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엔딩메이커-174화 (174/473)

< 제64장 - 카운트다운 >

제64장 - 카운트다운

유더와 코델리아는 나란히 앉아 무척이나 고급스러운 종이에 고급스러운 필체로 적힌, 거기에 왕가의 직인까지 찍힌 초대장을 바라보았다.

“어··· 이거 같이 목욕하자는 건 아닌 거 같지?”

“그러네, 처음 이야기랑 내용이 좀 바뀌었네.”

다프네 왕세녀와의 다과회를 마치고 한 시간 남짓.

마이아가 새로 들고 온 초대장의 내용을 간추리면 다음과 같았다.

이틀 뒤 밤에 같이 물놀이 하자.

유더랑 디온이랑 다리안까지 껴서.

‘하긴, 아무리 그래도 목욕은 좀 그렇지.’

서로 나신을 드러내는 일이었으니 아무리 같은 성별끼리라 해도 이제 겨우 한 번 본 코델리아와 함께 할 만한 일이 아니었다.

“장소는 그대로인 걸 보니··· 온천 같은 곳에 수영복 입고 들어가는 거 생각하면 되겠네. 일종의 나이트 풀 같은 건가?”

유더가 혼잣말하듯 작게 중얼거리자 코델리아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나이트 풀? 그게 뭔데?”

“이름 그대로 밤에 가는 수영장. 그, 뭐랄까 대낮의 수영장이 온가족의 놀이터라면 나이트 풀은 성인들의 놀이터라고 해야 하려나?”

일단 애들이 없었으니까.

유더의 애매한 설명에 코델리아는 미간을 좁히고 생각에 잠기더니 이내 다시 호기심 섞인 얼굴로 물었다.

“그럼 클럽 같은 거야?”

“그런 곳도 있고, 그냥 야간 개장하는 호텔 수영장 같은 곳도 있고.”

거기까지 말한 유더는 기억을 더듬듯 잠시 먼 곳에 시선을 두었다.

그러자 코델리아는 어쩐지 모르게 빨라진 어조로 물었다.

“너도 가봤어? 누구랑 갔어? 여자랑? 여자 친구랑?”

“어?”

“누구랑 갔어?”

코델리아의 얼굴이 어느새 가까워져 있었다.

그러자 반사적으로 어깨를 움찔한 유더는 저도 모르게 변명하듯 말했다.

“그··· 놀러가 본 적은 없고, 나도 그냥 있는 거만 알아.”

“진짜로?”

“아니, 진짜로. 가본 척 하는 거라면 모를까, 가본 적 없다고 거짓말 할 리가 없···잔아?”

“흐으응.”

코델리아의 눈이 가늘어졌고, 저도 모르게 마른 침을 삼킨 유더는 이내 빙긋이 미소 지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뭐야, 갑자기 왜 웃는데?”

“그냥? 그냥 좋아서.”

코델리아가 그랬던 것처럼 눈을 가늘게 뜬 유더는 능글맞게 웃었고, 어쩐지 모르게 화가 난 코델리아는 유더의 손등을 꼬집었다. 그다지 타격은 없었지만 말이다.

“아무튼 그럼 준비를 좀 해야겠군.”

“준비라니?”

“수영복 사야지. 수영복 안 가져 왔잖아.”

지금은 겨울이었으니까.

아니, 설사 여름이었다고 해도 딱히 수영복을 챙겨오지는 않았으리라.

설마 왕세녀랑 같이 수영하고 놀 일이 있을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수표도 쓰기 편하게 환금하고. 남은 일정을 위한 준비도 좀 하고.”

유더가 하나하나 손을 꼽아가며 말하자 새삼 초대장을 살펴보고 있던 코델리아가 고개를 들었다.

“무도회 준비?”

“그것도 있지만··· 이제 정말 디데이가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 준비를 해야겠지.”

호국공의 수족이 되어 왕도 곳곳에서 테러를 일으킬 예정인 검은 달의 저지는 아직 완벽하지 못 했다.

