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엔딩메이커-154화 (154/473)

< 제57장 - 로그 마스터 #3 >

&

스칼렛 바이퍼.

영웅전기2의 여러 등장인물들 가운데서도 특히 인기가 많은 팜 파탈 스타일의 여인.

아르곤 제국 출신의 플레이어블 캐릭터를 선택하면 아예 함께 모험을 하는 것도 가능했는데, 그녀와 연관된 퀘스트로는 ‘로그 마스터의 비보 탐색’이 있었다.

‘함께 로그 마스터의 비보를 모으러 다니는 거지.’

유더가 문 크리스탈이 숨겨진 위치와 비밀번호를 알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스칼렛 관련 퀘스트를 클리어하다 보면 결국 마주하게 되는 장소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문제는 결국 적이 된다는 건데.’

어떤 플레이어블 캐릭터로 어떤 식의 플레이를 했든 간에 스칼렛과 적이 되는 상황은 피할 수가 없었다.

‘소울 테이커.’

영혼을 먹는 악마가 봉인된 마검.

로그 마스터의 비보를 모두 모은 스칼렛이 새롭게 도전한 고대 무 제국의 비보.

스칼렛은 마검의 악마를 억눌러 악마 사냥의 도구로 소울 테이커를 사용하려 하지만 결국 실패하여 마검의 지배를 받게 된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로그 마스터.’

스칼렛은 초인적인 정신력으로 마검과의 싸움을 계속하여 결국 마검을 역으로 지배하는데 성공하게 된다.

‘문제는 그게 영웅전기3··· 그것도 후반부에나 일어나는 이벤트라는 거지만.’

즉, 영웅전기2에서 스칼렛은 짤 없이 적이라는 소리였다.

5대째 로그 마스터의 후예.

초대 이후 최초로 다섯 개의 비보를 모두 모은, 진정한 의미의 로그 마스터.

‘그리고 검의 천재.’

영웅전기3 시점의 이야기이기는 했지만, 그녀는 영웅전기 시리즈의 수많은 검사들 가운데서도 정점에 선 사대검사 가운데 하나였다.

재능만 따진다면 루카스 이상인, 어쩌면 막시밀리언에 필적할지도 모를 천재- 아니, 괴물 중의 괴물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미래의 이야기.

지금의 그녀는 이제 막 열아홉 살이 된 애송이에 불과했다.

‘물론 나이는 우리가 더 어리지만!’

환생 후의 나이만 계산하면 유더든 코델리아든 이제 겨우 열일곱살에 불과했으니, 스칼렛보다 두 살이나 연하였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코델리아가 스칼렛의 빈틈을 완벽히 노려 그녀의 전신에 도폭선을 감았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큿?!”

팽팽히 당겨진 도폭선이 전신을 옥죄자 스칼렛이 잇소리를 냈지만 그것뿐이었다. 아직 검을 놓치지도 않았고, 이것만으로는 그녀를 어찌할 수 없었다.

때문에 코델리아는 본능적으로 행동했다.

이것저것 재고 따지는 대신 자신의 육감을 믿고 저질러 버렸다.

“터져라!”

“뭐?!”

유더가 채 무어라 말을 잇기도 전에 코델리아가 뒤로 크게 물러서며 도폭선에 불을 붙였다.

도폭선이 뭔지는 모르지만 불길함을 느낀 스칼렛이 눈을 크게 떴고, 그 순간 도폭선이 폭발했다.

콰가강!

도폭선을 사람 몸에 묶은 뒤 폭발시키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유더는 순간 끔찍한 광경을 떠올렸지만 다행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피가 튀고 몸이 절단되는 대신 전혀 다른 광경이 유더의 두 눈에 들어왔다.

“적룡의 갑주!”

로그 마스터의 다섯 비보 가운데 하나.

마치 체조복처럼 얇고 몸에 딱 달라붙는 형태였지만 괜히 용의 이름이 들어간 물건이 아니었다.

내복 같은 생김새와 달리 엄청난 방어력을 자랑했다.

“너어!”

하지만 스칼렛은 격노해서 외쳤다.

적룡의 갑주가 없었다면 죽을 뻔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폭발의 충격으로 아끼던 겉옷이 다 찢어져서도 아니었다.

머리칼.

