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55장 - 왕도입성 >
제55장 - 왕도입성
마차의 동력원은 살아있는 동물인 말이었다.
때문에 마차는 24시간 내내 달릴 수 없었다. 마부가 지치는 건 둘째 치고 말들부터가 24시간 내내 달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 지구력도 인간이 더 좋고.”
유더의 말에 마차 밖에 앉아 쉬고 있던 코델리아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진짜로? 말도 안 돼 거짓말. 어딜 또 속이려고. 안속아. 저번에도 황새는 알이 아니라 새끼를 낳는다고 거짓말 했잖아.”
“아니, 그건 속는 쪽이 잘못일 정도의······ 아닙니다. 속인 제가 잘못이죠.”
“흥.”
“아무튼 그건 그거고, 이건 진짜야. 인간이 다른 건 몰라도 지구력 하나는 정말 굉장하거든.”
유더가 제법 진지하게 말하자 코델리아는 미심쩍다는 듯 눈썹을 찌푸리며 물었다.
“진짜루?”
“이번엔 진짜로.”
믿기 힘든 이야기였지만, 사실이었다.
순간적인 최고 속도야 당연히 말이 인간보다 우월했지만, 각자가 낼 수 있는 속도를 유지하며 달리는 능력은 인간 쪽이 훨씬 더 우월했다.
때문에 일정 거리 이상이 되면 말을 타고 달리는 것보다 오히려 그냥 사람이 달리는 쪽이 좀 더 빠를 수도 있었다.
“뭔가 점점 더 믿기가 어려운 이야기인데?”
“하지만 사실인걸.”
“그럼 뭐 하러 말 타고 다니는 건데. 내가 본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급보 전할 때 늘 말 타고 다녔단 말이야. 음, 맞아. 정말 그랬어. 학교에서도 파발마에 대해 배운 적 있고.”
코델리아가 이번에는 어림도 없다는 듯 손가락을 꼽으며 기억을 하나하나 더듬었다.
분명히 사극에서도, 교과서에서도 급보를 전하는 인물은 늘 말을 타고 있었다.
“그거야 단순하면서도 당연한 이유 때문이지.”
“어떤 이유?”
“사람이 직접 뛰면 힘들잖아.”
말을 타고 달리면 말이 힘들지만, 직접 뛰면 사람이 힘들다.
유더의 말마따나 단순하면서도 당연한 이유였다.
“그, 그래도 급할 때면 힘든 건 좀 접어두고 빨리 전하는 게 먼저잖아.”
“그렇지. 그래서 더더욱 말을 타야하고.”
“뭐? 아까는 사람이 더 빠르다며.”
“말은 중간에 바꿔 탈 수가 있잖아.”
“아?”
코델리아는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이내 저도 모르게 짝하고 손뼉을 쳤다.
“그러네?”
말은 중간에 갈아탈 수가 있다.
그러니 급히 전할 소식이 있다면 말을 계속 갈아타는 것으로 속도를 유지하면 된다.
말이 완전히 지쳐 속도가 떨어지기 전에 새 말을 타면 되니 말이다.
“잠깐, 그럼 마찬가지로 사람도 바톤 터치 하면 되는 거 아냐? 소식을 전하는 일이라면 서신이라든가 그런 걸로.”
“그것도 말은 되는데, 최고 속도는 말이 더 빠르잖아? 지치기 전에 계속해서 말을 갈아탄다는 관점으로 접근하면 사람보다야 말이 더 빠르겠지?”
“으으음.”
맞는 말이었다.
그리고 이런 코델리아의 반응에 유더는 빙긋이 미소를 지었다.
처음에는 말이 더 빠르다고 주장하던 코델리아가 지금 와서는 사람이 더 빠른데 왜 말을 타야 하지?-라는 쪽으로 생각의 방향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설득하는 말하기의 기본이지.’
상대의 생각을 자연스럽게 이쪽으로 유도한다.
부정하던 것을 저도 모르게 긍정하게 만든다.
“그리고 사람 자체가 중요할 때도 있잖아? 그러니 결국 말을 타는 게 더 낫다는 거지.”
“으으음··· 그렇구나.”
코델리아가 고개를 끄덕이자 유더는 다시 빙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아무튼 그래서 말을 타고 여행할 때는 적절히 쉬어주는 게 필요해. 생각보다 빨리 지치니까.”
