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엔딩메이커-151화 (151/473)

< 제56장 - 괴도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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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일룬 왕국의 수도 칼리움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거대한 대도시답게 여간한 소국 이상의 인구수와 왕국 제일의 부를 자랑했다.

하루에도 수만 명에 달하는 이들이 왕도를 오갔고, 백 개나 되는 수레를 가득 채우고도 남을 엄청난 액수의 돈이 매일 같이 거래되었다.

빛의 도시.

성왕국 세일룬에서 가장 밝게 빛나는 영광의 땅.

하지만 빛이 클수록 그림자 역시 짙어지기 마련이었다.

왕도의 암흑가는 왕국 내의 그 어떤 도시의 암흑가보다 거대하고 위협적이었다.

‘도시 하나에 도둑 길드만 몇 개나 있을 정도니까.’

사실 도둑 길드는 말이 좋아 도둑 길드지 사실상 종합 범죄 조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도둑질뿐만 아니라 온갖 음성적인 일에 다 손을 대기 마련이었으니 말이다.

도박이나 매춘을 비롯한 유흥업은 기본이었고, 아예 더 나아가 청부 살인이나 납치 및 유괴 같은 강력 범죄에 손을 대는 길드도 더러 있었다.

‘그중에서도 검은 달은 악질이지만.’

왕도의 절반 이상을 장악하고 있는 검은 달은 뒷골목의 소매치기부터 시작하여 인신매매와 마약 밀거래에 이르기까지 왕도의 어둠 전체에 손을 대고 있었다.

검은 달이 이렇게까지 과감하게 나올 수 있는 것은- 아니, 애당초 이렇게까지 위험한 일들에 손을 대게 된 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하나, 길드장인 카르마는 욕망의 화신이다.’

그에게 선악은 없었다.

있는 것은 오직 이해득실뿐이었다.

이득이 되는가? 그렇다면 부모라도 죽여라.

손해가 되는가? 그렇다면 자식이라도 잘라내라.

그는 무자비하며 잔혹한 폭군이었고, 그렇기에 왕도의 어둠을 집어삼킬 수 있었다.

“나는 주저하지 않는다.”

카르마의 말버릇이었고, 그것은 사실이었다.

그는 자신의 아버지를 죽일 때조차 망설이지 않는 철혈의 지배자였다.

‘두 번째 이유는 호국공의 가호.’

검은 달은 호국공을 중심으로 한 정치 세력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다.

검은 달의 화물들은 그것이 무엇이든 빠르고 정확하게 성문을 넘을 수 있었고, 매일 같이 벌어지는 온갖 범죄행위들은 어둠에 묻혀 드러나지 않았다.

그럴 수 있는 이유.

그래야만 하는 까닭.

카르마와 검은 달은 호국공의 사냥개였다.

그것도 돈을 무척이나 잘 벌어다주는, 온갖 지저분한 일들을 대신 처리해주는 말 잘 듣는 사냥개 말이다.

‘하지만 그런 검은 달 조차도 왕도를 전부 손에 넣지는 못 했어.’

그러기에는 왕도가 너무 넓었으니까.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었으니까.

더욱이 강한 힘을 가진 왕실 인사는 호국공 하나만이 아니었다. 그와 반하는 정치 세력들 역시 분명히 존재했다.

‘그렇기에 남아 있는 세력들.’

노른자 땅이라 할 수 있을 왕도의 중심부에서는 활동하지 못 하지만, 대신이라도 되듯 외곽 부를 차지하고 있는 자들.

그런 여러 세력들 가운데 푸른 달이라는 조직이 있었다.

검은 달이 득세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왕도에서 가장 거대한 세력을 꾸렸던, 소위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도둑 길드가 말이다.

“진짜 온답니까?”

충실한 오른팔이자 길드의 2인자이자 금발미녀인 재니퍼의 물음에 길드장이자 1인자이며 제법 중후하게 생긴 중년남인 주페는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 오겠지. 그녀는 진짜 로그 마스터니까.”

