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55장 - 왕도입성 #2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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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또, 또 가출했지! 또!”
“아흐아! 어, 어니 그런 게 아니라아!”
아델리아에게 사정없이 볼 살을 붙잡힌 코델리아가 울상이 되어 말했지만 어림없는 일이었다.
“아니긴 뭐가 아니야! 주기적으로 연락하라고 했는데 딱 한 번 밖에 안 했잖아! 그래놓고는 왕도 다 와서야 연락을 해?”
“아프하! 아프하! 지짜 아프하!”
“잘 됐네! 아프라고 하는 거니까! 더 아파라! 더 아파라!”
아델리아가 당긴 볼 살을 아예 비틀기까지 하자 코델리아의 눈에서 기어코 눈물이 새어나왔고, 유더는 생각했다.
‘역시 자매 맞구나.’
하는 짓이 똑같은 걸 보니.
“도아저! 도아저!”
“뭘 도와줘? 빨리 잘못했다고 안 해?”
“자모해써! 자모해써!”
아델리아는 도끼눈을 뜬 채 볼 살을 계속 당겼고, 코델리아는 울먹였으며, 유더는 이번에도 생각했다.
‘부럽다.’
코델리아 볼 살 진짜 말랑말랑한데. 나도 당기고 싶다.
쭉쭉 당길 때의 그 오묘한 맛.
마구 힐링 되는 것 같은 기분.
“발랑 까져서 맨날 가출이나 하고!”
“하윽, 흑. 자모해써요.”
“나도 당기고 싶다.”
저도 모르게 속내를 입 밖에 낸 유더는 흠칫했지만 다행히 들은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눈빛만 봐도 통하는 코델리아가 있었지만, 코델리아는 지금 울기도 바빴으니까.
아무튼 흠칫한 덕분에 정신줄을 챙긴 유더는 작게 헛기침을 터트렸다.
아델리아의 관심을 끌기 위해 말이다.
‘어째 나도 불구덩이에 뛰어드는 기분이지만.’
그래도 코델리아는 구해야 하지 않겠는가.
“흠흠, 흠흠흠.”
이쪽 좀 봐주세요. 코델리아는 풀어주시고요.
열심히 헛기침을 하자 아델리아가 코델리아의 볼 살을 꽉 붙잡은 채 고개만 들어 유더를 보았고, 유더는 최대한 침착한 어조로 말했다.
“그··· 형수님.”
고르고 고른 단어.
그 효과는 굉장했다.
코델리아에 이어 유더까지 박살내겠다는 의지가 가득 담겨 있던 아델리아의 두 눈에 부끄러움과 수줍음과 약간의 애정이 어렸으니 말이다.
‘먹혔다! 도와줘!’
코델리아의 간절한 눈빛을 캐치한 유더는 박차를 가하듯 말을 이었다.
“지켜보는 이들이 많습니다. 일단 다른 곳으로 가서······.”
“리프렉션.”
아델리아가 말한 순간 강대한 마력이 주변 일대를 바꾸어놓았다.
‘빛의 굴절 마법.’
이름 그대로 주변 일대의 빛을 굴절시켜 비가시 구역을 만들어내는 강력한 마법이었다.
“이럼 되겠지?”
형수님이란 단어에 순간 허를 찔리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정신줄을 놓을 정도는 아니었다.
물론 왕도 남문에서 비살상용이라고는 하나 강력한 마법을 사용한 것부터 정상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어··· 그럼 계속하시죠.”
“야!”
계속하긴 뭘 계속해! 안 도와줄 거야?!
따지고 보면 너도 공범이잖아!
-라는 뜻이 담긴 외마디 외침에 유더는 재차 입을 열었고, 아델리아는 무슨 말을 할지 한 번 들어나 보겠다는 얼굴로 유더의 말을 기다렸다.
“일단, 가출이 아닙니다. 저희가 연락을 하지 못 한 것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뭔데? 또 성십자 수호단 일이야?”
“예.”
“진짜로?”
“정말입니다.”
“무슨 일이었는데?”
“그것이······.”
유더는 아델리아와 조금 더 거리를 좁힌 뒤 적당히 꾸며낸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악마의 손에게 습격 받은 일을 이야기하면 활동이 제한될 테니까.’