귀족파의 공격으로 호국공의 정치적 입지가 다소 약해지긴 했지만 애당초 공격한 시간 자체가 너무 짧았고, 고작 비리 몇 건 적발한 정도로 무너질 호국공과 검은 달이 아니었다.

좀 더 강한 한 방이 필요했다.

“세 번째 범행에 나서는 거야?”

“그래, 괴도 핑크폭탄의 세 번째이자, 당분간은 마지막이 될 예고장이지.”

세 번째 범행 대상은 이미 정해둔지 오래였다.

무얼 훔쳐낼지 역시 결정되어 있었고 말이다.

“그것 말고도··· 준비할 것들이 있겠지?

“어, 탈출 경로도 짜야하고··· 아무래도 랑게스트 때보다 지켜야 할 사람이 훨씬 더 많으니까.”

그때는 사실상 루카스와 코델리아만 지키면 되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지켜야할 왕족의 숫자만 해도 열 명이 훌쩍 넘었다.

‘물론··· 단순히 결계의 파괴를 막고자 하는 거라면 다프네 왕녀 한 명만 지켜도 충분하겠지만.’

하지만 그건 정말 최악의 경우일 때의 이야기였다.

‘가능한 많은 왕족들을 구한다. 아니, 아무도 죽지 않게 한다.’

희생자를 아예 없게 하는 것이 최선.

코델리아 역시 그것을 바랄 터였다.

“이러나저러나··· 결국 큰 싸움이 되겠지?”

코델리아가 우울한 얼굴로 말했다.

설사 왕족들을 모두 지켜내는데 성공한다 할지라도, 정말 사상자가 아예 없게 하는 것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유혈항쟁.’

호국공 측은 죽자고 덤빌 터였으니, 그들을 막는 와중에 경비병이나 근위 기사들 같이 왕도를 지키는 이들 사이에서 피해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최소화.’

검은 달을 와해시키는 것 역시 피해를 줄이기 위함이었으니까.

“으으··· 이럴 때는 조금 답답해. 그냥 전부 말해서 이해시킬 수 있으면 좋을 텐데.”

호국공의 왕족 몰살 계획을 사전에 알릴 수 있다면, 그리하여 왕족이 호국공을 구금하거나 처형한다면.

하지만 불가능한 이야기였다.

유더와 코델리아의 말을 사람들이 믿어 줄 리가 없었으니까.

전생의 기억 운운하면서 구국의 영웅인 호국공이 왕족들을 몰살할 음모를 꾸미고 있다고 하면 누가 믿어줄까.

오히려 유더와 코델리아를 감옥에 가두거나 정신병원에 보내려 할 터였다.

코델리아의 말에 유더는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코델리아의 손 위에 자기 손을 포개어 올렸다.

“그래도 다행이지 않아?”

“뭐가?”

“나라도 있어서.”

유더의 말에 코델리아는 눈을 동그랗게 뜨는가 싶더니 이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야, 너두?”

내가 있어서 좋아? 든든해?

잔망스러운 눈빛에 유더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 나두.”

혼자였다면, 그래서 이 모든 일들을 혼자서 해나가야 했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힘들고 외로웠을 테니까.

“일단 핑크폭탄을 내가 해야 했을 테고.”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요. 속이 까만 블랙망토 씨.”

“네, 속이 하얀 핑크폭탄 님. 저는 사이드킥인 블랙망토에 만족하려 합니다.”

언제나처럼 능글맞게 웃은 유더는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

“아무튼 가자. 쇼핑 타임이야, 쇼핑 타임. 벌었으면 써야하지 않아?”

“흐으음··· 뭐, 좋아. 왕도에 왔는데 아직 왕도 무기점들을 제대로 순회하지 못 했으니까. 이참에 아예 채찍도 하나 구해볼까 하고.”

코델리아가 빙긋 웃으며 답하자 유더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쇼핑하러 가자는 말에 무기점부터 떠올리는 이 아가씨를 어이한단 말인가.

“왜? 내가 뭐 이상한 이야기 했어?”

