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엔딩메이커-118화 (118/473)

< 제43장 - 성천사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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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흘렀다.

눈꽃바람 평원에서의 전투로부터 나흘.

지옥의 문은 건재했고, 눈꽃바람 평원은 보랏빛 지옥의 기운으로 뒤덮였다.

동부군은 다시 집결했다.

눈꽃바람 평원에서 패퇴했던 본대와 새로이 합류하기 위해 동부 각지에서 이동 중이던 병력이 모두 합치니, 금방 다시 4만에 달하는 대군이 만들어졌다.

“칼날노래와 그 아이들의 희생 덕분이다.”

실종된 거친눈사태는 돌아오지 않았다.

하지만 수색에 나설 여유 따위는 없었다. 위대한폭풍은 동부 각지에서 모인 야생신들과 지옥의 문을 파괴할 방법을 모색했다.

“무식하지만 정면공격 밖에 수가 없을 것 같소.”

동부 끝에서 달려온 야생신인 무거운발걸음의 말에 다른 야생신들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새로이 추가된 정보들 때문이었다.

“지옥의 문을 오래 방치하면 단순히 마물들이 늘어나는 것 이상의 문제가 생긴다고 들었소.”

지옥의 문은 그 존재가 유지되기만 하면 점점 더 성장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었다.

이제 막 열린 지옥의 문을 통과할 수 있는 것은 저급한 마물들이나 이름조차 가지지 못 한 악마들뿐이었다.

하지만 하루 이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지옥의 문이 크고 단단해지면 보다 상위의 존재들 역시 지옥의 문을 통해 지상에 강림할 수 있었다.

“시간을 끌면 끌수록 불리해지는 것은 물론··· 최악의 사태가 도래할 수도 있소.”

레나에게 지옥의 문에 관한 이야기를 전해들은 푸른수염이 진지한 얼굴로 말하자 다른 야생신들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늦어도 닷새째 오후··· 그때까지는 지옥의 문을 닫든 부수든 해야 하오.”

푸른수염은 그 이유에 대해서까지는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야생신들 가운데 그 이유를 모르는 자는 없었다.

‘감당할 수 없는 존재가 온다.’

동부 전체의 힘을 모아도 상대할 수 없는 존재가.

야생신들의 시선이 동부 야생신들의 대표라 할 수 있을 위대한폭풍에게 모였다.

위대한폭풍은 지그시 눈을 감더니 이내 담담한 얼굴로 말하였다.

“내일 아침, 지옥의 문을 공격한다.”

나흘이란 시간 동안 동부의 힘을 하나로 모았고, 부족하나마 눈꽃바람 평원에서의 상처를 치유했다.

더 이상 시간이 없으니, 이제 결전에 나서야만 했다.

야생신들 전원의 얼굴에 긴장이 어렸다.

이런 식으로 다수의 야생신들이 모여 싸움에 나서는 일 자체가 처음이었기에 더욱 그러했다.

“저, 그런데······.”

구석에 앉아있던 야생신 하나가 손을 들었다.

머리에 여우귀가 달린 작은 아이였는데, 외형이 보여주듯 이 자리에 모인 야생신들 가운데 가장 어리고 약한 무르무르였다.

약간은 기죽은 목소리로 살짝 손을 들며 말했지만, 워낙 조용한 와중이었기에 이상할 정도로 크게 들렸다.

야생신들 전원이 무르무르를 돌아보았고, 힉 하는 소리와 함께 움찔 몸을 경직시킨 무르무르는 우물쭈물하다가 말했다.

“그··· 두 사람은··· 도착했나요?”

풍성한 자기 꼬리를 끌어안으며 던진 물음에 모두의 시선이 다시 위대한폭풍에게 향했다.

사실 말을 안 해서 그렇지 다들 궁금하던 차였기 때문이다.

그 두 사람.

거친눈사태와 고운눈바람뿐만 아니라 푸른수염까지 구한, 거기에 카라발의 위기까지 막아낸 야생의 땅의 수호자들.

하지만 실체를 아는 이는 거의 없었다.

야생신들 사이에서는 그야말로 소문만 무성한 존재였다.

