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엔딩메이커-82화 (82/473)

< 제27장 - 카플란 효과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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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플란 잘못이 아니야.’

카플란의 능력(?)은 레어나 네임드 등등 희귀한 몬스터들을 끌어들이는 것이지 창조하는 것이 아니었다.

즉, 애당초 필드에 잔뜩 뿌려져 있는 몬스터들 사이에 자리한 레어나 네임드 몬스터들을 불러들이는 것이지 평범한 일반 몬스터를 레어나 네임드로 강화시키는 것이 아니란 소리였다.

‘애당초 있었어.’

네임드 나쟈루스가 애당초 엔디미온의 지하에 위치했기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러니까 카플란 잘못이 아니야!’

하지만, 하지만 그래도.

“온다!”

코델리아가 벼락처럼 외쳤고, 유더는 눈앞의 전투에 집중했다.

등뒤에서 깜짝 놀란 카플란이 무어라 비명을 지르는 것이 들렸다.

“네임드 나쟈루스.”

“카라쿨라. 카라와 쿨라.”

“레어라 한 몸에 둘.”

“네임드라 분열 가능, 특수능력 보유!”

거기까지였다.

카라쿨라가 어둠 속에서 온전히 모습을 드러냈다.

거대한 괴물 뱀의 하체 위에 발가벗은 남자와 여자의 상체가 달려 있었는데, 양쪽 모두 지옥의 마물답게 무척이나 사악한 형상이었다.

“카하-!”

창과 방패를 든 남자 괴물- 쿨라가 입을 크게 벌리며 불을 내뿜었다.

일직선으로 뻗어온 불꽃을 피하기 위해 유더와 코델리아가 양옆으로 갈라서자 지팡이를 들고 있던 여자- 카라가 기다렸다는 듯 주문을 외웠다.

“메타몰포시스!”

파하-!

순간 엄청난 빛이 지하의 어둠을 모조리 집어삼켰다.

카라쿨라의 패턴을 알고 있던 유더와 코델리아는 빛이 터지기 직전에 눈을 감아 시력을 잃는 것은 막았지만, 어찌되었든 순간적으로 카라쿨라를 놓칠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유더는 귀를 기울였다.

소리로 카라쿨라의 움직임을 파악하고자 했다.

“아악! 눈! 내 눈!”

하지만 쉽지 않았다. 등 뒤에서 카플란이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뒹군 탓이었다.

쾅!

굉음이 터졌다.

앞이었다.

동시에 살기가 느껴졌다. 구천구문 삼문을 연 이후 날카롭게 벼려진 기감이 청각과 시각의 공백을 채웠다.

눈을 감고 있지만 어둠 사이로 카라쿨라- 정확히는 둘로 분열한 카라쿨라 중 카라의 실루엣이 그려지는 것 같았다.

츠확-!

날카로운 공격이 허공을 꿰뚫었다.

마치 합을 맞추기라도 한 것처럼 정확한 타이밍에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공격을 피한 유더는 눈을 떴고, 이를 악물었다. 예상한 상황이 눈앞에 펼쳐진 탓이었다.

‘코델리아!’

눈앞에 자리한 것은 코델리아였다.

정확히는 카라가 변신한 코델리아 말이다.

네임드 나쟈루스의 특수 능력인 변신.

그것도 그냥 외형만 흉내 낸 변신이 아니었다. 이마에 돋아난 뿔의 힘으로 상대의 기억과 정신을 엿볼 수 있는 놈들은 진짜보다도 더 진짜 같은 이상적인 모습을 구현할 수 있었다.

‘변신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현장에 있는 연인이나 동료.’

게임에서야 솔직히 그리 대단한 능력이 아니었지만, 현실에서는 다를 것이 분명했다.

“유더.”

코델리아의 목소리였다.

더욱이 눈앞의 코델리아는 젖은 머리칼을 하고 있었다.

폴 페어리들을 꾀어내기 위해 달빛 아래에서 목욕하던 당시의 모습을 구현한 모양이었다.

