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33장 - 불사조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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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델리아가 붉은바람의 훈련을 지켜보는 사이 유더는 붉은질풍과 거친눈사태를 만나러 갔다.
황금의 용왕의 상태와 불사조 포획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함이었다.
“과연······.”
이야기를 모두 들은 붉은질풍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솔라리의 목걸이 덕분인지 이전에 봤을 때보다 한결 정정해진 그였다.
“황금의 용왕께서 그런 상태셨다니. 더욱이 악마 추종자 놈들이 벌써 서부를······.”
바닥에 쪼그려 앉아 있던 거친눈사태가 머리를 싸매며 끙끙 앓는 소리를 내었다.
서부의 용맥이 이미 모두 오염되었다는 것은 곧 서부의 야생신들 전부가 적으로 돌아섰다는 것과 다름없는 소리였으니 말이다.
“서부의 용맥들을 폭발시키면 상태가 나아질 거라 하셨습니다.”
유더가 위로하듯 말하자 거친눈사태는 흠칫하더니 참으로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그, 그래.”
아무래도 자신의 바위산이 통으로 날아가던 광경을 떠올리고 있는 모양이었다.
붉은질풍이 다시 말했다.
“유더, 불사조를 잡아 붉은바람의 것으로 한다는 건가?”
“예, 현재로서는 그게 최선의 방안이라 생각합니다.”
오랜 옛날 무명의 정령전사에게 봉인된 고대정령 불사조.
자신들의 거처 인근에 불사조의 봉인지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한 붉은질풍이었지만 딱히 유더의 이야기를 의심하지는 않았다.
유더가 붉은바람의 은인인 것도 있지만, 황금의 용왕을 직접 만나 인정받은 야생의 땅의 수호자였기 때문이다.
“으으음··· 나도 비슷한 이야기를 어릴 때 들었던 것 같기는 하다.”
난폭하고 사악한 불꽃의 새.
거친눈사태가 턱을 긁적이며 말을 보태자 유더가 다시 모두를 보며 말했다.
“붉은바람에게는 정령전사의 자질이 있습니다. 불사조를 손에 넣으면 태양노래와의 카라발에서 승리할 수 있을 겁니다.”
사실상 유일한 방안이었다.
붉은질풍은 눈을 감고 침음을 삼켰지만 잠시 뿐이었다.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유더의 말에 동의했다.
“알겠다. 그대의 말대로다. 현재 상태로는 붉은바람이 태양노래를 이길 수 없다. 불사조의 힘이 필요하다.”
난폭한 고대정령의 봉인을 푸는 일이었다. 자칫 잘못하면 우환거리를 늘리는 일이 될 수도 있었지만, 붉은질풍은 유더를 믿기로 하였다.
“감사합니다.”
“이쪽이 감사하다. 필요한 것이 있다면 무엇이든 말하라. 전력을 다해 돕겠다.”
페어리 퀸이 있었다면 당장에 붙잡고 말렸을 것 같은 말을 내뱉은 붉은질풍이었다.
하지만 페어리 퀸과 붉은질풍은 사정이 달랐다.
유더 역시 눈을 빛내며 웃는 대신 이번 일에 정말로 필요한 지원을 이야기했다.
“과연··· 그런가. 알았다. 준비해보겠다.”
붉은질풍이 수락하자 유더는 한시름 놓았다는 얼굴이 되더니 거친눈사태를 돌아보았다.
“거친눈사태님도 도와주실 거죠?”
“응? 나도?”
“예, 거친눈사태님도.”
“어··· 그래! 좋다. 야생의 땅을 위한 일이니 힘 닿는 데까지 돕도록 하마.”
“감사합니다.”
유더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지자 어째 더 불안해진 거친눈사태였지만 이미 뱉은 말을 물릴 수는 없었다.
어색하게나마 마주 웃으며 가슴을 탕탕 두드리는 허세를 보였다.
“불사조 포획은 내일 나설 생각인데··· 그때까지 준비가 가능할까요?”
“가능할 것이다. 내일 오전까지는 준비를 마치겠다.”
“나도 그리하겠다.”
붉은질풍이 호기롭게 답하자 거친눈사태 역시 자리에서 일어나며 답했다.
위대한폭풍 부족과 야생신의 지원.
