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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딩메이커-146화 (146/473)

< 제54장 - 아케이만의 비보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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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왔다.”

정말로 바람처럼 소리 없이 착지한 유더의 말에 코델리아는 감고 있던 눈을 떠 정면을 보았다.

아무렇게나 쌓여 있는 바위더미.

입구 따위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지만 코델리아는 헤헷 웃으며 말했다.

“게임이랑 똑같네.”

“어, 그리고··· 느껴지지?”

“응, 미약하지만 마력의 흐름이 느껴져. 꽤 교묘하긴 하지만.”

일종의 결계.

마력의 배치를 워낙 신묘하게 해놓은 터라 일반적인 마법사라면 이렇다 할 위화감을 느끼지 못 할 터였지만 코델리아는 달랐다.

‘마력을 느끼고 다루는데 있어 천재니까.’

전생과 무관한, 현생의 코델리아가 타고난 재능.

“그런데 유더야, 너는 어떻게 알아?”

“나야 천무지체니까···는 아니고, 오문까지 열면서 기감이 날카로워졌으니까.”

“흠.”

천무지체 운운하는 말에 잘난 척하지 말라며 귀를 잡아당기려던 코델리아는 일단 손을 거두었고, 유더는 작게 안도의 숨을 토한 뒤 말했다.

“아무튼 들어가자.”

“응, 내려줘.”

“아, 그러네. 너무 가벼워서 업고 있던 걸 까먹었네.”

“야야, 아부도 적정선이라는 게 있거든?”

코델리아가 비난하듯 말했지만 그래도 얼굴은 웃고 있었다.

그 사실에 만족한 유더는 앞장서며 말했다.

“그럼 먼저 들어가서 혹시 모를 위험을 확인해 보겠습니다.”

“뭘 또 그렇게까지야. 같이 가자.”

“하긴, 뭐. 그렇겠지?”

사실 이미 다리안 왕녀 일행이 지나간 입구이기도 한 데다 원작에서도 이렇다 할 함정 따위는 없었으니까.

하지만 그래도 만약이라는 것이 있는 법이었다.

다리안 왕녀의 방문으로 인해 원작이 뒤틀린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환상 마법으로 만들어진 바위.’

홀로그램으로 만들어진 가짜처럼 그대로 통과할 수 있는 바위더미들이었는데, 사실 이것만으로도 아케이만이 얼마나 대단한 마법사인지를 알 수 있었다.

백년이 넘는 세월동안 유지되는 결계라는 것은 쉬이 만들 수 있는 게 아니었으니 말이다.

“아무튼 먼저 들어가 볼게.”

선수 치듯 빠르게 말한 유더는 그대로 바위더미 속에 몸을 던졌고, 날카로운 기감으로 주변을 훑었다.

‘음, 역시 사서 고민이었나.’

딱히 위험한 기운이 느껴지지는 않자 안심한 유더는 자세를 풀었고, 마치 뒤를 잇듯 코델리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라이트.”

마법의 불빛을 만들어내는 기초마법.

코델리아의 손끝에서 피어난 노란 불빛이 던전 안의 어둠을 몰아냈고, 유더와 코델리아는 저도 모르게 감탄을 토했다.

“와, 지나간 티가 팍팍 나네.”

“콘웰 경은 보수적인 성격이니까. 다리안 왕녀 때문에라도 좀 철저하게 행동한 거겠지.”

두 사람 앞에 펼쳐진 전경.

일자형으로 된 던전의 복도 곳곳에는 파괴의 흔적이 남아 있었는데, 아무래도 함정이란 함정은 다 부수며 나아간 모양이었다.

“우리가 위험한 함정들은 거의 다 알려주긴 했지만··· 역시 다리안 왕녀의 힘이겠지?”

“응응, 원작에서도 탐색계 능력을 갖고 있다고 나왔으니까.”

세일룬 왕가의 아이들이 타고나는 초능력.

게임에서는 제대로 묘사되지 않아 어느 정도 능력인지 짐작이 불가능했는데, 눈앞의 광경을 보니 꽤 강력한 능력일 것 같았다.

