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43장 - 성천사 >
제43장 - 성천사
지옥의 문.
낯설지 않았다.
영웅전기 시리즈에서 지옥의 문을 볼 수 있는 기회는 의외로 적지 않았다.
하지만 시점이 잘못되었다.
영웅전기 1편에는 오직 하나의 문만이 등장했다.
최종보스이자 파라곤 왕국의 비극을 야기한 데몬프린스 바이카젤.
그를 쓰러트리고 그가 연 지옥의 문을 닫는 것이 영웅전기1편의 마지막 전투였다.
‘2편에서도 중반 이후.’
지옥의 문을 지상에 여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었다.
수많은 제물들뿐만 아니라 지옥의 문을 열기 위한 촉매가 있어야만 했다.
‘촉매.’
과거 지옥의 대군주들이 지상에 강림했을 때 함께 건너온 것들.
형태는 다양했고, 품고 있는 힘 역시 서로 달랐지만, 흔치 않았다.
악마의 손이나 눈 같은 거대한 조직에도 하나에서 둘 밖에 없는 것이 지옥의 문을 열기 위한 촉매였다.
‘레나 때와는 상황이 달라.’
엔디미온에 열린 지옥의 문은 통상적인 방법으로 소환된 것이 아니었다.
레나가 지옥을 탈출해 지상으로 귀환하는 과정에서 연결로가 형성된 것이었다.
때문에 일반적인 지옥의 문과는 여러 면에서 차이가 났다.
지상에서 지옥으로 문을 연 것이 아닌 그 반대였기에 지옥으로부터 힘을 충원 받아 이렇다 할 추가 지원 없이도 지옥의 문을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건 아니야. 그럴 수 없어.’
유더는 다시 한 번 제단을 노려보았다.
머릿속에 해체한 마법진을 해석했다.
일반적인 지옥의 문이었다. 영웅전기 2편에서 몇 번이나 본 그것과 같았다.
‘오래 유지하지 못 해.’
지옥의 문을 유지하기 위한 힘이 필요했다.
만약 유더의 예상대로 눈꽃바람 평원에 지옥의 문을 열었다면, 제물 이외에는 지옥의 문을 유지할 수단이 없을 터였다.
‘길어야 일주일 남짓.’
물론 원작에서 있었던 각종 이벤트들로 추론한 결과이기에 다소 오차가 있을 터였지만, 크게 틀리지는 않을 터였다.
‘무리수를 뒀어. 아니, 판을 엎어버렸어.’
지옥의 문을 소환할 수 있는 기회는 적었다.
원작에서도 하라겐이 지옥의 문을 소환하는 대신 야생신들을 타락시키고 야만족들을 손에 넣은 뒤 북부를 공격한 것은 그쪽이 훨씬 더 효율적이었기 때문이다.
‘북부를 무너트리고 왕도까지 치고 내려간 뒤에 지옥의 문을 연다.’
야생의 땅에 지옥의 문을 여는 것과 세일룬 왕국 왕도에 지옥의 문을 여는 것 중 어느 쪽이 더 효과적일 것인가.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무조건 후자라 할 수 있었다.
물론 전부 가정이었다.
애당초 원작에서는 하라겐이 촉매를 가지고 있다는 정보조차 나오지 않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타당했다.
유더 자신이라 해도 촉매를 이런 식으로 낭비하지는 않을 터이니 말이다.
야생의 땅과 야만족과 세일룬 왕국 북부를 양패구상 시킨 뒤 결정적인 장소에서 지옥의 문을 소환하는 것이 최상의 수였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았어.’
분명 유더 자신이 하라겐을 번번이 방해하기는 했다.
원작에 비하면 분명 하라겐의 현 상황은 매우 나쁘다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옥의 문 소환은 너무 지나쳤다.
이건 하라겐 쪽에서도 거의 자포자기에 가까운 수였다.
기껏 확보한 야생의 땅의 전력을 대부분 포기해야 했으니 말이다.
‘어째서.’
서부군과 동부군의 싸움을 해보는 것이 낫지 않았을까?