약간이지만 희열 섞인 목소리로 말한 그는 새삼 다시 하얀색 카드를 꺼내들었다.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든 로그 마스터 핑크폭탄의 예고장.

손바닥 만한 크기의 카드에는 예쁜 서체로 다음과 같은 글귀가 쓰여 있었다.

오늘 밤에 찾아갈게.

- 괴도 핑크폭탄.

짤막하지만 강렬한 문장 뒤에 새겨진 것은 아름다운 여인의 입술자국.

“분홍색이란 말이지.”

주페가 황홀함이 섞인 얼굴로 카드의 입술 자국을 어루만지자 재니퍼가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노파심에 하는 말이지만··· 설마 입술을 맞춰보시지는 않았겠죠?”

“아, 아니거든? 그냥 쳐다만 봤거든? 아니, 만져만 봤거든?! 이, 입술 같은 거 안 대봤거든?!”

허둥지둥 답한 주페는 눈치를 보듯 재니퍼를 힐끔거렸고, 재니퍼는 눈을 좀 더 가늘게 뜨더니 이내 싸늘한 어조로 말했다.

“하려면 몰래 하세요, 몰래. 아무도 모르게.”

“아, 안 한다니까?”

“믿어 드리죠.”

“흠흠.”

헛기침을 한 주페는 다시 서랍 안에 카드를 집어넣은 뒤 자세를 바로했다.

주페와 재니퍼.

푸른 달 길드의 1인자와 2인자.

왕도 동문 근처에 자리한 푸른 달의 본거지는 겉모습만 보면 세금 잘 내며 정상적으로 영업하는 커다란 술집이었고, 주페와 재니퍼는 술집 주인과 최고 바텐더였다.

두 사람이 마주한 이 장소는 술집 주인의 집무실이었고 말이다.

“아무튼 로그 마스터가 왜 우릴 찾는 걸까요.”

“도둑질 하려면 정보가 필요하니까?”

“검은 달에 가지 않고?”

“재니퍼, 너 일단 우리 길드원 맞지? 그리고 왜 말이 짧아지니.”

“수상하군요. 어째서 검은 달 대신에 우리 푸른 달에 접촉하는 것일까요. 아니, 어쩌면 우리에게만이 아닐 수도 있겠군요. 이미 검은 달을 방문했을 수도 있으니.”

바텐더 차림의 재니퍼가 다시 눈을 가늘게 뜨자 턱시도 차림의 주페는 미간을 찌푸렸다.

“뭐, 만나보면 알겠지. 그녀는 진짜 로그 마스터니까.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만날 가치가 있어.”

“그런데 보스.”

“가게에 있을 땐 사장님.”

“사소한 것에 신경 쓰시는 결벽증 사장님.”

“나는 왜 널 계속 2인자로 두고 있는 걸까.”

“유능하고 미인이니까?”

“둘 다 사실이라는 게 슬프군.”

“뭣보다 제가 사장님의 내연녀이기 때문이죠.”

“아니, 나 호적상 싱글이거든? 너랑 불륜 같은 거 하는 사이 아니거든? 그러지 말고 슬슬 반지 좀 받아주지 그래.”

“사내 연애는 지양하는 편이라.”

재니퍼가 딱 잘라 말하자 주페는 몇 번 입술을 삐쭉인 뒤 의자 등받이에 몸을 묻었다.

“아무튼 왜?”

“어째서 핑크폭탄이 로그 마스터라 확신하시는 거죠? 솔직히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녀의 예고 범죄가 비록 성공리에 끝났다고는 하지만 겨우 한 번뿐이었으니까요.”

“후후훗, 아마추어들 눈에는 그렇게 보이겠지.”

“뭐래, 실전도 안 뛰면서.”

“뭐라고 했나?”

“어젯밤의 사장님은 정말 끝내주셨다고 했습니다.”

