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46장 - 교통정리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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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더 체이스.
당대의 체이스 백작인 동시에 붉은 여명 탑의 탑주.
그의 등장에 루카스와 신경전을 펼치던 붉은바람은 흠칫하며 몸을 경직시켰다.
‘보통 사람이 아냐!’
마주한 순간 알 수 있었다.
마법사임을 믿을 수 없는, 일류 전사라 해도 믿을 것 같은 큰 키와 풍채 때문만이 아니었다.
엄격함과 근엄함을 구현화시킨 것 같은 잘생긴 얼굴 때문도 아니었다.
불사조가 말해주고 있었다.
눈앞의 남자는 불의 사랑을 받는 자이다.
어마어마한 경지에 도달한 화염술사이다.
정령은 아니었다. 정령을 부리는 자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에게 느껴지는 강한 불의 기운은 흡사 야생신을 방불케 할 정도였다.
“아.”
레나 역시 감탄했다.
파란곤 왕국의 비극 이후 여러 마법사들을 만났지만 지금 눈앞의 남자가 가장 우수했다.
만난 순간 직감할 수 있을 정도의 재능과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마치 프란을 보는 것 같아.’
다섯 영웅들 가운데 하나인 드루이드 프란.
그 역시 전사를 방불케 하는 크고 강건한 육체와 자연력을 기반으로 한 강력한 마법의 힘을 갖추고 있었는데, 여러모로 체이스 백작과 닮은 구석이 있었다.
‘표정도 그렇고.’
프란도 엄격함과 근엄함의 화신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으니까.
진짜 성격은 전혀 달랐지만 말이다.
“아빠! 아, 아니. 아버지, 인사하세요. 성천사 레나 아인스버그님이세요.”
바로 그때였다.
유더와 코델리아를 향해 성큼성큼 나아가던 체이스 백작 앞을 아델리아가 막아서며 급히 말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레나를 멀뚱히 세워둘 수 없어서였다.
“성천사님?”
“네, 레나님이세요.”
아델리아가 활짝 웃으며 레나를 가리켰고, 체이스 백작은 레나를 돌아보더니 빠르게, 하지만 절도 있게 예를 표했다.
“아더 체이스가 파라곤 왕국의 영웅을 뵙습니다.”
“레나 아인스버그가 붉은 여명 탑의 탑주이신 체이스 백작님을 뵙습니다.”
레나가 공손히 예를 표하자 체이스 백작은 다소 놀란 표정을 지었고, 코델리아와 아델리아는 크게 기뻐했다.
‘역시 우리 아빠야!’
레나는 가르쳐주지 않았는데도 붉은 여명 탑을 언급했다.
즉, 이렇게 처음 만나기 전부터 체이스 백작에 대해 대강이나마 알고 있었다는 이야기였다.
“어찌 모를 수가 있을까요. 세일룬 왕국의 자랑인 붉은폭풍을.”
체이스 백작의 별칭.
그리고 사실 당연한 흐름이기도 했다.
체이스 백작은 정말 대단한 사람이었으니 말이다.
북부 사강 가운데 하나였고, 대륙 전체에서도 열손가락 안에 드는 강력한 전투 마법사였다.
젊은 시절부터 쌓아올린 전공도 어마어마한 터라 그 명성은 외국에도 널리 알려져 있었다.
“흠흠, 과찬이십니다.”
체이스 백작이 헛기침을 하며 점잖게 말했지만 아델리아는 알 수 있었다.
아버지의 입 꼬리가 슬쩍 올라가는 것을 말이다.
레나는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체이스 백작님, 말씀을 낮추시죠.”
나이만 따지면 레나 보다 열 살은 연상인 체이스 백작이었으니까.
하지만 체이스 백작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닙니다, 어찌 말을 낮출 수 있겠습니까.”
파라곤 왕국의 비극을 종식시킨 다섯 영웅이라서가 아니었다.
레나는 대마법사의 경지에 오른 자였고, 대마법사의 나이를 헤아리는 것은 무의미했다.
“과연, 코델리아 양을 볼 때마다 감탄하게 된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과찬이십니다.”
훈훈한 덕담이 한 차례 오가자 레나는 슬쩍 뒤로 물러섰다.
용무가 있어서 온 체이스 백작을 언제까지 붙잡을 수는 없어서였다.
체이스 백작은 그런 레나의 배려에 묵례로 답한 뒤 다시 유더와 코델리아를 돌아보았다.
“유더, 오늘은 특히 더 비리비리하구나.”
