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48장 - 초대장 >
제48장 - 초대장
게일과 아델리아의 약혼식으로부터 삼주.
책상 앞에 다소곳이 앉은 코델리아는 입술을 삐쭉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걸 지켜보는 여인이 하나.
코델리아의 호위기사이자, 사실상 언니나 다름없는 델리아는 피식피식 웃더니 슬쩍 지나가듯 말했다.
“아가씨, 아가씨. 삐쳤죠?”
“아니거든?”
코델리아는 반사적으로 답했고, 델리아는 다시 한 번 피식피식 웃었다.
“그러지 말고, 삐친 거 맞죠?”
“아니라니까?”
짜증 섞어 답한 코델리아는 흥하고 콧소리까지 냈지만 덕분에 델리아는 확신할 수 있었다.
‘진짜로 삐쳤구나.’
저 토라진 모습하고는.
델리아는 슬쩍 시선을 조금 더 멀리해 코델리아가 끄적이고 있던 종이를 바라보았다.
마법 공부를 위해 수식을 쓰고 있던 종이였는데, 구석구석에 작은 낙서들이 보였고, 역시나 예상대로 특정한 누군가에 대한 낙서들이었다.
‘유더 바보. 멍청이.’
찍찍 쓰여진 글씨에 델리아는 얼른 손을 들어 입을 가렸다.
그야말로 엄마 미소가 나왔기 때문이다.
‘어쩜 이리 귀여우실까.’
코델리아가 삐친 이유.
단순하고 명확했다.
‘유더 공자의 연락이 뚝 끊겼으니까.’
벌써 삼주 쯤 되었나.
체이스 백작가 사람들 모두를 행복한 충격에 빠트린 아델리아의 약혼식이 끝나고 닷새 쯤 되었을 때 선물과 함께 서신이 한 번 도착했는데, 그 이후로는 서신 한 장 없었다.
‘야박하기도 하지.’
근 보름 동안 연락 하나 없다니.
‘대충 이유를 듣긴 했지만.’
마치 꽃이 시들 듯 유더의 연락이 끊긴 이후 하루하루 메말라 가는- 물론 코델리아가 들었다면 극구 부인했겠지만 - 코델리아를 위해 이미 바이엘 백작가에 한 번 다녀온 델리아였다.
랑게스트로의 여정 때 동행한 터라 이래저래 친분이 생긴 기사 준의 설명에 따르면 다음과 같았다.
“도련님께서는 매일 아침 일찍부터 밤 늦게까지 바이엘 백작님과 함께 수련에 매진하고 계십니다.”
한 마디로 매일같이 수련 하느라 바쁘다는 소리였다.
“음··· 그럼 어쩔 수 없겠네요.”
“예, 도련님께서 워낙 습득이 빠르시다보니··· 백작님께서도 무척 열정적이십니다.”
유더의 무재가 남다르다는 사실은 이미 여러 사건을 통해 입증된 상황이었다.
바이엘 백작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드는 것도 이해할 수 있었다.
“백작님도, 게일 도련님도 확신하셨습니다. 유더 도련님은 북부 최강의 기사가 되실 거라고요.”
“오······.”
단순히 팔불출 같은 소리라 하기에는 말 한 이들의 무게감이 달랐다.
바이엘 백작.
북부 사강 중 하나이자 검장의 칭호를 가진 십검호의 일원.
그런 그가 최강을 논하는 걸 보니 유더의 무재가 엄청나긴 한 모양이었다.
‘하긴, 그 철인 란디우스도 탐낸 재능이니까.’
파라곤 왕국의 다섯 영웅 중 하나이자 지상 최강을 논할 때 반드시 거론되는 남자가 바로 철인 란디우스였다.
유더는 란디우스의 제자였고, 란디우스가 유더를 제자로 삼은 이유는 오직 하나뿐이었다.
‘천무지체.’
하늘이 내린 무의 화신.
“코델리아 아가씨께는 아무쪼록··· 잘 부탁드립니다. 정말 잘 어울리는 한 쌍이신데 이런 일로 사이가 틀어지면······.”
