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27장 - 카플란 효과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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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어 몬스터는 이름 그대로 등장 빈도가 낮은 희귀한 몬스터를 의미했다.
‘그 중에서도 네임드 몬스터.’
이미 귀한 레어 몬스터들 중에서도 더욱 희귀한, 따로 이명을 붙여 분류하는 특별한 존재.
더욱이 네임드 몬스터들은 단순히 희귀하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아닌 경우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네임드 몬스터들은 일반적인 몬스터들보다 훨씬 더 강하거나 특수한 능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한 마디로 상대하기 어렵고 까다롭지.’
하지만 영웅전기 시리즈의 유저들 중에 네임드 몬스터와의 조우를 싫어하는 이는 극히 드물었다.
굳이 유더나 코델리아 같은 썩은물까지 갈 것도 없이, 평범한 유저들조차도 네임드 몬스터와의 조우를 환영했다.
어째서 그런 것일까.
그들은 왜 상대하기 어려운 네임드 몬스터와의 만남을 갈망하는 것일까.
미리 말하지만 영웅전기 유저들이 고통과 괴로움을 즐기는 변태들이라서는 아니었다.
“뭐야, 그런 거 아니었어?”
“아니거든? 아니, 잠깐. 설마?”
“설마는 무슨 설마. 당연히 나는 예외지. 나는 난도 높은 게임에서 스릴을 즐기는 거고. 너랑 다른 썩은물들은 고행을 즐기는 변태들인 거고.”
코델리아의 뻔뻔한 주장에 유더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허공에 필기하는 시늉을 하며 말했다.
“코델리아는 고통과 괴로움을 즐기는 변태다··· 메모.”
“씨발?”
코델리아에게 등짝을 얻어맞기 시작한 유더는 방금 쓰러트린 화이트 그리즐리를 보며 생각을 이었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상대하기 어렵지만 그 대신이라도 되듯 보상이 푸짐하다.
경험치도 일반 몹보다 훨씬 많았고 잡았을 때 드랍되는 아이템의 양과 질 역시 일반 몹과는 비교할 바가 아니었다.
‘하지만 이곳은 게임이 아닌 현실.’
게임에서야 화이트 그리즐리를 잡으면 이런저런 아이템이 나올 터였지만 이곳은 현실이었다.
거대한 화이트 그리즐리가 자기보다 훨씬 작은 인간들이 쓸 법한 아이템들을 가지고 다닐 리 만무했다.
‘하지만 그렇다 할지라도······.’
“이익! 맷집만 세져서! 스트랭스!”
“야! 아파! 아프다고! 마법 걸고 때리는 게 어딨어!”
“여깄지! 여깄어!”
“아! 아! 진짜 아파! 진짜 아프다고! 뼈 맞은 거 같아!”
“나이스! 추가 대미지!”
주먹을 불끈 쥐며 좋아하는 코델리아를 겨우 진정시킨 유더는 다시 화이트 그리즐리를 돌아보았다.
‘건질 게 꼭 장비만 있는 건 아니니까.’
네임드 화이트 그리즐리의 이마에만 박혀 있는 마석이라든지, 곰이니 당연히 가지고 있는 웅담이라든지, 강철보다 단단한 발톱이라든지.
챙겨 갈 물건은 얼마든지 있었다.
“와! 이것 봐! 아이템도 있어!”
“응?”
큰 대자로 뻗은 화이트 그리즐리 곁으로 쪼르르 달려간 코델리아가 수북한 털 사이에서 불쑥 꺼내든 것은 작은 단검이었다.
“뭐야, 그게 거기서 왜 나와.”
“모르지, 이쑤시개로 썼을지도. 오, 생각보다 좋은 건데? 빙결 저주가 걸린 단검이야. 이거에 찔리면 동상 걸리는.”
자주 잊어먹게 되는 사실이었지만 엄연히 마법사인 코델리아였다.
단검에 걸린 마법을 단번에 파악한 그녀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털을 좀 더 뒤지기 시작했다.
“에이, 더 없네.”
“아니, 이미 그거 하나 나온 것부터가 이상하다만.”
어쩌면 이것도 카플란 효과일지도.