“흠, 알 것 같아.”
마차 여행이라면 이미 몇 번이나 해보았으니까.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문득 떠오른 생각에 까르르 웃은 코델리아가 유더를 보며 말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유더는 하루종일도 달릴 수 있으니까 최고의 탈것이군요?”
말보다 빠른데 지치지도 않으니까.
당장 플렉스 산을 오갈 때도 코델리아 자신을 업은 채 잠시도 쉬지 않고 달린 유더였다.
“음, 굉장해. 마음에 들어. 우리 집 말 유더.”
코델리아가 칭찬한다는 듯 머리를 쓰다듬자 유더는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저기 그런데 말이야, 내가 아직 도폭선 안 줬거든?”
“우리 말님. 아니, 유더 공자님. 피곤하시죠? 무릎베개 해드릴까요? 코델리아는 언제든 준비되어 있어요.”
자기 무릎을 팡팡 두드리며 말하는 코델리아의 모습에 실소한 유더는 도폭선을 만들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을 하였다.
“뭔가 나쁜 생각하는 얼굴이야.”
“그럴 리가. 좀 더 좋은 도폭선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 걸.”
“아주 좋은 생각이에요. 지금보다 조금 더 가벼우면 좋겠어요. 더 잘 휘어졌으면 하고. 지금은 솔직히 좀 전선 같거든.”
도폭선 이야기가 나오자 처음에는 장난스럽게 입을 연 코델리아였지만 어느새 무척이나 진지해졌다.
단순히 폭발이 좋기 때문이 아니라 제법 실용성 있는, 강력한 무기인 도폭선을 보다 잘 활용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럴 때 보면 진짜 전사 같단 말이지.’
코델리아가 마법사가 아닌 전사 캐릭터였다면 어땠을까.
‘어쩌면 지금보다 더 강해졌을지도.’
사실 지금도 체술 쪽으로 제법 적성이 좋은 편이었다. 바이엘 가의 체술을 습득하는 속도 역시 무척 빨랐고 말이다.
“그리고 이왕 만들 거 아예 다이너마이트 같은 것도······ C4라든가······.”
“잠깐, 잠깐. 다이너마이트? C4?”
“어, 역시 그건 좀 무리 일려나?”
“아니, 만들 수 있긴 있는데.”
“뭐? 진짜로?”
코델리아의 눈에 순간 광기가- 아니, 빛이 어렸고, 흠칫한 유더는 어깨를 움츠리며 수습하듯 말을 뱉었다.
“아니, 아니. 어디까지나 이론상 가능하다는 거고. 시간과 기타 등등이······.”
“갖춰지면 진짜 만들 수 있다는 거죠? 네?”
“아··· 마도?”
사실 이미 도폭선을 만든 상황이었다.
C4까지는 무리겠지만, 다이너마이트 정도라면 어찌어찌 만드는 것이 가능했다.
“와! 우리 집 유더 최고! 진짜 최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코델리아가 꺅꺅 거리며 유더를 끌어안자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야, 야. 코델리아. 야!”
“아! 너무 좋아! 너무 좋아 우리 유더!”
하지만 주변의 시선 따위 보이지 않는지 코델리아는 유더의 머리를 끌어안으며 좋아했고, 유더는 당혹과 기쁨 속에서 일단 입을 다물었다.
‘죄송합니다, 모두.’
기사들의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지만 어쩔 수 없었으니까.
하지만 유더의 행복한 시간도 그리 길진 않았다. 도저히 무시할 수 없는 시선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코델리아! 코델리아!”
“응? 어? 아아. 응.”
겨우 정신을 차린 코델리아는 주변에서 들려오는 헛기침 소리에 뺨을 발갛게 물들이더니 어색하게 웃으며 마차로 향했고, 유더는 자리에서 일어나 무시할 수 없는 시선을- 자신에게 다가오는 콘웰 경을 마주하였다.
“유더 바이엘. 잠시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겠나?”
“물론입니다, 콘웰 경.”
유더가 바로 응하자 콘웰 경은 눈짓으로 저만치 떨어진 곳을 가리켰다.
“잠시 걷도록 하지.”
“예.”