‘이동하면서 바로바로 함정을 찾아냈다는 거니까.’

탐색 범위 까지는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지속 시간이 우수하다는 것은 짐작할 수 있었다.

‘세 시간 남짓.’

함정을 일일이 부수며 나아갔는데도 던전 끝을 찍고 돌아오는 데 세 시간 밖에 걸리지 않았다.

일일이 쉬어가며 능력을 사용했다면 훨씬 더 오랜 시간이 필요했으리라.

‘아무튼 덕분에 편하겠는데?’

이 정도로 함정을 다 박살냈다면 그냥 평지를 달리듯 빠르게 질주하기만 하면 되었으니 말이다.

“와, 그나저나 과감하네. 아예 폭발시킨 함정도 있는 것 같은데?”

좁은 던전 안에서 폭발이라니.

물론 소규모로 한정한 것이긴 했지만 콘웰 경이 ‘기사’라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꽤 놀라운 일이었다.

“갑자기 콘웰 경이 좋아지기 시작했어.”

코델리아의 말에 유더는 눈을 가늘게 떴고, 코델리아는 까르르 웃으며 말을 이었다.

“역시 잘 모를 땐 일단 폭발이란 말이지?”

“아니다, 이 악마야. 아니란 말이다.”

거기까지 말한 유더는 기회는 이때라는 듯 코델리아의 볼 살을 쭉 잡아 당겼다.

“아흐?!”

“와, 말랑말랑해.”

“디진다?”

코델리아가 재빨리 발을 놀려 유더의 발을 밟으려 했지만 이미 대비하고 있던 유더였다.

마치 바람처럼 물러난 뒤 말했다.

“서두르죠, 아가씨. 갈 길이 멉니다. 해 뜨기 전에는 돌아가야 하지 않을까요?”

“몇 대 때리고 가도 늦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코델리아가 호호호 웃으며 주먹을 쥐자 유더는 허허허 웃으며 돌아서더니 그대로 도망치듯 발걸음을 서둘렀다.

‘사실 코델리아 말이 어느 정도 맞긴 하지만.’

잘 모르는 함정은 일단 폭발시킨다.

시간이 없을 때는 사실상 최선의 방법이기는 했다. 실제로 유더 역시 비슷한 선택을 한 적이 많이 있고 말이다.

“야! 너 잡히면······.”

“이쪽으로!”

갈림길에서 재빨리 소리친 유더는 오른쪽 길로 뛰어들었고, 코델리아는 얼결에 그런 유더를 따라 달렸다.

몇 개나 되는 갈림길과 다양한 함정, 방문자의 눈을 속이는 숨겨진 길까지.

제대로 탐사하려면 하루 24시간으로도 부족할 아케이만의 던전이었지만 지형 전체를 꿰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유더였다.

더욱이 다리안 왕녀 일행이 이미 함정까지 다 파괴해둔 상태인 터라 그냥 달리기만 하면 되니, 한 시간은커녕 거의 반시간 만에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빨리 도착했군.”

먼저 도착한 유더가 느긋이 말하자 한 발 늦게 도착한 코델리아는 헉헉 거리며 유더의 등을 몇 대 때렸다.

“하아, 하아. 힘들다.”

“그래도 덕분에 일찍 도착했잖아?”

“말이나 못 하면.”

다시 유더의 등을 한 대 때린 코델리아는 상체를 일으켜 세운 뒤 마지막 방- 키메라의 거처를 둘러보았다.

“게임이랑 똑같네.”

“그러게, 저기 천장 구멍도 그렇고.”

키메라가 태양열을 흡수하기 위해 나가는 출입구.

특별한 공간도약 마법이 걸려 있는 곳이라 오직 키메라만 출입할 수 있는 전용 통로였다.

“동굴 천장에 저렇게 큰 구멍이 뚫려 있으니까 뭔가 무섭당.”

두려움을 떨치듯 혀 짧은 소리를 낸 코델리아는 그저 새카맣기만 한 구멍에서 억지로 눈을 뗀 뒤 정면을 보았다.

키메라의 자리 너머에 위치한 칠색초들의 재배지가 한 눈에 보였다.

