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59장 - 검의 연회 #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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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아데스에는 대륙 전체가 공통으로 사용하는 몇 가지 칭호들이 존재했다.
경지에 오른 검사를 일컫는 말인 검호.
6성 이상의 마법사를 의미하는 대마법사.
세일룬 왕국에는 열 명의 검호들이 존재했다.
이름하야 십검호.
세일룬 왕국이 자랑하는 검의 달인들.
그들은 모두 강자였다. 전쟁에 있어 전술병기로까지 간주되는 그들은 일반적인 인간의 궤를 넘어선 초인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하여 그들 모두가 같은 것은 아니었다.
십검호 사이에도 분명 우열이라는 것이 존재했다.
‘하지만 그 우열을 확실히 증명하지는 못 해.’
이유는 단순했다.
가장 확실한 검증법의 사용이 금지되었기 때문이다.
‘십검호 끼리는 대결할 수 없다.’
십검호 하나하나가 모두 소중한 전술병기들이었으니까.
그들 가운데 하나라도 잃으면 그 손해가 실로 막심하였으니까.
‘십검호는 초인들이야.’
우열을 가릴 정도의 승부에 나서면, 그들 하나하나가 전력을 다하면 어느 한 쪽은 반드시 망가진다.
부서지고 만다.
‘때문에 십검호들 간의 직접적인 서열 매김은 불가능해.’
하지만 사람들은 그렇다 하여 포기하지 않았다.
누가 더 강한지 순위를 매기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검성.’
검호들 가운데서도 특히 뛰어난, 소위 말하는 신검합일의 경지에 이른 검사들을 가리키는 말.
십검호 가운데 검성의 칭호를 가진 이는 오직 세 사람뿐이었고, 대륙 전체로 봐도 검성의 숫자는 열 명을 넘은 적이 없었다.
‘룬 프라우드.’
빛의 검성.
삼십대 초반이라는 젊은 나이에 검호를 넘어 검성의 자리에까지 오른 검의 괴물.
그는 스펜서 공작가의 자랑인 검문에서 가장 강한 검사였고, 그렇기에 검문의 첫 번째 검- 제일검이라 불렸다.
‘혹자는 십검호 가운데서도 최강이라 하지만······.’
그건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십검호들 간의 대결은 금지되어 있었으니 말이다.
‘원작에서도 십검호들끼리 붙는 일은 없었고.’
그리고 여기에 약간의 사심을 더하자면, 그러니까 붙어보기 전까지는 알 수 없다 생각하고 싶은 이유가 있다면.
‘아버지도 십검호시니까.’
바이엘 백작.
검장이라 불리는 검호.
저도 모르게 쓰게 웃은 유더는 다시 현실을 보았다.
어느새 룬 프라우드와의 거리가 성큼 좁혀져 있었다.
‘빛의 검성.’
검푸른 머리칼을 길게 기른 그는 그림으로 그려놓은 것 같은 미남이었다.
하지만 검귀 카마엘처럼 여자로 착각할 만치 아름다운 얼굴인 것은 아니었다. 란디우스처럼 선이 굵은 쾌남 역시 아니었고 말이다.
굳이 묘사하자면 샤프한 느낌의 미남.
하지만 기본적으로 웃는 상인데다 눈에는 장난기까지 맴돌았기에 차갑다는 인상은 조금도 없었다.
오히려 동네 형 같은 친숙함으로 무장한 것이 바로 룬 프라우드였다.
“여어.”
과연 동네 형답게 껄렁껄렁 다가온 그는 가볍게 손을 들며 목소리를 내었고, 덕분에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모두의 시선이 한 곳에 집중되었다.
“다들 반갑다.”
제일검의 뜬금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등장과 인사에 북부와 남부에서 온 유망주들은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왕도의 유망주들은 아니었다.
지금 나타난 눈앞의 남자가 다른 누구도 아닌 빛의 검성 룬 프라우드라는 사실을 이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빛의 검성을 뵙습니다.”
“제일검 님을 뵙습니다.”
중앙의 유망주들이 거의 동시에 예를 표하자 북부와 남부의 유망주들도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예를 표했다.
