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33장 - 불사조 >
제33장 - 불사조
악마의 눈의 상급마인이자 야생의 땅에서 이뤄지고 있는 모든 계획의 총책임자인 하라겐은 사람의 형상을 유지할 수 없었다.
겹눈은 물론이고 날개와 뿔까지 드러낸 그가 그나마 참아낼 수 있었던 것은 소리 높여 노성을 지르는 것이었다.
‘빌바인이 죽었다고?’
흑기사 빌바인.
악마의 눈의 중급 마인들 중에서는 손에 꼽는 전투력의 소유자.
‘무엇이냐. 동부에 대체 무엇이 있는 것이냐.’
동부의 용맥을 오염시키기 위해 파견한 마인들이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차례차례 연결이 끊어졌다.
처음 자라쿨이 죽었을 때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마드가가 죽었을 때는 크게 놀랐다. 그래서 악마의 눈의 본단이 있는 아르곤 제국에 지원을 청해 빌바인을 불러냈다.
그런데 빌바인도 죽음을 맞이했다.
‘동부.’
서부에서는 이런 일이 없었다.
그런데 동부에서는 계속해서 이변이 일어나고 있었다.
‘붉은질풍 놈도 상태가 악화되지 않고 있어.’
본래 계산대로라면 슬슬 죽거나 앓아누워 꼼짝도 하지 못 해야 하거늘 첩자들의 정보에 따르면 전혀 아니었다.
오히려 이전보다 상태가 호전된 것 같았다.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다.’
동부 연맹.
서부가 성난뿔소 부족의 이름 아래 통일되려는 지금, 붉은질풍이 위대한폭풍 부족을 중심으로 한 동부 연맹을 구축하려 한다는 첩보가 날아들고 있었다.
‘안 돼, 용인할 수 없다.’
애당초 붉은질풍에게 저주를 건 이유가 무엇이었던가.
지금과 같은 사태를 막기 위함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놈의 상태가 조금씩 호전되고 있었다.
우려하던 대로 동부 연맹을 구축하려 하고 있었다.
‘결국 힘으로 해결해야만 하는 것인가.’
동부의 용맥을 오염시켜 야생신들은 물론이고 그 휘하 부족까지 무력화하려 했거늘.
최대한 야만의 땅의 전력을 온존해 세일룬 왕국과의 싸움에 투입하려 했지만 아무래도 무리인 모양이었다.
‘이번 원정이 끝나면 서부 전체의 병력을 집결해 동부를 친다.’
마음을 정한 하라겐은 심호흡으로 스스로를 진정시켰다.
다시 하얀 수염을 길게 기른 예언자의 모습으로 돌아간 그는 야만의 땅에 자리한 부족들의 위치가 모두 표기된 지도를 돌아보았다.
‘위대한폭풍, 거친눈사태, 고운눈바람, 동부의 성지.’
누구일까.
대체 누가 동부의 용맥을 지켜내고 있는 것일까.
하나일까?
아니면 여럿인 것일까.
“누구냐, 누구냐 너는.”
하라겐의 낮은 노성이 막사 안을 맴돌았다.
&
같은 시각, 서부 끝자락에 위치한 하라겐으로부터 한참이나 떨어진 곳.
하라겐이 증오해마지 않는 누군가 중 하나가 꼼지락 거리며 눈을 떴다.
“우으응······.”
앓는 소리를 내며 간신히 눈을 뜬 코델리아는 다시 눈을 감았다.
하지만 잠드는 대신 재차 목소리를 흘렸다.
“우으······.”
전형적인 잠에 취한 목소리.
보통 이런 목소리를 흘린 사람은 다시 쓰러져 잠들기 마련이었지만 코델리아는 조금 달랐다.
자꾸만 감기려는 눈꺼풀을 어찌어찌 다시 연 뒤 기지개를 켰다.
“으으으······.”
신음소리와 함께 등 쪽에서 우드득 소리가 났다.
근육이 당겨지며 느껴지는 약간의 고통과 개운함 속에 코델리아는 겨우 눈을 뜰 수 있었다.
“아우.”
“깼어?”
유더의 목소리에 코델리아는 눈을 깜박였고, 겨우 자신의 상태를 인식할 수 있었다.
‘업혀 있네.’
포대기에 쌓인 채 유더의 등에 업혀 있었다.