이 정도면 원작에서는 할 수 없었던 공략법을 실행하는 것이 가능할 것 같았다.
“알겠습니다. 내일 뵙도록 하죠.”
카라발까지 남은 시간은 7일.
유더는 붉은질풍의 거처를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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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결국 내일이라는 거네?”
“카라발까지 시간이 별로 없으니까. 불사조를 손에 넣어도 익숙해지려면 시간이 필요할 테고.”
유더와 코델리아의 숙소 안.
두 사람은 침대 위에 가지고 있는 마도구들을 잔뜩 늘어놓은 뒤 어떻게 템 세팅을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유더는 팔짱을 낀 채 끙끙 앓는 소리를 내며 진지하게 고민 중인 코델리아의 옆모습을 바라보더니 냉기 속성 반지를 집어들며 물었다.
“붉은바람은 좀 어때?”
“많이 익숙해졌어. 애당초 플레이어블 캐릭터답게 자질이 뛰어나니까. 헤이스트랑 스트랭스 2중첩 상태로 싸우는 것도 이제는 가능해.”
코델리아는 손을 쭉 뻗더니 냉기 속성을 부여하는 티아라를 살짝 들어올렸다.
“음, 이거 끼려면 머리띠 벗어야 하려나?”
처음 위대한폭풍 부족 마을에 들른 이후 지금까지 내내 끼고 있던 토끼 세트.
유더는 중간에 성투의로 갈아입으면서 은근슬쩍 벗어버렸지만, 코델리아는 지금까지 줄곧 토끼귀와 꼬리를 장비하고 있었다.
“으으음··· 같이 끼려면 낄 수도 있을 것 같긴 한데.”
게임이 아닌 현실이다 보니 같은 부위에 장비를 중복 착용하는 것이 가능은 했다.
“일단 벗고 껴보······.”
혼잣말을 하며 토끼귀를 벗으려던 코델리아는 순간 말끝을 흐렸다.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유더의 시선을 느껴서였다.
“왜?”
“아니, 그······.”
어쩐 일인지 유더가 말끝을 흐리자 고개를 갸웃갸웃한 코델리아였지만 이내 눈을 반짝이더니 우훙훙 웃음을 흘렸다.
“왜요? 토끼귀 안 한다니까 아쉬워요? 계속 해줬으면 해요? 보고 싶어요?”
이러면 유더가 당황해서 어버버 거리겠지.
속으로 승리의 미소를 지은 코델리아는 짐짓 요망하게 말했고, 유더는 바로 반응을 보였다.
“어, 계속 보고 싶어.”
“보고 싶다고 말하면 계속 해줄··· 어?”
“계속 보고 싶어.”
유더는 코델리아의 파란 눈동자를 똑바로 바라보며 진지하게 말했고, 코델리아는 멍한 얼굴로 눈을 깜박였다. 그리고 어버버 거리기 시작했다.
“아, 아니. 그··· 뭐······.”
“귀여워, 코델리아.”
유더가 다시 말했고, 코델리아의 얼굴은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아니, 이게 지금 뭐라는 거야.
무슨 이상한 약이라도 먹은 거 아냐?
코델리아는 혼란 속에 어쩔 줄을 몰라 했고, 그 모습을 진지하게 바라보던 유더는 상큼하게 웃으며 말했다.
“토끼귀가 귀엽다고, 토끼귀가. 아, 토끼꼬리도 귀엽긴 해.”
“이익!”
능글맞게 말하는 유더의 등짝을 일단 한 대 후려친 코델리아였지만 이미 육체능력으로는 차이가 많이 벌어진 둘이었다.
유더는 실실 웃으며 아픈 시늉을 했고, 코델리아는 더욱 열심히 유더를 때려댔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와, 언니 귀엽다.”
화염 속성 풀세팅을 한 붉은바람이 감탄을 토했는데, 그 시선이 코델리아의 머리에 가 있었다.
토끼 귀를 감싸듯 자리한 푸른 보석이 박힌 은색 티아라.
코델리아는 체이스 백작의 차녀답게 흥흥거리며 답했다.
“누구누구 씨가 제발 해달라고 애원해서.”
“애원까지 한 적은 없다만?”
“그럼 뺀다?”
“아닙니다, 마님. 최고로 귀여워요.”
유더가 능글맞게 말하자 흥 소리를 내며 시선을 돌린 코델리아였지만 딱히 머리띠에는 손을 대지 않았다.
