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엔딩메이커-126화 (126/473)

< 제47장 - 약혼식 #3 >

&

검과 권.

양쪽 모두 사용이 가능한 유더였지만, 사실 양쪽 모두 제대로 배운 적이 없었다.

‘구음절맥을 타고났으니까.’

‘유더 바이엘’은 17세가 될 때가지 제대로 된 무술을 배운 적이 없었다.

산책도 매일 못 하는 몸으로 수련을 한다는 건 그냥 죽겠다는 소리 밖에 되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런데 유더는 태양의 목걸이를 얻어 구음절맥의 증상을 약화시킨 이후에는 제법 잘 싸웠다.

바이엘 가문의 시험도 통과했고, 마물들과의 싸움에서도 기술적인 어려움을 겪은 일이 별로 없었다.

그리고 그 이유는 단순했다.

‘전생 때 배운 것들이 있으니까.’

이러나저러나 현대인이었던 유더인 터라 ‘검술’이라 할 만한 것은 나이프 파이팅을 조금 배운 게 전부였지만 ‘권법’- 조금 더 정확히 말해 ‘맨손 격투’ 분야에서는 이야기가 달라졌다.

강진호에게는 킥복싱을 베이스로 하여 여러 무술을 습득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고 또 그쪽으로 싸우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플레이아데스에서 익히게 된 무공은 인간에게 초인적인 움직임을 가능케하였고, 일반적인 권격으로는 도저히 만들어낼 수 없는 파괴력 역시 구현할 수 있게 하였다.

상대 역시 같은 인간이 아닌 마물이나 마인들이었기에 현대의 격투기와는 다른 형태의 싸움을 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 할지라도.’

‘강진호’는 맨손 격투에 능한 자였고, 자연 ‘유더’는 검을 드는 대신 맨손 격투쪽으로 실전을 거듭하였다.

가끔씩 검을 쓰긴 했지만, 주력은 역시 권이었다.

‘그러니 권으로 간다.’

검으로 상대하는 것도 가능하기는 했다.

유더 자신과 루카스 사이에는 어마어마한 신체적 격차가 있으니, 검을 들어도 찍어 누르듯 이기는 것이 가능했다.

하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진심이야.’

루카스는 검의 천재였다.

오랜 시간 검을 수련해 왔고, 그렇기에 상대를 보는 눈 역시 발달해 있었다.

‘루카스도 알아.’

자신이 유더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전해온 것이었다.

질 걸 알면서도, 깨질 것을 알면서도.

‘그러니 진심으로 가자.’

진심에는 진심으로 응한다.

물론 그렇다고 전력을 발휘해 루카스를 박살낼 생각인 것은 아니었지만, 허투루 상대하지는 않을 생각이었다.

“하아!”

루카스의 기합이 상념을 끊었다.

아니, 애당초 유더는 이미 루카스에게 집중하고 있었다.

루카스의 동세.

검이 그리는 궤적.

자연스럽게 계산이 되었다.

눈을 통한 시각 정보뿐만 아니라 오감을 모두 활용해 얻어낸 정보들을 바탕으로 루카스의 다음 동작을, 루카스의 의도를 읽어냈다.

그리고 대응.

강진호이던 시절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해진 육신이었다.

근력, 민첩성, 지구력 등등 이미 초인의 경지였고, 반사신경과 동체시력 역시 비할 바가 아니었다.

여기에 더해지는 천무지체.

상대의 검세를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분석이 가능한 하늘이 내린 무의 재능.

루카스가 검을 휘둘렀다.

유더가 최소한의 동작으로 검을 피했다. 그럼으로써 파고들었고, 주먹을 휘둘렀다.

카캉!

루카스의 검이 유더의 주먹을 막아냈다.

정확히는 급히 검을 당겨 반쯤 억지로 유더의 권격을 방해한 것에 가까웠다.

하지만 어찌되었든 방어.

루카스가 밀려났고, 유더는 그런 루카스를 뒤쫓았다.

캉! 캉! 캉!

검과 권이 부딪히며 날카로운 소리가 터졌다.

검을 든 루카스가 리치 면에서 훨씬 유리했지만 그 절대적인 강점이 그리 유효하게 작용하진 않았다.

흑룡의 기운이 씌인 유더의 두 팔은 루카스의 검을 능히 막아냈고, 루카스는 평소에는 당해볼 일이 거의 없는 발차기 공격에 식은땀을 쭉쭉 흘렸다.