어찌되었든 화이트 그리즐리는 이미 잡았고, 이 자리에 계속 머물 수는 없으니 마석과 웅담 등등을 직접 채취해야만 했다.
“으음······.”
바이콘 때는 기사들이 대신 해주었지만 이번에는 아니었다.
코델리아가 미간을 찌푸리며 곤란해 하자 유더가 씩 웃으며 나섰다.
“걱정 마. 나한테 맡기고 물러가서 카플란이나 돌봐줘.”
“그래도 돼?”
“그래도 돼.”
“와, 이제까지 중에 제일 멋있어.”
“반하지는 말고.”
“응, 안 반해.”
바로 고개를 끄덕인 코델리아는 눈을 껌벅이는 유더를 지나 카플란에게 향했고, 유더는 쓰게 웃으며 단검을 꺼내들었다.
그리고 1분 남짓이나 지났을까.
저만치 뒤에 쓰러져 있던 카플란에게 다가간 코델리아가 소리쳤다.
“유더야! 카플란 기절한 거 같아!”
“또?”
“담이 약하네. 우리가 아는 카플란이랑 좀 다른데?”
“뭐··· 아직 초창기니까. 이런 일들을 많이 겪다보니 우리가 아는 용맹무쌍한 악운의 남자가 된 게 아닐까?”
“흠, 그럴지도.”
납득한 코델리아는 카플란의 상태를 좀 더 살핀 뒤 유더를 돌아보았다.
이런 쪽으로 솜씨가 좋은 유더답게 어느새 필요한 것들을 모두 채집한 상태였다.
“유더야, 카플란 다시 깨울까?”
“아니, 그냥 기절한 상태로 두자. 그쪽이 더 편할 것 같으니까.”
“하긴, 아직 갈 길이니 먼데 자꾸 기절하면 카플란한테도 안 좋겠네.”
“그래, 꼭 깨어 있을 필요는 없으니까.”
“응응, 맞아.”
동의한 두 사람은 어제 미리 준비한 나무판에 날개바람의 화살을 부착한 뒤 플라이 마법까지 걸어 비행 나무판 Mk2를 만들었다.
“자, 그럼 계속 가자.”
“괴물을 낚는 어부가 되려무나.”
서로를 보며 화기애애하게 웃은 유더와 코델리아는 카플란을 태운 나무판을 출발시켰다.
두 사람과 나무판과의 거리는 30미터 남짓.
“와, 벌써 온다.”
“어그로 진짜 개쩌네.”
화이트 그리즐리 잡은 지 이제 겨우 30분 남짓이거늘.
즐거운 비명을 지른 두 사람은 앞으로 나섰다.
이번에도 물론 월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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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아나 카플란은 고고학 박사인 동시에 모험가였다.
아르곤 제국 내에서도 이름 높은 대학인 제도 아카데미에 교수로 재직 중인 그는 교수가 되기 전 대학원생 시절부터 이미 비범한 인물이었다.
고대 드워프 왕 아이언클래드의 무덤 발견.
고왕국 루플란의 비석 발굴.
전설로만 여겨지던 마녀들의 나라 타타니아의 실존을 증명한 타타니아의 수정구 발굴.
남들은 평생에 한 번 하기도 힘든 세기의 발견들을 연달아 해낸 그의 업적과 능력을 인정한 황실은 그에게 기사 작위와 함께 제도 아카데미의 종신 교수직을 선사하였고, 인디아나 카플란은 아르곤 제국 역사상 최연소 교수라는 명예를 누릴 수 있었다.
하지만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는 법이었다.
이룩한 일들만 보면 고고학계의 스타이자 제도 아카데미의 보물이어야 할 그였지만, 그는 언제나 배척받고 미움 받는 처지였다.
‘질투.’
차라리 그것뿐이었다면 마음이라도 편했을 텐데.
눈부신 성공을 이룬 자를 향한 패배자들의 시샘이라 생각하며 견뎠을 터인데.
‘이번에도 카플란 혼자서만 무사히 돌아왔다고?’
‘재앙신이 따로 없군. 어째 발굴만 나갔다 하면 사고가 터지니 원.’
‘혹시 일부러가 아닐까?’
‘일부러라니? 설마 카플란이 고의로 사고를 일으킨다는 말인가?’
