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엔딩메이커-108화 (108/473)

< 제39장 - 조우 #2 >

&

“하아, 이제 좀 살겠네요.”

게일이 만든 천막 안에 자리를 잡은 아델리아가 두 다리를 쭉 펴며 안도의 숨을 토했다.

방금까지 칼바람에 시달린 터라 바람을 막아주는 천막의 존재가 너무나 소중했다.

“무리하지 말고 오늘은 여기서 쉬었다 가죠.”

“네, 게일 공자. 게일 공자도 이리 오세요. 마법 걸어드릴게요.”

“감사합니다. 아델리아 양 덕분에 호강을 하는군요.”

“호강은 제가 하고 있는 걸요, 뭘.”

아델리아가 부드럽게 웃으며 답하자 게일 역시 미소를 지었다.

바이엘 백작가 사람들에게는 익숙하기 그지없는 상큼한 미소였다.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네에.”

다소곳이 답한 아델리아는 게일이 자신의 옆에 앉기를 가만히 기다렸다.

체이스 백작가- 아니, 왕도의 부하들이 보면 몇 번이고 눈을 깜박일 정도로 평소의 아델리아와는 거리가 먼 모습이었지만, 그런 것을 신경쓸 사람 따위 이 자리에는 없었다.

“히트 웨이브.”

아델리아가 주문을 읊조리자 이내 뜨거운 열기가 천막 안을 덥히기 시작했다.

꽁꽁 얼었던 손끝이 녹기 시작했고, 그저 돌덩이처럼만 느껴지던 발가락에도 찌릿한 감각과 함께 다시 피가 돌기 시작했다.

“하으······.”

짜릿한 감각에 아델리아가 반사적으로 목소리를 흘리자 게일은 다시 작게 웃더니 몸을 살짝 일으키며 말했다.

“동상에 걸릴지도 모르니 신발은 벗어두는 게 좋을 겁니다. 제가 벗겨드릴게요.”

“네? 어··· 네. 부탁···드릴게요.”

아델리아가 다시 얌전히 답했다.

왕도의 부하들- 아니, 동료 단장들이 보았다면 ‘사악한 도플갱어놈! 진짜 아델리아는 어디에 있는 것이냐!’라고 외칠 법한 광경이었지만, 가짜가 아니었다.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은 진짜 아델리아였다.

‘상냥해.’

정성스럽게 신발을 벗기는 게일을 보며 아델리아는 생각했다.

사실 여행 초기였으면 ‘저도 손 있습니다. 저리 가시죠.’라며 게일의 호의를 매정하게 밀쳐냈을 아델리아였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아무것도 아닌 사이는 아닌 사이니까.’

그 날.

게일이 촉촉하게 젖은 눈으로 아델리아 자신을 바라보며 꺼낸 한마디.

‘아무 사이도··· 아닌 건가요?’

상처 입은 어린양 같은 그 목소리가 모든 것을 바꾸어놓았다.

끝끝내 저항하고 있던 마지막 마음의 빗장을 열어버리고 말았다.

“후, 역시 꽁꽁 얼었군요. 마사지 해드릴 테니 너무 놀라지 마세요.”

다시 부드럽게 말한 게일은 아델리의 발을 조심스럽게 주무르기 시작했고, 아델리아는 얼굴을 붉힌 채 입술을 움츠렸다.

“그··· 냄새나지 않아요?”

젖은 상태로 오랜 동안 신발 속에 있었는데.

“괜찮습니다.”

기사들 사이에서 나고 자란 인물답게 이런 쪽으로는 은근히 말재주가 없는 게일이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중요한 건 사실 말주변이 아니었다.

콩깍지의 힘은 위대했으니 말이다.

‘상냥해······.’

이런저런 말을 갖다 붙이는 대신 담백하게 말하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더욱이 발을 주무르는 저 손길과 눈빛을 보라.

