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엔딩메이커-142화 (142/473)

< 제52장 - 뜻밖의 만남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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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

유더와 코델리아에 대한 소문은 북부를 넘어 이미 왕도가 있는 중앙에까지 널리 퍼져 있는 상황이었다.

‘아니이! 왜?! 어째서?!’

그야 특이하고 또 특이한 일이었으니까.

본래 사랑의 야반도주라는 서로 사랑하지만 집안의 반대로 인해 헤어져야만 하는, 안타까운 사연을 가진 연인들의 전유물이었다.

그런데 이미 약혼 관계인 두 사람이 사랑의 야반도주를 한다?

그것도 태어날 때부터 이미 약혼 관계였을 정도로 집안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둘이?

유더와 코델리아의 이야기를 접한 이들의 반응은 대체로 동일했다.

“그게 무슨 소리지?”

“네? 그게 대체 무슨 이야기죠?”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

그렇기에 전모가 궁금한 이야기.

더욱이 유더와 코델리아의 이야기에는 너무나 매력적인 양념들이 가득하였다.

“코델리아 양이 남긴 편지들이 글쎄······.”

“어머어머, 대담하셔라.”

직설적이며 원색적으로 유더에 대한 사랑을 표현한 코델리아의 편지들.

“둘만의 시간이 갖고 싶었다나 봐요.”

“아··· 어쩐지 좀 알 것도 같네요.”

“그렇죠?”

귀족들, 그것도 북부12가문 정도 되는 가문의 자제들이라면 아무리 약혼한 사이라 해도 단 둘이 있는 상황을 만들기 어려웠다.

호위무사니 전속시녀니 이래저래 따라붙는 이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좀 너무하긴 했네요, 두 사람.”

“코델리아 양도 참··· 백작가의 영애다운 기품을 보여주어야 할 텐데······.”

“솔직히 좀 실망이네요.”

“사랑 소설을 너무 많이 본 걸지도요. 호호.”

이러나저러나 추문은 추문이었으니까.

엠마 파이커스처럼 기회는 이때라며 코델리아와 유더에 대해 나쁜 소리를 하는 이들도 많았다.

그리고 늘 그렇듯이 좋은 소문보다는 나쁜 소문이 더 널리 퍼지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좀 부럽지 않아요?”

“사실 저도······.”

“조금 부럽긴 해요.”

두 사람의 이야기는 단순히 욕하고 무시할 추문만은 아니었다.

아직 어린 소녀들은 물론이고 제법 나이가 찬 여인들까지- 아니, 이미 자식을 여럿 둔 노부인들에게도 동경할 만한 요소가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서로를 정말 사랑하는 거겠죠?”

“사랑 이야기처럼요.”

귀족들에게 있어 결혼은 십중팔구 가문을 위한 것이었다.

정략혼.

얼굴도 모르는 상대와의 결혼.

갑자기 정해져 어제까지만 해도 남이라 생각했던 이와의 약혼.

양쪽 모두 사랑 따위 없지만 강제로 유지해야 하는 결혼생활.

그런데 유더와 코델리아는 달랐다.

태중약혼임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서로를 지독히도 사랑하는- 정말 사랑 이야기의 주인공 같은 사랑을 하는 사이였다.

부럽지 않다면 거짓말이리라.

“그리고··· 유더 공자 소문 들었나요? 그렇게 잘생겼다죠?”

“코델리아 양도 예전부터 미모로 유명하기는 했죠.”

“체이스 백작가가 본래 좀.”

“하긴, 아델리아 양도 입만 다물면 북부 최고의 미녀라고 소문이 났었죠?”

“생각나네요.”

따로따로 서 있어도 빛나는 절세미소녀와 절세미소년인데 그 둘이 아예 커플이기까지 하니 그 반짝임이 얼마나 대단하겠는가.

어찌되었든 이와 같은 이유들로 인해 유더와 코델리아의 이야기는 북부를 넘어 중앙에까지 빠르게 전파되었다.

그리고 사실 이미 남부에까지 소문이 났으니, 세일룬 왕국 전역이 유더와 코델리아의 이야기를 알고 있는 셈이었다.

환상의 커플을 넘어 세기의 커플까지.

왕국 전체가 인정하는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

‘씨발, 이게 뭐야. 이게 뭐냐고.’

