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30장 - 환장의 커플 >
제30장 - 환장의 커플
멸망의 날.
강대한 지옥의 데몬프린스와의 정면 대결에서도 무너지지 않았던 마도왕국 마젤란의 수도- 마도 엔디미온 최후의 날.
콰가가가가가가-!
처음에는 진동이었다.
이내 엄청난 굉음이 울렸고, 주변 일대가- 아니, 지하 전체가 진감했다.
콰드득! 콰드득!
평범한 지진이 아니었다.
지면이 수십, 수백 가닥으로 찢겨나갔다. 거대한 균열이 번져나가며 오랜 옛날 하이 엘프들이 세운 아름답고 우아한 건물들을 무너트렸다.
와르르-! 와르르-!
수백 채가 넘는 건물들이 마치 도미노처럼 붕괴되었다.
지면의 울림은 멈추기는커녕 점점 더 커졌고, 천장에서 무수히 많은 잔해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용맥.
야생의 땅의 지하에 흐르는 위대한 힘의 흐름.
야생신들의 힘의 근원이자, 강력한 별의 힘.
그중 일부가 폭주했다.
과거 하이 엘프들이 도시의 에너지원으로 삼았던 바로 그 용맥이 칼라마이트의 창에 자극받아 폭발했다.
콰가가가가가!
찢어진 지면 사이로 불길이 치솟았다.
그리고 빛이 있었다.
무시무시한 힘이 천장까지 치솟으며 가로 놓인 모든 것을 파괴했다.
이 모든 일이 일어나는데 걸린 시간은 겨우 몇 초.
“으아아아!”
“크워어!”
“카아악!”
지옥의 마물들이 저마다 비명을 질러댔다.
반다이젤조차 무시무시한 자연재해 속에서 허우적 거릴 뿐 유더와 코델리아를 돌아보지 못했다.
하지만 유더는 아니었다.
눈을 번쩍 뜨더니 코델리아의 양 어깨를 붙잡으며 소리쳤다.
“야! 너 미쳤지!”
긴급상황이지만, 정말 엄청나게 위태로운 위기상황이었지만 그래도 한 마디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코델리아는 그런 유더에게 받아쳤다.
“나 믿는다며!”
“씨발! 믿는 건 믿는 거고!”
“헉! 욕했어! 너무해!”
“넌 맨날 하잖아!”
여기까지였다.
더 이상 다툴 시간도 없었다.
바닥이 뒤흔들리다 못해 무너져 꺼지기 시작했고, 천장도 붕괴하고 있었다.
바닥과 충돌해 부서진 잔해가 사방으로 비산했다.
쿵! 쿵! 쿵!
“씨발.”
유더가 다시 말했다.
감탄사가 아닌 진심에서 우러난 그것이었지만, 코델리아는 개의치 않았다. 돌연 유더를 꽉 끌어안으며 소리쳤다.
“나도 너 믿어!”
그리고 발동시키는 것은 방어막.
칼라마이트의 창을 만들고 남은 힘을 총동원하여 체이스 백작의 반지를 가동시키자 반투명한 푸른빛의 실드가 끌어안은 두 사람을 뒤덮었다.
“씨이발.”
유더는 다시 욕지거리를 흘린 뒤 코델리아를 안아들었다.
소위 말하는 공주님 안기로 한 뒤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믿을게.”
굉음 사이로 코델리아의 목소리가 작게 들렸다. 유더는 무어라 응답하는 대신 바로 뛰어올랐다.
이게 대체 무슨 미친 짓인지는 모르겠지만, 하지 않으면 죽을 뿐이었다.
“우오오오오!”
무너지는 바닥을 박차 뛰어오른다.
쏟아져 내리는 잔해들을 포착하고, 순식간에 경로를 계산한다.
유더는 숨을 멈췄다.
선풍과 질풍을 일으키며 날아올랐다!
쾅! 쾅! 쾅!
귀가 멎을 것처럼 굉음이 이어졌다.
그 속에서 유더는 계속해서 고함을 질렀다. 떨어지는 잔해들을 박차며 상승하고 또 상승했다.
쿵!
잔해가 실드를 때렸다.
실드 덕분에 다치지는 않았지만 덕분에 상승하던 유더가 추락했다.