‘그럴지도 모르지.’
‘어째서?’
‘공을 혼자 차지하고 싶어서?’
말도 안 되는 모함이었다.
증거 따위 조금도 없는 음모론에 불과했다.
공을 혼자 차지하기 위해 함께 조사에 나선 연구원들을 사고로 위장해 살해하거나 부상을 입히다니, 그게 어디 말이나 될법한 이야기란 말인가.
‘어쩌면 그럴지도 몰라.’
‘어떻게 매번 사고가 그렇게 터지지?’
‘그 와중에 혼자 늘 멀쩡하잖아.’
사람들의 말대로였다.
숱한 사고 속에서도 카플란은 늘 건재했다.
다치는 일은 많았지만 그렇다고 정말 큰 부상을 입거나 죽는 일은 없었다.
‘괜찮아요, 다 헛소문이에요. 그냥 우연히 일어난 일들이 어떻게 박사님 탓이겠어요? 박사님도 다치신 적이 여러 번 있잖아요.’
모두가 기피하는 조교 자리에 자원한 바톨이 해준 말이었다.
그 말에 얼마나 구원을 받았던가.
하지만 그런 바톨도 오래가지는 못 하였다.
‘···그만둘게요.’
바톨과 함께한 첫 번째 발굴 작업에서 어김없이 사고가 터졌고, 바톨은 다행히 목숨은 건졌지만 다섯 달이나 병원 침대에 누워있어야 할 정도로 큰 부상을 입었다.
바톨은 카플란을 원망하는 말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전처럼 카플란의 잘못이 아니라고, 그의 탓이 아니라는 말 역시 하지 않았다.
그때부터였다.
카플란은 홀로 다니기 시작했다.
조사를 나설 때도, 발굴 작업을 할 때도 타인과 함께하지 않았다.
언제나, 어디서나.
그저 홀로.
“허억!”
눈을 번쩍 뜬 카플란은 상체를 벌떡 일으키며 숨을 토했다.
혼란스러운 가운데 갑자기 머릿속을 채우는 이미지들이 있었다.
거대한 괴물.
화이트 그리즐리.
금방이라도 자신을 잡아먹을 것처럼 흉포하게 포효하던 놈.
살아있었다.
죽지 않았다.
이번에도 어찌어찌 괴물에게서 도망친 모양이었다.
“하아··· 하··· 다행······.”
거기까지였다.
숨을 몰아쉬던 카플란은 고개를 번쩍 들었다.
오랜만에 생긴 일행에 생각이 미친 탓이었다.
‘유더 군은?! 코델리아 양은?!’
분명 강한 사람들이었다. 화이트 자이언트 베어로부터 자신을 구해준 사람들이었으니까. 천길 낭떠러지에서 떨어졌음에도 무사한 이들이었으니까.
그래서 동행하자는 요청을 받아들였는데.
참으로 오랜만에 타인과 함께 조사에 나선 것이었는데.
‘제발··· 제발!’
“카플란 경?”
목소리가 들려왔다.
맑고 청아하고 아름다운, 마치 천상에서 들려온 것만 같은 그것.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린 카플란은 숨을 삼켰다.
부서지는 햇살을 등진 채 자신을 바라보는 소녀가 너무나 아름다워 자기도 모르게 말했다.
“천사님?”
“천사 아니라 코델리아에요. 저 기억하시죠? 정신이 좀 들어요?”
카플란은 고개를 끄덕였고, 비로소 온전히 깨어날 수 있었다.
“화이트, 화이트 그리즐리 베어는?”
“저랑 유더가 쓰러트렸어요. 그러니 안심하세요. 여긴 안전해요.”
코델리아가 방긋 웃으며 말했다.
마치 그 정도는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이 말이다.
‘그야 월척을 일곱 번이나 낚았으니까.’
이미 와일드 페어리 퀸에게서 칼날부리 협곡에 출몰하는 몬스터들에 대한 정보를 넘겨 받은 유더와 코델리아였다.
개중에 두 사람이 잡지 못 할 괴물은 없었다.
“아아··· 아······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저 때문에 위험에 처하셨는데······.”
