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59장 - 검의 연회 #3 >
&
루시안 디올.
디올 백작가의 장남으로 태어나 온갖 호사를 누린 그는 유더가 딱 예상한 대로의 남자였다.
성격이 나쁘고, 제법 영악하며, 나름대로 검의 재능을 타고난 남자.
그런데 이런 종류의 망나니들이 술과 여자에 빠져 허송세월하는 것과 달리 그는 제법 진지하게 검의 길을 걸었다.
매일 이른 아침부터 수련에 매진했고, 패거리와 술을 마시고 놀아도 밤을 새는 일은 결코 없었다.
약혼녀인 로레인은 의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루시안의 성실함을 높이 샀지만, 사실 여기에는 숨겨진 이유가 하나 있었다.
‘두려움.’
이십 년 남짓한 루시안의 인생에서 가장 인상적인 일을 꼽으라면 우열을 가릴 수 없는 두 가지가 있었는데, 하나는 약혼녀인 로레인을 만난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다섯 살 때 처음으로 ‘아버지보다 높고 강한 사람’을 만난 것이었다.
‘보탄 공작.’
언제나처럼 저택 안을 활보하던 루시안은 우연찮게 아버지와 보탄 공작이 대화하는 장면을 목격하였고, 큰 충격에 빠졌다.
보탄 공작이 딱히 이상한 행동을 한 것이 아니었다.
루시안이 놀란 것은 전적으로 아버지인 디올 백작 때문이었다.
‘아버지?’
어린 시절의 루시안에게 있어 디올 백작은 신이나 다름없는 존재였다.
가문 내에서 그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졌고, 그 권력을 언제나 마음껏 휘둘렀다.
메이드들은 물론이거니와 집사들, 심지어는 어머니조차도 그런 아버지 앞에 서면 늘 두려움에 떨며 눈치를 봐야만 했다.
루시안은 그런 아버지가 좋았다.
언젠가 자신 역시 아버지와 같은 사람이 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디올 백작.
신과 같은 아버지.
그런데 그날은 아니었다.
언제나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계셨던 아버지가 집사 영감처럼 연신 허리를 굽혔다.
비굴하게 머리를 조아렸고, 간사한 미소를 지으며 보탄 공작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루시안은 그 날 깨달았다.
아버지는 신이 아니며, 그 자식인 자신 역시 신이 아니라는 사실을.
세상에는 더 강하고 대단한 이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루시안이 여느 망나니들과 다르게 상대를 봐가며 나름 영악하게 머리를 굴리는 것은 그 때문이었다.
알고 있었으니까.
자신이든 아버지든 뭐든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신이 아니라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으니까.
충격적인 광경을 목격한 이후 루시안은 노력이라는 것을 시작했다.
너무나 두려웠기 때문이다.
강해져야 한다.
계속 강자의 위치에 서야 한다.
보탄 공작과 같이 자신보다 더 위대한 존재들에게 버림받지 않기 위해서는 능력 있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자신보다 대등하거나 미천한 것들 위에 군림하기 위해서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루시안의 근본은 변하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약자를 괴롭히기를 좋아했고, 그를 통해 자존감을 채웠다. 자신이 아직 강자라는 사실을 끊임없이 확인하고 싶어 했다.
‘십검호의 자식들.’
그것도 그냥 검호가 아닌 북부12가문을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는 자들의 아이들.
루시안은 본능적인 위기감을 느꼈다.
때문에 언제나와 같이 생각했다.
찍어 눌러야 한다. 우위를 차지해야 한다.
그리고,
그리고.
‘얼마나 좋을까.’
저것들을 찍어 누르면.
자신들이 강자라 생각하고 살아온 저것들에게 사실 약자라는 사실을 주입시킬 수 있다면.
하지만 처음 루카스를 보았을 때는 섣불리 움직이지 않았다.
루카스 흐레스벨그는 쉬이 건들만한 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변경백.’
그는 갈까마귀들을 이끄는 흐레스벨그 백작의 장자였다.
아무리 보탄 공작의 총애를 받는 디올 백작가라 해도 함부로 건들 수 있는 가문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결국 개인적인 능력으로 승부를 보아야 했는데, 그것 역시 녹록치가 않았다.
‘루카스 흐레스벨그.’
왕도에까지 그 이름이 알려질 정도로 뛰어난 검의 천재.
