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엔딩메이커-162화 (162/473)

< 제60장 - 제일검 >

제60장 - 제일검

“일단 스펜서 공작가에 숨어드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어. 엄청 넓은데다가 사람도 많은 곳이니까. 물론 결정적인 이유는 내가 로그마스터란 사실이지만 말이야. 그런데 진짜 말랑말랑하다. 감촉 죽이는데?”

스칼렛이 내친김이라는 듯 아예 두 손으로 코델리아의 뺨을 조물딱 거리기 시작하자 유더가 반사적으로 손을 뻗었다.

스칼렛의 손목을 낚아챈 뒤 떨쳐낸다.

유더가 움직인 순간 이미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 유더의 손을 피하려 한 스칼렛이었지만 생각처럼 할 수 없었다. 유더의 손놀림이 빠른 건 둘째 치고 스칼렛 자신이 손을 어디로 움직일지 미리 알고 있었던 것처럼 교묘하게 손을 놀리니 피할 재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반대쪽도 놔라.”

유더가 경고하듯 말하자 코델리아는 오른쪽 뺨을 잡힌 채로 기쁜 듯 유더를 보았고, 스칼렛은 어쩔 수 없다는 듯 미간을 좁히며 말했다.

“알았어, 그럼 한쪽씩 잡자. 난 이쪽, 넌 저쪽.”

“음, 괜찮을지도.”

스칼렛의 제안에 바로 고개를 끄덕인 유더는 코델리아의 왼쪽 뺨을 잡았고, 졸지에 다시 양쪽 뺨을 붙잡힌 코델리아는 눈을 깜박였다.

그렇게 몇 초.

유더와 스칼렛이 코델리아의 뺨을 쭉쭉 잡아당기고, 패닉에 빠진 코델리아가 몇 초나마 얌전히 당하기만 한 직후.

“이거드리 머하는 거야!”

코델리아가 벌떡 일어서 양 팔을 크게 휘두르자 유더와 스칼렛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동시에 손을 떼고 물러났다.

“진짜 감촉 좋다. 매일 만지고 싶다.”

“부럽지? 내 볼 살이야.”

“쳇, 진짜 부럽네. 다음 타깃은 핑크폭탄의 볼 살로 할까?”

뻐기듯 말하는 유더에 이어 스칼렛이 다시 말했고, 코델리아는 재차 노성을 토했다.

“야!”

뭐가 어쩌고 어째?

그리고 내 볼 살이 내 꺼지 왜 네 꺼야!

마지막은 눈빛이었고, 유더는 당황하지 않고 눈빛을 보냈다.

‘약혼자잖아, 약혼자. 거기다 서로 엄청나게 사랑하는 사이고. 일단 스칼렛 앞이니까 말을 맞춰야지.’

유더의 눈빛에 코델리아는 순간 움찔했지만, 말 그대로 순간일뿐이었다.

‘야, 내가 바보인줄 알아? 이거랑 그게 무슨 상관이야. 그리고 지금은 굳이 그 러, 러브러브한 사이라는 걸 강조할 필요가 없거든?’

애당초 상대는 스칼렛이고!

‘쳇, 안 통하네.’

‘이게 진짜?’

‘아무튼 너무 열 내지는 마. 이게 다 코델리아 네 볼 살이 너무 대단해서 그래.’

‘속이 검은 블랙망토 씨, 칭찬하는 것처럼 말한다고 장땡이 아니거든요?’

‘아니, 그래도 사실인걸.’

‘으으음.’

유더의 눈빛에 코델리아는 입술을 살짝 삐쭉이다가 자기 볼 살을 만져보았다.

확실히 좋은 느낌이기는 했다.

‘그치?’

‘쳇, 인정.’

그렇게 눈빛으로 만담 아닌 만담을 나누고 있자 처음에는 재미있다는 듯 쳐다보던 스칼렛의 표정이 점점 썩어 들어갔다.

“이것들이 앞에 사람 놔두고 뭐 하는 거야. 그런 눈빛 교환은 침실에서나 하지 그래?”

눈꼴 시려 죽겠다는 눈빛과 표정에- 정확히는 지적하는 내용에 코델리아는 당황해서 말했다.

“치, 침실에서 눈빛을 왜 교환해!”

“그럼 침실 말고 어디서 그런 러브러브한 눈빛을 교환하는데?”

“그, 그런 거 아니거든?”

우리 방금 눈빛으로 말싸움 한 거거든?

