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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딩메이커-115화 (115/473)

< 제42장 - 뒤틀림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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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사 가람마루.

본래 강력한 정령전사였던 그는 하라겐을 통해 대군주 벨리알을 영접한 이후 완전히 달라졌다.

스스로의 손으로 피붙이나 다름없던 정령들을 소멸시킨 그는 고대의 악령들을 받아들였고, 그로 말미암아 고대의 비술을 여럿 깨달은 강력한 존재가 되었다.

‘원작에서도 제법 비범해.’

세일룬 왕국 북부를 무너트린 야만족들을 이끈 것은 각 부족의 족장들이 아닌 대전사들이었다.

때문에 그들은 북부의 지배자로 군림하였고, 북부 야만족 이벤트가 진행되는 초반부에는 언감생심 쳐다도 보면 안 되는 존재들이었다.

마주했다가는 그냥 바로 죽음이었으니 말이다.

‘레벨 차이가 너무 나거든.’

북부 야만족 이벤트 자체가 초반에 일어나는 이벤트이기 때문에 플레이어블 캐릭터들의 레벨이 낮을 수밖에 없었다.

비교적 시간적 여유가 있는 코델리아조차도 중간에 ‘그로부터 몇 달이 지났다’라는 스킵 신공이 발휘된 터라 레벨이 낮았고, 아예 북부 야만족 이벤트가 진행되기 직전에 시작하는 유더는 말할 것도 없었다.

‘기껏해야 20~30 남짓.’

그런데 대전사들의 레벨은 못 해도 65는 되었다.

이 정도 격차가 나는데 어찌 비빌 생각을 하겠는가.

RPG에서는 이러나저러나 레벨이 깡패인 법이었다.

‘레벨 65.’

대전사들은 스스로의 강함에 자신이 있었다.

하라겐도 그들을 신뢰했다.

악마의 눈 최강의 중급마인인 흑기사 빌바인보다도 강한 그들이니 당연했다.

‘대전사 가람마루.’

원작에서는 어떻게든 피해가야 하는 존재.

마주하는 순간 죽음인 사신과도 같은 남자.

하지만 지금은······.

“미안, 우리가 너무 강해져 버렸어.”

코델리아가 송곳니를 빛내며 말했고, 유더는 수첩에 코델리아의 말을 받아쓰며 말했다.

“우리가 너무 강해져 버렸어······ 메모.”

“뭐야, 왜 적는데. 그거 뭔데? 어?”

“아니, 그냥 나중을 위한 협박··· 아니, 협상 재료.”

“협바악?!”

코델리아는 눈매를 날카로이 했고, 수첩 표지에 쓰인 글귀를 읽었다.

‘코델리아의 부끄러운 대사 모음’

“야!”

“앗! 불꽃 일어난다!”

유더가 얼른 수첩을 접으며 소리치자 코델리아는 잇소리를 내며 정면을 보았다. 유더의 말마따나 대전사 가람마루가 다시 한 번 불꽃을 일으키고 있었다.

“이 연놈들이!”

가람마루의 전신에서 거대한 불길이 일었다.

고대의 악령 가운데 하나인 화염술사 킬로만의 힘을 이은 그는 혹한이 지배하는 야생의 땅에서조차 강대한 불길을 일으킬 수 있었고, 단숨에 주변 일대를 폭염의 땅으로 만드는 것 역시 가능했다.

그런 그가 유더와 코델리아를 노려보았다.

다시 한 번 지옥의 불길로 모든 것을 불태우고자 하였다.

“우오오오오!”

그가 포효했다. 그리고 코델리아가 주문을 외웠다.

그리고 그로 인한 결과.

“네놈들을!”

푸확!

가람마루의 머리 바로 위에서 무지막지한 양의 물줄기가 쏟아져 내렸다.

하지만 과연 지옥의 불길.

조금 기세가 약해지긴 했지만 건재했다.

가람마루가 다시 한 번 소리쳤다.

“모조리!”

푸확!

다시 한 번.

더블 캐스팅과 주문의 메아리는 장식이 아니었으니까.

“불태워!”

푸확!

“주겠······.”

푸확!

워터폴x4

불길은 시들었고 가람마루는 물에 젖은 생쥐 꼴이 되었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워터폴이 끝났다는 것을 악령들이 알려주었으니까.

지금이야말로 불길을 일으킬 때였으니까!

“우오오!”

다시 불길이 일었다. 그리고 코델리아가 말했다.

“워터폴.”

주문이야 다시 외우면 되는 거지 뭘.

콰가가가가!

허공에서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린 물이 겨우 다시 피어나려는 가람마루의 불길을 무참히 짓밟았다.

하지만 가람마루는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나는!”

푸확!

“절대로······.”