“흠흠, 어젯밤엔 내가 좀 대단하긴 했지?”

“예, 그런데 어떤 면에서 아마추어라 하시는 건지 알려주셨으면 합니다.”

재니퍼가 물 흐르듯 다시 화제를 돌리자 주페는 멋지게 기른 턱수염을 만지며 말했다.

“로그 마스터에 대해 아마추어라는 이야기다. 반면 나는 로그 마스터의 마스터라 할 수 있지.”

“광빠란 말씀이십니까?”

“빅 팬 정도로 하지.”

빙긋 웃은 주페는 서랍장을 열더니 잘 만들어진 카드 몇 장을 꺼내 책상 위에 늘어놓았다.

“트레이드 카드?”

“내 수집품이지. 로그 마스터는 도둑들의 영원한 우상이니까.”

다섯 장의 카드에는 각기 다른 도구들이 그려져 있었는데, 재니퍼는 각각의 카드가 의미하는 바를 바로 이해할 수 있었다.

“로그 마스터의 비보들이군요.”

“맞아,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게 바로 이 마지막 비보인 문 크리스탈이지.”

아름다운 크리스탈이 그려져 있는 카드를 집어든 주페는 딱딱 손가락을 튕기며 말을 이었다.

“재니퍼, 역대 로그 마스터들에 대해 좀 알아?”

“잘 모릅니다.”

“그럼 이번에 알아둬. 내가 설명해줄 테니.”

다시 빙긋 웃은 주페는 나머지 네 장의 카드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로그 마스터는 지금까지 총 다섯 명이 있었어. 하지만 다섯 개의 비보를 모두 가지고 있던 건 오직 초대뿐이지.”

“다음 대에게 비보를 물려준 것이 아니었습니까?”

“초대는 바로 물려주지 않았어. 다섯 개의 비보들을 각기 다른 곳에 숨긴 뒤 다음 대의 로그 마스터가 찾아내기를 바랐지.”

“왜죠?”

“다음 대의 로그 마스터를 시험한 거지. 진짜 로그 마스터가 될 자격이 있는 자인지를 말이야.”

멋지지 않느냐는 듯 주페가 씩하고 웃었지만 재니퍼의 얼굴에는 여전히 미소가 없었다.

“맥락상 2대부터는 결국 비보를 다 모으지 못 했다는 이야기 같습니다만.”

“맞아, 2대는 비보를 네 개 밖에 모으지 못 했어. 마지막 비보를 결국 찾지 못 했지. 그런데··· 여기서부터 비극이 시작되었어.”

“비극이요?”

“어, 비극. 2대는 1대의 유지를 잇기 위해 은퇴하기 전에 보물들을 다시 다 원위치에 숨겨뒀거든. 함정이나 그런 것들도 보수하고. 그런데 3대는 그렇게 하지 않았어. 다섯 개 중에 세 개를 찾아냈던 3대는 자신의 비보를 그냥 4대에게··· 그러니까 자기 자식에게 넘겨주었지.”

“알 것 같군요. 본래라면 하나하나 순서대로 찾아야 하는 비보인데, 이걸 원위치에 돌려놓지도 않고 그냥 물려주었으니··· 나머지 비보들을 찾고 싶어도 찾을 수 없는 상황이 된 겁니까?”

재니퍼가 침착한 어조로 말하자 주페는 깜짝 놀라 눈을 깜박였다.

“아니, 그걸 어떻게?”

“맥락상 당연한 흐름이니까요.”

재니퍼의 대답에 주페는 미간을 좁혔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애당초 이렇게 유능하기에 2인자 자리에 앉혀두고 있는 재니퍼였으니 말이다.

“어찌되었든 이러다 보니 4대는 비보를 세 개 밖에 모으지 못 했고··· 5대에 가서는 본래 로그 마스터의 비보들이 숨겨져 있던 장소 자체를 알 수 없게 되어버렸지.”

그리고 5대는 6대 로그 마스터를 만들지 않고 사라져 버렸다.

