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엔딩메이커-135화 (135/473)

< 제50장 - 생명의 신전 #2 >

&

약 30분 전.

그러니까 신전 입성 직후.

라이제강이 봉인되어 있던 봉인지가 그러했던 것처럼 잊힌 생명의 신전 입구는 인적 드문 곳에 숨겨진 동굴과 이어져 있었다.

“라이트.”

코델리아가 만들어낸 작은 불빛을 앞세운 유더는 천천히 전진하며 기억을 더듬었다.

‘생명의 신전.’

어떤 캐릭터로든 공략이 가능한 오픈 던전.

하지만 위치가 위치다보니 실제로 공략이 가능한 건 코델리아와 유더, 루카스처럼 세일룬 왕국 출신의 플레이어블 캐릭터들 뿐이었다.

‘그것도 일정 시기 이후로는 탐색이 불가능하고.’

보통 제일 좋은 공략 시기는 코델리아 루트 시작으로부터 약 8개월 뒤에서 1년 사이.

이때는 이미 야만족의 북부 대침공과 왕족 궤멸 사건이 일어난 이후라 세일룬 왕국 전역이 전쟁터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라.’

코델리아 루트로부터 고작 4개월 정도 밖에 지나지 않았고, 야만족의 북부 대침공은 애당초 일어나지 않을 일이 되었으니 말이다.

‘생명의 신전에서 얻을 수 있는 건 생명의 구.’

생명의 여신 에어리스의 힘이 담겨 있는 신성기로, 소유자에게 강한 재생력을 부여하는 신물이었다.

‘지하 3층에 있고··· 가는 길에 있는 건 자잘한 잡몹들과 신전의 가디언들.’

레벨 70을 넘긴 유더와 코델리아였으니, 생명의 구를 지키고 있는 하급 천사를 제외하고는 딱히 어려운 상대가 없는 장소였다.

아니, 장소여야만 했다.

그런데.

“크아아아아!”

난폭한 괴성과 함께 거대한 박쥐처럼 생긴 마물들이 끝도 없이 달려들었다.

“씨발! 존나 징그러!”

그도 그럴 것이 손바닥만한 크기가 아니라, 머리부터 발끝까지 길이가 1미터는 족히 넘는 거대한 박쥐였으니 말이다.

사실 징그럽다기보다는 무섭다는 표현이 옳을 터였다.

저도 모르게 욕지거리를 토한 코델리아는 급한대로 전방에 폭발을 일으켰다.

“뭐야! 어떻게 된 거야! 원작에는 이런 놈들 없었잖아!”

“키아아!”

박쥐 대여섯 마리가 폭발에 휩쓸려 사라졌지만, 아직 남아 있는 박쥐들이 많았다. 폭발로 생긴 공백을 채우듯 다시 십여 마리가 몰려들었다.

“흑룡출수!”

유더가 일장을 내뻗어 흑룡의 기운을 방출했다. 박쥐 두어마리가 흑룡에 휩쓸려 사라졌고, 나머지 박쥐들도 좌우로 크게 갈라졌다.

“일단 뛰어!”

“파이어 볼!”

그리고 더블 캐스팅, 주문의 메아리!

직경이 1미터는 됨직한 불꽃의 구 네 개가 하늘로 치솟았고, 유더는 코델리아의 허리를 안더니 그대로 번쩍 들어 어깨 위에 둘러멨다. 코델리아가 다음에 하려는 일을 눈치챘기 때문이다.

“분열! 폭발!”

코델리아가 문라이트를 휘두르며 외치자 불꽃의 구들이 수십 개의 작은 구들로 분열하여 천장을 뒤덮었다.

그대로 폭발하니 눈에 보이는 곳 전부가 불바다가 되었다.

쾅! 쾅! 쾅!

“키아아!”

박쥐들이 비명과 함께 바닥에 마구 떨어졌고, 유더는 욕지거리를 토했다.

