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30장 - 환장의 커플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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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다이젤은 강했다.
비록 작위가 없다하나 그는 이명을 가진 악마였다.
“육체능력 막강.”
“마법 능력 약함.”
“그래도 마방은 강함.”
“진명은 알려지지 않았음.”
말을 주고받는 사이 저 멀리서 반다이젤이 주먹을 불끈 쥐며 저주의 말을 입에 담았다.
“네놈들을 지옥에 끌고 가겠다. 죽음이 얼마나 자비로운 일인지 깨닫게 해주마!”
악마의 말에는 힘이 있었다.
반다이젤의 선언은 맹세와도 같으니, 놈에게 패하면 정말 유더와 코델리아는 지옥에 끌려가 온갖 고초를 겪게 될 터였다.
하지만 유더와 코델리아는 두려워하는 대신 끌끌끌 혀를 찼다.
“역시 반다이젤. 어휘력이 딸리네.”
“육체파잖아.”
다행히(?) 두 사람의 목소리는 반다이젤에게까지는 닿지 않았다.
반다이젤은 다시 무어라 저주의 말을 입에 담았고, 유더는 코델리아를 돌아보며 말했다.
“코델리아, 레벨 50 넘었지?”
“응? 어. 넘었겠지?”
본래 레벨이 40초반 쯤이었는데 이번에 10 가까이 올랐으니까.
“그럼 이렇게 하자.”
유더가 빠르게 작전을 설명하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듣던 코델리아의 얼굴에 이내 다시 밝은 미소가 번졌다.
“와, 진짜 사악하다.”
“그래서 좋지?”
“응, 너무 좋아.”
배시시 웃는 코델리아에게 마주 웃어 보인 유더는 다시 반다이젤 쪽으로 돌아서며 말했다.
“부탁할게.”
“응. 조심하고.”
시간을 끌 사람이 필요했으니까.
심호흡을 크게 한 유더는 다시 구천구문의 기운을 일으켜 흑풍도래를 발동시켰다.
그대로 검은 질풍이 되어 반다이젤을 향해 돌진했다.
쿠호오오오오!
거친 바람이 불었다.
전신을 차갑게 에워오는 바람 속에서 칠흑의 바람이 황금빛 선풍과 함께 춤추었다.
코델리아는 그 모습을 오래 바라보지 않았다. 그대로 반전해 레나를 향해 달렸다.
“레나!”
“코델리아! 유더를 도와야 해요!”
카플란과 벨라지오 루크를 안전한 곳으로 피신시킨 레나가 코델리아를 향해 마주 달리며 소리쳤다.
코델리아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도와야죠. 그러니 레나, 이야기를 들어줘요, 작전이 있어요.”
쾅!
바로 그 순간 굉음이 터졌다.
반다이젤이 거대한 워해머로 지면을 부수는 소리였다.
순간 움찔한 코델리아였지만 뒤는 돌아보지 않았다.
유더였다.
천무지체를 가진 무의 화신이었다.
그러니 괜찮겠지.
아니, 괜찮을 거다.
지금 중요한 것은 유더가 벌어준 시간을 1초라도 알차게 쓰는 것이었다.
“레나!”
코델리아가 레나의 손목을 붙잡았다. 바로 유더 쪽으로 달려가려던 레나는 멈칫하며 코델리아를 돌아보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레나는 지금 정상이 아니야.’
유더가 한 말이었다.
‘천사의 힘은 쓰지 못 해.’
영웅전기1편에서부터 이미 천사의 힘을 사용한 레나였다.
즉, 레나의 전투력 대부분은 천사의 힘에서 나온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레나였다.
천사이기 이전에 강력한 대마법사인 그녀였다.
‘그러니 할 수 있을 거야.’
영웅전기1편에서 레나가 사용했던 온갖 마법들.
유더와 코델리아는 모두 기억하고 있었고, 유더는 그 중에서 이번 전투에 필요한 것들을 알려주었다.
“할 수 있죠?”
쾅! 쾅! 쾅!
연달아 터지는 굉음 속에서 코델리아가 물었다.
레나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할 수 있어요.”
“그럼 시작해요!”
콰가강!
멀리서 지면이 붕괴하는 소리가 들렸다.