검의 길을 걷는 자들에게 있어 십검호는 모두 선망의 대상들이었지만 그 중에서도 제일검은 특별했다.
‘젊으니까.’
남들보다 훨씬 일찍 검호의 칭호를 따냈을 뿐만 아니라 아예 검성의 자리에까지 올랐으니까.
젊은 천재.
빛의 검성이랑 별칭처럼 빛나는 존재.
그런데 여기에 미남이기까지 하니 오죽하겠는가.
마치 동경하던 아이돌 가수를 만난 어린 팬들처럼 유망주들 모두가 눈을 빛내며 얼굴을 상기시켰고, 개중 몇은 현기증을 느끼기까지 하였다.
하지만 유더는 그렇지 않았다.
코델리아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그 사실이 다시 한 번 제일검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우물쭈물 어쩔 줄 몰라 하며 자신에게 말을 걸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는 루시안을 쌩하고 지나치더니 그대로 환한 미소를 머금었다.
‘온다.’
제일검이.
이번 왕족 몰살 사건을 막아내기 위해 필요한 키 카드가.
‘친해져야 해.’
제일검을 좌지우지할 필요까지는 없었다.
필요한 것은 오직 하나.
제일검을 건국기념회에 출석 시킨다. 원작에서는 무도회에 불참하는 그를 어떻게든 왕궁에 붙잡아둔다.
그거면 충분했다.
‘물론 더 나아가면 좋고.’
호국공을 제일검으로 격파하는 것이 최선의 시나리오였으니 말이다.
때문에 유더는 친근함이 가득한 미소를 머금었지만 잠깐뿐이었다. 이내 저도 모르게 싸늘한 표정을 짓고 말았다.
유더 자신을 향해 성큼성큼 다가오던 제일검이 돌연 코델리아 쪽으로 돌아섰기 때문이다.
“실로 장미와 같은 아름다움이구나. 나는 룬 프라우드라고 한다. 소녀의 이름은 무엇이지?”
코델리아의 손등에 가볍게 입술을 맞춘 제일검은 부드럽게 미소지었고, 코델리아는 저도 모르게 얼굴을 살짝 붉혔다.
개수작이나 다름없는 대사조차도 멋지게 승화시키는 제일검의 잘생긴 얼굴과 달콤한 목소리도 목소리였지만, 유더 외에 다른 남자에게서 이런 식의 인사를 받는 것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왜 처음이지?’
나도 나름 백작가 영애인데.
코델리아가 코델리아다운 딴생각을 이어갈 때였다.
“바이엘 백작가의 유더 바이엘이라 합니다. 이쪽은 제 약혼녀인 코델리아 체이스 양이고요.”
어느새 코델리아 옆에 선 유더가 자연스럽게 대신 답하자 눈을 깜박이던 코델리아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
“체이스 백작가의 코델리아 체이스입니다. 빛의 검성을 뵈어 영광이에요.”
제일검과는 무조건 친해져야 한다고 유더가 그랬으니까.
코델리아 자신이 생각해도 그래야만 했고.
코델리아가 생글생글 웃으며 화답하자 제일검은 다시 활짝 웃더니 이내 눈동자를 굴려 유더를 보았고, 시원한 웃음을 터트렸다.
“미안, 미안. 나도 소문을 들었거든. 조금 놀려주고 싶었다고 해야 하나? 물론 코델리아 양이 너무 아름다워서··· 정말로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 같다는 생각이 들어 말을 걸고 싶어지긴 했지만 말이야.”
제일검의 말에 유망주들 역시 재미있다는 듯 작게 웃었고, 유더는 마찬가지로 웃으며 생각했다.
‘힘들겠구만.’
친해지기가.
아니, 친해지는 거 자체는 쉬울 거 같은데, 좋아지기가.
“하하, 용서해주게나. 왕도에까지 소문이 자자할 정도로 두 사람의 사랑이 대단하다는 것이니까. 나도 정말 감탄했다고.”
“감사···합니다.”
“하하하··· 감사해요.”