코델리아는 어째서 이런 상황에 처해 있는지 기억을 더듬는 대신 일단 유더의 등에 뺨을 기댔다.
‘차가워.’
잠깐 머리를 뗀 사이에 가죽이 식은 것일까.
그래도 아주 차갑지는 않았다. 딱 기분 좋은 서늘함을 느끼며 코델리아가 답했다.
“응··· 깼어. 깼어요.”
목소리가 잔뜩 뭉개지긴 했지만 처음에 비하면 제법 또렷해진 목소리였다.
하지만 유더는 새삼 코델리아를 고쳐 업더니 슬쩍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그냥 조금 더 자지 그래?”
“아냐, 일어날 거야. 일어날 거예요.”
코델리아는 다시 꼼지락 거리며 유더의 등에서 머리를 뗐다. 이대로 계속 기대고 있으면 다시 잠이 들 것 같아서였다.
유더가 그런 코델리아에게 다시 말했다.
“피곤하지 않아? 어제 그렇게 난리를 쳤는데.”
“응? 어제? 어제 내가··· 우그윽.”
마지막에 가서 얼굴이 빨개진 코델리아는 그대로 유더의 등에 머리를 묻었다.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숨고 싶은 기분이었다.
어제의 난리.
어젯밤의 만행.
“비스트모드 때문이니까 이해해줄게.”
유더가 포용감 넘치는 목소리로 말했고, 코델리아는 다시 우그극 앓는 소리를 내더니 이내 흥흥 거리며 말했다.
“내리려고 했는데 안 내릴래. 그냥 계속 타고 갈 거야. 계속 호강할 거야. 유더 등골 빼먹을 거야.”
“원하신다면야. 이쪽도 등이 따뜻한 것이 난로 끼고 걷는 기분이라 괜찮습니다.”
능글맞은 유더의 대답에 더욱 골이 난 코델리아였지만 어째 여기서 더 하면 그저 말려들기만 할 기분이었다.
때문에 코델리아는 아예 화제 자체를 돌려버렸다.
“그런데 유더야.”
“어.”
“우리 얼마나 온 거야?”
“내 계산대로라면··· 이제 슬슬 보일걸?”
“응?”
“저기 말이야. 저기. 보여?”
유더가 턱짓으로 가리킨 방향을 가만히 바라보던 코델리아는 눈을 가늘게 떴고, 이내 깜짝 놀라 외쳤다.
“와! 고운눈바람의 분지?!”
망망대해에 비견할 수 있는 설원 위에 자리한 것은 고운눈바람의 분지가 분명했다.
병풍처럼 둘러쳐진 산자락을 멍하니 보던 코델리아는 순간 헉하고 숨을 삼키더니 다시 유더를 돌아보았다.
“세상에. 야, 너 나 업고 얼마나 걸은 거야? 지금 몇 시인 거야?”
“한나절 정도? 대충 오후 3시에서 4시?”
“한나절?!”
시간으로 환산하면 6시간 남짓.
깜짝 놀란 코델리아는 포대기에 업힌 채 바둥거리며 물었다.
“안 힘들어? 다리 안 아파? 허리도?”
자그마치 6시간이었다.
그냥 걸어도 힘들 시간인데 코델리아 자신을 업고 걸었다고?
거기다 유더에게는 짐이 하나 더 있었다. 허리에 연결한 끈으로 작다고는 하지만 짐이 잔뜩 실린 썰매까지 끌고 있었으니 말이다.
코델리아가 허둥거리며 걱정을 하자 유더는 눈물 훔치는 시늉을 하며 말했다.
“우리 공주님 이제 다 컸네. 걱정도 할 줄 알고. 아빠는 눈물이 날 것 같아요.”
“와, 개소리 하는 거 보니 진짜 여유인가 보네. 우리 유더 진짜 튼튼해졌구나?
“다 마님 덕분이지요.”
연기가 아닌지 유더의 목소리에는 정말로 여유가 묻어났다.
코델리아는 새삼 유더의 등이나 어깨를 만져보았고, 단단하면서도 튼튼한, 맹수- 아니, 짐승을 연상케하는 유더의 몸에 활짝 미소를 지었다.
“네, 아빠. 그런 마음가짐이에요. 계속 감사하도록 하세요. 엣헴엣헴, 신이나.”