코델리아는 이를 악물며 돌아보았고, 안도했다. 검은 질풍은 여전히 황금빛 선풍과 함께 아름다운 궤적을 그리고 있었다.
“하아.”
저도 모르게 안도의 숨까지 토한 코델리아는 바로 의식을 전환했다. 마녀화를 발동시킴과 동시에 주문을 외워 마녀의 주문서를 활성화했다.
“오픈 더 북!”
참으로 직관적인 명령에 마녀의 주문서가 발동했다.
작아진 상태로 코델리아의 허리춤에 매달려 있던 그것이 단번에 몇 배나 커져 코델리아의 상체보다 더 큰 책이 되더니 허공에 둥실 떠올라 펼쳐졌다.
“파인드 스펠!”
코델리아의 손길이 닿자 주문서의 페이지가 빠르게 넘어가기 시작했다.
읽고자 하는 것은 현재 열 수 있는 마지막 페이지.
레벨이 50을 넘음에 따라 새로이 개방된 주문들.
코델리아가 빠르게 주문을 읊조렸다. 마녀의 주문서를 통해 직접 머릿속에 새로운 마법을 주입하였다.
그리고 그 순간 코델리아가 지목한 곳으로 달려간 레나가 마법을 발동했다.
“크리에이트 골렘!”
골렘 생성의 주문.
선조회귀를 통해 성천사의 힘을 손에 넣은 뒤로는 잘 사용하지 않아 모르는 이들이 많았지만 사실 레나의 전문 분야는 골렘 제조를 비롯한 마법기물의 제작 쪽이었다.
“일어나렴! 일어나 싸우렴 나의 아이야!”
탑에 몰려드는 지옥의 마물들을 홀로 상대하느라 이미 많은 마력을 소모한 레나였다.
하지만 그녀는 망설이지 않았다.
남은 마력을 모조리 쏟아부어 코델리아의 작전을 현실화하였다.
“쿠어어어어-!”
지면이 솟구쳐 올랐다.
그렇게 보였다.
코델리아가 일으킨 대붕괴로 무너져 내렸던 지반이 형태를 갖추어 몸을 일으켜 세웠다.
수많은 잔해들로 이루어진 거대한 스톤 골렘이었다.
“우오오!”
거대하고 거대했다. 30미터를 훌쩍 넘어 어쩌면 40- 아니, 50미터에 육박할지도 모를 거대함이었다.
더욱이 키만 큰 것이 아니었다. 온몸이 바위로 된 그것은 갑옷으로 전신을 감싼 육중한 중갑 기사를 연상케 했다.
쿵!
한 걸음을 내딛자 지면이 요동쳤다.
유더를 박살내기 위해 워해머를 들어 올렸던 반다이젤은 반사적으로 돌아섰고, 유더는 감탄 섞인 웃음을 터트렸다.
“크롸라라-!”
골렘이 포효하며 반다이젤에게 돌진했다.
덩치가 워낙 크기 때문인지 느려터진 돌진이었지만 덩치가 덩치였다.
어마어마한 압박감이 반다이젤을 옭아맸다.
“어림없다!”
공포를 짓누르듯 일갈한 반다이젤은 워해머를 고쳐 잡은 뒤 골렘을 향해 마주 돌진했다. 느려터진 놈의 머리를 박살내기 위함이었다.
그야말로 괴수대결전.
하지만 유더는 지켜보지 않았다. 억지로 시선을 돌려 코델리아의 위치를 확인하였다. 마음이 통했는지 코델리아 역시 유더 쪽을 돌아보았다.
‘준비 됐어?’
‘준비 됐어!’
눈빛을 교환한 직후 유더가 다시 반다이젤을 보았다.
이러나저러나 역시 이명을 가진 악마.
높이 뛰어올라 고렘의 머리에 워해머를 휘두르는 광경은 마치 신화의 한 장면과 같았다.
콰가강!
반다이젤의 일격에 머리가 반쯤 박살난 골렘이 큰 소리를 내며 뒷걸음질쳤다.
반다이젤은 그런 골렘을 계속 추격하며 연격을 퍼부었다.
“크하하하하하!”
덩치만 큰 골렘 따위 상대조차 되지 않을 지어니!
