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47장 - 약혼식 #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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랑게스트에 도착한 일행은 이전에 묵었던 고급 숙소에 재차 방문하였다.
“그럼 쉬고 있도록.”
방에 짐을 풀자마자 체이스 백작은 게일과 아델리아를 데리고 숙소를 나섰다.
랑게스트의 치안을 담당하는 청사자 단장 바루아 경을 비롯해 랑게스트의 명사들과 인사를 나누기 위함이었다.
“말썽 피우지 말고? 알았지?”
“알았어, 알았어. 우리가 애인가?”
“어, 애지. 그것도 몇 번이나 가출 전과가 있는.”
아델리아의 똑 부러지는 팩트 폭격에 코델리아는 입술을 삐쭉였지만 항변하지 못 했고, 유더는 게일과 조금 다른 이야기를 나누었다.
“안부 전해주세요.”
“그래, 그러도록 하마.”
청사자 단장 바루아 경과는 유더와 코델리아도 일면식이 있었으니까.
본래라면 유더도 따라가 함께 인사를 하는 것이 도리에 맞았다.
하지만-
“한동안은 조용히 있자꾸나.”
“네, 형님.”
세일룬 왕국 북부 전체를 시끄럽게 만든 사랑의 야반도주 덕분에 어디에 얼굴 내밀기가 민망해진 유더와 코델리아였다.
한동안은 게일의 말마따나 조용히 있는 편이 나았다.
“둘만 있다고 이상한 짓 하면 안 된다? 알았지?”
“알았다니까!”
코델리아가 조금은 짜증 섞인 대답을 내놓자 피식 웃은 아델리아는 바로 게일에게 다가가 팔짱을 꼈다.
“그럼 가요, 게일 공자님.”
“예, 아델리아 양.”
약간은 쓰게 웃은 게일이 아델리아를 에스코트하며 나아갔고,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체이스 백작은 아주 작은 미소와 함께 발걸음을 떼었다.
그리고 남겨진 두 사람.
“아, 진짜. 눈꼴 시려 못 보겠네.”
“왜, 귀엽잖아.”
“하나도 안 귀여워. 남이 아니라 우리 언니거든?”
코델리아가 인상을 구기자 유더는 소리 죽여 웃은 뒤 손을 내밀었다.
“왜?”
“아니, 우리도 가자고. 이제야 겨우 둘만 남았으니 미뤄둔 일을 처리해야지.”
“미뤄둔 일? 아니, 그보다 둘만 남았으니까?”
“어, 둘만 남았으니까. 빨리 가자.”
씩 웃으며 답한 유더는 코델리아의 손을 낚아채듯 잡은 뒤 나아갔고, 코델리아는 눈을 껌벅이다 뺨을 붉혔다.
‘뭐지? 뭐지, 뭐지, 뭐지?’
둘만 남았으니 해야 할 일이라는 게?
코델리아는 이제 열일곱 살이었고, 이 나이 또래의 아이들이 그러하듯 상상력과 호기심이 왕성했다.
그리고 그랬기에 1층 로비에서 유더의 방이 있는 3층까지 올라가는 그 짧은 시간동안 별의 별 망상을 다 할 수 있었다.
“다 왔다.”
“자, 잠깐. 아직 마음의 준비가······.”
반사적으로 말했지만 유더는 개의치 않고 문을 열었고, 코델리아는 우물쭈물하다 유더의 손에 이끌려 방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약 30초 뒤.
“칫.”
“코델리아?”
유더의 물음에 코델리아는 인상을 구긴 채 입술을 삐쭉였다.
뭘까, 이 알 수 없는 실망감은.
‘아니, 뭐··· 이럴 것 같긴 했지만. 아니었어도 곤란하고.’
유더의 방 침대 위에는 갖가지 아이템들이 보기 좋게 나열되어 있었다.
“정산과 정리는 필수니까.”
유더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고, 코델리아는 한숨을 한 번 내쉰 뒤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한 번 정리해 보자.”
