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47장 - 약혼식 #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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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발의 마녀’ 혹은 ‘폭렬천사’
어느 쪽이든 두렵기 짝이 없는 존재가 탄생하고 몇 시간.
깊은 밤을 외로이 밝히는 보름달 아래 유더가 모습을 드러냈다.
“코델리아.”
“여기야.”
낮은 부름에 똑같이 낮은 대답이 돌아왔다.
숙소의 지붕 위.
끝자락에 웅크리고 앉아 있던 코델리아가 손짓을 하는데, 나름 암행을 위해 검은 옷을 챙겨 입은 상태였다.
‘그래봐야 머리가 엄청 눈에 띄지만.’
달빛 아래 유독 빛을 발하는 것 같은 코델리아의 선홍빛 머리칼이었다.
하나로 묶어 길게 늘어트린- 소위 말하는 포니테일로 정리해둔 상태였는데, 유더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뭐해, 안 오고.”
“어, 그래.”
역시 트윈테일보다는 포니테일이지.
시답잖은 생각을 한 유더는 얼른 코델리아 옆에 가서 앉았다.
유더 역시 코델리아와 마찬가지로 검고 몸에 딱 달라붙는 옷을 입은 상태였다.
“바로 가자. 이거 등에 메고.”
“응.”
유더가 배낭을 내밀자 얼른 등에 맨 코델리아는 그대로 지붕을 기어 유더의 등 뒤로 자리를 옮겼다.
“얼마나 걸릴까?”
“교섭에 시간을 낭비하지만 않으면··· 해 뜨기 전에는 무조건 돌아올 수 있을 거야.”
“호, 체력에는 문제없고요?”
“물론이지요, 마님. 쇤네가 체력 하나는 아주 끝장나지 말입니다.”
“지랄.”
킥킥 웃은 코델리아는 다시 연체동물처럼 흐물흐물 움직여 유더의 등에 찰싹 달라붙듯 업혔다.
“빨리 가자. 들키면 큰일이니까.”
“아니, 뭐 딱히 큰일까지야.”
그냥 조금 더 혼나고 조금 더 기정사실이 되는 것뿐인데.
능글맞게 웃은 유더는 코델리아를 새삼 고쳐 업은 뒤 숨을 크게 삼켰다. 고개를 들어 시선을 멀리하였다.
질풍이십사보.
흑풍도래.
황금빛 선풍이 일었다.
유더는 가볍게, 소리 없이 지붕을 박차 올랐고, 그대로 질풍이 되었다.
랑게스트의 밤을 쏜살같이 가로질렀다.
“와우!”
뺨을 스치는 바람 속에서 코델리아가 작게 감탄했다. 유더의 목을 꼭 끌어안으며 속도를 즐겼다.
탁탁탁.
가볍게, 가볍게, 더 가볍게.
유더는 지붕과 지붕 사이를 어렵지 않게 뛰어넘었다. 마치 평지를 달리듯 지붕 위를 달렸고, 어느 순간 높이 뛰어올랐다.
“흑룡승천!”
유더가 소리죽여 외쳤고, 코델리아는 순간 소름이 돋았다.
‘창피해애애애!’
왜 부끄러움은 나의 몫인데!
하지만 가짜가 아닌 진짜였다.
단순한 중2병이 아닌 실제하는 힘이었다.
유더가 구천구문의 힘으로 흑룡의 기운을 부렸다.
이름 그대로 승천하듯 솟구쳐 랑게스트의 성벽을 단번에 뛰어넘었다.
“꺄악.”
마치 놀이기구를 탄 것 같은 기분에 코델리아가 저도 모르게 즐거운 비명을 흘렸고, 유더의 미소는 더욱 깊어졌다.
그리고 다시 숲.
거침없이 달리는 유더의 등 뒤에서 코델리아가 목소리를 높였다.
“그런데 유더야!”
“어! 공주님!”
유더의 외침에 코델리아의 뺨이 다시 달아올랐다.
하도 많이 불려서 이제는 익숙한 애칭(?)이었는데, 그래도 가끔씩 민망해졌기 때문이다.
“아, 아무튼! 어떻게 할 생각이야?”
“뭘?”
“페어리 퀸!”
맥락을 이해하기 힘든 단어의 이어짐이었지만 유더와 코델리아였다. 눈빛만 봐도 서로의 생각을 읽는데 이 정도로 단어까지 주어지면 차고 넘치는 수준이었다.