반다이젤이 워해머를 한 번 휘두를 때마다 골렘의 일부가 부서져 나갔다. 처음에는 반격하려는 시늉이라도 하던 골렘이었지만, 나중 가서는 그저 얻어터지며 물러서는 것이 전부였다.
쾅! 쾅! 쾅!
요란한 타격음이 연속해서 울렸다. 머리뿐만 아니라 양팔과 어깨까지 잃은 골렘이 계속해서 뒷걸음질 쳐 마침내는 처음 출발했던 장소로까지 돌아왔다.
“이제 끝이다.”
멋지게 말한 반다이젤이 워해머를 당긴 바로 그 순간이었다.
사력을 다해 비정상적으로 거대한 골렘을 유지하던 레나가 돌연 반다이젤을 향해 손을 뻗었다. 따로 빼두었던 마지막 마력을 발산했다.
“패럴라이즈!”
코델리아의 특기 가운데 하나인 마비 주문.
거리가 멀었다.
직접 접촉도 아니었다.
때문에 마비시킬 수 있는 시간은 고작해야 몇 초 남짓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것으로 충분했다.
레나가 손을 뻗은 그때 유더가 골렘을 타고 올랐다.
검은 질풍이 되어 허공으로 날아오르더니 반다이젤을 향해 전력을 다한 일격을 퍼부었다.
흑룡십자격!
주먹으로부터 비롯된 거대한 검은 십자가가 반다이젤을 강타했다.
하지만 무리였다. 지금의 일격으로 반다이젤을 쓰러트리는 것은 불가능했다.
유더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이번 공격의 목적은 반다이젤을 쓰러트린 것에 있지 않았다. 놈을 밀어내는 것이 목적이었다.
츠콰학-!
검은 십자가가 반다이젤을 밀어내며 나아갔다.
마비된 상태라 속절없이 밀려난 반다이젤은 골렘이 일어났던 자리에 처박히고 말았다.
쾅!
거의 수십 미터 이상을 날아가 바닥에 처박힌 터라 커다란 굉음이 일었다.
하지만 비정상적으로 단단한 반다이젤의 몸이었다. 이 정도의 추락만으로 놈을 끝장낼 수는 없었다.
실제로 추락 직후 패럴라이즈가 풀린 놈은 바로 몸을 일으켜 세우려 했다.
유더는 그것을 보았다. 그리고 다른 것도 보았다.
“코델리아.”
그녀가 서 있었다. 레벨 50이 되어 습득한 더블 케스팅에 주문의 메아리를 더하였다.
하나의 주문으로 네 개의 마법을 동시에 발동시켰다.
“기다렸어.”
코델리아의 화사한 미소 사이로 송곳니가 빛난 그때, 반다이젤을 향해 지옥의 마물들이 달려들었다.
정확히는 코델리아가 사령술로 일으킨 지옥의 마물들이었다.
“쿠와아아!”
“크어!”
“카아악!”
요란한 괴성을 지르며 달려든 지옥의 마물 수십 마리가 반다이젤의 몸을 짓눌렀다.
애당초 압사해서 죽은 놈들이라 사지가 멀쩡한 놈이 드물었고, 코델리아의 사령술이 어설픈 터라 그저 달려드는 것이 할 수 있는 것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어차피 중요한 것은 전투력이 아니었다.
“이 간악한 놈들! 아니, 사악한 놈들!”
반다이젤이 노성을 지르며 몸을 일으켜 세우려 했다.
지옥의 마물들이라고 해봐야 결국 좀비에 불과했다. 쇠채찍을 한 번 휘두르는 것만으로도 쓸어버릴 수 있었다.
코델리아도 그것을 알았다. 그렇기에 뜸을 들이지 않았다. 손가락을 튕기며 새로 익힌 주문을 발동시켰다.
“커프스 익스플로젼.”
시체폭발.
반다이젤에게 매달려 있던 지옥의 마물들이 연쇄폭발을 일으켰다.
수십 마리가 넘는 지옥의 마물들이 연달아 폭발하니 그 위력이 실로 어마어마했다.
쾅! 쾅! 쾅!
폭발음 사이로 반다이젤의 비명 소리가 들렸다. 때문에 코델리아는 마무리를 짓고자 레나를 돌아보았다.
“레나.”
작은 부름에 그녀가 응답했다.