푸확!

“포기······.”

푸확!

“야! 이 씨발년아! 야!”

가람마루가 성질을 내며 욕지거리를 토했고, 유더는 고개를 끄덕인 뒤 말했다.

“너, 너무해.”

쟤도 나름 열심히 노력해서 저 힘을 손에 넣었을 텐데.

집에 가면 여우같은 마누라와 토끼 같은 자식들과 노모가 있을 터인데.

유더의 눈빛에 코델리아가 바로 반발했다.

“야, 너무하긴 뭐가 너무해. 그리고 쟤 진짜 나쁜 놈이거든? 지 손으로 가족들 다 죽인 패륜아거든?”

나도 중간보스 설정 정도는 알 거든?

코델리아의 말대로였다.

가람마루는 악령전사가 된 뒤 자기 손으로 일족을 멸한 희대의 패륜아였다.

“묵사발을 내주마!”

노성을 토한 가람마루가 흙탕물 위를 첨벙첨벙 달리며 돌진해왔다.

비록 불꽃을 다룰 수 없다 해도 그에게는 강건한 육신이 있었으니까.

2미터 남짓한 큰 키와 드넓은 어깨, 여인의 허리보다도 더 두꺼운 팔뚝과 상완.

가냘프기 짝이 없는 코델리아 따위는 단매에 쳐죽일 수 있는 완력!

그리고 그 앞을 유더가 막아섰다.

코델리아 앞에 단단히 버텨선 뒤 가람마루의 돌진을 정면에서 받아냈다.

쿵!

유더와 가람마루가 정면에서 대치했다. 서로의 손을 맞댄 채 대립한 것이, 딱 힘을 겨루는 자세였다.

“얼굴만 반반한 비리비리한 놈이!”

요 근래 폭풍성장을 하긴 했지만 그래봐야 170중후반인 유더였다.

2미터에 육박하는 가람마루보다 머리 하나는 더 작은 키였고, 덩치 차이는 두 배 이상이라 해도 좋았다.

여기에 더해진 것은 근육의 차이.

두께만 보아도 몇 배 차이는 났으니, 유더 따위는 단숨에 짓뭉개져야 정상이었다.

하지만.

“미안.”

유더는 조금도 밀리지 않았다.

레벨이라면 아직 가람마루가 위였지만, 유더와 코델리아는 평범한 플레이어블 캐릭터가 아니었다.

지금까지 쌓아온 타이틀에 의한 스탯 뻥튀기.

여기에 더해진 각종 보조 마법.

다시 더해진 템빨.

작금 유더의 완력은 사실상 초능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으아아!”

유더의 팔을 비틀며 찍어 누르려던 가람마루는 오히려 비틀어진 자신의 팔에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유더가 그런 가람마루를 밀어 찼다. 단번에 떨쳐낸 뒤 코델리아를 돌아보았다.

‘알지?’

‘알아.’

프리즈.

문라이트로부터 비롯된 푸른빛이 바닥에 나자빠진 가람마루를 단숨에 집어삼켰다.

그렇잖아도 추운 야생의 땅인데, 아예 물로 홀딱 젖기까지 한 가람마루이니 동결 마법에 저항할 방도 따위 없었다.

쩌저정-! 쩡!

꽁꽁 얼어 얼음조각상이 된 가람마루의 가슴에 유더가 흑룡의 힘을 실은 일권을 내질렀다.

산산이 조각내니 새하얀 빛의 고리 하나가 유더와 코델리아의 가슴께에 떠올랐다.

“후아, 생각보다는 쉽게 잡았네.”

“혹한의 땅이니 수계 마법이든 빙계 마법이든 다 강화될 테니까. 문라이트도 파워 업을 단단히 했고.”

눈의 여왕을 흡수해 부쩍 강력해진 문라이트가 아니었다면 이렇게까지 쉽게 놈을 잡지는 못 했을 터였다.

“헤헤, 아무튼 신난다.”

원작 초반에는 절대로 잡을 수 없는 대전사 가람마루를 손쉽게 잡았으니 기쁜 것도 당연했다.

유더는 토끼 귀를 파닥이며 좋아하는 코델리아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이내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악마의 마법진들.’

지금 두 사람이 서 있는 장소는 용맥으로부터 다소 떨어진 곳에 위치한 거대한 제단이었다.

대규모 의식을 진행 중이었는지 바닥에는 거대한 마법진이 새겨져 있었고, 제단 주위에는 악마의 문자가 잔뜩 새겨진 기둥들이 아홉 개나 박혀 있었다.

‘역시··· 그건가?’

대악마 크레이믈러 소환을 위한 준비.

작은 의식을 여러 곳에서 거행해 힘을 비축시킨 뒤 큰 의식에 힘을 몰아준다는, 단순하면서도 효과적인 수단이었다.