“좋아, 일단 활용도가 높은 것들부터 나열해 봤어.”
본래 이렇게 정리하는 걸 좋아하는지 밝은 얼굴로 말한 유더가 침대 제일 왼쪽에 자리한 물건을 가리켰다.
“일단은 문 라이트. 눈의 여왕의 코어는 제거했지만, 그래도 아직 멜리사가 남아 있어. 여전히 코델리아 네 주무기로 사용하기에 충분해.”
“그래도 한 번 업그레이드를 하긴 해야겠지?”
“왕도에 가면 가능할 거야. 메이브의 경매장에 참가하면 아예 더 좋은 물건을 구할 수도 있을 거고.”
메이브의 경매장은 왕도에 자리한 세일룬 왕국 최대 규모의 경매장을 의미했다.
각종 서브 퀘스트도 달려 있는 곳이라 왕도에 간다면 필히 들러야 하는 장소였다.
“다음은 천상의 심판?”
“어, 레나한테 넘겨주는 것도 생각해봤지만··· 역시 이쪽에도 비장의 카드는 필요하니까.”
이제 막 9급 천사가 된 코델리아로는 천상의 심판의 힘을 모두 끌어낼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레나에게 홀라당 넘겨주기에는 너무 아까운 무구였다.
“등급이야 올리면 되는 거고. 우리 공주님, 열심히 할 거죠?”
“네, 아빠. 용돈만 많이 주세요.”
생글거리며 답한 코델리아는 천상의 심판 옆에 놓여 있는 동방무사의 검을 보았다.
“유더야, 검술은 어떻게 할 거야?”
“이번에 본가 돌아가면 고민 좀 해보려고.”
아예 권사에서 검사로 전직할까 했지만, 구천구문 사문을 열고나자 다시 생각이 바뀐 유더였다.
삼라만상 모든 것에 기운을 흘려 넣을 수 있는 구천구문이었지만, 가장 자연스럽게 그 힘을 펼칠 수 있는 것은 역시 순수한 육체를 기반으로 한 권각술이었다.
“그래도 검을 아예 놓을 생각은 없어. 필살기용으로 쓰면 되니까.”
“하긴, 그렇긴 하네.”
어차피 지금도 동방무사의 검은 필살기인 혈랑지옥참용 권총이란 느낌이었으니 말이다.
‘필살기가 내장된 검은 많으니까.’
굳이 주무기로 사용하지 않더라도 가지고 다닐 이유는 충분했다.
코델리아 자신도 딱히 검을 쓰지 않지만 천상의 심판을 가지고 다니지 않던가.
“그럼 주무기는 이 권갑이네?”
“당분간은 그렇겠지.”
프로스트 앤빌에서 얻은 건틀릿을 야생의 땅의 대장장이들이 개조해준 물건이었다.
야생신들의 힘도 들어있기에 한동안은 주력 무기로 사용해도 될 것 같았다.
‘왕도 가면 이것도 갈아 낄 것 같긴 하지만.’
야생신들에게는 조금 미안한 일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새로운 마을 갈 때마다 최고 레벨 장비로 갈아끼는 것이 RPG의 낙 중 하나였으니 말이다.
“야생신들의 신기는 앞으로도 두고두고 쓸 수 있겠지?”
“아무래도 유틸성이 높은 도구들이니까.”
칼날노래의 신기들인 한 평의 아늑함과 늑대 변신의 가죽.
위대한폭풍의 신기인 날개바람의 화살.
유더의 말마따나 유틸성이 높아 지금보다 더 강해진 후에도 쓸모가 많을 물건들이었다.
“그 다음은······.”
빙긋 웃으며 시선을 옆으로 돌린 코델리아는 돌연 눈을 가늘게 떴고, 유더는 흠흠 헛기침을 토하며 괜히 딴청을 부렸다.
“저기요, 유더 씨.”
“네, 코델리아 양.”
“이건 뭔가요?”
“쓸모가 있는 장비들이죠.”