평소와 같은 흠집잡기나 핑계(?)가 아니었다.
지금의 유더는 얼굴도 창백하고 눈밑도 검은 것이, 정말 환자처럼 보였다.
“그건······.”
“유더 잘못이 아니에요! 제가 유더한테 마나 드레인을 써서 그래요!”
코델리아가 얼른 앞으로 나서며 소리쳤다. 유더를 보호하듯 두 팔을 활짝 펼치며 몸을 부풀리는 모습에 체이스 백작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둘 사이의 사랑이 깊은 것이야 마음에 들었지만, 코델리아가 유더를 보호하는 상황이 영 탐탁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나 더.
“코델리아, 마나 드레인이라 하였느냐?”
“네? 어··· 네.”
코델리아가 움찔하며 답하자 체이스 백작은 쯧하고 혀를 찼다.
“마녀의 주문이겠군.”
“···네.”
코델리아가 마녀의 힘을 손에 넣었다는 사실은 이미 루카스를 통해 보고가 된 상황이었다.
체이스 백작은 재차 미간을 좁혔지만 무어라 화를 내지는 않았다.
마나 드레인은 분명 효과적인, 그리고 효율적인 마법이었지만 동시에 사악한 마법이기도 했다.
생명의 힘을 갈취해 마력으로 변환하는 기술이었으니 말이다.
‘안타깝군, 하지만 운명인가.’
이미 손에 넣은 힘이었다. 무작정 억누르기만 해서는 안 될 터였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아버님, 제 잘못입니다. 제가 코델리아에게 마나 드레인을 쓰라고 했습니다.”
유더가 다시 앞으로 나서며 말했고, 그 선언에 화들짝 놀란 코델리아가 급히 유더를 잡아당겼다.
“아, 아니거든요! 제가 쓴 거거든요? 유더는 잘못 없어요! 혼내지 마세요!”
본인들은- 적어도 코델리아만은 필사적인 그 외침에 주변에 있던 모두가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훈훈하다.
귀엽다.
사랑스럽다.
그리고 동시에 눈꼴시렵다.
서로 자기 잘못이라 나서며 서로를 지키려는 한 쌍이라니.
“뭐, 좋다. 비리비리하다면 비리비리하지 않게 만들면 될 터이니.”
그렇게 말하며 체이스 백작은 가방을 내려놓았고, 유더의 눈이 빛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이었다.
“아무래도 안 되겠군.”
체이스 백작이 작게 말했다.
전장의 흐름 때문이었다.
갈까마귀들이 성난뿔소 부족을 밀어붙이고 있는 상황이었지만, 그렇다고 전투가 완전히 끝난 건 또 아니었다.
체이스 백작이 참전하느냐 마느냐로 수많은 이들의 운명이 뒤바뀔 수도 있으니, 이곳에서 여유를 부릴 때가 아니었다.
“게일, 아델리아.”
“예, 아버님.”
“네, 아빠.”
대답하며 나서는 두 사람의 얼굴을 보니 이미 무슨 말을 할지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때문에 체이스 백작은 거두절미하고 말했다.
“유더와 코델리아를 지켜라. 난 다녀올 터이니.”
“예, 아버님.”
“네, 아빠.”
두 사람이 답하자마자 체이스 백작은 레나에게 다시 예를 표한 뒤 허공으로 떠올랐다.
“다녀오겠다.”
그대로 갈까마귀들을 향해.
체이스 백작이 다시 사라지자 코델리아는 저도 모르게 안도의 숨을 토했고, 유더는 순간 비틀거리는가 싶더니 그대로 코델리아의 품에 안기듯 쓰러졌다.
“유, 유더야?!”
“미안, 다리에 힘이 풀려서.”
“무리하지 말라니까. 다시 눕자. 내가 무릎베개 해줄게.”
코델리아는 유더를 품에 안은 채 조심스럽게 자세를 낮춘 뒤 자기 말마따나 무릎베개를 해주었다.
“어때, 괜찮아?”
“어··· 딱 좋아. 고마워.”
걱정 가득한 코델리아의 물음에 유더는 부드럽게 답한 뒤 그대로 눈을 감았다.
‘역시 착해.’
아프고 힘들 때는 평소와 달리 한 없이 상냥해지는 코델리아였으니까.
‘좋구나······.’
이게 바로 극락일지니.
그렇게 유더가 다시 지복의 시간을 누리자 아델리아는 눈을 가늘게 떴다.