“진짜 새싹들밖에 없네.”

“칠색초는 자라는데 오래 걸리니까. 그리고··· 이런 배치 때문에 키메라가 지키는 던전의 보물이 칠색초라 생각하기 쉽지.”

사실 칠색초도 제법 약효가 좋은 편에 속했다.

아이템으로 치자면 A랭크쯤은 가볍게 딸 수 있는 약초였으니 말이다.

‘문제는 내가 S랭크 영약들을 이미 잔뜩 먹었다는 거겠지.’

태양화초와 푸른 달의 정수에 이어 생명의 구까지.

지금의 유더에게 칠색초는 사실 그리 큰 의미가 없었다.

고레벨이 되면 저레벨 몬스터를 잡아도 경험치가 거의 오르지 않는 것처럼, 지금의 유더에게는 최소 S랭크 영약 정도가 아니면 약발이 받지 않았다.

“아무튼 가자. 일단 숨겨진 보물상자부터 챙기고.”

“어, 왼쪽은 내가 할게.”

“그럼 난 오른쪽.”

키메라가 평소 몸을 눕히는 제단 양 귀퉁이에는 숨겨진 보물상자가 있었다.

“역시, 현실이라 챙길 수 있구나.”

원작에서는 배경 처리되어서 챙길 수 없었는데.

일종의 마력 건전지라 할 수 있을 마력구들을 챙긴 코델리아는 활짝 웃었고, 유더 역시 만족스러운 얼굴로 보석들을 챙겼다.

“자, 다음은 진짜배기인가.”

준비해온 주머니를 빵빵하게 채운 코델리아는 도도도 달려가 정면의 벽 앞에 섰다.

파란색 도료로 마법진을 연상시키는 복잡한 도안이 그려져 있었는데, 저 도안이야말로 키메라가 지키고 있던 진짜 보물이라 할 수 있었다.

“암호문.”

아케이만의 비보를 얻기 위한 길이 설명된, 아케이만이 남긴 일종의 가이드라인.

하지만 유더와 코델리아 모두 딱히 도안의 암호를 해독할 생각은 없었다. 이미 정답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새삼스러운 이야기지만 성격 참 안 좋아.”

“그러게 말이야.”

아케이만의 비보를 얻기 위해서는 눈앞의 도안과 같은 암호를 일곱 개나 찾아낸 뒤 해독해야 했는데, 결국 다 해독하면 다음과 같은 답이 나왔다.

‘첫 던전으로 돌아가라.’

첫 번째 도안이 그려진 벽 너머에 비보가 숨겨져 있으니.

보물이 눈앞에 있는 것도 모르고 신나게 뺑이 친 기분이 어떠니?- 라는 의미가 담긴, 아케이만이란 인간이 어떤 작자인지를 잘 보여주는 연속 퀘스트라 할 수 있었다.

“원작에서는 이미 답을 알아도 전부 돌아야 했지만······.”

이제는 현실이었다.

굳이 트리거를 발동시키지 않아도 얼마든지 눈앞의 벽을 해체할 수 있었다.

“그럼 역시 폭발?”

“동굴 다 무너트릴 일 있니? 물러나 있어. 여기선 내가 해결할 테니.”

“네, 공자님.”

애당초 그냥 해본 소리였는지 순순히 물러난 코델리아는 쪼그리고 앉아 구경하는 사람A가 되었고, 유더는 다시 한 번 태양심격을 펼쳤다.

‘일점 타격이 아냐. 충격을 넓게 퍼트려 벽을 붕괴시킨다.’

힘을 집중한 시간은 3분 남짓.

충분한 기운이 모였다고 판단한 유더는 주먹 대신 일장을 내뻗었다.

흑룡출수.

제로 거리에서 펼쳐진 흑룡의 기운이 벽 속으로 파고들자 거짓말처럼 수백 개나 되는 균열이 생겨났다.

그리고 몇 초.

유더가 손바닥을 거두자 마치 그게 신호라도 된 것처럼 쩍 소리와 함께 균열이 붕괴했다. 그대로 부서져 커다란 구멍이 되었다.

“오올, 대단한데?”

