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엔딩메이커-149화 (149/473)

< 제56장 - 괴도 >

제56장 - 괴도

코델리아는 일단 눈을 깜박였다.

유더는 똑같은 타이밍에 눈을 깜박였고, 한 걸음 물러서서 나비 가면을 쓴 코델리아의 얼굴을 좀 더 전체적으로 보았다.

“음, 역시 잘 어울려.”

날개를 활짝 편 나비의 모습을 형상화 한 가죽으로 만든 검은 나비 가면.

어울린다는 말에 반사적으로 반응한 코델리아는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 미간을 좁히며 말했다.

“방금 뭐라고 했어?”

“역시 잘 어울려?”

“그 전에.”

[네가 새로운 로그 마스터라고.]

다시 메시지 마법으로 말하자 코델리아는 재차 눈을 가늘게 뜨더니 팔짱을 꼈다.

[이유가 뭔데?]

[응?]

[아니, 하필 내가 로그 마스터가 되어야 하는 이유.]

코델리아 자신과 유더 둘 중에 하나가 로그 마스터가 되어야 했으니 애당초 이지선다이긴 했지만, 왜 유더가 아닌 코델리아 자신일까.

‘어째 수상쩍은 냄새가 난단 말이지?’

야생의 맹수에 준하는, 아니, 그 이상이라 해도 좋을 코델리아의 본능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뭔가 있다.

뭔가 꿍꿍이속이 있는 게 분명하다.

‘왜냐하면 유더니까!’

우리 집 사기꾼이기 이전에 업적 점수에 환장한, 1등에 목숨 건 녀석이니까.

로그 마스터가 된다는 기회를 그냥 넘길 녀석이 아니었다.

코델리아가 코까지 킁킁 거리며 대놓고 의심을 하자 유더는 일단 어깨를 한 번 으쓱이더니 이리 될 것을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 부드럽게 입을 열었다.

[단순해. 스칼렛 성별 기억하지?]

[여자잖아.]

사대검사 가운데 홍일점이자 당대의 로그 마스터. 아니, 원작에서는 당대의 로그 마스터가 될 인물.

[맞아, 그럼 초대 로그 마스터의 성별은?]

수백 년 전 인물 인만큼 원작에 직접 등장하진 않지만 대신이라도 되듯 여러 이야기들을 남긴 로그 마스터였다.

스칼렛과 관련된 퀘스트를 하나라도 진행했다면 ‘그녀’의 성별을 알 수밖에 없었다.

[여자···지?]

[맞아, 여자야. 그러니까 새로운 로그 마스터도 여자인 편이 좋아. 로그 마스터는 ‘여자’라는 선입견이 이미 있으니까.]

[흐으음.]

어째 말려드는 기분이 들긴 했지만 일단 사실이기는 했다.

‘물론 2대는 남자였고, 당장 스칼렛 직전의 로그 마스터도 남자였지만.’

고민하는 표정이 된 코델리아를 마주한 유더는 속으로만 생각한 뒤 말을 이었다.

[그리고 제대로 로그 마스터를 연기할 필요가 있으니까. 로그 마스터는 다섯 개의 비보를 남겼는데, 그중에서 우리가 손에 넣을 수 있는 건 마지막 비보인 문 크리스탈 뿐이야.]

[으음··· 스칼렛이 이미 두 개를 가지고 있으니까?]

[어, 세 번째와 네 번째 비보는 제국에 있고.]

애당초 세일룬 왕국 출신인 스칼렛이 제국까지 건너가 헤매고 있는 이유부터가 로그 마스터의 비보들을 찾기 위해서였으니 말이다.

[로그 마스터의 비보들은 로그 마스터의 상징과 같아. 제일 큰 상징이 문 크리스탈이긴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역시 부족해. 로그 마스터를 자칭하고,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위해서는 다른 비보들 역시 가지고 있는 ‘척’이라도 해야만 해.]

이쯤되니 코델리아도 유더가 무어라 말하는지 대강 이해할 수 있었다.

[한 마디로 이거네, 마법으로 퉁 치자 이거지?]

[빙고.]

로그 마스터의 비보들은 사용자에게 각종 신비한 힘을 부여하는 마법의 도구들이었다.

하지만 코델리아는 진짜 마법사였으니 그냥 자기가 마법을 쓰면 되었다.

[내가 일일이 뭐 할 때마다 스크롤 찢을 수는 없잖아.]

[으으음.]

여기까지는 말이 되었다.

[또 뭐 없어?]

[이거면 충분하지 않아?]

[그렇긴 한데······.]

왜일까. 어째서 아직도 찝찝한 기분이 드는 것일까.