음흉한 마음 따위는 조금도 없는, 그저 순수하게 아델리아 자신을 걱정하는 게일의 마음이 여실히 드러나지 않는가.

‘약간은 품어도 되는데.’

저도 모르게 생각한 아델리아는 흠칫했고, 그러한 경직을 오해한 게일이 조심스레 물었다.

“혹시 아프신가요?”

“아, 아뇨. 괜찮아요. 덕분에 무척 편해졌어요.”

애써 태연을 가장한 아델리아는 얼른 두 발을 회수했고, 게일은 다시 미소 짓더니 아델리아의 곁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아델리아는 생각했다.

‘나도 주물러준다고 해야 하나?’

아니, 그건 좀 이상하려나?

차라리 손 씻으라고 뜨거운 물을 만들어줄까?

눈이야 주변에 널렸고, 열기야 마법으로 만들어내면 되니까.

아델리아가 열심히 머리를 핑핑 돌리는 동안 게일은 자기 손으로 신발을 벗더니 그대로 발을 주무르기 시작했다.

“환기를 조금 하긴 해야겠네요. 죄송합니다.”

머쓱하게 말한 게일은 단단히 봉했던 천막 문을 살짝 열었고, 새로이 밀려든 차갑고 신선한 공기에 아델리아는 새삼 정신을 차렸다.

‘후우, 후. 진정하자, 진정해. 아델리아.’

아무 사이도 아닌 사이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무언가 명확하게 정의내릴 수 있는 사이도 아니었다.

‘그래, 진정하자. 진정해, 아델리아.’

숨을 크게 삼킨 아델리아는 나름 냉정을 되찾았다. 그리고 아델리아가 그러는 사이 짐에서 담요를 꺼낸 게일은 천막 문을 봉한 뒤 다시 난방 대책을 시작했다.

“덮으세요. 조금 쉬었다가 식사를 준비하겠습니다.”

“게일 공자도 일단 몸 좀 녹이세요.”

아델리아가 담요를 덮으며 말하자 게일은 잠깐 망설이는가 싶더니 아델리아 옆에 자리를 잡았고, 아델리아는 그런 게일과 함께 담요를 덮었다.

“코델리아와 유더는 잘 하고 있겠죠?”

“잘 하고 있을 겁니다. 겨우 두어 달이지만··· 이번에 여행하며 두 사람 모두 크게 성장한 것 같으니까요.”

단순히 무력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었다.

정신적으로도 이미 크게 성장한 두 사람이었다.

“언제 그렇게 큰 걸까요.”

“그러게요. 연애에 빠진 철 없는 아이들인줄 알았는데······.”

말끝을 흐리던 게일은 웃으며 아델리아를 돌아보았고, 아델리아도 그런 게일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두 사람은 깨달았다.

얼굴이 너무 가깝다는 사실을.

서로의 숨결이 닿을 만치 가까운 거리라는 것을.

아델리아가 저도 모르게 입술을 살짝 벌렸다. 게일이 그런 아델리아의 입술을 바라보았고, 어느 순간 다시 두 사람의 눈빛이 교차했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서로의 거리를 좁혔다.

달뜬 숨을 토한 아델리아가 두려움과 기대 속에 떨리는 가슴을 부여잡았고,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 직후.

콰강!

굉음과 함께 천막이 부서졌다. 동시에, 아니, 그보다 조금 빠른 순간 게일이 아델리아를 덮치듯 쓰러트려 똑바로 날아온 공격을 회피했다.

트르르!

천막을 부수고 돌 벽에 박힌 쇠뇌가 부르르 떨렸다.

게일의 밑에서 아델리아는 눈을 번쩍 떴고, 두 사람 사이에 흐르던 분홍빛 기류가 일순간에 흩어졌다.

쾅!

두 번째 폭음이 터졌다. 이번에는 아델리아 쪽이었다. 강력한 마력의 파장으로 부서진 천막은 물론이고 폭발하려는 쇠뇌조차 날려버렸다.

