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엔딩메이커-163화 (163/473)

< 제60장 - 제일검 #2 (수정) >

&

‘검의 연회.’

스펜서 공작가가 개최하는 검사들만의 작은 축제.

그 형태만 보면 그리 대단한 행사는 아니었다.

귀족가에서 일상적으로 열리는 티파티와 크게 다를 것이 없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 역사와 전통이 300년에 달한다면.’

더욱이 그 주최자가 귀족파의 거두이자 ‘검의 스승’이란 칭호를 가진 스펜서 공작가라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상당한 권위를 갖고 있어.’

검의 연회에서 좋은 활약을 했다.

검의 연회에서 인정받았다.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이야기였지만, 세일룬 왕국에서는 상당한 의미를 가진 말이었다.

‘검의 연회는 진짜배기들만 모인 장소니까.’

검의 연회가 적어도 규모 면에서는 계속 ‘작은 행사’ 수준에 머문 것은 스펜서 공작가가 그만큼 검의 연회의 참석 기준을 높게 잡았기 때문이다.

단순히 지역에서 이름이 좀 알려진 정도로는 검의 연회에 참석할 수 없었다.

부모나 스승이 명사라 하여 초대장이 배부되는 일 역시 없었다.

검의 연회에 초대받기 위해서는 자신의 실력이 진짜임을 드러낼 수 있는, 누구도 부정 못 할 일화가 있거나 상당한 실력자가 스스로의 명예를 걸고 추천해준 추천장이 있어야만 했다.

전자는 스펜서 공작가의 사람들이 일화가 사실인지, 과장된 부분은 없는지 면밀히 조사를 하기에 사실상 거짓으로 통과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까웠고, 후자의 경우엔 추천자의 명예가 걸린 일이기에 역시나 어설픈 자가 추천받는 일이 없다시피 했다.

‘다름 아닌 검의 연회니까.’

세일룬 왕국의 검사들에게 있어서는 엄청난 권위를 가진 행사였으니까.

그런 곳에 어설픈 자를 추천했다는 이야기가 돌면 어떻게 될까.

‘안목이 나쁘다는 건 변명조차 되지 않지.’

말 그대로 명예를 건 추천이었으니 말이다.

‘아무튼 그런 행사인데.’

단순히 초대받았다는 사실 자체를 자랑할 수 있는 대단한 권위의 행사.

세일룬 왕국에서 나고 자란 검사들에게 있어서는 말 그대로 꿈의 무대.

하지만 유더는 이 엄청난 행사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었다.

이유는 단순했는데, 전생이든 현생이든 검의 연회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정보가 없었기 때문이다.

‘원작에서는 단 한 번도 개최된 적이 없으니까.’

검의 연회는 이러나저러나 결국 스펜서 공작가의 가내행사였다.

때문에 가주인 스펜서 공작이 와병 중인 경우에는 열리지 못 하였는데, 영웅전기 시작2편부터 끝날 때까지- 정확히는 세일룬 왕국의 멸망으로 말미암아 스펜서 공작가도 멸문해 붉은 장미의 성이 레이드 몬스터의 요람이 되는 시점까지 스펜서 공작은 계속 와병 중이었다.

즉, 원작에서는 한 번도 열리지 않았다는 소리이다.

‘설정만 있어.’

그것도 그냥 그런 행사가 있었다더라 수준의.

그나마 작중에 나온 관련 대사가 ‘올해도 검의 연회는 열리지 않는 것인가? 아쉽구만.’ 수준이니 말 다한 셈이었다.

‘그나마 기대할 건 현생 기억인가.’

유더로 살면서 들은 이야기들.

체이스 백작이 흥흥 거리며 자랑했듯이, 체이스 백작의 친우인 바이엘 백작과 예비 사위인 게일은 검의 연회에 참석했고, 두 사람은 검의 연회를 씹어먹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맹활약을 했다.

‘그리고 그 두 사람이 우리 아버지랑 형이란 소리지.’