“칼날부리 협곡을 무너트렸다던데······.”

“지옥의 문을 이미 한 번 닫았다 하지 않았나?”

“뭐든지 폭발시킨다는데 정말인가?”

“지나간 자리에는 남아나는 것이 없다고 들었네만.”

거친눈사태의 산은 무너졌고, 고운눈바람의 들판은 불타 없어졌으며, 칼날부리 협곡은 아예 지형 자체가 변해버렸으니까.

사실에 입각한 소문에 고운눈바람은 어설픈 웃음을 흘렸고, 위대한폭풍은 쓴웃음을 지었다.

야생신들이 지키고 보살펴야 할 인간에게 의존하고 싶어하는 현 상황이 애석하기는 했지만, 어쩐지 이해가 되었기 때문이다.

‘나조차 그러하니까.’

두 사람이라면 무언가를 해주지 않을까.

무르무르가 지금 입을 연 것도 그것 때문일 터였다.

“지금쯤 도착했을 거다. 내일 결전에도 참여할 것이고.”

“오오.”

“만날 수 있어요?”

야생신들이 안도하는 가운데 무르무르가 묻자 고운눈바람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직 어린 무르무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두 사람은 지금부터 무척이나 중요한 일을 해야 한단다. 결전에 나서기 전에 필요한 마지막 준비 작업이지.”

“으으음··· 그럼 방해하면 안 되겠네요?”

“그렇겠지? 이야기는 결전 이후에 나누자꾸나. 우리가 이길 테니까.”

고운눈바람의 말에 무르무르는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이내 활짝 웃으며 답했다.

“네! 우리가 이길 테니까요!”

아이의 미소는 언제나 희망을 불러오기 마련이었다.

야생신들 사이에도 미소가 번졌고, 고운눈바람과 눈빛을 교환한 위대한폭풍은 잠시 몸을 늘어트렸다.

‘그런데 대체 무슨 준비인 것일까.’

애당초 이곳에 오기 전에도 이것저것 준비를 해둔 것 같은데.

‘나중이 되면 알겠지.’

제대로 이야기를 나눌 기회 자체가 지금까지는 없었으니까.

필요한 일이라면 오늘밤이든 내일 아침이든 두 사람이 먼저 이야기를 해주리라.

‘야생의 땅의 수호자.’

눈꽃바람 평원에서의 첫 싸움과 지금의 차이.

두 사람의 유무.

위대한폭풍은 머릿속으로 유더와 코델리아의 얼굴을 그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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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이이이!”

“붉은바라아아암!”

붉은바람과 코델리아가 서로 얼싸안고 빙빙- 정확히는 붉은바람이 코델리아를 안아든 뒤 빙글빙글 돌았다.

‘내가 언닌데.’

하지만 키는 붉은바람이 훨씬 더 컸으니까.

어찌되었든 코델리아를 와락 안고 좋아하던 붉은바람은 거의 열 바퀴 정도를 돌고난 뒤에야 유더를 돌아보았다.

“오빠도 반갑다.”

“음, 그래.”

온도차가 좀 느껴지긴 했지만 어쩔 수 없지.

‘그래도··· 생각한 것보다는 상황이 괜찮은 건가.’

붉은바람의 표정이 그럭저럭 괜찮은 편에 속했다.

물론 억지로 힘을 내고 있는 티가 나기는 했지만, 그것조차 하지 못 할 정도로 절망적인 상황은 아니라는 뜻이었다.

코델리아가 물었다.

“붉은바람아, 붉은질풍 아저씨는?”

“내일 싸움 준비한다. 태양노래 오라버니도 함께한다.”

“오라···버니?”

“응응, 태양노래 오라버니. 크고 강하고 멋져.”

붉은바람이 활짝 웃으며 말하자 코델리아는 미간을 한 번 좁히더니 유더를 돌아보았다.

‘어떡하지? 루카스 차인 거 같아.’

‘···루카스 이야기도 들어봐야 하지 않을까?’

차였는지 아닌지는.

아무튼 중요한 것은 붉은바람의 연애사가 아니었다.

‘너무해! 붉은바람인데!’

‘아니, 우리 내일 결전해야 하거든?’