그녀의 눈에는 착하고 순진한 코델리아를 홀라당 속여 먹는 유더의 검은 욕망이 고스란히 보였기 때문이다.
‘저거, 저거. 완전 사기꾼이네.’
하지만 뭐라 하기 애매한 상황이기도 했다. 바로 옆에 게일도 있었고 말이다.
‘녀석도 참.’
아델리아 이상으로 유더의 속내를 바로 파악한 게일은 쓰게 웃더니 전장을 돌아보았고, 루카스와 붉은바람은 다시 눈싸움을 시작했다.
그리고 반시간 남짓.
성난뿔소 부족의 패잔병들을 갈까마귀들이 쫓기 시작할 정도로 전황이 기울자- 아니, 사실상 전투가 종결되자 체이스 백작이 다시 돌아왔다.
“아직도 비리비리 한 것이냐.”
끌끌끌 혀를 찬 체이스 백작은 가방을 열었고, 순간 자리에 있던 모든 이들의 시선이 가방에 집중되었다.
‘과연 아버님.’
오늘은 어떤 것들을 들고 오셨을까.
유더는 기대했고, 체이스 백작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먹어라, 변변찮은 것이지만 기운을 차리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헉.”
적당히 던진 물건을 받아든 유더가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떴고, 그건 코델리아도 마찬가지였다.
‘이거 바라만의 영약 아냐?’
‘맞아! 그거야!’
체력뿐만 아니라 기력의 절대치까지 높여주는 레어 아이템.
원작에서도 중반 이후에나 나오는, 지금 시점에서는 지극히 구하기 어려운 물건이었다.
“흥, 변변찮은 물건이다. 덤으로 이것도 받아라.”
그리고 다시 휙하고 던지는 아이템.
이번에도 유더와 코델리아의 눈이 반짝였다. 먹은 이의 뼈를 무쇠처럼 단단하게 해주는 강철의 의지였기 때문이다. 이것 역시 초반에는 구하고 싶어도 구할 수 없는 레어 아이템이었다.
“아아, 아버님. 아아, 아버님.”
유더의 눈에 존경과 감사와 사랑이 묻어났고, 코델리아도 신이 났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이 하나 있었다.
“아빠, 잠깐만요.”
앞으로 한 걸음 나선 아델리아는 유더의 손에 들린 물건들을 보며 눈을 가늘게 뜨더니 이내 체이스 백작 쪽을 돌아보았다.
“아빠, 좀 너무하지 않아요?”
그리 길지 않은 말속에 함축된 이야기는 뻔했기에 체이스 백작은 헛기침을 토했다.
“흠··· 그것이······.”
“너무하잖아요. 차별하는 것도 아니고.”
“저··· 아델리아 양.”
“공자님은 가만있어 봐요.”
앞으로 나서는 게일을 만류한 아델리아는 그대로 체이스 백작을 바라보았고, 체이스 백작은 다시 헛기침을 토했다.
사실 아델리아의 말마따나 차별을 하기는 했다.
게일에게 준 물건들이 상급품이라면, 유더에게 준 물건들은 최상급품들이었으니 말이다.
이유는 단순했는데, 일단 준비기간의 차이였다.
오래전부터 이것저것 준비해온 유더 몫과 달리 게일의 몫은 정말 급히 준비한 것들이었다.
당연히 질적으로 차이가 날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 한 가지가 이유가 더.
“언니, 우리 유더는 성장기잖아. 이제 한창 클 때란 말이야.”
가만히 있으면 유더 몫을 뺏길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에 코델리아가 포문을 열었다.
이러나저러나 우리집 유더였다.
프린세스 메이커- 아니, 유더 메이커를 하는 입장에서 어찌 뺏길 수 있단 말인가.
코델리아의 참전에 아델리아의 눈매가 날카롭게 변했다.
언제나 사랑스럽기 그지없던 여동생이 이리 변할 줄이야. 배신감이 들 지경이었다.
“야, 그딴 게 어딨어. 그리고 우리 게일 공자님도 아직 더 성장하실 여지가 있거든?”
“아니, 흠흠. 아델리아 양.”
이미 이십대 후반인 게일이었다. 여기서 더 클 게 뭐가 있단 말인가.
“왜 없어요. 근육도 더 키울 수 있고, 몸에 좋은 거 먹고 몸도 더 좋게 할 수 있고.”
게일의 만류를 잘라낸 아델리아는 다시 코델리아를 노려보았고, 코델리아도 지지 않겠다는 듯 나름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우리 유더와 우리 게일의 향연.