피처럼 붉은, 하지만 길고 탐스러운 그녀의 머리칼!

바람에 흩날렸다. 폭발에 휩쓸려 거의 4분의 3 가량이 잘려나갔고, 스칼렛은 순식간에 장발 미녀에서 단발 미녀가 되고 말았다.

“죽어!”

스칼렛이 급히 회전하며 사복검을 크게 휘둘렀다.

반쯤 찢어진 상태로 붙어있던 옷들이 아예 바람에 흩어졌고, 순식간에 세 배 이상 늘어난 사복검이 뱀처럼 코델리아를 노렸다.

츠콰학!

빠르고 정확했다. 이미 공격이 어디로 들어올지 예지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코델리아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간신히 공격을 피할 수 있었다.

“핑크폭탄!”

바로 그때 유더가 소리치며 코델리아를 보았다.

스칼렛을 향해 돌진했고, 코델리아는 유더의 눈빛을 통해 그가 무엇을 바라는지, 무엇을 지시하는지 바로 이해했다.

“웃기지 마!”

스칼렛이 다시 반전하며 사복검을 휘둘렀다. 이번에는 찌르기가 아닌 베기였고, 유더는 궤적을 읽어냈다. 단번에 지면을 박차며 황금빛 선풍과 함께 바람이 되었다.

츠확!

사복검이 허공을 베었다. 물러나는 대신 더 빠르게 돌진해 사복검의 궤적을 등 뒤로 흘려보낸 유더는 단숨에 팔을 뻗어 스칼렛의 허리를 안았다.

“뭐?!”

타격기 계열의 공격이 들어올 거라 생각했던 스칼렛은 당황해서 급히 유더를 쳐내려 했지만 일단 물리적으로 무리였다.

유더가 괴력을 발휘해 허리를 조이자 저도 모르게 비명을 지르며 머리를 뒤로 젖혔다.

그리고 코델리아가 그런 스칼렛을 등 뒤에서 끌어안았다. 재차 당황하는 스칼렛의 얼굴 앞에 문 크리스탈을 들이대며 마력을 발동시켰다.

“문 크리스탈 파워!”

되는대로 주문을 외친 그 순간 달빛이 하늘에서 쏟아져 내렸고, 스칼렛은 두 사람의 목적을 깨달았다.

공간도약.

일단 현재의 위치를 이탈한다!

“잡아!”

“쏴라!”

정원에 모여 있던 인원들이 일제히 활을 당기자 순식간에 수십 발이나 되는 화살들이 하늘을 뒤덮었지만 너무 늦은 행동이었다.

잦아드는 달빛과 함께 유더와 코델리아뿐만 아니라 사이에 낀 스칼렛까지 공간을 뛰어넘었다.

그리고 직후.

마칸 백작의 저택으로부터 수 킬로 미터 이상 떨어진 외성 밖의 공터.

팟!

빛과 함께 공간을 뛰어넘은 유더와 코델리아, 스칼렛이 바닥에 안착했고, 그 순간 스칼렛이 적룡의 갑주를 다시 한 번 발동시켰다.

“화염의 용이여!”

불꽃 속에 살아가는 적룡이여!

주문을 외우자 적룡의 갑주 전체에서 용의 불꽃이 일어났다.

하지만 이미 대비하고 있던 유더와 코델리아였다.

코델리아는 급히 안고 있던 팔을 풀고 뒤로 크게 뛰었고, 유더는 스칼렛을 내동댕이치듯 던져버렸다.

쾅!

땅에서 굉음이 일 정도로 세게 부딪혔지만 스칼렛은 바로 몸을 일으켜 세웠다. 충격을 흡수하는데도 일가견이 있는 적룡의 갑주 덕분이었다.

“크윽······.”

하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피해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일어서기는 했지만 바로 공격을 하기는커녕 고통스러운 얼굴로 이를 악무는 그녀였다.

‘역시! 아직은 우리가 더 강해!’

코델리아의 눈빛에 유더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또래에 비하면 초월적으로 강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스칼렛이었지만, 그건 유더와 코델리아 역시 마찬가지였다.

더욱이 그녀는 지금 혼자였고, 유더와 코델리아는 둘이었다.

‘지금이라면 이길 수 있다.’

사대검사가 되기 전인 그녀를 꺾을 수 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이었다.