‘겨우 버티고 있어.’

코델리아는 눈을 가늘게 뜨며 그리 생각했다.

여기서 유더가 조금만 더 기어를 높이면, 루카스가 조금만 집중력이 흩어지면······.

‘단번에 끝이 나.’

유더고 알았고 루카스도 알았다.

그리고 흐레스벨그 백작 역시 알고 있었다.

‘경이롭군.’

흐레스벨그 백작은 무인이었다.

호승심을 가진 자였고, 어느 곳에서도 자신의 경쟁상대로 손꼽히는 바이엘 백작에게도 꽤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때문에 유더에 대해서도 익히 알고 있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구음절맥 때문에 바깥 출입조차 마음대로 못 하던 아이.

그런데 지금 검의 천재로 이름난, 흐레스벨그 백작 자신도 젊은 시절의 자신보다 더한 재능을 타고났다고 인정한 루카스를 유더가 찍어누르고 있었다.

어른과 아이의 싸움.

어쩌면 그 이상의 격차.

‘기이하구나.’

불과 몇 달 사이에 저 정도로 폭발적인 성장을 하는 것이 가능한 것일까?

바이엘 백작이 아들에게 병이 있다며 주변을 속인 것은 아닐까?

‘아니,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유더의 실력이 진짜라는 사실과 다른 하나였다.

‘보고 싶군.’

유더의 진짜 실력을.

현재 발휘할 수 있는 최대치의 전력을.

캉!

굉음과 함께 루카스의 자세가 무너졌다.

유더의 맹공을 견디지 못 해 놓아버린 검이 바닥을 뒹굴었고, 유더의 주먹이 루카스의 가슴 앞에 멈추었다.

루카스가 거친 숨을 토했다.

그래도 유더를 보았고, 마른침을 삼켰다. 무언가를 참듯 이를 악문 뒤 선언했다.

“졌습니다.”

“좋은 승부였습니다.”

유더가 권을 거두자 루카스는 제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패배를 선언한 순간 다리의- 아니, 온 몸의 힘이 풀린 탓이었다.

‘졌다.’

질 걸 알고 있긴 했지만, 정말로 졌다.

그리고 확인하였다.

절대적인 격차를.

‘고작해야 한두 달.’

루카스 자신이 유더를 보지 못한 그 시간.

그 시간 사이에 유더는 실로 엄청난 성장을 이루었다.

‘하하··· 하하하······.’

이런 게 바로 좌절감이라는 것일까.

절망이란 것이 이런 것일까.

천재로 태어나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것.

압도적인 격차에 질려 아예 따라잡을 생각조차 못 하게 되는 이 기분.

“루카스, 일어나라.”

등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루카스는 반사적으로 몸을 경직시켰다.

억지로라도 힘을 내 자리에서 일어섰다.

“잘했다. 실력이 늘었구나.”

흐레스벨그 백작의 말에 루카스는 멍청한 얼굴이 되었다.

하지만 흐레스벨그 백작은 사실을 말한 것이었다. 분명 이전에 보았을 때보다 실력이 크게 는 루카스였다.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하도록 하지. 일단은 쉬도록 해라.”

“예, 아버지.”

이번에도 반사적으로 답한 루카스는 연무장을 내려갔다. 그리고 그제야, 홀로 서서 안절부절못하는 코델리아를 보고나서야 연무장 위에 유더와 흐레스벨그 백작이 남았다는 사실을, 서로를 마주한 채 서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버지?’

돌아서서 흐레스벨그 백작을- 그의 눈을 본 루카스는 깨달았다.

아버지는 진심이었다.

“한 수, 부탁해도 되겠나?”

흐레스벨그 백작이 말했고, 유더는 쓰게 웃었다.

이런 흐름을 예상하긴 했지만, 역시 실제가 되니 부담감이 없을 수가 없었다.

‘그래도, 이쪽 역시 기회이니까.’

흐레스벨그 백작은 플레이아데스 전체로 봐도 상당한 수준의 강자였다.

그도 그럴 것이 일국- 그것도 대륙양강 가운데 하나인 세일룬 왕국에서 손에 꼽히는 실력자였으니 말이다.

‘소위 말하는 소드마스터.’

검장, 검호.

이 정도 수준의 검사와 검을 맞댈 일이 몇 번이나 있겠는가.

‘물론 집에 가면 많을 수도 있지만.’