“으윽.”

유더 자신이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한 코델리아의 모습.

속마음을 들킨 것 같아 부끄러움이 확 하고 밀려들었다.

“유더야, 놀자. 응?”

코델리아 같은 말투를 구사하며 카라가 유더에게 엉겨붙었다.

빈틈투성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접근이었지만 주먹을 내뻗기 직전 유더는 망설이고 말았다.

‘제길!’

코델리아가 아니라는 것을 머리로는 알았다.

하지만 그래도 코델리아의 얼굴과 목소리였다. 때린다는 사실 자체에 강한 거부감이 들었고, 결정적인 순간에 본능적인 망설임이 생겼다.

자연 타점이 어긋나거나 공격 속도가 늦어졌고, 카라는 그 틈을 파고들었다.

“코델리아를 때릴 거야?”

허공을 누비는 마법의 칼날들을 생성한 카라가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고, 유더는 다시 이를 악물었다.

자신을 도륙하기 위해 밀려드는 마법의 칼날들을 질풍이십사보로 피하며 돌진했다.

‘선풍!’

유더를 감싼 일곱 가닥의 선풍이 돌연 앞으로 쏘아져 나가듯 거칠게 불어 마법의 칼날들을 밀어냈다. 순간이나마 유더와 카라 사이의 길을 만들어냈다.

‘질풍!’

유더가 돌진했다. 단숨에 거리를 좁힌 뒤 카라의 복부에 성십자 지르기를 박아 넣으려 했다.

하지만 무리였다.

이번에도 공격 직전에 망설이고 말았다.

“아픈 건 싫어!”

카라가 코델리아의 목소리로 외친 탓에 공격이 어긋났고, 그 정도면 카라에게는 충분했다.

지옥의 마물인 그녀는 유더의 주먹을 피하더니 그대로 지근거리의 유더에게 숨결을 불어넣었다.

“너무 좋아.”

달콤한 말과 함께 독기가 유더의 몸을 파고들었다.

유더는 급히 구천구문의 구결을 외우며 전신의 기운을 활성화 시켰다.

맑고 순수하기로는 천하제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유더의 기운이 독기를 밀어내는데 그치지 않고 아예 정화해버렸다.

“하아!”

유더가 기합과 함께 다시 공격을 펼쳤고, 카라는 급히 뒤로 물러나 유더의 공격을 피했다.

평소의 날카로움을 잃은 유더의 공격으로는 카라를 어찌할 수 없었다.

‘이대로는 안 돼.’

생각 이상으로 난적이었다.

그저 겉모습뿐인데도 자꾸만 반응하고 말았다.

‘코델리아는?’

애당초 몸싸움에 능한 유더 자신도 이렇게 고전할 정도였다. 자연 코델리아가 걱정될 수밖에 없었다.

유더는 전투 중임에도 불구하고 잠시 시선을 옆으로 분산했고, 볼 수 있었다. 아니, 보고 말았다.

“너무 좋아!”

카라가 아닌 진짜 코델리아였다.

꺄하하 신나게 웃은 그녀는 일방적으로 쿨라를 몰아붙이고 있었다.

“더 맞아라! 더 맞아라!”

마법의 폭풍이 몰아쳤다.

열 개도 넘는 마법구들일 쿨라를 마구 때렸고, 코델리아는 주먹을 말아쥐었다. 이 정도는 부족하다는 듯 쿨라에게 돌진하며 소리쳤다.

“죽어라! 유더!”

“야!”

진짜 유더가 소리쳤지만 코델리아는 개의치 않았다.

유더와 똑같이 생겼는데 유더가 아니라니. 이 얼마나 좋단 말인가.

‘힘 조절 안 해도 돼!’

전력으로 때려박는다.

진짜 죽일 각오로 때려도 된다.

“이건 홍유희의 몫!”

스트랭스!

스트랭스!

스마이트!

스마이트!

