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엔딩메이커-91화 (91/473)

< 제31장 - 성지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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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나! 저 왔어요! 레나!”

코델리아가 크게 소리치며 동굴 안으로 들어섰다.

유더와 코델리아가 처음으로 와일드 페어리들과 만났던 바로 그 온천이었다.

“코델리아.”

빈 욕조에 자리를 깔아 만든 임시 거처에 다소곳이 앉아 있던 레나가 화답하자 코델리아는 환히 웃더니 쪼르르 달려갔다.

“레나, 레나. 좋은 소식이에요! 악마병을 고칠 방법을 찾았어요!”

어느새 레나 옆에 찰싹 달라붙은 코델리아는 페어리 퀸과의 이야기를 빠르게 전달했다.

“그래서 성지에 갈 생각이에요. 잘 됐죠?”

“잘 됐네요. 여러모로 정말 고마워요.”

“에이, 뭘요. 헤헤헤.”

코델리아가 뺨까지 붉혀가며 좋아하자 레나는 저도 모르게 쿡쿡 웃음을 흘렸다.

사실 이런 식의 호의에는 익숙한 레나였다.

성천사 레나의 위명을 아는 이들은 십중팔구 레나에게 큰 호감을 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코델리아는 조금 더 특별한 기분이었다.

단순히 그녀의 호의뿐만 아니라, 레나 자신에게 있어서도 말이다.

“코델리아는 정말 귀여워요.”

“네? 어··· 헤헤헤.”

다정하게 말하자 코델리아는 더욱 얼굴을 붉히며 바보 같은 웃음을 흘렸다.

그런데 그 모습이 또 너무나 사랑스러워 다시 웃게 되는 레나였다.

“훈훈하구나, 훈훈해.”

그 광경을 입구에서 바라보던 유더가 홀로 흐뭇해 할 때였다.

“유더 군, 그럼 이제 성지에 가는 건가요?”

페어리 퀸도 인정한 그윽하고 촉촉한 눈망울을 가진 드워프 카플란이 반짝반짝 눈을 빛내며 물었다.

솔라리의 유적인 동시에 야생신의 성지라니.

고고학자인 그에게 있어서는 종합선물세트나 다름없는 곳이었다.

“예, 그럴 예정입니다.”

“오오······.”

코델리아처럼 사랑스럽지는 않았지만, 뺨을 발갛게 빛내며 황홀해하는 카플란의 얼굴 역시 미소를 짓게 하기에는 충분했다.

‘그러고 보니.’

뭐랄까, 이번 사건을 겪으면서 묘하게 이전보다 밝아진 카플란이었다.

‘자신감을 좀 찾은 거려나?’

유더 자신이든 코델리아든 카플란이 함께 해줘서 다행이라는 말을 여러 번 했으니까.

하지만 사실 그것만이 아니었다.

카플란이 밝아진 데에는 조금 다른 이유가 섞여 있었다.

‘난 아무 것도 아니었구나.’

어딜 가든 사건 사고를 일으켜서 재앙신이라고까지 불린 카플란이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사고라고 해봐야 겨우(?) 낙석이나 숨겨진 함정의 발동, 몬스터의 출현 정도에 불과했다.

‘두 사람 앞에서는 시시하지, 시시해.’

도시를 붕괴시키는데 그치지 않고 칼날부리 협곡까지 반쯤 무너트린 두 사람 앞에서는.

더욱이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게 처음도 아니었다.

산에 가면 산을 무너트리고,

들에 가면 들판을 불태우며,

지하도시에 가면 도시를 붕괴시키는 진정한 파괴의 화신.

두 사람 앞에서 카플란 자신 따위는 겨우 새발의 피에 불과했으니, 지금까지의 고민이 뭔가 전부 시시하게 느껴졌다고 해야 할까.

물론 밝아진 가장 큰 이유는 역시 유더와 코델리아가 몇 번이고 카플란을 긍정해준 것이었지만, 더 큰 파괴 앞에 겸손해진 것 역시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이유였다.