벽 자체는 건재한데 마치 도려내기라도 한 것처럼 직경 2미터짜리 구멍이 생겨났다.

단순히 벽 전체를 무너트리는 것보다 훨씬 더 난도가 높은 일이었다.

코델리아가 짝짝짝 손뼉을 치자 마치 무대 위의 마술사처럼 예를 표한 유더는 안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드시지요.”

“예, 공자님.”

자리에서 폴짝 뛰어오른 코델리아는 라이트 마법으로 구멍 안을 밝혔고, 드러난 광경에 두 사람은 행복한 미소를 머금었다.

“아케이만의 비보.”

“그중 넘버 파이브.”

“증폭의 귀걸이.”

심플한 효과를 가진 심플한 이름의 아티팩트였지만, 그렇기게 강력한 아티팩트.

‘본래 설명이 단순할수록 강력한 법이니까.’

증폭의 귀걸이의 효과는 단순했다.

착용자의 마법 효과를 증폭시킨다.

무슨 마법이든 마력을 쓰는 것이라면 전부 다.

대신 마력 소모량 역시 무시무시하게 증폭되긴 했지만, 보다 강한 한 방을 펼칠 수 있다는 건 전투에 있어 어마어마하게 큰 메리트였다.

특히 코델리아 같은 화력덕후에게는 말이다.

“아아, 너무 좋아. 좋아서 미칠 것 같아.”

눈을 반짝이며 말한 코델리아는 그대로 귀걸이 앞에- 정확히는 귀걸이가 놓인 작은 단상 앞으로 쪼르르 달려갔다.

“하아, 이쁘다. 성능도 좋은 게 예쁘기까지 해.”

더욱이 귀걸이라는 사실이 중요했다.

이미 팔찌와 반지, 목걸이까지 끼고 있는 코델리아인 터라 귀걸이가 아닌 다른 장신구였다면 중복 착용 때문에 어느 하나를 포기해야만 했으리라.

‘티아라처럼 쓰고 다니기 부담스러운 물건도 아니고.’

씩 웃은 유더는 코델리아에게 다가섰고, 어느새 증폭의 귀걸이를 장착한 코델리아는 활짝 웃으며 유더를 향해 돌아섰다.

“어때? 어울려?”

티아라를 착용했을 때처럼 수줍게 묻자 유더는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엄청 어울려. 역시 천사님.”

“흥흥, 아부 떨기는.”

흥흥 거린 코델리아였지만 입꼬리가 잔뜩 올라간 걸 보니 무척 기분이 좋은 모양이었다.

“아, 신난다. 이걸로 마력 증폭해서 주문의 메아리랑 더블 캐스팅까지 동원하면······.”

그야말로 대폭발.

지금까지는 감히 엄두조차 낼 수 없었던 화려하고 화려하며 강력한 대폭발!

“상상만 해도 짜릿해.”

코델리아의 황홀한 표정은 참으로 볼만했지만, 그 내용이 문제였다.

지금까지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대폭발.

순간 왕도의 모습과 붕괴하는 엔디미온의 모습이 오버랩 된 유더였지만 얼른 고개를 가로저었다.

‘어림없지, 어림없어.’

그런 일 따위 있을 수 없지.

“유더야?”

“아니, 그냥 어울린다구.”

“헤헤헤.”

다시 웃은 코델리아는 그대로 입술을 살짝 깨물더니 이내 유더에게 은근슬쩍 다가서며 말했다.

“그런데 유더야. 아니, 우리 공자님.”

애교가 잔뜩 들어간 목소리에 유더는 순간 녹아내리는 자신을 느꼈지만 이내 정신을 수습했다.

참으로 수상쩍은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왜?”

일부러 조금 퉁명스럽게 말해보았지만 코델리아는 여전히 애교를 부리며 말을 이었다.

“코델리아는 갖고 싶은 게 있어요.”

“뭐가? 설마 폭탄?”

“아니, 아니. 폭탄은 아니구······.”

슬쩍 말꼬리를 흐린 코델리아는 자기 허리춤을 가리켰고, 유더는 그제야 알 수 있었다.

어느새 지난 번에 준 도폭선을 거의 다 쓴 코델리아였다.