주문의 메아리 덕분에 근력 강화와 강타 주문이 연속해서 발동했다.

코델리아의 주먹은 무섭도록 정확하게 쿨라의 복부를 강타했고, 그 강렬한 충격에 쿨라는 피까지 토했다.

“이건 노란폭풍의 몫!”

코델리아의 돌려차기가 작렬했다.

그것도 그냥 돌려차기가 아니라 쿨라의 목을 마치 단두대처럼 내려치는 공격이었다.

이번에도 스마이트가 걸렸고 말이다.

쿵!

쿨라의 머리가 바닥을 찍었다. 하지만 코델리아는 멈추지 않았다.

“이건 코델리아의··· 몫!”

쿨라의 등을 짓밟는데, 기분 탓인지 아니면 실제로인지 앞의 두 공격보다는 조금 약한 것 같았다.

“죽어! 죽어! 죽어!”

어찌되었든 코델리아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치명적인 공격을 반복했고, 쿨라는 고통 속에 신음했다.

“야! 너무하잖아!”

유더가 외친 그때였다.

“흐억?!”

코델리아가 내쏜 마법의 구가 무시무시한 속도로 날아왔다. 바닥을 굴러 간신히 공격을 피하자 코델리아가 태연한 얼굴로 말했다.

“아, 몹인줄 아랐네.”

일단은 지금 밟아주고 있는 쿨라와 똑같이 생겼으니까.

코델리아는 다시 쿨라를 공격하는데 집중했고, 유더는 부들부들 떨었으며, 저도 모르게 이 모든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던 카라는 코델리아의 얼굴로 말했다.

“어··· 약혼녀 맞지?”

유더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분연히 일어나 카라에게 덤벼들었다.

하지만 카라가 유더를 상대하지 않았다. 쿨라의 상태가 너무 심각했기 때문이다.

“리유니온!”

카라가 크게 외치자 다시 엄청난 빛이 작렬했고, 유더는 급히 눈을 감아 시력 상실을 막았다.

“아악! 내 눈! 내 눈!”

카플란의 비명을 들으며 유더는 기감을 확장했다. 코델리아가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괜찮아?”

“안 괜찮아.”

“뭐야? 당했어? 분열하면 쟤네 개약하잖아.”

“아니, 당한 건 아니고.”

누구누구 때문에 마음이.

하지만 하고 싶은 말을 꿀꺽 삼킨 유더는 다시 정면을 보았다.

네임드 나쟈루스 카라쿨라.

그런데 아까와는 꽤 달랐다. 멀쩡한 카라와 달리 쿨라는 온 몸이 피투성이었기 때문이다.

“와, 거의 건들지도 못 했네. 싸움 개모태, 진짜.”

코델리아의 말에 다시 부들부들 떨기 시작한 유더였지만 이내 마음을 가라앉혔다. 아니, 불꽃같은 분노를 주먹에 실었다.

“내가 쿨라를 맡는다.”

가증스럽게도 놈들은 여전히 변신 상태였으니까.

뭔가 이상한 말이었지만 유더 자신이라면 망설임 없이 때릴 수 있었다. 하지만 코델리아가 반발했다.

“어? 나보고 코델리아를 때리라고? 그건 좀 곤란한데······.”

“···그럼 그냥 둘 다 유더 때리자.”

“응응, 그게 좋겠다.”

코델리아는 활짝 웃으며 주문의 메아리를 이용해 단숨에 열 개도 넘는 마법구들을 만들어냈고, 유더는 지면을 박찼다.

“질풍!”

그야말로 분노의 질주였다.

지옥의 마물인 나쟈루스는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지만 그간 빠른 속도로 강적들을 격파하다보니 레벨이 훌쩍 오른 유더와 코델리아였다.

더욱이 천무지체와 구천구문의 조합은 실로 사기와 같았다.

츠화악!

질풍이십사보의 진면모는 선풍과 질풍에 있었다.