유더와 코델리아가 연이어 약간은 어색하게 답하자 제일검은 더 몰아붙이는 대신 뒤로 한 걸음을 물러섰다.
검호답게 완급 조절의 중요함을 잘 아는 그였다.
“사실 그것 말고도 관심을 가질 이유가 많기는 했지. 이왕 이렇게 된 거 카드부터 까고 시작하는 게 어떨까. 그럼 오늘 같은 일도 더 겪지 않을 테니 말이야.”
찡긋하고 윙크를 하는 것으로 말을 마친 그는 유더와 코델리아가 무어라 답하기도 전에 유망주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어린 친구들, 이 자리에 모인 것은 모두 검술에 재능이 있는 유망주들이지 여기 계신 코델리아 양만 빼놓고 말이야. 일반적으로 봤을 때, 이건 좀 이상한 일이지.”
제일검의 말에 유망주들 가운데 몇이 멍한 소리를 토했다.
생각해보니 맞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검의 연회에 초대받는 것은 모두 검사- 그 중에서도 재능을 인정받은 유망주들뿐이었다.
유망주의 약혼녀라 해서 초대받는 일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고, 초대하지 않은 손님을 아무 말 없이 받아줄 스펜서 공작가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일까. 코델리아 양은 왜 스펜서 공작가에 초대받은 것일까.”
마치 저잣거리의 이야기꾼처럼 모두의 시선을 집중시킨 제일검의 말에 유망주들은 서로를 돌아보았다.
루시안의 약혼녀인 로레인은 검사였다.
그녀 또한 검의 연회에 초대받을 정도로 뛰어난 검술 유망주란 소리였다.
그렇다면 코델리아는 왜.
제일검의 말처럼 마법사인 그녀가 어째서.
“코델리아 양, 설마 검술 수련을 시작하셨습니까?”
루카스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묻자 주변의 유망주들은 무슨 황당한 소리냐며 루카스를 돌아보았다.
그도 그럴 것이 코델리아는 마법사였으니 말이다.
‘검의 연회가 우습냐?’
‘루카스 공자가 좀 얼빵한 구석이 있는 건 진즉에 알았지만 이건 좀······.’
모두가 좋지 못 한 시선들을 보냈지만 루카스는 진지했다.
‘코델리아 양은 전투의 천재니까.’
마녀의 숲에서 이미 목격한 그녀의 재능이었다.
그 정도 재능이라면 검술로도 대성하는 것이 가능할 터였다.
“코델리아 양?”
“아, 아니. 검술은 아직 안 배웠는데.”
보법이나 맨손 격투술이라면 유더에게 배우고 있지만.
코델리아가 부정하자 루카스는 다시 생각에 빠져들었고, 제일검은 빙긋 웃더니 손뼉을 쳐 모두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코델리아 양이 아름다운 여검사가 되어 활약하는 모습은 나 역시 보고 싶지만, 그건 나중의 이야기고. 일단 그녀가 초대받은 이유는 따로 있단 말이지.”
거기까지 말한 제일검은 돌연 유더를 돌아보았고, 유더는 고개를 끄덕였다.
제일검이 무슨 말을 할지 예상했기 때문이다.
“당사자의 허락도 떨어졌으니 이야기하도록 하지. 여기 있는 유더와 코델리아는 무척이나 큰 공을 세웠다.
두 사람이 구한 칠색초 덕분에 스펜서 공작 각하께서는 오랜 지병에서 해방되실 수 있었거든. 즉, 유더 공자와 코델리아 양은 스펜서 공작 각하의 손님이시다.
다리안 왕녀님의 친구 분들이시기도 하고. 여기에 참고하라고 덧붙이자면··· 스펜서 공작 각하께서는 두 사람을 개인적으로 후원하실 생각도 하고 계시다.”
장난스럽게 늘어놓은 이야기에 유망주들은 지금까지처럼 웃고 떠들 수 없었다.
유더와 코델리아가 세웠다는 공훈.
다리안 왕녀와의 친분.
여기에 더해진 스펜서 공작의 개인적인 후원.
스펜서 공작은 은혜와 원수를 모두 잊지 않는 사람으로 유명했다.