스칼렛이 몸을 뒤로 크게 빼며 허리춤의 단검을 뽑아 던졌고, 거의 동시에 코델리아가 도폭선을 휘둘렀다.

츠화악-!

쾅!

도폭선이 허공에서 폭발하며 대기를 뒤흔들었다.

스칼렛이 던진 단검이 코델리아의 뺨을 스쳤고, 격노한 유더가 지면을 박찬 그때 스칼렛이 신속의 날개를 발동시켜 코델리아를 향해 돌진했다.

신속의 날개.

장착자에게 부유 능력뿐만 아니라 급가속 능력까지 부여하는 마도왕국 마젤란의 유물!

그야말로 찰나였다.

고작 몇 미터 따위 신속의 날개에게는 없는 것이나 다름없는 거리였다.

하지만 코델리아였다.

그녀의 본능은 스칼렛이 신속의 날개를 발동시키기도 전에 이미 위험을 감지하고 있었다.

신속의 날개가 발동한 그 순간 척수반사로 가장 효율적인 반격을 행했다.

쾅!

염동력.

거의 폭발하듯 터진 그것이 무시무시한 속도로 돌진해온 스칼렛을 밀어냈다.

돌진해온 속도가 엄청났던 만큼 스칼렛은 크게 튕겨나갔고, 코델리아는 그런 스칼렛을 놓치지 않았다. 눈으로 좇음과 동시에 마법을 발동시켰다.

“매직 미사일!”

주문의 메아리, 더블 캐스팅, 연달아 고속 영창!

파파파파파파팍-!

순식간에 매직 미사일 이십 여개가 만들어져 스칼렛을 추적했다.

문라이트에 들어간 멜리사의 도움 덕분에 매직 미사일의 추적 능력이 거의 배 이상 좋아진 코델리아였다.

쾅! 쾅! 쾅!

스칼렛이 허공에서 몸을 회전시킴과 동시에 사복검을 크게 휘둘러 스스로의 전신을 보호했고, 사복검에 베이고 갈라진 매직 미사일들이 저들끼리 폭발하며 연쇄폭발을 일으켰다.

그리고 그 폭발을 뚫고 스칼렛이 날아올랐다.

새하얀 신속의 날개를 펼쳐 밤하늘로 솟구친 그녀는 잔뜩 흥분한 얼굴로 지상을 내려다보았고, 코델리아는 그런 스칼렛을 노려보았다.

“나쁜 년!”

스칼렛이 대뜸 욕지거리를 토하자 코델리아는 눈을 크게 뜨더니 가운데 손가락을 세우며 응수했다.

“뭐라는 거야, 썅년이!”

“워워, 지나친 욕설은······.”

유더가 저도 모르게 말했지만 이미 스칼렛도 코델리아도 유더는 안중에 없는 상황이었다.

스칼렛이 허공에서 손가락질을 하며 말을 이었다.

“용서 못 해! 너만은 절대로 용서 못 해!”

“네깟 년이 뭔데 날 용서하고 마는데! 엉? 네가 우리 언니야? 선생님이야? 머리에 고추장 바른 멸치 대가리 같은 게!”

폭풍처럼 쏟아지는 욕지거리에 유더는 순간 흠칫했지만 이내 깨달았다.

근래 들어 욕을 하는 일이 줄어서 그렇지, 코델리아는 본래 욕을 입에 달고 사는 욕쟁이였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런데 코델리아, 너도 빨간 머리잖아.’

유더가 차마 입 밖으로 내지 못 한 태클을 삼킨 그때, 스칼렛이 다시 소리쳤다.

“으아아! 내가! 내가! 그래! 로그 마스터라 나서는 것까지는 용서할 수 있어! 이해할 수 있어! 로그 마스터는 밤을 걷는 자라면, 달빛과 함께 하는 자라면 누구나 선망하는 자리이니까!”

쏟아내듯 말한 스칼렛은 그대로 주먹을 부르쥔 채 부들 부들 떨더니 다시 코델리아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소리쳤다.

“하지만! 하지만! 핑크폭탄이라고?! 로그 마스터 이름이 핑크폭탄이라고?! 다른 건 다 용서해도 그것만은 용서 못 해!”

그랬다.

바로 그것이었다.

