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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딩메이커-140화 (140/473)

< 제52장 - 뜻밖의 만남 >

제52장 - 뜻밖의 만남

란디우스와 수행을 시작한지 이레 째 아침.

유더와 란디우스는 서로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지난 이레 동안 몸으로 배우고 익힌 것들을, 그리고 깨닫게 된 것들을 최종적으로 정리하기 위함이었다.

“나의 구천구문과 너의 구천구문.”

정확히는 천무지체가 아닌 자가 억지로 수련한 구천구문과, 하늘이 선택한 무의 화신인 천무지체가 수련한 구천구문의 차이.

“우선은 선녀의 존재.”

처음엔 마치 묵으로 그린 것처럼 실루엣밖에 볼 수 없었던 선녀였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오문을 열었을 때.

유더는 선녀의 얼굴을 명확히 볼 수 있었다.

검은 머리칼과 하얀 얼굴.

단아하고 아름다운 여인.

‘그래도 코델리아가 더 예쁘지만.’

누가 뭐래도 일단 유더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진짜로.

“제자야?”

“예, 스승님.”

유더가 움찔하긴 했어도 거의 바로 답하자 란디우스는 고개를 살짝 기울였지만 이내 다시 말을 이었다.

“나도 선녀를 보기는 하였다. 오문을 열었을 때 그녀의 뒷모습을 처음 보았고, 칠문을 열었을 때, 비로소 그녀가 나를 향해 돌아섰었다.”

그런데 유더는 삼문을 열었을 때 이미 선녀를 마주했을 뿐만 아니라 기술까지 배웠다.

오문을 연 지금은 아예 목소리까지 들었고 말이다.

‘목소리도 코델리아가 더 예쁘단 말이지.’

홀로 고개를 끄덕인 유더는 이내 머리를 흔들어 잡생각을 떨쳐냈다.

지금은 란디우스와의 대화에 더 집중할 때였다.

‘내가 요즘 힘들긴 했나 보구나.’

지옥 같은 하루하루 속에서 그나마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코델리아 덕분이었으니까.

유더에게 있어 코델리아는 이미 진짜 천사님인 동시에 마음 속의 오아시스였다.

“어찌되었든··· 둘 모두 선녀를 보았다. 즉, 구천구문과 선녀가 깊은 연관이 있기는 한 것 같구나. 구천구문은 단순한 무공이 아닌 수련자를 더 높은 곳으로 이끄는 초인술이니··· 어쩌면 등선하여 초월자가 된 선대 수련자일지도 모르겠고 말이다.”

만약 정말로 그러하다면 가능한 경우의 수가 몇 개 더 있었다.

하나는 그녀가 구천구문의 창시자라는 것.

다른 하나는 지옥의 대군주와 싸운 고대의 선인이라는 것.

마지막 하나는 양쪽 모두 아니지만, 선대 수련자라는 것.

“아홉 개의 하늘과 아홉 개의 세상. 구천구문의 진정한 의미.”

이미 칠문까지 연 란디우스였지만 무슨 말인지 바로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어렴풋이 감이 잡히기는 하였다.

‘문제는 설명을 못 하겠다는 건가.’

말로 형상화하기에는 이래저래 부족한 부분들이 많았으니 말이다.

아무래도 수련이 좀 더 필요할 것 같았다.

“어찌되었든 나쁘지 않구나. 선녀가 함께한다는 것은 너와 나 모두 제대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일 터이니 말이다.”

물론 란디우스 자신과 유더는 달랐다.

유더는 바른 길을 올바르게 나아가고 있다면, 란디우스 자신은 다소 비틀어진 길을 억지로 나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결국 나아가고 있다는 것이 중요한 법.’

마음을 다스린 란디우스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구극태양신공 역시 차이가 있구나.”

아직 수련 기간이 짧은 유더였지만 그렇다 해도 구천구문의 구결과 구극태양신공이 하나 되기는 하였으니, 란디우스의 것과 비교 자체는 가능했다.

“내 결론은··· 정답은 아니라는 것이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제자에게만 정답인 구결이라는 것이지.”

“예,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구천구문의 구결이 섞여 만들어진 새로운 구극태양신공은 모두에게 있어 정답이 아니었다.

유더에게 특화된, 유더에게만 정답이라 할 수 있는 무공이었다.