‘나도 강해지자.’

유더 군과 코델리아 양처럼.

어떤 난관이 닥쳐오든 오히려 부수고 나아갈 수 있도록.

새삼 각오를 다진 카플란은 훈훈한 눈으로 레나에게 응석을 부리고 있는 코델리아를 돌아보았고, 유더는 눈을 가늘게 떴다.

‘뭔가··· 뭔가 의도했던 거랑은 다른 느낌인데.’

하지만 뭐 아무렴 어떠랴.

중요한 건 카플란이 자신감을 찾았다는 것이니까.

“유더야, 유더야. 언제 출발할 거야?”

때마침 코델리아의 부름이 들려왔기에 유더는 바로 돌아서며 답했다.

“뭐··· 질질 끌 이유가 없으니까. 레나 님만 괜찮으시다면 바로 출발하고 싶은데··· 어떠신가요?”

유더가 다소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번 전투로 말미암아 레나의 상태가 이전보다 악화되었기 때문이다.

마력을 쓰면 쓸수록 악화되는 것이 악마병이었는데, 유더 일행과 합류하기 이전부터 이미 많은 마력을 사용한 레나였다.

여기서 조금 더 마력을 사용하면 정말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이를 수도 있었다.

유더의 물음에 코델리아 역시 걱정 섞인 시선을 보내자 레나는 괜찮다는 듯 코델리아의 손을 잡아주며 말했다.

“체력적으로는 큰 문제가 없어요. 바로 출발하도록 해요.”

“알겠습니다, 그럼 서두르도록 하죠.”

벌써 점심때가 다가오고 있으니 지금 당장 출발해도 해지기 전에 도착하려면 꽤나 서둘러야 할 터였다.

그렇게 한 시간 여.

선두에 서서 성지가 있는 북동쪽을 향해 나아가던 유더의 곁에 코델리아가 쪼르르 다가왔다.

“유더야, 유더야.”

“응?”

레나 곁에 찰싹 달라붙어 있던 코델리아가 다가오니 반갑기는 했지만 무슨 일인가 궁금해진 유더였다.

고개를 갸웃하며 묻자 코델리아는 소리 죽인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가 지금 성지에 가는 거잖아.”

“그런데?”

“여왕님 말씀대로면 성지는 야생신들의 왕인 황금의 용과 태양신 솔라리가 교류를 다진 자리잖아?”

“그렇지. 그러니 야생신들과 솔라리 교단 양쪽의 성지라 할 수 있겠지.”

“응응, 그러니까 성지에도 용맥이 있겠지?”

코델리아의 말에 바로 고개를 끄덕이려던 유더는 멈칫했다. 그대로 눈을 가늘게 뜨더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뭐야, 예고 살인이냐? 아니, 테러 예고인가? 요구조건은 뭔데?”

“야, 그런 거 아니거든?”

“아닌데 왜. 그리고 가슴에 손을 얹고 양심한테 물어봐. 지금 내 말이 과한지 아닌지.”

“음··· 많이 과하대. 아무튼 유더가 잘못했대.”

가슴에 손을 올린 코델리아가 정말 양심의 목소리라도 들은 것처럼 태연하게 말했다.

그리고 그 모습에 유더는 저도 모르게 한숨을 토했다.

“후··· 연기가 많이 늘었구나.”

“사악한 누구누구 씨 때문에. 그리고 방금은 연기가 아니야. 정말로 마음의 소리라구.”

“그러시겠죠. 아무튼 용맥은 왜?”

“아니, 그냥 혹시나 해서.”

“혹시?”

“어, 그냥.”

“저기, 나도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말이야. 성지는 안 된다. 성지는 정말로 안 돼. 여왕님 대성통곡하신다. 응? 운다고 울어.”

“알아, 알아. 안다구. 나도 여왕님 울리는 건 싫으니까 걱정하지 마.”