그리고 게일이 몸을 일으켜 세웠다. 재빨리 검을 뽑아들며 쇠뇌가 날아온 방향을 노려보았다.

“아홉.”

단번에 숫자를 파악했다.

시각만이 아니라 기감에까지 의존해 밝혀낸 숫자였다.

“악마 추종자.”

아마도 마인.

소형 발리스타를 한 손에 거머쥔 거한이 저만치 먼 곳에서 미소 짓고 있었다.

놈의 주위에는 카라발에서 보았던 흉측하게 뒤틀린 괴물 몇이 개목걸이를 찬 채 침을 질질 흘리며 이쪽을 노려보았다.

게일은 생각했다.

어째서 남쪽으로 한참 내려온 이곳에 놈들이 나타난 것인지 단번에 추리해냈다.

‘유더와 같아.’

서부의 후방을 유린하기 위해 떠난 유더.

서부도 마찬가지였다. 비슷한 생각으로 동부에 병력을 파견했을 터였다.

‘하늘지붕 산맥.’

야생신들조차도 거하지 않는 죽음의 땅.

그렇기에 놈들은 하늘지붕 산맥을 우회하는 대신 남쪽으로 크게 우회해 동부로 침투하는 길을 택했다.

그렇게 이동하던 놈들과 마주친 상황이었다.

“운이 좋군.”

게일을 공격한 중급마인 가라드가 웃음을 흘렸다. 게일과 아델리아를 본 순간 가라드 역시 비슷한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저놈들이 분명하다.’

서부에서 작전을 수행 중이던 악마의 눈의 마인들을 하나하나 격파해 마침내는 몰살시킨, 이기기 위해서라면 그 어떤 희생도 마다하지 않는 피도 눈물도 없는 괴물들.

어폐가 상당한, 그리고 결정적으로 사람을 잘못 본 완벽한 오해였지만, 가라드의 착각도 나름 근거가 있었다.

야생의 땅에서 세일룬 왕국인 커플이, 그것도 눈이 확 떠지는 미남미녀 커플이 따로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웠으니 말이다.

“하라겐 님이 기뻐하시겠군.”

딱히 살려서 데려갈 이유도 없으니 마음껏 유린해줄 생각이었다.

가라드의 입꼬리가 올라가며 변이가 시작되었다.

공명심과 천박한 욕망으로 번들거리던 눈이 수십 조각으로 갈라져 겹눈이 되었고, 그렇지 않아도 커다란 몸이 더욱 부풀어 올랐다.

사슴벌레를 연상시키는 검고 광택이 도는 껍질이 갑옷처럼 전신을 에워쌌다.

이마에 뿔이 돋아났고, 턱이 갈라져 곤충과 같은 입이 되었다.

“농락해주마.”

가라드는 이긴 이후를 생각했다.

오른팔에 차고 있던 소형 발리스타를 떨침과 동시에 쏜살같은 기세로 돌진했다.

“갈!”

그 순간 게일이 크게 외쳤다. 지면을 박차 가라드를 향해 마주 돌진했고, 아델리아는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마물과 뒤섞인 최하급 마인들이 괴성을 지르며 지면을 박차올랐다.

콰강!

가라드와 게일이 충돌한 순간 굉음이 터졌다.

정확히는 가라드의 거대한 주먹이 지면을 부수며 난 소리였다.

츠콰학!

바람처럼 가라드의 공격을 피한 게일의 검이 푸른빛을 발하며 휘몰아쳤다.

날카로운 검기가 가라드의 허리쪽 껍질을 부수듯 갈라놓았다.

“크악!”

상상 이상으로 강력한 게일의 공격에 가라드가 당황했다. 하지만 이미 몸을 빼기에는 너무 가까워진 상황이었다. 재차 주먹을 휘두르며 최하급 마인들에게 명령했다.

“여자를 죽여!”

그리하여 게일의 정신을 분산시킨다.