“구극태양신공은 애당초 상중하 세 개의 단전 가운데서 중단전을 이용한다. 때문에 나는 구천구문의 문을 열기 전부터 이미 중단전이 개발된 상태였다. 하지만 제자야. 너는 이번에 오문을 열며 중단전이 개발되었다 했지?”

“예, 스승님.”

“그렇다면··· 구천구문을 대성하면 상중하 세 개의 단전을 모두 활용하게 될 것이란 내 예상이 맞을 것 같구나.”

단순히 단전의 숫자를 늘리는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서로 간의 상호 작용을 통해 상승효과를 일으킬 수 있으니, 만약 세 개의 단전을 모두 사용하게 되면 단순 세 배가 아니라 다섯 배, 어쩌면 그 이상의 효과를 볼 수 있을지도 몰랐다.

“하단전과 중단전과 상단전은 각기 그 역할이 다르다. 때문에 활용하게 되면 할 수 있는 일 역시 달라진다.”

요 이레 동안 수업 받은 내용 중의 일부였다.

유더가 고개를 끄덕이자 란디우스는 구체적인 설명을 되풀이하는 대신 바로 다음으로 넘어갔다.

“네가 부리는 흑룡··· 그 역시도 구천구문 본연의 힘이라기 보다는, 구천구문의 힘이 네게 맞추어진 결과가 아닐까 하구나.”

란디우스는 흑룡을 부리지 못 했다.

하지만 천무지체 없이 억지로 구천구문을 수련해서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이 또한 단순한 감에 불과하지만.’

실제로 수련해본 자만이 느낄 수 있는 어떤 감각.

란디우스의 구천구문은 흑룡의 기운 대신 란디우스의 근간인 태양의 힘을 강화시켜주었다.

유더의 구천구문이 흑룡이라면, 란디우스의 구천구문은 태양인 셈이었다.

“하지만 너 역시 태양의 힘을 익히기 시작했으니, 구천구문이 다시 한 번 변화를 보일지 모른다. 찬찬히 관찰할 시간이 없다는 것이 아쉽구나.”

최대한 시간을 아껴가며 가르치긴 했지만 그래봐야 겨우 이레- 정확히는 엿새에 불과했다.

아무리 천무지체를 타고난 유더라 해도 겨우 며칠 만에 구극태양신공을 대성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래도 역시 천무지체. 대단하긴 하구나.’

란디우스는 무식할 정도로 철저한 주입식 교육으로 구극태양신공을 전수했다.

시간이 부족하니 일단 몸에 각인시킨다는 개념이었다.

그리고 유더는 그 어려운 걸 실제로 해냈다.

물론 살짝 정신이 나갈 정도로 힘들어하긴 했지만 일단 해냈다는 것이 중요했다.

‘천무지체만이 아니야. 머리가 비상한 녀석이다.’

무공이 일정 경지 이상에 달하면 오성이 열리기 마련인 터라 란디우스 자신도 기억력 하나만큼은 대단한 수준이었는데, 유더는 단순히 대단하다고 평가할 수준이 아니었다.

그야말로 굉장하다고 해야 할까?

‘겨우 엿새 만에 팔 할 이상을 주입시킬 수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거늘.’

구극태양신공은 단순히 심법이 아니었다.

그 안에는 많은 기술들이 담겨 있었고, 란디우스는 그중 팔할 가량을 유더의 영육에 주입시킬 수 있었다.

‘경지가 오르면 하나씩 제대로 사용할 수 있겠지.’

그리고 다음에 다시 만났을 때는 구극태양신공의 오의를 전수하리라.

‘물론, 지금보다 배는 더 힘든 수련이 기다리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문제될 것은 없었다.

눈앞의 제자라면 능히 견뎌낼 것이니 말이다.

“후후훗.”

란디우스는 흐뭇한 미소를 머금었지만 유더는 순간 몸을 움찔하며 식은땀을 흘렸다.

어쩐지 모르게 불길한 예감이 마구 들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제자야.”

“예, 스승님.”

“넌 너무 빨리 강해졌다.”

란디우스의 말에 유더는 재차 고개를 끄덕였다.

저 말에 담긴 의미가 무엇인지 유더 스스로도 잘 알았기 때문이다.

“성장이 빠른 것을 나쁘다고 할 수는 없겠지. 그만큼 네 재능이 뛰어나다는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빨라도 너무 빠르다. 성장의 속도가 너무 빨라 때로는 무섭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고작 두어 달 만에 구천구문 오문에 도달했다.

