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엔딩메이커-97화 (97/473)

< 제33장 - 불사조 #4 >

탁-

화려하게 인 황금빛 선풍 덕에 거의 깃털처럼 내려앉은 유더는 코델리아를 내려놓았고, 연이어 쿵하는 소리와 함께 붉은바람이 착지했다.

“조심해, 저 선을 넘어가면 바로 공격이 시작될 테니.”

낮게 말한 코델리아는 바로 마법의 불빛을 밝혀 어둠을 몰아냈다.

“과연, 하이 엘프들의 양식이구나. 역시 무명의 정령전사는 하이 엘프였던 모양이군.”

거친눈사태의 말을 흘려들으며 유더와 코델리아는 시선을 멀리하였다.

일직선으로 된 봉인지 안쪽에 불사조가 봉인된 바위 알이 보였다.

“준비 됐어?”

“나는 준비 됐어.”

“붉은바람은?”

“저도 준비 됐어요.”

“좋아, 그럼 출발하자.”

“나는 안 물어보나?”

줄줄이 이어지던 목소리가 거친눈사태에서 마무리가 되었다.

유더는 그냥 앞만 봤지만 착한 코델리아는 거친눈사태를 위해 입을 열었다.

“거친눈사태님도 준비 되셨죠?”

“되었다.”

“좋아요, 그럼 출발해요.”

코델리아가 유더의 등을 두드리자 유더가 고개를 끄덕였다.

머릿속으로 원작의 던전을 떠올렸다.

‘무식한 함정의 연속.’

불사조의 봉인지이기 때문인지 무지막지한 화염 공격이 이어지게 되어 있었다.

하지만 어디서 무슨 공격이 어떻게 날아올지 안다면 충분히 대응할 수 있었다.

“대형 완료. 출발!”

쿵!

유더가 지면을 박차 선두에 나섰다.

순간 머리 위에서 불꽃의 포화가 쏟아져 내렸지만 유더는 주저하지 않고 오른손을 높이 들었다. 체이스 백작의 반지로 쉴드를 만들어 불꽃을 막아냈고, 1초도 지나지 않아 불꽃 지대를 지나쳤다.

“차가운 냉기여!”

그리고 바로 그 뒤를 코델리아가 달렸다. 냉기 속성으로 풀세팅을 한 코델리아인 터라 여간한 화염 따위는 아예 피해조차 줄 수 없었다. 이미 유더가 지나가 한풀 기세가 꺽인 불꽃을 냉기 마법으로 밀어내니 역시나 가볍게 통과할 수 있었다.

“우오오!”

거친눈사태는 그냥 달렸고, 붉은바람도 그러했다. 애당초 화염 속성으로 풀세팅을 한 붉은바람이었기에 코델리아와는 다른 의미로 불꽃에 강했다.

“계속해서!”

“간다!”

이번에는 코델리아가 앞장섰다.

양옆으로 냉기 속성을 씌운 염동력을 발해 불꽃의 포화 자체를 사전에 차단해버렸고, 유더가 앞으로 나서며 쉴드를 펼쳐 기습적으로 날아든 불꽃을 막아냈다.

“우오오!”

거친눈사태는 이번에도 그냥 달리기만 하였고, 붉은바람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렇게 다섯 번.

마침내 함정지대를 모두 돌파한 유더와 코델리아는 한 차례 눈빛을 교환한 뒤 바로 행동에 나섰다.

“칼라마이트의 검이여!”

늘상 사용하던 칼라마이트의 창을 검으로 바꾼 버전이었다.

칠흑의 불꽃 검을 거머쥔 코델리아는 바닥에 그려진 마법진을 마구 갈라 봉인 그 자체를 파괴했다.

콰가가-!

지면에서 스파크가 일며 마법의 기운이 사방으로 분출되었고, 붉은바람은 숨을 삼켰다. 손에 거머쥐고 있던 축복받은 둔기를 휘둘러 바위 알을 강타했다.

콰가강-!

벼락이 쳤다.

천둥소리와 함께 바위 알이 깨졌고, 그 순간 거대한 포효가 봉인지 전체를 뒤흔들었다.

“키아아아아-!”