유효한 명령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외친 순간에도 게일은 아델리아를 돌아보지 않았다.

믿고 있었으니까.

아니, 그저 알고 있었으니까.

아델리아의 전력을.

그녀의 강함을.

쾅! 쾅! 쾅!

벼락이 쳤다. 아델리아의 특기인 고속영창으로 만들어진 벼락들이 기세 좋게 돌진하던 최하급 마인들을 강타했다. 단발로 끝나지 않고 마치 튕기듯 퍼져나갔다.

체인 라이트닝.

근위마법병단 내에서도 ‘섬광’이라 불리는 그녀의 주문영창은 통상의 3배 속도에 달했다. 더욱이 그렇게 빠른 영창과 마법 구성에도 불구하고 마법의 정밀도 역시 크게 떨어지지 않았다.

“끄아악!”

서로에게 튕기고 튕긴, 연쇄되는 번개의 지옥에 갇힌 최하급 마인들이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뒹굴었지만 이제 시작에 불과했다.

“이 쓰레기들이!”

아델리아가 욕지거리를 토하며 다시 새로운 마법들을 영창했다. 눈에서 하얀 안광을 발하며 공격마법을 난사하는 그녀의 모습은 지상에 강림한 솔라리의 전투천사를 연상케 했다.

쾅! 쾅! 쾅!

아델리아의 손속에 자비란 없었다. 아니, 오히려 평소보다 과한 힘으로 적들을 몰아붙였다.

분노 때문이었다.

‘하필, 하필, 하필!’

그 순간에!

‘처음이었는데!’

아니, 처음이 될 예정이었는데!

아델리아의 머릿속에 불과 십여 초 전의 상황이 떠올랐다.

다시 그보다 몇 초 전에 떠올린 수많은 지식들이, 관심 없는 척 챙겨들었던 수많은 이야기들이······.

“불타라! 찢어져라! 붕괴해라!”

아델리아가 세 가지 서로 다른 마법을 연속해서 시전했다.

지옥의 화염.

바람의 칼날.

물질붕괴.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근위마법병단 내에서도 천재라 불리는, 최연소 단장 자리를 오직 실력만으로 쟁취해낸 아델리아이기에 가능한 연속 시전.

“끄아악!”

“악!”

최하급 마인들은 뭘 어떻게 해보기도 전에 하나씩 도륙당했고, 가라드는 당황했다.

‘너무 세잖아!’

동부에서 당한 마인들이 죄다 중급 이상이었으니 어느 정도 강할 거라 짐작은 했지만 강해도 너무 강했다.

더욱이 마법사만이 아니었다. 눈앞의 남자 역시 평범한 검사가 아니었다.

츠카악!

날카로운 바람이 불었다.

게일은 바람이 되었고, 동시에 바람을 부리는 자가 되었다.

가라드의 거칠고 투박한 공격 따위 게일을 스치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크아아!”

결국 괴성을 토한 가라드는 전력을 다해 지면을 박차 올랐다. 억지로 게일과 거리를 벌림과 동시에 허리에 차고 있던 신호탄을 내던졌다.

쾅! 쾅!

허공에 붉은 빛이 터졌다.

자칫 우회중인 병력들 모두를 노출시킬지도 모를 행동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애당초 집결 예정이기도 하였고!’

서부에서 파견한 동부 잠입 부대는 모두 일곱.

서로 출발지점이 달랐던 터라 이 근방에서 한 번 집결해 전력을 점검할 예정이었다.

‘즉, 다른 놈들도 이 근방에 있을 터!’

가라드는 솔직히 인정했다.

눈앞의 남녀는 홀로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어째서 서부에 파견되었던 마인들이 이렇다 할 성과 하나 내지 못 하고 죽어나갔는지 알 것 같았다.

그러니 괜한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

다른 마인들이 올 때까지 버티는 것에 주력한다!

“오오오!”

가라드가 전력을 개방했다. 어떻게든 게일의 공격을 버텨내는 쪽에 주력했다.