“페어리 퀸에게서 가을의 가호를 어떻게 얻어낼 거냐고?”
“어!”
폴 페어리 퀸.
지금까지 유더와 코델리아가 만난 세 명의 페어리 퀸들 가운데서 제일 만만치 않은 상대였다.
‘페어리 퀸은 호구가 아냐!’
호구 같은 이들도 있긴 했지만, 적어도 폴 페어리 퀸은 아니었다.
그녀에게 가호를 받기 위해서는 합당한 대가를 치러야만 했다.
애당초 이전에 방문했을 때 문라이트를 내주었을지언정 가을의 가호는 주지 않았던 그녀이지 않은가.
“생각이 있긴 한데, 넌 어때? 아이디어 있어?”
유더가 빠르게 달리는 와중에도 재주 좋게 묻자 코델리아는 기다렸다는 듯 답했다.
“가호를 안 주면 터트려 버리는 거야!”
“뭘? 설마 페어리 퀸을?”
“미쳤어? 그 계곡이라든가, 페어리들의 숲이라든가!”
“야, 지금 엄청 훌륭한 테러리스트로 보이거든? 협박은 범죄야, 범죄!”
“칫, 아닌데.”
“아니긴 뭐가 아니야.”
“아니이, 그래도 지금까지의 경험상 일단 폭발시키면 대부분의 문제가 해결됐잖아. 안 그래?”
“아니다, 이 악마야. 귀엽게 말해도 아닌 건 아닌 거다.”
“귀엽게 말한 적 없는뎅.”
코델리아가 혀 짧은 소리를 내자 유더는 잠시나마 눈을 감고 회의감에 젖었다.
‘중증이구나.’
이것도 귀엽게 느껴지니.
어찌되었든 다시 눈을 뜬 유더는 폴 페어리들과의 만남을 가질 수 있는 계곡으로 향하고자 산을 타기 시작했다.
코델리아가 다시 말했다.
“그럼 네 생각은 뭔데?”
“코델리아 네가 메고 있는 배낭 있지?”
“응.”
“그 안에는 내가 아까 나가서 사온 랑게스트 특산 고급 초콜릿 세트 세 개가 들어 있어.”
“잠깐.”
“뭐가.”
“아니, 페어리 퀸을 초콜릿으로 꼬시겠다고?”
“어, 고급 초콜릿으로.”
“야, 페어리 퀸이 애야? 초콜릿 준다고 말 들어주게?”
“그럼 아니야?”
유더의 되물음에 코델리아는 눈을 깜박였고,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생각해보니 그러네.”
애 맞지.
퀸이라도 일단은 페어리니까.
“와, 우리 유더 똑똑해. 많이 칭찬해.”
코델리아가 그리 말하며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유더는 코델리아를 고쳐 업으며 말했다.
“좀 더, 좀 더 칭찬하도록.”
“뭘 더 어떻게 하라구.”
“고민해보시죠.”
은근히 성실한 성격인 코델리아는 정말 고민하기 시작했고, 유더는 속도를 더욱 높였다.
그리고 마침내 계곡 앞에 도착.
코델리아는 투덜투덜 거리며 차가운 계곡 물에 몸을 담갔고, 반짝반짝 작은별로 페어리들을 불러내는데 성공했다.
‘페어리들도 생각보다 쉽단 말이지.’
처음에는 날짜나 시간 맞춰야 하는 줄 알고 이래저래 고생했는데, 지금은 뭐랄까··· 누르면 그냥 나오는 자판기 같다고 해야 할까?
어찌되었든 유더와 코델리아는 페어리 퀸을 만났고, 약간의 교섭 끝에 목표를 달성하는데 성공했다.
아니, 그냥 성공 정도가 아니었다.
대성공이었다.
“와, 와, 와.”
보름달 아래 홀로 선 코델리아는 제자리에서 빙글 돌았고, 유더는 저도 모르게 감탄했다.
너무나 아름다웠으니까.
지금의 코델리아는 여신- 아니, 정말 요정과 같았으니까.
유더 눈에 쓰인 콩깍지 때문이 아니었다.
지금의 코델리아는 정말 반쯤은 요정이라 할 수 있었다.
“요정의 드레스!”
코델리아는 지금 검정색 암행복 대신 하늘하늘하면서 투명한 느낌을 주는 하얀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요정의 날개를 연상시키는 부드러우면서도 반짝이는 천으로 만들어진 이 옷의 주재료는 무려 달빛이었다.