“야! 미쳤어?! 이러다 동굴 무너져!”

“무너지기 전에 달려 그럼!”

재빨리 외친 코델리아는 단번에 마력을 쏟아낸 터라 헉헉 거렸지만 움직임을 멈추지 않았다. 왼손을 번쩍 들며 체이스 백작의 반지를 발동시켰다.

“실드!”

유더가 일으킨 황금빛 선풍이 불꽃과 연기를 밀어냈고, 코델리아의 실드가 하늘에서 추락하는 박쥐들을 쳐냈다.

가까이서 보니 더욱 무섭고 징그러운 초대형 박쥐들이었다.

“어떻게 된 거야? 본래 이런 거 없었잖아!”

“4개월 전!”

원작에서 탐사할 수 있는 시기보다 4개월 일찍 들어왔다.

그런데 원작에서는 볼 수 없었던 마물들이 동굴 안에 바글거린다.

여기서부터 유추할 수 있는 것.

“뭐야? 그럼 원작에서는 그 4개월 사이에 누가 생명의 신전을 공략했다는 거야?”

“아마도?”

유더는 어깨에 둘러멘 코델리아를 고쳐 잡은 뒤 외쳤고, 엎드린 자세로 둘러메진 터라 유더의 뒷모습- 정확히는 등과 엉덩이만 볼 수 있었던 코델리아는 억지로라도 상체를 세운 뒤 후방을 주시하며 다시 소리쳤다.

갑자기 생각난 것이 있어서였다.

“2층의 빈 방!”

생명의 신전 2층에 자리한, 분위기와 구조상 분명 뭔가 있어야 하는데 아무 것도 없던 텅텅 빈 공간!

코델리아의 외침에 유더는 아주 잠깐 멈칫하더니 바로 이해했다.

“역시 너도 썩었구나!”

유더 자신 때문에 티가 덜 나서 그렇지, 코델리아 역시 썩은 물은 썩은 물이었다.

그것도 그냥 썩은 물이 아닌, 자그마치 서버 랭킹 2위라는 썩은 물 중의 썩은 물 말이다!

“야! 1등이라고 자랑할래?”

“아무튼! 코델리아 네 말이 맞아! 2층의 빈 공간!”

거기가 왜 비어 있었을까.

“누가 이미 챙겨갔으니까!”

코델리아가 외쳤고 유더 역시 동의했다.

그리고 두 사람의 게임뇌가 오랜만에 활성화되었다.

“동굴의 생태계를 바꿔버릴 정도의 강자!”

“그런 강자가 챙겨간 물건!”

“3층은 들르지도 않았어!”

“애당초 2층이 목적이었다는 거고, 거기에 뭐가 있는지도 알고 있었다는 거지!”

“흑룡출수!”

“기술명 외치지 마아아! 파이어 월!”

유더가 오른손으로 내뻗은 일장으로부터 방출된 흑룡이 앞을 가로막고 있던 거대한 거미 형태의 마물을 박살냈고, 코델리아가 일으킨 불꽃의 벽이 등 뒤에서 덮쳐오려던 마물들을 차단했다.

“너도 외치잖아!”

“난 주문이고! 꼭 필요한 거라구!”

“아무튼!”

“야! 얼버무리지 말고!”

하늘에서 다시 박쥐들이 몰려들었다.

게임에서도 참 크다고 생각한 동굴이었는데, 실제로 보니 정말 큰 동굴이었다.

“뛴다! 이 악물어!”

“읏!”

코델리아가 입을 닫자마자 유더는 지면을 박차 높이 뛰어올랐다. 눈앞에 자리한 검은 물 때문이었다.

“카아!”

너무나 어두운 터라 깊이도 알 수 없는 동굴의 강에서부터 뱀처럼 생긴 괴수가 솟구쳐 올랐다.

“매직 미사일!”

“키악!”