“아뇨, 공주님. 아주 잘 말씀하셨습니다. 내친 김에 서두르도록 하죠.”

“지금 가자고?”

“왜, 아직 저녁 먹을 시간도 아니잖아. 이참에 어디 레스토랑이라도 가볼까? 왕도에 왔는데 제대로 된 곳에서 식사도 못 해봤잖아.”

유더의 말에 코델리아는 고개를 돌려 창밖을 보았다.

늦은 오후이긴 했지만, 해가 지려면 아직 시간이 조금 남아 있었다.

“쇼핑도 하고, 저녁도 먹고, 어디 다리 같은 곳 가서 야경도 좀 구경하다가 오자.”

“파르페도 먹고?”

“우리 공주님이 원하신다면야.”

유더가 씩하고 웃자 코델리아는 끌린다는 듯 고개를 살짝살짝 끄덕였다.

하지만 바로 그때였다.

‘어, 잠깐.’

쇼핑하고, 저녁 먹고, 야경 보다 오자고?

단 둘이?

아니, 물론 사실상 거의 매일 붙어 다니고는 있지만.

그래도.

그래도 이러면 뭔가.

지금까지 붙어 다니던 것과는 살짝 다르지 않나?

그러니까 이러면 마치······.

‘데, 데이트?’

퍼뜩 떠오른 단어에 코델리아는 고개를 번쩍 들었고, 고개를 갸웃하며 이쪽을 보는 유더와 눈이 마주쳤다.

“코델리아?”

“어? 어··· 응. 그래, 응응.”

까, 까짓 데이트가 뭐 별건가?

할 수도 있지 뭐.

‘맞아, 약혼한 사이잖아.’

데이트 하는 게 당연하지.

하나도 안 이상하지.

오히려 지금까지 안 한 게 이상하지.

응응, 맞아.

데이트 정도야 할 수 있지.

‘유더랑.’

거기까지였다. 코델리아는 살짝 입술을 깨물었고, 그대로 눈동자만 위로 굴려 다시 유더를 보았다.

언제나와 같은 능글맞은 얼굴과 이쪽을 빤히 바라보는 녹색 눈동자.

“하여간 엉큼해.”

“아니, 지금 뭔가 억울한 누명을 쓰는 것 같은데?”

“흥.”

어찌되었든 묘하게 기분이 좋아진 코델리아는 단번에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좋아, 그럼 나가자. 언니 감시하러 간다고 하면 아버지도 허락하실 거야.”

아무래도 야경까지 구경하려면 시간이 늦어질 수밖에 없었으니까. 해만 떨어져도 왕궁 문이 닫힐 터이니, 밖에서 묵을 수밖에 없었다.

“흐음, 나쁘지 않은 명분이긴 하지만 아버님이 그걸 바라시려나······.”

아델리아와 게일의 감시.

과연 정말로 원하실까?

오히려 사고치길 바라시지 않을까?

“또또 이상한 생각한다.”

“아니, 그냥 아버님과의 공감을 시도해 봤다고 해야 하나.”

“헛소리는 그쯤하면 됐고요. 그럼 너도 꾸미고 나와. 나도 꾸미고 나올 테니까.”

뭔가 많이 새삼스러웠지만, 그래도 첫 데이트니까.

코델리아가 나름의 의미를 담아 말하자 유더는 마치 연극을 하듯 과장스럽게 예를 표했다.

“기대하며 기다리겠습니다.”

“네, 공자님.”

빙긋 미소 지은 코델리아는 그대로 돌아서더니 새삼 발걸음을 서둘렀다.

그리고 30분 남짓.

해지기 전에 왕궁을 나서기 위해 최대한 서두른 유더와 코델리아를 태운 마차가 커다란 도개교 위를 지났다.

&

왕도의 유행을 선도하는 베르덴 거리의 꽃이라 불이는 살로메 드레스 샵.

그곳에서만 벌써 3년째 근무 중인 마담 살로메의 조카 마를렌 양은 흐뭇한 얼굴로 눈앞의 커플을 바라보았다.

‘귀여워라.’