어느 쪽이든 열 배로 갚는 것이 그였으니 말이다.
그런 스펜서 공작이 유더와 코델리아에게 은혜를 느끼고 있다면 이미 이야기는 끝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잘못 건드렸다.’
‘차라리 깨져서 다행인데?’
왕도의 유망주들은 루시안을 돌아보았고, 얼굴이 창백해진 루시안과 로레인 역시 비슷한 생각들을 하였다.
스펜서 공작이 자신의 은인이라며 데려온 손님을 박살냈다면- 처음 계획대로 얼굴에 칼자국을 박아 넣었다면-
“유더 공자가 강해서 다행이지?”
제일검이 웃으며 말했지만 그의 눈은 웃고 있지 않았다.
루시안은 창백해진 얼굴로 겨우 고개만 끄덕였고, 제일검은 다시 유더를 돌아보았다.
“자, 이제 깔끔해진 것 같군.”
“···감사합니다.”
유더가 살짝 지친 얼굴로 답하자 제일검은 다시 빙긋 웃었다.
“콘웰이 그러더라고. 정말 대단한 인재가 나타났다고 말이야. 그래서 싸우는 거 봤냐니까 그건 아니라고 해서 녀석 엉덩이를 걷어차 줬지. 하지만 이제는 나도 알겠어. 콘웰이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제일검의 눈은 이번에도 웃지 않았다.
검푸른 눈동자 아래 자리한 영리해 보이는 갈색 눈동자.
란디우스가 한 눈에 유더의 재능을 알아본 것처럼 그 역시 유더의 재능을 알아보았다.
더욱이 란디우스와 마주했을 때와 달리 지금의 유더는 오문을 열고 환골탈태까지 마친 상태였다.
“반년 전까지만 해도 구음절맥으로 골골 거렸다는 이야기를 믿지 못 할 정도군.”
혼잣말처럼 말한 제일검은 유더와 코델리아가 무어라 답하기도 전에 선수치듯 두 팔을 크게 벌리더니 그대로 과장스럽게 돌아서며 말을 이었다.
“아무튼 검의 연회는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애당초 검의 연회는 어린 유망주들의 견문을 넓혀주기 위한 것. 허튼 일에 힘쓰지 말고 내일 있을 토너먼트에서 최대한 많은 것들을 얻어가기 위해 노력해라. 알겠나?”
“예! 알겠습니다!”
“제일검의 말씀을 받습니다.”
유망주들이 다소 엇박자로나마 소리 높여 답하자 만족한 제일검은 다시 유더를 돌아보았다.
“공작 각하께서 건강을 회복하신 덕분에 열리는··· 실로 몇 년 만의 검의 연회다. 더욱이 이번에는 건국기념회 덕분에 전국에서 귀족들이 모이기도 했고 말이다. 아마 규모만 따지면 역대 검의 연회 중에서도 최고겠지. 그래서 토너먼트 상품도 대단한 걸 준비했다고 들었다.”
이번 검의 연회에 참석하는 것은 이 자리의 유망주들만이 아니었다.
아직 도착하지 못 한 유망주들도 있었고, 티파티를 즐기는 대신 방에서 휴식 중인 유망주들도 있었다.
“나도 갖고 싶을 정도로 좋은 물건이니까, 거기다 1등상만 있는 건 아니니까 미리들 포기하지 말고. 알겠나?”
“예! 알겠습니다!”
아까보다 통일된 박자로 대답들이 들려오자 만족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제일검이 다시 유더를 보며 말했다.
“그럼 내일 보자, 슈퍼루키.”
“내일 뵙겠습니다.”
“내일 뵐게요.”
유더와 코델리아가 반사적으로 답하자 다시 빙긋 웃은 제일검은 그대로 돌아서서 정원을 나섰다.
빛의 검성이었지만, 그보다는 광풍 같다는 느낌을 주는 남자였다.
‘정신없네.’
‘그러게.’
서로를 돌아본 유더와 코델리아는 짧게 시선을 나누었고, 어수선한 가운데 어영부영 티파티 역시 마무리가 되었다.