코델리아가 망설이는 기색을 보이자 유더는 비장의 카드를 꺼내 들었다.

[아무튼 이런 고민으로 낭비할 시간이 없어. 형수님이랑 저녁식사 하기 전에 들를 곳이 많아. 우리 일정이 촉박한 건 너도 알지?]

[알아, 한 달 밖에 없으니까. 그런데 들를 곳이라니? 로그 마스터의 무덤?]

[그것도 있지만 더 중요한 곳.]

너무 중요해서 코델리아의 정신을 쏙 빼놓을 수 있는 곳.

[어딘데?]

[연금술 길드.]

[거긴 왜?]

[다이너마이트 만들어 달라며.]

[응?]

[다이너마이트.]

유더가 다시 한 번 말하자 코델리아는 일단 입술을 벌렸고, 이내 환희에 찬 미소를 보였다.

파란 눈동자가 황홀감에 젖어 반짝이는 것 같았다.

[만들어 줄 거야? 진짜루?]

[어, 그러니까 빨리 가자. 시간이 없어.]

[응응! 빨리 가자!]

[그 전에, 로그 마스터는?]

[내가 할게.]

[진짜로?]

“응응, 진짜루!”

아예 육성으로 말한 코델리아는 빨리 가자는 듯 유더의 팔을 잡아 끌었고, 유더는 못 이긴 척 그런 코델리아를 따라 방을 나섰다.

&

다이너마이트의 구조는 생각보다 간단했다.

대표적인 폭발 물질 중 하나인 니트로글리세린을 소량 흡수한 규조토가 바로 다이너마이트였으니 말이다.

“규조토는 단세포조류의 유해가 쌓여 만들어진 흙인데, 흡수력이 좋아서 이런저런 용도로 곧잘 쓰이지.”

규조토 자체는 불연성 물질이기 때문에 사실 단순 폭발력만 따지면 순수한 니트로글리세린 쪽이 다이너마이트 보다 좋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규조토를 사용하는 것은 무척이나 민감한 물질인 니트로글리세린을 비교적 안전하게 보관 및 운송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니트로글리세린을 만들기 위해서는 질산과 황산이 필요해.”

양쪽 모두 연금술 길드가 아니면 당장은 구하기 힘든 재료들이었다.

“그리고?”

코델리아가 흥미진진하다는 얼굴로 묻자 유더는 딱 잘라 말했다.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치사해.”

“어차피 내가 만들어줄 거니까 상관없잖아. 그리고 위험하다고. 초심자가 쉽게 도전할 일이 아니야.”

거기다 만드는 법을 알려주면 앞으로는 다이너마이트를 미끼로 쓸 수 없지 않겠는가.

고기만 줘야지 고기 잡는 법을 알려줄 수는 없었다.

“칫, 칫, 칫.”

“그래서 싫어요?”

“아뇨, 공자님. 공자님 말씀이 무조건 옳아요.”

빠른 태세 변환에 만족한 유더는 빠른 쇼핑을 마친 뒤 동쪽 성문으로 향했다.

“다이너마이트 안 만들어?”

“일단 로그 마스터의 비보부터 손에 넣어야 해.”

아직 점심나절이었으니 아델리아와의 저녁식사 까지는 아직 시간이 제법 남아 있었다.

“해 떨어지면 성문 닫히니까 지금 다녀오는 게 의심도 덜 사고 좋아.”

“우으, 어쩔 수 없네.”

즐거움은 잠시 미루는 수밖에.

“그럼 이왕 갈 거 빨리 가자.”

“예, 마님. 쾌속으로 모십지요.”

왕도에 처음 와보는 유더였지만 유더위키 속에는 왕도의 각종 자잘한 샛길들은 물론이고 지하도까지 완벽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현지인도 잘 모르는 지름길로 코델리아를 인도한 유더는 동문을 나서자마자 코델리아에게 등을 내밀었고, 코델리아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유더의 등에 업혔다.

‘뭔가 너무 편해졌단 말이지?’

유더의 등에 업히는 것이.

요즘엔 업히면 진짜 무슨 합체라도 하는 기분이 들 정도였다.

“무슨 생각해?”

“빨리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

“꽉 잡아.”

빙긋 웃은 유더는 단번에 질풍이 되어 동쪽- 정확히는 왕도 북동쪽에 위치한 작은 산을 향해 내달렸다.

“다 왔다.”

“생략이 너무 많은 거 같지만 괜찮겠지.”

작게 중얼거린 코델리아는 유더의 등에서 내린 뒤 새삼 뒤를 돌아보았다.

“와.”