실없는 생각으로 조금이나마 긴장을 푼 유더는 몇 번이나 숨을 고른 뒤 고개를 끄덕였다. 코델리아를 한 차례 돌아보았다.

‘할게.’

‘진짜로?’

이제는 텔레파시가 아닌가 싶은 눈빛 대화.

유더는 주먹을 움켜쥐었고, 코델리아는 발을 동동 구르다 한숨을 내쉬었다. 똑같이 주먹을 불끈 쥐며 눈빛을 보냈다.

‘이왕 하는 거 한 방 먹여줘! 알았지?’

‘가능하면.’

‘가능하면이 아니라 하는 거야. 무조건!’

‘그래.’

유더의 대답에 만족한 코델리아는 활짝 웃었고, 유더 역시 만족했다.

다시 흐레스벨그 백작을 마주하며 답했다.

“한 수 부탁드립니다.”

“바로 시작하지.”

흐레스벨그 백작은 목검을 들었고, 유더는 긴 숨을 토한 뒤 재차 자세를 잡았다.

‘정반대네.’

루카스와 대련을 했을 때와는.

아니, 그 이상인가.

마지막으로 씩 웃은 유더는 쓸데 없는 생각을 지웠다. 흐레스벨그 백작에게 집중하였고, 어느 순간 돌진하였다.

쾅!

굉음.

그리고 연이어 울리는 수많은 소리들.

유더는 맹공을 퍼부었고, 흐레스벨그 백작은 그 모든 공격을 막아냈다.

흘리고, 막고, 때로는 피하며.

‘기어를 높이고 있어.’

흐레스벨그 백작이 유더의 기어를.

그야말로 전력을 다할 수 있도록.

콰가가가가가가가-!

유더의 양손에서 네 마리 흑룡의 기운이 날뛰었다.

흐레스벨그 백작의 검 위에도 은은한 검기가 어렸고, 어느 순간 순백의 오라 블레이드가 펼쳐졌다.

루카스는 숨 쉬는 것조차 잊은 채 두 사람의 대련을 바라보았다.

유더가 공격하고, 흐레스벨그 백작이 방어하는 형태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유더의 기어가 정점에 도달한 그 순간 흐레스벨그 백작이 공격을 시작했다.

내려베기.

단순하지만 도저히 막거나 피할 엄두조차 나지 않는 그것.

유더는 눈앞에 쇄도하는 내려베기로부터 벽을 보았다.

어찌해볼 엄두조차 나지 않아 그저 필사적으로 움직였다. 최대한 거리를 벌려 검격을 피해냈다. 뒤로 물러서는 것 외에는 무엇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제 시작에 불과했다.

흐레스벨그 백작이 한 걸음을 내디뎠다.

유더 자신은 최선을 다해 피한다고 했지만 아직 그리 먼 곳까지 벗어나지 못 했고, 흐레스벨그 백작의 한 걸음이 그나마 벌린 거리를 없는 것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다시 검격.

이번에도 평범한 중단베기.

아니,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유더는 어느 순간 깨달았다.

‘성왕십자검.’

흐레스벨그 백작은 지금 성왕십자검을 펼치고 있었다.

그의 움직임 하나하나에, 보이지 않는 기의 흐름 속에 성왕십자검이 녹아 있었다.

‘과연 검호.’

그가 곧 성왕십자검이었다. 그의 작은 움직임 하나하나에 성왕십자검이 담겨 있었다.

유더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그리할 수밖에 없었다.

몇 번의 검격이 더 유더를 향해 엄습해왔다.

하나하나 피하고 막고 흘릴 때마다 유더의 움직임은 점점 더 위태로워졌다.

코델리아는 경이와 고통을 동시에 느꼈다.

흐레스벨그 백작의 신기에 가까운 검술을 목도한 사실 자체는 기뻤지만, 유더가 엉망진창으로 몰리는 모습이 너무나 보기 괴로웠다.

더욱이 코델리아에게는 보였으니까.

다음이 마지막이다.

다음 일검으로 유더는 성왕십자검 아래 완전히 짓밟히고 만다.

‘싫어.’

억지인건 알았지만, 싫었다.

그런 모습은 보고 싶지 않았다.

유더였으니까.

아웃복서009였으니까.

언제나 1등이었으면 하는, 그런 녀석이었으니까.

코델리아가 이를 악물었다. 주먹을 꽉 움켜쥔 채 소망하고 또 소망했다.