하라겐은 어째서 한판 승부조차 포기한 것일까.
이유가 있었다.
유더는 아직 알지 못 하는, 하라겐의 마음을 움직인 사건이.
게일과 아델리아.
체이스 백작.
세 사람이 남쪽을 경유해 동부로 침투하려던 침투조를 전멸시켰다.
하라겐에게 정면 승부 외에는 그 어떤 방법도 없음을 알려주었고, 하라겐은 결단을 내렸다.
무엇을 계획하든 실패한다면 실패할 수 없는 일을 저질러 버리자.
적들이 저지할 수 없는 일을 일으켜 버리자.
그쪽이 완전한 실패보다는 나았으니까.
판을 엎는 것도 때가 있었으니까.
야생의 땅의 전력은 이미 반쪽이 났다. 이 상황에서 정면승부로 동부군을 격파한다 해도 피해가 너무 컸다. 반쪽이 난 전력으로는 본래의 계획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었다.
그러니 판을 엎는다.
새로운 판을 만든다.
하지만 여기까지는 아무리 썩은물인 유더라도 알 수 없었다.
때문에 유더는 이쪽으로 고민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일단은 정보가 필요했다.
지금 이 장소는 고민을 이어가기에 좋은 장소가 아니었다.
“코델리아.”
유더의 부름에 코델리아가 바로 반응했다.
그녀 역시 나름대로 고민하고 있었는지 잔뜩 굳은 얼굴이었다.
“일단 이동하자.”
“응!”
이런 때일수록 기운을 내야했다.
일부러 힘차게 답한 코델리아는 앞장서서 달렸다.
목적지가 어디인지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 가야할 곳은 하나밖에 없었다.
‘마젤란의 하이 엘프들이 남긴 지하통로.’
멜리사를 통해 원작에서는 접할 수 없었던 정보들까지도 알 수 있게 되었다.
마도왕국 마젤란.
흔히들 생각하는 것처럼 플레이아데스의 엘프들은 대체로 숲이나 산에 살았다.
다크 엘프들조차도 피치 못 할 때 외에는 지하에서의 삶을 거부했다.
그런데 마젤란의 하이 엘프들은 지하에 도시를 건설했다.
마치 드워프라도 되는 것처럼 대부분의 시설을 산 속이나 땅 속에 건설하였다.
‘용맥 때문이야.’
마젤란의 하이 엘프들은 땅 속에 자리한 별의 힘을 발견하였다.
위대한 흐름을 어떻게든 이용하기 위해 연구하고 또 연구하였고, 그 결과 용맥과 가까운 지하에 삶의 터전을 꾸리게 되었다.
‘야생의 땅 전역에 걸친 인프라.’
하이 엘프들은 용맥의 흐름을 따라 인프라를 구축했다.
그리고 용맥의 힘을 이용하기 위한 시설을 여럿 설치하였다.
하늘마루 산맥에 있던 시설도 그러한 것들 중 하나였다.
‘용맥은 본래 지금과 달랐어.’
훨씬 더 가늘었고, 곳곳이 끊어져 있었다.
그런데 그것을 마젤란의 하이 엘프들이 이었다.
용맥의 흐름을 원활히 하였고, 그 흐름을 강화하기 위한 중계 시설을 야생의 땅 곳곳에 건설하였다.
‘그리하여 만들어진 것이 지금의 용맥.’
그리고 유더의 예상대로라면-
“유더.”
코델리아의 부름에 유더는 다시 현실을 보았다.
어느새 지하 통로로 돌아온 두 사람이었다.
유더는 일단 숨을 골랐다.
그리고 다시 생각했다.
‘문은 열렸어.’
다른 것은 둘째치고 그것만은 분명했다.
코델리아의 감뿐만 아니라 가람마루가 지키고 있던 의식의 제단이 그 사실을 알려주었다.
그렇다면 이제 어찌할 것인가.
본래 계획대로 서부의 용맥들을 터트리고 다닐 것인가.
‘시간이 부족해.’
원작에서 지옥의 문을 연 이유는 전부 하나로 귀결되었다.