바른 판단이었다.

가라드의 계획은 틀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안 와!’

신호탄을 쏘고 시간이 벌써 꽤 지난 것 같건만 누구도 나타나지 않았다.

최소한 신호를 보았다는 연락이라도 와야 하는데 그것조차 오지 않았다.

어째서.

대체 무엇 때문에.

설마 놈들이 자신을 제거하려고?

그래서 신호를 보고도 무시하는?

‘아니! 그럴 리가!’

말이 되지 않았다.

다른 부대의 마인들이 가라드 자신의 상태를 어떻게 알고 그런 짓을 한단 말인가!

‘와라! 제발! 빨리!’

간절히 기원하며 가라드는 게일에게 맞섰다.

하지만 무리였다.

최하급 마인들을 모조리 제거한 아델리아가 흉흉한 기운을 발하며 다가왔고, 게일의 검기가 더욱 더 날카로워졌다.

그리고 마침내 결착.

“끄악······.”

자랑이던 거대한 두 팔이 모조리 잘려나간 가라드의 가슴에 게일의 검이 꽂혔다.

단단한 가슴 껍질을 부수고 돌진한 검 끝에서 검기가 폭발해 가라드의 몸속을 곤죽으로 만들었다.

콰가-

폭발의 여파로 뒷걸음치던 가라드는 피를 한 바가지나 토하며 쓰러졌고, 더 이상 움직이지 못 했다.

발끝에서부터 검은 재로 화해 사그라졌다.

“하아.”

숨을 토한 게일은 검을 늘어트리며 하늘을 돌아보았다.

가라드가 쏜 신호탄의 불빛은 사라졌지만, 그렇다 하여 긴장의 끈을 놓을 수는 없었다.

‘원군이 있을 터.’

그렇지 않다면 신호탄을 쏠 필요조차 없었을 터이니.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지원군은 나타나지 않았다.

아델리아 역시 비슷한 것을 걱정했는지 눈을 감고 감지 마법을 펼쳤지만 딱히 잡히는 것이 없었다.

“괜찮을 것 같아요. 적어도 근방 이백여 미터 내에는 적이 없어요.”

아델리아의 말에 게일은 재차 숨을 토하더니 검을 회수했다. 새삼스럽지만 아델리아에게 물었다.

“다치신 곳은······?”

“있겠어요?

아델리아가 어께를 으쓱이며 웃자 게일도 따라 웃었다.

짐승처럼 날뛰는 최하급 마인을 여덟이나 쓰러트렸음에도 불구하고 정말 손끝하나 다치지 않은 그녀였다.

“천막은··· 이제 못 쓸 것 같군요.”

“우으······.”

게일의 말에 아델리아가 눈에 띄게 낙담했다.

하지만 그나마 다행인 상황이었다. 앞으로 하루에서 이틀 정도면 더 가면 갈까마귀들의 요람인 썬더둠 요새에 도달할 수 있을 터였으니 말이다.

“그래도 다치지 않아 다행입니다.”

“그러게요.”

아델리아가 어깨를 늘어트리며 웃자 게일은 서둘러 그런 아델리아에게 다가섰다.

“게일 공자?”

아델리아가 눈을 깜박이며 묻자 게일은 다시 빙긋이 웃으며 말했다.

“잠시 실례해도 되겠습니까?”

“네?”

아델리아의 되물음에 게일은 시선을 아래로 내렸고, 아델리아도 비로소 이해했다.

두 사람 모두 맨발이었기 때문이다.

“그··· 네.”

“그럼.”

아델리아가 허락하자 게일은 바이엘 가의 자손다운, 정확히는 유더의 형다운 행동을 했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아델리아를 안아든 것이었다.

사실 굳이 이럴 필요까지는 없었다.

그냥 아델리아 세워두고 신발을 주워오는 방법도 있었으니까.

아니, 애당초 마법으로 날 수 있는 아델리아였다.