그리고 그날 밤.
검의 연회에 참석하는 유망주들 모두가 한 자리에 모여 저녁 식사를 하였다.
그야말로 만찬회란 이름이 어울리는 호화로운 자리였는데, 먹성 좋은 몇몇 유망주들 외에는 딱 먹을 만큼만 먹고 자기들 방으로 돌아갔다.
검의 연회의 꽃이라 할 수 있을, 내일부터 시작될 유망주들 간의 토너먼트가 신경 쓰였기 때문이다.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루카스와 인사한 유더와 코델리아는 남들처럼 바로 숙소로 향했고, 메이드들의 도움을 받아 목욕을 마쳤다.
그렇게 식사와 목욕 후.
아예 잠옷으로까지 갈아입은 유더와 코델리아 앞에서 메이드 두 사람이 공손히 예를 표했다.
“안녕히 주무십시오.”
“어··· 두 사람도 잘 자요.”
공작가의 메이드들답게 완벽하게 예를 표한 메이드들은 코델리아의 인사에 부드럽게 눈웃음을 짓더니 그대로 조용히 방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몇 초.
탁 소리와 함께 문까지 닫히고 나니 이제 정말 방 안에는 유더와 코델리아 두 사람만이 남게 되었다.
커다란 소파 위에 나란히 앉은 채로 말이다.
‘뭐지, 이 분위기 뭐지.’
밥 잘 먹고 따뜻한 물에 목욕까지 했으니 이제 코 자기만 하면 되는데.
언제나처럼 잘 자라고 말한 뒤 잠자리에 들면 되는데.
이상했다.
이상하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왜일까.
어째서일까.
아니, 애당초 왜 이렇게 어색한 것일까.
단 둘이 있는 게 처음도 아닌데.
야생의 땅에서도 그랬지만 왕도로 오는 와중에도 맨날맨날 같은 방에서 잤는데.
코델리아는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고, 그 소리에 유더가 반응했다.
“코델리아.”
“응? 아, 응?”
허둥거리며 답한 코델리아는 유더를 돌아보았고, 어색한 이유를 깨달았다.
오늘 그런 일이 있었으니까.
아무렇지 않게 넘어가기에는 조금 빅한 이슈가 있었으니까.
코델리아는 유더의 뺨을 보았다.
언제나처럼 매끄럽고 하얀 뺨이었다. 환골탈태한 덕분인지 맑고 투명한 것이 마치 아기 피부 같았다.
저기에 입술이 닿았었는데.
어떤 느낌이었더라?
잘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리고 대신이라도 되듯 불에 데인 것처럼 뜨거운 감각이 떠올랐다.
유더의 입술.
그리고 코델리아 자신의 이마.
‘우그으으······.’
유더는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것일까.
코델리아 자신이야 유더를 응원해야 했으니까. 남들의 기대에 부응해야 했으니까.
뭐, 아무튼 이런저런 이유가 있었다지만 유더는 대체 왜 그런 것일까.
충동적으로?
남들에게 우리가 이렇게 사랑하는 사이라고 과시하기 위해?
‘아.’
방금 지뢰였다.
사랑하는 사이라니.
그런 사이 아닌데.
아직은 그런 사이 아닌데.
코델리아의 머리에 열이 오르기 시작했고, 덕분에 또 다시 스스로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른 채 망상을 이어나갔다.
왜일까.
왜 이마에 입술을 맞췄을까.
역시 낮에 잠깐 생각했던 것처럼 유더가 코델리아 자신을 좋아하는 것일까?
‘그냥··· 물어볼까?’
말로 하기 뭐하면 그냥 슥 쳐다만 봐도 되니까.
그럼 찰떡같이 알아먹고 무어라 대답을 해줄 테니까.
‘그런데 아니라고 하면?’
세상에 그보다 더 쪽팔린 일이 있을까?
‘맞아, 다른 누구도 아닌 유더인데.’
랭킹 공개될 때마다 얼마나 놀려댔던가.
그 때 이상의 놀림이 매일 같이 이어질게 뻔했다.
‘으으··· 방법이 없을까?’