코델리아의 눈은 더더욱 가늘어졌고, 유더의 헛기침은 조금 더 커졌다.
당당히 앞으로도 챙겨야 할 아이템들 사이에 놓여 있는 토끼 세트와 고양이 세트.
야생의 땅에서야 비슷한 장비를 착용한 이들이 많아 문제가 없었지만, 세일룬 왕국에서는 착용한다는 사실 자체에 용기를 내야 하는 장비들이었다.
“나보고 이걸 끼고 다니라는 건 아니겠죠?”
“아니, 그래도 가지고 있으면 언젠가 쓸모가 있···지 않을까요?”
유더가 슬쩍 코델리아의 눈치를 보았고, 코델리아는 이제는 거의 감은 것 같은 눈으로 유더를 가만히 보았다.
그렇게 다시 몇 초.
“흠흠, 다음으로 넘어가죠.”
재차 헛기침을 토한 유더는 토끼 세트와 고양이 세트 옆에 놓여 있는 아이템들을 가리켰다.
“와일드 페어리들에게서 얻은 고대 마젤란의 유물들은 속성력 강화를 위한 것들이니까 조금 불편해도 전부 가지고 다니는 게 나을 거야.”
“흠.”
코델리아의 시선은 여전히 토끼 세트에 가 있었고, 유더는 서둘러 옆에 있는 것들을 가리켰다.
“다음은 아버님이 주신 것들. 대부분 나 먹으라고 주신 거긴 하지만··· 코델리아 너한테도 도움 될 만한 것들이 있을 테니까 일단 나열해봤어.”
드넓은 침대의 절반을 가득 채우고 있는 수많은 약품들.
대부분 유더의 체력을 증강시키기 위한 물건들이었던 터라 크게 욕심이 나지는 않는 코델리아였다.
하지만 딱 하나, 신경 쓰이는 것이 있었으니.
“어? 왜 그거만 없지?”
“응?”
“아니, 저번에 우리 아빠가 주신 거 있잖아. 나중에 먹으라고 주신 거.”
코델리아가 손으로 상자 모양을 그리며 말하자 어쩐지 모르게 흠칫한 유더는 헛기침을 토하며 말했다.
“흠흠, 그건 아버님 말씀대로 나중에 먹을 거라······.”
“뭔데 그래?”
“흠흠, 있어 그런 게. 애들은 몰라도 돼.”
“야, 너도 애거든? 나랑 너랑 동갑이거든?”
“이쯤 되도 눈치 못 채니까 안 돼. 나중에 알려줄게.”
거기까지 말한 유더는 입을 꾹 다물었고, 코델리아는 불만이라는 듯 볼을 부풀렸지만 더 캐고 들지는 않았다.
유더가 저런 식으로 입을 한 번 다물면 무슨 일이 있어도 입을 열지 않음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칫칫칫, 아무튼 아이템은 이게 단가?”
“어, 자질구레한 것들이 좀 있긴 하지만··· 앞으로도 계속 쓸만한 것들은 아니니까. 왕도까지 갈 때 챙겨갈 것들은 이 정도면 될 거야.”
“흠··· 그럼 우선적으로 방어구를 마련해야겠네. 갑옷 까지는 아니더라도.”
“아무래도. 너나 나나 중갑보다는 경갑이 어울리니까 그쪽으로 한 번 구해봐야지.”
체이스 백작과 합류한 이후로는 유더와 코델리아 모두 귀족가의 도련님과 아가씨에 어울리는 복장들을 하고 있었다.
보기는 좋았지만 불편했고, 방어력도 없다시피한 복장들이었다.
“좋아, 다음은 능력 점검으로 들어가자. 레벨 기억하지?”
“당연하지. 나는 71. 너는 70.”
코델리아가 브이 자까지 그리며 씩 웃자 유더는 칫소리를 내며 말했다.
“좋아?”
“응응, 너~무 좋아.”
어찌되었든 유더를, 저 아웃복서009를 이겼으니까.
