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63장 - 왕세녀 >
제63장 - 왕세녀
게임이 되었든 소설이 되었든, 주인공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이야기를 보다보면 간접적으로만 다뤄질 뿐, 직접적으로 자세히 서술되지 않는 사건들이 종종 등장한다.
주인공이 그곳에 없었으니까.
주인공이 그 사건에는 관여하지 않았으니까.
그 외 기타 등등.
이러한 사건들을 배경사건, 혹은 배경설정 등으로 부르기 마련이었는데, 영웅전기2에도 수많은 배경설정들이 존재했다.
‘엄밀히 따지면 왕족 몰살 사건도 배경사건에 가까워.’
직접적으로 관여할 수 있는 플레이어블 캐릭터가 없었으니 말이다.
세일룬 왕국 출신의 플레이어블 캐릭터는 총 네 명이었는데, 그 중에 세 명이 북부 출신이었고, 남은 한 명은 남부 출신이었다.
즉, 왕도에서 시작하는 플레이어블 캐릭터는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소리였다.
‘그나마 관여할 수 있는 건 루카스와 카이사 정도.’
원작의 유더는 이 시점은 되어야 겨우 병을 고치네 마네 하는 상황이었고, 코델리아는 북부를 한창 헤매고 있을 때였으니까.
그리고 그나마 관여할 수 있는 루카스와 카이사도 사건의 변두리에 머무는 느낌이었다.
‘다른 플레이어블 캐릭터들은 아예 외국인들이고.’
때문에 왕도 몰살 사건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을 다프네 왕녀와 디온 왕자는 사실상 직접 만나서 교감할 수 있는 캐릭터가 아닌, 그저 배경 상으로만 존재하는 캐릭터에 가까웠다.
‘그래도 인기는 좋단 말이지.’
왕족 몰살 사건 자체가 워낙 중요한 사건이다 보니 시네마틱 무비만 다섯 개나 되었는데, 그중에 셋이 다프네 왕녀와 디온 왕자에 관한 것이었다.
‘캐릭터가 워낙 잘 뽑히기도 했고.’
비극의 주인공이라 그런지 일단 설정만 보면 다프네 왕녀와 디온 왕자는 완벽초인들에 성격들까지 좋았다.
이 둘이 환란 없이 자라 왕위에 올랐다면~이란 망상을 누구나 한 번쯤은 하게 만들 정도로 착하고 예쁘고 능력 있으며, 책임감까지 갖춘 이상적인 왕족들.
‘살릴 수 있어.’
게임이 아닌 현실이니까.
정해진 숙명이 아닌, 바꿀 수 있는 운명이니까.
“완벽한 해피엔딩을 위해.”
주문처럼 작게 읊조린 유더는 다프네 왕녀의 인장이 찍힌 초대장을 들어올렸다.
&
당대의 세일룬 국왕 헨리2세는 성군도 폭군도 아니었다.
딱 평균적인 왕.
이렇다 할 실정도 없지만 그렇다고 선정도 없는.
물론 이렇다 할 사고치지 않고 무난하게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제법 괜찮다 할 수 있는 게 국정 운영이라는 것이었지만, 어찌되었든 헨리2세 자체는 ‘평범한 왕’이라는 것이 세간의 평가였다.
실제로도 잘생긴 외모를 빼고 보면 능력적으로 딱히 출중한 부분이 없는 인물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의 자식들- 특히 장녀와 장남에 대한 평가는 헨리2세와 달랐다.
천재.
기린아.
세기의 아이들.
일부는 건국왕 라이온 D 세일룬의 걸출한 피가 다시 깨어난 것이라 했고, 다른 일부는- 특히 영웅전기담의 썩은물들은 1왕비의 유전자가 열심히 일한 결과라 평했다.
평범한 인물인 헨리2세와 달리 1왕비 유스티아 F 세일룬은 정말 걸출한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다섯 공작가 가운데 하나인 페이블 공작가 출신인 그녀는 문무 양쪽으로 두각을 드러낸 천재였는데, 페이블 공작가의 장녀이기도 한 터라 만약 헨리2세와 결혼하지 않았다면 페이블 공작가의 가주가 되어 일세를 호령했을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공작가의 가주 자리 대신 어린 시절부터 애정을 쌓아온 헨리2세와의 결혼을 택하였고, 그 결과 세일룬 왕가는 아름답고 현명하며 강인한 왕비와 무척이나 뛰어난 왕손들을 얻을 수 있었다.