‘유더는 냉혈한··· 메모.’

‘수첩도 없으면서.’

‘머릿속에 메모하는 거거든?’

‘오, 정말로? 진짜? 머릿속에?’

‘으으음··· 주, 중요한 것들만.’

이미 텔레파시의 영역에 도달한 두 사람의 눈빛 교환이었다.

서로를 마주한 채 시시각각 표정이 변하는 두 사람의 모습을 재미있다는 듯 바라보던 붉은바람이 말했다.

“아무튼 언니, 레나님이 기다린다.”

성천사인 동시에 강력한 마법사인 레나.

그녀와는 이미 어젯밤 통신 마법을 통해 대강의 대화를 주고받았다.

‘밑 준비를 해주기로 했지.’

코델리아의 선조회귀를 위한 의식.

유더와 코델리아가 다시 눈빛을 교환했고,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붉은바람이 다시 입을 열었다.

“언니.”

“응?”

“그런데 많이 피곤해 보인다. 유더 오빠도 그렇고.”

이제보니 얼굴이 반쪽이 된 코델리아였다.

더욱이 유더 또한 눈 밑이 검은데다가 그렇지 않아도 하얀 얼굴이 핏기를 잃어 아예 창백해 보일 지경이었다.

여기 오기 전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아니, 두 사람은 대체 무슨 일을 한 걸까?

“많은··· 일들이 있었지.”

“정말 힘들었어······.”

지난 나흘 동안의 여정.

코델리아의 아이디어를 현실화하기 위해 필요했던 시간들.

유더와 코델리아가 각기 해탈한 얼굴로 작게 중얼거리자 붉은바람이 고개를 갸웃했다.

“언니?”

“미안, 나중에 이야기해줄게. 일단 레나님에게 가자.”

“응. 안 물어볼게!”

언제나처럼 기운차게 답한 붉은바람은 앞장서기 시작했고, 유더와 코델리아는 서둘러 발걸음을 떼었다.

그렇게 다시 십여 분 남짓.

사만 여 대군이 모여 있는 본진에서 다소 외떨어진 언덕 위에 레나가 서 있었다.

서쪽을 보고 선 그녀의 등 뒤로 노을이 번지는 광경이 한 폭의 그림과 같았다.

“와아······.”

악마병을 고쳐 온전한 성천사로 돌아온 레나는 이전과 달라져 있었다.

진짜 천사.

그렇게밖에 표현할 수 없는 존재.

탁하게 흐릿했던 금발은 황금빛을 되찾았고, 하얀 얼굴에서는 빛이 나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한 쌍의 날개.

눈처럼 하얀 그것은 노을빛과 섞여 따뜻하면서도 은은한 빛을 발했다.

“레나!”

“코델리아.”

부드럽게 웃으며 돌아선 레나에게 코델리아가 호다닥 달려가 안겼다.

“이제 건강해진 거예요?”

“덕분에요.”

악마병을 고칠 수 있었던 것은 유더와 코델리아가 레나 자신을 성지에 데려다준 덕분이었으니까.

“헤헤헤, 다행이다.”

티 없이 맑은 코델리아의 미소에 절로 따라 웃게 된 레나는 고개를 들어 유더를 보았다.

“유더.”

“다시 뵈어 반갑습니다.”

“저도요. 이야기한 준비는 다 해뒀어요.”

선조회귀 의식.

레나에게는 이미 두 번의 경험이 있었다.

하나는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란디우스를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코델리아를 위해 준비한 세 번째 선조회귀 의식.

“조금 놀랐어요.”

코델리아에게 천사의 피가 흐른다는 사실 보다는, 이미 유더와 코델리아가 선조회귀 의식에 필요한 재료들을 모두 모아두었다는 사실이.

“예습을 좀 철저히 했거든요.”

빙긋 웃은 코델리아는 여전히 레나에게 매달린 채 언덕 위를 보았다.

레나가 그린 마법진 위에는 작은 동그라미가 몇 개나 있었는데, 선조회귀를 위한 제물들을 놓아두는 자리들이었다.

‘고대의 문장, 얼어붙은 시간.’