하지만 코델리아의 항변 따위 무의미했다. 일단 눈빛으로 말싸움을 한다는 거 자체가 다른 사람이 듣기에는 말도 안 되는 소리였고, 방금 눈빛 교환은 누가 봐도 연인간의 교환이었으니 말이다.

“아니이!”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두드린 코델리아는 유더에게 시선을 주었다.

어떻게든 해줘. 쟤 좀 이해시켜봐.

간절함이 어린 시선에 고개를 끄덕인 유더는 바로 다시 스칼렛을 보며 말했다.

“애당초 약혼자끼리 오붓한 시간을 가지는 중에 난입한 네가 잘못 아닌가?”

“쳇, 그건 사실이네. 미안, 핑크폭탄. 방해해서.”

스칼렛이 순순히 사과하자 코델리아는 다시 당황한 얼굴이 되었다.

사과를 받은 건 좋은데, 그 과정이 문제였기 때문이다.

‘아니, 야! 해명을 하라니까, 해명을.’

왜 오해를 더 깊게 만드는 건데!

‘어쩔 수 없잖아. 그리고 일단 이야기를 진행하자.’

‘으으, 알았어.’

코델리아는 툴툴 거리긴 했지만 납득했다는 듯 더 이상 물고 늘어지진 않았다.

때문에 유더는 빙긋 미소 지으며 스칼렛에게 말했다.

“설마 도둑질 하려고 스펜서 공작가에 숨어든 건 아닐 테고, 우리 때문인가?”

“아니, 뭐··· 겸사겸사?”

스칼렛이 이제까지와 달리 어설픈 미소를 흘리자 코델리아는 의심스럽다는 듯 눈을 가늘게 떴고, 유더는 제법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

“대충 알겠군.”

스칼렛이 여기 왜 나타났는지.

유더의 발언에 코델리아는 얼른 알려달라는 눈빛을 보냈고, 스칼렛은 저도 모르게 움찔했다.

“못 기다린 거지? 코델리아와 다시 만날 날을.”

“그, 그런 거 아니거든?”

“뭐야, 그런 거였어?”

차례대로 유더, 스칼렛, 코델리아.

특히 코델리아는 무척이나 신난 얼굴이 되더니 므흐흐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우리 스칼렛은 언니가 보고 싶었던 거구나? 언니가 빨리 안 불러줘서 삐졌어요?”

“야! 그런 거 아니거든? 그냥 네가 연락하기로 해놓고 통 연락이 없어서 그런 거거든? 그리고 누가 언니야. 내가 너보다 두 살이나 연상이거든?”

코델리아는 열일곱 살인데 스칼렛은 열아홉 살이었으니까.

스칼렛이 팜 파탈다운, 그러니까 색기 있고 도도해 보이는 얼굴을 빨갛게 붉힌 채 부끄러워하자 코델리아는 다시 므흐흐 웃음을 흘렸다.

“아유, 귀여워라. 그럼 언니라고 불러줄까요? 네? 스칼렛 언니?”

코델리아가 놀리듯 말하자 다시 발끈한 스칼렛이었지만 이번에는 무어라 화를 내진 않았다.

코델리아가 언니라고 불러준 순간 마음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충족되는 기분이 들어서였다.

“음··· 뭐, 네가 그렇게 부르고 싶다면야.”

계속 언니라고 불러도 돼. 아니, 언니라고 불러줘.

노골적으로 드러난 표정에 코델리아는 다시 까르르 웃었다.

“와, 생각이 얼굴에 다 드러나. 우리 스칼렛 왜 이렇게 귀엽니.”

‘그건 너도 마찬가지거든?’

생각이 얼굴에 다 드러나는 건.

하지만 지금은 스칼렛을 공격하는 시간이었으니까.

유더는 코델리아를 때리는 대신 모처럼 때려서 신이 난 코델리아와 얻어맞느라 정신이 없는 스칼렛을 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아무튼, 못 참고 온 건 맞는 모양이네.”

스칼렛이 여기 나타난 이유.

유더의 정리에 코델리아는 어디 또 변명해보라는 듯 허리에 손을 올린 채 다정한 표정을 지었고, 스칼렛은 짜증을 내며 말했다.

“우씨, 야! 솔직히 너네 잘못이잖아! 아니, 연락을 준다고 해놓고 왜 연락이 없는데! 내가 푸른 달 지붕에서 얼마나 기다렸는지 알아?”

원망 섞인 물음에 코델리아는 어깨를 으쓱이며 답했다.

“아니, 조만간 준다고 했지 바로 준다고는 안 했잖아. 그리고 왜 하필 푸른 달 지붕에서 기다리는데?”