통상적인 방법으로는 소환할 수 없는 강대한 존재를 지상에 불러내는 것.
하라겐은 무리를 했다.
악마의 눈에서도 몇 없을 촉매를 사용해 지옥의 문을 열어버렸다.
그렇다면 크레이믈러 정도에 만족할 리가 없었다.
그 이상의 존재를 지상에 부르고자 할 터였다.
며칠이나 걸릴까.
원작에 있었던 다른 이벤트들과 비교해봤을 때 필요한 시간을 계산해 본다면······.
‘길어야 닷새.’
짧으면 사흘에서 나흘.
도저히 무리였다.
하이 엘프들이 뚫어놓은 터널을 사용한다 해도 시간을 맞출 수 없었다.
그러기에는 야생의 땅이 너무 넓었다.
‘타운 포탈.’
하이 엘프들이 사용한 공간도약의 문.
멜리사의 검토대로라면 서부에 아직 살아있는 공간 도약의 문이 몇 있었다.
그곳에 도달하면 동부로의 귀환 자체는 서두를 수 있었다.
하지만 여기서 공간 도약의 문으로 바로 갈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어찌되었든 시간을 소모해야만 했다.
유더의 생각이 깊어졌다.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그리고 코델리아가 그런 유더를 보았다.
끙끙 앓는 표정을 짓더니 똑같이 고민하기 시작했다.
무슨 방법이 없을까.
해결책이 있지 않을까.
“으으.”
이런 식의 고민은 취향도 아니었고 적성도 아니었다.
때문에 코델리아는 앓는 소리를 흘리다 발을 동동 굴렀다.
하지만 생각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어느 순간.
“아!”
코델리아가 퍼뜩 고개를 들었다.
다급히 유더의 어깨를 붙잡았다.
생각의 수렁에 빠져 허우적거리던 유더를 강제로 끄집어 낸 뒤 팟하고 떠올린 발상을 이야기했다.
“어때?”
구체적이지 않은 발상.
그저 하나의 아이디어.
유더가 코델리아를 보았다. 눈 하나 깜박이지 않았고, 그 반응에 코델리아는 어깨를 늘어트리며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역시 아니었나?
내가 그렇지 뭐.
역시 생각하는 일은 아닌가보다.
그렇게 코델리아가 땅을 파기 시작했을 때.
유더가 돌연 웃음을 터트렸다.
시원하게 웃더니 코델리아를 와락하고 끌어안았다.
“유, 유더야?”
“역시 최고야. 우리 공주님, 나의 천사님.”
“뭐, 뭐라고?”
나의 뭐?
소름이 돋는 어휘 선택에 코델리아가 질색을 했지만 유더는 개의치 않았다.
코델리아의 발상을 현실화시키기 위해 다시 한 번 생각을 이어가려 했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유더와 코델리아는 다시 서로를 보았다.
머릿속에 들려온 목소리에 집중했다.
&
칼날노래의 영웅적인 희생 덕분에 동부군은 전선을 이탈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미 흘린 피가 너무 많았다.
“그렇다 할지라도.”
위대한폭풍은 가라앉은 눈으로 서쪽을 바라보았다.
저 먼 곳에 자리한, 지금 이 순간에도 흉흉하기 짝이 없는 기운을 발산하는 지옥의 문을 주시하였다.
무척이나 먼 거리.
하지만 높은 곳에서 멀리 내다보는 위대한폭풍의 눈이었다.
그는 지금 이 순간에도 지옥의 문을 통해 지상으로 기어 나오고 있는 마물들을 목격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그는 단언했다.
“닫아야 한다.”
지옥의 문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 하는 위대한폭풍이었다.
과거 마도왕국 마젤란이 지옥의 대군주와 싸우던 시절을 기억하는 야생신은 거의 없었다.
황금의 용왕 정도를 제한다면, 그 때 활동하던 야생신조차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터였다.
때문에 야생신들은 악마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었다.
지옥의 문이 얼마나 오랫동안 유지될 수 있는 것인지, 저 안에서 어떤 존재들이 나오게 될 것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고, 그렇기에 더욱 단호한 대처를 떠올렸다.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만약 지옥의 문이 저대로 유지된다면.