뱀처럼 생긴 괴물의 입 안에 새하얀 마법구를 던진 코델리아는 몸서리를 쳤고, 유더는 그런 코델리아의 허리를 더욱 단단히 붙잡은 뒤 허공을 박찼다. 검은 질풍을 일으켜 폭이 10미터에 육박한 강을 뛰어넘었다.

“마물 너무 많아!”

“거의 다 왔어! 2층이다!”

유더의 외침에 코델리아는 억지로 상체를 세운 뒤 몸을 뒤틀다시피 하여 앞쪽을 보았다. 과연 아래로 내려가는 하얀색 계단들이 보였다.

“코델리아!”

“파이어 월!”

척하면 탁이니, 코델리아가 불꽃의 장벽을 세워 계단으로 통하는 길을 막았고, 유더는 계단을 빠르게 내려갔다.

“라이트!”

다시 한 번 마법의 빛.

하얀 섬광이 어둠을 몰아냈고, 유더는 숨을 몰아쉬며 어깨에 얹고 있던 코델리아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진짜 많네.”

워낙 레벨이 높아 이제 잡몹들로는 경험치를 거의 벌지 못하는 유더와 코델리아였지만, 숫자가 이 정도니 동굴 청소를 하면 레벨이 하나 정도는 오를 것 같았다.

‘나중에 쓸어야지.’

일단 목적부터 달성하고.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유더 옆에 내려선 채 숨을 몰아쉬던 코델리아가 돌연 유더의 어깨를 두드렸다.

“유더야, 유더야.”

“어? 왜?”

“여기 천장··· 본래 하얀색 아니야?”

“어?”

생명의 신전의 천장.

유더는 반사적으로 천장을 올려다보았고, 하얗지 않은, 녹색으로 뒤덮인 천장을 볼 수 있었다.

어째서일까.

왜 원작에서는 하얀 색이던 천장이 녹색인 걸까.

더욱이 왜 흐물흐물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는 것일까.

“씨발.”

유더가 말했고, 코델리아는 동의했다. 그렇기에 다시 한 번 말했다.

“씨발.”

“튀어!”

유더의 외침에 반응이라도 하듯 그 순간 천장이 요동쳤다.

녹색의 덩어리가 수십, 수백 조각으로 갈라지더니 천장에서 지면으로 우수수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산성 읏! 슬라임!”

유더의 어깨에 다시 둘러메지는 통에 한 번 혀를 깨문 코델리아였지만 그래도 꿋꿋하게 말을 마무리지었다.

산성 슬라임.

이름 그대로 산성을 띈, 닿는 것을 모조리 녹여버리는 슬라임.

“실드!”

츠하아-!

코델리아가 재빨리 펼친 실드 위로 주먹만한 크기의 녹색 덩어리들이 떨어졌다. 슬라임의 몸에서 흘러내린 것들이었는데, 바닥에 닿자마자 타는 소리와 함께 지면을 파고들었다.

“흑풍도래!”

지면을 박차 오른 유더는 그대로 검은질풍을 일으켰고, 코델리아는 플라이 마법으로 유더의 몸을 공중에 띄웠다.

이미 지면의 절반 이상이 슬라임들로 뒤덮였기 때문이었다.

“일단 넘겨!”

일일이 잡고 가기에는 숫자가 너무 많았다.

유더는 바람을 일으켜 허공에 뜬 스스로를 밀었고, 코델리아는 주변을 살폈다. 슬라임 외에도 다른 마물이 튀어나올 가능성이 있어서였다.

“이걸 다 정리했다고? 무슨 군대라도 왔던 거야?”

코델리아의 물음에 유더는 미간을 좁혔다.

홀로 정리하기에는 마물들의 숫자가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코델리아의 말대로 군대.

그게 아니라면 군대를 부릴 수 있는 자.

‘소환술사?’

영웅전기2편의 이름난 소환술사라면······.

창! 창! 창!

날카로운 금속음이 유더의 생각을 끊었다.