“로그 마스터니까 그렇겠지.”

유더가 대신 답하자 코델리아는 깨달음을 얻은 것처럼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아, 그런가?”

“그런 걸 거야.”

“로그 마스터도 힘드네.”

“쉬운 일은 아니지. 굳이 따지자면 3D 업종에 가깝지 않을까?”

“이것들이 진짜.”

환상의 커플이라더니 환장의 커플이었다.

말로 마구 얻어맞던 스칼렛이 눈매를 날카로이 하자 약간이지만 미안해진 코델리아가 말했다.

“그런데 겨우 이틀··· 이제 삼일 째인가? 아무튼 삼일 밖에 안 지났는데 너무 조급한 거 아냐?”

“삼일이면 충분하지. 대체 언제 연락하려던 건데?”

“어··· 글쎄?”

일정 관리는 유더가 하니까.

코델리아가 반사적으로 유더를 돌아보자 스칼렛도 유더를 돌아보았고, 유더는 붉은 머리가 아름다운 두 미녀에게 답했다.

“한 열흘 정도 뒤에?”

“너무 늦잖아!”

“아니, 로그 마스터의 자리를 놓고 경쟁하는 중요한 대결이잖아. 하루 이틀 만에 뚝딱 하는 게 더 문제지 않아?

“고건 고렇네.”

유더의 말에 코델리아가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자 스칼렛은 다시 주춤했고, 이내 깨달았다.

‘안 돼, 무슨 말을 해도 내가 밀려.’

일단 스칼렛 자신이 급하게 달려든 것도 달려든 것이었지만, 숫자에서도 밀렸으니까.

무슨 말을 하든 둘이서 짝짝꿍이 될 텐데 어떻게 이긴단 말인가.

“그리고.”

유더가 다시 입을 연 그 순간이었다.

촤라락!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코델리아가 휘두른 도폭선이 스칼렛의 몸을 옥죄었다.

유더가 만담을 늘어놓는 사이 염동력으로 회수한 물건이었다.

“우리가 정말 만담만 늘어놓는 줄 알았어?”

코델리아가 도발적으로 말했고, 스칼렛은 움직일 수 없었다. 메이드 복 안에 적룡의 갑주를 받쳐 입은 터라 도폭선의 폭발 자체는 견뎌낼 수 있었지만, 일단 구속되었다는 사실 자체는 어쩔 수 없었기 때문이다.

‘뭣보다.’

어느새 자신의 복부에 닿아있는 유더의 손바닥.

이미 유더의 일장을 경험해본 적이 있는 스칼렛이었다. 피를 한 바가지나 쏟았던 기억 때문에 몸이 절로 움츠러들었다.

“스칼렛, 한 번만 묻겠다. 어떻게 알아낸 거지? 미행이라도 한 건가?”

코델리아가 핑크폭탄이라는 사실.

냉기가 뚝뚝 묻어나는 목소리에 깜짝 놀란 코델리아가 유더를 돌아보았고, 스칼렛은 마른 침을 삼켰다.

방금까지 농담을 주고받던 유더라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눈빛과 목소리였기 때문이다.

스칼렛은 이런 눈빛을 알고 있었다.

닳고 닳은 사람들.

로그 마스터가 되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전수해 주신 아버지.

아버지의 동료들.

제국에서 마주했던 제도의 길드 마스터.

어느 쪽이든 고작 열일곱 살짜리가 보일 눈빛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스칼렛은 당황했고, 괜한 고집을 피우지 않았다.

“좋아, 알았어. 이야기할게. 그러니까 살벌한 건 이제 그만하자. 응?”

“대답 여하에 따라.”

직전보다 부드러워지긴 했지만 여전히 살벌한 유더의 눈빛이었다.

다른 무엇도 아닌 코델리아의 신상과 관련된 것이었기 때문이다.

“알았어, 너희 예상대로야. 미행했어.”

“어떻게?”

“바르고의 추적 가루.”

“몸에 묻혔나?”

옷은 확장 주머니 안에 넣은 터라 외부와 차단되었으니까.

유더의 물음에 스칼렛은 이번에도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 핑크폭탄이 나한테 회복마법 써줬을 때.”

“와, 그때 추적 가루를 나한테 묻혔다고?”

거의 빈사 상태로 더 이상 살 의욕이 없다며 죽여라 마라 하던 중에?

“과연 로그 마스터. 다 연기였나?”

유더가 도발하듯 묻자 스칼렛이 발끈했다.

“아니거든? 그때는 진짜 죽고 싶었거든? 그냥 뭐··· 직업병 같은 거였어.”