때문에 본래대로라면 엄청나게 소상히 알아도 이상하지 않았지만, 유감스럽게도 유더는 검의 연회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

구음절맥 때문에 검을 배우고 싶어도 배울 수 없는 유더에게 검의 연회에 대해 이야기하는 건 너무 지나친 일이라 생각한 바이엘 백작의 판단 때문이었다.

‘인성들이 너무 좋단 말이야.’

정말 그 아비에 그 자식이라고 해야 할까.

인성이란 면에서는 정말 새하얗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바이엘 백작과 게일이었다.

‘뭐, 사실 소상히 알 필요도 없겠지만.’

검의 연회는 열릴 때마다 조금씩 그 형태가 바뀌었다.

애당초 검의 연회의 목적은 세일룬 왕국의 유망주들을 한 자리에 모아 견문을 넓혀주는 것이었지 최고의 유망주를 가리는 것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토너먼트를 하든 뭘 하든 열심히 참가해서 상품 타면 되는 일.’

딱히 힘을 숨길 생각은 없었다.

힘을 숨겨서 볼 수 있는 이득이 없었으니 말이다.

‘물론 힘을 숨기면 뭣 모르고 덤비는 양아치들에게 사실 나는~ 하면서 밟아주는 재미가 있긴 하겠지만.’

당장 어제 있었던 루시안의 일과 같이.

하지만 사실 그렇게까지 끌리는 일은 아니었다.

애당초 누굴 놀리는 일을 그리 즐기지 않는 유더이기도 했고 말이다.

‘코델리아는 예외지만.’

코델리아를 놀리는 것은 전생의 유더에게 삶의 낙이나 다름이 없었으니까.

‘진짜 신기하단 말이지.’

왜 성별은 물론이고 얼굴과 나이조차 모르는 전생의 코델리아에게 그렇게 집착했던 것일까.

‘운명···이란 건가?’

저도 모르게 떠올린 생각에 순간 부끄러워진 유더는 얼굴을 살짝 붉힌 채 시선을 돌렸다.

말이 나온 김에 코델리아가 보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돌아보니 코델리아의 상태가 조금 이상했다.

검의 연회다보니 여자들도 대련복을 입고 참여한 이 장소에 홀로 드레스를 입은 코델리아는 평소 이상으로 눈에 띄었지만, 그게 이상하다는 것이 아니었다.

‘완전 넋이 나갔네.’

앞을 보고 서 있기는 한데, 실제로 앞을 보는 것은 아니었다.

머릿속으로 무언가 망상을 하는지, 아니면 기억을 회상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아무튼 뭔가 딴생각을 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했다.

‘어제··· 일 때문인가?’

아니면 스칼렛과 간밤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콘웰 경이 앞에서 검의 연회에 대해 무어라 좋은 말들을 늘어놓고 있었지만 슬슬 유더도 귀에 들어오지 않게 되었다.

코델리아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신경이 쓰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유더가 코델리아를 빤히 바라보고, 코델리아는 멍하니 앞을 바라본 그때.

유더의 예상대로 코델리아는 한창 어젯밤의 일을 떠올리고 있었다.

&

“으, 기분 나빠. 분명 찔러 죽이고 싶었는데 볼 살 만지는 게 너무 기분 좋아서 용서하고 싶어져.”

고양이 육구 만지는 기분이 이러할까.

아니, 비교조차 할 수 없었다.

코델리아의 뺨은 그야말로 극상의 진미와도 같았다.

“진짜 매일 만지고 싶다······.”

스칼렛은 저도 모르게 하악하악 거친 숨을 토했고, 덕분에 흠칫 놀란 코델리아는 스칼렛의 손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몸부림을 쳤다.

“그만, 그만 만져. 네꺼 아니거든?”

“뭐야, 그럼 블랙망토꺼라는 거야? 그래서 난 만지면 안 되는 거야?”

“아니이, 내꺼라니까? 여기서 왜 유더가 나와!”

“블랙망토꺼 아니야?”

“내꺼야, 내꺼.”

“그럼 주인 없으니까 내꺼해도 되겠네?”

“뭐?”

이게 무슨 논리야.

그리고 주인이 없긴 왜 없어. 내꺼라니까 그러네!