“예, 안 될 말이죠. 아가씨께는 제가 잘 말씀드릴게요.”
“감사합니다.”
기사 준은 마치 자기 일이라도 된 것처럼 안도의 숨을 토했다.
이래저래 작은 도련님인 유더에게 푹 빠진 모양이었다.
‘좋은 일이지.’
게일과 유더의 사이도 무척 좋으니 바이엘 백작가는 문제없이 잘 돌아가리라.
‘아무튼.’
델리아는 회상을 멈추고 다시 눈앞의 코델리아를 보았다.
책상 앞에 다소곳이 앉아 펜을 놀리는데, 역시나 작은 몸짓 하나하나에 짜증과 불만이 묻어났다.
‘그렇게 보고 싶으시면 먼저 연락하셔도 될 텐데.’
바이엘 백작가에 한 번 찾아가신다든가.
하지만 코델리아는 그러지 않고 있었다.
매일같이 뺨을 부풀리고 입술을 삐쭉였지만, 절대 먼저 연락하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밀당이구나.’
우후훙. 귀여우셔라.
보고 싶지만, 만나고 싶지만, 그 마음을 꾹 누르며 참고 또 참는 모습이라니.
하지만 이건 좀 불리한 밀당이었다.
코델리아는 유더 생각을 할 시간이 넘쳐나는 반면, 유더는 바이엘 백작과의 일대일 수련 덕분에 딴 생각을 할 여유조차 없었으니 말이다.
‘그러니 아가씨를 위해 살짝 손을 거들어야겠지.’
오늘따라 유독 삐쳤냐고 물으며 놀린 것은 다 생각이 있어서였다.
“아가씨.”
“왜애애에.”
“서신이 도착했어요.”
“서신?!”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 코델리아는 이내 뺨을 살짝 붉히더니 흠흠 헛기침을 토했다.
“서신이 뭐 대단한 거라고.”
얼른 다시 자리에 앉아 등을 돌렸지만, 델리아는 볼 수 있었다. 코델리아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가 있는 모습을 말이다.
‘흥흥, 먼저 올 줄 알았지.’- 정도의 생각을 하고 있지 않을까?
“흠흠, 그런데 말이야 델리아.”
“네, 아가씨.”
“별로 안 궁금하긴 한데 말이야.”
“네, 아가씨.”
“그래도 일단 오긴 온 거잖아? 그러니까 내가 확인을 해보는 게 예의에 맞겠지?”
“아마도요?”
“흠흠, 그래. 그러니까 서신 가져와 봐.”
코델리아는 아주 천천히 돌아 앉아 별로 관심 없다는 듯 손을 내밀었지만 그래도 숨길 수 없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눈빛이었다.
‘안달이 나셨네.’
속으로 웃음을 삼킨 델리아는 하얀 봉투에 담긴 서신을 내밀었다.
“흠흠.”
그리고 탁.
낚아채듯 서신을 챙긴 코델리아는 최대한 천천히- 그러면서도 재빠르게- 모순적인 동작을 취하며 서신을 펼쳤고, 이내 미간을 찌푸렸다.
‘그럴 수밖에.’
유더의 서신이 아니었으니까.
도착한 것은 파이커스 백작가의 초대장이었다.
“생일 파티?”
“예, 엠마 파이커스 양의 열일곱 번째 생일을 기념하는 파티라고 하네요.”
“아니, 그건 나도 아는데.”
코델리아가 미간을 찌푸리는 것도 당연했다.
북부 12가문 중에 하나인 파이커스 백작가는 체이스 백작가와 사이가 그리 좋지 않았으니까.
막 서로 싸울 정도는 아니었지만, 화기애애하게 친분을 나눌 사이 역시 아니었다.
더욱이 엠마 파이커스는 예전부터 코델리아에게 묘한 경쟁심이라도 불태우는지, 이래저래 시비를 거는 일이 많은 인물이었다.
‘원작에서는 거의 본 적도 없는 애인데.’
관련 서브 퀘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딱 한 번 등장하는 터라 기억에 별로 남는 인물은 아니었다.
하지만 ‘코델리아 체이스’로서는 달랐다.