유더는 지금까지 여행하며 모아온 재료들을 하나하나 내려놓았다. 그리고 마지막 자리에 놓여 있는 빈 그릇을 보았다.

그 안에 담길 것.

선조회귀의 핵심재료.

“선조회귀를 한다 해서 바로 강력한 천사가 되는 것은 아니에요.”

“네, 9급부터 시작하는 거죠? 물려받은 피와 개인의 적성에 따라 올라갈 수 있는 최대 등급도 정해져 있고요. 물론 완전 고정은 아니라 노력 여하나 여러 가지 기연으로 인해 보다 높은 등급까지 올라갈 수도 있지만요.”

“코델리아는······.”

“마녀의 힘을 다루기 때문에 천사의 힘과의 조화가 필요해요. 당장에는 천사와 마녀 둘 중에 한 쪽 힘만 써야하고요. 바로 둘을 섞는 건 너무 위험하니까요. 정확히는 천사 쪽의 힘이 부족해요.”

코델리아답지 않은(?) 지식의 나열에 레나는 눈을 깜박였지만 이내 미소지었다.

“대단하네요. 정말 예습을 철저히 하셨나봐요.”

사실 예습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것이 선조회귀 후의 일이었지만, 유더와 코델리아에게는 아니었다.

두 사람에게 있어 천사로의 선조회귀는 예습이 아닌 복습이었으니 말이다.

“자, 그럼 바로 시작하죠.”

내일 아침에는 결전에 나서야 했다.

천사화에 적응하는 시간도 필요했으니, 한시라도 빨리 의식을 진행해야 했다.

“천사가 될 준비는 됐나요?”

“네.”

살짝 오그라드는 것 같은 질문에 뺨을 붉히며 답한 코델리아는 서둘러 겉옷을 벗었다.

토끼 머리띠와 꼬리까지 해제한 뒤 얇은 원피스 차림으로 마법진의 중심으로 향했고, 유더는 뒤로 물러선 뒤 숨을 크게 삼켰다.

본래는 처음부터 끝까지 유더 자신이 진행할 생각이었던 의식이었지만, 지금은 레나가 있었다.

전문가에게 맡기고 물러서는 쪽이 옳았다.

“잘 부탁드려요.”

“네, 유더. 걱정하지 마세요.”

약간은 놀리듯 배시시 웃은 레나는 이내 표정을 진지하게 고쳤다. 손목에 상처를 내 천사의 피로 그릇을 채운 뒤 바로 의식을 거행하였다.

“피는 영혼의 통화.”

그렇기에 피는 알고 있었다.

기억하고 있었다.

마법진이 빛을 발했다.

새하얀 빛이 일어 코델리아를 집어삼켰다.

“잠들어 있을 뿐 사라지지 않는 것.”

피를 통해 이어지는 영혼.

영혹 속에 각인된 선조의 기억.

빛이 더욱 거세졌다.

새하얀 빛이 점점 붉게 물들어 갔다.

원작에서는 이미 몇 번이나 보아온 광경이었다. 하지만 역시 현실은 달랐다.

마법진에서 시작된 빛이 하늘로 뻗어 올라갔다.

산산이 조각난 빛이 어느새 찾아온 밤과 어울려 춤추었고, 밤하늘에 아름다운 빛의 궤적을 만들었다.

“하늘에서 지상으로.”

현재에서 과거로.

하나로 이어진 길을 따라.

코델리아를 집어삼킨 빛의 기둥 속으로 흐릿하게나마 실루엣이 보였다.

아름다운 소녀의 것.

그리고 거기에 더해지는 것.

순백의 날개.

천상의 고리.

천상의 존재를 상징하는 것들.

“지금, 도달할지니.”

그리하여 온전히 물려받을 터이니.

고대의 문장이 부서졌다.

얼어붙은 시간이 녹아내렸다.

레나의 피가 빛이 되어 흩어졌고, 빛의 기둥이 거세졌다. 붉고 붉고 붉어 선홍이 된 그것이 어느 순간 폭발했다.

빛의 폭발.

색이 의미하는 것.

그리고 빛이 의미하는 것.

코델리아의 색. 그녀의 영혼이 가진 색채.

코델리아의 속성. 그녀를 상징하는 힘.