짜증이 난 코델리아가 앙탈을 부리자 바로 그 앙탈을 기대했다는 듯 까르르 웃은 스칼렛은 코델리아를 와락 안더니 그대로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 치유된다.”

“야, 난 아니거든? 그리고 진짜 왜 이러는데.”

“그러게, 나도 잘 모르겠네?”

약간은 바보처럼 웃은 스칼렛은 다시 코델리아의 허리를 안았고, 코델리아는 결국 포기한 얼굴로 어깨를 늘어트렸다.

“그래, 네 맘대로 해라, 네 맘대로.”

“진짜로? 진짜 마음대로 해도 돼?”

스칼렛의 물음에 코델리아는 다시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무리 봐도 스칼렛의 두 눈이 위험했기 때문이다.

“저기요? 로그 마스터씨?”

“농담이야, 농담.”

다시 까르르 웃은 스칼렛은 코델리아를 안고 있던 손을 풀더니 그대로 턱을 괴며 물었다.

“아무튼 그래서 핑크폭탄. 굳이 걸즈 토크라는 명목 하에 블랙망토와 단 둘이 있는 자리를 피한 이유가 뭔데?”

“어?”

“저기요, 제가 이래봬도 로그 마스터거든요? 거기다 방금 네가 한 말도 있고.”

사귀는 사이처럼 보이냐는 코델리아의 질문.

“어, 잠깐만. 설마··· 설마 너네 안 사귀는 거야?”

스칼렛의 물음에 코델리아는 순간 움찔했다.

그리고 그 움찔하는 모습에 스칼렛의 눈빛이 더욱 날카롭게 변했다.

설마 소문이 거짓이었단 말인가?

그렇다면 그 사랑의 주간도주도?

“아, 아니거든?! 우리 엄청 사랑하는 사이거든?! 그, 왜 너도 알잖아! 소문 다 난 거!”

코델리아가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쏟아내듯 말하자 스칼렛의 눈이 더욱 가늘어졌다.

어째 흥분해서 날뛰는 모습이 몹시 수상했기 때문이다.

“수상해.”

“뭐, 뭐가 수상해. 너도 방금 그랬잖아. 막 찔러 죽이고 싶다며.”

염장질 하지 말라며. 응?

코델리아는 열심히 변명했지만 역효과였다. 오히려 의심만 더 깊어졌으니 말이다.

“좋아, 그럼 증거를 대봐.”

“증거?”

“어, 증거. 블랙망토가 널 진짜로 좋아한다는 증거.”

스칼렛의 말에 코델리아는 더욱 패닉에 빠져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코델리아가 요즘 계속 고민하고 있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답을 구하지 못 하고 있는 것이 바로 그것이었기 때문이다.

“못 하겠어?”

“아, 아니거든? 얼마든지 있거든?”

“좋아, 그럼 들어줄게. 이리 와서 하나씩 말해봐.”

스칼렛은 아예 침대 위에 올라가더니 턱짓으로 자기 옆자리를 가리켰다.

이대로 누워서 이야기를 하자는 것 같았다.

“여, 여기서? 지금?”

“어, 여기서 지금. 걸즈 토크하자며.”

빙긋 웃은 스칼렛이 자기 옆 자리를 손바닥으로 팡팡 두드리자 코델리아는 무척이나 망설이는 표정이 되었지만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우물쭈물 스칼렛 옆에 다가가더니 그대로 다소곳이 누웠다.

“좋아, 그럼 이야기해봐. 블랙망토가 핑크폭탄을 좋아한다는 증거.”

“기, 기다려 봐. 너무 많아서 뭐부터 말해야 할지 모르겠어.”

“흐으응, 그렇구나아. 너무 많아서 골라야 할 정도구나아.”

스칼렛이 놀리듯 말하자 코델리아의 얼굴이 더욱 귀여워졌고, 스칼렛은 유더의 심정을 절실히 공감할 수 있었다.

‘재밌다.’

너무 재밌다.

어쩜 이렇게 놀리기 좋은, 사랑스러운 생물이 있을까.