아침을 밝히는 계명성을 연상케하는 불사조의 포효였다.

눈앞이 불꽃으로 물들었고, 노란색이 시야를 가득 채웠다.

열기가 온 몸을 녹일 것만 같았다.

“우오오!”

바로 그 순간 거친눈사태가 폴짝 뛰어올랐다. 유더는 그런 거친눈사태를 낚아채더니 그대로 미리 계산해둔 위치에 거친눈사태를 밀어넣었다.

콰가가-!

불꽃의 노도와- 정확히는 이제 막 시작되려는 불꽃의 포화와 거친눈사태가 충돌했다.

비록 약해졌다고는 하나 야생신.

그것도 바위산 하나를 지배하던 눈사태의 야생신인 거친눈사태였다.

강력한 냉기의 힘으로 불꽃을 저지하니, 불사조가 깨어나며 일어나는 사멸의 불꽃이 상쇄되어 사그라졌다.

“끄아!”

비명 아닌 비명을 지르는 거친눈사태를 급히 회수한 유더는 고개를 번쩍 들었다. 깨어난 불사조가 크게 훼를 치더니 그대로 밖을 향해 날아올랐기 때문이다.

“서둘러!”

“합체!”

도도도 달려와 찰싹 달라붙는 코델리아를 안아든 유더는 그대로 불사조를 쫓아 달렸고, 붉은바람은 헤롱헤롱하는 거친눈사태를 안아든 뒤 뒤를 따랐다.

그리고 직후.

“키아아!”

봉인지 밖으로 날아오르려던 불사조가 비명을 질렀다.

봉인지 밖에서 대기 중이던 위대한폭풍 부족의 주술사들이 펼쳐놓은 냉기 마법진 때문이었다.

“오케이!”

원작에서는 붉은바람 혼자만의 힘으로 맞서야 했던 불사조였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렇기에 할 수 있는 것.

원작에서는 시도할 수 없었던 쉽고 빠른 공략법!

“차핫!”

벽을 박찬 유더가 단숨에 날아올라 구멍을 빠져나갔다. 그대로 코델리아를 안은 채 바닥을 한 차례 구른 뒤 재빨리 몸을 일으켜 세웠다.

“쿠오오!”

불사조가 노성을 토하며 위대한폭풍 부족의 대주술사인 서리바람을 향해 돌진했다.

예상대로의, 그리고 계획대로의 수순이었다.

“코델리아!”

“오케이!”

콰가가가가-!

서리바람과 주술사들이 펼친 주술이 불사조를 막았다.

먹이를 낚아채는 새매처럼 서리바람을 공격하려던 불사조는 잠시나마 지상에 발이 묶였고, 바로 그 틈을 코델리아가 파고들었다.

“프리즈!”

단순한 냉기 속박 주문.

하지만 사용자가 코델리아라는 사실이 중요했다.

‘더블 캐스팅! 거기에 주문의 메아리!’

하나의 주문이 순식간에 넷이 되었다.

거기에 코델리아는 레벨 60을 달성하며 손에 넣은 힘을 추가하였다.

“프리즈! 프리즈! 프리즈!”

고속영창.

빠르게 마법을 연속 사용할 수 있게 해주는 마법사들만의 고유 기술.

비교적 단순한 마법인 프리즈였기에 아직 고속영창의 숙달도가 낮음에도 불구하고 네 번이나 연속해서 사용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모두에 더블 캐스팅과 주문의 메아리가 적용되었으니-

“끄아아!”

불사조가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렀고,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불사조의 전신이 얼어붙기 시작한 것이다.

“프리즈 16연타!”

유더가 소리쳤고, 코델리아가 코피를 흘렸다.

순식간에 마법을 너무 난사한 탓이었다.

하지만 코델리아는 굴하지 않고 포션을 삼켰다. 유더가 앞으로 달려 나가며 밤새 그린 마법진들을 연달아 찧었다.

“마법 고정! 항마 삭감!”

이미 걸린 마법의 유지 시간을 늘리고 적의 항마력을 깎는다.

전신이 불꽃인 불의 정령 불사조였다. 얼어붙은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이쪽에서도 제법무리를 해야만 했다.