“그래, 많이 좋아해라. 금방 역전해줄 테니까.”
“뭐래? 나보다 레벨도 낮은 게. 레벨 낮은 찐따 말이라 잘 안 들리는 걸?”
코델리아는 어깨까지 떨며 좋아했고, 유더는 이를 꽉 악 물었다.
오랜만에 코델리아와 처음 만났던 날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래, 아무튼.”
코델리아가 선심 쓴다는 듯 화제 전환에 동의하자 유더는 한숨과 함께 말을 이었다.
“지금까지 모은 타이틀까지 전부 합산하면 우리 능력치는 거의 80레벨 전후에 육박해. 여기에 나는 구천구문, 넌 마녀화와 천사화가 있으니까 실질적으로는 80대 중반 이상의 전투력이라 해도 좋을 거야.”
“코델리아 루트로 따지면 왕도편 시작할 때 평균 레벨이 보통 40대 초중반이니까··· 무지무지 높은 거네?”
“그렇지. 더욱이 시기까지 훨씬 앞서니 더 굉장한 거지.”
코델리아 루트와 유더 루트 사이에는 본래 반년 가량의 시간차가 존재했다.
유더와 코델리아 모두 썩은물이다 보니 굳이 서로 이야기는 안 하고 있었지만, 둘의 머릿속에는 원작의 사건들이 시계열 순서대로 완벽히 배치되어 있었다.
‘전생의 기억을 되찾은 건 코델리아 루트의 시작점과 거의 동일하니까 그걸 기준으로 한다면······.’
코델리아 루트의 시작점을 0.
야만족의 북부 대침공이 시작되는 시기는 0으로부터 약 반년 뒤.
왕도편의 시작이라 할 수 있을 건국 300주년 무도회가 열리는 것 또한 0으로부터 약 반년 뒤.
하지만 어떻게 진행을 해도 근소하게나마 300주년 무도회 쪽이 야만족의 북부 대침공보다 앞서기 마련이었다.
‘그런데 현재 시점은 0으로부터 약 석 달 뒤.’
즉, 300주년 무도회까지는 아직 석 달이란 시간이 남은 셈이었다.
“바로 왕도로 가야할까?”
코델리아의 물음에 유더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미리 가서 준비를 하면 좋겠지만··· 너무 일러. 지금 당장 왕도로 갈 명분도 마땅치 않고. 아무리 일정을 빠르게 잡아도 건국 무도회 한 달 전에 왕도에 도착하는 정도겠지.”
“두 달을 그냥 놀자고?”
코델리아가 깜짝 놀라 묻자 유더는 이번에도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그건 더 말이 안 되지. 시간은 금이니까. 한 달 정도 각자 수련도 하고 이것저것 준비도 한 다음에 왕도로 출발하자.”
“한 달 정도 수련하고, 다시 한 달 동안 왕도 가며 퀘스트 깨고?”
“바로 그거지.”
유더와 코델리아 모두 야생의 땅에서 급격히 강해진 터라 새로 얻은 힘들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 시간이 필요했다.
게임에서야 그냥 레벨 업 하면 끝이었지만, 이곳은 현실이었으니 말이다.
“수련은 그렇다 치고 준비라니? 뭘 하려고?”
코델리아의 물음에 유더는 물어봐주길 기다렸다는 듯 음흉한 얼굴이 되어 음산한 웃음을 흘렸다.
“후후후··· 왕도의 마음을 훔칠 비책이라고 해야 할까?”
“징그러우니까 그렇게 웃지 말고. 사기꾼 같잖아.”
“네, 마님.”
유더가 얼른 표정을 고치자 코델리아가 침대 위에 걸터 앉으며 물었다.
“마음을 훔친다니? 무슨 이야기야?”
“우리가 북부 12가문의 자제들이라고 해도 왕도 가면 결국 촌구석 꼬맹이들 취급을 받을 테니까. 너도 알다시피 왕도편은 단순히 때려 부수는 식으로는 진행할 수가 없어.”