작은 산이었지만 그래도 산은 산이었다.

크고 웅장한 성벽에 감싸인 왕도의 전경이 한 눈에 들어오니 절로 감탄이 나왔다.

“멋지네.”

“응, 멋져. 내성은 예쁘고.”

성벽이 워낙 높아 제대로 보이지 않는 내성이었지만 원작에서 수백, 수천 번은 넘게 본 터라 바로 머릿속에 그 형태를 떠올릴 수 있었다.

“아무튼 서두르자.”

다시 돌아선 유더는 언덕 위에 홀로 자리한, 마치 비석 같은 길쭉한 바위 앞에 쪼그려 앉아 눈을 가늘게 떴다.

“여길 이렇게 건들면······.”

유더가 바위 옆면을 만지자 돌연 찰칵 하는 소리가 울리더니 바위 전체가 30cm 정도 솟구쳐 올랐다.

“암호판이네. 원작이랑 똑같아.”

유더 옆에 쪼그려 앉은 코델리아의 말마따나 새로이 드러난 바위의 밑 부분에는 제법 복잡한 문양이 그려진 암호판이 있었다. 정해진 순서대로 눌러야만 풀리는 구조였는데, 유더는 조금의 주저도 없이 손을 놀리기 시작했다.

‘본래라면 앞의 비보 네 개를 모두 모아야 알 수 있는 암호지만.’

“후후훗, 이게 바로 우리 유더위키의 힘이지.”

코델리아가 자기일처럼 자랑하듯 말하자 저도 모르게 킥하고 웃은 유더는 계속해서 손을 놀렸다.

그래도 로그 마스터는 아케이만보다는 훨씬 제대로 된 사람이라 첫 번째 단서 옆에 마지막 비보를 숨기는 짓궂은 일 같은 것은 하지 않았다.

“열렸다.”

마지막 패널을 누르자 다시 찰칵하는 소리가 울리더니 이내 우르르하는 굉음과 함께 바위 근처의 땅이 불쑥 솟구쳐 올랐다.

“입구야.”

경사지게 솟구친 땅 아래쪽에는 금속문이 달려 있었는데, 마법 처리가 되어 있는지 새것처럼 말짱했다.

“좋아, 들어가자.”

유더가 괴력을 발해 금속문을 열자 코델리아는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빛의 구를 만들어냈다.

“젠틀맨 퍼스트.”

“예, 마님.”

바로 답한 유더는 금속문 너머의 계단을 통해 아래로 향했다.

“석굴암 같아.”

“가본 적 있어?”

“응, 수학여행으로.”

작게 답한 코델리아는 빛의 구를 높이 든 뒤 주변을 둘러보았다.

돌로 된 작은 석실이었는데, 계단 반대편 벽에 다음 석실로 이어진 문이 있었다.

“여기서부터 조심해야 하는 거 알지?”

“알아.”

짧게 답한 코델리아는 유더가 알려주지 않았음에도 빠르게 여러 종류의 마법들을 연속해서 시전했다.

부유 마법인 플라이의 다음 단계인 비행 마법 레비테이션, 체이스 백작의 반지로 발동시키는 실드, 담대한 마음을 가지게 해주는 하트 오브 드래곤, 환영에 속지 않게 해줄 이글 아이.

하나하나가 로그 마스터의 비보들을 대신할 수 있는 마법들이었다.

밟으면 발동하는 함정이 설치된 바닥.

작은 선실에서 계속 빙빙 돌게 만드는 환영마법.

들어선 이의 마음을 어지럽히는 밴시의 목소리.

피하고 자시고 없이 무조건 머리 위에서 쏟아지고 보는 염산 함정까지.

모조리 다 대비한 그대로 막아낸 유더와 코델리아는 석실 끝에 놓인 비석 앞에 멈춰 섰다.

“여기까지 당도한 그대라면 나의 뒤를 이을 자격이 충분하다. 나의 모든 유산들은 이제부터 그대의 것이다.”

기분 좋은 문장에 빙긋 웃은 코델리아는 비석에 마력을 주입하였고, 유더는 즉시 손을 놀려 정면에서 발사된 화살을 낚아챘다.

이제 다 끝났다고 안심시킨 뒤에 발동하는 마지막 함정.

“성격이 안 좋단 말이지.”

“로그 마스터답잖아?”

어차피 우리는 다 알고 있었고.

빙긋 웃은 코델리아가 마력 주입을 마치자 비석이 올라가며 바닥에 숨겨져 있던 진짜 비석이 모습을 드러냈다.

“욕망.”

초대 로그 마스터의 비석에 새겨진 단 두 글자.