“좋아! 연타 간다!”

입술을 훔치는 동시에 코에서 흐른 피도 닦아낸 코델리아가 기세 등등하게 외치며 다시 한 번 프리즈 16연타를 시전했다. 이미 얼어붙어 있던 불사조를 더더욱 꽝꽝 얼어붙게 만들었다.

“끄아아!”

이 와중에도 불사조는 계속해서 비명을 질렀다.

아니, 지를 수 있었다.

유더와 코델리아가 불사조의 머리만은 얼어붙지 않도록 마법을 조정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째서일까.

왜 머리는 남겨둔 것일까.

“붉은바람!”

“머리! 머리! 머리! 머리!”

거친눈사태와 함께 뒤늦게 구멍을 빠져나온 붉은바람을 향해 코델리아가 외쳤다. 그리고 그 외침에 붉은바람이 반응했다.

어제 배운 그대로 머리를 외쳐대며 축복받은 둔기를 휘둘렀다.

“악! 악! 악!”

실체가 없는 불꽃 정령이기에 대부분의 물리 공격에 면역을 가진 불사조였지만 붉은바람의 공격은 예외였다.

거친눈사태와 고운눈바람, 위대한폭풍이라는 야생신 셋의 축복이 어린 둔기는 불사조의 영체 그 자체에 타격을 주었다.

“머리! 머리! 머리! 머리!”

얼어붙어 꼼짝도 못 하는 불사조의 머리를 붉은바람이 미친 듯이 난타했다.

불사조는 비명을 지르며 얼음을 깨부수려 했지만 무리였다. 유더와 코델리아가 그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프리즈 16연타!”

“마법 고정! 항마 삭감!”

쩡! 쩡! 쩡!

얼음이 좀 깨져나가나 싶으면 다시 냉기가 몰려왔다.

낮아진 항마력 때문에 붉은바람의 공격이 더 아프게 꽂혔다.

“끄악! 악!”

“머리이!”

붉은바람은 멈추지 않았다. 땀을 뻘뻘 흘려가며 연격을 퍼부었고, 유더는 머릿속으로 불사조의 체력과 붉은바람의 공격력, 그로 말미암아 펼쳐야 할 총 공격횟수를 계산했다.

“50대만 더!”

“히익?!”

유더의 외침에 비명을 삼킨 것은 불사조였다.

앞으로 50대 더.

50대나 더.

“끼아악!”

불사조가 소리 높여 비명을 지르자 코델리아는 거친눈사태를 돌아보았다.

통역을 바라는 눈빛을 보내자 찰떡같이 알아들은 그가 말했다.

“차라리 단 칼에 죽이라는군.”

“과연.”

하지만 무리였다.

붉은바람에게는 아직 그럴 역량이 없었다.

그저 열심히 한 대 한 대 패서 50대를 채울 뿐.

“쯔쯔쯔, 어쩌다 이것들한테 걸려서.”

끌끌끌 혀를 찬 거친눈사태는 아직 살아있는 불사조를 위해 묵념했다.

그리고 그 와중에 유더는 코델리아를 돌아보며 물었다.

“한 번 더 가능해?”

“해볼게!”

사실 눈앞이 어질어질한 코델리아였지만 일부러 활기차게 말한 뒤 재차 프리즈를 영창했다.

얼핏 여유로운 상황 같았지만 사실은 전혀 아니었다.

위대한폭풍 부족의 주술사들이 힘을 모아 설치해둔 마법진 덕분에 아슬아슬하게 불사조를 붙잡고 있는 상황이니, 조금만 방심하면 놈이 얼음을 깨부수고 도망칠 터였다.

“붉은바람! 서둘러!”

코델리아의 말마따나 프리즈를 연속 시전할 수 있는 것은 이번이 마지막이었다.

유더의 재촉에 붉은바람은 다시 한 번 기합을 토하며 둔기를 휘둘렀다.

“머리이!”

쾅! 쾅! 쾅!

불사조의 등에 올라타 삼연격을 퍼부은 붉은바람이 순간 흠칫하더니 그대로 몸을 날렸다.

마지막 공격을 펼친 순간 ‘손맛’이 느껴진 탓이었다.