“이미 이곳에서의 의식은 끝난 거··· 같지?”

코델리아가 제단을 바라보며 말했다.

어찌나 많은 희생양을 바쳤는지 돌로 만든 제단 전체가 피로 물들어 있었다.

‘악마 추종자들까지 제물로 바친 건가.’

이 정도의 제단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가람마루 외에는 적이 없는 수준이었다.

마을에도 사람이 거의 없는 것으로 보아 어마어마한 규모의 인신공양을 진행한 모양이었다.

‘너무 많아.’

바친 피가 너무 많았다.

물론 대악마 크레이믈러가 쉽게 소환할 수 없는 존재인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렇다해도 너무 과하다는 느낌이었다.

‘여기서만 하는 의식이 아닐 테니까.’

악마 추종자들의 의식은 목적에 따라 그 형태를 달리했다.

그리고 지금 이곳에 펼쳐진 의식은 유더가 잘 아는, 큰 의식을 위한 준비 의식에 불과했다.

‘너무 많아.’

다시 한 번 그리 생각했다.

준비 의식치고는 너무 많은 피를 바쳤다.

무엇 때문일까.

크레이믈러 소환에 유더 자신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많은 제물이 필요한 것일까?

아니면 준비 의식을 대전사 전원이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가람마루를 비롯한 소수만이 진행한 것이라면, 본래 다섯 곳에서 진행해야 할 준비 의식을 세 곳에서만 진행해 더 많은 피를 바쳐야 했던 것이라면.

‘말은 돼.’

하지만 이상했다.

자꾸만 위화감이 들었다.

“유더야?”

코델리아의 부름에 유더는 고개를 들었다.

그녀는 제단 앞에 서서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함께하기 시작한 이후 몇 번이나 감탄한 코델리아의 직감.

그런 코델리아의 직감이 말하고 있었다.

뭔가 다르다고.

눈앞의 제단은 유더와 코델리아가 생각한 물건과 거리가 있다고.

그리고 그녀의 직감은 이번에도 틀리지 않았다.

코델리아의 시선을 따라 제단을- 정확히는 제단 중앙에 새겨져 있는 마법진을 바라보던 유더는 눈을 부릅떴다.

‘달라.’

원작과 달랐다.

폐허가 된 북부에서 발견할 수 있는 원작의 마법진이 아니었다.

유더는 다급히 제단 앞에 달려간 뒤 분석을 시작했다.

복잡한 마법진을 머릿속으로 해체한 뒤 나열했다.

마법진 속에 담겨져 있는 진의를 읽어내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유더는 이해했다.

가람마루가 진행하던 의식.

더 많은 피가 필요했던 이유.

그리고 이 모든 일들이 일어난 원인.

하라겐으로 하여금 원작과는 다른 선택을 하게 만든 것.

유더 자신이었다.

유더 자신이 지금까지 해온 일들이 하라겐으로 하여금 다른 선택을 하게 만들었다.

붉은질풍이 죽지 않았다.

그로인해 위대한폭풍 부족이 건재했다.

거친눈사태와 고운눈바람이, 푸른수염이 타락하지 않았다. 동부에 파견했던 중급 마인들이 전멸하였고, 그로 말미암아 동부는 분열하지 않았다.

카라발을 방해하지 못했다.

그 결과 동부군이 결성되었다.

유더 자신과 코델리아가 지금까지 해온 일.

그로 인해 일어난 긍정적인 변화들.

유더의 의도는 성공했다.

하라겐은 궁지에 몰렸다.

그렇기에 하라겐은 원작에서는 하지 않았던 극단적인 선택을 해야만 했다.

“유더야?”

유더는 고개를 들어 코델리아를 보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정말 자신이 분석한 대로라면.

하라겐이 준비한 것이 정말 이것이라면.

놈은 어디에서 큰 의식을 치를 것인가.

어디에 ‘이것’을 소환할 것인가.

“동부군.”

부지불식간에 말했다.

떠올릴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뿐이었다.

그리고 이번에도 유더는 틀리지 않았다.

같은 시각.

유더와 코델리아가 자리한 곳으로부터 남쪽으로 훨씬 더 내려간 곳에 위치한 눈꽃바람 평원.

동부군과의 격돌을 눈앞에 둔 하라겐은 유더와 코델리아가 일으킨 첫 번째 폭발을 뒤늦게 접하였다.

하지만 그는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이미 준비는 끝났으니까.

“시작해라.”

하라겐이 명하였고, 서부군 전체에 명령이 전파되었다.

성난뿔소 부족을 이끄는 일곱뿔의 포효와 함께 전투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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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42장 - 뒤틀림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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