하지만 잠깐이었다.
유더가 허공에서 몸을 회전시키며 거센 바람을 일으키니 순간이지만 추락이 멎었다.
유더의 목을 끌어안고 있던 코델리아가 플라이 마법으로 다시 한 번 유더에게 추진력을 부여했다.
“가즈아!”
코델리아가 외쳤고 유더가 다시 몸을 회전시켰다.
돌개바람이 되어 잔해 사이를 돌파했다.
콰가가가가가-!
선풍이 잔해를 날려버렸다.
자잘한 잔해들은 실드로 밀쳐버렸다.
조금이라도 더 위로.
잔해를 피하며,
쏟아지는 천장을 피해-
콰가가!
무리였다.
이번에 떨어지는 천장 잔해는 너무 컸다.
마치 하늘을 뒤덮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유더는 포기하지 않았다.
코델리아를 안은 두 팔에 힘을 주며 소리쳤다.
“코델리아!”
“오케이!”
유더가 실드를 해제했다.
코델리아가 마지막 여력을 긁어모아 만든 칼라마이트의 창을 하늘을 향해 집어던졌다.
“스파이럴!”
회전을 가미한 칼라마이트의 창이 천장을 꿰뚫었다. 완전히 부수진 못 했지만 구멍을 뚫는데 성공했다.
그 사이로 유더가 돌진했다.
직경이 2미터나 됨직한 구멍을 지나 공중제비를 돌았고, 커다란 천장 잔해를 발판삼아 다시 한 번 도약했다.
“우오오!”
“하늘이다!”
코델리아의 말대로였다.
시리도록 푸른 하늘이 유더와 코델리아를 반겨주었다.
부서져 쏟아지는 햇살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하지만 그것은 하늘의 광경.
높이 치솟은 유더는 지면을 내려다보았고, 저도 모르게 수많은 이들에게 사과했다.
직경 수백미터에 달할 거대한 크레이터가 생겨났다.
폭삭 꺼진 땅 위에 수백, 수천 조각으로 부서진 잔해들이 엉망진창으로 쌓여 있었다.
“미친.”
“데헷.”
마지막은 코델리아였다. 자기도 염치가 있는지 어색한 표정이었지만, 그래도 혀를 빼꼼 내밀고 있었다.
그리고 지상에 안착.
유더는 만감이 뒤섞인 얼굴로 코델리아를 보았고, 코델리아는 입술을 한 번 움츠리더니 무어라 변명을 하려고 했다.
하지만 아직이었다.
콰가가-
처음에는 제법 고요했다.
콰가가가가각-!
하지만 조금씩 커졌다.
이미 무너진 지하도시에서 나는 소리가 아니었다.
균열이 더 크게 번져나가고 있었다.
중앙의 지하도시만이 아니라 엔디미온 전체를 붕괴시키겠다는 듯 뻗어나간 균열은 급기야는 칼날부리 협곡을 타고 오르기 시작했다.
“어······.”
코델리아가 멍하니 말한 그 순간.
콰가가가가가가강!
두 번째 대붕괴가 시작되었다.
칼날부리 협곡의 일부가 무너지며 눈사태가 일었고, 직경 수백 미터를 넘어 수킬로미터에 달하는 지역에 걸쳐 연쇄적인 폭발과 붕괴가 연이어졌다.
쿵! 쿵! 쿵!
쾅! 쾅! 쾅!
의외로 굉음이 이어진 시간 자체는 짧았다.
모두 다 같이 한 번에 와장창 박살이 났기 때문이다.
쿠쿠-
멀리서 들려온 마지막 소리.
이어 거짓말 같은 고요가 이어졌다.
엔디미온을 감싸고 있던 협곡이 반쯤 무너져 바람의 방향이 바뀌었고, 불어온 바람이 유더와 코델리아를 찰싹찰싹 때렸다.
그리고 다시 몇 초.
유더는 코델리아를 바닥에 내려놓았고, 제발로 서게 된 코델리아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이내 어색하게 웃으며 손가락으로 브이 자를 그렸다.
“무, 문제 해결!”
아무튼 지옥의 문을 닫았으니까.
목적은 달성했으니까.