스칼렛은 다시 하악거리기 시작했고, 눈앞에 닥친 시련 때문에 주위가 눈에 들어오지 않게 된 코델리아는 끙끙 거리다 겨우 입을 열었다.

“일단.”

“그래, 일단.”

“유더는 날 공···주님이라고 불러.”

“아항, 애칭이 있다 이거지?”

“어, 애칭. 그거.”

“그런데 공주님이라니··· 아우··· 진짜.”

“고, 공주님이 왜애.”

“아니다, 애기가 아닌 게 어디냐. 계속해봐.”

순간 유더가 자신을 애기라고 부르는 모습을 상상한 코델리아는 참으로 복잡한 기분에 빠졌다.

부끄러워 미칠 것 같은데 묘하게 좋은 기분도 들었기 때문이다.

‘나 미친 거 아냐?’

심장은 또 왜 이렇게 뛰는 거지?

“야야, 계속 해보라니까? 설마 밑천 떨어진 거야?”

“아, 아냐. 너무 많아서 고르는 거라니까?”

“그래, 그래. 너무 많으시겠지.”

“흠흠.”

어찌되었든 스칼렛 덕분에 평정을 되찾은 코델리아는 다신 손가락을 꼽으며 말했다.

“그리고 유더는 멀리 갈 때면 늘 업어줘. 다리 아프지 말라구.”

“흐으응.”

뭘까. 이 놀리는 동시에 놀림 당하는 기분은.

분명 때리고 있는데 얻어맞는 기분이 든 스칼렛이었지만 일단 버텨보기로 하였다.

“그리고?”

“어··· 그, 그리고 유더는 늘 에스코트를 해줘. 어디 갈 때마다.”

“그건 뭐 약혼자니까 당연한 거 아냐?”

“그, 그런가?”

역시 그냥 약혼자라 그런 건가?

“뭐, 좀 더 들어보면 알겠지. 더 해봐.”

“으응··· 그리고··· 어··· 맞다. 유더는 늘 나한테 밥을 해줘. 거기다 요리 완전 잘해. 너도 나중에 유더가 해준 밥 먹으면 홀딱 반할 걸?”

코델리아는 눈을 빛내며 말했지만 반대로 스칼렛의 눈은 차게 식었다.

‘야생동물 먹이로 길들이기니?’

근데 뭔가 그럴싸한 거 같기도 하고.

하지만 역시 그냥 들어줄 순 없는 이야기였다.

“야, 그게 뭐야. 그런 식으로 따지면 너희 집안 요리사는 널 좋아하는 거게?”

“그, 그치만 유더는 요리사가 아닌데도 해주잖아.”

그리고 생각해보니 딱히 그에 대해 불평을 늘어놓은 적도 없었다.

그러니까 역시 좀 특별한 게 아닐까?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아, 나 왠지 이유 알 거 같아.”

“응? 진짜로? 뭔데?”

“너 요리 엄청 못하지?”

스칼렛의 지적에 코델리아는 순간 머리에 망치를 맞은 얼굴이 되어 아무 말도 하지 못 했다.

유더가 늘 밥을 해주는 이유.

한 번쯤은 네가 해보라며 코델리아 자신에게 맡기지 않는 이유.

‘가능성이··· 있어!’

그리고 그렇기에 머리에 망치를 맞은 표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엄청난 실망감.

왜인지 모르게 밀려드는 감정.

“그런 거야? 내가 해주는 밥 먹기 싫어서 그런 거야? 존나 맛없으니까?”

코델리아가 저도 모르게 약간은 울먹이며 묻자 스칼렛은 급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 아니. 그렇다는 게 아니라. 그냥··· 그럴 수도 있다는 거지. 아, 아니다. 아무리 그래도 늘 밥을 해주는 건 보통 정성으로는 못 하는 일이야. 암, 그렇고말고. 밖에서 요리하는 게 얼마나 귀찮은 일인데.”

어느새 입장이 정반대가 되었지만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었다.

우울해진 코델리아를 보니 뭔가 큰 잘못을 한 기분이 든 스칼렛은 제법 필사적으로 말했고, 코델리아는 눈을 깜박이며 되물었다.

