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58장 - 공작가의 초대장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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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스펜서 공작가의 초대인가.”
초대장을 확인한 바이엘 백작과 게일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두 사람은 아직 유더와 코델리아가 다리안 왕녀와 친해진 사실을 알지 못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같은 반응을 보였다.
초대장이 와서 다행이다.
아니, 초대장이 오는 것이 당연한다.
안도와 자긍심.
유더를 바라보는 두 사람의 얼굴에 어린 흐뭇함.
‘뭐지?’
영웅전기의 온갖 것들을 꿰고 있는 유더였지만 스펜서 공작가의 초대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별로 없었다.
이 시기에 왕도를 방문할 수 있는 플레이어블 캐릭터 중에서 딱히 스펜서 공작과 접점을 가질만한 인물이 없었기 때문이다.
‘원작 흐름대로면 유더는 아직도 집에서 골골거리고 있을 때니까.’
코델리아는 대외적 실종 상태로 북부를 헤매고 있고.
루카스의 경우엔 이 시기에 왕도를 방문할 수 있긴 했지만 스펜서 공작과 딱히 접점을 만들지는 못 했다.
‘일단 스펜서 공작부터가 아파서 골골 거리고 있었으니까.’
와병 중에 어찌 손님을 초대하겠는가.
더욱이 루카스는 스펜서 공작에게 있어 북부에서 올라온 생면부지의 애송이에 불과했다.
굳이 병석에서까지 마주해야 할 귀한 손님이 아니었다.
‘그런데 상황이 달라졌어.’
본래대로라면 허탕치고 귀환했어야 할 다리안 왕녀가 유더와 코델리아 덕분에 칠색초를 구하게 되었다.
즉, 스펜서 공작이 오랜 지병에서 해방되어 건강을 회복했다는 이야기였다.
‘그러니까 부를 거라 생각은 했는데.’
스펜서 공작에게 있어 유더와 코델리아는 오랜 지병을 낫게 해준 은인들인 동시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정도로 사랑하는 다리안 왕녀의 친구들이었으니까.
‘적당한 티파티 정도를 예상했었단 말이지.’
그런데 막상 도착한 것은 티파티 초대장이 아니었다.
그보다 좀 더 오글거리면서 으리으리한 이름을 가진 행사.
‘검의 연회.’
바이엘 백작과 게일이 저리 흐뭇한 표정을 짓는 이유.
“그립구나. 나도 예전에 스펜서 공작이 연 검의 연회에 참가한 적이 있지.”
“예, 아버지. 저도 참가한 기억이 납니다.”
바이엘 백작과 게일이 부자간의 훈훈한 눈빛을 나누자 아델리아는 돌연 잰체하며 콧대를 세웠다.
“흥흥, 당연한 일이죠. 역시 게일 공자와 아버님이세요.”
마치 자기 일인 것처럼 자랑하듯 말하는 아델리아의 모습에 에드워드는 끌끌끌 혀를 찼고, 코델리아는 고개를 갸웃갸웃 거렸지만 유더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똑같네.’
역시 자매.
코델리아의 평소 모습과 거의 똑같은 아델리아였다.
‘뭐가 똑같은데?’
‘있어, 그런 게.’
‘치, 맨날 뭐가 있대.’
코델리아가 입술을 삐쭉였지만 유더는 무어라 더 말을 보태지는 않았다.
‘내 자랑 할 때마다 네가 그렇다는 말을 어떻게 하니.’
눈빛도 마주치지 않은 상태로 홀로 생각한 유더는 작게 웃은 뒤 다시 게일과 바이엘 백작을 보았다.
“아버지, 검의 연회가 무엇이죠?”
사실 대강 짐작 가는 바가 있기는 했지만 짐작은 어디까지나 짐작에 불과했다.
해답을 구할 수 있는 마당에 굳이 불확실한 상태로 넘어갈 필요가 없었다.
유더의 물음에 바이엘 백작은 빙긋이 웃으며 답했다.
“후훗, 검의 연회는 이름 그대로 검들이 모이는 연회를 말한다. 정확히는 젊고 유망한 검사들이 모이는 연회지.”