뭔가 확인할 방법이.
뭔가 느낌같은 느낌을 팍!하고 캐치할 수 있는 방법이.
‘한 번 더 해볼까?’
한 번 더 해보면 알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무슨 핑계로.
‘자, 잘 자라고?’
무리수 같은데.
이건 좀 아닌 거 같은데.
“코델리아.”
뭔가 다른, 뭔가 좀 더 자연스러운······.
“코델리아.”
“헉?!”
바로 코앞.
바짝 다가온 유더의 얼굴에 깜짝 놀란 코델리아는 몸을 뒤로 크게 뺐고, 유더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괜찮아? 얼굴이 빨간데?”
“어? 어··· 응. 괜찮아. 하하, 그냥 열이 좀 올라서리.”
어색하게 웃은 코델리아는 이왕 입을 연 김에 잘 자라고 말한 뒤 빠르게 침실로 도주할 생각을 했다.
하지만 유더와 눈을 마주친 것이 문제였다.
코델리아의 생각을 간파한 유더는 빙긋 웃더니 새로운 수를 놓았다.
“코델리아야.”
“응?”
“오랜만에 귀 좀 파줄래?”
“어? 지, 지금?”
“어, 지금. 그리고 자기에는 아직 좀 이르잖아. 제일검에 대한 이야기도 해야 하고. 물론 내일 있을 검의 연회 이야기도 있고.”
“그러네.”
애당초 이곳에 온 건 제일검과 접점을 만들기 위함이었으니까.
“토너먼트 상품이 대단하다고 했지? 기대된다. 역시 검의 연회니까 검과 관련된 거려나? 스펜서 공작가와 관련된 검이 뭐가 있었지?”
게임뇌가 가동되기 시작한 코델리아가 수줍음 대신 열기를 띠며 말하자 유더는 저도 모르게 웃고 말았다. 이러나저러나 역시 코델리아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아무튼 일단 부탁할게.”
“흠, 알았어. 약속했으니까.”
시원하게 답한 코델리아는 염동력으로 탁자 위의 가방을 회수한 뒤 귀파개를 꺼내들었다.
탁탁 소리가 나게 자기 허벅지를 두드린 뒤 말했다.
“누우시죠.”
“예, 마님.”
바로 답한 유더는 옆으로 누워 코델리아의 다리 위에 머리를 올렸다.
벌써 몇 번이나 취한, 이미 익숙할 대로 익숙한 자세.
하지만 오늘은 조금 달랐다.
코델리아 뿐만 아니라 유더 조차도 그렇게 느끼고 말았다.
그렇기에 만들어진 미묘한 분위기.
단순히 어색하다고 표현할 수 없는 그것.
유더와 코델리아가 동시에 마른침을 삼켰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무언가 말하기 위해 입술을 벌렸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이었다.
“진짜 꿀이 떨어지네, 떨어져. 막 찌르고 싶다.”
등 뒤에서 들려온 꿍한 목소리.
서로에게 집중하고 있던 유더와 코델리아는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고, 유더는 아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전투태세까지 취했다.
그런 두 사람 앞에 자리한 자.
정숙하기 짝이 없는 스펜서 공작가의 메이드 복을 입고 있지만, 어쩐지 모르게 묘한 색기가 감도는 붉은 머리칼의 여인.
“스칼렛?!”
코델리아가 깜짝 놀라 말했고, 스칼렛은 방심한 상태인 코델리아의 뺨을 쭉 잡아당기며 말했다.
“그래, 핑크폭탄. 스칼렛이다.”
그녀가 어째서 여기에.
아니, 애당초 코델리아가 핑크폭탄이라는 것을 어떻게?
유더조차도 놀라움을 감추지 못 했고, 코델리아는 너무 놀라서 뺨을 어찌할 생각도 하지 못 했다.
그랬기에 스칼렛은 깊은 만족감을 느꼈다.
짓궂은 미소를 그리며 말했다.
“로그 마스터니까.”
아직은 후보지만.
다시 까르르 웃은 그녀는 코델리아의 뺨을 쭉쭉 당기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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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59장 - 검의 연회 #4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