단순히 바람처럼 빠른 보법이 아니었다. 황금의 선풍이 일어 적의 공격을 차단할 뿐만 아니라 상대의 움직임까지 제어했다.

“죽어!”

쿨라가 불을 뿜었고 카라가 마법의 칼날들을 날려댔다.

하지만 그 어느 것도 유더를 해할 수 없었다. 선풍이 마법의 칼날을 밀어냈고, 질풍이 불꽃의 궤도를 뒤틀었다. 코델리아가 날린 마법구들이 카라쿨라를 더 이상 공격에 집중할 수 없게 만들었다.

‘시간을 끌지 않는다.’

코델리아의 말처럼 분열하면 약해지는 카라와 쿨라였다.

하지만 지금은 합친 상태에서도 약했다. 쿨라의 부상이 극심한 탓이었다.

합체를 한 것도, 근접전 대신 원거리 공격을 퍼붓는 것도 전부 쿨라가 회복할 시간을 벌기 위함이었다.

그러니 시간을 주지 않는다.

‘퍼붓는 것은 최강의 일격.’

흑룡출수.

아니었다.

단순한 흑룡출수만으로는 부족했다.

“유더!”

코델리아가 외쳤고, 유더가 바람을 읽었다.

머리를 노리고 날아드는 카라의 마법칼날을 고개를 까딱이는 것만으로 가뿐히 피하며 허공을, 바람을 밟았다. 그대로 미끄러지듯 카라쿨라를 향해 도약하며 왼손에 황금빛 소용돌이를 만들었다.

쿠호오!

바람이 쿨라를 잡아당겼다.

카라가 유더를 치려했지만 코델리아가 바로 반응했다.

“마비의 마안이여!”

프로스트 앤빌의 백사가 가지고 있던 힘.

코델리아의 두 눈에서 푸른 안광이 매섭게 일자 카라 뿐만 아니라 쿨라의 움직임마저 순간 봉쇄되었다.

“지금!”

유더가 주먹을 당겼다.

성투기를 주먹에 집중시켰다.

상대는 지옥의 마물.

그러니 성속성을 가진 성십자수호단의 기술은 놈들에게 독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성십자 지르기로는 부족했다.

위력이 약했다.

그러니 힘을 더한다.

구천구문의 구결을 응용해 성십자 지르기를 강화시킨다!

구천구문九天九門, 개改.

흑룡십자격黑龍十字擊!

황금빛 성투기가 칠흑으로 물들었다. 내뻗은 주먹으로부터 거대한 칠흑의 십자가가 방출되어 카라와 쿨라를 짓눌렀다.

콰드득!

지면이 부서졌다. 거대한 뱀의 하체가 단숨에 짓눌려 버렸다.

그리고 마지막.

아직 한 방이 남아 있었다.

칠흑의 십자가가 방출된 반동을 이용해 허공에서 회전한 유더가 벼락처럼 쏟아지며 일퇴를 펼쳤다.

흑룡의 기운이 실린 뒤꿈치가 쿨라의 머리를 박살냈다.

쾅!

변신이 풀렸다. 쿨라가 죽는 순간 몸이 이어져 있던 카라 역시 명을 달리하였고, 지옥의 마물이 죽자 마인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주변의 대기가 일순 진동했다.

“후우.”

긴 숨을 토한 유더는 서서히 재로 화해가는 카라쿨라를 내려다보았다.

유더의 가슴께에 새하얀 빛의 고리가 연속해서 떠올랐다.

그리고 코델리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와, 신기술 쩐다. 새로 만든 거야?”

쪼르르 달려오더니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물었다.

진짜 코델리아.

가짜가 아닌 진짜.

“하아.”

“응? 왜 한숨을 쉬고 그래? 잘 잡아놓고.”

고개를 갸웃갸웃하며 묻는데, 그 모습이 또 귀여웠다.

“···중증이군.”

“응? 뭐가? 독이라도 중독 됐어? 리커버리 걸어줄까?”

“아니, 아무 것도.”