아마 흐레스벨그 백작이 그러했던 것처럼 보호하기 위해서라며 어디 한 곳에 가두어둘 가능성이 높았다.
때문에 유더는 성십자 수호단과 함께 고대의 신전을 탐사하느라 생각 이상으로 시간을 쓰고 말았다는 식의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고대의 신전이면 누구의?”
“생명의 여신 에어리스의 신전이었습니다. 그렇지, 코델리아?”
“응응, 마자마자.”
여전히 볼을 붙잡힌 터라 발음이 샜지만 코델리아는 열심히 답했고, 아델리아는 눈을 가늘게 뜨는가 싶더니 이내 코델리아를 놓아주었다.
“흐아!”
겨우 자유를 되찾은 코델리아는 발갛게 달아오른 뺨을 감싸는가 싶더니 그대로 쪼르르 달려가 유더의 등 뒤에 숨어버렸다.
“어쭈? 숨어?”
“포, 폭력반대. 폭력반대.”
코델리아가 소심하게 말하자 아델리아는 코웃음을 치더니 한 걸음을 성큼 내디뎠고, 흠칫한 코델리아는 얼른 유더의 등 뒤에 머리를 숨겼다.
‘귀여워 죽겠네.’
마음 같아서는 귀여운 자매 다툼을 좀 더 지켜보고 싶은 유더였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었다.
“저, 형수님.”
“미리 말하지만 너도 잘못한 거거든?”
“아니, 그러니까 저희는 가출한 것이 아니라······.”
“그래도 연락은 했어야지. 아버지랑 아버님이 얼마나 걱정하셨는지 알아? 게일 공자님도 많이 걱정하셨어. 물론 나도 말이야.”
유더와 코델리아는 분명 강했다.
야생의 땅에서의 활약을 직접 지켜본 아델리아는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 하여 걱정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유더와 코델리아보다 더 강한 이들이 이 세상에는 얼마든지 있었으니 말이다.
‘아니, 그런 문제가 아니야.’
강함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설사 세계 최강의 존재라 한들 갑자기 연락이 끊기면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무슨 일이 생긴 것은 아닐까. 어디가 아픈 것은 아닐까.
어째서 연락이 끊긴 것일까.
‘그런 게 가족이니까.’
아델리아는 코델리아의 친언니였다. 유더 자신에게는 형수님이었고 말이다.
“죄송합니다.”
정론과 진심에 변명 따위는 어울리지 않았다.
유더는 고개를 숙이며 용서를 빌었고, 코델리아 역시 꾸벅 고개를 숙였다.
“잘못했어.”
연락 안 해서 미안.
나란히 고개를 숙인 유더와 코델리아의 모습에 아델리아는 한숨을 한 번 내쉬더니 조금은 진정된 얼굴로 다시 물었다.
“두 사람 다 어디 다친 곳은 없고?”
“없습니다.”
“안 다쳤어, 둘 다 건강해. 언니도 잘 지냈지?”
“나야, 뭐. 늘 건강하지.”
어깨를 으쓱이며 답한 아델리아는 작게나마 미소를 지었다.
이러나저러나 다시 보니 반가운 두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마차나 말은 없어? 설마 왕도까지 걸어서 온 거야?”
“어? 어··· 그게······.”
아델리아의 물음에 말끝을 살짝 흐린 코델리아는 말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는 얼굴이 되더니 이내 주저주저하며 입술을 열었다.
“유더 타고 왔어.”
“뭐?”
“아니이··· 그··· 유더가 나를 업고, 유더는 달리고?”
어째 설명하면 할수록 이상해지는 기분이었지만 사실은 사실이었으니까.
‘더 이상 거짓말 하기도 싫구.’
하지만 진심이 언제나 통하는 것은 아니었다.
아델리아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얼굴을 찡그리더니 턱짓을 하며 말했다.
“한 번 해봐.”
“응?”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지 한 번 보여줘 봐.”
어째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격렬하게 하기 싫다는 생각이 든 코델리아였지만, 그렇다고 하지 않을 수도 없었다.
“으음, 이렇게?”