흥흥 거리며 말한 코델리아는 다시 레나 쪽으로 돌아갔고, 유더는 어쩐지 모를 불길함 속에 발걸음을 내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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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오후 무렵이 되었을 때 유더와 코델리아는 성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칼날부리 협곡으로부터 북동쪽에 위치한 성지는 고운눈바람의 땅을 연상시키는 분지였는데, 멀리서도 눈에 확 띄는 장소였다.

“저기만 눈이 없어.”

온통 새하얀 설원 한가운데 자리한 녹색의 땅.

더욱이 그냥 눈만 없는 것이 아니었다.

가까이 다가가니 분지 안쪽에서는 따스한 바람이 불었다. 마치 이곳만 홀로 봄인 것 같았다.

“솔라리 님의 기운이 느껴져요.”

레나의 말대로였다.

라이제강의 봉인지에 들어갔을 때처럼 주변 모든 곳으로부터 솔라리의 힘이 느껴졌다.

직경이 백여 미터 쯤 되는 작은 분지 안.

겨울 속에 홀로 봄인 장소.

“오오··· 솔라리의 유적이 분명합니다. 그것도 무척 오래된 양식이에요.”

분지의 입구에 설치되어 있는 대문 역할의 기둥들에 바짝 다가선 카플란이 흥분한 어조로 말했다.

하지만 유더와 코델리아는 다른 곳에 더 시선을 두었다.

“무덤의 수호자야.”

기둥들 너머에 무덤의 수호자 넷이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딱히 위해를 가할 의사는 없어 보였지만, 이쪽을 바라보는 눈은 감시자의 그것이었다.

때문에 유더는 더 들어가는 대신 제자리에 선 채 크게 소리쳤다.

“성지를 수호하는 수호자 푸른수염 님께 청하오니 입장을 허락하여 주십시오! 와일드 페어리 퀸께서 저희를 보내셨습니다!”

동시에 코델리아가 대지의 가호가 담긴 요정의 결속을 높이 들어올렸다.

“페어리 퀸께서 우리를 보내셨어요!”

다시 외치며 가호의 빛을 발하자 순간 바람의 방향이 바뀌었다.

안에서 밖으로 불던 바람이 정지하며 커다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푸른수염이 방문자를 맞이한다!”

분지 안쪽에 자리한 커다란 신전에서 괄괄한 목소리가 들려오는가 싶더니 이내 목소리의 주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름 그대로 푸른 수염을 길게 기른 용이었다.

“나는 성지의 수호자 푸른수염일지니! 너희의 이름을 밝히거라!”

푸른 비늘과 화려하게 뻗은 사슴의 뿔.

서양의 드래곤보다는 동양의 용처럼 생긴 푸른수염이 앞으로 나서며 호령하는 그 모습은 위엄 그 자체였지만 코델리아는 얼른 입술을 깨물어 웃음을 참았다.

‘귀, 귀여워.’

그럴 수밖에 없었다.

몸길이가 7미터 남짓할 정도로 거대한 푸른수염이었지만, 생긴 게 정말 동양의 용과 같으니 팔 다리는 모두 몸에 비해 너무나 짧고 왜소했다.

그런데 그 작은 뒷발로 서서 아장아장 걸어오니, 위엄 넘치는 상체와 부실하기 짝이 없는 하체의 조화를 목도한 기분이랄까.

코델리아가 입술을 깨문 채 애써 웃음을 참자 유더가 언제나처럼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페어리 퀸들의 가호를 받고 있는 유더 바이엘과 코델리아 체이스입니다.”

“이, 인디아나 카플란입니다.”

“레나 아인스버그에요.”

레나까지 소개를 마치자 푸른수염은 눈을 가늘게 뜨는가 싶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 선한 자들이구나. 제일 뒤에 있는 여자는 악마의 기운이 강하기는 하지만··· 오호라, 저 기운을 씻어내기 위해 온 것인가?”

괜히 성지의 수호자가 아닌 푸른수염이었다.