왕도의 보석들.
왕가의 보물들.
그리고 그들 가운데 하나가- 아니, 그들 모두가 유더와 코델리아에게 관심을 보였다.
두 사람을 만나고 싶어 했다.
“아직이야?”
“어, 아직이야.”
유더의 대답에 코델리아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입술을 삐쭉였지만 유더는 개의치 않았다. 그저 심혈을 기울여 코델리아의 머리를 손질하고 또 손질할 뿐이었다.
‘이런 건 또 어디서 배웠데?’
가위질 하는 솜씨가 예사롭지가 않았다. 아니, 그 전에 어젯밤부터 이어진 온갖 일들을 떠올려 보면 저도 모르게 현기증이 나는 코델리아였다.
‘무슨 뷰티샵 원장이었어?’
건국 기념 무도회의 예비전이라면서 혼자 불타오른 유더는 그야말로 열과 성을 다해 코델리아를 꾸미고 또 꾸몄다.
‘우유로 목욕해본 건 처음이야.’
한 통 살 때마다 이게 왜 콜라보다 비싼 거지? -라는 의문에 휩싸였던 그 비싼 우유를 욕조에 가득 채운 뒤 하는 목욕이라니.
거기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우유 목욕이 끝나자 장미향이 나는 향유로 두 번째 목욕을 해야 했고, 그 와중에 또 몸에 뭔가를 치덕치덕 발라야 했다.
샴푸와 린스로 머리 역시 감고 또 감아야 했고 말이다.
‘목욕만 세 시간은 한 거 같아.’
어째 같이 목욕한 마이아와 달리아는 대만족한 것 같지만.
어찌되었든 씻고, 씻고, 또 씻은 결과 그렇지 않아도 하얗고 매끄러웠던 코델리아의 피부에서는 아예 광이 나기 시작했고, 달콤하던 살내음에는 은은한 장미향이 첨가되었다.
‘아가씨! 머리에서 빛이 나는 거 같아요! 엄청 부드럽고요!’
태어나서 처음으로 샴푸와 린스를 써본 달리아는 그야말로 대호평.
사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샴푸야 그냥 씻어내는 용도라 볼 수 있었지만, 머릿결 자체를 부드럽게 해주는 린스는 이 시대 기준으로 보면 그야말로 컬쳐쇼크를 야기하는 오파츠나 다름이 없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강제된 숙면.
아침에는 깨자마자 침대 앞에서 대기 중이던 유더에게 붙잡힌 코델리아는 다시 힘겨운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일단 다시 우유와 향유로 목욕.
그 다음엔 체형 교정 마사지와 체조.
여기에 이어진 그야말로 장구한 머리 손질.
‘무슨 인형이라도 된 거 같아.’
“어, 인형 맞아. 아니, 예술 작품이야.”
진짜 무슨 텔레파시라도 하는지 거울에 비친 코델리아의 눈빛을 읽은 유더가 말했고, 코델리아는 한숨과 함께 어깨를 늘어트렸다.
‘나 빼고 다 신났지 아주?’
아침부터 열과 성을 다하고 있는 유더는 둘째치고 마이아와 달리아까지.
“정말 아름다우세요.”
“네, 아가씨. 정말 예뻐요. 아··· 마치 어린 시절로 돌아간 기분이에요.”
“인형놀이하던?”
“후훗, 아시면서.”
연애 쪽으로는 늘 푼수가 되는 달리아는 알고 보니 미용 쪽으로도 푼수였다.
아니, 그냥 코델리아와 관련된 일에는 다 푼수가 되는 모양이었다.
‘으, 좋아. 다과회가 있는 내일 까지는 인형이 되는 수밖에.’
다프네 왕세녀와 디온 왕자에게 강한 인상을 줘야 했으니까.
더욱이 이번 다과회에는 왕도의 유력 귀족들이- 정확히는 그들의 자녀들이 참가할 가능성이 높았다.
다른 누구도 아닌 왕세녀가 주관하는 다과회였으니 말이다.
‘기를··· 죽인다고 했지?’
왕도에서 끗발 깨나 날리는 집안의 자식들이었으니까.
루시안 같은 녀석이 또 있을 수도 있으니 아예 사전에 차단해야 한다는 것이 유더의 주장이었다.
‘완전 예쁘게 꾸미는 거랑 사전 차단이랑 무슨 상관인진 모르겠지만.’