아직 자신보다 네 살이나 어렸으니, 질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하지만 쉬이 이길 수 있다는 생각 역시 들지 않았다.
그런데 그러던 차에 새로운 얼굴들이 나타났다.
유더 바이엘과 코델리아 체이스.
루카스와 마찬가지로 왕도에까지 소문이 났지만, 그 소문의 내용이 전혀 달랐다.
한쪽은 검의 천재.
다른 둘은 사랑 놀음에 빠진 어린 아이들.
그런데 그것만이 아니었다. 그래도 비교적 멀쩡한 코델리아와 달리 유더는 반 년 전까지만 해도 바깥출입도 제대로 하지 못 하던 병자였다.
‘만만해.’
이 정도면 얼마든지 찍어 누를 수 있었다. 그래서 바로 시비를 걸었다.
루카스가 검을 뽑더라도 세 치 혀를 놀려 유더와의 대련을 유도해낼 심산이었다.
‘보고 싶다.’
저 잘생긴 얼굴이 엉망진창으로 일그러지는 것을.
단순히 외모만이라면 로레인과 필적하는- 아니, 어쩌면 이상일지도 모를 코델리아 체이스가 자신의 사랑이 사실 약해빠진 병신이라는 것을 깨닫고 엉엉 우는 모습이.
가학적인 상상에 짜릿함을 느낀 루시안은 더욱 열심히 혀를 놀려냈고, 루카스는 예상대로 검까지 뽑아들었다.
그런데 그 다음부터가 틀어지고 말았다.
‘건방진 놈.’
유더 바이엘.
아직 세상을 모르는 놈이 분명했다.
하늘 위에 하늘이 있음을 모르는, 어린 시절의 자신과 같은 존재임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가르쳐주마.
네가 얼마나 미천한 존재인지를.
검의 연회의 목적은 견문을 넓혀주는 것이었으니, 연장자로서 한 번 이끌어주마.
지면을 박차며 돌진하는 루시안의 머릿속에 패배라는 두 글자는 존재하지 않았다.
언제나처럼 승리하여 약자를 능멸하는 자신을 꿈꾸었다.
그리고.
“어?”
첫 검을 휘두른 순간 루시안은 저도 모르게 멍한 소리를 내었다.
유더가 검을 맞받아치든 피하든 바로 연격을 퍼부으려 했거늘,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아차차, 내가 깜박한 게 하나 있어서.”
순식간에 열 걸음 이상을 물러난 유더가 능청스럽게 웃으며 말하자 루시안은 눈매를 날카로이 했다.
다른 건 몰라도 일단 보법 하나만큼은 상당한 수준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루시안 공자, 우리 약속 하나 합시다.”
“약속? 무슨 약속.”
“루시안 공자가 지면 코델리아에게 무릎 꿇고 사과하시죠. 로레인 양도 함께. 진심을 담아.”
“뭐야?”
“애당초 이 대련이 시작된 이유는 루시안 공자가 건방진 혀를 놀려 코델리아를 욕보였기 때문이니까요. 결자해지라는 말이 있듯이, 그렇다면 루시안 공자가 마무리를 지어야하지 않겠습니까?”
“미친놈.”
루시안은 욕지거리를 토했고, 왕도의 유망주들은 소리내어 웃었으며, 남부의 유망주들은 지금의 상황 자체를 재미있어 했다.
그리고 북부의 유망주들은 생각했다.
‘아니, 우리도 욕먹었는데?’
‘애당초 우리가 먼저 욕먹은 거 아냐?’
하지만 유더에게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유더에게 중요한 것은 코델리아였다.
“약속하시겠습니까?”
“그럼 네가 지면?”
“루시안 공자와 로레인 양 앞에서 제가 엎드려 빌도록 하죠. 건방지게 굴어서 죄송하다고.”
“아니, 그것만으로는 부족해. 네 약혼녀도 함께다.”
“미친 새끼, 좀 봐줄까 했더니 죽고 싶어서 안달이 났구나?”
“뭐, 뭐야?”
“아무튼 약속하시겠습니까?”
유더가 언제 욕지거리를 토했냐는 듯 단정한 미소를 지으며 묻자 루시안은 기가 차서 웃음을 흘렸다.
너무 어처구니가 없으면 웃음만 나온다더니 딱 그대로였다.
“미친 새끼, 조져주마.”