억지 소원을 유더에게 빌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마침내 흐레스벨그 백작이 마지막 검을 들어 올렸을 때.

“어?”

코델리아는 저도 모르게 육성을 토했다.

그녀에게는 보였으니까.

과정을 초월해 결과를 파악하는 그녀의 재능이 알려주었으니까.

이변.

당연한 흐름을 박살내는 그것.

코델리아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유더의 눈을 보았고, 다시 한 번 환히 웃었다. 마구 두근거리는 가슴을 억누르며 마음속으로나마 외쳤다.

‘유더!’

쾅!

유더가 지면을 밟았다.

흐레스벨그 백작의 검을 보았다.

여전히 절대.

넘을 수 없는 벽.

하지만 달라졌다. 아니, 유더 자신이 그렇게 만들었다.

‘성왕십자검.’

루카스를 통해 보았다. 흐레스벨그 백작을 통해 느꼈다.

그리고 알 수 있었다.

성십자 수호단의 무공과 결이 같다는 것을.

적어도 한때는 같은 길을 걸어온 무공이라는 것을.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유더는 느낄 수 있었다.

성왕십자검 그 자체를 감지할 수 있었다.

천무지체.

하늘이 내린 무의 화신.

거기에 더해지는 것.

아홉 개의 하늘, 아홉 개의 세상.

삼라만상 모든 것을 담고 있기에, 삼라만상 모든 것에 흘러들 수 있는 구천구문의 힘.

의식하지 않았다.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몸이 움직였다.

코델리아가 평소 보는 세상이 이러하진 않을까.

아니, 틀리다.

유더 자신은 지금 이 순간에도 계산을 하고 있었으니까.

흐레스벨그 백작의 검은 완벽하다. 그러니 비틀어 부수자. 어거지로 저 검의 경로를 비틀어 버리자.

그러기 위해 필요한 것은 힘.

흐레스벨그 백작에게 당혹감을 불러올, 그리고 유더 자신이 지금까지는 다루지 못 했던 거대한 힘.

쾅!

코델리아가 보았던 것.

유더가 지면을 강하게 찼다. 무게 중심을 단번에 옮기며 주먹을 움켜쥐었고, 구천구문의 구결로 보고 느낀 것을 재현하였다.

성왕십자검.

성왕십자격.

유더의 주먹에 용투기가 집결하였다.

그 순간 흐레스벨그 백작의 얼굴에 당혹감이 번졌다.

마주한 순간 이해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유더의 일권이 작렬했다.

흐레스벨그 백작의 검격을 분쇄했다!

콰하아-!

성왕십자검의 상징과도 같은 성왕의 십자가가 허공에 그려졌다.

흐레스벨그 백작은 뒤로 밀려났고, 그의 공격은 무위로 돌아갔다.

하지만 잠시 뿐.

흐레스벨그 백작이 재차 검을 휘둘렀다. 유더의 십자가를 단숨에 갈라 소멸시켰고, 유더가 고개를 들었을 때는 이미 그의 검이 유더의 목에 닿아 있었다.

결착.

승부가 났다.

유더가 패배했다.

하지만 코델리아는 제자리에서 폴짝폴짝 뛰며 좋아했고, 루카스는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흐레스벨그 백작 역시 조금이지만 거친 숨을 토했다.

“졌습니다.”

유더가 말했고, 흐레스벨그 백작은 검을 거두었다.

그리고 목구멍 끝까지 올라왔던 말을 집어삼켰다.

‘어떻게.’

이미 답은 알고 있었다.

유더가 성왕십자검의 비급을 훔치거나, 바이엘 백작가가 오랜 시간에 걸쳐 성왕십자검을 연구한 것이 아니었다.

‘천무···지체.’

하늘이 내린 무의 화신.

아니, 그것만이 아니었다. 그 이상의 무언가가 유더에게는 있었다.

‘괴물이구나.’

저도 모르게 웃음이 흘러나왔다.

너무 어이없는 상황에 직면하면 웃음이 나온다더니, 그 말이 정말이었던 모양이다.

‘아니, 아니. 그것만이 아니지.’

가슴이 두근거렸다.

눈앞의 녀석이 얼마나 성장할지, 그리고 장차 자신과 어떤 식으로 무를 겨룰지 기대가 되었으니까.

“즐거웠다. 돌아가서 푹 쉬도록 해라. 필요하다면 사람을 붙여주겠다.”