유더가 그렇다면 뭐 그런 거겠지.
마이아랑 달리아도 동의했고.
‘그런데 다프네 왕녀보다 예뻐도 되려나? 그래도 다프네 왕녀가 주인공일 텐데.’
그 왜 결혼식에 갈 때는 신부보다 더 예쁘게 보이면 안 된다는 불문율 같은 게 있지 않던가.
‘안 그래도 예쁜 코델리아인데 이렇게까지 꾸미면 진짜 왕국 최고··· 아니, 대륙 최고의 미소녀일 테니까.’
남들이 들었다가는 차게 식은 눈이 될- 하지만 결국 인정할 수밖에 없을 그 무언가.
코델리아는 제법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고, 그 와중에 유더의 머리손질이 마침내 끝을 맞이했다.
“좋아, 끝났다.”
“진짜? 이제 진짜 끝난 거지?”
“어, 이제 옷 골라야지.”
“어?”
옷을 입는 게 아니라 고른다고?
“걱정 마. 스무 벌 정도만 입어 보면 되니까 오래 안 걸릴 거야.”
“스무 벌?! 아니, 잠깐. 애당초 내가 왕도에 챙겨온 드레스가 세 벌인데?”
언제 스무 벌이 된 거지?
“그야 내가 따로 챙겨왔으니까. 왕도에서 구입한 것도 있고.”
“자, 잠깐. 무슨 돈으로?”
바이엘 백작가나 체이스 백작가나 수입이 뻔했다.
물론 북부12가문의 하나인만큼 일반적인 귀족에 비하면 양쪽 모두 상당한 수입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드레스를- 그것도 값비싼 드레스를 마구 사들일 정도의 재력은 아니었다.
‘드레스 값이 말도 안 되게 비싸니까!’
현생 코델리아의 감각으로만 봐도 비싼 드레스들이었는데, 전생 코델리아의 감각까지 더해지니 그야말로 말도 안 되는 가격들이었다.
그런데 그런 드레스를 언제 열일곱 벌이나 늘렸단 말인가.
“시간이 없어서 대부분 이미 만들어진 걸 사야하는 정도였지만··· 이번엔 어레인지 좀 하는 정도로 만족하는 수밖에.”
“아니이, 무슨 돈으로 샀냐니까?”
스펜서 공작에게 어마어마한 상금을 수표로 받기는 했지만, 이틀 전에 받은 터라 아직 은행 가서 환전도 안 한 상태였다.
그런데 대체 무슨 돈으로 그 많은 드레스들을 다 샀단 말인가?
코델리아가 재차 묻자 유더는 달리아와 마이아를 슬쩍 돌아보더니 이내 다시 눈빛으로 말했다.
‘핑크폭탄.’
‘핑크폭··· 잠깐, 로그 마스터? 도둑질 한 거?’
단 두 번이었지만, 그 두 번이 그야말로 대박털이였으니까.
‘주변에는 여행 중에 얻은 보물들을 처분했다고 했어. 어느 정도는 사실이기도 하고.’
‘으아으······.’
자금의 출처를 알자 더욱 패닉에 빠진 코델리아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드레스 스무 벌이면 대체 돈이 얼마란 말인가.
‘야, 미쳤어? 여기에 돈 다 꼬라박은 거야?’
“코델리아는 소중하니까.”
‘뭐라는 거야 진짜! 그리고 왜 육성으로 말하는데!’
코델리아의 눈빛 항의에 유더는 그저 능글맞게 웃었고, 영문을 모르는- 그러니까 ‘코델리아는 소중하니까.’만 들은 마이아와 달리아는 저들끼리 꺅꺅 거리기 시작했다.
[미쳤어, 진짜. 낭비벽 맥스야. 파혼을 진지하게 검토해봐야겠어. 도박쟁이보다 더해!]
아예 메시지 마법을 날리자 유더는 가볍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도박이랑은 다르지. 이건 물건이 남잖아. 여차하면 되팔면 돼.]
[으으··· 그래도, 그래도······.]
자신을 위해 아낌없이, 아니- 그냥 미친 듯이 돈을 쓰는 약혼자.
이걸 좋아해야 하는 걸까 말아야 하는 것일까.
[그리고 걱정 마. 이 정도 돈이야 다시 벌면 되니까.]
[으··· 뭔가 믿음직하면서 재수 없어.]
