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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딩메이커-121화 (121/473)

< 제46장 - 교통정리 >

제46장 - 교통정리

악마의 눈의 상급 마인 하라겐.

그는 치밀하고 교활한 성격이었다.

총수의 명을 받아 야생의 땅에 잠입한 그가 제일 먼저 한 일은 서부 최강을 자부하는 성난뿔소 부족의 수호신인 성난뿔소를 타락시키는 일이었다.

‘우선 성난뿔소 부족을 손에 넣어라.’

총수에게 받은 강력한 기물로 성난뿔소를 타락시킨 하라겐은 이어 성난뿔소 부족의 족장 일곱뿔에게 저주를 걸었다.

저주에 괴로워하던 일곱뿔은 너무나 자연히 성난뿔소를 찾아가 하소연을 하였고, 이미 하라겐의 꼭두각시가 된 성난뿔소는 일곱뿔에게 하라겐을 소개시켜주었다.

‘그 후는 일사천리.’

대주술사가 된 하라겐은 일곱뿔의 저주를 풀기는커녕 몇 개나 되는 저주를 더 걸어 그를 타락시켰고, 마침내는 성난뿔소 부족을 완전히 손에 넣었다.

‘그리고 서부로.’

성난뿔소 부족의 힘으로 서부를 장악했다.

용맥천을 타락시켜 타락한 야생신의 숫자를 늘렸고, 부족장들의 회합에서 저주를 퍼트렸다.

‘붉은질풍은 죽는다.’

야생의 땅 통일에 가장 방해가 될 위대한폭풍 부족과 그들을 이끄는 부족장.

서부를 장악하는 와중에도 동부에 마인들을 파견하여 야생신들을 타락시켰다.

본격적으로 동부를 장악하기 전에 미리 발밑을 썩게 만들기 위함이었다.

하라겐은 잘못하지 않았다.

원작에서의 그는 단 한 번의 실수도 없이 야생의 땅을 손에 넣었으니 말이다.

‘타락한 거친눈사태와 고운눈바람이 위대한폭풍을 암살하고, 붉은질풍은 저주에 걸려 죽으며, 붉은바람은 북부에서 노예 생활을 한다. 구심점을 잃은 위대한폭풍 부족은 엉망진창으로 흩어지고, 동부의 야생신들은 하나둘 타락해간다.’

그리고 마침내 칼날노래까지 타락했을 때.

하라겐은 지옥의 마물로 전락한 야생신들과 마인으로 거듭난 전사들을 선두로 세일룬 왕국 북부를 침공한다.

이 전쟁에서도 하라겐은 승리하고, 야생의 땅의 오랜 염원이었던 세일룬 왕국 북부 장악을 이루어낸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원작에서의 이야기.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하라겐은 눈앞의 현실에 절규했다.

모든 것이 엉망진창이었다. 하나하나 잘 풀려나가던 일이 어느 순간 어그러지더니, 이제는 아예 박살이 나버렸다.

그 시작점.

첫 번째 도미노.

붉은질풍의 생존.

거친눈사태의 무사함.

북부로 귀환한 붉은바람.

“크윽··· 크아아!”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하라겐은 알았다.

이제 자신에게 미래란 존재하지 않았다.

총수는 자신을 용서하지 않을 터였다.

아니, 지상강림을 코앞에 두었던 데몬프린스가 자신을 짓밟으리라.

그저 절망뿐인 미래.

“크하! 크핫핫!”

악마 추종자라 하여 절망 속의 삶을 갈구하진 않았다.

두려움과 공포에 짓눌려 사는 것도 사절이었다.

하라겐은 웃음을 흘렸다.

어차피 다 끝났다.

이제 끝이었다.

남은 것은 오기뿐이었다.

그러니 최소한 그 연놈들이라도.

반드시 그 연놈들이라도!

“크아아!”

하라겐이 무시무시한 힘을 발했다.

지금껏 전투에 나서지 않았지만 그는 상급마인이었다.