“다시 만들어줄 거죠? 네?”

귀여웠다. 참으로 귀여워서 무조건 알겠다고 답하고 싶었다.

하지만 유더는 중요한 것을 놓치지 않았다.

“저기 아가씨, 도폭선도 폭탄의 일종이거든요?”

“치사하게 굴지 말구. 응?”

“하는 거 봐서.”

사실 이미 몇 세트 더 만들어둔 것이 있었지만 기회라는 건 왔을 때 잡는 것이었으니까.

“일단 돌아가서 이야기할까? 어쩌면 우리가 사라진 걸 눈치 챘을 수도 있으니까.”

“네, 공자님.”

도폭선을 위해서인지 예쁘게 답한 코델리아는 바로 유더의 등에 업혔다.

“늘 이렇게 말을 잘 들으면 얼마나 좋을까.”

“평소에도 잘 듣는 편이거든? 아니, 편이거든요?”

“네, 네. 그러시겠죠.”

피식 웃은 유더는 코델리아를 고쳐업은 뒤 질풍이십사보를 펼쳤다.

&

“언니! 오라버니!”

마을 여관 1층.

밤이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다리안 왕녀는 물론이고 기사들까지 모두 1층에 자리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유더와 코델리아 두 사람이 사라진 것을 진즉에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처음엔 밤 산책 나가신 건가 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안 오셔서 걱정했어요.”

방에 짐이 있는 걸 보면 둘이서만 먼저 떠난 것은 아닐 터인데 통 돌아오질 않았으니까.

“그래도 돌아오셔서 다행이에요.”

다리안 왕녀는 두 사람 모두 무사히 돌아왔다는 사실에 만족한 듯 빙그레 웃었지만, 콘웰 경은 그렇지 않았다. 다소 미심쩍다는 얼굴로 유더와 코델리아를 보며 물었다.

“그런데 두 사람, 어딜 다녀온 것이지?”

처음엔 별 생각 없이 물은 것이었지만, 순간 콘웰 경의 눈빛에 날카로움이 실렸다.

코델리아의 귀에 걸린 귀걸이를 보았기 때문이다.

낮까지만 해도 차고 있지 않던 것.

어디서 난 것일까.

그리고 두 사람은 이 야밤 중에 뭘 하느라 몇 시간이나 자리를 비운 것일까.

코델리아가 시력을 회복한 것 자체는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애당초 지나친 마력 소모로 인한 일시적인 부상이었고, 키메라와 싸운 것은 벌써 몇 시간 전의 일이었으니 약이든 마법이든 회복 수단까지 곁들였다면 충분히 나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부상은 부상이었다.

그런데 그냥 쉬지 않고 굳이 야행에 나선다?

반드시 그래야만 하는 이유라도 있었던 것일까?

사실 무언가 구체적인 의심을 가지고 던진 물음은 아니었다.

이것도 일종의 직업병이라고, 스펜서 공작가의 안위를 책임지는 기사단장이다보니 무엇이든 일단 의심하고 보는 버릇이 붙은 탓이었다.

하지만 제법 예리한 콘웰 경의 물음에 코델리아는 순간 움찔했고, 그 당황한 모습에 다리안 왕녀와 기사들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째서일까.

왜 코델리아 양은 어딜 다녀왔냐는 물음에 저리 당황한 것일까.

그리고 바로 그 순간이었다.

“잠시··· 둘만의 시간을 갖고 싶었습니다. 오직 둘만의.”

유더의 말에 다리안 왕녀와 기사들은 눈을 깜박였고, 이내 하나 둘 이해했다는 얼굴이 되었다.

“어, 어머나.”

특히나 다리안 왕녀는 무슨 망상을 했는지 뺨까지 붉히며 몸을 비비 꼬아댔다.

“흠흠, 한창 때의 두 사람이니 그럴 수도 있지요.”

훈트가 눈치 없이 말했고, 기사들은 저마다 헛기침을 토하며 고개들을 끄덕였다.

‘뭐야, 쟤들 왜 저래. 뭘 상상하는데 저래?’