솔직히 유더가 잘나긴 잘났으니까.
옷까지 홀딱 벗겨서 맨몸으로 던져놔도 일주일 후쯤 찾아가면 부귀영화를 누리고 있을 인간이기는 했다.
더욱이 지금의 유더에게는 스펜서 공작에게 받은 어마어마한 상금이 있었으니까.
자고로 돈이 돈을 부른다 했으니, 유더가 작정하고 나서면 드레스 스무 벌 비용 정도는 정말로 쉽게 벌어들일지 몰랐다.
[으으··· 그래도 너무해. 그냥 요정의 드레스 입으면 되는 거 아냐? 어차피 그게 최고잖아.]
[안될 말씀. 어디 한 번 입었던 드레스를 또 입으려고. 요정의 드레스는 건국 기념 무도회 때 입어야지.]
[잠깐, 지금 그게 무슨 말이야. 한 번 입었던 거 또 입으면 안 된다고?]
[당연하지. 일상복도 아니고. 이런 자리에서 입는 드레스는 무조건 나갈 때마다 바꿔 입어야 하는 거야. 일회용이라고.]
[뭐어?]
이게 지금 뭐라는 거야.
저 비싼 옷들을 한 번 입고 말라고?
지가 무슨 만수르야?
[코델리아는 소중하니까.]
[뭐라는 거야 진짜!]
그렇게 느끼한 미소 지으면서 느끼하게 말하면 다 넘어가는 줄 아나?
물론 나쁜 기분은 아니었지만
솔직히 좀 들을 때마다 좋기는 했지만.
[아무튼 공주님, 그냥 몸을 맡시기죠. 최고로 꾸며드릴 터이니.]
[하아··· 진짜 미친 것 같아······.]
분명 어린 시절에 인형놀이 엄청 열심히 했을 거야.
잠시 인형놀이하는 어린 유더를 떠올린 코델리아는 저도 모르게 피식 웃었고, 그 모습을 옆에서 바라보던 마이아와 달리아는 뭘 또 오해했는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아무튼 그럼 패션쇼를 시작하자고.”
뭘 입고 나갈지 골라야 몸에 맞게 수정도 하고 어레인지도 하니까.
“하아··· 유더가 만능인 게 싫은 건 처음이야.”
분명 옷 줄이는 것도 직접하겠지.
절레절레 고개를 내저은 코델리아는 결국 모든 것을 내려놓은 뒤 유더와 마이아와 달리아의 인형이 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장장 네 시간.
수십 번도 넘게 옷을 입고 벗고를 반복한 코델리아가 완전히 지쳐 녹초가 될 즈음 유더와 마이아와 달리아는 마침내 드레스 한 벌을 선택했다.
“너무 튀면 안 되니까.”
‘그게 네 입에서 나올 말이니?’
안 튈 거면 애당초 왜 그렇게 열과 성을 다한 건데!
코델리아의 눈빛 항의를 가볍게 무시한 유더는 포근한 느낌이 드는 분홍색 드레스를 손보기 시작했다.
‘으··· 소름 돋아.’
그냥 손질하면 안 되나.
왜 저렇게 희희낙락하며 손질을 하는 건데.
하지만 어찌되었든 어젯밤부터 시작된 기나긴 대장정이 끝난 셈이라 코델리아는 어깨를 축 늘어트렸다.
‘이제 좀 쉬어야지.’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끝났다고 생각한 것은 코델리아만의 착각이었으니 말이다.
“그럼 아가씨, 목욕하러 가시죠.”
“뭐?”
“다과회는 내일이니까요. 마사지랑 체조도 다시 하셔야죠? 손톱 손질도 하셔야 하고요.”
달리아와 마이아가 차례대로 말했고, 코델리아는 멍한 얼굴로 눈만 껌벅이다가 다시 질질질 끌려가는 신세가 되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다시 시작된 유더의 뷰티샵에 고통 받던 코델리아는 오후 2시 남짓이 되어야 겨우 숙소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다들 미쳤어······.”
“그래도 성과는 좋잖아? 그리고 구김 생길지 모르니까 허리 곧이 세우고 앉아. 어디 기대지 말고.”
“너 미워, 너 싫어.”
울상을 지으며 악담을 퍼붓는 코델리아였지만 그래도 말은 또 잘 들었다.
허리를 꼿꼿이 세운 채 꼼짝도 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하, 보람이 있다. 보람이. 왕도의 귀족들이 어떤 표정을 지을지 기대되네.”