이제 십대 중후반이나 되었을까.

색이 선명한 붉은 머리칼의 소녀와 늠름하니 키가 큰 검은 머리의 청년.

청초한 느낌이 물씬 드는 하얀 드레스를 입은 소녀는 챙이 넓은 하얀 모자를 쓰고 있었는데, 이런 커다란 드레스 샵 자체가 낯선 듯 호기심과 두려움, 약간의 선망과 기대가 뒤섞인 표정을 짓고 있었다.

‘많이들 짓는 표정이지.’

특히 지방에서 올라온 아가씨들이.

‘제법 잘 나가는 집안의 영애 같기는 한데······.’

입고 있는 하얀 드레스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디자인은 수수한 편이었지만 평범한 천으로 만든 옷이 아니었다.

거기에 손에 끼고 있는 반지와 가슴에 차고 있는 브로치.

이쪽 역시 최신 디자인은 아니었지만, 상당한 가치를 지닌 물건임에 분명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너무 예쁘잖아!’

인형이 살아 움직이는 걸 목격한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

저 작은 얼굴에 어쩜 저렇게 오밀조밀하게 눈코입이 자리하고 있는 걸까.

그리고 옆에 서 있는 청년.

아마도 연인 혹은 약혼자임에 분명한, 그야말로 그림으로 그려놓은 것 같은 미남자.

소녀와 달리 이런 장소가 꽤 익숙한 듯 행동거지 하나하나가 자연스러웠는데, 마를렌은 청년의 얼굴도 얼굴이지만 행동거지에 마음이 갔다.

‘세심해.’

처음 가게에 들어선 이후 지금까지.

그냥 평범하게 걷는 것 같았지만, 베테랑인 마를렌은 알 수 있었다. 청년은 언제 어느 때나 소녀의 동선을 신경 쓰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기에 펼칠 수 있는 최적화된 에스코트.

언제 어디서고 소녀를 지킬 수 있는 빈틈없는 호위.

‘뭣보다.’

청년은 소녀에게서 단 한 순간도 눈을 떼지 않았다.

잠시 다른 곳을 바라볼 때도 언제나 시야 한 구석에는 소녀를 집어넣고 있었다.

‘관심도 많아.’

보통 이런 드레스 샵에 오면 여자 쪽은 신이 나서 세밀히 살펴보는 반면 남자들은 한 걸음 물러서서 뚱한 표정을 짓고 있기 마련이었으니까.

어떠냐고 물어보면 그냥 좋아 한 마디로 끝.

그런데 이 커플은 좀 달랐다.

여자보다 오히려 남자 쪽이 훨씬 더 열성적이었기 때문이다.

“하, 안 되겠다. 어차피 바리에이션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으니까.”

작게 중얼거린 남자- 유더는 마를렌을 돌아보며 말했다.

“여기서 여기까지 그냥 전부 주세요.”

왼쪽 끝에서 오른쪽 끝까지.

대충 드레스 열댓 벌.

유더의 말에 코델리아는 눈을 휘둥그레 뜨더니 다급히 유더의 소매를 잡아당겼다.

[야! 미쳤어?! 미쳤냐구!]

[아니, 왜.]

[과소비 맥스! 낭비쟁이 아웃! 안 돼! 못 해! 절대로 안 돼!]

메시지 마법으로 단호하게 선언한 코델리아는 다급히 주변을 둘러보더니 반대편에 전시되어 있는 드레스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거! 저거 하나만 주세요!”

어중간한 걸 고르면 유더가 또 고집을 피울지 모르니까.

좀 비싸 보이긴 하지만 제일 예쁜 거 하나만 골라야지.

하지만 바로 그 순간이었다.

“오, 역시 코델리아.”

“안목이 있으시군요.”

유더와 마를렌이 차례대로 말했고, 코델리아는 눈을 깜박일 수밖에 없었다.

“네? 안목···이요?”

“네, 저희 가게에서 제일 좋은 물건이거든요.”