“에이, 뭘요. 오히려 카플란 경 덕을 봤죠. 함께 해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코델리아는 진심이었다.
유더에게만이 아니라 코델리아에게도 양심이란 것이 있기는 했으니까.
네임드 몬스터들을 끌어들이는 미끼로 쓴 일이 내심 마음에 걸리는 그녀였다.
하지만 사정을 모르는 카플란에게는 전혀 다른 이야기로 들렸다.
‘아아··· 진정 천사란 말인가······.’
자신의 덕을 보았다니.
함께 해주셔서 감사하다니.
이 얼마 만에 들어보는 이야기란 말인가.
아니, 그 정도가 아니었다. 생각해보니 교수 자리에 오른 이후 처음 듣는 말이었다.
‘어찌, 어찌 사람이 이렇게나 마음이 고울 수 있단 말인가.’
카플란 자신 때문에 위험에 처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자신을 걱정해주는 이 마음 씀씀이라니.
이미 다른 사람들처럼 스스로가 재앙을 몰고 다니는 남자라 생각하게 된 카플란에게 있어 코델리아의 따뜻한 말은 마치 구원과도 같았다.
“천사··· 코델리아 양은 천사가 분명합니다. 카흑.”
카플란이 감동의 눈물을 쏟기 시작했다. 그간의 설움이 한 번에 터진 탓이었다.
“카, 카플란 경?”
“크흐흑 감사합니다.”
카플란이 코델리아의 손을 덥썩 잡으며 오열하자 코델리아는 뻘뻘뻘 식은 땀을 흘리며 당황했다.
‘얘 왜 이래.’
설마 미끼로 쓴 걸 눈치 채고 역공 거는 건가?
당황 때문에 코델리아의 망상회로가 괴랄하게 돌아가고 있을 때 유더는 주변을 살펴보고 있었다.
‘마도 엔디미온의 초입.’
관문처럼 보이는 건물 내부에 들어선 유더는 여기까지 오며 마주한 몬스터들을 하나하나 떠올려 보았다.
‘악마와 연관된 녀석은 없었어.’
와일드 페어리 퀸의 정보는 정확했다.
칼날부리 협곡에 거하는 마물들 중에 직접적으로 악마와 연관된 녀석은 없었다.
‘락토.’
무덤의 수호자와 대비되는 최하급 악마.
놈이 나타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었다.
시간 감각이 뒤틀린 와일드 페어리들의 기준이 아닌, 인간의 기준으로 보아도 말이다.
그렇다면 놈은 어디서 나타난 것일까.
누가 놈을 불러낸 것일까.
레나의 죽음과 악마 소환 사이에 연관점이 있는 것은 아닐까?
‘락토가 나타난 곳은 엔디미온의 지하.’
유더는 혹여 지하로 내려가는 길이 없나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유더!”
“코델리아?”
“찾았어! 카플란 경이 지하로 가는 길을 찾아내셨어!”
목소리를 따라 밖으로 나가니 저만치서 코델리아가 폴짝폴짝 뛰고 있었고, 카플란 경이 시원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과연 카플란.’
길가다 자빠져도 유물을 줍는 남자.
카플란이 찾아냈다면 분명 평범한 지하로가 아닐 터였다.
“이쪽입니다. 신발 끈을 묶다가 우연히 발견했습니다.”
“역시 카플란 경입니다.”
활짝 웃은 유더는 제단 옆에 자리한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을 바라보았다.
단단히 봉인되어 있던 것을 코델리아가 마법으로 연 모양이었다.
“와일드 페어리들에게서 받은 지도에는 나오지 않는 곳이야.”
“조사해볼 가치가 있겠네.”
코델리아의 귓속말에 바로 답한 유더는 다시 카플란을 돌아보았다.
“카플란 경, 바로 내려가 볼까 하는데 괜찮으시겠습니까?”
“네, 괜찮습니다.”
“그럼 바로 출발하죠.”
“예!”
유더도 코델리아와 같았다.
카플란 자신에게 원망의 말을 하기는커녕 계속 함께하자 권유까지 하였다.
이 얼마나 마음씨 고운 선남선녀란 말인가.
“제가 앞장서겠습니다.”
“예, 조심하세요.”