더욱 더 칭찬하라는 듯 헛기침을 해대는 코델리아의 모습에 미소 지은 유더는 다시 정면을 보며 말했다.
“아무튼 좀만 더 가면 도착할 수 있으니까 계속 그냥 업혀 있어.”
눈에 보이긴 하지만 거리가 상당하니 30분 정도 걸으면 되려나.
하지만 코델리아는 고개를 붕붕 가로젓더니 유더의 등을 두드리며 말했다.
“유더야, 유더야. 그냥 슝 날아가면 안 돼? 막 바람 슝슝슝 일으키면서.”
“아니, 저기 말이야. 짐 썰매 안 보이니? 걷는 건 몰라도 달리는 건 무리거든?”
그랬다가는 짐이 전부 뒤집어질 테니까.
하지만 코델리아는 아무 문제없다는 듯 해맑은 얼굴로 말했다.
“짐 썰매 잠깐 풀고서 나 데려다준 다음에 너 혼자 다시 와서 챙겨 가면 되잖아.”
“머라고요?”
“짐 썰매 풀고서 나만 데리고 슝 날아갔다가 아빠 혼자 다시 짐 챙기러 오면 된다고 했어요.”
천진한 어투로 고쳐 말했지만 내용 자체는 악랄하기 짝이 없었다.
“진짜 사탄인가.”
“빨리, 빨리. 코델리아는 마을에 가서 편히 앉은 다음에 뜨거운 차가 마시고 싶어요.”
“양심에 털이 났구나?”
“그래서 항상 양심이 따뜻해.”
아무 말에 아무 말로 받아친 코델리아가 방긋방긋 웃었고, 유더는 멍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미소 지었다.
“뭐, 좋아. 까짓 거 가볼까?”
“응? 진짜?”
코델리아가 당황으로 눈을 깜박이며 물었다.
그냥 개드립 친 거였는데 진짜로 해준다고?
“우리 공주님이 원하신다는데 해드려야죠.”
“아니, 잠깐. 잠깐만. 이거 진짜 내가 쓰레기가 되는 것 같······.”
거기까지였다. 유더는 썰매와 연결된 끈을 풀더니 포대기까지 벗어버렸다. 미끄러지려는 코델리아를 탁 잡더니 그대로 휙 돌려서 허공에 던지더니 다시 탁하고 받아냈다.
“어어?”
분명 업혀 있었는데 왜 안기게 된 걸까.
그리고 왜 유더의 얼굴이 눈앞에 있는 것일까.
“가자.”
유더가 씩 웃으며 말했고, 코델리아는 바로 답하지 못 했다.
자기도 모르게 얼굴을 붉힌 채 고개만 끄덕였다.
그리고 그런 코델리아의 반응에 유더는 만족했다. 단단한 두 팔로 코델리아를 고쳐 안은 뒤 지면을 박차올랐다.
“흑풍도래.”
검은 질풍과 황금빛 선풍이 유더와 코델리아를 휘감았다.
&
며칠 만에 마주한 고운눈바람 앞에서 유더와 코델리아는 동시에 목소리를 높였다.
“네?! 언니가요?!”
“네?! 형이요?!”
“네, 두 사람의 언니와 형이라는 사람들이 절 찾아왔어요. 냄새도 그렇고 여러모로 진짜 혈육 같아서 두 사람이 칼날부리 협곡으로 갔다고 알려줬는데··· 반응을 보아하니 길이 엇갈린 모양이네요.”
고운눈바람의 말에 유더는 머릿속에 지도를 그릴 것도 없이 바로 탁하고 손뼉을 쳤다.
칼날부리 협곡을 거치지 않고 바로 대각선으로 내려왔으니까.
아마 지금쯤 게일과 아델리아는 칼날부리 협곡 초입쯤에 자리하고 있으리라.
‘엔디미온 거쳐 왔으면 정말 만났을지도 모르겠는데?’
유더가 그렇게 생각할 때였다.
“어, 어떡하지? 언니가 왔다고? 쫓아온 거겠지? 응? 우리 잡으러 온 거겠지?”
코델리아가 패닉에 빠진 얼굴로 허둥거렸다.
얼굴이 하얗게 질린 것이 아델리아가 보통 무서운 것이 아닌 모양이었다.
“진정해, 코델리아. 두 사람은 가출한 우리를 찾으러 온 거지 사냥하러 온 게 아냐.”