그가 가지고 있던 3개의 비보들 역시 어디로 사라졌는지 아무도 모르고 말이다.

“그런데 핑크폭탄이 나타난 거야. 그것도 환상의 비보인 문 크리스탈을 가지고!”

주페가 잔뜩 흥분한 얼굴로 문 크리스탈이 그려진 카드를 높이 들자 재니퍼가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그래서 진짜인 겁니까?”

“그래, 마지막 비보를 가지고 있으니까. 그녀야말로 진정한··· 2대부터 5대까지 로그 마스터들과는 다른, 진정한 의미로 초대의 모든 것을 계승한 새로운 로그 마스터라 이거지.”

문 크리스탈은 진짜였다.

가짜라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연출과 효과였으니 말이다.

“그녀는 진짜야. 핑크폭탄은 진짜 로그 마스터라구!”

“그렇군요. 도착하신 것 같습니다.”

“응?”

“어··· 안녕?”

차례대로 주페, 재니퍼, 다시 주페, 그리고 창문 앞에 선 분홍색 머리칼의 여인.

“피, 핑크폭탄?!”

주페가 깜짝 놀라 책상에서 일어난 그 때 재니퍼는 허리 뒤쪽에 숨겨둔 단검에 손을 대었다.

그리고 그 순간 검은 바람과 함께 또 한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온통 검정 일색의 옷에 검은 가면을 쓰고 검은 망토까지 두른 검은 머리칼의 남자.

재니퍼의 얼굴에 긴장이 번졌고, 주페는 바짝 긴장한 채로 새로 등장한 남자를- 유더를 바라보았다.

“아, 그렇게 경계하지 마. 이쪽은 내 조수니까.”

빙긋 웃은 핑크폭탄- 코델리아는 하나로 묶어 늘어트린 머리칼을 한 손으로 빙빙 돌리며 말을 이었다.

“인사해, 내 조수인 블랙망토야.”

코델리아의 소개에 재니퍼는 눈을 가늘게 떴고, 주페는 새삼 미간을 찌푸렸다.

“블랙···망토?”

“응, 블랙망토. 까만 망토잖아?”

코델리아가 환히 웃으며 말하자 유더는 다급히 눈빛을 보냈다.

‘야, 블랙망토?’

‘어, 블랙망토.’

너도 한 번 당해보라지.

흥이지롱.

코델리아가 악동 같은 미소를 지으며 흥흥 거리자 유더는 피식 웃더니 주페에게 예를 표하며 말했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저는 핑크폭탄님을 모시는 블랙망토입니다. 핑크폭탄님께서 직접 지어주신 이름이기에 블랙망토라는 네 글자에 늘 자부심을 갖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유더의 자기소개에 주페와 재니퍼의 시선이 다시 코델리아에게 향했다.

그 미묘한 시선들.

‘하긴, 애당초 자기 이름을 핑크폭탄이라 지었으니까.’

‘블랙망토면 그래도 양호한 편이군요.’

두 사람이 유더도 아닌데 눈빛만으로도 마음의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아, 아니야! 아니거든?! 내가 지은 거 아니거든?! 그러니까 그런 눈으로 보지 말아줘!’

코델리아가 마음속으로 소리치며 간절한 눈빛을 보냈지만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유더뿐이었다.

때문에 유더는 얼굴은 물론 귀까지 빨개진 코델리아에게 흐뭇한 미소를 보였다.

‘허허, 누구에게 통수를 치시려고.’

‘너 미워. 너 싫어.’

눈빛을 쏘아보낸 뒤 입술까지 삐쭉인 코델리아는 흥 소리를 한 번 낸 뒤 다시 주페에게 집중했다.

“푸른 달의 길드 마스터인 주페가 맞지?”

“예, 제가 푸른 달의 길드 마스터인 주페입니다. 이쪽은 우리 길드의 2인자인 재니퍼고요.”

“재니퍼입니다.”