“환상의 달빛을 모아 만든 환상의 드레스.”
유더위키가 오랜만에 일을 하였고, 유더와 코델리아의 얼굴에는 똑같은 미소가 떠올랐다.
“이걸 여기서 주네?”
“초콜릿 두 박스에 이걸 주네?”
가을의 가호는 한 박스로 충분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초콜릿 맛을 본 페어리 퀸은 페어리 본연의 모습을 드러냈고, 유더와 코델리아는 너무나 유리한 조건 하에 성공적인 거래를 마칠 수 있었다.
코델리아가 다시 빙그르 제자리에서 돌자 넓은 치마폭이 마치 꽃봉오리가 피는 것처럼 아름답게 펼쳐졌다.
“예쁘다, 헤헤.”
페어리들처럼 해맑게 웃은 코델리아는 치맛단을 붙잡고 이리저리 포즈를 취해보았다.
“요정의 드레스. A랭크.”
유더도 알고 코델리아도 알았지만 요정의 드레스는 사실 전투용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A랭크인 이유는 요정의 드레스가 드레스 본연의 역할에 정말 충실한 아이템이었기 때문이다.
“매력 수치를 1.5배 해준다.”
절대치를 더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뻥튀기를 시켜주는 무시무시한 장비였다.
여기에 외모 수치에도 보정을 가해주었고, 요정과 같은 신비함 역시 착용자에게 부여했다.
‘무도회 열리면 다 죽었어.’
풀 메이크 업을 한 코델리아가 요정의 드레스를 입고 건국 기념 무도회에 나간다?
그것도 지금처럼 통상 모드가 아니라 각성 모드를 활성화 시킨 다음에?
‘거기다 아예 천사화까지 곁들여서?’
상상만 해도 기가 막혔다. 입꼬리가 자꾸만 올라가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진짜 다 죽었어.’
건국 무도회 자체를 평정할 수 있으리라.
‘아니, 물론 미스콘테스트 같은 게 아니라 굳이 평정할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좋은 것은 좋은 거였으니까.
그리고 정말 평정할 수 있다면 이를 통해 이것저것 이득을 취하는 것도 가능할 터였다.
“헤헤, 좀 부끄럽다.”
수줍게 말한 코델리아는 빨개진 얼굴로 수줍게 웃자 유더는 눈앞의 소녀가 자신의 약혼녀라는 사실에 다시 한 번 감사한 뒤 표정을 정돈했다.
“좋아, 아무튼 이제 돌아가자.”
“응응, 돌아가자.”
기분이 한껏 좋아진 코델리아는 얼른 옷을 갈아입은 뒤 다시 유더의 등에 업혔고, 두 사람은 질풍이 되어 랑게스트로 귀환했다.
그리고 다시 이틀 뒤 오후.
“도려니이이이임!”
“마이아아아아아!”
변경도시 바일룬에 위치한 바이엘 백작의 저택.
마이아는 얼음공주라는 별명이 무색하게도 무척이나 격렬한 감정을 표출했고, 유더 역시 뒤지지 않았다.
도도도 달려온 마이아를 와락 끌어안더니, 그대로 허리를 들어 빙빙 돌기까지 하였다.
“도, 도련님?!”
“하하하! 보고 싶었어! 마이아!”
코델리아 덕분에 이런 식으로 사람을 드는 일에 익숙해진 유더였다.
마이아는 빨개진 얼굴로 허둥거렸지만, 이내 웃음을 터트렸다. 유더를 오랜만에 만난 것도 만난 것이었지만 유더가 정말 건강해졌다는 사실을 실감했기 때문이다.
‘커지셨어.’
본래 마이아 자신보다 작은 유더였는데 이제는 아니었다.
올려다보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키가 커졌고, 소년이 아니라 소녀로 보일 정도로 여리여리하던 몸도 단단하니 다부진 느낌을 주었다.
“도련님, 듣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요.”
“나도, 마이아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
마이아는 유더에게 있어 친누나나 다름없는 사람이었으니까.
하지만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는 법이었다.
유더는 마이아를 조심스럽게 내려놓은 뒤 고개를 돌려 저만치에서 게일과 마주하고 있는 바이엘 백작을 보았다.
“아버지.”
“체이스 백작에게 이야기는 대강 들었다. 하지만 자세한 이야기를 너희에게 듣고 싶구나.”