유더와 게일의 얼굴에는 곤혹스러움과 만족스러움이 동시에 떠올랐고, 체이스 백작은 끌끌끌 혀를 차더니 마력을 발산했다.
주변 대기가 뒤흔들릴 정도로 강력한 마력의 발산해 코델리아와 아델리아가 움찔하자 바로 말을 이었다.
“그쯤해라. 다음엔 더 챙겨줄 터이니.”
“아니······.”
“그만 하래도.”
체이스 백작의 낮은 명령에 아델리아는 입을 꾹 다문 뒤 물러났고, 코델리아는 안도의 한숨을 토했다.
‘이겼당.’
어찌되었든 지켜냈다.
아주 작게 웃은 코델리아는 어떠냐는 듯 유더를 돌아보았고, 유더는 애써 웃음을 참은 뒤 눈빛으로나마 코델리아를 칭찬했다.
“아무튼 계속하마.”
일단 들고 온 것들을 털긴 털어야 했으니까.
체이스 백작이 다시 가방에 손을 집어넣자 모두의 시선이 가방에 집중되었고, 손에 잡힌 물건을 반쯤 꺼낸 체이스 백작은 순간 미간을 찌푸렸다.
‘음, 이건 안 되겠군.’
랑케부스트에서 구한 최상급 정력제.
무심코 사버렸는데, 아직이었다. 너무 일렀다. 그야말로 시기상조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미 반쯤 꺼낸 물건이었다.
다시 집어넣으려 하니 바로 코델리아가 물고 늘어졌다.
“아빠아아, 뭐에요. 왜 집어넣는 거예요. 우리 유더 줄 거 아니었어요?”
주려던 게 맞긴 했다.
하지만······.
“후, 어쩔 수 없군.”
작게 말한 체이스 백작은 그대로 곱게 포장된 정력제를 유더에게 던짐과 동시에 메시지 마법을 사용했다.
[1년 뒤에 먹어라. 지금 먹으면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아니, 1년 뒤에도 안 된다. 결혼식 이후다. 알겠나? 어? 알겠나?]
무시무시한 박력에 유더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인 뒤 품속에 물건을 챙겼다.
코델리아가 반짝반짝 빛나는 눈으로 뭐냐고 물어댔지만 섣불리 답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다시 십여 분.
마지막으로 지금까지 준 물건들을 담을 수 있도록 빈 가방을 건네준 체이스 백작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고, 코델리아 역시 환히 웃었다.
그리고 때를 맞춰 도착한 이가 하나 있었다.
“시끌벅적하구려.”
흐레스벨그 백작.
검은 전마 위에 올라탄 그가 나타나자 분위기가 일변했다.
딱히 적대감을 표하는 것도 아니었지만, 등장 자체만으로 주변의 분위기를 바꿀 수 있는 남자였다.
“아버지.”
루카스가 무어라 말하려 하자 눈빛으로 말을 끊은 그는 유더와 코델리아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과연, 너희가 환상의 한 쌍인가.”
눈빛과 표정, 목소리 모두 평이했지만 유더와 코델리아는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도둑이 제발 저린다고 지금까지 지은 죄들이 있어서였다.
하지만 흐레스벨그 백작의 압박은 오래가지 않았다.
애당초 체이스 백작도 있는 이 자리에서 두 사람을 야단칠 마음도 없었던 데다가, 새로이 찾아오는 이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유더, 코델리아.”
위대한폭풍이 야생신의 힘을 고스란히 발하며 다가왔다.
언덕 위에서 마물들과 싸우던 동부군 쪽도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된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런 위대한폭풍 뒤에 자리한 태양노래.
흐레스벨그 백작과 태양노래 사이에 결코 감출 수 없는 긴장감이 조성되었다.
루사크와 붉은바람의 눈빛에도 어느새 장난스러움이 사라져 있었다.
북부와 야생의 땅.
오랜 세월동안 대립해온 두 세력.
그렇기에 섣불리 손을 잡을 수 없었다.
이번 전투에서 어찌어찌 힘을 합치긴 했지만, 그렇다 하여 함께 웃고 기뻐하기에는 그간 서로 흘린 피가 너무 많았다.
흐레스벨그 백작의 뒤로 갈까마귀들이 모여들었다.
태양노래의 등 뒤로 전사들이 자리했다.
그리고 위대한폭풍이 앞으로 나섰다.