새삼 검사라는 사실을 자각이라도 한 것처럼 허리춤의 애검을 부드럽게 어루만진 바이엘 백작은 천천히 말을 이었다.
“유더 너도 알겠지만 스펜서 공작가는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가진 검의 명가다.”
“예, 왕국보다도 그 역사가 더 긴 가문이니까요.”
스펜서 공작가는 세일룬 왕국의 건국에 크게 기여한 공신 가문들 중에 하나로, 당대의 스펜서 공작은 건국왕 라이온 D 세일룬의 의형제이기도 하였다.
‘사실상 건국 초기의 무력을 담당한 가문.’
다른 공신 가문 중 하나인 보탄 공작가가 병력을 제공했다면 스펜서 공작가는 선봉과 지휘를 맡을 강력하고 뛰어난 검사들을 제공하였다.
덕분에 여러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건국왕 라이온 D 세일룬은 스펜서 공작가의 공을 높이 사 특별한 명예직을 수여하였다.
‘검의 스승.’
왕국에 적을 둔 모든 검사들을 이끄는 자.
건국 당시의 스펜서 공작은 검의 스승이란 이름을 부여받기에 부족함이 없는 자였다.
누가 뭐래도 부정할 수 없는 왕국 최고의 검사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 후대는 그렇지 않았다.
뛰어난 검사들은 많았지만, 왕국 최고를 자부할 수 있을 정도의 실력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여전히 검의 명가.’
분명 공작가의 직계에서는 왕국 최고의 검호가 나타나지 않았다.
더 이상 스펜서 공작가는 왕국 최고의 검사를 배출하는 가문이 아니었다.
하지만 '스펜서 검문'은 달랐다.
스펜서 검문에서는 매 세대마다 적어도 한 명 이상의 검호를 배출하였으니 말이다.
‘검문.’
검을 배우고 가르치는 집단.
과거의 스펜서 공작이 ‘검의 스승’이란 명예직에 가진 자긍심과 책임감이 만들어낸 결과물.
“분명 오랜 세월이 지났다. 과거에도 명예직이었던 ‘검의 스승’은 지금 시대에 와서는 사실상 사라진 것이나 다름이 없지. 하지만 스펜서 공작가는 여전히 검의 스승으로서 세일룬 왕국 전체의 무력을··· 정확히 말하자면 검사들의 실력을 끌어올려야 한다는 책임감을 버리지 않았다.”
바이엘 가문에 있어 루카스 흐레스벨그는 타인이었다.
혈통이 이어진 것도 아니고, 검술이 이어진 것도 아닌 완벽한 타인.
하지만 스펜서 공작가에게는 아니었다.
루카스는 세일룬 왕국의 검사였으니 말이다.
“검의 연회는 장래가 유망한 전국의 어린 검사들을 한 자리에 모으는 행사를 말한다. 우물 안 개구리인 촌구석 유망주들에게 세상이 얼마나 넓은지를 알려주는 행사지.”
바이엘 백작이 약간은 자조적인 목소리로 말하자 체이스 백작이 흥하고 코웃음을 쳤다.
“검의 연회에 나가 다른 유망주들을 다 박살낸 양반이 할 소리는 아닌 것 같다만. 아, 설마 돌려서 말하는 자기 자랑이었나?”
오랜 친구이기에 할 수 있는 비난에 바이엘 백작은 기분 좋은 민망함을 느끼며 말했다.
“저 친구가 좀 과장하는 거니 흘려 듣거라.”
“흠, 과장이라.”
사실 예나 지금이나 바이엘 백작은 비슷한 나이대로 한정한다면 세일룬 왕국 최강의 검사였다.
다른 십검호들이 있기는 했지만, 나이대가 조금씩 달랐으니 말이다.
‘흐레스벨그 백작이 아버지보다 거의 열 살 쯤 연하였지?’
이 정도 나이차면 유망주 시절을 같이 보내고 싶어도 보낼 수가 없었다.
“어찌되었든, 검의 연회는 분명 명예로운 자리다. 초대받았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자긍심을 가져도 될 정도로 말이다.”