코델리아의 물음에 유더는 눈빛으로 답하는 대신 콘웰 경을 보았다. 그가 여전히 코델리아의 귀걸이에 시선을 두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새삼스럽지만 다시 한 번 고백을 했습니다.”

“고, 고백이요?”

다리안 왕녀가 눈을 반짝이며 묻자 유더는 고개를 끄덕였고, 코델리아는 황당함을 감추기 위해 얼른 고개를 숙였는데, 다른 사람들 눈에는 마치 부끄러워하는 것처럼 보였다.

“네, 고백. 코델리아 양에 대한 사랑을 다시 한 번 고백하고··· 그 증표로 귀걸이를 선물했답니다.”

유더가 능청스러운 연기에 와-하고 감탄을 토한 다리안 왕녀는 코델리아의 귀를 보았고, 기사들 역시 그러했다.

반짝반짝 빛나는, 붉은 보석을 감싼 작고 예쁜 금빛 귀걸이.

“어머나, 너무 멋진 이야기에요.”

이미 약혼한 사이이지만 다시 한 번 서로의 사랑을 고백하며 사랑의 증표를 주고 받는다.

그야말로 사랑 이야기에나 나올 법한 광경이 아닌가.

다리안 왕녀는 금방이라도 살살 녹아내릴 것 같은 얼굴로 연신 감탄을 토했고, 기사들 역시 너무나 귀여운 것을 본다는 듯 미소들을 머금었다.

콘웰 경 역시 말이다.

‘음, 좋아. 문제해결.’

유더가 코델리아에게 어떠냐는 듯 윙크를 보내자 코델리아보다 먼저 다리안 왕녀가 입을 열었다.

“저기, 언니. 그래서 언니는요? 언니는 어떻게 하셨어요?”

유더의 고백에 대한 대답.

모두의 시선이 다시 코델리아에게 집중되었고, 코델리아는 타인이 보기에는 수줍은- 본인이 느끼기에는 부끄러워 죽을 것 같은 얼굴로 답했다.

“무, 물론 받아들였답니다.”

“아우, 너무 부러워요.”

다리안 왕녀는 양 뺨을 감싼 채 몸을 부르르 떨었고, 기사들은 다들 훈훈한 미소를 머금었다.

누구 하나 말은 하고 있지 않았지만, 다들 축복의 말 비슷할 걸 떠올리는 얼굴들이었다.

“흠흠, 그럼 이만 올라가 봐도 될까요?”

“네? 네, 물론이죠. 어서 올라가세요.”

“그럼······.”

유더는 코델리아를 향해 돌아섰고, 코델리아는 반사적으로 유더에게 손을 내밀었다.

이제는 너무나 익숙해진 유더의 에스코트였으니 말이다.

“먼저 올라가보겠습니다. 안녕히 주무시기를.”

“안녕히 주무세요, 왕녀님.”

코델리아가 예를 표하자 유더는 그대로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고, 다리안 왕녀와 기사들 일동은 마치 신혼여행을 떠나는 신혼부부를 배웅하듯, 흐뭇하며 야릇하며 훈훈한 표정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두 사람이 어떤 눈빛대화를 나누고 있는지는 상상도 못한 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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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아침.

유더와 코델리아는 왕도- 정확히는 스펜서 공작가로 향하는 다리안 왕녀 일행과 함께 마을을 나섰다.

이미 중앙에 들어선 상황인데다 기사단까지 함께하고 있으니 악마의 손이 도중에 공격해올 가능성은 거의 없다시피 했다.

‘아마 싸움이 시작되는 것은 왕도에 도착한 이후겠지.’

어차피 이번 왕도 사건의 배후에는 악마의 손이 있었으니까.

악마의 눈에 이어 이번에는 악마의 손과 한바탕 붙을 차례였다.

‘왕도로.’

다프네 왕녀와 디온 왕자를 비롯한 왕족들을 구하기 위하여.

덜컹거리는 마차에 앉아 맞은편에 자리한 코델리아와 다리안 왕녀를 가만히 바라보던 유더는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겨울의 차가운 바람 사이로 가냘픈 햇살이 내리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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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54장 - 아케이만의 비보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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