처음 만났을 때는 하급 마인 하나와 싸우는 것도 무리였던 아이가 이제는 중급 마인 정도는 능히 제압할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

겨우 두어 달 만에 말이다.

“너무 빠르다. 그래서 걱정이 된다.”

이 성장이 폭주가 되지 않기를.

너무 빨리 달리기에 놓칠 수밖에 없는 것들로 인해 발목이 붙잡히지 않기를.

“제자야, 솔직히 말하마. 난 어린 시절부터 천재라 불렸다. 아주 소문이 자자했지.”

거기까지 말한 란디우스는 돌연 헛기침을 토했다. 스스로 말하고도 민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실이니까.’

정말이었다.

란디우스 자신은 객관적으로 봐도 천재였다.

“카마엘 녀석도 천재다. 레나도 천재지. 나는 나부터가 천재이고, 지금까지 살며 여러 천재들을 보아왔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네가 최고다.”

천무지체.

실로 하늘이 내린 무의 화신.

사실 원작의 천무지체는 이 정도 수준까지는 아니었다.

하지만 유더 스스로가 생각했듯이, 지금의 유더와 코델리아는 순수한 원작의 두 사람이 아니었다.

전생에도 아웃복서는 강진호는 천재였다.

그 강진호의 천재성에 유더의 천무지체가 더해졌다.

여기에 구천구문을 수련하여 오성까지 열렸으니, 지금의 유더는 원작의 유더보다 훨씬 더 뛰어난 재능의 소유자가 되었다.

‘코델리아도 마찬가지야.’

사실 유더 생각에 진짜 천재는 코델리아였다.

과정 없이 결과에 도달하는 그 능력은 천재라는 말 외에는 표현할 길이 없었다.

유더 자신은 그냥 보는 것이 아니라, 계산을 통해 유추해내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제자야, 그렇기에 나는 널 볼 때마다 기대가 되면서도 동시에 걱정이 된다.”

처음 보는 재능이었기에 어떤 식으로 뻗어나갈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발전 속도가 너무 빨라 잘못된 길로 나아가면 붙잡을 겨를도 없이 너무 먼 곳까지 가버릴 수도 있었다.

“그러니 제자야. 너무 서둘지 말거라. 너는 이미 지나칠 정도로 빠르다. 조급해하는 대신 조금만 더 인내하거라.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겠느냐?”

“예, 스승님. 명심하겠습니다.”

사실 란디우스의 걱정은 다소 지나친 것이기는 했다.

‘레벨 업도 내 재능이라 생각한 거 같으니까.’

유더가 이토록 빨리 강해질 수 있었던 것은 레벨 업을 통해 육체 역시 빠르게 강해진 덕분이었다.

물론 플레이 아데스의 모두에게는 레벨이 있고, 레벨이 오르면 능력도 강화되었지만, 느낌이 조금 달랐다.

유더와 코델리아의 경우엔 레벨이 올라서 능력치가 올랐다는 느낌이라면, 다른 이들은 능력치가 일정 수준 이상이 되었기에 레벨이 올라간다는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얼핏 보면 그게 그거 같았지만, 둘 사이에는 명백한 차이가 존재했다.

‘아무튼 과대평가라 좀 지나친 걱정이긴 하지만··· 명심해서 나쁠 건 없는 이야기야. 나와 코델리아 모두에게.’

아니, 유더 자신보다는 오히려 코델리아에게.

“음, 해야 할 말은 이제 다 했다. 이번 수련에 대한 정리는 이 정도로 마무리 지으면 될 것 같구나.”

거기까지 말한 란디우스는 아예 자리를 털고 일어나려 했다. 때문에 유더는 급히 손을 들며 말했다.

“스승님! 한 가지 여쭙고 싶은 게 있습니다.”

“무엇이냐, 제자야.”

“벨키안 님과 프란 님에 대해 여쭙고 싶습니다.”

두 사람은 지금 어디에 있는지.

혹시 연락할 방도가 있는지.

유더의 물음에 란디우스는 미간을 한 차례 좁히더니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벨키안 씨라면··· 나도 모른다. 데몬프린스와 싸운 이후에는 개인적인 연구를 하시겠다며 사라지셨으니 말이다. 애당초 여생이 얼마 안 남은 분이시라 붙잡지도 못··· 제자야. 왜 그런 눈으로 보는 것이냐?”

“네? 아, 네. 그냥 좀··· 신기해서요.”

벨키안 씨라니.

거기에 존댓말이라니.