“괜찮습니다. 대신··· 연무장에서 조금 쉬었다 돌아가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도록.”

검을 회수한 흐레스벨그 백작은 무어라 더 말을 남기는 대신 여전히 멍하니 선 루카스에게 다가섰다.

가볍게 어깨를 두드려 정신을 차리게 한 뒤 함께 대련장을 나섰다.

“하아.”

유더는 숨을 토했고, 그대로 털썩 주저앉았다.

“흐아.”

아예 드러누워 온몸을 늘어트렸다.

‘이게 십검호인가.’

란디우스도, 카마엘도 유더 자신 앞에서 진짜 검을 보여준 적이 없었다.

바이엘 백작 역시 마찬가지고 말이다.

하지만 방금, 흐레스벨그 백작은 진짜를 보여주었다.

‘진짜 하늘이네.’

천외천이란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었구나.

하지만 어쩐지 계속 미소가 흘러나왔다.

언젠가 도달할 수 있을 터이니까. 더 높은 경지에 오를 수 있을 테니까.

‘오랜만이네.’

그저 강해진다는 사실이 좋아 수련에 매진하던 시절이 짧게나마 강진호에게는 있었으니까.

“뭐야, 뭐야. 왜 실실 웃어. 실성한 거야?”

“그러는 너도 실실 웃는데?”

“헤헤헤.”

어느새 다가온 코델리아는 유더의 머리맡에 쪼그려 앉더니 다시 헤헤 웃었다.

“우리 유더 많이 강해졌구나?”

“강해져야죠, 우리 공주님 지켜야 하는데.”

“아이구, 기특해라. 상으로 부축해줄게요. 이런데서 자면 감기 걸려요.”

어느새 유더처럼 능글능글해진 코델리아가 유더를 일으켜 세운 뒤 부축했다.

“윽, 땀 냄새.”

“흠흠, 미안.”

“아니, 뭐··· 괜찮아.”

생각보다 많이 나쁘진 않으니까.

어느새 자기보다 10cm는 족히 커진 유더를 부축하며 코델리아는 나아갔고, 유더는 그런 코델리아에게 몸을 기댄 채 넋을 놓았다.

이러나저러나 너무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기에 유더는 눈치 채지 못 했다. 코델리아가 자신의 옆얼굴을 빤히 바라보는 것을 말이다.

‘잘··· 생겼다?’

아니, 그보다는 뭔가 멋있다?

땀에 절어서 눈까지 풀렸는데, 숨도 거칠게 쉬고 있는데.

‘뭐, 뭐지.’

이상하게 자꾸 보고 싶었다.

자꾸만 멋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코델···리아?”

“응? 어··· 응. 빨리 가자.”

에헤헤 웃으며 허둥거린 코델리아는 열심히 앞만 보았고, 유더는 한차례 고개를 갸웃하긴 했지만 딱히 더 의심하진 않았다. 그대로 코델리아에게 몸을 기댄 채 발걸음을 내디뎠다.

&

이틀 뒤.

체이스 백작을 선두로 한 유더 일행은 썬더둠 요새를 나섰다.

흐레스벨그 백작과 루카스가 그런 일행을 배웅하기 위해 나왔고, 유더는 이틀 만에 흐레스벨그 백작을 마주할 수 있었다.

“너의 길에 보탬이 되면 좋겠구나.”

유더가 일부나마 익히게 된 성왕십자검을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유더는 미소로 화답하였고, 루카스가 그런 유더 앞에 나섰다.

“유더 공자.”

“네, 루카스 공자.”

“어제부터 아버지께 성왕십자검을 전수받기 시작했습니다.”

이미 배우고는 있었지만, 개념이 달랐다.

단순히 가문의 무공을 배우던 개념을 넘어 정식 후계자가 되기 위한 단련을 시작하였으니 말이다.

“축하합니다.”

“예, 주제넘은 이야기지만··· 반드시 따라잡아 보겠습니다.”

루카스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부끄러움 때문이었다.

유더와 루카스 자신 사이의 실력차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으니 말이다.

유더는 루카스의 눈을 보았다. 그리고 미소지었다.

“기대하겠습니다. 제게도 호적수가 필요하니까요.”

오글거리는 말이었고, 어찌보면 비꼬는 것으로도 들릴 수 있는 말이었지만, 유더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유더 역시 진심이었고, 루카스의 기운을 북돋아 주기 위해서는 이 이상의 말이 없었으니 말이다.

“정진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기대하죠.”