“죽어가는 와중에 치료해주는 사람 몸에 추적 가루를 묻히다니 별로 좋은 직업은 아니군.”

“야, 애당초 너희 때문에 죽어가던 거거든? 그리고 너희도 되고 싶어 하잖아, 로그 마스터.”

스칼렛이 입술을 삐쭉이며 말하자 코델리아가 다시 입을 열었다.

“아무튼 그 가루를 쫓아와서 알게 된 거야?”

“어, 나도 좀 충격이었어. 북부12가문··· 명망 높은 가문의 후예들이 핑크폭탄과 블랙망토라는 이름을 쓸 줄이야.”

정말로 실망했다는 듯 스칼렛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고, 단숨에 부끄러워진 코델리아가 유더를 가리키며 말했다.

“내가 안 지었어. 쟤가 지었어.”

“블랙망토는 코델리아가 지었지만.”

유더의 반격에 정직한 코델리아는 다시 움찔했고, 스칼렛은 생각했다.

‘진짜 천생연분이네.’

유치한 네이밍 센스도 똑같구만.

“어찌되었든 그래서 알게 된 거고, 너희가 연락이 없어서 내쪽에서 먼저 접근한 것도 맞아.”

스칼렛은 아예 소파 위에 털썩하고 앉으며 어깨를 늘어트렸다. 마치 잡아먹을 테면 잡아먹으라는 듯 한 그 태도에 코델리아는 유더를 돌아보았다.

‘어떡하지?’

‘뭐··· 애당초 적대 노선보다는 동료가 되는 쪽을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더욱이 이번 일로 유더는 확신할 수 있었다.

스칼렛은 아직 미숙했다.

원작에 등장했던 능수능란한 팜 파탈이 되기 이전의, 아직 순박한 구석이 남아 있는 소녀였다.

그렇기 때문일까.

스칼렛은 핑크폭탄- 코델리아와 적이 될 마음이 없는 것 같았다.

‘오히려 친구가 되고 싶어 하지.’

그렇지 않다면 이렇게 어슬렁어슬렁 나타나지도 않았으리라.

‘역시 코델리아.’

은근히 만나는 사람마다 홀리는 마성의 여인.

‘응? 뭐가? 내가 뭐?’

유더가 잠시 눈을 감고 생각한 터라 눈빛 대화를 나누지 못 한 코델리아가 고개를 갸웃갸웃했지만 유더는 답해주는 대신 다시 스칼렛을 보며 말했다.

“좋아, 이렇게 된 거 어쩔 수 없지. 이런 경우에는 살인멸구가 기본이니까.”

“잠깐, 뭐라고?”

‘유, 유더야?!’

살인멸구?

죽여서 입을 막는다고?

스칼렛은 눈에 띄게 당황했고, 코델리아 역시 당황해서 눈을 크게 떴다.

“물론 진짜 죽이지는 않을 거다. 아직 로그 마스터를 가리기 위한 승부는커녕 네게 빚을 변제받지도 못 했으니까.”

유더의 말에 코델리아와 스칼렛이 동시에 안도의 숨을 토했다.

하지만 아직 안심하긴 이른 상황이었다.

“그래서 이걸 먹일 거다.”

유더는 탁자 위에 올려둔 가방에서 작은 유리병을 꺼내더니 그 안에 든 물건을 다짜고짜 스칼렛의 입안에 밀어 넣었다.

“읍?”

“삼켜. 어차피 삼키지 않아도 입안에서 녹아내릴 거다.”

입을 틀어막은 뒤 목을 젖히게 하자 스칼렛이 순간 몸을 부르르 떨었다. 유더의 말마따나 입 안에서 녹아내렸기 때문이다.

“도, 독이냐? 지효성 독을 쓴 거야?”

며칠 내로 해독제를 먹지 않으면 죽는다거나.

독기 어린 눈으로 스칼렛이 묻자 코델리아도 조마조마한 얼굴로 유더를 돌아보았고, 유더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코델리아가 특히 좋아하는 사탕이다. 야생의 땅에서 가져온 거라 여기서는 구하고 싶어도 구할 수가 없지. 이제 다섯 개 밖에 안 남았으니까 또 뺏어먹고 싶으면 닷새 뒤에 찾아와라.”

“······뭐?”

“코델리아가 좋아하는 사탕, 뺏어먹고 싶지 않아?”

유더가 묻자 스칼렛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고, 코델리아는 인상을 구겼다.

스칼렛에게 강제로 독을 먹이지 않은 건 다행이지만 이게 다 무슨 짓거리란 말인가.