소리 하나 없지만 아름답고 화려한 빛의 폭발이 밤하늘을 채웠다.

멀리 자리한 본대에서 소란이 일어났고, 야생신들조차도 눈앞의 이적에 놀라움을 표했다.

그리고 유더.

이적을 눈앞에서 마주한 그는 황홀한 심정을 감추지 않았다.

눈앞에 자리한 소녀.

빛으로 된 새하얀 날개로 티 하나 없이 맑은 나신을 감싸고 선 이.

유더가 마른침을 삼켰다.

그리고 그 순간 소녀가 눈을 떴다. 파란 눈동자로 유더를 마주하였다.

맑고 청아했다.

하지만 이내 코델리아다운 장난기가 번졌다. 예쁘게 그려진 미소 속에서 송곳니가 반짝였다.

“어때?”

어쩐지 젠체하는 코델리아의 물음에 유더는 즉답했다.

“예뻐.”

“아니이, 그거 말고오.”

얼굴이 새빨개진 코델리아의 말에 유더는 흠흠 헛기침을 토하더니 제법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엄청 예뻐.”

“야!”

이게 뭐라는 거야?

너 지금 나 놀리는 거지?

유더는 웃었다. 그리고 코델리아가 원하는 답을 들려주었다.

“강해졌어.”

코델리아는 지금 이 순간 문자 그대로 인간을 초월했다.

애당초 인간에 비하자면 상위종이라 할 수 있을 천사였다.

최하급인 9급이라 해도 일반적인 인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존재였다.

특히 마력이 말이다.

“1.5배?”

“아마도.”

마력의 기본치가 증가했다.

여기에 마력을 폭발적으로 증가시켜주는 마녀화까지 더해진다면.

“완벽해지겠군.”

맑고 순수한 코델리아에게 타천사의 고혹함이 더해진다면.

유더는 흐뭇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고, 코델리아는 꽤 다른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멀지 않았어.’

인간재해의 진정한 힘을 발휘할 순간이.

마녀화까지 해낸다면 코델리아의 전매특허라 할 수 있을 ‘7대 금지 마법’에 입문할 수 있으리라.

“완벽해.”

“맞아, 완벽해.”

오랜만에 오해한 상태로 고개를 끄덕인 두 사람은 이내 다시 착착 손발을 맞추었다.

유더가 얼른 코델리아가 걸칠 옷을 내밀었고, 코델리아는 날개로 몸을 가린 채 끙끙 거리며 옷을 입었다.

그런데.

“저기, 유더씨?”

“응?”

“뭔데, 이건.”

“고양이 세트. 토끼 세트보다 더 좋더라.”

까만 고양이 머리띠와 꼬리.

민첩성뿐만 아니라 유연성까지 크게 높여주는 세트 아이템.

“저기요, 유더씨?”

“강해질 거야.”

코델리아는 눈을 가늘게 떴지만 이내 선심 쓴다는 듯 장착을 마쳤다.

그리고 그런 유더와 코델리아의 모습에 레나가 미소를 흘렸다.

‘신기해.’

선조회귀는 보통 일이 아니었다.

지금까지의 자신을 버리고 새로운 자신이 되는 일이었다.

그런데 두 사람 모두 태연했다.

무척이나 안정적이었다.

‘그리고.’

왜일까.

결전을 눈앞에 둔 상황이었는데, 파라곤의 비극이 되풀이 될지도 모를 시국 앞에 있는데도 미소가 나오는 것은.

사실 이유는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레나는 투닥 거리는 두 사람에게 말했다.

“마지막 준비를 할까요?”

유더와 코델리아가 지난 나흘 동안 준비한 것.

그리고 레나 자신이 준비한 것.

그 모든 것을 마무리할 마지막 하나.

“여기 있습니다.”

유더가 천상의 심판을 꺼냈고, 코델리아가 그것을 쥐었다. 레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오직 천사만이 봉인을 풀 수 있는 천상의 심판.

심판의 대천사 아우리엘이 벼린 신벌의 무구.

코델리아와 레나가 천상의 힘을 발했다.

다시 한 번 밤하늘을 빛으로 물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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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43장 - 성천사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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