“좋아! 50대 채웠다!”

비틀거리는 코델리아를 부축하며 유더가 외쳤고, 코델리아는 볼 수 있었다.

츠화아아-!

불사조를 봉인하고 있던 얼음이 녹아내렸다.

그리고 불사조의 불꽃 역시 사그라졌다.

하지만 잠깐뿐이었다.

허공에서 다시 작은 불꽃이 피어올랐다. 노랑으로 시작한 그 불꽃은 파랑을 지나 다시 빨강이 되었고, 그대로 크게 피어올라 새로운 불꽃의 새가 되었다.

“아아아!”

맑고 청아한 목소리였다.

원작에서처럼 사악한 불사조가 죽고 새로이 맑고 순수한 아기 불사조가 태어난 것이었다.

“와아······.”

붉은바람이 둔기를 늘어트리며 감탄을 토했고, 위대한폭풍 부족의 주술사들 역시 그러했다.

하지만 유더와 코델리아는 오히려 긴장한 상태로 마른침을 삼켰다.

어떻게 보면 지금 이 순간이 불사조를 쓰러트리는 것보다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붉은바람을 주인으로!’

유더가 속으로 외친 그때 불사조가 허공에서 홰를 치더니 지상의 모두를 돌아보았다.

“어, 눈 마주쳤다.”

코델리아가 그렇게 말한 순간 아기 불사조는 돌연 몸을 떨더니 붉은바람을 향해 날아갔다. 어째 도망치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음, 그나마 낫다는 거군, 탁월한 선택이다.”

거친눈사태의 해설에 미간을 좁힌 코델리아였지만 이내 활짝 웃었다. 붉은바람의 어깨 위에 앉은 불사조의 모습 때문이었다.

“제대로 된 것 같네.”

새로 태어난 불사조가 붉은바람을 주인으로 인정했다.

붉은바람은 조심스럽게 불사조에게 손을 뻗었고, 새로 태어난 터라 아직은 작은- 비둘기보다 조금 큰 불사조는 호응하듯 붉은바람의 손 위에 올라탔다.

그것이 의미하는 것.

“나와 함께 해줄래?”

붉은바람이 야생의 땅의 언어로 묻자 불사조가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계약을 성립하듯 붉은바람의 뺨에 머리를 비볐다.

“헤헤헤. 불사조에요! 불사조!”

붉은바람이 활짝 웃으며 유더와 코델리아를 보았고, 두 사람은 한시름 놓았다는 얼굴로 한숨을 쉰 뒤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미소를 지었다.

“한 건 했네.”

“한 건 했지. 소득도 있고.”

“응? 소득?”

무슨 말일까. 불사조는 붉은바람의 것이 되었는데.

코델리아가 고개를 갸웃하자 유더는 씩 웃더니 봉인지를 빠져나올 때 챙긴 것을 꺼내들었다.

붉은 기운이 어린 황금빛 깃털.

강력한 불꽃의 힘은 물론이고 재생의 힘까지 깃들어 있는 기물.

“불사조의 깃털.”

그것도 천년 이상 묵은 불사조의.

“우왕.”

코델리아가 아이처럼 감탄하자 유더는 씩 웃으며 꺼내든 깃털을 그녀의 머리에 꽂아주었다.

상큼하게 웃으며 말했다.

“마음에 들지?”

“응! 마음에 들어!”

바로 답한 코델리아는 붉은바람처럼 헤헤헤 웃더니 이내 다시 자세를 바로 하며 말했다.

“좋아, 남은 시간은 6일. 돌아가면 당장 특훈을 시작하는 거야.”

불사조만 얻었다고 능사가 아니었으니까.

이제부터 남은 시간동안 불사조를 다루는 법은 물론이고 태양노래와 싸울 방법을 머리는 물론이고 몸에까지 각인해야 하는 붉은바람이었다.

유더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너도 틈틈이 연습하고.”

“우그으······.”

연습.

코델리아의 얼굴이 엉망진창이 되었고, 흐뭇한 미소를 지은 유더는 게일과 아델리아에게 감사했다.

&

< 제33장 - 불사조 #4 > 끝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