“그래도 지금은 어느 정도 가능하지 않을까? 레벨 높잖아.”
“아니, 그렇긴 한데. 그래도 힘만으로는 해결이 안 되는 거 너도 알잖아. 애당초 지금의 우리보다 훨씬 강한 적들도 포진해 있고.”
“흠.”
야생의 땅처럼 사람이 살지 않는 땅이 사는 땅보다 몇 배나 넓은 설원 같은 곳이 아니었다.
왕도.
대륙 양강 가운데 하나인 세일룬 왕국의 수도.
강한 자들이 득실거렸고, 순수한 무력을 떠나 막강한 권력을 가진 자들도 있었다.
“단순히 무력만으로는 안 돼. 어느 정도는 정치력을 발휘해야만 해.”
왕도편의 적중에는 십검호 가운데 하나인 호국공 안타리우스 공작도 있었다.
단순히 무력만으로 헤쳐 나가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물론 결국에는 무력이 수반되어야겠지만.’
왕도편의 주적은 악마의 손과 타락한 고위 귀족들이었다.
그들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아니, 왕도편의 정국을 주도하기 위해서는 무력만큼이나 영향력이라는 것이 필요했다.
“으으음··· 알았어. 그래서 결국 뭘 준비하는 건데?”
“일단 좀 해보고, 잘 되면 이야기해줄게. 어차피 코델리아 네 도움이 꼭 필요한 일이니까.”
“아, 진짜. 궁금하게 하지 말고 그냥 알려줘.”
“나중에.”
유더는 다시 입을 꾹 다물었고, 코델리아는 짜증이 난다는 듯 발을 동동 굴렀지만 어쩔 수 없었다.
“좋아, 그럼 다 끝난 거야?”
“얼추? 마지막으로 하나가 남았지만.”
마지막 하나.
호기심이 생긴 코델리아가 눈을 반짝일 때였다.
“유더, 안에 있나?”
발코니 쪽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유더와 코델리아는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체이스 백작의 목소리였기 때문이다.
“아버님?”
“아빠?”
유더와 코델리아가 얼른 달려가 발코니 문을 열자 붉은 망토를 두른 채 근엄한 얼굴로 선 체이스 백작이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둘이 함께 있었나?”
“네, 같이 짐 정리하고 있었어요. 야생의 땅에서 가져온 것들요.”
코델리아가 즉답하자 체이스 백작은 슬쩍 두 사람의 등 너머 침대 위를 훑어보더니 이내 다시 표정을 풀며 말했다.
“그랬군. 아무튼 유더, 새삼스럽지만 역시 작구나. 이걸 받거라.”
“아, 예.”
유더는 얼른 두 손을 내밀어 가죽 주머니를 받아들었다.
“별 거 아니지만 도움이 될 거다. 그리고··· 아델리아에게는 비밀이다. 알겠지?”
평소보다 조금 낮아진 목소리에 유더와 코델리아는 눈을 한 번 깜박였고, 이내 이해했다.
인사하러 나간 사람이 왜 갑자기 돌아왔는지, 어째서 문이 아닌 발코니를 통해 모습을 드러냈는지 모두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
“헤헤헤, 역시 아빠가 최고에요.”
코델리아가 활짝 웃으며 팔을 끌어안자 아주 잠시나마 입꼬리를 끌어올린 체이스 백작은 이내 다시 헛기침을 토하며 말했다.
“그럼 가보겠다.”
“예, 살펴 가십시오.”
“이따 봬요, 아빠.”
유더가 고개를 숙이고 코델리아가 손을 흔들자 눈짓으로 두 사람의 인사를 받은 체이스 백작은 다시 허공에 몸을 날려 발코니를 빠져나갔다.
“참 좋은 분이셔.”
“흥흥, 역시 게일 아주버님은 다 크셨으니까. 우리집 유더 챙겨주는 게 맞지.”
어쩐지 모를 승리감에 씩 웃은 코델리아는 다시 유더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래서 뭔데?”