더욱이 지옥의 문에서 흘러나온 기운을 통해 보다 마에 가까워진 상태였다.

하라겐의 몸이 부풀어 올랐다.

이제는 더 이상 인간의 형상이라 부를 수도 없었다.

거대한 사마귀와 갑충을 뒤섞은 모양새가 된 그는 괴성을 토하며 겹눈으로 전장을 보았다.

지옥의 문이 있던 자리.

스톤 골렘들과 쉴드 마법으로 보호되고 있는 작은 영역.

하라겐은 보았다.

반투명한 쉴드 속에 앉아 있는 붉은 머리의 소녀를.

천사처럼 아름다운 소녀의 품에 안긴 채 누워 있는 소년을.

옆에 천사도 하나 서 있었지만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하라겐은 오직 소년과 소녀만을 보았고, 노기를 감추지 않았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상대를 찢어죽이기 충분한 살기를 내뿜었다.

그리고 그 살기를 마주한 소녀는 두려워 떠는 대신 마주 이쪽을 노려보았다.

가운뎃 손가락을 세우며 무어라 내뱉듯이 말하는데, 욕지거리가 분명했다.

“미친놈들.”

기고만장했구나.

자신들이 다 이겼다고 생각하는 구나.

그럼 그 생각을 짓밟아주마.

그 천사같은 얼굴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어주마!

쿵!

하라겐이 쉴드를 향해 똑바로 돌진했다.

그 무시무시한 기세에 코델리아는 순간 흠칫했지만 손가락을 내리지 않았다.

보았으니까.

분노에 미쳐 주변을 살피지 못 하는 하라겐의 등 뒤.

마물들과 악마들을 마치 볏단 베듯이 베며 나아가는 기사.

칠흑의 전마 위에 올라탄 그가 유더와 코델리아를 향해 돌진하는 하라겐을 보았다.

조금의 주저도 없이 하라겐을 향해 돌진했고, 손에 쥐고 있던 검에 빛을 더하였다.

성왕십자검.

아직은 미숙한 루카스의 것과는 달리, 완숙의 경지에 오른 참마의 검!

“오오오.”

코델리아가 감탄하자 유더는 미간을 살짝 좁히며 말했다.

“아깝다.”

“뭐가? 성왕십자검이? 루카스한테 부탁하면 가르쳐주지 않을까?”

“아니, 그거 말고.”

“그럼 뭐가?”

“경험치.”

“아, 맞다. 그러네.”

하라겐은 상급마인이었고, 일단 원작대로라면 현재 야생의 땅에서는 최종보스라 할 수 있는 인물이었으니까.

유더와 코델리아가 돌아가며 말했고, 하라겐의 몸이 양단되었다.

바닥에 쓰러진 놈은 유더와 코델리아를 보며 손을 뻗었다. 한 맺힌 외침과 함께 저주의 말을 입에 담았다.

그리고 코델리아가 유더의 머리칼을 만지며 말했다.

“아이, 씨. 왜 이야기해가지고. 진짜 아깝잖아.”

“기분 좋다.”

“뭐가?”

“아니, 그냥 지금 이 순간이.”

“뭐래?”

코델리아는 코웃음을 치며 유더의 이마를 어루만졌고, 유더는 기분 좋게 눈을 감았다.

그리고 하라겐은 마지막 목소리를 토했다.

“저주··· 했다고······.”

그러니까 좀 들어달라고.

이쪽도 좀 쳐다봐주고··· 꽁냥거리지만 말고······.

거기까지였다.

흐레스벨그 백작의 성왕십자검이 한 번 더 빛을 발했고, 하라겐은 검은 재가 되어 흩어졌다.

그리고 그 순간 유더와 코델리아의 머릿속에 청아한 목소리가 울렸다.

[‘야생의 수호자’ 타이틀을 획득했습니다.]

[‘야생의 파괴자’ 타이틀을 획득했습니다.]

수호자와 파괴자.

서로 상반된 타이틀.