정확한 분석에 유더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렇습니다. 페어리 퀸께서 성지에서라면 악마의 기운을 씻어낼 수 있을 거라며 이곳을 알려주셨습니다.”

“흠, 과연.”

짧은 손으로 턱 대신 배를 쓰다듬은 푸른수염은 고개를 높이 들며 말했다.

“들어오라! 페어리 퀸이 보낸 자들이라면 굳이 시험을 거칠 필요는 없을 지어니!”

호탕하게 외친 그는 그대로 신전으로 돌아가기 시작했고, 유더와 코델리아는 얼른 카플란과 레나를 돌아보았다.

“가죠.”

“이야기가 잘 통해서 다행이에요.”

“그러게요.”

푸른수염의 시원하기까지 한 태도에 놀랐는지 다소 얼떨떨한 표정을 지은 레나였지만 이내 미소를 지으며 발걸음을 내디뎠다.

그리고 몇 분.

신전 안에 들어선 유더와 코델리아는 감탄성을 흘렸다.

‘정말 교류의 장이었구나.’

일반적인 솔라리 신전의 양식을 따른 외부와 달리 내부는 야생신들의 양식을 따르고 있었다.

겉은 서양 교회인데 안은 마치 온실 같다고 해야 할까?

곳곳에 기둥이 세워져 있는 등 인공적인 건축물임에 분명했지만 하나하나가 주변과 어울려 마치 자연 속에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특히 신전의 중심부에는 직경이 십여 미터 남짓 되는 연못이 있었는데, 연못을 감싸고 선 돌기둥들로부터 은은하면서도 찬란한 빛이 일어 신비로운 느낌을 주었다.

“성스러운 연못이다. 그 어떤 사이함도 씻어낼 수 있는 장소이지.”

자부심 어린 어조로 말한 푸른수염이 레나를 보며 말을 이었다.

“눈을 보면 알 수 있다. 비록 악마의 힘에 물들었다하나 너는 참으로 선한 이이다. 연못에 들어가는 것을 허락할 터이니, 어둠을 씻어내고 빛을 되찾거라.”

푸른수염의 목소리가 신전 안에서 크게 울리니 마치 천상의 목소리와 같았다.

거룩하기까지 한 모습으로 배를 쓰다듬는 푸른수염에게 예를 표한 레나는 유더와 코델리아에게 눈짓한 뒤 연못으로 다가갔고, 유더와 코델리아는 그런 레나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저기, 푸른수염님.”

“말하거라.”

“레나가 악마의 힘을 씻어내는 데는 시간이 얼마나 걸릴까요?”

“정확히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악마의 힘에 물든지 오래이니, 적잖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조금 모호하긴 했지만, 그래도 성실한 답변에 만족한 코델리아는 다시 레나 쪽을 보았다.

옷을 입은 채로 레나가 연못에 들어서자 주변의 돌기둥들이 녹색의 빛을 발하였다.

“정화의 빛이다. 두려워 말고 연못 중심으로 나아가라.”

레나는 푸른수염의 말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대로 나아가 연못 중심에 도달했고, 녹색의 빛이 그녀와 연못 전체를 뒤덮었다.

“괜찮은···거죠?”

빛 때문에 아예 보이지 않게 된 레나가 걱정된다는 듯 코델리아가 미간을 좁히며 묻자 푸른수염은 이번에도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다. 이제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여러모로 감사해요.”

“나는 성지의 수호자이니, 어려움에 처한 이를 돕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훗 웃으며 답한 푸른수염은 그대로 아장아장 걸어 거처로 보이는 신전 구석으로 나아갔고, 코델리아는 그런 푸른수염의 상체만을 보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다시 몇 초나 지났을까.

“코델리아.”

“응?”

등 뒤에서 들려온 부름에 돌아서자 유더가 턱짓으로 신전 밖을 가리키고 있었다.

“잠깐 나가서 주변 좀 살펴보고 올게.”