그리고는 폴짝 뛰어 유더의 등에 업혔고, 유더는 반사적으로 그런 코델리아를 고쳐 업었다.
대체 몇 번을 업힌 건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자연스러운 연속 동작.
아델리아는 멍하니 그런 둘을 바라보았고, 이내 노성을 터트렸다.
“야! 코델리아! 야!”
업혀 왔다더니 진짜로 업혀서 와? 그렇게 찰싹 붙어서? 파렴치하게?!
“히익!”
아델리아가 도깨비 같은 얼굴로 성큼성큼 다가오자 겁에 질린 코델리아는 일단 양 뺨부터 두 손으로 감싸고 보았지만 어림없는 일이었다. 얼굴에는 볼 살 말고도 붙잡을 곳이 참 많았으니 말이다.
“이게! 이게!”
“악! 아파! 아파!”
코델리아가 울든 말든 귀를 아프게 잡아당긴 아델리아는 계속해서 소리쳤다.
“아주 발랑 까져서는! 어? 어디 시집도 안 간 처녀가!”
“야, 약혼자잖아! 약혼한 사이잖아!”
“약혼했지 결혼했어? 언니가 선 넘지 말랬지? 응?”
“아흑! 아파! 아프다구!”
“아프라고 당기는 거야!”
맞는 말이었다. 애당초 아프라고 당기는 것이었으니 아파야 하지 않겠는가.
“유더! 도와줘!”
“유더 너도 이리와! 이리 와서 귀 내놔! 게일 공자님 동생이니까 내 동생이기도 해!”
아델리아가 손을 쭉 뻗자 반사적으로 몸을 뒤로 뺀 유더는 고민했다.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해야 한단 말인가.
‘선은 아직 안 넘었다고 해야 하나?’
물론 아델리아가 말하는 ‘선’이 어느 정도인지 조차 알 수 없었지만 무릎베개랑 시도 때도 없이 끌어안고 업고 한 것 말고는 딱히 한 것도 없었으니까.
‘너, 넘은 건가?’
아델리아가 말한 선은 대체 어느 정도인 것일까.
유더는 식은땀을 흘렸고, 아델리아는 얼른 오라는 듯 손가락을 까딱였으며, 코델리아는 발악하듯 외쳤다.
“언니도! 언니도 게일 아주버님이랑! 읍읍!”
“이, 이게 못 하는 소리가 없어!”
“으읍! 읍읍!”
귀를 당기던 손으로 얼른 입을 틀어막았지만 코델리아는 계속해서 무어라 소리쳤다.
“으브읍! 읍!”
“야, 약혼만 한 건 똑같지만 나랑 게일 공자는 성인이거든? 너흰 아직 애들이고!”
“으으읍!”
그런 게 어디 있어!
언니 완전 내로남불!
- 정도의 말이 아닐까 생각한 유더는 다시 한 번 중재에 나섰다.
“저, 형수님.”
“이익! 왜!”
“그··· 빛은 굴절시켰지만 소리는 들리지 않을까요?”
유더의 지적에 아델리아는 흠칫하더니 주변을 둘러보았고, 입술을 깨물었다.
딱히 보이는 것은 없었지만 웅성웅성 거리는 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으윽.”
얼굴은 물론이고 목까지 빨개진 아델리아는 숨죽인 목소리로 빠르게 말했다.
“조, 조용히 해. 알았지?”
“으븝.”
코델리아가 긍정의 뜻으로 고개를 끄덕이자 아델리아는 천천히 손을 떼었다.
“후, 좋아. 일단 이동해서 마저 이야기하자. 너희 때문에 오늘 반차도 냈으니까.”
“반차?”
“반쪽짜리 휴가. 한나절만 쉬는 거야.”
아델리아의 설명에 코델리아는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쉬면 그냥 쉬어야지 반만 쉬는 건 또 뭐란 말인가.
“언니, 근위마법병단은 블랙기업이었던 거야?”
“애가 뭐라는 거야. 이상한 소리하지 말고 빨리 몸단장이나 다시 좀 해. 머리 다 헝클어졌다.”
그렇게 말한 아델리아는 일단 자기 옷매무새부터 다듬었다.