베르드폴니르를 빠져나간 이후 일어난 모든 일들.
바이엘 백작의 두 눈에는 기쁨과 호기심이 공존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근심거리였던 아들 녀석이 가출했다 돌아오는 길에 너무나 많은 선물들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강해졌다.’
바이엘 백작은 십검호 중에서도 강한 축에 드는 절정의 고수였다.
그저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유더의 경지를 대략이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비정상적.
통상적인 방식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한 성장.
하지만 바이엘 백작은 당연하다는 생각 또한 하였다.
‘너무나 오랜 세월 억눌려 있던 재능이 단번에 폭발한 것인가.’
구음절맥에 짓눌려 있던 천무지체.
그리고 여기에 더해진 몇 개나 되는 기연들.
‘빨리 시험해보고 싶구나.’
유더가 얼마나 강해졌는지, 지금 어느 수준에 있는지, 앞으로 얼마나 더 강해질 수 있는지.
그리고 여기에 더해진 또 하나의 기쁨.
“이미 준비를 진행하고 있다. 약혼식은 이주 뒤에 거행하도록 하자꾸나.”
“예, 아버지.”
게일이 쑥스럽다는 듯 조금은 어색하게 답했고, 바이엘 백작은 빙긋이 미소를 지었다.
너무나 기뻤으니까.
사실 유더에게는 미안한 이야기였지만, 유더의 성취보다 게일의 약혼 사실이 더 마음에 와 닿았으니까.
‘길었구나.’
근 10년.
그날의 사건 이후 결혼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언급조차 하지 않던 게일이었으니까.
“경사야, 너무나 큰 경사야.”
둘째 녀석의 가출이 이런 결과를 야기할 줄이야.
다시 한 번 시원한 웃음을 터트린 바이엘 백작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바이엘 백작가의 사람들 모두가 두 아들의 귀환을 기뻐하고 있었다.
“들어가자꾸나. 오늘 밤은 무척이나 길 터이니.”
“예, 아버지.”
게일이 답했고, 유더 역시 미소를 지으며 두 사람의 뒤를 따랐다.
그리고 다시 이주일 뒤.
게일과 아델리아의 약혼식이 거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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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부 12가문 가운데 둘인 바이엘 백작가와 체이스 백작가.
두 가문의 결합은 단순히 축하할 일을 넘어 경계해야 할 일이었지만 의외로 북부 12가문들의 반응은 긍정적인 편이었다.
‘어차피 합칠 녀석들이었으니까.’
애당초 유더 바이엘과 코델리아 체이스의 혼약을 통해 힘을 합치려던 두 가문이었다.
여기에 게일과 아델리아의 혼약이 더해져 두 가문의 사이가 좀 더 끈끈해지긴 할 터였지만, 결국엔 그게 그거인 셈이었다.
‘아니, 오히려 더 좋다 할 수 있겠지.’
결혼이란 애당초 가문과 가문의 결합이었다.
특히 귀족- 그것도 북부12가문 같은 고위 귀족에게는 더욱 그러했다.
바이엘 백작가와 체이스 백작가는 게일과 아델리아라는 패를 다른 가문에 팔아 힘을 기를 수 있는 기회를 상실했다.
‘그래, 바일룬에서 너희끼리 잘 놀아라.’
어차피 변경도시에 불과했으니까.
그리 좋은 이유는 아니었지만, 어찌되었든 이러한 연유로 인해 북부12가문은 게일과 아델리아의 약혼을 진심으로 축복하였다.
“드문 일이네, 이렇게 모든 사람들이 축복하는 약혼은.”
“응? 그게 무슨 말이야? 약혼인데 당연히 모두들 축복해야지.”
유더의 말에 코델리아가 고개를 갸웃하며 묻자 유더는 제대로 설명해주는 대신 그저 미소만 지었다.
굳이 순수한 코델리아의 마음을 세상의 세파 따위로 더럽히고 싶지 않아서였다.
“언니 이쁘다.”
바이엘 백작가의 정원.
두 백작가가 전력을 다해 꾸민 연회장에는 수많은 이들이 모여 인산인해를 이루었지만, 마치 홀로 빛을 발하듯 눈에 띄는 이가 하나 있었다.
아델리아 체이스.
그녀는 과연 코델리아의 언니였다. 평소에 꾸미지 않을 때도 미녀인 그녀가 작정하고 꾸미니, 그야말로 경국지색 그 자체가 되었으니 말이다.