스칼렛이 미친 듯이 분노한 이유.

그녀가 제국에 돌아가는 대신 왕도행을 선택한 이유.

핑크폭탄이라니.

로그 마스터의 이름이 핑크폭탄이라니!

“로그 마스터의 품위가 있지! 격 떨어지게 시리 핑크폭탄이 뭐야! 핑크폭탄이!”

스칼렛의 혼이 실린 지적에 코델리아는 이를 악물 뿐 바로 반격하지 못 했다.

사실 코델리아의 생각도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침묵은 그리 길지 않았다.

코델리아는 다시 주먹을 불끈 쥐며 욕지거리를 쏟아냈다.

“이게 어디서 남의 이름 가지고 지랄이야! 어?! 그리고 까도 내가 까! 네가 뭔데 우리 집 유··· 아무튼! 네가 상관할 바 아니거든?!”

구리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정말 구리다.

그야말로 최악의 네이밍 센스다.

하지만 그래도 유더가 지은 이름이었다.

코델리아 자신이 까는 것이라면 모를까, 남이 까는 것은 용납할 수 없었다.

‘까도 내가 까!’

네가 뭔데 우리 집 유더를 까는데!

의지를 굳힌 코델리아는 더 이상 왈가왈부하는 대신 빛의 날개를 펼치며 날아올랐고, 코델리아의 광익에 당황한 스칼렛은 눈을 크게 떴다.

“신속의 날개?!”

“더 좋은 거거든?!”

신속의 날개는 마젤란의 하이엘프들이 천사의 날개를 모방해 만든 모조품이었으니까!

코델리아가 마치 화살이라도 된 것처럼 똑바로 돌진해오자 스칼렛은 사복검을 매섭게 휘둘렀다.

미래의 사대검사답게 이제 겨우 스무살 남짓임에도 불구하고 검에 실린 기운이 무시무시했다.

하지만 코델리아는 두려워하지 않았다. 막거나 피하기는커녕 그대로 돌진만을 계속했다.

츠콱!

사복검이 코델리아를 베었다.

아니, 베어야 했지만 그러하지 못 했다.

요정의 발걸음.

오늘치 마지막 발걸음을 사용해 검격을 돌파한 코델리아는 스칼렛의 허리를 끌어안았고, 그대로 몸을 크게 회전시키며 지면을 향한 수직 비행을 감행했다.

“미친?!”

“연화!”

스칼렛을 끌어안은 코델리아가 회전하며 지상으로 향했다.

머리부터 급강하하는 무지막지한 비행에 스칼렛은 비명조차 지를 수 없었다.

그리고 찰나.

코델리아는 지면과 충돌하기 직전에 스칼렛을 놓았다. 무지막지한 중력을 거스르며 솟구쳐 올랐다.

츠콰학-!

쿵!

광익이 대기를 가른 그때 요란한 굉음과 함께 지면이 뒤흔들렸다.

지면과 충돌한 스칼렛이 숨넘어가는 소리를 내며 꿈틀거렸다.

죽지는 않았다.

하지만 온 몸이 저렸고,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다.

제아무리 적룡의 갑주라 한들, 이 정도 타격을 완전히 무위로 돌릴 수는 없었다.

“커헉··· 컥.”

억지로 숨을 토한 스칼렛이 이를 악물고 몸을 일으켜 세웠지만 거기까지가 한계였다.

무모한 비행을 감행한 덕분에 몸에 무리가 온 것은 코델리아 역시 마찬가지였지만, 둘 사이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존재했다.

혼자가 아니었으니까.

지금 이 자리에 자리한 것은 두 사람만이 아니었으니까.

“끝내.”

코델리아가 말했고, 유더는 이미 스칼렛에게 접근해 있었다. 필사적으로 사복검을 휘두르는 스칼렛의 공격을 질풍이십사보로 거뜬히 피한 뒤 그녀의 복부에 손바닥을 올렸다. 충격을 흡수하는 적룡의 갑주 너머로 직접 기운을 때려 박았다.

태양전심격.

응축한 태양의 힘을 적의 내부로 밀어 넣는 구극태양신공의 오의 가운데 하나.

검은 태양의 기운이 적룡의 갑주를 통과해 스칼렛의 복부를 강타했다.

< 제57장 - 로그 마스터 #3 > 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