그녀가 가장 사랑했고, 평생 추구했던 단어.

“역시 도둑왕.”

“솔직해서 좋아.”

그리고 이렇게 자신의 비보를 남겨주어서.

비석과 함께 드러난 보석상자.

유더와 코델리아는 동시에 열었고, 로그 마스터의 마지막 비보인 문 크리스탈을 손에 넣었다.

&

그리고 밤.

아델리아가 큰 맘 먹고 예약한 고급 레스토랑에서의 환상적인 식사를 마친 일행은 후식으로 왕도의 명물이라는 3단 초코 파르페를 먹은 뒤 역시나 관광 명소인 야시장 거리를 구경한 뒤에야 저택으로 돌아왔다.

“각방 제대로 써야 해. 알았지? 응?”

“알았어, 알았다구.”

“여긴 내 집이야.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손바닥 보듯 다 알 수 있다 이거지. 알겠어?”

“네, 네. 알겠어요.”

-라는 대화를 마친 뒤 각자 잠자리에 들고도 몇 시간.

아델리아가 완전히 깊은 잠에 빠져들자 유더와 코델리아는 코델리아의 방에서 서로를 마주하였다.

그리고 다시 십여 분.

팔짱을 낀 채 차게 식은 눈을 한 코델리아가 말했다.

“공자님, 이게 뭐죠?”

“로그 마스터의 코스츔이죠.”

유더의 대답에 코델리아는 다시 스스로를 돌아보았고, 싸늘하게 웃었다.

“이게?”

부츠와 일체형인 얇고 딱 달라붙는 검은색 가죽 바지 위로 짧고 주름진 분홍색 미니스커트가 자리했고, 다시 그 위에는 어깨가 훤히 드러난 검은 가죽 옷이 있었다.

여기에 턱시도를 연상시키는 목 부분의 하얀 칼라와 상완까지 닿는 긴 검은색 가죽 장갑이 더해지니, 전체적으로 여자 마술사라는 느낌이 드는 귀여운 복장이었다.

여기까지는 뭐, 코델리아도 그리 나쁘지 않았다.

미니스커트지만 바지를 입었으니 딱히 부끄러울 것도 없었고 말이다.

문제는 그 다음.

긴 머리를 한데 묶어 롱 포니테일을 만들어주는 크고 검은 리본과 얼굴을 가리는 용도인 검은 나비 가면- 거기에 문 크리스탈을 가운데 박아 넣은, 커다란 나비넥타이까지는 어떻게 참아 넘긴다 할지라도.

“공자님, 이게 뭐죠?”

“토끼 귀랑 토끼 꼬리군요. 민첩성과 도약력을 높여주는 좋은 세트 아이템이랍니다.”

코델리아의 머리와 엉덩이 부근에 장착된 너무나 눈에 익은 일련의 장비들.

야생의 땅 이후 다시 보지 못 해 너무나 아쉬웠던 그것.

“야, 이걸 여기까지 챙겨 온 거야?”

“고양이 세트도 있는데 그걸로 바꿀까?”

“너 이거 때문에 나보고 로그 마스터 하라고 한 거지?”

“아닌데, 이거 때문 아닌데.”

“그럼 토끼 세트는 뺀다?”

“아유, 우리 공주님. 굳이 그러실 필요가 있나요? 여기 개량된 도폭선이랍니다.”

유더가 빙긋 웃으며 도폭선 더미를 내밀자 코델리아는 흥하고 코웃음을 쳤지만 더 이상 토끼 세트에 대해서는 추궁하지 않았다.

‘귀엽긴 하니까.’

어차피 가면 써서 안 부끄럽고.

새삼 꼬리를 살짝 흔들어본 코델리아는 빙긋 웃었고, 유더는 그런 코델리아를 보며 숨을 골랐다. 진짜 고비는 이제부터였기 때문이다.

“자, 그럼 코델리아. 마지막으로 정해야 할 게 있어. 아니, 사실 이미 정해진 거야.”

“뭐가?”

“그러니까······.”

어색하게 웃은 유더는 잘 만들어진 카드 한 장을 내밀었고, 코델리아는 비로소 알게 되었다.

가면을 써도 부끄러운 일이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

“야! 너 이거 때문에 나한테 떠넘긴 거지!”

“네, 맞아요.”

“이게 진짜?!”

괴도 핑크폭탄.

사령술사 벨키안을 불러들이기 위해 반드시 사용해야만 하는, 그리고 유명해져야만 하는 그것.

세일룬 왕국을 넘어 대륙 전역을 뒤흔들 새로운 로그 마스터의 이름이었다.

< 제56장 - 괴도 > 끝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