“키 크는 약. 먹으면 1cm 자라는 약이야.”
“아, 그거! 현실에 있으면 좋겠는 아이템 3위 한 거지?”
“바로 그렇지.”
기분 좋게 웃으며 주머니를 챙긴 유더는 코델리아와 함께 다시 방에 돌아왔다.
“음, 좋아. 가을의 가호를 얻기 위해 폴 페어리들 만나러 가는 건 야밤에 몰래 나갔다 오면 되겠고······.”
“뭔가 야반도주가 너무 익숙해진 기분이야.”
“이번엔 야반도주라기 보다는 그냥 잠깐 밤산책하는 거지.”
“말은 잘해요. 그래서 마지막은 뭔데?”
“응?”
“아니, 아까 마지막 하나가 남았다며.”
“아, 그거.”
애당초 일부러 뜸을 들인 듯 씩 웃은 유더는 돌연 코델리아의 손을 잡더니 속삭이듯 말했다.
“잠깐 눈을 감아봐.”
“눈을? 왜?”
“감아봐 일단. 나 못 믿어?”
뭔데 이러는 걸까.
의심이 든 코델리아였지만 일단 눈을 감았고, 유더는 그런 코델리아를 큰 방에 딸린 작은 방으로 이끌었다.
“이제 눈 떠도 돼.”
마지막 하나라더니 깜짝 선물이라도 준비한 걸까.
살짝 가슴이 두근거린 코델리아는 살며시 눈을 떴고, 이내 미간을 찌푸렸다.
“이게 뭔데?”
탁자 위에는 실타래처럼 돌돌 말려 있는 검은 끈 뭉치가 몇 개 놓여 있을 뿐이었다.
영웅전기2편에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아이템.
하지만 그럴 수밖에 없었다.
본래라면 영웅전기2에는- 플레이아데스라는 세계에는 존재하지 않을 물건이었으니 말이다.
“도폭선.”
유더가 말했고, 코델리아는 눈을 깜박였다.
“도폭선?”
“도폭선.”
하지만 코델리아는 여전히 눈을 깜박였다. 여전히 처음 듣는 이름이었기 때문이다.
“그게 뭔데?”
어쩐지 모르게 막 가슴이 두근거리는 이름이었지만, 정확히 무엇인지는 알 수가 없었으니까.
때문에 유더는 코델리아에게 짧고 굵은 설명을 해주었다.
“폭발하는 끈이야.”
도폭선.
이름 그대로 폭약을 테이프나 끈의 형태로 성형한 것.
눈꽃바람 평원에서의 전투가 끝난 뒤 남는 시간 동안 조금씩 만들어본 물건이었다.
‘아직 시작형이지만.’
집에 돌아가면 좀 더 제대로 된 물건을 만들어볼 생각이었다.
‘염동력을 쓸 수 있고, 언제어디서든 폭발을 일으킬 수 있는 코델리아라면 사용처가 무궁무진할 테니까.’
본인이 항상 자랑하듯 몸으로 하는 건 뭐든 잘하니 도폭선을 손발처럼 쓰는 것도 가능할 터였다.
‘마음에 들어하겠지?’
유더는 코델리아를 보았고, 코델리아는 멍한 얼굴로 도폭선을 바라보았다. 이내 그녀의 파란 두 눈동자에 황홀함이 어렸다.
“도폭선.”
코델리아는 부르르 몸을 떨었고, 이내 유더를 돌아보았다. 폴짝 뛰어올라 유더를 끌어안았다.
“너무 좋아! 우리 유더 최고!”
코델리아의 눈동자에 번진 황홀감에 살짝 불안해진 유더였지만 이내 미소지었다. 며칠 만에 맞이하는 코델리아의 포옹을 만끽하듯 그녀를 안은 두 팔에 힘을 주었다.
도폭선과 코델리아의 만남.
후일 세일룬 왕국 전역을 뒤흔들 ‘폭발의 마녀’가 탄생한 순간이었다.
&
< 제47장 - 약혼식 #4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