다리안 왕녀의 입을 통해 자신들의 이야기를 듣게 된 코델리아는 어지러움을 느꼈고, 유더는 흡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멋진 이야기에요. 정말 부러워요, 코델리아 양.”

“가, 감사합니다.”

다리안 왕녀가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동경의 눈빛을 보내니 코델리아로서는 웃으며 긍정하는 것 외에는 다른 길이 없었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거지?’

시작은 분명 델리아와 마이아의 시선을 피하기 위한 핑계에 불과했는데.

정신차리고 보니 왕국 전체가- 아니, 어쩌면 대륙 전체가 공인하는 러브러브 커플이 되고 말았다.

“그런데 왕녀님.”

“네, 유더 공자.”

“그··· 두 번째 이야기는 아직 퍼지지 않았나요?”

“두 번째 이야기라뇨?”

“저와 코델리아의 여행에 숨겨져 있던 비밀 이야기요. 성십자 수호단이 얽힌······.”

유더의 말에 다리안 왕녀는 눈을 깜박였고, 옆에서 듣고 있던 콘웰 경이 헛기침과 함께 입을 열었다.

“두 사람이 야반도주를 하게 된 이유가 사실은 성십자 수호단의 임무를 돕기 위해서라는 이야기입니다. 갈까마귀들의 수장인 흐레스벨그 백작이 야만의 땅에서 펼친 작전에서도 크게 활약했다고 하더군요.”

“와, 정말요?”

“자세한 내막은 저도 모릅니다만··· 일단 그렇게 듣긴 했습니다.”

공작가의 기사 단장이라 하여 흐레스벨그 백작이 왕실에 올린 군사 보고서를 열람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기사들 간의 정보 교류 중에 대강의 이야기를 접한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지금이라면 자세한 내막을 알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거기까지 말한 콘웰 경은 유더를 돌아보았고, 유더는 빙긋이 미소를 지었다.

“자세한 이야기는 비밀이라 말씀드릴 수가 없지만··· 애당초 저와 코델리아가 가출하게 된 이유가 성십자 수호단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인 것은 사실입니다.”

유더의 말에 콘웰 경은 조금 더 말해보라는 눈빛을 보냈지만 어림없는 일이었다.

유더는 미소로 일관했고, 콘웰 경은 미간을 찌푸릴 뿐 직접적으로 채근하지 못 했다.

스펜서 공작가의 기사단장인 동시에 자작 위를 가진 콘웰 경이었지만 그렇다고 딱히 유더에게 이래라저래라 할 수 있는 위치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도 귀족이니까.’

비록 작위도 없고, 차남이기에 작위를 물려받을 가능성도 낮은 평귀족이었지만, 그래도 일단 귀족은 귀족이었다.

‘그리고 아마··· 조만간 남작 위 정도는 나오겠지.’

흐레스벨그 백작이 야만의 땅에서 유더와 코델리아의 활약을 보고하였으니, 유더와 코델리아 모두에게 남작 위- 하다 못 해 기사 작위 정도는 내려올 가능성이 높았다.

때문에 유더는 다시 여유있는 미소를 지었고, 콘웰 경은 마뜩찮은 표정은 지을지언정 유더에게 무어라 말은 하지 못 했다.

그런데 다리안 왕녀는 아니었다.

유더와 콘웰 경 사이에 오간 대화를 들은 그녀는 돌연 어깨를 축 늘어트리더니 무척이나 실망한 어조로 말했다.

“그럼··· 전부 거짓말인가요?”

“예?”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요.”

동경했는데, 멋지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사랑을 하고 싶다고 기도했는데.

‘제발 아니라고 해주세요.’

다리안 왕녀의 눈빛에 유더는 코델리아를 돌아보았고, 코델리아는 눈에 띄게 당황했다.

‘어, 어쩌지?’

‘어쩌긴. 늘 하던 대로 해야지.’

‘잠깐, 늘 하던 대로?’

‘그럼 다리안 왕녀를 울릴 거야?’

유더의 눈빛 물음에 움찔한 코델리아는 다시 다리안 왕녀 쪽으로 시선을 돌렸고, 촉촉이 젖은 그녀의 눈빛에 다시 한 번 움찔했다.

“페르다리안느 왕녀님.”