어차피 이곳에 남아있어 봐야 쉬면서 기다리는 것 외에는 딱히 할 일이 없었다.

그러니 평소처럼 주변 지형을 파악해두는 편이 나았다.

“어··· 그럼 나도 같이 갈게.”

“뭐, 그러든가. 카플란은 그냥 놔둬도 괜찮겠지?”

“응, 심심해 보이지는 않네. 다녀와서 저녁 먹을 때 부르면 될 거야.”

지금도 벽에 달라붙어 이것저것 열심히 관찰 중인 그였으니까.

“푸른수염 님! 잠깐 나가서 바람 좀 쐬고 올게요!”

“멀리 가지는 마라! 성지 밖은 나의 보호가 닿지 않으니!”

코델리아의 외침에 푸른수염이 답했고, 유더는 저도 모르게 쓴웃음을 지었다.

“왜?”

“아니, 금방 친해졌구나 해서.”

“착한 아저씨 같으니까.”

히죽 웃으며 답한 코델리아는 유더와 함께 신전을 나선 뒤 병풍처럼 자리한 분지 위로 발걸음을 옮겼다. 높은 곳에 올라 주변 일대를 살펴보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몇 분 뒤.

가장 높은 곳에 오른 유더와 코델리아는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미간을 찌푸렸다.

“악마의 눈.”

저 멀리서부터 성지를 향해 몰려오는 이들이 있었다.

숫자는 적게 잡아도 오십 남짓.

야생의 땅이 아닌 아르곤 제국 쪽에서 온 것인지 중장갑을 걸친 기사들이 많았다.

“선두에 선 거··· 빌바인 맞지?”

“맞는 것 같네.”

칠흑의 갑주로 전신을 뒤덮은 거대한 남자.

악마의 눈의 중급 마인 중에서도 특히 강한 축에 속하는 네임드였다.

사실 유더와 코델리아는 몰랐지만, 두 사람의 활약으로 말미암아 중급 마인을 둘이나 잃은 악마의 눈은 상당한 위기감을 느꼈다.

이대로는 야생의 땅을 집어삼킨다는 계획에 차질이 생긴다.

동부의 용맥을 오염시키기 위해서는 더 강한 수를 두어야 한다.

그리하여 악마의 눈의 본거지라 할 수 있을 아르곤 제국 방면에서 활동 중인 정예들을 투입하기로 하였으니, 그것이 바로 흑기사 빌바인과 그의 수하들이었다.

“단순한 구성이 아냐. 마물들이 꽤 섞여 있어.”

숫자만 놓고 보자면 이전 싸움보다 더 적었지만, 하나하나의 질이 달랐다.

저들 오십이면 세일룬 왕국병 오백도 능히 상대할 수 있으리라.

더욱이 야생신을 상대할 방법도 준비하고 있을 놈들이었다.

그렇다면 이제 어찌할 것인가.

용맥을 오염시키려는 놈들로부터 어떻게 성지의 순수성을 지켜낼 것인가.

‘단순 격파만을 고려한다면······.’

유인한 뒤 분지에 가두고 용맥을 터트려 몰살시키는 것이-거기까지였다.

생각을 잇던 유더는 흠칫 놀라 고개를 들더니 옆에서 끙끙 앓는 표정을 짓고 있던 코델리아에게 말했다.

“아니다, 이 악마야. 그것만은 안 된다.”

“어? 뭐가?”

“아니, 안 된다고.”

“그러니까 뭐가?”

“있어, 그런 게.”

영문을 알 수 없는 코델리아가 어쩐지 억울한 기분이 들어 인상을 와락 구겼지만 유더는 다시 빌바인과 수하들 쪽을 돌아보았다.

놈들이 성지에 도착할 때까지 남은 시간을 헤아렸다.

동시에 레나와 성지의 수호라는 대전제를 다시 한 번 되새겼다.

그리고 몇 초.

유더의 머릿속에 떠오른 것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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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31장 - 성지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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