“하실 수 있다면야.”
그 순간 루시안은 결심했다.
적당히 혼내주는 선에서 그치려 했거늘, 그 정도로는 안 되겠다고.
적어도 얼굴에 칼자국 하나 정도는 박아줘야겠다고.
“네가 자초한 일이다.”
“그러게, 네가 자초한 일이지.”
유더는 다시 빙긋 웃었고, 루시안은 다시 지면을 박찼다. 그리고 이번에는 유더 역시 피하지 않았다.
그리고 직후.
루시안이 섬전 같은 찌르기가 펼쳐진 그때.
“어?”
루시안은 다시 멍한 소리를 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까와 달랐다.
루시안 자신이 허공을 날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머리부터 지면을 향해 추락하고 있었다.
메치기.
루시안이 찌르기를 펼친 그 순간 유더는 질풍이십사보로 단번에 거리를 좁혔다. 찌르기를 펼친 루시안의 오른손을 붙잡은 뒤 바로 메치기를 펼쳤다. 괴력을 발휘해 머리 위로 루시안을 넘겨 버렸다.
그리고 다시 직후.
루시안이 하늘과 땅의 위치가 정반대가 되었음을 자각했을 때.
루시안은 머리부터 땅에 떨어지지 않았다.
머리가 땅에 닿기 직전에 다시 하늘과 땅위 위치가 바뀌었다. 무언가가 목 뒤를 밀어준 덕분에 등부터 바닥에 떨어질 수 있었다.
“아.”
그리고 깨달았다.
목 뒤에 닿은 것은 유더의 발등이었다.
메치기에 당해 머리부터 떨어지던 자신의 목 뒤에 유더가 발을 가져다 댄 것이었다.
“한 판.”
유더가 빙긋 웃으며 말했고, 그 순간 지켜보던 이들 사이에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당혹, 감탄, 두려움.
“뭐야, 뭐가 어떻게 된 거야?”
“머리 뒤로 아예 던져 버린 거야?”
“아니, 그런데 마지막에 발로 받아준 거야? 머리부터 떨어지지 않게? 그게 가능해?”
솔직히 제대로 보지 못 했다.
유더가 루시안의 품에 파고드는 것도, 단번에 넘긴 뒤 발을 놀리는 것도.
‘역시 유더 공자.’
이 자리에 있는 이들 가운데 유일하게 모든 동작을 지켜볼 수 있었던 루카스는 감탄하고 또 감탄했다.
그야말로 초인적인 유더의 신체능력이었기 때문이다.
‘그것만이 아니야.’
루시안의 검술은 진짜였다. 그의 찌르기는 루카스 자신도 가벼이 여길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그런데 유더는 그 공격을 정확히 읽어냈을 뿐만 아니라 이용까지 하였다.
‘오싹오싹해.’
유더의 초인적인 능력에 새삼 감탄해서만이 아니었다. 다른 이유가 하나 더 있었다.
“일어나, 계속 해야지.”
유더가 바닥에 쓰러진 채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루시안에게 말했다.
그리고 루시안은, 마치 비 오듯 땀을 흘리기 시작한 루시안은 마치 도망치듯 재빨리 일어선 뒤 유더와의 거리를 벌렸다.
그리고 깨달았다.
식은땀이 비 오듯 흐르는 이유.
자신이 겁을 먹은 이유.
‘발로 찰 수 있었어.’
발등을 목 뒤에 대주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걷어찰 수 있었다.
그리고 그랬다면, 정말로 그런 일이 일어났다면.
아니, 그 모든 것을 떠나 애당초 메쳐진 상대의 머리를 발로 차려는 그 악랄하기까지 한 발상.
‘보탄 공작.’
유더는 보탄 공작이었다.
루시안 자신이 어찌할 수 없는 강자였다.
루시안은 깨달아 버렸고, 그렇기에 움직일 수 없었다.
“루시안 공자?”
“루시안?”
등 뒤에서 왕도의 유망주들이 저마다 목소리를 내었다.
개중에는 로레인의 목소리도 있었지만 루시안은 반응할 수 없었다.
유더에게서 잠시라도 눈을 돌리는 것은 불가능했다.
두려웠으니까.
루시안 자신은 지금 뱀 앞에 선 개구리였으니까.
유더는 그런 루시안의 반응에 눈을 살짝 가늘게 떴다. 그리고 조금 더 마음을 써주기로 했다.