더 많은 악마들이 지상에 기어나온다면.
야생의 땅은 더 이상 존재할 수 없었다. 지옥의 악마들에게 지배당하는 작은 지옥이 될 따름이었다.
“오라버니, 거친눈사태님이······.”
위대한폭풍은 뒤를 돌아보았다. 얼굴이 눈물범벅이 된 고운눈바람이 훌쩍이고 있었다.
평소 칼날노래를 그리 좋아하지 않던 그녀였지만, 그렇다고 마음 깊이 미워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칼날노래가 모두를 구하고 죽었다.
영웅적인 희생을 하였다.
그의 부족들조차, 수많은 야생의 땅의 아이들조차.
그런데 이제 거친눈사태마저 행적이 묘연해졌다.
고운눈바람의 눈에선 눈물이 마르지 않았다.
눈물을 그칠 수 없었다.
하지만 위대한폭풍은 손을 뻗어 잠시나마 그녀의 눈물을 거두었다.
억지로라도 미소 지으며 말했다.
“괜찮을 거다. 힘을 잃었다 해도 야생신이다. 우리보다 더 오랜 시간을 살아온 분이다.”
그저 길이 어긋난 것일 뿐 목숨을 잃지는 않았으리라.
“그렇···겠죠?”
“그럴 거다. 그럴 거란다.”
위대한폭풍은 고운눈바람을 꼭 안아준 뒤 등을 토닥였다.
아이를 달래는 것 같은 행동이었고, 사실 인간형태만 놓고 보자면 위대한폭풍보다 키가 큰 고운눈바람이었지만 그런 것은 개의치 않았다. 위대한폭풍의 품에 안겨 눈물을 삼켰다.
“야생신들을 모아야 한다.”
동부의 야생신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모아야 했다.
살아남은 본대와 동부의 남은 병력을 합쳐 최후의 결사대를 조직해야 했다.
칼날노래와 그의 아이들은 동부에- 아니, 야생의 땅에 한 번 더 기회를 주기 위해 자신들의 목숨을 희생하였다.
그러니 그들의 노래에 부응해야 했다.
“고운눈바람, 아이들을 모으렴. 야생신들을 모으렴.”
고운눈바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몇 번이나 얼굴을 훔친 뒤 돌아서서 달렸다.
위대한폭풍은 그런 고운눈바람의 등을 바라보았다. 다시 돌아서 서쪽을 보았다.
“지옥의 문.”
위대한폭풍은 칼날노래를 떠올렸다.
오랫동안 만나지 못 한 서부의 야생신들을 기억했다.
그들 모두가 죽었다.
그리고 이제 더 많은 야생신들이 죽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렇다 할지라도.
“야생의 땅을 지키는 것이 우리의 소명일지니.”
위대한 폭풍은 차가운 숨을 삼켰다.
최후의 전투를 각오했다.
&
하라겐은 지옥의 문을 바라보았다.
음산한 지옥의 기운이 마인인 그에게 새로운 힘을 부여하였다.
하라겐은 미소를 흘렸다.
더욱 강해진 힘을 통해 지옥의 문 너머에서 다가오고 있는 자를 감지했다. 그에게 경의를 표했다.
데몬프린스.
작위를 가진 악마.
대악마 크레이믈러를 능가하는, 과거 파라곤 왕국의 비극을 일으킨 바이카젤과 동급의 존재.
하라겐의 미소가 비릿하게 변했다.
지옥의 기운 때문인지, 생각 역시 달라졌다.
‘이것이야말로 나의 소명이었다.’
세일룬 왕국의 왕도가 아니면 어떠랴.
데몬프린스께서 강림하신다면 족한 것을. 그분께서 손수 악마들을 이끌어 야생의 땅을 파하실 터인데. 세일룬 왕국으로 진군하실 것인데.
지옥의 문을 통해 나온 마물들과 악마들은 계약의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
때문에 그들은 하라겐의 통제를 따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래도 상관없었다.