유더는 그런 코델리아를 가만히 바라보았고, 행동에 나섰다.
양 손을 번쩍 들어 코델리아의 뺨을 꼬집었다.
“문제 해결? 문제 해결? 문제 해겨어어얼?”
말랑말랑한 뺨을 옆으로 쭉 당기니 저도 모르게 눈물까지 보인 코델리아가 바로 반격에 나섰다.
“해겨하은거 맛즈나!”
기묘한 발음을 흘리며 코델리아가 유더의 양 뺨을 똑같이 꼬집었다.
“해겨어어어? 이게에 해겨어어어?!”
“아프아! 아프아! 그마안!”
유더의 손에 힘이 들어가자 코델리아가 거의 울 것처럼 소리쳤지만 사안이 사안이었다.
유더가 손을 놓지 않자 코델리아도 더 세게 유더를 꼬집었다.
“빠리 놔아!”
“너으가 먼즈어 놔아!”
서로가 그렇게 뺨을 꼬집으며 상호확증적파괴를 이어가던 순간이었다.
파파파파파파파-!
유더와 코델리아의 가슴께에 하얀 빛의 고리가 연속해서 생겨났다.
너무 빨리 밀려들어서 세기도 힘들었는데, 어림 세어도 열 개 가까이 되는 것 같았다.
“레베럽! 레베럽! 내 덕분!”
엔디미온에 침입한 지옥의 마물들을 싸그리 몰살시켰으니까.
직접 격파가 아니라 간접 격파인 터라 경험치가 경감되었지만, 숫자가 워낙 많다보니 레벨 업을 잔뜩 할 수밖에 없었다.
“빠리 놔아! 빠리이!”
“큿.”
코델리아의 주장에 유더는 칫소리를 내며 먼저 손을 놓았다.
그러자 코델리아도 바로 유더의 뺨에서 손을 떼었는데,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라기 보다는 자기 뺨을 감싸기 위함이었다.
“아흑! 진짜 아파. 너무해. 나빴어.”
아름다운 소녀가 발갛게 달아오른 뺨을 감싸며 울먹이는 모습은 유더를 천하의 나쁜 놈으로 만들기에 충분했지만 이 자리에 있는 것은 유더와 코델리아 둘 뿐이었다.
유더는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하렴.”
“흑흑. 믿는다고 했으면서.”
코델리아가 다시 우는 시늉을 할 때였다.
쾅!
굉음과 함께 잔해를 부수고 레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더욱이 혼자가 아니었다. 카플란과 벨라지오 루크 역시 다 죽어가는 얼굴로나마 지상에 머리를 내밀었다.
“유더? 코델리아?”
“레나! 무사해서 다행이에요!”
코델리아가 바로 레나에게 쪼르르 달려가며 소리쳤고, 유더는 한숨을 토한 뒤 발걸음을 떼었다.
레나도 레나였지만, 카플란과 벨라지오 루크 역시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몇 걸음.
유더가 예상한 일이 일어났다.
“에, 엔디미온이! 마도왕국 마젤란의 수도 엔디미온이······!”
카플란은 고고학자였고, 이 자리에 있는 누구보다도 더 엔디미온의 가치에 대해 잘 알고 있었으니까.
“커흑··· 컥······.”
뒷목을 잡고 비틀거리던 카플란이 게거품을 물며 쓰러졌고, 유더는 그런 그를 이해했다.
천 년이 넘는 세월 동안 그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던 고대의 유적이- 강대한 데몬프린스와의 싸움에서도 살아남았던 하이 엘프들의 도시가 한 순간에 흔적도 찾기 힘들 정도로 파괴되었으니 그야말로 비극- 아니, 참극이라 할 만 했다.
“헥헥. 왈왈!”
벨라지오 루크가 기절한 카플란의 뺨을 핡다가 소리쳤다.
코델리아와 달리 짐승말을 알아들을 수 없는 유더였지만, 대강 카플란은 괜찮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이 와중에 레나를 와락 끌어안은 코델리아는 활짝 웃으며 물었다.
“레나! 지옥의 문은 사라진 거죠?”
“네? 어··· 네. 사라졌을 거예요. 아마··· 아니, 절대로······.”
엔디미온 자체가 사라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으니까.