당장 작년 생일에 코델리아를 불러놓고는 자기 약혼자 자랑을 엄청 해댔으니 말이다.
‘어머, 유더 공자는 이번에도 불참인가요? 안타까워라, 제가 다 슬퍼지네요. 아직 나중 일이긴 하지만··· 결혼식에 문제는 없는 거죠? 아무래도 건강 문제다보니 걱정이 되어서······ 호호.’
그때 그 목소리. 그때 그 눈빛.
전생의 기억을 찾기 전에도- 그러니까 지금보다 훨씬 얌전하던 시절에도 무척이나 빡치게 만드는 그녀의 행동거지였는데, 전생의 기억을 찾고 나니 더더욱 화가 났다.
“아가씨, 이번에야말로 본때를 보여주는 거예요.”
“응?”
“이번에는 유더 공자가 함께하실 거잖아요.”
델리아가 눈을 빛내며 말하자 코델리아는 바로 이해하지 못 해 눈을 껌벅였지만 잠깐뿐이었다.
코델리아의 두 눈에 전의와 생기가 어리기 시작했다.
“그간의 수모를 갚아야죠! 그리고 이걸 핑계로- 아니, 이번 일을 의논해야 하니 유더 공자에게도 다녀오시고요.”
코델리아를 화나게 할 것이 분명한 파이커스 백작가의 초대장을 전달하면서도 델리아가 미소를 잃지 않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코델리아가 유더에게 먼저 연락을 할 수 있는 명분!
지고 들어가는 게 아니라, 피치 못 할 일이라는 생각을 스스로에게 심을 수 있는 수단!
“유, 유더한테?”
“네, 유더 공자님하고 의논해야 할 일이니까요. 급한 일이기도 하고요.”
엠마 파이커스의 생일은 앞으로 닷새 뒤였으니,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았다.
마차를 타고 달려도 꼬박 하루는 가야 도착할 수 있는 파이커스 백작가였으니 말이다.
더욱이 코델리아에게는 명분이 하나 더 있었다.
‘그러고 보니 슬슬 때가 되지 않았나?’
왕도에서 300주년 건국 행사에 참가하라는 초대장을 보낼 때가.
엠마 파이커스의 생일이야 뭐 그냥 무시하고 지나가도 될 사소한 이벤트였지만 건국 행사는 달랐다.
완벽한 해피 엔딩을 위한 세 번째 과업이었으니 말이다.
“응응, 맞아. 이건 진짜 중요한 일이야. 그러니 유더랑 의논해 봐야해.”
코델리아가 스스로에게 말하듯 작게 말하자 델리아가 바로 따라붙었다.
“네, 아가씨. 말씀대로에요. 그러니 바이엘 백작가로 가죠. 유더 공자와 만나는 거예요.”
“응, 맞아. 유더랑 만나는 거야.”
“알겠습니다. 그럼 지금 당장 출발하죠.”
“응? 지금?”
“네, 지금. 더 늦기 전에요.”
사실 이미 바이엘 백작가에 오늘 방문할 것이라고 서신을 보내놓은 델리아였다.
“자, 잠깐만.”
“네네, 예쁘게 꾸미셔야죠. 그 정도 시간은 드릴게요.”
“그, 그런 거 아니거든? 딱히 유더한테 예쁘게 보일 필요 없거든?”
“정말요?”
“그··· 흠흠. 그래도 기본은 해야겠지. 예의라는 게 있으니까.”
마치 변명이라도 하듯 중얼거린 코델리아는 은근슬쩍 거울 쪽으로 몸을 옮겼고, 델리아는 다시 미소를 머금었다.
그리고 세 시간 뒤.
바이엘 백작가.
“오늘은 이쯤 하도록 하자.”
“벌써?”
연무장 위.
게일의 말에 바닥에 주저앉아 땀을 닦아내고 있던 유더는 고개를 기울이며 되물었다.
그도 그럴 것이 평소보다 너무 이른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어, 벌써. 오늘은 일정이 좀 있어서 말이다.”
“아델리아 형수님께 편지라도 온 겁니까?”