양쪽 벽면에서 마치 함정처럼 날카로운 칼날들이 솟구쳐 올랐기 때문이다.

“리빙 소드야!”

코델리아의 안목은 틀리지 않았다. 치솟은 칼날들이 유더를 향해 날아들었고, 슬라임 지대를 돌파한 유더는 지면 위를 무시무시한 속도로 달리기 시작했다.

“어떡하려고?”

“일단 2층의 빈 방으로!”

막다른 길이긴 했지만 입구가 그리 넓지 않아 다수의 적을 맞아 싸우기 좋았다. 더욱이 생각대로라면 이용할 수 있는 수가 하나 더 있을 터였다.

“다 왔어!”

“서둘러! 리빙 아머들까지 추가됐어!”

덜컹덜컹 소리를 내며 나타난 리빙 아버들은 마치 합체라도 하듯 리빙 소드들을 거머쥔 채 바짝 뒤를 쫓아왔다.

그 숫자가 어림잡아도 서른은 될 것 같았다.

‘무슨 신전이 이래!’

신전임에도 불구하고 마물이 너무 많았다.

당장 쫓아오는 리빙 아머들도 가디언 계열이 아니라, 마성에 물든 마갑들이었다.

신전이라기 보다는 마굴이나 다름 없는 공간.

하지만 그렇기에 유더는 가능성을 보았다.

“역시!”

2층의 빈 방.

안에 들어서자마자 유더는 주먹을 불끈 쥐었고, 코델리아는 유더의 어깨 너머로 볼 수 있었다.

원작에서는 잔해만 볼 수 있었던 순백의 골렘을 말이다!

“쿠오오!”

키가 4미터는 됨직한 순백의 골렘이 몸을 일으켰다. 유더와 코델리아에 반응한 모양이었다.

“신전의 수호자야!”

가슴에 생명의 교단의 문장이 그려져 있으니 분명했다.

그리고 코델리아도 유더의 속셈을 알게 되었다.

이이제기.

골렘으로 마물들을 상대하게 한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지?’

‘알아!’

눈빛을 교환한 직후.

코델리아는 돌아서서 뒤를 보았고, 유더는 앞을 보았다.

밀려드는 리빙 아머들과 골렘을 각자 마주한 두 사람은 어느 순간 외쳤다.

““지금!””

딱 좋은 타이밍.

빙글 돌아선 코델리아는 몸을 날렸고, 유더 역시 몸을 날렸다. 커다란 골렘의 다리 사이를 구르다시피 하여 빠져나갔다.

그리하여 일어난 결과.

정면에서 마주하게 된 리빙 아머들과 가디언 골렘.

“쿠오오!”

예상대로 골렘과 리빙 아머들의 전투가 펼쳐졌다.

유더와 코델리아는 얼른 뒤로 물러선 뒤 몇 번이나 숨을 골랐다.

“하아, 하아······.”

“후우, 후······.”

짧은 시간이었지만 워낙 긴장한 상태로 달린 탓인지 두 사람 모두 식은땀을 잔뜩 흘린 상태였다.

코델리아는 이마에 흐른 땀을 닦으며 한창 전투 중인 리빙 아머들과 가디언 골렘을 보았다.

“누가 이길 거 같아?”

“가디언 골렘?”

유더의 말에 코델리아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허리춤에서 주섬주섬 도폭선을 꺼내들었다.

그리고 5분 남짓.

가디언 골렘의 거대한 주먹에 열 마리 쯤 되는 리빙 아머들이 박살나니 남은 놈들이 슬금슬금 뒤로 물러나 도망치기 시작했다.

유더의 예상대로 가디언 골렘의 승리였다.

“쿠오오오오오!”

승리의 포효를 내지른 가디언 골렘은 그대로 돌아섰다. 아직 골렘의 영역 안에는 처리해야 할 적이- 유더와 코델리아가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랬기에 코델리아는 염동력을 발휘했다.

차차착!

