고 합니다. 하지만 결국에는 중과부적. 마도왕국은 결국 악마들의 손에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그저 짓밟히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마젤란의 하이 엘프들은 지옥의 대군주에게 치명적인 부상을 남기는데 성공했다.

“더욱이 마젠란과 지옥의 대군주 사이의 전쟁은 하루 이틀 동안 일어난 일이 아니라고 합니다. 최소 일 년··· 길게는 수 년 동안 이어진 전쟁 동안 마젤란의 마도사들은 악마와 싸우기 위한 방법들을 연구하고 또 연구했죠.”

납득이 되는 이야기였다.

역시 레나가 이곳에 온 이유는 마젤란의 하이 엘프들이 개발해낸 악마대항책을 손에 넣기 위함이 분명했다.

“파라곤 왕국의 참극 이후 아르곤 제국에서도 악마 추종자들이 날뛰기 시작했습니다. 강대한 악마의 강림을 우려하는 이들도 늘어났고요.”

“그래서······.”

“예, 악마들에게 대항할 방법을 찾아내는 것은 아르곤 제국뿐만 아니라 세계 전체를 위한 일입니다. 학자로서 움직일 이유로는 그야말로 차고 넘칠 정도지요. 물론 스폰서들의 요청도 있었습니다만.”

마지막에 가서 흠흠 헛기침을 하는 모습이 드워프 아저씨임에도 불구하고 묘하게 귀여웠다.

“그렇군요. 저희도 사실 비슷한 이유입니다. 세일룬 왕국에서도 악마의 손을 비롯한 악마 추종자들이 날뛴 지 오래이니까요.”

“음··· 역시. 악마 추종자들은 세계 전체의 문제입니다. 어느 일국만의 문제가 아니에요.”

“예, 그러니 카플란 경. 저희와 함께 엔디미온을 탐사하도록 하죠. 세일룬 왕국민과 아르곤 제국민이라는 입장을 떠나, 인간과 드워프라는 종족도 초월해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말입니다.”

“오오··· 좋습니다. 그리하겠습니다.”

유더가 내민 손을 불끈 잡으며 카플란이 고개를 끄덕이자 유더는 슬쩍 코델리아를 돌아보았고, 코델리아는 엄지를 척 세워주었다.

‘역시 우리집 사기꾼!’

‘언어의 마술사라 해주렴.’

눈빛 대화를 마친 유더는 지도를 펼쳐 카플란에게 보여주며 말했다.

“카플란 경, 일단 오늘은 이곳에서 쉬고 내일부터 탐사를 시작할 예정입니다. 그러니 카플란 경도 오늘 하루는 푹 쉬시죠.”

“오오··· 알겠습니다. 그리하겠습니다. 그래도 지도를 조금만 더 볼 수 있겠습니까?”

“물론이지요. 천천히 살피도록 하세요.”

잔뜩 흥분한 카플란에게 순순히 지도를 내준 유더는 다시 코델리아에게 다가서며 말했다.

“우리도 이제 쉬자.”

“목욕이랑 빨래해야지. 너도 좀 씻어. 땀내나.”

“어··· 진짜?”

“어, 진짜. 그러니까 씻기 전에는 붙지 마. 알았지?”

새침하게 말한 코델리아는 휙하고 돌아서더니 구석에 위치한 욕조 쪽으로 걸어갔고, 유더는 킁킁 냄새를 맡더니 서둘러 반대쪽 욕조로 발걸음을 떼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어··· 이렇게 가는 겁니까?”

“네! 이렇게 가는 겁니다!”

“이렇게 가는 거예요!”

온천 입구.

유더와 코델리아는 바짝 붙어 있는 반면 카플란은 저만치 먼 곳에 서 있었다.

거의 30미터쯤 될까?

더욱이 그냥 멀리 떨어져 있는 것도 아니었다.

카플란의 술통 같은 허리에는 밧줄이 감겨 있었고, 그 끝을 유더가 쥐고 있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무슨 일이 생기면 어제처럼 저희가 구해드릴게요!”

“이렇게 밧줄로 이어져 있으니 괜찮을 겁니다!”

“아니, 그렇긴 한데······.”

카플란이 앞장서고 유더와 코델리아가 뒤를 따른다.

그런데 이렇게 밧줄까지 묶고 있으니 뭐랄까, 마치 낚시대에 매달린 미끼가 된 기분이랄까?

“출발하죠!”

“출발해요!”

유더와 코델리아의 재촉에 카플란은 미묘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어찌되었든 은인인 두 사람이었고, 앞장서는 자신에게 지도까지 넘겨주지 않았던가.

마도 엔디미온의 지리가 상세히 묘사되어 있는 지도의 가치는 실로 천금과도 같았으니, 카플란 자신을 그저 미끼로 쓴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나름의 생각이 있는 것이겠지.’

화이트 자이언트 베어에게서 자신을 구할 정도로 무용이 뛰어난 두 사람이었다.

이 정도 거리를 두고 따라오는 것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을 터였다.

애써 스스로를 납득시킨 카플란은 반짝이는 눈으로 정면을 보았다.

마도 엔디미온.

멸망한 마도왕국의 수도.

마지막 도시.

이 얼마나 모험가이자 고고학자인 자신의 심금을 울리는 단어들이란 말인가.

‘가자!’

카플란은 보무도 당당히 나아갔고, 유더와 코델리아는 그런 카플란의 뒤를 30미터 간격을 두고 따랐다.

그렇게 한 시간 여.

코델리아가 고개를 번쩍 들었고, 유더는 마음에서 우러난 미소를 머금었다.

“으아악! 괴물이다!”

“오오! 레어 몬스터인 아이스 그리즐리!”

“그것도 네임드야! 뿔이 두 개 달렸어! 역시 카플란 효과!”

카플란이 비명을 지르며 도망쳐오는 동안 활짝 웃은 두 사람은 밧줄을 세게 당겨 카플란을 회수한 뒤 목을 까딱이며 앞으로 나섰다.

재앙을 몰고 다니는 악운의 사나이 카플란을 이용한 네임드 몬스터 낚시.

평소에는 보기 힘든 레어 몬스터를 만난다.

그 중에서도 더더욱 보기 힘든 네임드와 조우한다.

이름하야 카플란 효과.

“우리 공주님, 월척을 낚아볼까요?”

“네, 아빠. 뽕을 뽑아보아요.”

서로를 보며 활짝 웃은 두 썩은물들이 앞으로 나섰고,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감지한 네임드 몬스터는 순간 흠칫하며 몸을 움츠렸지만 이미 늦은 상황이었다.

유더와 코델리아.

두 썩은물들의 신나는 낚시가 시작되었다.

&

< 제27장 - 카플란 효과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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