“네, 유더 공자.”

“제가 아까 뭐라고 했는지··· 기억하시나요?”

유더의 물음에 다리안 왕녀는 눈을 깜박이며 고개를 갸웃하더니 이내 환한 미소를 지었다.

“사랑의 여행이라 하셨어요.”

“네, 맞습니다. 사랑의 가출은 이제 끝났고, 지금은 사랑의 여행 중이죠. 가출을 하게 된 이유는 성십자 수호단의 임무를 위해서였지만··· 저희 둘의 사랑은 결코 거짓이 아니랍니다.”

“와아······.”

뺨 위에 두 손을 올린 채 감탄한 다리안 왕녀는 그대로 코델리아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눈빛 공격.

아까와는 다른 의미로 촉촉이 젖은 크고 예쁜 눈망울.

“유, 유더 말이 맞아요. 정말··· 사, 사랑하는 사이랍니다.”

어색하게나마 코델리아가 확언을 해주자 다리안의 얼굴이 더욱 밝아졌다.

“그럼 코델리아 양··· 아니, 코델리아 언니. 언니라고 불러도 되죠?”

“네? 그······ 예, 영광입니다.”

아무리 비공식적인 자리라지만 왕녀에게 언니라 불리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었으니까.

코델리아가 어렵사리 답하자 다리안 왕녀는 눈을 살짝 감더니 헤헤헤 미소를 흘리며 말했다.

“그럼 그 편지도··· 진짜죠? 사랑하는 유더 공자와 늘 함께하고 싶어··· 헤어지고 싶지 않아··· 죽음조차 우리 사이를 갈라놓지는 못할 터이니······.”

꿈꾸는 소녀처럼 읊조리는 구절구절에 코델리아는 막대한 심적 타격을 입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여기서 아니라고 할 수는 없었으니 말이다.

‘아니, 잠깐! 근데 왜 이렇게 과장이 된 건데?!’

분명 사랑하는 유더와 함께 하고 싶다고, 헤어지고 싶지 않다고 하긴 했지만 죽음이 어쩌고저쩌고라는 말까지는 한 적이 없는데!

하지만 이미 퍼진 소문이었고, 본래 소문은 전파되는 와중에 과장되기 마련이었다.

“정말 멋지다고 생각했어요. 전부 진짜인 거죠? 코델리아 언니?”

다리안의 사랑스러운 물음에 코델리아는 등 뒤로 식은땀을 흘렸지만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과장이 조금, 아니 좀 많이··· 되긴 했지만요.”

“과장요? 그럼 유더 공자를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않은 건가요? 헤어지기 싫다는 것도······.”

“아뇨, 아뇨. 그건 맞아요. 그, 그렇게 쓰긴 했어요.”

아아, 코델리아. 아아, 코델리아.

얼굴은 물론이고 목까지 빨개진 채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어쩔 줄 몰라하는 그녀의 모습에 기사들과 카운터의 한스는 한 마음이 되어 생각했다.

‘사랑스럽다. 그리고 죽이고 싶다.’

전자는 코델리아가. 후자는 유더를.

그리고 이 모든 사태의 직접적인 원인이자 당사자 가운데 하나인 유더는 웃음을 참기 위해 무진 노력을 하였다.

‘아, 제발 코델리아. 왜 이렇게 귀여운 거니.’

그런데 딱 그렇게 생각한 순간이었다.

‘야! 좀 도와줘!’

‘예, 마님.’

코델리아의 SOS 신호에 바로 응답한 유더는 작금의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그런데 왕녀님.”

“예, 유더 오라버니. 오라버니라 불러도 되죠?”

“물론입니다. 과분한 영광에 감사드립니다.”

“헤헤헤, 저도 허락해주셔서 감사해요. 그런데 무슨 일이세요? 아, 혹시 더 들려주실 사랑 이야기가 있나요?”

“물론 들려드릴 이야기는 많이 있지만··· 지금은 잠시 미뤄두어야 할 것 같습니다.”

거기까지 말한 유더는 슬쩍 콘웰 경을 돌아본 뒤 말을 이었다.

“저와 코델리아가 이 마을에 들른 것은 사실 약초를 구하기 위함입니다.”

“약초···요?”