가디언 골렘이 돌아서자마자 놈의 가슴을 향해 날아든 것들.

가디언 골렘은 고개를 내려 자신의 가슴을 보았고, 도폭선 여러 가닥이 별 모양을 그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

오망성.

그리고 별을 감싼 커다란 원.

“쿠오?”

가디언 골렘은 고개를 들었고, 코델리아는 손가락을 튕겼다.

콰가강!

정말로 예쁜 별모양 폭발.

더욱이 위력이 범상치 않았다.

도폭선의 화력에 코델리아의 폭발 마법이 더해졌을 뿐만 아니라 별 모양을 통해 일종의 마법진을 형성, 폭발 마법의 위력을 한 번 더 증폭시킨 결과였다.

“쿠어어어······.”

가슴의 코어가 부서진 가디언 골렘이 무너져 내렸고, 코델리아는 유더를 향해 돌아서며 손가락으로 브이 자를 그렸다.

“짜잔.”

단순해 보이지만 도폭선과 폭발 마법, 여기에 마법진을 더한 콤비네이션 어택!

단번에 기술의 위력과 난도를 파악한 유더는 진심을 담아 호응했다.

“과연, 과연 스타 익스플로젼!”

“아니거든? 그런 이름 아니거든?”

하지만 은근히 마음에 드는지 얼굴에 미소가 사라지지 않는 코델리아였다.

“아무튼 슬슬 다시 가자.”

가디언이 사라졌으니 마물들이 다시 몰려올 터였다.

하지만 코델리아는 끌끌끌 혀를 차더니 허리춤에 차고 있던 도폭선을 마저 허공에 던졌다.

착! 착! 착!

염동력으로 조종된 도폭선들은 입구 근처 천장에 부착되었고, 유더는 코델리아가 하려는 일이 무엇인지를 이해했다.

콰가가!

애당초 공사장에서 암석 등을 원하는 모양으로 잘라내는데 쓰이는 도폭선이었다.

코델리아는 요령 좋게 천장을 무너트려 낙석으로 입구를 틀어막아 버렸다.

“어때?”

“굉장합니다.”

짝짝짝 다시 박수까지 친 유더는 새삼 코델리아가 전투의 천재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런 식으로 쓸 줄은 상상도 못 했는데.’

무기에 대한 이해도와 활용능력 하나만큼은 유더 자신보다 우위에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러니 전투 하나만으로 2등을 했지.’

“무슨 생각을 그리 해?”

“우리 공주님 너무 예쁘다고.”

“미친놈이 뭐라는 거야.”

흥흥 거린 코델리아였지만 그래도 입꼬리가 슬쩍 올라가 있었다.

“귀여우셔라.”

“뒤진다?”

“아무튼 덕분에 숨 돌릴 틈은 번 것 같네.”

너무 급하게 달려오느라 이래저래 마력과 체력을 꽤 소진했으니까. 충분한 휴식을 취한 다음에 나가면 될 것 같았다.

“그보다 확인해야 할 게 있지 않아?”

“확인할게 있지요.”

2층의 빈방에 자리한 것.

공백의 4개월 사이에 생명의 신전에 침입한 자가 노린 물건.

빙글 돌아선 유더와 코델리아는 가디언 골렘이 지키고 있던 제단을 향해 나아갔다.

“신성한 힘이 느껴져.”

코델리아는 자연스럽게 천사로 변해 신성력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고, 유더는 제단 앞에 멈춰섰다.

“부탁할게.”

유더의 말에 고개만 한 번 끄덕인 코델리아는 그대로 마저 나아가 제단 위에 놓여 있던 상자에 손을 대었다.

어른 상체만한 크기의 제법 큰 상자인 터라 안에 뭐가 들어있을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연다.”

선언하듯 말한 코델리아가 상자에 손을 대자 생각 이상으로 거대한 신성력이 코델리아를 집어삼킬 기세로 방출되었다.