“우씨 나도 너 꾸미려고 했는데.”
정신없이 꾸며지기만 한 터라 유더에게는 손끝하나 대지 못 한 코델리아였으니까.
하지만 사실 딱히 손을 댈 것도 없었다.
어차피 마이아와 달리아가 가만히 있지 않았으니 말이다.
‘결국 제일 재미를 본 건 그 두 사람 같단 말이지.’
두 사람이 탄, 뒤를 쫓아 따라오고 있는 마차를 돌아본 코델리아는 다시 유더에게 말했다.
“아무튼 유더야. 이제 다프네 왕녀랑 디온 왕자를 만나기만 하면 되는 거지?”
“어, 물론 두 사람과 친해져야 하는 과정이 남아 있지만··· 그건 뭐 네가 어련히 잘 하겠지.”
“으··· 왕족이라니 부담 되는데.”
그것도 그냥 왕족이 아닌 왕세녀였으니까.
현생 코델리아는 세일룬 왕국의 귀족으로 나고 자란 인물이었다. 각성한 전생의 기억이 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왕족을 만난다고 생각하니 긴장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걱정 마. 다리안 왕녀도 있을 테니까.”
“그나마 다행이야, 그나마 다행.”
다리안 왕녀의 활짝 웃는 얼굴을 떠올린 코델리아는 어깨를 살짝 늘어트린 채 새삼 숨을 크게 골랐다.
어찌되었든 이미 닥친 일이었다.
더욱이 완벽한 해피 엔딩을 위해서는 다프네 왕녀와 친해질 필요가 있었다.
“할 수 있어.”
“그래, 할 수 있어.”
다리안 왕녀는 물론 다른 귀족들도 있을 테니까.
코델리아의 용기를 북돋아준 유더는 마차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붉은 장미의 성보다도 훨씬 크고 아름다운- 세일룬 왕가의 본궁을 시야에 담았다.
&
“이쪽입니다.”
화려하고 또 화려한 실내.
여기에 우아하기 짝이 없는 궁내부원의 안내까지 더해지니 - 정작 그 궁내부원도 코델리아를 보고 잠시 넋을 잃었지만 - 어딜 가고 있는지도 모를 정도로 정신이 혼미해진 코델리아였다.
하지만 언제나와 같은 유더의 에스코트가 있었기에 정신을 살짝 놓은 상태에서도 제법 우아한 모습을 유지한 코델리아는 어느 순간 저도 모르게 감탄을 토했다.
‘우와아.’
실내에 꾸며진 화원.
유리로 된 천장에서 쏟아지는 햇살 아래 색색의 꽃들이 조화롭게 자리한 모습은 마치 그림과 같았다.
비현실적인 아름다움.
하지만 분명한 현실.
‘역시 왕궁은 다르구나.’
그것도 대륙양강 가운데 하나인 세일룬 왕국의 왕궁이었으니까.
유더 역시 코델리아와 마찬가지로 감탄을 금치 못 했다.
하지만 잠시 뿐이었다.
화원에 들어선 순간 강한 위화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사람이··· 없어?’
유더 자신과 코델리아가 첫 손님이다?
물론 그럴 수도 있었다.
하지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리가 하나 뿐이야.’
정확히는 테이블이 하나뿐이었다.
귀족들이 여럿 참여하는 다과회라면 테이블이 여럿이어야 하는데, 오직 하나- 그것도 네 사람이 겨우 앉을 수 있는 작은 테이블이 전부였다.
‘설마.’
유더 자신이 생각한 다과회가 아닌 것일까?
나름대로 푸른 달을 통해 다과회 참가자 명단까지 뽑아놨거늘.
설마 다프네 왕녀가 갑자기 일정을 바꾸기라도 했단 말인가?
하지만 도대체 왜.
어째서.
“너희 둘에게만 집중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름다우면서도 고고한, 지배하는 자 특유의 강한 힘이 어린 목소리.
유더와 코델리아는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돌아보았고, 하얀 드레스를 입고 머리에 금빛 티아라를 쓴 금발의 미녀를 마주할 수 있었다.
다프네 왕세녀.
왕도의 보석이라 불리는 여인.
“나의 화원에 온 것을 환영한다.”
그녀가 말했고, 예정과 다른- 오직 세 사람만의 다과회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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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63장 - 왕세녀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