항시 다리안 왕녀 곁을 떠나지 않는 콘웰 경이었지만, 지금은 주변에 기사들이 많기 때문인지 제법 떨어진 곳으로 유더를 이끌었다.
그렇게 몇 분.
두 사람의 대화가 들리지 않을 곳까지 나아가자 콘웰 경이 발걸음을 멈추었다.
“유더 바이엘.”
“예, 콘웰 경.”
“새삼스럽지만··· 감사를 표한다.”
“감사··· 말씀입니까?”
“그대와 코델리아 양 덕분에 칠색초를 구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다리안 왕녀가 알고 있던 것은 아케이만의 던전 위치와 가장 깊은 곳에 칠색초가 자생하고 있다는 정보뿐이었다.
“만약 그대와 코델리아 양이 없었다면··· 칠색초를 구하지 못 했겠지. 설사 구했다 하더라도 큰 피해를 입었을 터이고.”
정확한 던전의 구조와 설치된 함정의 종류를 미리 안 덕분에 수월하게 나아갈 수 있었다.
아무리 다리안 왕녀라 해도 함정의 종류까지는 알 수 없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키메라.
기본적으로 전사인 콘웰 경이었지만 기사단장인만큼 어느 정도 마법에 대한 지식 역시 가지고 있었다.
키메라가 거하던 마지막 방에는 여러 보조 마법진들이 그려져 있었다.
유더의 말마따나 그곳에서 키메라와 싸웠다면 크게 낭패를 보았을 터였다.
“그렇기에 지금이라도 다시 한 번 감사를 표한다.”
여전히 딱딱한 말투였지만 콘웰 경의 두 눈에는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친근함이 어려 있었다.
아마 지금까지 보인 까칠함보다는 이쪽이 진심에 가까운 모양이었다.
‘하긴, 어쩔 수 없었겠지.’
다른 누구도 아닌 왕족을 호위하던 중이었으니까.
더욱이 다리안 왕녀는 어린 시절부터 궁 밖에서 자란 탓인지, 아니면 천성 탓인지 왕족 치고는 지나칠 정도로 행동력이 좋았다.
아무리 외가의 기사들과 함께라지만 어린 소녀가 시녀 하나 대동하지 않은 채 여행에 나설 정도로 말이다.
‘호위 임무가 본래 좀 빡세기도 하고.’
호위와 관련된 싫은 기억이라면 유더 자신에게도 몇 개나 있었으니까.
때문에 유더는 콘웰 경의 노고와 그간의 까칠함 모두를 이해했다.
“세일룬 왕국의 귀족으로서 의무를 행한 것뿐입니다.”
유더가 정중히 예를 표하며 말하자 콘웰 경이 다시 작게나마 미소를 지었다.
“참으로 기사의 귀감이로다. 과연 명문인 바이엘 가의 적자답구나.”
검장 바이엘 백작의 아들.
사실 티를 내지 않아서 그렇지 바이엘 백작가에 꽤 큰 호감을 가지고 있는 콘웰 경이었다.
이러나저러나 오랜 세월 북부를 지켜온 검의 명가가 바로 바이엘 백작가였으니 말이다.
“왕녀님께서도 말씀하셨지만 스펜서 공작가에 방문해주었으면 한다. 공작님께서도 그대와 코델리아 양을 환대해 주실 거다.”
“예, 왕도에 들른 뒤에 꼭 방문하도록 하겠습니다.”
왕국 내에서도 손에 꼽는 대귀족인 만큼 왕도 내에도 저택을 가지고 있는 스펜서 공작이었지만, 와병중인 터라 평소에는 왕도 밖에 있는 본가에서 머물고 있었다.
때문에 유더와 코델리아는 왕도 초입에서 다리안 왕녀 일행과 헤어지기로 이미 이야기가 된 상태였다.
‘이제야 본심을 드러낸 것도 그래서겠지.’
이제 곧 헤어져야 했으니까.
더 이상 함께 여행할 사이가 아니니 순수하게 공작가의 은인으로서 유더를 대우하는 것일 터였다.
“그리고··· 룬에게도 그대의 이야기를 할까 한다.”
“제일검 님··· 말씀입니까?”
유더의 되물음에 콘웰 경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대가 직접 싸우는 모습은 보지 못 하였지만··· 내게도 눈이라는 것이 있으니까. 이렇게 마주하고만 있어도 그대의 무위가 범상치 않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다.”