마물들과 악마들 역시 알고 있었으니까.
데몬프린스께서 오고 계심을.
그분의 명을 따르는 것이 자신들의 소명임을.
“하라겐님.”
두려움 섞인 목소리에 하라겐은 돌아섰다.
언제나 충직한 날카로운뿔이 망설임 가득한 눈으로 자신을 보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서부군은 박살이 났고, 지옥의 기운을 받아들인 성난뿔소 부족은 더 이상 인간이라 부를 수 없는 존재들이 되었으니까.
지금 이 순간에도 지옥의 문을 유지하기 위한 인신공양이 계속되고 있으니까.
하라겐은 날카로운 뿔을 보았다.
그 역시 이미 인간이 아니었다. 마물에 가까운 존재였다.
아직 인간의 마음이 남아 있지만, 시간문제에 불과했다. 때문에 하라겐은 일말의 자비를 베풀어 그가 듣고 싶어하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나쁘지 않다. 잘 되었다. 언제나 그러했듯이 나를 따르면 될 것이다.”
하라겐의 말에 날카로운뿔은 고개를 끄덕였다. 두려움을 버리고 그의 말을 맹신했다.
그렇지 않으면 작금의 상황을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다.
“기다려라. 더욱 큰 영광이 우리와 함께할 것이니.”
빙긋이 미소지은 하라겐은 다시 지옥의 문을 바라보았다.
지옥의 기운을 만끽하며 강림의 순간을 기다렸다.
&
“레나?”
코델리아의 부름에 대답이 돌아왔다.
구체적인 이야기가 아니었지만, 분명한 느낌이 전해졌다.
레나가 깨어났다.
성천사가 이 땅에 다시 강림했다.
그것이 의미하는 것.
그로 인해 생기는 또 하나의 가능성.
“레나.”
유더와 코델리아는 알 수 있었다.
그녀가 빛의 날개를 펼치는 것을.
푸른수염이 지키는 성지를 떠나 서쪽을 향해 날아오르는 것을.
연결이 끊어졌다.
하지만 충분했다.
레나는 두 사람에게 자신의 의지를 전했다.
지옥의 문이 지상에 열렸다는 사실을 간파한 그녀는 바로 행동에 나섰다.
“레나가 깨어났어.”
코델리아의 목소리에 흥분이 어렸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레나가 깨어났으니까.
성천사 레나가, 파라곤 왕국의 비극을 끝낸 다섯 영웅들 가운데 하나가.
하지만 그것만이 아니었다.
코델리아가 흥분한 이유.
유더가 다시 한 번 코델리아를 끌어안고자 한 이유.
두 사람은 동시에 같은 생각을 했다. 서로를 보고 웃었고, 유더가 두 팔을 벌렸다. 하지만 코델리아는 유더와 포옹하는 대신 뒤로 새침하게 물러서더니 다시 해맑게 웃었다.
처음 얻은 이래 지금까지 늘 지니고 다녔던, 목욕할 때조차 눈이 닿는 곳에 놓아두었던 물건을 꺼냈다. 등에 차고 있던 그것을 유더 앞에 세웠다.
“천상의 심판.”
심판의 천사 아우리엘이 직접 벼린 신벌의 검.
오직 천사만이 사용할 수 있는 성스러운 무구.
그리고 또 하나의 가능성.
레나가 깨어났기에 시도할 수 있는 일.
“나의 천사.”
유더가 느끼하게 말하며 코델리아를 안고자 했고, 코델리아는 질색을 하며 물러섰다. 하지만 이내 배시시 웃었다. 송곳니를 빛내며 말했다.
“멋진 모습을 보여줄게.”
앞으로 펼쳐질 전투.
하늘을 누빌 천사는 하나가 아닐 지어니.
유더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회심의 미소를 지어보였다.
지금 이 순간 완성되었으니까.
최선의 공략법이.
“역시 우리집 유더.”
코델리아의 미소에 유더는 만족했다.
완벽한 해피 엔딩을 위해 다시 한 번 활동을 개시했다.
&
< 제43장 - 성천사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