제대로 싸우지도 못하는 거대 골렘을 만들어낸 것은 코델리아가 쓸 마물의 시체들을 발굴하기 위함만이 아니었다.
“쿠어어어-!”
골렘이 마지막 포효를 토하며 발걸음을 내디뎠다. 반다이젤의 머리 바로 위로 몸을 이동시켰다.
어마어마한 폭발 속임에도 불구하고 반다이젤은 그것을 보았다.
유더와 코델리아의 계획이 무엇인지 순간적으로 깨달았다.
그렇기에 소리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이 악마같으으은!”
쾅! 쾅! 쾅!
시체폭발의 굉음이 반다이젤의 목소리를 묻었다. 레나가 마지막 주문을 읊조렸다.
“캔슬 크리에이트 골렘.”
골렘 해체의 술.
50미터에 육박하는 거대 골렘의 몸체를 구성하던 수많은 잔해들이 반다이젤의 머리 위로 쏟아져 내렸다.
쿵! 쿵! 쿵!
쾅! 쾅! 쾅!
폭발과 낙석.
그 사이로 울리는 반다이젤의 처참한 비명 소리.
쿵!
골렘의 머리를 이루고 있던 거대한 바위가 마지막 굉음을 울렸다.
작은 바위산 아래 깔린 반다이젤은 이제 모습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하아··· 학······.”
어마어마한 마법을 부린 레나는 제자리에 주저앉은 채 숨을 헐떡였다.
매서운 추위 속임에도 불구하고 비라도 맞은 것처럼 온몸이 축축하게 젖은 그녀였다.
그리고 코델리아가 자리에서 폴짝 뛰어올랐다. 가슴께에 떠오르는 하얀 고리를 보며 환호했다.
“잡았다! 얏호!”
발랄하게 외친 그녀는 레나가 주저앉은 곳을 향해 도도도 달려갔다.
“잡았어요! 잡았어요, 레나!”
상큼하고 발랄하며 사랑스럽다.
때문에 레나는 저도 모르게 미소 지었고, 코델리아가 그런 레나를 와락 끌어안았다.
“너무 좋아! 레나 최고!”
너무나 친근한 태도에 살짝 당황한 레나였지만 이내 코델리아를 마주 끌어안았다.
이 소녀가 왜 이렇게 자신을 좋아하는지는 알 턱이 없었지만, 어찌되었든 덕분에 큰 고비를 넘겼으니 말이다.
“코델리아.”
“유더!”
유더의 부름에 다시 폴짝 뛰어오른 코델리아가 유더를 와락 끌어안았다. 그대로 까르르 웃는가 싶더니 돌연 눈을 흘기며 말했다.
“진짜 나빴어. 진짜 악마 같아. 어쩜 이렇게 사악할 수가 있을까?”
“그래서 좋다고?”
“응!”
바로 답한 코델리아가 다시 환한 웃음을 보였다.
그리고 그 광경을 지켜보던 레나는 옅은 미소를 흘렸다.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그저 보고만 있어도 미소가 지어지는 사랑스러운 커플이었다.
‘그래, 다 잘 되었어.’
지옥의 문을 닫았을 뿐만 아니라 이미 나와 있던 백여 마리에 달하는 마물들을 일소했다.
거기에 이명을 가진 악마인 반다이젤까지 쓰러트렸다.
그러니 되었다.
충분했다.
두 사람은 세상을 구한 것이었다.
아니, 그런 것이어야만 했다.
완전히 붕괴한 엔디미온과 반쯤 무너진 칼날부리 협곡을 애써 외면한 레나는 다시 유더와 코델리아를 보았다.
환상의- 누군가에게는 환장임에 분명한 커플을 보며 새삼 다시 미소를 머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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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같은 날 저녁.
과거 엔디미온이라 불렸던 폐허의 외곽부.
레나의 말은 예언이 되었다.
“어··· 그러니까 문제 해결···이라고 했니?”
“네, 문제 해결이에요. 엔디미온이 사라졌으니 이제 엔디미온에 악마가 나타나는 일은 없을 거예요!”
해맑고 사랑스러운 미소 앞에 페어리 퀸은 더 이상 버티지 못 했다.
우아한 미소를 머금은 채 뒷목을 잡고 쓰러졌다.
< 제30장 - 환장의 커플 #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