‘은인이기도 하니까.’
새삼 뺨을 한 번 어루만진 유더는 창백하게 변한 루시안의 얼굴을 마주하며 나직이 말했다.
“루시안 공자, 제가 검을 뽑게 하지 마십시오.”
사실 검을 뽑으면 지금 당장은 더 약해질 수도 있는 유더였지만, 그 사실을 아는 것은 코델리아 뿐이었으니까.
유더의 경고는 무척이나 효과적이었다.
맨손으로도 이렇게 강한데 아예 검까지 뽑아들면 어떻게 될까.
지켜보던 유망주들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마른침들을 삼켜댔고, 루시안은 고개를 숙였다.
“내가 졌다. 아니, 져, 졌습니다.”
기가 다 빠진 루시안의 패배 선언에 유더는 무어라 답하는 대신 로레인을 돌아보았다.
움찔하는 그녀에게 미소를 지으며 다시 한 번 눈짓했다.
약속을 이행해라.
코델리아에게 건방지게 입을 놀린 것을 후회하며 사죄해라.
유더의 눈빛은 단호했고, 로레인은 더 이상 견디지 못 했다. 입술조차 제대로 깨물지 못 한 채 루시안을 향해 발걸음을 내디뎠다.
함께 코델리아 앞에 무릎 꿇기 위함이었다.
생각지도 못 한 굴욕이었지만, 약속은 약속이었으니 말이다.
‘의외로 개념 찬 구석들이 있단 말이지?’
아니, 그만큼 자기보신에 강한 것일까.
어느 쪽이든 만족스러운 유더였다.
‘검의 연회는 이제 시작이니까.’
설마 이거 하나로 코델리아를 욕한 죄가 사해질 거라 생각하지는 않겠지?
덤으로 루카스를 욕한 것도 조금은.
사과 말고는 아직 뜯어낸 것도 없잖아?
빙긋 미소 지은 유더는 지금까지 일부러 바라보지 않았던, 하지만 이제는 바라봐야만 하는 코델리아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무척이나 궁금했기 때문이다.
‘살짝 떨리네.’
이게 뭐 대단한 일이라고.
흠흠 헛기침을 토한 유더는 코델리아를 마주하였고, 저도 모르게 웃고 말았다.
코델리아가 초점 없는 눈으로 눈을 깜박이며 서 있었기 때문이다.
‘생각에 빠졌구만.’
무언가 깊이 생각하기 시작할 때- 정확히는 홀로 대책없는 망상에 빠질 때 코델리아가 곧잘 짓는 표정이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
궁금한 것도 궁금한 것이었지만, 살짝 두렵기도 했다.
그리고 이러한 유더의 마음도 모른 채 코델리아는 여전히 망상 속에서 번민하고 있었다.
‘뭐지? 뭐지뭐지뭐지?’
코델리아 자신이 뺨에 키, 키, 키스를 해준 거야 뭐, 그냥 별 거 아닌 일이었다.
그냥 저쪽이 키스를 했으니 이쪽도 뭐 구색은 맞춰야 했으니까.
외국에서는 친한 사람끼리 인사로도 하는 게 볼 키스였으니까.
‘맞아, 맞아. 나랑 유더가 친하긴 하지.’
그래도 약혼자잖아? 이 정도는 쌉가능이지. 아무 것도 아니지.
‘힘내라고 한 것도 뭐··· 응원해야 하잖아?’
응응, 응원.
응원하는 거니까 힘내라고 하는 게 당연하지.
사실 유더가 질 거라는 생각은 아예 하지도 않았지만, 솔직히 응원의 필요성이 있나 싶을 정도의 격차가 있다는 사실 역시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응원은 해야 하니까.
유더가 지는 건 싫으니까.
이겼으면 하니까.
언니가 자꾸 이상한 걸 보여준 탓에 때때로 유더를 보면 심장이 두근두근 거렸으니까.
‘아니지, 이건 아니고. 아무튼!’
그냥 대범하게 뺨에 쪽 한 번 해주고 힘내라고 해준 게 다였다.
얼굴도 빨개지지 않았고, 그야말로 무심한 듯 시크하게, 영화에서 본 쿨 뷰티처럼.
그런데.
그런데.
‘뭐지? 뭔데뭔데뭔데.’