‘그러고 보니 근위마법병단의 정복이구나.’
드레스 차림이나 승마복 차림이 익숙한 아델리아였는데, 지금은 근위마법병단의 파란색 제복을 입고 있었다.
파란 베레모와 군복을 연상시키는 상하의.
판타지였지만 역시 현실이라 그런지 치마가 아닌 바지 차림에, 검정색 전투화를 신고 있었다.
‘머리도 포니테일이네.’
이전에 봤을 때는 그냥 풀고 다녔는데.
‘코델리아도 포니테일 하면 잘 어울리겠지?’
나중에 한 번 해달라고 할까?
유더가 쓸데없는 망상을 하는 동안 옷매무새와 헝클어진 머리칼을 정돈한 코델리아는 아델리아에게 눈짓을 보냈다.
“다 했어?”
“응.”
“다 하긴 뭘 다해. 아직도 머리가 엉망인데. 머리끈 줄 테니까 그냥 나처럼 묶어.”
“으응.”
얌전히 머리끈을 받아든 코델리아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머리를 한 데 모아 묶었고, 유더는 그런 코델리아의 모습을 기억의 궁전 속에 오롯이 새겨 넣었다.
‘형수님, 감사합니다.’
마음 속 감사를 들은 것인지 돌연 고개를 갸웃한 아델리아는 새삼 유더에게 다가섰다.
“그런데 동생.”
“예, 형수님.”
“갑자기 키가··· 많이 컸다?”
본래 170 중반 정도인 유더였는데, 지금은 훌쩍 자라 180 초반은 될 것 같았다.
“아, 그게······ 수련의 성과입니다.”
“신기하네.”
키 크는 무공도 다 있고.
이래저래 관심이 생긴 아델리아였지만 깊이 파고들지는 않았다. 일단은 이동이 급선무였기 때문이다.
“다 했으면 빨리 가자.”
“으응, 잠깐만.”
머리를 다 묶은 코델리아는 바로 아델리아를 따라 가는 대신 유더를 돌아보았다.
‘어울려?’
옆에 아델리아가 있으니 소리내어 묻지는 못 했지만 눈빛 대화라면 가능했으니까.
코델리아의 수줍은 물음에 유더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엄청 어울려. 엄청 예뻐.’
‘흥. 아부만 늘었어.’
하지만 역시 기분이 나쁘진 않은 듯 빙긋 미소짓는 코델리아였다.
그리고 그런 둘을 지켜보는 사람이 하나.
“어쩐지 기분이 나빠졌어. 게일 공자 보고 싶다.”
작게 중얼거린 아델리아는 더 시간을 끄는 대신 코델리아의 손목을 잡아 당겼다.
“자자자, 이제는 정말 출발할 시간이야. 반차도 얼마 안 남았어.”
“알았어, 언니. 그런데 우리 어디 가는 건데?”
호텔 잡아둔 거야? 항상 묵던 그곳?
코델리아의 물음에 아델리아는 빙긋 웃더니 제법 당찬 얼굴이 되어 말했다.
“내 저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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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일룬 왕국의 심장은 누가 뭐라 해도 왕도였고, 세일룬 왕국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장소 역시 왕도였다.
때문에 건국 300주년을 눈앞에 둔 지금의 왕도는 사람 살 곳이 부족한 땅이 되고 말았다.
‘성벽이 있으니까.’
거주 구역이야 그냥 늘리면 그만이었지만 이미 건설된 성벽은 그렇지 않았다.
성벽의 안과 밖.
안쪽의 거주 구역과 바깥쪽의 거주 구역.
‘거기다 귀족들 저택은 덩치도 크고.’
작은 규모나마 정원까지 갖춰야 했으니 말이다.
“올해는 드디어 내게도 저택이 나왔다는 말씀.”
근위마법병단의 일곱 단장 가운데 하나가 된 지는 벌써 몇 년이 지났지만, 나이가 어린 탓에 저택 배급 순서에서 계속 뒤로 밀린 아델리아였다.
“이제 기숙사는 안녕이라 이거지.”
물론 출퇴근하기에는 근위마법병단 본부에 붙어있는 기숙사 쪽이 월등히 편했지만, 그래도 저택과 기숙사를 비교할 수는 없었다.