체이스 백작이 재차 놀리기 이전에 얼른 말을 마무리한 바이엘 백작은 게일을 돌아보았다.
추가 설명을 요구하는 그 눈빛에 게일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 말씀대로다. 검의 연회에 초대받았다는 것은 곧 검의 스승인 스펜서 공작가가 인정한 세일룬 왕국의 유망주라는 뜻이니 말이다.”
언제나처럼 똑 부러지는 게일의 설명이었지만 어쩐지 모르게 뺨이 살짝 붉었고, 유더는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물론 우리 게일 공자님도 검의 연회에 참석하셨고 말이야.”
아델리아가 슬쩍 게일의 팔을 끌어안으며 말하자 게일은 더더욱 얼굴을 붉혔고, 바이엘 백작의 얼굴에는 흐뭇함이 번졌다.
“그런데 이제 유더 너까지 초대를 받았구나.”
스펜서 공작가에서 온 것은 검의 연회에 유더와 그 약혼녀인 코델리아를 초대한다는 서신이었으니까.
“정말 좋구나. 정말 좋아.”
기분 좋은 얼굴로 웃는 바이엘 백작의 눈시울이 아주 약간이지만 붉어졌다.
태어날 때부터 병약했던 터라 왕도는커녕 바깥출입 자체를 거의 하지 못 하던 유더가 늘 마음에 걸렸던 바이엘 백작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이렇게나 건강해졌을 뿐만 아니라 검의 연회에까지 초대를 받다니.
그야말로 감개무량한 기분이었다.
“흥, 스펜서 공작가에도 눈이란 게 있으니 당연한 일이지.”
체이스 백작이 코웃음을 치며 말하자 그보다 조금 더 작고 귀여운 코웃음들이 연이어졌다.
“흥, 맞아요. 바이엘 백작가의 검사들을 알아보지 못 한다면 검의 스승이라 자부할 수 없겠죠.”
“흥흥, 스펜서 공작가가 뭘 좀 아네요.”
“이럴 때마다 묘한 소외감을 느낀단 말이지.”
게일의 팔을 끌어안고 흥흥거리는 아델리아와 유더 옆에서 잰체하는 코델리아, 그리고 구석에 처박혀 홀로 앉은 에드워드까지.
체이스 백작가 삼남매의 발언에 바이엘 백작가의 삼부자는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과연, 귀여움의 피가 흐르는 체이스 백작가.’
어쩜 하나같이 이렇게 귀여울까.
‘아, 에드워드는 빼고.’
본인도 그 사실에 소외감을 느끼는지 구석에서 홀로 소외감을 씹고 있었으니까.
“아무튼 유더, 다녀오거라. 검의 연회에 초대된 이들은 모두 왕국의 유망주들이니 안목을 크게 넓힐 수 있을 거다.”
“흥, 과연 그럴까?”
바이엘 백작의 덕담에 체이스 백작이 초를 쳤지만 이 자리에 있는 누구도 불쾌함을 느끼지 않았다.
체이스 백작이 무슨 의도로 저런 말을 했는지 모두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 집 유더가 안목을 넓히는 게 아니라, 유망주들 안목을 넓혀줄 거니까.’
지금의 유더는 비정상적으로 강했으니까.
그리고 체이스 백작을 비롯한 모두는 유더의 강함을 이미 한 번 이상 목격했으니까.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위로 자꾸만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주체지 못한 코델리아가 재차 흥흥거리며 좋아했다.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모르는 한 가지 사실을 코델리아는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환골탈태도 했지롱.’
오문도 연 데다가 구극태양신공도 전수받았고.
물론 경지에 오른 강자인 바이엘 백작과 체이스 백작인 터라 유더를 마주했을 때 이미 유더가 왕도로 떠나기 전보다 훨씬 더 강해졌다는 사실 자체는 간파했을 터였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얼마나 강해졌는지, 그리고 환골탈태의 결과 무엇이 달라졌는지 까지는 아무리 경지에 오른 그들이라 해도 단번에 파악할 수 없었다.