유더가 놀리듯 묻자 게일은 가소롭다는 듯 고개를 내저으며 말했다.
“편지라면 매일 오고 있단다. 나도 매일 쓰고 있고.”
“그, 그래.”
게일도 게일이었지만 아델리아도 참 놀라웠다.
‘진짜 캐릭터 자체가 달라진 기분이네.’
원작의 그 고슴도치 같던 아델리아가 이렇게나 사랑에 푹 빠진 아가씨가 될 줄이야.
‘건국 행사 때 볼만하겠네.’
까놓고 말해 집에서 노는 신세라 할 수 있을 유더나 코델리아와 달리 아델리아는 왕도- 그것도 근위마법병단에 적을 둔 왕실 마법사였다.
유더와 코델리아를 잡기 위해 장기 휴가를 냈을 뿐, 여전히 단장직을 유지하고 있으니 싫어도 왕도에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약혼식도 서둘렀던 거고.’
하지만 역시 약혼식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는지 조만간 은퇴할 예정인 아델리아였다.
듣자하니 이번 건국행사만 끝나면 단장직을 내려놓고 고향에 돌아온다는 모양이었다.
‘게일 형은 바이엘 백작가를 물려받아야 하니까.’
아델리아가 바일룬에 내려올 순 있어도 게일이 왕도로 가는 건 불가능했기에 나온 결론이었다.
‘진짜 엄청 좋아하나보네.’
근위마법병단의 단장 자리를 단칼에 포기할 정도였으니까.
‘어찌되었든··· 조만간인가.’
300주년 건국 행사가 앞으로 한달하고 스무 날 정도 남은 상황이었다.
원작의 흐름대로라면 아마 일주일 내로 왕도의 초대장이 도착할 터였다.
“음, 슬슬 올 때가 된 것 같군. 빨리 가서 땀부터 씻어라. 오랜만인데 좋은 모습을 보여야 하지 않겠니.”
“예? 아까부터 대체 무슨······.”
거기까지였다.
등 뒤에서 느껴진 찌르는 것 같은 시선에 유더는 얼른 돌아섰고, 오랜만에 마주할 수 있었다.
“코델리아.”
저만치 멀리, 연무장이 내려다보이는 발코니에 서서 이쪽을 내려다보는 붉은 머리의 소녀.
“급히 의논할 일이 있다고 하더구나. 파이커스 백작가의 생일 파티 초대장이 온 모양이다.”
게일의 설명을 들은 유더는 고개를 끄덕였다.
원작에서야 이 시점에 코델리아가 바일룬에 없어 생일파티 초대 같은 이벤트도 없었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으니 일어나는 게 당연한 이벤트였다.
때문에 유더는 파이커스 백작가에 대한 의문을 떠올리는 대신 그저 코델리아만 보았고, 게일에게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런데 형님.”
“그래, 아우야.”
“아무래도 삐친 거 같죠?”
“음··· 아마도?”
게일과 유더는 함께 발코니 위의 소녀를 바라보았고, 소녀는, 코델리아는 흥하는 콧소리가 들릴 것 같은 동작으로 돌아섰다.
“얼른 가보렴.”
“예, 형님.”
씩 웃은 유더는 바로 자리에서 일어선 뒤 발걸음을 서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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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삐쳤지?
‘아니거든? 하나도 안 삐쳤거든?’
‘삐친 거 같은데?’
‘아닌데? 하나도 안 삐쳤는데?’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앉은 유더와 코델리아는 눈빛을 빠르게 교환했고, 그 화기애애한 모습에 마이아와 델리아는 흐뭇한 미소를 머금었다.
‘역시 잘 어울리시죠?’
‘그러게요.’
똑같이 눈빛으로 대화를 나눈 두 사람은 슬쩍 일어나 자리를 피해주었다.
유더와 코델리아에게 둘 만의 시간을 만들어주기 위함이었다.
“삐쳤지?”
“아니라니까! 고작 십육일 정도 연락 없다고 삐칠 리가 없잖아!”
“오.”
십육일.
날짜까지 세고 있었다니.