색이 예쁜 금발을 멋지게 틀어 올린 뒤 레이스를 절제한, 무척이나 우아한 느낌을 주는 하얀 드레스를 입은 그녀는 여신처럼 아름다웠다.
그리고 그 옆에 자리한 게일 바이엘.
유더의 형답게 잘생기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안정감이 눈에 띄는 그였다.
수많은 이들의 이목이 집중된 자리임에도 불구하고 평소와 같은 모습을 유지하는 그에게서 코델리아는 어른의 여유를 느꼈다.
“뭔가 멋져.”
그리고 뭔가 부러워.
코델리아의 반짝이는 파란 눈동자에 동경의 빛이 어리자 유더가 슬쩍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코델리아야.”
“왜 유더야.”
“우리도 해달라고 할까?”
“뭘?”
“약혼식.”
유더의 말에 코델리아는 눈을 깜박였다.
약혼식을 해?
누가?
나랑 유더가?
“아니, 우린 태중혼약이라 따로 약혼식 같은 건 한 적이 없으니까.”
코델리아는 잠시 기억을 더듬어 보았고,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유더의 말대로였기 때문이다.
‘애당초 기억 찾기 전에는 데면데면한 사이였고.’
말이 좋아 약혼자지 얼굴 보는 일 자체가 드물 지경이었다.
‘유더는 맨날 아팠고, 나는 나대로 집에만 틀어박혀 있었으니까.’
약혼자라 신경이 쓰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딱히 그 이상의 감정은 없는, 정말 문자 그대로 집안에서 정해준 약혼자 이상도 이하도 아닌 관계.
“어때? 해달라고 할까?”
유더가 다시 묻자 코델리아는 다시 시선을 게일과 아델리아에게 돌렸다.
모두의 앞에서 다정히 선 채 서로를 마주하고 있었는데, 멀리서 봐도 서로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 수 있었다.
‘저기에 나랑 유더를 넣는다고?’
잠시 상상해보았다.
그리고 코델리아는 두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코델리아?”
“잠깐, 잠깐, 잠깐, 잠깐.”
그리고 다시 생각.
약혼식을 하자고 하는 유더.
게일과 아델리아의 약혼식을 보며 우리도 하자고 하는 유더.
‘진짜 나 좋아하나?’
좋아하니까 이러는 거···겠지?
하지만 확신이 서지 않았다.
유더였으니까.
맨날맨날 채팅창에서 자신을 못 잡아먹어 안달이 나 있던 아웃복서009였으니까!
‘누, 눈을 보자.’
언니가 그랬으니까.
눈을 보면 알 수 있다고.
코델리아는 심호흡을 한 뒤 얼굴을 덮고 있던 손을 내렸고,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그대로 고개를 돌려 유더를 마주하려 하였다.
하지만-
‘으아앙! 못 보겠어!’
눈빛만으로도 대화가 통하는 자신과 유더였으니까.
지금 돌아보면 바로 생각을 읽힐 것이 분명했다.
‘야, 너 나 좋아해?’
‘너 좋아하냐는 눈빛은 왜 보내는데? 뭐야, 도끼병이야?’
-같은 일이 일어나겠지.
그러니 무리였다. 지금 유더와 눈을 마주할 수는 없었다.
‘아니, 그럼 대체 어떻게 확인을 하지?’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하나?
“코델리아?”
유더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지만 코델리아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들었고, 약혼식은 계속 진행이 되었다.
그리고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아, 키스한다.”
“뭐라고?”
온갖 망상 속에서 허우적거리던 코델리아는 고개를 번쩍 들었고, 반지를 교환한 뒤 입술을 맞추는 게일과 아델리아를 볼 수 있었다.
두 사람 모두 무척이나 행복해 보였다.
“우리가 만든 거야.”
유더가 작게 말하자 코델리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연회장에 모인 모두와 함께 열심히 박수를 쳤다.
이 행복이 계속되기를.
이 행복을 계속 지켜나갈 수 있기를.
유더에 대한 생각을 머릿속에서 지운 코델리아는 두 손을 모아 쥔 채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진심을 담아 소망했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 필요한 것.
다시 한 번 바꿔야 하는 모두의 운명과 미래.
약혼식으로부터 한 달 뒤.
건국 300주년 기념회가 시작되기 한 달 하고 보름 전 시점.
바이엘 백작가와 체이스 백작가에 왕도로부터의 초대장이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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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47장 - 약혼식 #5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