그리고 이것들을 동시에 얻게 된 이유.

코델리아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새삼 자신들이 저지른 일이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개, 개꿀이긴 한데······.’

본래라면 동시에 얻는 것이 불가능할 타이틀들을 획득했으니까.

나중에 야생신들 얼굴을 어떻게 보지?

‘괜찮아, 야생의 땅을 구하기 위해서였으니까. 모두 이해해줄거야.’

‘그럴까?’

‘그럴 거야.’

덮어놓고 말한 유더는 다시 우물쭈물한 코델리아의 손길을 즐기고자 눈을 감았지만, 이내 다시 뜰 수밖에 없었다.

“유더! 코델리아!”

“루카스!”

익숙한 목소리에 코델리아가 반갑게 화답했다.

어느새 쉴드 앞에 도달한 루카스가 씩씩한 얼굴로 서 있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이었다.

“언니이이이! 오빠아아아아!”

하이톤의 목소리와 함께 루카스의 반대편에서 붉은바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씩씩하기 짝이 없는 그녀는 상기된 얼굴로 환히 웃었고, 코델리아는 다시 한 번 반갑게 화답했다.

“붉은바람!”

그리고 직후.

루카스와 붉은바람이 서로를 보았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인상을 구겼다.

마주한 순간 찌릿하고 느껴진 감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숙적, 라이벌, 앙숙 등등.

‘뭐야, 저 야만족 여자는.’

‘뭐야, 저 길쭉한 북부 칼잡이는.’

왜 우리 유더 공자와 코델리아 양에게- 왜 우리 오빠랑 언니한테-

‘친한 척이야?’

동시에 똑같은 생각을 한 두 사람은 다시 한 번 감지했다.

서로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말이다.

“유더 공자, 코델리아 양. 제가 왔습니다. 두 분의 절친한 친구인 제가 말입니다!”

루카스가 먼저 호소하듯 말했고, 코델리아가 무어라 응답하기도 전에 붉은바람이 반응했다. 움찔하는가 싶더니 쌍심지를 켜며 말했다.

“언니! 오빠! 내가 왔다! 두 사람의 예쁘고 사랑스러운 여동생인 내가 말이다!”

친구보다 여동생이 더 높거든?

붉은바람이 루카스에게 눈빛을 보냈고, 루카스는 찰떡같이 알아들었다.

똑같이 눈빛으로 답해주었다.

‘피도 안 섞였는데 여동생은 무슨! 거기다 뭐? 사랑스러워?’

‘난 언니랑 오빠라고 부르거든? 그럼 동생이지!’

‘나도 따지고 보면 동생이다!’

서로 외국인에 사용하는 언어도 다른데 어찌 이리 잘 통할까.

북부의 기사로 자란 루카스는 야만족들에 대한 적대감이 머릿속에 뿌리 깊이 박혀 있는 터라 이미 게일과 아델리아에게 이런저런 설명을 들었음에도 붉은바람을 마주한 순간 반감을 느꼈다.

붉은바람 역시 유더와 코델리아 덕분에 북부인들에 대한 편견이 줄어들었지만, 반대로 노예 생활을 안 한 덕에 천방지축인 면이 그대로 남아 있었고, 유더- 특히 코델리아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다.

이런 두 사람이 마주했으니 양쪽 모두가 평소 이상으로 흥분하며 반응하는 것도 당연했다.

“어··· 두 사람?”

갑자기 왜 그래.

둘이 무슨 분위기야 이게.

코델리아가 급히 유더를 돌아보았고, 유더는 있는 힘을 다해 웃음을 억눌렀다.

‘뭐야, 뭐야. 넌 또 왜 웃는데?’

‘아니, 그냥 재밌어서.’

원작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상황.

루카스와 붉은바람이 서로 칼을 맞대는 대신 코델리아를 사이에 두고 서로 친하다며 다투는 상황.

‘코델리아의 야망은 무리일 것 같네.’

루카스와 붉은바람을 맺어주네 어쩌네 했는데.