사실 콘웰이 계속해서 유더에게 까칠한 태도를 보인 이유 중에 하나였다.
‘너무 강해.’
스스로 말했듯 정확한 무위까지는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한 가지 사실만은 분명했다.
유더가 만약 적으로 돌아선다면, 유더를 막을 수 있는 것은 일행 중에 오직 콘웰 자신 하나뿐이다.
다른 기사들로는 유더를 막을 수 없다.
하지만 이제는 헤어지는 판국이었다.
때문에 콘웰 경은 유더의 강함을 순수하게 바라볼 수 있었다.
“룬이 그러더군. 제국에서 엄청난 녀석들을 보았다고.”
무시무시한 재능을 가진 아이들.
십대 후반, 많아봐야 이십대 초반임에도 불구하고 이미 경지에 오른, 앞으로 몇 년 후면 십검호에 근접하거나 아예 십검호 수준이 될지도 모를 검의 괴물들.
“룬은 그 괴물들이 자란 후의 미래··· 정말로 괴물이 되어버린 미래를 걱정했다.”
세일룬 왕국은 대국이었다.
제국은 대륙에서 가장 거대한 영토를 가진 나라였다.
자연 두 나라 사이의 전쟁은 수만 명이 우습게 동원되는, 엄청난 규모의 싸움이 되기 십상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력한 기사는 막강한 존재감을 발휘하는 법이었다.
‘플레이 아데스에는 초인이 존재하니까.’
십검호는 사령관들이 아니었다.
전장의 전술병기였다.
때문에 타국의 전술병기를 제압할 수 있는 전술병기의 존재가 중요했다.
‘막시밀리언과 레온.’
아마도 빛의 검성 룬 프라우드가 경계한 제국의 아이들.
둘 모두 플레이어블 캐릭터였고, 그중 막시밀리언은 진주인공답게 사기적인 재능을 타고난 이였다.
“물론 우리 세일룬 왕국에도 많은 유망주들이 있다. 흐레스벨그 백작가의 후계자 역시 뛰어난 청년이라 들었고. 하지만··· 그래도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이니까. 룬의 이야기를 듣고 나 또한 불안하던 차인데 그대를 보니 마음이 놓이는군.”
제국에 막시밀리언이 있다면 왕국에는 유더가 있다.
원색적인 비교에 유더조차도 얼굴이 살짝 붉어질 지경이었지만 콘웰 경은 흐뭇한 미소를 머금었다.
“룬 또한 자네의 이야기를 들으면 관심을 가질 거야. 어쩌면 아예 만나러 올 수도 있겠지.”
유더로서는 바라마지 않는 이야기였다.
제일검- 빛의 검성 룬 프라우드와 어떻게든 접점을 가져야 하는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좋게 볼 수밖에.”
뛰어난 재능을 타고난 청년이 참으로 올곧기까지 하였으니까.
“공작가에서 다시 만날 날을 기대하겠다.”
“예, 저도 그 날을 기대하겠습니다.”
유더가 다시 예를 표하자 흡족한 얼굴이 된 콘웰 경은 유더의 어깨까지 몇 번 두드린 가볍게 돌아섰다.
“그만 가지.”
“예, 콘웰 경.”
호위 임무로 돌아가기 때문인지 금방 다시 딱딱한 얼굴이 된 콘웰 경이었지만, 속내를 들어서인지 이전과는 다르게 보이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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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라버니! 언니! 공작가에서 기다릴게요! 꼭 오셔야 해요! 꼭!”
“네, 왕녀님. 꼭 방문하겠습니다.”
“금방 갈게요.”
이미 몇 번이나 작별의 말을 나누었지만 그래도 아쉽다는 듯 다리안 왕녀는 마차 창밖으로 얼굴을 내민 채 계속해서 손을 흔들었다.
물론 콘웰 경은 위험하다며 그런 다리안 왕녀를 말리느라 진땀을 뺏고 말이다.
“고생하네.”
“응? 콘웰 경?”
“어, 콘웰 경.”
유더가 작게 웃자 코델리아는 고개를 한 번 갸웃하더니 이내 유더의 팔을 끌어안으며 물었다.
“유더야, 유더야.”
“네, 공주님.”
“아까 둘이서 무슨 이야기 했어?”