그는 흐레스벨그 백작과 체이스 백작을 차례로 돌아보더니 마지막으로 유더와 코델리아를 보았다.
유더는 제법 차분한 얼굴이었고, 코델리아는 작금의 상황에 어쩔 줄을 몰라하고 있었다.
‘어떻게든 해줘요!’
코델리아의 눈빛.
위대한폭풍은 결국 웃고 말았다.
과정이야 어찌되었든 결국 야생의 땅을 지켜낸- 아니, 야생의 땅의 미래를 지켜낸 두 사람을 위해 앞으로 나섰다.
“승리를 선언하겠다. 승리의 주역을 축복하겠다.”
위대한폭풍은 야생신이었다.
흐레스벨그 백작과 체이스 백작은 그의 신성을 존중하듯 예를 표했고, 위대한폭풍은 야생의 땅의 전사들을 돌아보았다. 다시 갈까마귀들을 돌아본 뒤 하늘 높이 외쳤다.
“지옥의 문은 파괴되었다! 타락한 이들은 멸절하였다!”
목소리가 하늘을 울렸다.
언덕 위에 자리한 동부군 모두가 위대한폭풍을 보았고, 갈까마귀들도 그러하였다.
“사악한 악마들이었다! 놈들은 야생의 땅 전체를 파괴하려 했지만 그러지 못 했다. 야생의 수호자들이- 유더와 코델리아가 놈들의 음모를 막아냈다. 놈들의 파괴를 일부에 그치게 만들었고, 놈들이 연 지옥의 문을 파괴했다!”
다시 한 번 하늘이 울렸다.
야생의 전사들이 환호하며 유더와 코델리아의 이름을 부르짖었다.
“코델리아!”
“코델리아!”
“야생의 수호자!”
“유더!”
어마어마한 함성에 어지간한 유더조차도 몸을 움찔하고 말았다.
하지만 나쁘지 않았다.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것 같은 전율이었다.
코델리아도 그러했다. 다리에 힘이 풀릴 것만 같았지만, 동시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그런데 유더야.’
‘응?’
‘내용이 좀 이상하지 않아?’
야생의 땅을 폭파시킨 건 우린데, 마치 하라겐이 그런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었으니까.
‘그냥 넘어가.’
위대한폭풍의 배려이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으니까.
야생의 수호자들이 야생의 땅에 존재하는 성역 전부를 날려먹었다는 이야기를 어떻게 한단 말인가.
유더는 눈빛을 보냈고, 위대한폭풍은 쓰게 웃었다.
주먹을 불끈 쥐며 이제까지보다 더 큰 목소리로 선언했다.
“우리가 이겼다! 승리했다! 야생의 땅에 영광을! 황금의 용왕께 경배를! 야생의 수호자들에게 경의를!”
“와아아아아아아!”
“야생의 수호자!”
“유더! 코델리아!”
동부군 전체가 환호했다. 땅을 울리는 외침 속에 위대한폭풍이 체이스 백작과 흐레스벨그 백작에게 눈짓했고, 흐레스벨그 백작이 검을 들어올렸다. 기사도를 사용해 거대한 외침을 터트렸다.
“갈까마귀들이여! 악을 멸하였다! 승리하였다! 북부의 기사 유더와 북부의 마법사 코델리아에게 영광을! 누구보다 용맹한 갈까마귀들의 승리에 찬사를!”
“오오오오오오오!”
갈까마귀들도 있는 힘껏 환호했다. 동부군에게 질 수 없다는 의지가 느껴졌다.
위대한폭풍이 제시한 일단 오늘을 넘길 방안.
양쪽 모두의 영웅인 유더와 코델리아를 부각하여 적어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서로가 적이 아님을 인식시킨다.
“유더!”
“코델리아!”
“유더!”
“코델리아!”
끊임없이 터지는 환호 속에서 코델리아는 어지러움을 느꼈다. 빨개진 얼굴로 입술을 깨물었고, 쿵쾅거리는 가슴을 어찌하지 못해 거친 숨을 토했다.
이런 것은 정말 처음이었으니까.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다리에 힘이 풀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다.
유더가 그런 코델리아의 허리를 안았다. 단단히 지탱하며 작게 말했다.
“그냥 즐겨.”
지금 이 순간을.
우리가 해온 일들이 틀리지 않았다는 증거를.
“응!”
코델리아는 활짝 웃었고, 유더도 마주 웃었다.
열광적인 환호 속에서 승리를 만끽했다.
&
< 제46장 - 교통정리 #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