‘그래도 아버님은 뭔가 좀 더 느끼신 것 같지만.’
사실 한 달인가 만에 키가 거의 10cm 가까이 자랐으니 그냥 문외한들이라도 유더의 육신이 강해졌다는 것 정도는 쉬이 알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바이엘 백작은 육체의 강화를 넘어, 유더의 몸 안에서 일어난 변화를 어느 정도 눈치 챈 것 같았다.
환골탈태를 통해 재정립된 기의 순환로.
그로 인해 유더가 손에 넣은 것들.
단순히 효율성이 높아진 것 이상의 변화.
“흥흥, 흥흥흥.”
기분이 한껏 좋아진 코델리아의 흥흥거림에 모두의 얼굴에 다시 미소가 번졌다.
약혼자 자랑에 흥이 오른 코델리아의 모습이 무척이나 귀엽고 사랑스러웠기 때문이다.
‘빨리 날을 잡아야겠어.’
‘굳이 성인식을 치를 때까지 기다리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안 돼, 아무리 그래도 결혼은 내가 더 빨리 해야지.’
‘귀엽구나.’
동상이몽이 펼쳐지는 가운데 유더가 입을 열었다.
“그럼 아버지, 아버지께서는 아버님과 함께 왕궁으로 가시는 겁니까?”
“그럴 생각이다. 검의 연회는 젊은 유망주들의 모임이니까. 나와 체이스 백작은··· 나중에 기회가 되면 스펜서 공작 각하를 뵐 수 있겠지.”
“흥, 굳이 볼 것까지야.”
북부12가문에 속하는 바이엘 백작가와 체이스 백작가는 굳이 따지자면 귀족파에 가까웠지만, 아무래도 북부의 귀족이다보니 딱히 스펜서 공작가를 중심으로 한 귀족파에 소속감을 가지는 것은 아니었다.
왕도의 귀족파 역시 마찬가지였고 말이다.
“나와 여기 체이스 백작, 그리고 에드워드는 왕실에서 마련해준 숙소로 오늘 옮길 예정이다. 게일은··· 아델리아와 함께 이곳에 남기로 했지?”
“예, 아버님. 그럴 생각입니다.”
게일이 옅은 미소를 그리며 답하자 아델리아가 뺨을 발갛게 붉히며 시선을 살짝 내리 깔았다.
누가 봐도 부끄러워하는 그 모습에 에드워드는 현실 오빠답게 얼굴을 구겼고, 코델리아 역시 현실 여동생답게 눈을 가늘게 떴다.
‘뭔데, 둘만 남아서 뭘 하려는 건데?’
엄밀히 말하면 베키도 있으니 완전 단 둘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코델리아는 열심히 비난의 시선을 보냈지만 아델리아는 개의치 않았다.
몇 번이나 강조했듯이 아직 미성년인 코델리아와 달리 아델리아 자신은 성인이었으니 말이다.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꺄아.’
체이스 백작가의 영애답게 아델리아의 얼굴에는 생각이 드러났고, 에드워드와 코델리아는 더욱 더 썩은 표정을 지었다.
바이엘 백작과 체이스 백작은 흐뭇한 표정을 지었지만 말이다.
“아무튼··· 그럼 저와 코델리아는 스펜서 공작가에 방문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아마 짧으면 이틀, 길면 사흘 정도 머물게 될 거다. 용무가 끝나면 왕실로 오려무나.”
“예, 아버지.”
즉답한 유더는 여전히 썩은 표정을 짓고 있는 코델리아의 어깨를 슬쩍 건드렸고, 코델리아는 유더를 올려다보았다.
‘왜?’
‘그냥.’
빙긋 웃은 유더는 고개를 갸웃하는 코델리아에게 가볍게 손을 내밀었고, 코델리아는 반사적으로 그 손을 잡았다.
유더의 에스코트가 이제는 너무나 익숙했으니 말이다.
그리고 네 시간 남짓 뒤.
짐을 꾸려 교외에 위치한 스펜서 공작가에 도착한 유더와 코델리아는 무척이나 반가운 얼굴을 마주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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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58장 - 공작가의 초대장 #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