주페의 소개에 이어 재니퍼가 예를 표하자 코델리아는 뿌듯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야기가 잘 통할 거 같은데?”

“로그 마스터는 세일룬의- 아니, 대륙의 모든 도둑들이 선망하는 대상이니까요.”

주페가 부드럽게 웃으며 말하자 코델리아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의심하고 나서면 어떡하나 걱정했는데, 완전히 믿는 눈치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방심하지 말고.’

‘나도 알아.’

다시 흥하며 어깨를 으쓱인 코델리아는 다시 주페를 맞이했다.

“아무튼 반가워. 나는 로그 마스터인 괴도 핑크···폭···탄이야.”

어찌어찌 힘겹게 말한 코델리아가 슥하고 손을 내밀자 잠시 당황하던 주페는 얼른 코델리아의 손을 잡았다.

“영광입니다.”

“응응, 그런다고 앞으로 손 안 씻겠다고는 하지 말고.”

찡긋 윙크하며 말하자 주페는 가슴을 부여잡으며 비틀거렸다. 너무 좋았기 때문이다.

“사장님, 아무리 내연녀라지만 애인 앞에서 이런 모습을 보이시면 심히 안 좋을 것 같습니다만.”

재니퍼가 평소보다 날카로운 눈매로 빠르고 작게 말하자 겨우 정신을 수습한 주페는 자세를 바로 했다.

“그런데 로그 마스터께서 여긴 무슨 일이신지요.”

사실 로그 마스터의 등장이 길드들 입장에서는 그리 썩 반갑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기존의 질서를 충분히 흔들고도 남을 거물이었으니 말이다.

주페의 물음에 코델리아는 다시 빙긋 웃더니 주페에게 한 걸음 다가서며 말했다.

“나는 이제 막 왕도에 들어온 신입이니까. 왕도의 어둠을 오랫동안 지탱해온 푸른 달 길드에 예를 표하는 게 당연한 일 아닐까?”

“설사 지금은 검은 달이 강하다 할지라도··· 그저 일시적인 현상일뿐. 푸른 달이야말로 전통성 있는 진짜 암흑가의 주인이니까요.”

코델리아에 이어 유더가 적절하게 말을 보태자 주페는 바로 웃는 대신 코델리아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코델리아는 그런 주페의 눈을 마주하며 말했다.

“검은 달에는 가지 않아. 놈들은 선을 넘었으니까. 도둑에게도 지켜야 할 선이라는 게 있지 않겠어?”

도발하듯, 하지만 약간의 불안함을 간직한 채 코델리아가 주페와 얼굴을 좀 더 가까이했고, 주페는 허둥거리는 대신 작은 미소를 머금었다. 나직한 목소리로 물었다.

“왕도의 어둠을··· 휘저으실 생각인 겁니까?”

“좀 더 두고 봐야 알 일이겠지.”

새침하게 말한 코델리아가 다시 뒤로 물러서자 주페는 재미있다는 듯 빙긋 웃더니 사무실 가운데 놓인 소파를 가리키며 말했다.

“일단 이야기를 좀 더 들어보도록 하죠. 설마 인사만 하고 가시지는 않겠죠?”

푸른 달의 길드 마스터 자리는 거저먹은 것이 아니었다.

코델리아는 바로 고개를 끄덕인 뒤 소파에 털썩하고 앉았고, 유더는 그런 코델리아의 곁에 자리한 뒤 이제부터는 자신이 나선다는 듯 몸을 살짝 앞으로 기울이며 입을 열었다.

“정보를 사고 싶습니다.”

앞으로의 활동을 위해.

그리고 당신에게 우리가 어떤 식으로 행동할 거라 믿게 만들고자.

정보는 일방향으로만 흐르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어떤 정보를 원한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상대방에게 오히려 정보를 흘릴 수 있었으니까.

“좋은 거래가 될 것 같군요.”

빙긋이 입술로만 미소 지은 주페가 유더를 마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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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는 그리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문자 그대로 짧고 굵게.