유더가 이마에 입술을 맞추었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이마가 순간 불에 댄 것처럼 확하고 타오르는 기분이 들었으니 말이다.
‘뭐지? 진짜 나 좋아하나? 좋아하는 건가?’
그러니까 이마에도 쪽 한 거겠지? 응? 그런 거겠지?
‘아, 아냐. 나도 애당초 주변의 시선 때문에 볼 키스 한 거잖아? 유더도 그런 걸 수도 있어. 아니, 그런 거일 가능성이 높아.’
그래, 그러니까 릴렉스.
릴렉스하자 코델리아.
여기서 괜히 오해해서 엇박자 놓으면 안 돼.
안 되고 말고.
유더한테 또 지고 들어갈 순 없잖아?
먼저 좋아하는 사람이 지는 거라고!
‘뭐라는 거야.’
너무 혼란스러워서 스스로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를 지경이었다.
애당초 생각하는 것은 유더의 일이지 않은가!
아무튼 뇌정지가 올 것 같은 번뇌 속에서 코델리아는 괴로워했고, 그렇기에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광경을 눈치 채는 데는 생각 이상으로 오랜 시간이 필요로 했다.
“저기, 코델리아 양?”
“코델리아 양!”
“응앗?!”
저도 모르게 기묘한 소리를 토한 코델리아는 엉거주춤 뒷걸음질 쳤고, 그제야 자신 앞에서 무릎 꿇고 있는 루시안과 로레인을 볼 수 있었다.
‘뭐야, 얘네 왜 이래? 유더가 또 뭔 짓 한 거야?’
코델리아는 급히 유더를 찾아 시선을 돌렸고, 저만치에서 웃음을 억눌러 참고 있는 유더를 발견할 수 있었다.
‘역시 나쁜 놈!’
저저, 웃는 꼬라지 보라지.
사람 마음 심란하게 해놓고는!
이번에는 내가 심란하게 해주려 했는데!
“저기··· 코델리아 양?”
“어? 어, 응.”
루카스의 부름에 얼른 답한 코델리아는 다시 루시안과 로레인을 보았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루시안의 표정이 참으로 창백했다.
유더가 무어라 협박이라도 한 모양이었다.
‘하여간.’
사람이 악랄해가지고.
끌끌끌 혀를 찬 코델리아는 다시 한 번 자신들의 무례를 사과하는 루시안과 로레인에게 미소를 지어주었다.
“알겠습니다. 두 분의 사과를 받아들일게요. 어서 일어나세요.”
유더와 코델리아의 차이.
이러나저러나 결국 진짜 천사인 코델리아의 따뜻한 말에 루시안과 로레인은 엉거주춤 자리에서 일어섰고, 지켜보던 모든 이들은- 심지어 왕도의 유망주들조차도 훈훈한 표정들을 지었다.
“휴.”
작게 숨을 내쉰 코델리아는 다시 유더 쪽을 바라보았다.
일단의 소란 덕분에 망상은 끊어낼 수 있었지만, 그래도 묘한 감정은 남은 터라 저도 모르게 수줍은 표정을 짓고 말았다.
그런데 유더는 그런 코델리아를 마주하지 않았다.
보고 있어도 보고 싶은 코델리아였지만, 지금 당장은 다른 곳에 시선을 두어야 했기 때문이다.
‘오는구만.’
유더가 루시안을 반쯤 죽여 놓지 않은 것은 사실 코델리아 때문만이 아니었다.
루시안을 농락하는 대신 짧은 수로나마 자신의 역량을 드러낸 것 역시 이유가 있어서였다.
처음 소란이 일었을 때부터 지켜보던 자.
그리고 소란이 끝난 뒤에야 다가오기 시작한 자.
“빛의 검성.”
검문에서 가장 강하다 하여 제일검이라 불리는 남자.
십검호의 일원인 룬 프라우드.
검푸른 머리칼을 길게 기른 그가 이쪽을 향해 다가왔다.
흥미롭다는 눈으로 유더를 바라보았고, 유더는 그런 그에게 미소지었다.
‘시작하자.’
이야기의 개변을.
완벽한 해피 엔딩을 위해.
유더는 코델리아를 보았고, 코델리아는 이제야 자신을 돌아본 유더에게 흥흥 거린 뒤 룬 프라우드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유더와 함께 빛의 검성을 맞이했다.
&
< 제59장 - 검의 연회 #3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