‘만족스럽군.’
유더는 흐뭇하게 웃었고, 코델리아는 흥흥거리느라 자신이 방금 무슨 실수를 했는지 깨닫지 못 했다.
“아무튼 미안. 수련 때문에 너무 정신이 없었어.”
“흥, 괜찮다니까 그러네.”
“그럼 다행이고.”
유더가 대충 넘어가자 코델리아는 순간 미간을 찌푸렸지만 이제와서 다시 말을 질질 끌 수는 없었다.
“그래서, 수련은 좀 잘 되고 있어?”
저도 모르게 약간 토라진 목소리로 묻자 유더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 구천구문의 힘을 좀 더 체화시키는 훈련이랑··· 바이엘 백작가의 검을- 정확히는 전투법을 함께 배우고 있어.”
“흐음.”
뭔 소리인지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열심히 하고 있긴 한 것 같았다.
‘진짜 어쩔 수 없었나 보네.’
역시 용서해줘야 하는 걸까?
‘아니지, 애당초 용서하고 자시고 할 일도 아닌걸.’
코델리아 자신은 삐친 적이 없으니까.
“아무튼 코델리아, 너는 어때?”
“나?”
“어, 너도 놀고만 있진 않았을 거 아냐.”
“당연하지. 내가 얼마나 열심히 수련했는데.”
다시 한 번 흥 소리를 낸 코델리아는 은근슬쩍 허리춤에서 돌돌말린 도폭선을 꺼냈다.
보아하니 수련의 성과를 자랑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그런데 하필 도폭선인가.’
아니, 분명 제대로 쓰려면 훈련이 필요한 도구이고, 유더 자신이 준 도구이기도 하지만.
“왜? 보고 싶어?”
코델리아가 은근한 목소리로 묻자 유더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서까지 눈치 없는 척을 했다가는 정말 삐칠 수가 있었다.
“어, 보고 싶어. 많이 보고 싶어.”
“흠흠, 뭐··· 유더가 그렇게까지 말한다면야······.”
보여주지 못할 것도 없고.
입꼬리가 슬쩍 올라간 코델리아는 바로 도폭선을 집어 들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응접실에서 도폭선을 쓸 순 없었다.
때문에 유더는 코델리아를 가볍게 만류하며 말했다.
“그건 연무장 가서 봐야하니까 잠깐만 미뤄두자. 그 전에 보여줄게 있어.”
“보여줄거?”
“어, 애당초 오늘 온 건 파이커스 백작가의 초대장 때문이잖아? 이제 곧 올 건국 행사 초대장 건도 있고.”
“응, 맞아.”
잠시 잊고 있었지만, 일단 오늘의 방문은 파이커스 백작가의 초대에 어떻게 응할 것인가를 논하기 위함이었다.
“짓밟아 줘야겠지.”
코델리아에게 매년 시비를 터는 것도 모자라 모욕까지 주던 계집이었다.
그냥 넘어갈 생각 따위 조금도 없는 유더였다.
“저기, 유더야? 우리 지금 생일 파티 가는 거거든? 싸우러 가는 거 아니거든?”
“응, 그래. 싸움은 무슨. 그냥 일방적으로 짓밟아 주러 가는 거지.”
유더의 말에 코델리아는 미간을 좁혔지만, 어쩐지 모르게 가슴이 시원해진 터라 그냥 내버려두기로 하였다.
“거기다 마침 잘 됐어. 왕도에서 써보기 전에 연습 삼아 사용해볼··· 시연장으로 삼을 수 있을 테니까.”
유더의 말에 코델리아는 다시 고개를 갸웃했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아, 그러고 보니······.’
랑게스트였던가?
유더가 왕도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준비 중인 비밀 무기가 있다고 했었다.
“맞아, 그거 말하는 거.”
코델리아의 속을 들여다보기라도 했는지 유더가 바로 말했고, 코델리아는 더 생각하는 대신 그냥 묻기로 했다.
“그래서 그게 뭔데?”
“바로 이거야.”
평소보다 조금 더 사악하게 웃은 유더는 지난 삼주 동안 준비한 물건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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