일단의 거래를 마친 주페는 거래가 이뤄지는 동안 한 발 물러나 있던 코델리아에게 물었다.

“핑크폭탄님.”

“로그 마스터라고 불러도 돼.”

아니, 그렇게 불러줘. 제발.

“그럼 로그 마스터님.”

“응, 길드 마스터.”

“원하신 정보는 내일까지 전부 준비할 수 있을 겁니다. 다만··· 괜찮을까요? 이제 곧 건국 기념회인데.”

자그마치 건국 30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가 코앞에 닥친 상태였다.

외국에서도 여러 손님들이 오는 만큼 왕도의 치안에 대해 왕실의 관심이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과연 이런 시기에 활발한 활동을 해도 되는 것일까?

아무리 그래도 좀 사려야 하는 것이 아닐까?

주페의 물음에 코델리아는 작게 웃었다. 주페의 얼굴을 그대로 마주하며 말했다.

“주페, 나는 로그 마스터야.”

어찌보면 치기어린, 유치하다고까지 할 수 있는 선언.

하지만 그 치기어림이 주페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의 마음 속에는 아직 로그 마스터를 영웅으로 모시는 어린 소년이 살고 있었으니 말이다.

“기대하겠습니다.”

“나도 주페에게 기대할게.”

내일의 정보가 완벽하기를.

찡긋 윙크를 한 코델리아는 자리에서 일어섰고, 유더가 그런 코델리아를 위해 창문을 활짝 열었다.

“내일 봐.”

가볍게 손을 흔든 코델리아가 훌쩍 창밖으로 몸을 날리자 유더 역시 연극풍으로 예를 표한 뒤 창밖으로 몸을 던졌다.

그리고 몇 분 뒤.

푸른 달이 자리한 구역을 빠져나온 유더와 코델리아는 뒷골목에 숨어 들어 얼른 본래 복장으로 갈아입었다.

더 늦기 전에 아델리아의 저택으로 돌아가야만 했기 때문이다.

“업혀.”

“응, 그런데 유더야. 그 전에 하나 궁금한 게 있어.”

“뭔데?”

“진짜 안 사려도 돼?”

로그 마스터가 마구 설쳐도 돼?

왕실 사람들이 왕도 치안 엄청 신경쓸 텐데?

코델리아의 물음에 유더는 너무나 당연하단 얼굴로 말했다.

“당연히 사려야지.”

로그 마스터고 나발이고 도둑 때문에 건국 기념회 직전의 왕도가 시끄러우면 그야말로 국제 망신일 테니까.

“많이 해 봐야 앞으로 두어 번이 한계일걸?”

“겨우?”

“어, 그러니 그 두어 번을 잘 골라서 털어야 해.”

최대한 효과적으로.

로그 마스터의 이름을 널리 알리면서도 호국공과 검은 달에게 타격을 줄 수 있는 방향으로.

“으으음··· 잘 될까?”

코델리아의 물음에 유더는 기다 아니다 답하는 대신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코델리아, 그 말 알아?”

“뭐가?”

“절대 권력은 절대 타락한다.”

하물며 악마 추종자들이랑 붙어먹은 놈들인데 어련할까?

“뒤가 많이 구리다는 거지?”

“드러나면 안 될 것들이 많다는 거고.”

그렇기에 찌를 구석 역시 너무나 많았다.

무얼 찔러야 할지 고민이 될 정도로.

“음, 좋아. 이런 일은 역시 우리 유더에게 맡겨야지. 유유상종이니까.”

“잠깐, 뭐라고요?”

“코델리아는 잘 모르겠어요. 아무튼 빨리 가시죠, 속이 까만 블랙망토님.”

“알겠습니다, 핑크폭탄님.”

서로에게 한 방씩을 주고받은 코델리아와 유더는 썩은 미소를 나눈 뒤 아델리아의 저택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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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56장 - 괴도 #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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