‘아니, 오히려 가능성이 있을지도······?’

앙숙과 라이벌이라 하여 언제까지 으르렁거리란 법은 없었으니까.

‘뭐야, 뭔데. 왜 자꾸 혼자 실실 쪼개는데.’

코델리아가 유더의 머리칼을 잡아당겼고, 유더는 그 손길마저 즐겼다.

그렇게 유더가 새로운 세계를 알아가려 할 때, 한 쌍의 커플이 추가되었다.

“유더.”

“코델리아!”

게일과 아델리아였다.

갈까마귀들 사이에서 무시무시한 활약을 펼친 두 사람은 유더와 코델리아를 지키기 위해 전선을 이탈, 이 자리에 온 것이었다.

“게일 님.”

“아델 언니!”

루카스와 붉은바람이 각자 말했고, 흠칫 하더니 다시 서로를 노려보았다.

‘왜 친한 척인데?’

‘그러는 너는?!’

다시 격렬한 눈빛 교환이 오갔고, 게일과 아델리아는 그런 둘을 내버려두고 유더와 코델리아에게 다가갔다.

이미 주변의 적들은 일소된 상황이었던 터라 코델리아는 쉴드를 해제했고, 레나 역시 골렘들을 거두었다.

“언니, 인사드려. 레나님이셔. 레나님, 저희 언니와 아주버님이세요.”

코델리아의 소개에 아델리아가 눈을 크게 떴다.

“헉! 레나님이세요?!”

“레나 아인스버그입니다.”

레나가 힘겨운 상태로나마 단아하게 답하자 아델리아의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아, 아델리아 체이스입니다. 근위마법병단 제7단장입니다.”

바짝 긴장한 아델리아가 딱딱하게나마 스스로를 소개했다.

레나는 아델리아의 우상이었으니까.

쿵쾅거리는 심장 때문에 아델리아는 현기증까지 느꼈고, 게일은 얼른 그런 아델리아의 허리를 안아 부축하며 스스로를 소개했다.

“게일 바이엘입니다. 성천사님을 뵙습니다.”

게일의 인사에 퍼뜩 정신을 차린 루카스 역시 예를 표했고, 붉은바람은 다시 시선을 보냈다.

‘난 이미 예전에 인사했거든?’

그래서 어쩌라고.

루카스는 받아치는 대신 침묵했고, 레나는 어쩐지 모를 시끌벅적함에 다시 미소를 지었다.

‘하··· 좋았는데.’

그리고 홀로 아쉬워하는 남자.

코델리아 품에 안겨 눈을 감은 채 그 손길을 느끼는 호사를 누리고 있었거늘.

‘그래도 일단 계속 누워는 있어야지.’

힘들기도 하니까.

하지만 유더의 검은 욕망은 오래가지 못 했다.

코델리아가 유더의 새카만 속내를 눈치 채서가 아니었다.

“오늘도 안겨 있구나.”

하늘에서 들려온 목소리.

번쩍하고 눈을 뜬 유더는 서둘러 몸을 일으켰고, 볼 수 있었다.

양손 가득 가방을 든 채 허공을 밟아 내려오고 있는 위풍당당한 남자를.

““아버님.””

유더와 게일이 동시에 말했고, 체이스 백작의 근엄한 얼굴에 아주 잠깐이지만 흐뭇한 미소가 스쳤다.

““아빠.””

그리고 다시 딸들의 이중주.

보기 좋게도 각자 사윗감들 곁에 잘 붙어 있었다.

하지만 체이스 백작은 엄격한 표정을 유지했다.

상황이 참으로 많이 변했지만, 그래도 처음 길을 나선 이유를 잊지 않은 체이스 백작이었다.

“오랜만이구나, 유더. 그리고 코델리아.”

가출한 아이들을 잡으러 이 땅에 왔나니.

체이스 백작이 지상에 안착했다. 두 사람을 향해 발걸음을 내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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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46장 - 교통정리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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