“어때? 멋지지?”
아담한 정원 위에 세워진 예쁜 이층 저택을 가리키며 아델리아가 가슴을 펴자 코델리아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응, 예뻐. 귀엽고 아기자기해.”
사실 현대 기준으로 보면 꽤 큰 저택이었지만, 코델리아에게는 체이스 백작가의 차녀로 살아온 십여 년의 세월이 있었다.
본가의 커다란 저택에 비교하면 눈앞의 집은 작고 아기자기한 게 맞았다.
“2층에 있는 방을 내줄게.”
잔뜩 신이 난 아델리아가 저택 안으로 들어서자 어린 메이드 하나가 일행을 반겨주었다.
“아델리아 님을 모시는 베키라고 합니다.”
인형처럼 예쁜 검은 머리칼 소녀의 인사에 뺨을 붉힌 코델리아는 똑같이 인사를 해주었고, 이번에는 베키가 뺨을 붉혔다.
‘훈훈하구나.’
작게 감탄한 유더는 아델리아를 따라 2층의 손님방에 올라갔다.
침대 하나 들어가는 작은 방이었지만, 지내기에 불편할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럼 난 다시 돌아가 볼게. 이따 저녁에 보자. 언니가 식당 예약해놨어.”
“응응, 기대할게.”
“그래, 간식 주워 먹지 말고 기다리고 있어.”
“응, 언니.”
남문에서 만났을 때야 아웅다웅했지만 어느새 사이좋은 자매로 돌아간 두 사람이었다.
포옹까지 마친 아델리아는 서둘러 집을 나섰고, 유더는 아델리아가 떠나자마 코델리아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왜?”
“우리도 이야기를 진행해야 하니까.”
건국 기념회까지 이제 겨우 한 달 남짓밖에 남지 않았으니 허투루 낭비할 시간이 없었다.
“알았어, 내 방에서 이야기할까?”
“어, 내 방도 괜찮고.”
“내 방에서 하자.”
코델리아는 반대로 유더의 손을 잡은 뒤 자기 방으로 인도했다.
“베키가 오해할지 모르니까 문은 열어둘까?”
“오해가 아니라 감시일 것 같지만 뭐, 메시지 마법으로 이야기하면 되니까.”
빠르게 말한 유더는 작은 탁자를 사이에 두고 코델리아와 마주 앉은 뒤 스크롤을 찢었다.
[그래서,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건데?]
[왕도 도착하면 제일 먼저 진행하려던 일이야.]
[다프네 왕녀랑 친해지는 것보다도?]
[어. 제일 우선적으로 처리해야하는 일이거든.]
[뭔데 그래? 저번에는 이런 이야기 없었잖아.]
[오늘 생각한 거거든. 정확히는 너 업고 달리는 동안.]
[알았어, 그래서 무슨 이야기인데?]
코델리아의 물음에 유더는 숨을 한 번 크게 고르더니 탁자 위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너도 알다시피 호국공과 악마의 손은 이번 왕족 말살 작전을 꽤 오랫동안 준비해왔어.]
[그런데?]
[그 증거중 하나가 암흑가의 장악이야. 왕도에 있는 가장 커다란 도둑 길드인 ‘검은 달’은 호국공의 수족이나 다름이 없으니까.]
유더의 말에 코델리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원작에서도 호국공은 왕도의 암흑가를 조종해 건국기념회를 엉망으로 만들었었다.
[각종 테러를 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도로를 차단해 기사들과 병사들의 이동도 어렵게 했지.]
[그래서? 검은 달을 와해시키자고?]
[아니, 그건 무리야. 시간이 한 달 밖에 없으니까. 호국공 휘하에 있는 게 검은 달 하나인 것도 아니니 수뇌부를 암살한다는 식의 작전도 좀 애매해.]
[음음, 그럼 어떡하려구?]
유더가 해결책도 없이 이런 이야기를 꺼낼 리가 없었다.
코델리아가 기대 섞인 눈으로 바라보자 유더는 빙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간단해. 이쪽도 조직을 만드는 거야.]