“그런··· 거야?”

“어, 그러 거야. 무조건 그런 거야.”

고개까지 열심히 끄덕여준 스칼렛은 돌연 피식 웃더니 상체를 일으키며 말했다.

“아무튼 그런 거네? 공주님이라 부르고, 맨날 업어주고, 에스코트 해주고, 밥도 해주고.”

“응, 맞아.”

코델리아 자신도 새삼 깨달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자 스칼렛은 다시 까르르 웃었다.

“뭐, 이해는 하겠는데. 뭔가 좀 부족한데? 이것만으로는.”

“부족해?”

“어, 이건 그냥 아빠같잖아.”

“아, 아빠?”

“어, 아빠. 그런데 너 표정이 왜··· 설마 네 애칭은 아빠라든가?”

“아, 아니거든? 그냥 가끔씩 둘이 말장난 할 때 그렇게 부른 거거든?”

“부르긴 진짜 불렀구나.”

“우그으······.”

“아무튼 좋아. 그럼 네 애칭은 뭔데?”

“어? 내 애칭?”

“아니, 블랙망토가 널 부르는 애칭이 공주님이라며. 그럼 너도 블랙망토 부르는 애칭이 있을 거 아냐. 설마 넌 애칭 없어?”

스칼렛의 지적에 코델리아는 다시 생각하는 사람이 되었다.

사실 유더가 공주님이라고 부를 때마다 코델리아 역시 공자님이라든지, 돌쇠라든지 받아친 게 있긴 했지만, 뭔가 애칭이라 하기에는 미묘했기 때문이다.

“표정 보니까 없구만. 야··· 그러지 마라. 사람 서운하게. 블랙망토도 사람이야, 사람. 왕자님이라도 좋으니까 너도 애칭 하나 만들어줘.”

“으응··· 아, 알았어.”

그래도 왕자님은 좀.

하지만 일단 머릿속 리스트에 삽입은 해두는 코델리아였다.

“아무튼 이게 다야? 더 없어?”

“이, 있어! 사랑의 편지!”

“오··· 블랙망토가 너한테 쓴 편지야? 그런 거 나 보여줘도 돼?”

“어? 아, 아니. 그거 말고. 그··· 유, 유명하잖아. 내가 유더한테 쓴 편지들.”

“아··· 주간도주 할 때마다 남긴 편지들? 그거 좀 유명하긴 하지.”

스칼렛의 말에 다시 얼굴이 빨개진 코델리아였지만 그래도 꿋꿋이 말을 이었다.

“나만 쓴 게 아냐. 유더도 썼어.”

코델리아가 인생의 업적을 자랑하듯 잰체하며 말하자 스칼렛은 짝짝짝 손뼉을 쳐주었다.

“그래, 그래. 네가 세 번 쓸 동안 한 번 썼지.”

“우그윽.”

사실 세 번 중 한 번 수준이 아니었으니까.

유더와 동행하기 위해 했던 말들까지 다 헤아리면 다섯 번의 한 번보다도 귀할 터였다.

‘우씨, 생각난 김에 내일 따져야겠다.’

너도 좀 더 적극적으로 사랑한다는 말을 남기라고. 동네방네 소문내라고.

자기 무덤 파는 소리였지만 깨닫지 못 한 코델리아는 다시 마음 속 리스트에 새로운 항목을 추가하였고, 스칼렛은 결론을 내렸다.

“좋아, 네 이야기는 잘 들었어. 판단도 나왔고.”

스칼렛이 팔짱을 끼며 오랜만에 팜 파탈스러운 표정을 짓자 코델리아도 벌떡하고 일어나 앉았다.

“뭔데? 유더가 진짜 나 좋아하는 거 같아?”

저도 모르게 속내가 드러난 코델리아였고, 스칼렛은 끌끌끌 혀를 차며 말했다.

“그건 모르겠고. 일단 이거 하나는 확실해.”

“뭐가?”

“역시 목 졸라 죽이고 싶다는 거!”

이 염장 커플들 같으니!

스칼렛은 반쯤 진심을 담아 코델리아의 멱살을 붙잡더니 그대로 마구 흔들어댔다.