가만 보면 뺨도 살짝 달아올라 있었고 말이다.
그리고 이런 두 사람의 모습에 거친눈사태가 말했다.
“아오, 오글거려.”
역시 환장의 커플.
주변 사람들을 아주 환장하게 만든단 말이지.
“그래도 귀엽다.”
붉은바람이 헤헤 웃으며 말하자 얼굴이 한층 붉어진 코델리아는 몇 번인가 입술을 움츠리더니 슬쩍 화제를 돌렸다.
“아무튼 이제 갈 거야. 준비 다 됐지?”
“준비 다 됐다.”
붉은바람이 제일 먼저 씩씩하게 답했고, 거친눈사태는 마지못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위대한폭풍 부족도 다 된 거 같네.”
유더가 저만치를 가리키며 말하자 코델리아도 고개를 끄덕였다.
위대한폭풍 부족의 주술사들이 만반의 채비를 갖춘 채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좋아, 그럼 출발하자. 유더위키, 앞장 서.”
“예, 마님. 앞장서겠습니다.”
정중히 답한 유더가 앞장서자 코델리아가 바로 뒤를 따랐고, 붉은바람과 거친눈사태, 위대한폭풍 부족의 주술사들 순으로 대열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한 시간 남짓.
서쪽으로 나아가던 유더가 돌연 옆을 돌아보며 말했다.
“그런데 코델리아.”
“응?”
“슬슬 연습해야 하지 않을까?”
“무슨 연습?”
“아델리아 대책 연습.”
유더의 말에 코델리아는 잠시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는 얼굴이 되었지만 이내 알아차리고는 흥 소리를 내며 말했다.
“연습 안 할 거거든? 그냥 언니 오면 그때 할 거거든?”
“아니, 그래도 연습해야지. 상대는 다름 아닌 아델리아인데. 게일 형이야 대충 말해도 넘어가겠지만 아델리아는 아닐 걸?”
“으윽.”
유더의 말대로였다. 기본적으로도 의심이 많은데 코델리아 일로는 더더욱 의심이 깊어지는 아델리아였으니 말이다.
“적어도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정론이었다.
하지만 코델리아도 바보는 아니었다. 필요하긴 했지만 굳이 지금 할 필요는 없었다. 더욱이 놀리려는 기색이 만연한 유더가 아닌가.
“몰라, 지금은 안 해. 아니, 생각해보니 연습은 나만 해야 하는 게 아니잖아. 나만 너 좋아하는 게 아니··· 아니, 내가 뭐라는 거야. 아무튼 일단 세간에는 서로 좋아하는 걸로 알려져 있으니까?”
“그럼 나부터 해볼까?”
“어?”
“사랑하는 코델리아 양. 오늘도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아니, 사랑스럽군요.”
유더가 상큼한 미소를 지으며 말한 그 순간 코델리아는 뇌정지를 느꼈다.
그대로 멍한 얼굴이 되더니 이내 유더를 마구 때리기 시작했다.
“하지 말라구! 하지 마!”
“아니, 연습을 하긴 해야! 아! 아파! 야! 진짜로 아파!”
“안 아픈 거 다 알거든?!”
“아니! 그렇게 때리면 나도 아프거든?!”
지금까지의 정타 공격에서 채찍처럼 찰싹찰싹 피부를 때리는 것으로 공격법을 전환한 코델리아였다.
과연 전투의 천재.
어떻게든 피해를 입힐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 코델리아다웠다.
그렇게 유더와 코델리아가 옥식각신하며 나아가고 있을 때.
“알콩달콩 아주 난리가 났구만.”
“언니 귀엽다. 헤헤.”
거친눈사태는 끌끌끌 혀를 찼고, 붉은바람은 눈을 빛냈다.
그리고 다시 십여 분 남짓.
“그만, 그만 때려. 다 왔다고.”
“헉헉, 아직 멀었··· 진짜네.”
겹겹이 쌓인 거대한 바위무덤.
저 아래에 불사조를 봉인한 지하 유적으로 이어지는 길이 숨겨져 있었다.
“좋아, 그럼 시작해보자.”
죽어도 부활하니 봐줄 필요 따위 없는 불사조 포획- 아니, 섬멸 작전.