당황에서 벗어난 스칼렛 역시 비슷하면서도 다른 마음으로 유더를 보았고, 유더는 스칼렛과 눈을 마주한 채 말했다.

“친구가 되고 싶은 거지? 코델리아와.”

로그 마스터와 시프 마스터가 우정을 나눈 것처럼.

그래서 이렇게 무방비하게 찾아온 거고.

사탕을 먹인 것은 일종의 확인 작업이었다.

스칼렛의 얼굴에 드러난 배신감.

애당초 믿음을 갖지 않았다면 결코 드러낼 수 없는 감정.

“겁먹게 한 건 미안하지만, 애당초 오붓한 시간을 방해한 건 너니까. 벌이라고 생각하고 달게 받아.”

어린애 달래듯 말한 유더는 손수 도폭선을 풀어줬고, 스칼렛은 민망함과 부끄러움과 이것저것이 뒤섞인 얼굴로 입술을 꾹 다물었다. 작금의 상황이 창피한 것도 있었지만, 속내를 모두 들켰다는 사실이 부끄러워서였다.

“자, 다 풀어줬으니까 이만 퇴장하시죠. 난 코델리아랑 다시 오붓한 분위기 좀 즐기고 싶으니.”

유더가 능글맞게 말하자 스칼렛은 몸서리를 쳤고, 코델리아는 얼른 그런 스칼렛의 팔을 끌어안았다.

새삼 다시 아까의 분위기로 돌아간다 생각하니 도망치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스칼렛아, 이왕 온 거 나랑 좀 놀다가 가자. 응?”

“뭐?”

놀다 가라고?

“응응, 뭐··· 걸즈 토크라든가?”

되는대로 일단 말하고 본 코델리아는 그대로 스칼렛을 일으켜 세우더니 선수 치듯 유더에게 말했다.

“그럼 난 스칼렛이랑 이야기 좀 나누다 잘게. 잘 자, 유더야. 가자, 스칼렛.”

유더의 대답을 듣지도 않고 얼른 스칼렛의 팔을 잡아당긴 코델리아는 그대로 호다닥 침실로 향했다.

그렇게 몇 초.

침실 문을 단단히 닫은 코델리아가 안도의 숨을 토한 그때.

“이건 또 뭐니?”

스칼렛이 이상한 걸 본다는 듯 코델리아를 보았다.

걸즈 토크고 나발이고 작금의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뭐, 뭐가?”

“아니, 분명 소문대로 서로 죽고 못 사는 사이 같기는 한데, 왜 그런 애들이 이제 막 사귀기 시작한 애들처럼 풋풋한 냄새를 풍기는지 의아해서.”

과연 원작의 로그 마스터.

정곡을 찌르는 예리한 질문에 순간 움찔한 코델리아는 얼른 딴청을 하며 침대 쪽으로 걸어갔지만 잠깐 뿐이었다. 이내 돌아서서 스칼렛에게 물었다.

“그런데 스칼렛아.”

“스칼렛 언니.”

“그럼 스칼렛 언니. 그··· 정말이야?”

“뭐가?”

“나랑 유더랑··· 사, 사귀는 것처럼 보여?”

막 진짜 연인처럼?

뺨을 발갛게 붉힌 채 수줍게 묻는 코델리아는 정말 귀엽고 사랑스러웠지만 이 순간 스칼렛이 할 수 있는 말은 하나뿐이었다.

“찔러 죽이고 싶다.”

죽창으로 마구 찌르고 싶다.

세일룬 왕국 전체가 다 아는 세기의 연인이 뭐라는 거야.

이건 새로운 방식의 염장질인가?

스칼렛은 더 이상 참지 않았다.

여전히 부끄러움에 몸을 비비 꼬고 있는 코델리아의 양 뺨을 붙잡았고, 사정없이 쭉쭉 잡아당겼다.

&

다음날 아침.

평소보다 살짝 어색한 인사를 나눈 유더와 코델리아는 발걸음을 나란히 한 채 붉은 장미의 성 본관으로 향했다.

목적은 세 가지.

하나는 스펜서 공작과 만나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어제 일면식을 가진 제일검과 좀 더 친분을 다지는 것이었다.

그리고 세 번째 목적이자, 대외적으로는 가장 중요한 목적이 하나.

“지금부터 검의 연회를 시작하겠다.”

세일룬 왕국 전역에서 모인 유망주들.

콘웰 경의 선언과 함께 본격적인 검의 연회가 시작되었다.

&

< 제60장 - 제일검 > 끝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