‘하긴 란디우스는 이제 마흔이구나.’

반면에 벨키안은 1편 시점에서도 이미 70대였고.

당연한 일이었다.

“녀석, 실없기는. 아무튼··· 프란 역시 모르겠구나. 한 5년 전까지는 연락이 되었는데, 그 뒤로는 행방불명이라. 그래도 뭐 드루이드니 어디서 잘 살고 있지 않을까 한다. 어쩌면 겨울잠 같은 걸 자고 있을지도 모르고.”

아무리 드루이드라도 겨울잠은 좀 무리지 않을까 싶었지만, 유더는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모른다는 거니 역시 하나하나 찾을 수밖에 없겠네.’

일단은 미끼로 낚시가 가능한 벨키안부터 잡고.

“음, 뭔가 음흉한 미소구나, 제자야.”

“흠흠.”

“엉큼한 녀석. 소녀의 생각이라도 한 것이냐?”

란디우스가 은근한 얼굴로 웃으며 묻자 유더는 순간 억울함을 느꼈다.

아니, 음흉한 표정과 코델리아가 왜 연결이 된단 말인가.

유더 자신이 얼마나 순수한 마음으로 코델리아를······.

“흠흠.”

생각을 잇던 유더는 돌연 다시 헛기침을 토했다.

스스로가 생각해도 민망했기 때문이다.

“양심은 있는 모양이구나.”

유더의 속내를 아는지 모르는지 란디우스가 그리 말했고, 유더는 민망한 가운데 재차 헛기침을 토했다.

그리고 한 시간 남짓.

유더와 코델리아, 란디우스 세 사람은 생명의 신전 입구에서 서로를 마주하고 섰다.

이제는 각자의 길로 나아가야 할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스승님, 일이 끝나시면 왕도에 꼭 들러주세요.”

란디우스와 카마엘, 거기에 레나까지 나서서 해결해야 한다는 남부의 사건.

몇 번을 물어도 제대로 대답해주지 않아 답답하긴 했지만, 유더는 란디우스를 이해해주기로 마음먹었다.

‘이유가 있어서겠지.’

굳이 말하지 않는 것은.

어쩌면 정말 위험한 일에 나서는 것일지도 몰랐다.

‘그저 무사하기를.’

원작에 정확히 묘사되지 않은 터라 흐름을 완벽하게 파악할 수는 없지만, 지금은 란디우스가 죽을 때가 아니었다.

더욱이  본래라면 함께 하지 않았을 레나까지 함께하고 있으니 원작보다 일이 더 잘 풀리면 잘 풀렸지 망가질 가능성은 낮았다.

“네, 란디우스 님. 저도 왕도에서 기다리고 있을게요.”

코델리아도 예쁘게 덧붙이자 란디우스는 껄껄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리하겠다. 가능하면 건국 기념 무도회에 서는 너희 둘을 보고 싶으니 말이다.”

건국 300주년 무도회.

전 세계에서 여러 인사들이 모이는 자리인 만큼 선남선녀들이 가득할 터였지만, 란디우스는 확신했다.

그날 그 자리에서 가장 빛나는 것은 유더와 코델리아일 거라고 말이다.

“아무튼 이제 슬슬 가야할 것 같구나. 제자의 경지가 생각보다 높아 시간을 너무 지체하고 말았다.”

“정말 감사합니다, 스승님.”

약간은 짓궂게 말하는 란디우스에게 유더가 살짝 어색하게 답했고, 란디우스는 다시 껄껄껄 웃었다.

“제자야, 다음 만남을 기대하겠다. 그때까지 열심히 수련하도록 해라. 근육도 더 키우고. 알겠느냐?”

“예, 스승님.”

순간 며칠 만에 새겨진 트라우마로 인해 유더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지만, 다행히 옆에는 코델리아가 있었다.

코델리아는 비틀거리는 유더를 한 팔로 안아 지탱한 뒤 란디우스에게 말했다.

“그럼, 다음에 뵐게요. 항상 근육이 함께하기를.”

코델리아의 인사에 란디우스는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호쾌하게 웃으며 지면을 박차 올랐다.

“근손실나는 눈물은 거두거라! 항상 근육이 함께 할 것이니!”

하늘 높이 솟구친 란디우스의 전신에서 황금빛 투기가 폭발했다.

눈부시게 빛나니 마치 하늘 아래 또 하나의 태양이 뜬 것만 같았다.