“좋은 이야기했어.”
“어머나, 그랬구나. 도폭선 이야기 했구나?”
“···룬 프라우드 이야기를 했어.”
“빛의 검성?”
“어, 제일검.”
유더가 짤막하게나마 콘웰 경과 있었던 이야기를 설명하자 코델리아가 짝하고 손뼉을 쳤다.
“잘 됐네! 하늘이 막 도와주는 기분인걸?”
그렇게 까칠하게 굴던 콘웰 경이 속으로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을 줄이야.
더욱이 룬 프라우드와 연결까지 해준다니 그야말로 콘웰 경 만만세였다.
“이왕 말 나온 김에 정리해보자.”
“왕도에서 할 일 말이지?”
코델리아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인 유더는 한 차례 숨을 골랐다.
세일룬 왕국을 무너트린 두 사건 가운데 하나인 왕족 몰살 사건.
“진행 자체는 단순해. 세일룬 왕가에 이어져 내려오는 신성한 피를 끊는 것이 적들의 목적이야. 전부 다 끊어야 하기 때문에 놈들은 왕족들이 모두 모이는 건국 300주년 기념회를 결행일로 잡고 있고.”
“배후는 악마의 손.”
“바라는 것은 신성한 피의 단절과 그로 말미암은 왕도의 수호진을 약화시키는 것.”
세일룬 왕국의 왕도 깊은 곳에는 악마의 힘을 억누르는 강대한 수호진이 펼쳐져 있었다.
왕도뿐만 아니라 그 주변 일대를 지키는 강대한 수호진의 존재 때문에 악마 추종자들은 중앙에 한해서는 악마 소환은 물론이고 마인 제조 조차 제대로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놈들이 진짜 바라는 것은 수호진의 파괴만이 아니야.”
“수호진의 주축을 이루고 있는 성검 클라우솔라스.”
태양신 솔라리가 사용하던 천상의 무구.
“원작에서는 악마 추종자들에게 성검을 빼앗기고 말아.”
“빼앗긴 성검을 되찾기 위한 기나긴 스토리가 펼쳐지고 말이야.”
하지만 만약 처음부터 뺏기지 않는다면.
아니, 애당초 수호진 자체를 놈들이 어찌하지 못 하게 한다면.
“건국 기념 무도회가 열리기 전까지는 약 한 달 남짓의 시간이 있어.”
“그 시간 동안 사전 준비를 한다 이거지?”
“맞아, 놈들에 맞설 우리 편을 만들고, 무엇보다 왕족이 우릴 신뢰하게 만들어야 해.”
비상시에 자신들의 말을 듣도록.
그들을 지켜줄 수 있을 정도로 가까운 곳에 접근할 수 있도록.
“이번 왕도에서의 전투는 거물들이 많이 나올 거야.”
“당장 우리 아버지랑 아버님도 나오시니까.”
체이스 백작과 바이엘 백작.
두 사람만이 아니었다.
호국공을 비롯한 다른 십검호들과 근위마법병단의 단장들 등등 수많은 네임드들이 출연하는 초호화 이벤트였다.
그렇기에 야생의 땅에서의 싸움과는 조금 그 형태가 달랐다.
마치 장기를 두듯 저쪽의 패를 이쪽의 패로 막는 전술이 필요했다.
“또, 또 사악한 표정 짓는다.”
“아니거든? 재밌겠다는 표정이거든?”
유더의 반론에 코델리아는 끌끌끌 혀를 차더니 자연스럽게 유더의 등에 올라타듯 업혔다.
“아무튼 말님, 어서 빨리 가죠. 왕도가 우릴 기다리고 있어요.”
“마차 안구하고?”
“우리 말님이 더 빠르잖아?”
“그렇긴 하지.”
고개를 끄덕인 유더는 코델리아를 고쳐 업은 뒤 인적이 드문 숲을 향해 몸을 날렸다. 아무리 그래도 약혼녀를 업고 달리는 남자로 소문이 날 수는 없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한 시간 남짓 뒤.
왕도- 그 중에서도 남문에 도착한 유더와 코델리아는 반가운 얼굴을 마주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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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또, 또 가출했지! 또!”
“아흐아! 어, 어니 그런 게 아니라아!”
< 제55장 - 왕도입성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