“뭐가 아니야. 하고 싶은 말 있으면 해. 싸움 개못한다고 해서 삐졌어?”

코델리아의 물음에 유더는 입을 한 번 꾹 다물더니 이내 뒷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아니, 그.”

“그 뭐.”

“너무 그······.”

“아! 알았다! 내가 너무 망설임 없이 때렸다고 삐진 거구나? 그치? 그렇지?”

“흠흠.”

유더의 헛기침에 코델리아는 까르르 웃더니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그치만 너무 티가 났는걸.”

“티가 나다니?”

“가짜라는 게. 그, 뭐랄까. 본능적으로 이건 유더가 아니야! 라는 걸 알 수 있다고 해야 하나. 냄새도 다르고.”

“냄새?”

“어, 너랑 다른 냄새 나더라고.”

코델리아의 설명에 유더는 미간을 찌푸렸다.

본능적인 직감과 냄새라니.

참으로 코델리아 다운 이야기이기는 했다.

“과연, 진짜 짐승인가.”

“뒤진다?”

코델리아가 으르렁 거리자 유더는 흠흠 헛기침을 토했다. 이러나저러나 설명 듣고 마음이 좀 풀린 탓이었다.

“그나저나 넌 진짜 건들지도 못 했네. 귀엽기도 해라. 누나 얼굴이니까 아무 것도 못하겠어요?”

“나야 신사니까.”

“지랄은.”

욕지거리를 토하는 코델리아였지만 활짝 웃는 얼굴이었다. 이러나저러나 유더의 행동이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어찌되었든 잡았네.”

“잡았지. 우리 정말 강해진 거 같아.”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여기까지 오면서 격파해온 적들은 죄다 유더나 코델리아보다 레벨이 훨씬 높았으니까.

덕분에 유더와 코델리아는 유례가 없을 정도로 빠르게 강해질 수 있었다.

“그런데 유더야. 앞으로도 카플란이랑 계속 같이 가는 거야?”

코델리아가 저만치 기둥 아래 기절해 있는 카플란을 보며 작게 말하자 유더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야지. 너도 알겠지만 카플란의 능력은 네임드 몬스터를 만드는 게 아니야. 이미 있는 놈들을 끌어들이는 거지. 아마 카플란 없이 왔어도 네임드 나쟈루스와 싸웠을 거야.”

“음···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요즘 들어 부쩍 생각 자체를 안 하는 것 같다만?”

“유더위키가 있으니까.”

가슴을 활짝 펴며 당당히 말한 코델리아는 드랍 아이템이라 할 수 있을 뿔만 빼고 완전히 재로 변한 카라쿨라를 돌아보며 말을 이었다.

“그럼 계속 같이 가는 거지?”

“그래야지. 어차피 레어 몹들 만나는 상황이면 카플란의 발견 능력을 이용하는 편이 훨씬 이득이야.”

“다행이다.”

“응?”

“아니, 두고 간다고 하면 카플란이 많이 괴로워 할 거 같았거든.”

“어쩌면 데려가는 쪽이 더 괴로울지도 몰라.”

락토에 이어 나쟈루스가 나온 상황이었다.

엔디미온 지하에 얼마나 더 많은 악마나 마물들이 숨어 있을지 알 수 없었다.

“뭐··· 그건 가면서 생각해보자. 레나도 구해야 하고. 애당초 카플란 역시 야생의 땅까지 오면서 나름 각오를 했을 테니까.”

“그래.”

고개를 끄덕인 유더는 카라쿨라가 드랍한 나쟈루스의 뿔을 챙겼다.

가공 여부에 따라 타인의 기억을 엿볼 수도 있는 훌륭한 물건이었다.

‘고생한 보람이 있긴 하네.’

경험치도 쏠쏠하고.

씩 웃은 유더가 코델리아에게 말했다.

“일단 카플란 깨우고 이동하자. 싸우는 소리를 듣고 오는 놈들이 있을지도 모르니.”

“옛, 서!”