‘그리고 하나 더.’

지금 이야기를 듣고 명확히 알게 된 것.

하지만 알려주기는 싫은 그것.

‘엄청 좋아하네.’

누가 누구인지는 굳이 말할 필요도 없겠고.

“아, 진짜 죽이고 싶다.”

스칼렛은 다시 코델리아의 뺨을 마구 꼬집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시 현재.

“코델리아.”

스칼렛 나빴어. 결국 대답도 제대로 안 해주고.

“코델리아.”

뺨만 엄청 꼬집고. 유더도 몇 번 못 꼬집어 본 볼살인데.

“코델, 리아?”

“어?”

세 번의 부름 만에 겨우 정신을 차린 코델리아가 유더를 돌아보았고, 유더는 눈짓으로 연회장의 단상을 가리켰다.

콘웰 경이 무어라 장황한 연설을 늘어놓고 있었고, 유망주들이 저마다 눈을 빛내며 이야기를 경청하고 있었다.

‘어제 잠이라도 못 잤어?’

‘응? 어··· 응. 스칼렛 때문에.’

‘많이 좋아하나봐?’

“어?!”

코델리아는 저도 모르게 육성을 토했지만 연설 중인 콘웰 경의 목소리가 워낙 큰 덕에 그렇게까지 크게 튀지는 않았다.

하지만 주변의 시선에 부끄러워진 코델리아는 어깨를 움츠리며 다시 눈빛을 보냈다.

‘뭐, 뭐가?’

‘아니, 스칼렛이 널. 너도 그런 거 같고.’

‘아, 응. 나 많이 좋아하는 거 같아.’

나도 스칼렛 마음에 들고.

그런데 그 순간이었다. 불쑥 어제 일이 생각난 코델리아가 유더의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그런데 유더야.’

‘왜 코델리아야.’

‘너··· 아냐. 나중에.’

육성이 아니라 눈빛으로도 ‘왕자님’이라 말하는 건 너무 부끄러웠으니까.

역시 다른 애칭을 생각해야 할 것 같았다.

‘코델리아?’

‘연설 끝난 거 같아.’

코델리아에게 있어서는 타이밍이 참 좋은 콘웰 경이었다.

유더는 별 수 없이 다시 정면을 보았고, 그런 유더와 마주친 콘웰 경은 작게나마 미소를 지었다.

경호 임무에서 해방되었을 때는 역시 전에 생각한 것처럼 제법 사람이 좋은 그였다.

“그럼 다음으로 토너먼트에 대해 설명하겠다.”

몇 년 만에 열린 검의 연회였고, 자연 토너먼트 역시 몇 년 만의 일이었다.

근처에 앉아 있던 루카스뿐만 아니라 주변의 다른 유망주들 역시 순간 바짝하고 열이 오른 느낌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모두의 열기에 콘웰 경은 기분 좋은 미소를 그렸다.

“좋은 열기다. 이 열기에 더욱 불을 지펴주도록 하지.”

콘웰 경이 짝짝하고 손뼉을 치자 뒤에서 대기 중이던 기사 한 사람이 손수레 하나를 밀고 나타났다.

하얀 천이 덮어진 손수레.

천 아래 있는 것.

이번 토너먼트의 상품임에 분명한 그것.

“상품을 공개하겠다.”

콘웰 경이 천을 치웠고, 그 순간 유더와 코델리아는 눈을 크게 떴다.

저도 모르게 서로를 돌아보았고,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마음 속으로 외쳤다.

‘대박!’

‘빙고!’

공개된 상품.

원작에서는 검의 연회가 열리지 않았기에 얻을 방법이 없었던, 나중에나 손에 넣게 되는 물건.

일단은 검이었다.

그것도 검사라면 누구나 탐을 낼 만큼 아주 좋은 검.

하지만 유더와 코델리아가 흥분한 것은 그것 때문이 아니었다.

‘진짜 정체,’

눈앞의 검에 숨겨진 비밀.

유더와 코델리아의 게임뇌가 다시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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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60장 - 제일검 #2 (수정)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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