“아, 아니거든? 네가 우리 언니 몰라서 그러는 거거든? 진짜 사냥하러 온 걸지도 모르거든? 맞아, 사냥이 분명해.”
“워워, 진정해. 진정. 형이랑 아델리아도 여기까지 왔으면 우리가 어떤 일에 나서고 있는지 대강은 알고 있을 거야. 그러니 긍정적으로 보자고. 형과 아델리아는 강해. 서부와의 싸움에 큰 도움이 될 거야.”
영웅전기2에서 직접 체험할 일이 없어 정확하진 않지만, 설정상의 정보로 추론해봤을 때 게일과 아델리아 모두 단독으로 중급 마인을 상대할 수 있을 정도의 강자들임에는 분명했다.
‘그나마도 최소치가 그 정도라는 거니까.’
십검호 가운데 하나인 게일 백작의 후계자와 왕립마법병단의 최연소 단장 자리에 오른 마법의 천재였다.
최소치가 중급 마인일뿐, 그보다 훨씬 더 강할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었다.
하지만 유더의 말에도 불구하고 코델리아는 여전히 불안을 떨쳐내지 못 했다.
“아냐, 네가 몰라서 그래. 그리고 나보다 네가 더 위험하다고. 우리 언니가 널 죽이려 할지도 몰라.”
“에이 설마. 그리고 봐서 알잖아? 나도 이제 꽤 강해졌거든?”
맞는 말이었다. 때문에 코델리아는 잠깐 진정하는가 싶더니 이내 다시 고개를 붕붕 저으며 말했다.
“아냐, 언니는 마법사니까 저주를 걸지도 몰라. 그래, 저주. 저주에 대한 대비책을 세워야겠어. 항마력 기르는 마법이랑 해주의 마법 쪽을 익혀둘게.”
마녀의 주술서에 기록된 마법은 수십을 넘어 수백에 달했다.
그간 필요한 것 위주로 익히느라 손대지 않은 주문들이 꽤 있었는데, 이번 기회에 익혀둬야만 할 것 같았다.
“어··· 뭔가 좀 오버 같지만 익혀서 나쁠 건 없겠지.”
“으으··· 언니를 막을 방법이 뭔가 또 없을까?”
“하나 있기는 해.”
“뭔데?”
“음··· 오랜만에 그걸 하는 거지.”
“오랜만에 그거?”
“사랑하는······.”
흐레스벨그 백작가를 빠져나간 이후로는 그다지 하지 않은 말.
“사랑하는 유더 공자를······.”
“오케이, 오케이. 거기까지. 뭔지는 알았으니까 거기까지.”
빨개진 얼굴로 헉헉거린 코델리아는 손부채질을 하더니 이내 다시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
“으으으··· 좋아, 까짓 거 한다. 까짓 거 해. 처음도 아니니까 할 수 있어.”
“그래, 익숙해지는 거야.”
“맞아, 익숙해지는 거야.”
유더가 은근슬쩍 보탠 말을 저도 모르게 따라한 코델리아는 고개를 몇 번 끄덕인 뒤 주먹을 불끈 쥐었다.
“할 수 있어. 내가 지켜줄게. 지켜줄게 유더.”
“고마워, 코델리아. 역시 너뿐이야.”
“어? 어······ 흠흠.”
갑자기 부끄러워진 코델리아는 뺨을 붉히며 헛기침을 토하더니 아예 시선을 돌렸고, 덕분에 이쪽을 빤히 바라보던 고운눈바람과 눈이 마주쳤다.
“어··· 이제 다 끝났나요?”
“끄, 끝났어요.”
코델리아의 얼굴이 더욱 붉어지자 고운눈바람은 쿡쿡 웃더니 능글맞은 표정을 짓고 있는 유더를 돌아보며 말했다.
“유더, 사실 그보다 더 급한 일이 있어요.”
“설마 서부에서 공격을 개시한 겁니까?”
유더가 깜짝 놀라 되물었다. 여기까지 오는 길에 본 고운눈바람 부족들의 모습에서는 딱히 전운을 느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뇨, 공격은 아니에요. 동부 연맹을 구축하는데 한 가지 문제가 생겨서 그래요.”
“문제요?”
코델리아가 되묻자 고운눈바람은 이야기를 정리하듯 잠시 뜸을 들인 뒤 설명을 시작했다.