“다시 만나자! 제자여! 소녀여! 항상 근육이 함께하기를!”

하하하하하!

호쾌한 웃음을 터트린 란디우스는 그대로 허공을 박차 남쪽을 향해 무시무시한 속도로 날아갔고, 코델리아는 언제나와 같이 멍한 표정을 짓다 말했다.

“언제 봐도 신기하단 말이지.”

저게 왜 마법이 아닌 걸까.

대체 어떻게 저렇게 날아다니는 걸까.

“너도 신기··· 유더야?”

코델리아는 저도 모르게 한 팔로 안고 있던 유더를 놓고 뒷걸음질 쳤다. 그도 그럴 것이 유더가 몸을 부들부들 떨며 숨죽인 웃음을 터트렸기 때문이다.

“크크크··· 크크큭··· 해방이다. 해방이야!”

지난 엿새 동안의 수련.

그 지옥 같은 나날들!

“그렇게 좋아?”

“그렇게 좋아!”

활짝 웃은 유더는 기쁨을 표현하듯 코델리아의 허리를 덥썩 잡더니 그대로 높이 들어올렸다.

“야! 신난다!”

그대로 빙글빙글.

미친놈처럼 웃는 모습에 코델리아는 기겁을 했지만, 이내 동정심이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오늘도 무릎베개 해줄게.”

“흑흑! 감사합니다, 마님!”

“네네, 우리 돌쇠.”

유더는 그대로 몇 번이나 더 빙글빙글 돈 뒤에야 코델리아를 바닥에 내려주었다.

&

다음날 오후.

미네트에 위치한 악마의 손의 본부.

세일룬 왕국 북부를 책임지는 상급 마인 솔루지아는 참고 참은 노성을 터트렸다.

“대체 어떻게 된 것이냐!”

여드레 전에 접한 첩보.

유더와 코델리아가 성십자 수호단과 힘을 합쳐 미네트에 위치한 악마의 손의 본부- 정확히는 북방 전체를 관장하는 솔루지아의 지부를 공격한다는 정보.

그냥 넘길 수 없는 이야기였다.

악마의 손의 지부들은 모두 비밀리에 운용이 되었다.

자연 그 위치 역시 아는 자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데 미네트를 정확히 지목했다.

‘더욱이 중급 마인 셋을 쥐도새도 모르게 해치웠다.’

유더와 코델리아 단 둘이서 그런 일을 해냈을 리 만무했다.

성십자 수호단이 깊이 개입한 것이 분명했다.

‘카마엘.’

성십자 수호단 최강의 전력.

놈의 분신이 이번 일에도 끼어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아니, 어쩌면 아예 본인이 올지도 몰랐다.

분신만으로는 솔루지아 자신을 쓰러트릴 수 없다는 것을 놈도 알고 있을 터이니 말이다.

때문에 솔루지아는 방비를 했다.

본부로 쳐들어 온 놈들에게 역공을 하기 위해 북부의 전력을 한데 모은 뒤 함정을 파고 기다렸다.

그리고 하루.

다시 이틀.

삼일, 사일.

마침내 여드레까지!

“왜 오지 않느냔 말이다!”

솔루지아는 멍청하게 틀어박혀 있기만 하지 않았다.

성십자 수호단의 움직임을 파악하기 위해 몇 번이나 외부로 정보원들을 파견하였다.

그리고 그 결과 알게 된 것은 성십자 수호단이 이렇다 할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처음에는 함정이라 생각했다.

완벽한 기습을 위해 놈들이 수를 쓴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여드레가 된 지금.

이제는 알 수 있었다.

공격은 없다.

애당초 정보 자체가 거짓말이었든, 도중에 놈들이 작전을 취소시켰든, 어찌되었든 공격을 일어나지 않는다.

‘어느 쪽이든 상관없어.’

중요한 것은 여드레나 시간을 낭비했다는 사실과, 급히 병력을 모으느라 왕도에서 진행할 작전에 차질이 생겼다는 것이었다.

‘총수께서 이 이상 실망하신다면··· 그리하여 날 아예 포기하신다면······.’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이었다.

두려움에 몸을 떤 솔루지아는 두 손으로 얼굴을 덮고 몇 번이나 숨을 토했다.

차라리 죽으면 죽었지, 총수에게 버림받는 미래만은 맞이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는 아니되었다.

“유더와 코델리아를 찾아라.”

만악의 근원을.