“예, 대마법사 아케이만의 던전에 자생한다는 칠색초라는 약초입니다.”

유더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여관 안의 분위기가 다시 한 번 일변했다.

콘웰 경의 눈빛이 매서워졌고, 흐물흐물해져 있던 기사들 역시 순식간에 눈빛과 자세를 정돈했다.

‘역시.’

이 반응.

다리안 왕녀 일행 역시도 칠색초를 구하기 위해 이 마을에 온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지금의 발언에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유더는 다리안 왕녀를 보았고, 다리안 왕녀는 아이답게 자기감정을 완전히 감추지 못 했다.

두 손을 꼭 쥔 채 안절부절 못 하더니 콘웰 경을 돌아보았다.

“콘웰 경.”

어떡하면 좋겠냐는 그 눈빛에 콘웰 경은 한숨을 한 번 내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어쩔 수 없군요. 북부12가문의 자제들이니 이야기해도 될 것 같습니다.”

정확히는 북부12가문의 자제들이기 때문에 이야기를 해야 하는 것이었다.

평민이라면 내쫓거나, 극단적인 경우에는 제거조차 가능했지만 북부12가문의 자제들에게 그런 짓을 하는 것은 이래저래 무리였다.

“유더 오라버니.”

“예, 페르다리안느 왕녀님.”

“다리안이라고 불러주세요. 제 애칭이니까.”

“네, 다리안 왕녀님.”

유더가 호칭을 정정하자 다리안 왕녀는 입술을 한 번 깨물더니 이내 다시 미소를 그리며 말했다.

“저와 콘웰 경 역시 칠색초를 구하기 위해 왔어요.”

“칠색초를··· 말씀이십니까?”

“네, 아케이만의 던전에 자생한다는 이야기를 저 역시 접했거든요.”

정보의 출처에 대해서 까지는 밝히지 않았고, 유더도 굳이 묻지는 않았다.

중요한 것은 양쪽 모두 칠색초를 원한다는 사실이었다.

‘잠깐, 우리가 칠색초를 원한다고? 우리가 원하는 건 다른 거잖아.’

‘어, 맞아. 그냥 다리안 왕녀와 콘웰 경이 그렇게 생각하면 된다는 거야.’

유더의 눈빛에 눈을 깜박인 코델리아는 이내 유더의 속셈을 이해했다.

‘와, 진짜 사기꾼.’

‘칭찬 감사합니다, 공주님.’

유더의 속셈.

앞으로 이어질 유더의 계략들.

“유더 오라버니, 저희와 함께 해요. 함께 칠색초를 구한 뒤에 나눠 가지는 거예요.”

다리안 왕녀의 제안에 유더는 속으로 빙고를 외쳤지만 결코 티를 내지 않았다. 바로 수락하는 대신 조심스러운 어조로 물었다.

“그래도··· 되겠습니까?”

다리안 왕녀뿐만 아니라 콘웰 경에게도 건넨 물음이었지만, 사실 이미 답은 정해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다리안 왕녀가 정한 일인데다가, 딱히 거절할 이유도 없으니까.’

이미 신원이 증명된 유더와 코델리아였다.

더욱이 콘웰 경은 유더와 코델리아가 야만의 땅에서 공을 세운 일 역시 알고 있었다.

즉, 두 사람이 평범한 귀족가 자제들 이상의 무위를 갖추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소리였다.

‘호위 대상이 늘었다기 보다는 전력이 늘어난 셈이지.’

물론 왕녀를 모시는 여정에 아무리 신원이 증명되었다 한들 생판 남이 끼어드는 것은 그리 유쾌한 일이 아닐 터였지만, 그렇다고 강하게 거절할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 결국 수락할 수밖에 없었다.

“잘 부탁한다.”

“저도 잘 부탁드립니다, 콘웰 경.”

매끄럽게 답한 유더는 다시 다리안 왕녀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다리안 왕녀 일행을 마주한 순간 떠올린 계획을 입에 담았다.

“다리안 왕녀님, 한 가지 제안 드릴 일이 있습니다.”

여기 있는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는- 물론 유더와 코델리아 쪽이 훨씬 더 많이 행복해지긴 할 터이지만 아무튼 모두가 윈윈할 수 있는 일석삼조의 방안.

유더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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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52장 - 뜻밖의 만남 #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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