선뜻 나서는 카플란을 앞장세운 유더는 코델리아에게 눈빛을 보냈다.
‘왜 저래? 엄청 하이텐션인 거 같은데?’
‘나도 몰라.’
도리질을 한 코델리아는 어깨까지 으쓱였고, 유더는 고개를 갸웃했다.
‘초창기라 그런가?’
영웅전기2에 나오는 카플란은 그야말로 강철 같은 사내였다.
늘 웃는 상이었지만 얼굴만 그럴 뿐, 진심으로 짓는 미소가 아니었다.
소통이 아닌 벽을 세우기 위한 미소.
일정 선 안으로는 다른 사람을 들이지 않는 철벽의 남자.
그런데 작금의 카플란은 사뭇 달랐다.
유더 자신과 코델리아를 대하는 태도가 살갑기 그지없었다.
‘초창기라 그런가 보네.’
카플란이 등장하는 것은 중반 이후였으니까.
“우리도 빨리 가자.”
“어, 그래.”
적당히 납득한 유더는 코델리아의 재촉을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십여 분.
끝도 없이 이어질 것만 같던 계단이 마침내 끝을 고했다.
거의 수백 미터 이상을 내려온 끝에 도달한 곳은 거대한 지하 사원이었다.
“와······.”
횃불 대용인 마법구의 빛을 크게 키운 코델리아는 감탄을 토했다.
어둠이 너무 짙어 주변 전부를 파악할 수는 없었지만, 당장 눈에 들어오는 것들만 해도 굉장했기 때문이다.
천장 높이는 삼십 미터 남짓.
곳곳에 커다란 기둥이 세워져 있었고, 다시 기둥에는 멋들어진 조각들이 양각되어 있었다.
아마 마도왕국 마젤란에서 믿었다 전해지는 고대 엘프신들의 조각일 터였다.
“마도 엔디미온······.”
카플란이 감탄을 토하며 기둥에 다가섰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이었다.
유더와 코델리아가 거의 동시에 뒤를 돌아보았다.
유더가 인기척을 감지했다.
코델리아는 솜털이 곤두서는 것을 느꼈다.
어둠 속에 숨어 이쪽을 바라보는 시선.
사람이 아니었다.
지상의 마물 역시 아니었다.
붉은 안광이 번쩍였다.
어둠 속에서 소리 없는 발걸음을 내디뎠다.
악마.
아니, 지옥의 마물.
유더는 숨을 멈췄다.
안광의 크기와 높이로 마물의 키와 형태를 유추했다.
키는 4미터 남짓.
안광의 크기로 보아 인간형.
소리 없는 발걸음.
아니, 애당초 발걸음이 아니었다.
뱀.
뱀과 같은 하체.
“나쟈루스.”
인간의 상체와 뱀의 하체를 가진 지옥의 마물.
락토보다 상위종이었다. 더욱이 ‘다리 위의 락토’처럼 꼼수를 써서 잡을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괜찮아, 나쟈루스는 상대할 수 있어.”
유더 자신도, 코델리아도 많이 강해졌다.
둘이 함께면 정면에서 싸우는 것도 가능했다.
“레어만 아니면 돼. 아니, 네임드만 아니면 돼.”
뱀의 머리가 하나이듯, 일반적인 나쟈루스들은 인간의 상체를 하나만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개중에는 상체가 둘 달린 나쟈루스들이 있었다.
유더의 말에 코델리아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잠깐뿐이었다.
“레어만 아니면 된다고?”
“어, 레어만 아니······.”
거기까지였다.
코델리아와 같은 것을 떠올린 유더는 순간 고개를 돌려 기둥 쪽을 바라보았고, 어둠 속의 나쟈루스는 더 이상 기다리지 않았다.
“인간! 찢어죽인다!”
“인간! 잡아먹는다!”
목소리 두 개가 동시에 울렸다.
레어.
그것도 평범한 레어가 아니었다.
네임드임을 증명하는 뿔이 이마 한 가운데 돋아 있었다.
“카플란.”
카플란 효과.
유더의 뇌까림에 응답이라도 하듯 네임드 나쟈루스 카라쿨라가 목소리를 높였다.
유더와 코델리아를 향해 돌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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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7장 - 카플란 효과 #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