유더와 코델리아가 서로를 보았고, 거친눈사태는 얼굴도 모르는 불사조를 위해 묵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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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원작에서는 자연재해로 바위무덤이 무너져 입구가 드러났지만, 그건 야생의 땅이 막장으로 치달았을 때야 일어나는 일이었다.
때문에 유더와 코델리아는 다른 방법을 쓰기로 했다.
“용맥 없나?”
“없다, 이 악마야.”
“에이, 왜. 합법이잖아.”
코델리아가 애교를 부리듯 우훙훙 웃으며 말했지만 유더는 절레절레 고개를 가로젓더니 거친눈사태를 돌아보았다.
“도와주시죠.”
“으으··· 본체가 아니라 힘이 없는데.”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나으니.”
애당초 거친눈사태를 데려온 것은 힘쓰는 일이 아닌 다른 쪽의 도움을 받기 위해서였지만 그래도 야생신은 야생신이었다.
“좋아! 힘 좀 써보자!”
거친눈사태가 두 팔을 벌리며 우오오 기합을 내뱉자 바위무덤이 꿈틀거렸다.
염동력으로 바위무덤을 살짝 들어 올려 옮기기 쉽게 한 것이었다.
“그럼 나도.”
코델리아 역시 마녀로 변신한 뒤 염동력을 발휘했다.
푸른 안광이 한 번 빛날 때마다 커다란 바위가 척척척 옆으로 옮겨졌다.
“유더 오빠, 우린 뭘 하면 되나.”
“우린 염동력이 없으니 구경이나 하면 된단다.”
아쉽게도 팝콘은 없으니까.
붉은바람의 머리를 쓰다듬어준 유더는 잠시 기다렸고, 5분 남짓이 지나자 바위무덤이 깨끗하게 치워져 동그란 입구가 드러났다.
“과연, 고대의 술식이구나. 하이 엘프들의 흔적도 보이고.”
거친눈사태의 말에 유더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황상 무명의 정령전사는 마도왕국 마젤란의 하이 엘프일 가능성이 높았으니 말이다.
“봉인지 안쪽은 짧지만 던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불사조의 봉인을 지키기 위한 방어체계가 갖춰져 있으니까요.”
“음, 안다. 어제 네가 적어준 것들을 몇 번이나 읽었으니 말이다.”
“나도 여러 번 읽었다. 우리 말로 되어 있어서 읽기 쉬웠다.”
붉은바람이 손을 번쩍 들며 말하자 흐뭇한 얼굴이 된 유더가 모두를 돌아보며 말했다.
“봉인지 안에는 저와 코델리아, 붉은바람과 거친눈사태님만 들어갈 겁니다. 하지만 불사조와의 본격적인 전투는 유적 밖이 될 터이니 준비해주시기 바랍니다.”
“알겠습니다, 수호자시여.”
위대한폭풍 부족의 주술사들을 대표하여 대주술사 서리바람이 말했다.
붉은질풍의 친우인 그는 강력한 바람술사였다.
“좋아, 준비 됐어?”
“준비 됐어.”
포션 한 병을 꿀꺽 삼킨 코델리아가 입술을 훔치며 말하자 유더는 봉인지 앞으로 다가갔다.
입구를 막고 있는 마법진 위에 해금의 진형을 그려 봉인을 해제했다.
“해금.”
시동어를 외친 순간 지면에 금이 가더니 우르르 소리를 내며 봉인진이 그려져 있던 바닥이 무너져 내렸다.
그렇게 뚫린 구멍의 직경은 2미터 남짓.
구멍 안쪽을 슥 하니 내려다본 유더는 고개를 끄덕였다. 원작에서처럼 대충 10미터 남짓한 높이 같았다.
“코델리아.”
“흥.”
괜히 한 번 흥흥거린 코델리아는 유더의 곁에 다가섰고, 유더는 그런 코델리아를 안아들었다.
“붉은바람, 거친눈사태 님을 부탁해.”
“맡겨라.”
씩 웃으며 엄지를 치켜세운 붉은바람은 아기곰인 거친눈사태를 품에 안았다.
“준비 잘 부탁드립니다.”
“맡겨주십시오.”
마지막으로 서리바람에게 당부한 유더는 구멍 안쪽으로 훌쩍 몸을 날렸다.
< 제33장 - 불사조 #3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