마를렌은 화사하게 웃으며 말했고, 유더는 메시지 마법을 보내는 대신 코델리아의 귀에다 대고 아주 작게 속삭였다.

“이쪽 벽에 있는 거 다 합친 거보다 저거 하나가 더 비싸.”

“뭐라고?!”

유더는 귓속말이었지만 코델리아는 아니었다.

저도 모르게 크게 소리친 코델리아는 마를렌이 놀라든 말든 두 팔을 휘저으며 연달아 소리쳤다.

“취, 취소! 완전 취소! 슈퍼 캔슬!”

너무 놀라 헛소리까지 하며 허우적거린 코델리아는 능글맞게 웃는 유더의 발을 세게 밟았고, 마를렌은 입술을 깨물어 겨우겨우 웃음을 참았다.

그리고 다시 30분 남짓.

드레스 두 벌과 이틀 뒤에 입을 수영복 세 벌을 구입한 유더와 코델리아는 한쪽은 생기발랄하게, 다른 한 쪽은 완전히 지친 얼굴로 드레스 샵을 나섰다.

“세상이 미쳐 돌아가는 게 분명해.”

“드레스가 너무 비싸서?”

“완전 바보 같아.”

코델리아는 북부12가문 가운데 하나인 체이스 백작가의 영애였고, 귀족으로서 17년 세월을 보낸 만큼 ‘귀족의 소비 생활’이란 것에 익숙해 있었다.

하지만 귀족의 소비 생활도 정도가 있는 법이었다.

“완전 낭비야. 사치라구. 거기다 유더 너도 경제관념이 좀 많이 망가져 있는 것 같아. 갑자기 큰돈이 생겼다고 손이 마구 커지면 안 되는 거 몰라?”

약간은 설교조로 말한 코델리아는 그대로 발걸음을 내디디며 말을 이었다.

“한 번 올라가버린 소비 성향은 다시 내려가기가 무지무지 어려운 법이야. 그, 왜 몰락 귀족들이 귀향한 후에도 예전처럼 돈 쓰다가 패가망신하는 것도 그래서라고. 그 사람들이 멍청하다기 보다는- 애당초 사람의 성향이라는 게 그런 법이야.”

“누가 그랬는데?”

“학교 경제 선생님이.”

코델리아의 대답에 유더는 마치 '그랬어요?'라고 말하듯 빙긋이 웃었고, 코델리아는 그런 유더의 뺨을 꼬집었다.

“하여간 미워죽겠어.”

그리고 다시 발걸음.

다리를 건너, 지는 해를 따라 길게 드리워진 그림자 속에 들어섰을 때.

“이제 슬슬 나오시지 그래요?”

코델리아가 돌연 등 뒤를 향해 말했고, 그 순간 유더 또한 깨닫게 되었다.

코델리아가 알아차린 것.

그리고 이제는 유더 자신도 알 수 있는 것.

기감의 범위 밖.

유더가 항시 펼치고 있는 경계의 그물망으로부터 정확히 한 걸음 떨어진 곳에 위치했기에, 작정하고 인기척을 숨기고 있었기에 지금까지 눈치채지 못 했던 존재.

하지만 코델리아는 그를 감지해냈다.

야생의 맹수보다 더 예리한 그녀의 직감이 그것을 가능케 했다.

코델리아는 돌아섰고, 유더는 그녀의 곁에 서서 함께 바라보았다.

마치 유령처럼 갑자기 존재감을 가지게 된 남자를.

“여, 감이 좋은데?”

길고 단정한 검푸른 머리칼 사이에 자리한 장난기 가득한 얼굴.

“그냥 지나가던 길에 너희가 보여서 말이야. 같이 밥이나 먹자 하려고 따라붙었지. 어··· 설마 내가 방해한 건 아니지?”

빛의 검성 룬 프라우드.

속칭 제일검.

단란한 커플의 데이트를 방해하고 싶어 안달이 난 남자.

제일검은 능글맞게 웃었고, 유더와 코델리아는- 특히 유더는 뚱한 얼굴이 되어 그를 마주하였다.

&

< 제64장 - 카운트다운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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