유더와 루카스가 악수를 나누었고, 흐레스벨그 백작이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가운데 배웅이 마무리 되었다.

그리고 얼마나 나아갔을까.

잠시 쉬어가기로 한 나무 아래에 앉은 아델리아는 짜증 섞인 눈으로 코델리아를 보았다.

“뭔데? 무슨 일인데?”

“언니, 반응이 너무 한 거 아냐?”

“게일 공자와의 시간을 방해하니까 그렇지. 둘만의 시간 갖기가 얼마나 어려운데.”

“맨날 붙어 있잖아! 어렵긴 뭐가 어려워!”

“얘는? 보고 있어도 보고 싶다는 거 몰라? 그러는 너도 유더랑 맨날 붙어 있는데도 둘 만의 시간 만들어달라고 땡깡 부렸다며.”

“아, 아니. 나는 그······.”

“아니긴 뭐가 아니야. 계집애, 발랑 까져서는.”

아델리아의 핀잔에 코델리아는 말문이 막혀 가슴을 두드렸다.

아니, 발랑 까지기는 누가.

정말 발랑 까진 건 언니가 아닌가! 사람들 다 보는데서 키스도 하고!

“나야 성인이잖니.”

넌 아직 미성년이고.

아델리아의 뭔가 어긋났지만, 어쨌든 팩트인 공격에 코델리아는 다시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아무튼 무슨 일인데?”

“그··· 구, 궁금한 게 하나 있어서.”

“뭐가? 키스했을 때 느낌 같은 거?”

“아, 아니거든?! 그런 건 하나도 안 궁금하거든?!”

“정말로?”

“조, 조금은 궁금할지도······ 아, 아무튼! 내가 궁금한 건 다른 거야!”

얼굴이 빨개진 코델리아의 항변에 아델리아는 마음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말하는 걸 보니 역시 아직 키스는 해본 적이 없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직 애니까.’

건전한 연애를 해야 하는 법.

‘나는 성인이고.’

새삼 다시 만족한 아델리아는 어깨를 한 번 으쓱인 뒤 물었다.

“그래, 그럼 궁금한 게 대체 뭔데?”

“그······.”

“그?”

“어, 언니는 언제 알았어?”

“뭘?”

“게일 아주버님이 언니 좋아하는 거.”

코델리아의 물음에 아델리아의 얼굴이 순간 붉게 달아올랐다.

“그, 그런 건 왜.”

“아, 아니··· 그냥 좀······.”

서로 닮은 자매는 얼굴을 붉힌 채 몸을 비비 꼬았고, 결국 아델리아가 먼저 입을 열었다.

“흠흠, 그러니까.”

“응응.”

“그··· 어느 순간··· 알게 되었어. 서로의 눈을 마주한 그때. 아··· 나는 이 사람을 사랑하는구나. 이 사람도 나를 사랑하는구나··· 하고.”

“그게 뭐야. 그냥 어느 순간 느꼈다고?”

“어, 그냥 어느 순간. 그렇게 밖에 표현을 못 하겠네.”

“으으··· 참고가 안 되잖아. 이러면.”

아니지, 그런 순간이란 게 없는 걸 보니 역시 유더가 코델리아 자신을 좋아하는 건 아닌 건가?

“유더 때문에 그래?”

“어? 어··· 응.”

“별일이네. 그렇게 서로 죽고 못 살면서.”

“그, 그런 거 아니거든?”

“말이 되는 변명을 해라. 그리고··· 너희는 너무 오래 붙어 다녀서 그런 게 아닐까?”

“응?”

“아니, 뭔가··· 너무 자연스러운 거지. 서로가.”

“그, 그런가?”

“아마도?”

어깨를 으쓱인 아델리아는 이내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아무튼 난 게일 공자에게 가볼게. 너도 힘내렴.”

게일에게 간다는 사실만으로 기쁜지 분홍빛 웃음을 실실 흘린 아델리아는 발걸음을 서둘렀고, 코델리아는 눈을 껌벅였다.

‘사람이 어쩜 저렇게 변하지?’

어쩐지 요즘에는 코델리아 자신을 좀 막 대하는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눈을 보고 느꼈다 이거지?’

좋아, 눈.

눈빛.

이거라면 자신 있지.

주먹을 불끈 쥔 코델리아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 닷새 뒤.

체이스 백작을 선두로 한 일행이 랑게스트에 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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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47장 - 약혼식 #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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