[잠깐, 조직을 만든다고? 검은 달에 대항할?]
[어.]
유더의 대답에 코델리아는 미간을 좁혔다.
검은 달을 와해시키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이야기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더는 분명 간단하다고 했다.
그렇다면 어려운 일을 간단하게 만들 해결책이 분명 있을 터였다.
[좀 더 설명해봐.]
[사실 완벽한 조직을 만들 필요는 없어. 우리의 목적은 한 달 뒤에 있을 건국기념회를 검은 달 놈들이 방해하지 못 하게 하는 거니까. 적당히 녀석들의 발목을 붙잡아줄 정도의 세력만 있으면 된다 이거지.]
[그 세력들을 어디서 구하는데?]
[왕도에 있는 다른 도둑 길드들.]
왕도는 넓었고 그렇기에 도둑 길드 역시 여럿이 존재했다.
물론 호국공의 지원을 받는 검은 달에 필적할 조직은 없었지만, 다른 모든 조직을 합치면 검은 달의 발목을 붙잡는 일 정도는 간단했다.
[뭔가 캐면 캘수록 더 큰 의문이 나오는 느낌인데··· 다른 조직들은 어떻게 통합하려고?]
돈의 힘으로?
여기까지 오면서 챙긴 것들이 이것저것 많으니까.
하지만 코델리아의 말에 유더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직업을 비하할 생각은 없지만, 상대는 돈 갖고 튀는 게 전문인 도둑들이야. 돈만으로는 녀석들을 제대로 통제할 수 없어.]
[그럼?]
[카리스마가 필요해. 닳고 닳은 도둑들의 마음조차 간지럽게 할 수 있는 낭만이.]
여기까지 말한 유더는 코델리아를 지긋이 바라보았고, 코델리아는 눈을 깜박였다. 그리고 이내 미소지었다.
[로그 마스터.]
[도둑들의 전설. 도둑들의 왕.]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손에 넣는 환상의 괴도.
세일룬 왕국과 아르곤 제국은 물론이고 대륙 전체를 뒤흔든 전설적인 존재.
[로그 마스터의 말이라면 도둑들도 움직일 거야. 아니, 어쩌면 검은 달에서도 배신자가 속출할지 모르지.]
로그 마스터는 그런 존재였으니까.
도둑들에게는 신과 같은 자였으니까.
[그런데 로그 마스터는 지금 아르곤 제국에 있잖아. 아니, 아직 로그 마스터가 되기 전이잖아.]
조금 이상한 말이었지만 사실이었다.
당대의 로그 마스터는 아직 수련 중이었기 때문이다.
훗날 사대검사 가운데 하나가 될 스칼렛.
끊어진 로그 마스터의 계보를 이을 유망주.
지금도 제법 잘 나가는 도둑이었지만, 그녀는 아직 로그 마스터가 아니었다.
로그 마스터임을 증명하는 로그 마스터의 비보를 손에 넣지 못 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더 괜찮아. 지금이라면 새로운 로그 마스터가 등장할 수 있으니까.]
[새로운 로그 마스터?]
[어, 새로운 로그 마스터.]
빙긋 웃으며 답한 유더는 자리에서 일어나 연극조로 말했다.
[로그 마스터의 무덤이 어디 있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우리를 제외하고는.]
왕도에 숨겨진 로그 마스터의 무덤.
[로그 마스터의 여러 가지 전설들을 모두 꿰고 있는 사람은 드물지. 그런데 여기 꿰고 있는 사람이 하나 있고.]
유더 위키는 오늘도 내일도 빛을 발할 테니까.
코델리아도 이제는 알 수 있었다.
유더가 무엇을 하려하는지 말이다.
새로운 로그 마스터의 등장.
새로운 로그 마스터의 탄생.
[와우!]
[이제 알겠어?]
[응! 이제 알겠어!]
[그럼 잘 부탁할게.]
[어?]
[잘 부탁한다고.]
새로운 로그 마스터는 코델리아 바로 너니까.
빙긋 웃은 유더는 품 안에서 검은색 나비 가면을 꺼내더니 멍하니 선 코델리아의 얼굴에 씌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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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55장 - 왕도입성 #2 (수정)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