대파괴가 지나간 주변 일대를 멍한 얼굴로 바라보는 레나의 얼굴은 넋나간 사람의 그것이었지만, 코델리아는 대답 그 자체에 만족했다.
유더 쪽으로 돌아서더니 다시 한 번 브이 자를 그리며 환하게 웃었다.
“역시 문제 해결! 아븟?!”
마지막에 묘한 소리는 유더가 재차 코델리아의 뺨을 꼬집었기 때문이다.
“아프아!”
“아프라고 꼬집는 거란다.”
사실 이번에는 살짝 다른 감정도 있었지만.
‘말캉말캉하네.’
꼬집혀서 반항하는 것도 귀엽고.
유더가 그렇게 약간의 사심을 채우며 코델리아를 징벌할 때였다.
“으아아아아아아!”
멀리서 무시무시한 포효가 들려왔다.
아니, 그것은 분명 성난 노성이었다.
콰가가가강!
잔해를 뚫고 거대한 악마가 날아올랐다.
반다이젤.
락토들을 지배하는 그가 잔해더미를 뚫고 솟구치더니 거대한 박쥐 날개를 활짝 펼쳤다.
역시 이명을 가진 악마.
다른 지옥의 마물들이 몰살당하는 와중에도 목숨을 보전한 그였다.
“반다이젤······.”
레나의 얼굴에 긴장이 번졌다.
하지만 유더와 코델리아는 아니었다.
코델리아는 뺨이 꼬집힌 채 눈동자를 굴렸고, 유더는 순순히 코델리아의 뺨을 놓아준 뒤 따라서 돌아섰다.
반다이젤.
미친 듯이 분노하며 힘을 마구 방출하는 악마.
“피투성이야.”
“많이 다쳤군.”
“머리에서 피나.”
“잘 보면 뿔도 좀 부서졌네.”
덩치가 큰 만큼 잔해를 피하는 게 쉽지 않았던 반다이젤이었다.
보아하니 아예 잔해에 깔려 생매장 비슷한 것도 당한 느낌이었다.
“저기 유더야. 우리 이런 상황 전에 본 적 있지 않아?”
“전에 봤지.”
“그치? 그때랑 똑같지?”
스테이지 자체가 털려서 반쯤 죽어가는 스테이지 보스.
유더와 코델리아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그리고 멀리서 마침내 유더와 코델리아를 포착한 반다이젤이 재차 노성을 터트렸다.
“으아아아! 네놈들의 피는 무슨 색이냐!”
도시 자체를 붕괴시키다니.
고대의 하이 엘프들이 이 사실을 알면 피눈물을 흘리리라!
하지만 이미 그런 쪽으로는 생각하지 않는 유더와 코델리아였다.
코델리아는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저것도 똑같네.”
“지옥에서 대사 교육하나 봐.”
“그러게. 패턴 좀 늘리지.”
언제나처럼 아무 말 대잔치를 하던 유더와 코델리아는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서로의 허리춤을 뒤졌고, 이내 물약병을 한 병씩 꺼내들었다.
그리고 그대로 꿀꺽꿀꺽.
반다이젤이 다시 노성을 터트렸다.
레나는 긴장과 당혹감이 뒤섞인 얼굴로 유더와 코델리아, 반다이젤을 번갈아 보았고, 단번에 물약병을 비운 유더와 코델리아는 동시에 돌아섰다.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똑같은 타이밍에 물약병을 던진 뒤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보스전을 시작해 볼까?”
“이번에는 페이즈 3는 아니고··· 페이즈2 정도 되겠네.”
반다이젤의 상태가 이전에 상대한 중급 마인보다는 좋았으니까.
썩어도 준치라고 역시 이명을 가진 악마다웠다.
하지만 코델리아는 걱정하지 않았다.
송곳니를 반짝이며 말했다.
“괜찮아. 우리에겐 레나가 있으니까.”
“쩔 좀 받을까?”
“받을 때 됐지.”
막상 쩔을 해줄 레나는 무슨 말인지 몰라 눈을 깜박이는 그때.
유더와 코델리아는 다시 서로를 돌아보았다. 눈빛을 교환했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동시에 지면을 박차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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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30장 - 환장의 커플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