“동부 연맹 결성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어요. 저와 거친눈사태 오라버니뿐만 아니라 위대한폭풍 오라버니까지··· 야생신이 셋이나 나선 덕에 근방의 다른 부족들과 야생신들 역시 협조해 주었고요. 다만 문제가 된 것은 북부에 자리한 칼날노래 부족이에요.”
“칼날노래.”
동부의 야생신들 가운데서 손에 꼽힐 정도로 강한 힘을 가진 자.
그가 보살피는 칼날노래 부족은 성난뿔소 부족에 뒤지지 않는 강인함과 호전성을 두루 겸비한 전투종족이었다.
‘위대한폭풍 부족이 엘프라면 칼날노래 부족은 오크지.’
실제로 고대 오크의 피를 이어받기도 하였고.
‘세일룬 왕국과의 전투에서 항상 앞장선 것은 성난뿔소 부족과 칼날노래 부족.’
그런 칼날노래 부족이 동부 연맹 결성에 엇박자를 놓았다면 이유는 역시 하나뿐이었다.
“주도권 싸움이군요.”
“네, 칼날노래 부족은 동부 연맹 결성 자체는 동의하지만 자신들이 연맹장의 자리에 올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어요.”
“이쪽은 위대한폭풍 부족을 미는 거고요?”
“꼭 그렇지만은 않아요. 하지만 칼날노래 부족이 연맹장 자리에 오르는 건 반대하고 있어요. 칼날노래 부족이 연맹장 자리에 오르면 서부와의 싸움이 훨씬 더 큰 피해를 야기할 거예요. 더욱이 하나로 모인 야생의 땅의 힘으로 다시 세일룬 왕국과의 전쟁을 하려 할 거고요.”
납득이 되는 이야기였다.
가만히 듣던 코델리아가 손을 빼꼼 들며 물었다.
“칼날노래 부족의 야생신은 뭐라고 하는데요?”
“야생의 땅의 부족들은 자신들을 보살피는 야생신을 닮기 마련이에요. 칼날노래는 예나 지금이나 무식하기 짝이 없는 전쟁광이라 말이 통하지 않아요.”
이름만큼이나 늘 고운말만 쓰는 고운눈바람이 저렇게 말할 정도니 애당초 대화로는 해결이 불가능할 것 같았다.
“뭔가 방법이 없나요?”
“있어요. 그리고 그 방법 때문에 문제가 된 거고요.”
“어··· 방법이 있는데 그거 때문에 문제가 되었다고요?”
코델리아가 다시 묻자 고운눈바람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칼날노래 부족은 위대한폭풍 부족에 카라발을 신청했어요.”
카라발.
코델리아는 그게 무엇이냐는 듯 눈을 껌벅였지만 유더는 미간을 찌푸렸다.
기억의 궁전 구석에 자리한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일대일 대결 의식이야. 분쟁을 결투로 해결하자는 거지.”
워낙 무식한 방법인 터라 칼날노래 부족이나 성난뿔소 부족처럼 전투 그 자체를 숭상하는 부족이 아니면 여간해서는 카라발을 실행하지 않았지만, 카라발의 권위 자체를 부정하는 부족은 야생의 땅에 존재하지 않았다.
“평소라면 위대한폭풍이 나섰겠지만······.”
유더 덕분에 저주의 진행을 막긴 했지만 그렇다 해도 여전히 병자 신세인 그였다.
“칼날노래 부족도 이를 감안해서 족장의 아들인 태양노래를 카라발의 대표로 내보냈어요.”
“어··· 그럼 이쪽도 위대한폭풍 다음으로 강한 전사를 내보내면 되는 거죠?”
“아뇨, 그렇지 않아요. 칼날노래 부족에서 태양노래를 내보낸 이상, 이쪽도 똑같이 족장의 자식을 카라발의 대표로 내보내야만 해요.”
여기까지 이야기가 진행되니 유더와 코델리아 역시 무엇이 문제인지 알 수 있었다.
“붉은바람.”
이쪽에서 내보내야만 하는 카라발의 대표.
코델리아가 반사적으로 꺼낸 이름에 고운눈바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모두 정리하는 한마디를 내놓았다.
“붉은바람이 태양노래를 이겨야만 해요.”
동부 연맹을 정상적으로 구축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
유더와 코델리아가 서로를 돌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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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33장 - 불사조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