군인처럼 경례도 붙인 코델리아가 카플란이 있는 쪽으로 쪼르르 달려갔고,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유더는 카라쿨라가 튀어나왔던 어둠 너머를 바라보았다.

락토와 네임드 나쟈루스 카라쿨라.

놈들이 어째서 이곳에 자리하고 있는 것일까.

누가 놈들을 불러낸 것일까.

‘레나.’

엔디미온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영웅전기1편의 영웅.

유더는 다시 코델리아 쪽으로 돌아섰다. 끙끙 거리며 카플란을 잡아당기는 그녀를 돕기 위해 발걸음을 내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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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시각 서로 다른 장소.

유더와 코델리아가 기절한 카플란을 데리고 이동하고 있는 그때 게일과 아델리아는 고운눈바람 부족의 마을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평소와는 조금 포지션이 달라진 두 사람이었다.

“흠흠, 불편하진 않으신지요.”

“괜찮아요. 게일 공자는요?”

“저도 괜찮습니다.”

붉은질풍이 내어준 숫사슴은 한 마리였으니까.

앞에 앉은 게일은 뻣뻣하게 굳은 상태로 앞만 보았고, 그런 게일의 등에 얼굴을 묻은 아델리아는 입술을 움츠리며 생각했다.

‘이건 어쩔 수 없는 일이야.’

야생의 땅은 말도 못 하게 추었으니까. 서로의 체온에 의지해야만 했다.

더욱이 사슴에서 떨어지면 낭패이지 않은가.

‘그래, 그거야. 충분히 합리적이고 타당한 이유지.’

스스로를 납득시킨 아델리아는 다시 입술을 움츠렸고, 조금 더 세게 게일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그리고 또 다른 장소.

국경 아래.

세일룬 왕국의 영역.

아직 유더와 코델리아는 물론이고 게일과 아델리아까지 국경을 넘었다는 사실을 모르는 한 남자가 선 장소.

“남자들 몸보신에는 이것만한 게 없습니다. 이거 한 병이면 아주 그냥······.”

몸까지 비비 꼬아가며 열정적인 설명을 잇는 상인의 말에 체이스 백작은 눈을 가늘게 떴다.

눈앞에 자리한 것은 세일룬 왕국 북쪽에서만 잡힌다는 대왕장어를 가공해 만든 특제 포션.

“이건 비밀입니다만, 제 처남이 이걸 먹고 글쎄 쌍둥이를······.”

“흠.”

체이스 백작의 눈이 더욱 가늘어지자 신나게 떠들던 상인이 입을 꾹 다물었다.

장사혼에 열심히 떠들긴 했지만 새삼 체이스 백작의 존재가 무섭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마법사라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훤칠한 키와 잘 단련된 몸.

사람 한 둘 정도는 눈빛만으로도 죽일 수 있을 것 같은 무시무시한 눈과 진지한 표정.

“···주게.”

“네?”

“두 개 주게.”

“두 개요?”

“두 개.”

하나가 아닌 둘.

하나면 부족할 수도 있었으니까.

“감사합니다! 바로 포장해드리겠습니다!”

“흠.”

포장을 시작한 상인에게 고개를 끄덕여준 체이스 백작은 잠시 고민에 빠졌다.

유더와 코델리아뿐만 아니라 게일과 아델리아의 행방에 대한 고민도 있었지만, 지금 당장 주를 차지하는 것은 다른 것이었다.

‘가방을 새로 구해야겠군.’

어느새 가져온 가방이 꽉 차버리고 말았으니까.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 체이스 백작은 진열대에 놓인 다른 물건들에 시선을 돌렸다.

새로 구한 가방에 겨우 약병 두 개만 달랑 넣을 수는 없었으니 말이다.

“저건 뭔가?”

“아, 이 물건으로 말씀 드리면······.”

상인의 설명이 다시 이어졌고, 진지한 자세로 경청하는 체이스 백작의 얼굴엔 작지만 흐뭇한 미소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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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7장 - 카플란 효과 #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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