만약 코델리아가 천사가 아니었다면 신성의 불꽃에 전신이 불타올랐을 터였다.

“괜찮아?”

“어, 괜찮아.”

저도 모르게 어떨떨한 목소리를 낸 코델리아는 도리질을 해 정신을 집중했다.

정황상 가디언 골렘보다는 이쪽이 신성기를 지키기 위한 진짜 함정 같았다.

‘천사라 다행이야.’

고마워요, 레나. 고마워, 유더.

새삼 선조회귀를 시켜준 두 사람에게 감사한 코델리아는 다시 상자 안으로 시선을 돌렸다.

머리에 쓰는 작은 왕관인 티아라.

무척이나 잘 조형된 황금빛 왕관에는 몇 개나 되는 보석이 박혀 있었다.

“생명의 관.”

소유한 자의 생명 계열 마법 랭크를 1랭크 상승 시켜줄 뿐만 아니라 생명 관련 소환 마법이라면 소환할 수 있는 생명체의 숫자를 무조건 두 배로 부풀려주는 S랭크 아이템.

더욱이 효과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생명의 관의 진정한 주인이 되면 생명 계열 최고위 마법 중 하나인 ‘생명 부여’를 사용할 수 있었다.

“와······.”

진심으로 감탄한 코델리아는 몇 번이나 마른침을 삼켰다.

생명 계열 마법을 판 마법사나 애당초 생명 계열 마법을 베이스로 깔고 가는 신관들에게는 그야말로 졸업템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물건이었기 때문이다.

“이게 여기서 나오네.”

원작에서는 후반부에나 볼 수 있었던 물건인데.

새삼 다시 감탄한 코델리아는 살짝 머리 위에 티아라를 써보았다.

“어, 어때? 어울려?”

어쩐지 모르게 수줍게 물었거늘 유더는 무어라 답하는 대신 눈을 깜박이더니 돌연 주먹을 불끈 쥐었다.

“알았다.”

“어?”

“알았어.”

공백의 4개월 사이에 누가 생명의 신전에 침입했는지.

누가 생명의 관을 가져갔는지.

물론 근거는 부족했다.

몇 가지 조건 밖에는 채워지지 않았다.

하지만 강한 확신이 들었다.

“군대 규모의 소환술을 부리는 자.”

그것도 생명 계열의 소환술을 부리는 자.

오랜 세월 생명 부여의 마법을 연구해왔기에 생명의 관을 갈망할 자.

“3층에는 들르지도 않았어.”

생명의 구는 탐하지 않았다.

생명의 관에 만족하였다.

생명의 관만을 목적으로 하였다.

그럴만한 자.

생명의 관을 손에 넣었음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자.

단순한 은신이 아니었다.

생명의 관을 손에 넣고 몇 개월 뒤에 그는 목숨을 잃었다.

그렇기에 게임 후반부에 다른 곳에서 생명의 관이 발견될 수 있었다.

그리고 여기에 한 가지 더.

2층의 빈방에 흩어져 있던 가디언 골렘의 잔해.

강력한 생명 마법으로 파괴된 그것.

유더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수수께끼를 풀었기에 지어진 자연스러운 미소였다.

“유더야?”

“알 것 같아.”

지금까지의 모든 단서를 종합해 보았을 때 떠올릴 수 있는 사람은 하나뿐이었으니까.

“사령술사 벨키안.”

다섯 영웅들 가운데 하나.

영웅전기2편에서는 모습조차 보이지 않고 사라진 1편의 영웅.

‘찾았다.’

벨키안을 수면 위로 노출시킬 방법을.

그가 스스로 유더 자신과 코델리아를 찾아오게 만들 방법을.

“또, 또 사기꾼처럼 웃는다.”

코델리아의 지적에도 불구하고 유더는 더욱 진한 미소를 머금었다.

최고의 미끼를 발견한 낚시꾼의 마음으로 생명의 관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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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50장 - 생명의 신전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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