하지만 게일은 그렇게 하지 않았고, 아델리아는 만족했다. 게일의 품 안에서 몸을 웅크리는가 싶더니 이내 슬쩍 몸을 움직여 게일과 다시 시선을 마주하였다.

그 상태.

가슴이 두근거렸다.

전투로 인해 분비된 아드레날린이 새로운 화학 작용으로 이어지려 했다.

그대로 몇 초.

서로가 달뜬 숨을 토한 그 때.

쾅!

허공에서 굉음이 울렸다.

게일과 아델리아는 반사적으로 돌아보았고, 이내 목격할 수 있었다.

붉은 망토를 휘날리며 허공에 오롯이 선 자.

서부에서 동부로 파견한 중급 마인들을 가라드 하나만 빼놓고 모조리 학살한 자.

신호탄을 보고 급히 날아온 그가 게일과 아델리아를 보았다.

서로 얼싸안고 있는 두 사람의 모습에 흠칫하더니 순간 돌아섰다. 마치 두 사람을 발견하지 못 한 것처럼 어색한 동작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다른 곳으로 날아갔다.

그리고 몇 초.

게일과 아델리아의 입에서 동시에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백···작님?”

“아빠?”

북부 사강 가운데 하나이자, 붉은 여명 탑의 탑주인 체이스 백작.

그가 두 사람을 보고도 갑자기 몸을 뺀 이유.

게일과 아델리아는 동시에 이해했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얼굴을 붉혔고, 게일은 헛기침을 토했다.

“흠흠, 일단 신발부터 챙기죠.”

자리까지 피해준 체이스 백작에게는 미안했지만(?) 이미 분위기가 다 깨졌으니까.

게일의 말에 아델리아는 미간을 찌푸리더니 이내 결심했다.

뭔가, 뭔가 이대로라면 될 일도 안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게일 공자.”

“네?”

거기까지였다.

게일의 목을 끌어안은 아델리아는 상체를 움직였다. 게일에게 얼굴을 가까이했고, 다시 한 번 용기를 냈다.

아델리아의 입술이 게일의 뺨에 닿았다.

‘우으으.’

본래 계획은 이게 아니었지만 더 이상은 무리였다.

분위기가 이미 된통 깨진 상황이었으니까.

지금도 창피해서 죽을 것 같았으니까.

아델리아는 눈을 꽉 감은 채 얼굴을 붉혔고, 얄궂게도 그런 아델리아의 행동과 모습이 다시 한 번 묘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천막에서와는 꽤 다른, 어찌 보면 우스울 수도 있는 분위기였지만, 게일을 움직이기에는 충분했다.

“아델리아.”

나직한 부름 이후 행동했다.

하얀 눈밭 위에서 두 사람의 인영이 하나로 겹쳐졌다.

그리고 먼 곳.

아니, 그렇게까지 멀지는 않은, 딱 적절한 거리.

커다란 바위 뒤에 숨어 숨을 죽이고 있던 체이스 백작은 몇 가지 마법을 해제한 뒤 공간 확장 가방을 돌아보았다. 천천히 쓰다듬으며 생각했다.

‘대비하길 잘했군.’

만약의 사태를.

그렇지 않았다면 지금 꽤 곤란했을 터이니까.

스스로의 준비성을 칭찬한 체이스 백작은 잠시 눈을 감고 기다렸다.

사실 궁금한 것이 많았다.

두 사람이 국경을 넘은 이유.

유더와 코델리아의 행방.

하지만 지금은 인내해야 할 때였다.

‘바이엘 백작 그 친구에게도 편지를 써야겠군.’

가볍게 턱을 쓰다듬은 체이스 백작은 잔잔한 미소를 머금었다.

새로이 준비할 것들을 떠올려 보았다.

&

같은 시각, 하늘 지붕 산맥.

흠칫한 유더와 코델리아는 동시에 눈을 떴다.

< 제39장 - 조우 #2 > 끝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