총수께서 더 이상 실망하지 않으시도록. 지금까지의 실수를 만회할 수 있도록.

“두 사람의 위치를 파악해라! 어서!”

솔루지아의 노성에 미네트에 모여 있던 악마 추종자들이 북부 곳곳으로 흩어져 수색을 개시했다.

북부의 주요 도시들은 물론이고, 왕도로 향하는 길목에 자리한 마을들을 모조리 뒤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들 가운데 누구도 유더와 코델리아의 자취를 찾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애당초 두 사람은 제대로 된 길을 이용하지 않았으니까.

생명의 신전을 나선 이후 왕도로 향하는 것이 아니라, 전혀 다른 곳으로 향하였으니까.

중앙의 초입.

보이는 건 산밖에 없는 곳에 위치한 마을.

그곳에 유더와 코델리아가 자리하고 있었다.

&

모든 장사가 그러하듯이, 일단 장사가 되려면 손님이 있어야 했다.

여관의 경우에는 묵고 갈 사람이 있어야 했는데, 보통 여관의 손님은 두 종류로 구분되었다.

하나는 묵을 곳을 찾는 외지인.

다른 하나는 불장난 할 장소를 찾는 내지인.

한스의 마을에 자리한 유일한 여관인 분홍돼지 여관은 주로 외지인 손님을 대상으로 한 곳이었다.

손바닥 만한 마을이라 옆집 수저 개수까지 다들 꿰고 있는 마당에 불장난하러 여관에 들르는 바보들 따윈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외지인도 그리 많지는 않아.’

딱히 관광지나 길목인 것도 아니었으니까.

마을에 그나마 여관이 있는 것은 한때 일자리를 찾아 많은 외지인들이 마을을 찾았기 때문이다.

광산업.

땅을 파서 광물과 기타 등등을 채취하는 산업.

‘한 때는 잘 나갔지.’

그렇게 먼 과거도 아니었다. 대충 오년 전만 해도 마을에 여관이 셋이나 있을 정도로 광산업이 활발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대부분의 갱도들이 폐광된, 오늘내일 하는 광산 마을이었다.

‘그래서 이상하단 말이지.’

여관에 이렇게나 많은 외지인들이 자리한 것은 대체 몇 년 만의 일일까.

카운터에 앉아 있던 한스는 주점으로 쓰고 있는 1층에 자리한 이들을 슬쩍 돌아보았다.

왼쪽 구석에 앉아 있는 한 쌍의 남녀.

둘 다 너무 잘생기고 예뻐서 처음 봤을 때는 사람이 아닌 줄 알았다.

특히 여자 쪽은 자기도 모르게 ‘천사님’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말이다.

그리고 다시 오른쪽에 자리하고 있는 일단의 무리.

덩치 큰 사내들이 대부분이었는데, 개중에는 체구가 작은 소녀가 하나 끼어 있었다.

‘신기해.’

주점이 꽉 차는 일도 드문데, 꽉 채운 인물들도 뭔가 다 심상치 않으니.

‘그래도 호기심을 죽여야지.’

괜히 궁금하다고 고개 들이밀었다가 크게 다칠 수도 있었으니까.

어떻게 된 여행객들인지 아이 하나 빼고는 다들 허리나 등에 칼을 차고 있었다. ‘천사님’조차도 말이다.

‘쳐다보지도 말자.’

괜히 눈 마주쳤다가 시비 걸릴라.

마음을 다잡은 한스는 시선을 먼 곳으로 돌렸고, 이는 현명한 조치였다.

한스가 느끼지 못 했을 뿐, 주점 안에서는 이미 소리 없는 공방전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소녀가 끼어있는 무리가 왼쪽 구석에 앉아 있는 젊은 남녀- 유더와 코델리아를 매섭게 노려보았고, 유더와 코델리아는 서로 시선을 교환하였다.

‘쟤 걔 맞지?’

‘어, 걔 맞아.’

이런 곳에서 마주할 거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 했던 인물.

유더와 코델리아는 다시 시선을 교환하였고,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소녀 쪽을 돌아보았다.

갈색 후드를 머리끝까지 눌러 쓰고 있어 얼굴이 반 이상 가려졌지만, 그렇다 해도 완전히 가릴 수 없는 앳된 얼굴.

왕도편의 주역이라 할 수 있을 다프네 왕녀와 디온 왕자의 동생인 다리안 왕녀가 분명했다.

&

< 제52장 - 뜻밖의 만남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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