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64장 - 카운트다운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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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알고 땅이 알며 코델리아가 알듯이 유더는 사전 준비를 꼼꼼히 하는 스타일이었다.
매사에 늘 계획이 있다고 해야 할까.
물론 시시각각 상황이 바뀌는 전투 중에는 임기응변을 할 때도 많았지만, 그건 정말 어쩔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었다.
전투 중에도 가능한 미리 준비해둔 수를 꺼내 쓴다.
그러기 위해 최대한 많은 경우의 수를 예측하고, 그에 맞는 준비를 해둔다.
코델리아의 외출.
이미 상정해둔 바였다.
왕도에 대해 조사할 때 유더가 신경 쓴 것은 검은 달과 푸른 달만이 아니었다.
가장 좋은 드레스 샵이 어디인지.
소위 말하는 맛집이 어디인지.
구경하기 좋은 곳이 어디인지.
언제 어느 때에 볼거리가 풍부한지.
“근처에 스테이크 잘하는 곳을 알거든. 같이 가지 않을래?”
제일검이 능글맞게 말하자 유더는 일단 호흡을 가다듬었다.
제일검이 말하는 스테이크 잘하는 집이 어디인지 이미 알고 있는 유더였다.
‘목자의 가호.’
“목자의 가호라는 가게인데, 거기 주방장 솜씨가 굉장하거든.”
역시나 예상대로.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같이 가자. 응? 내가 쏠 테니까.”
제일검의 말.
제일검과의 식사.
중앙의- 아니, 세일룬 왕국의 검술 유망주들이라면 누구나 마다하지 않을, 오히려 돈을 내고서라도 어떻게든 함께하고 싶은 자리.
하지만.
하지만.
‘하아아······.’
씨발.
역시 코델리아의 말처럼 씨발은 욕이라기보다는 감탄사가 분명했다.
어찌 이리도 심정을 잘 표현한단 말인가.
‘가야지.’
가긴 가야지.
제일검과 친해져야 하니까.
조금이라도 더 친해져야 건국 기념회 날의 일이 수월해질 테니까.
‘근데 하필 지금이냐.’
제일검과 친해지려고 준비해둔 날은 따로 있는데.
그 날이 오늘은 아닌데.
‘하아아······.’
유더는 다시 마음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고, 그런 유더의 소매를 살짝 당기는 이가 있었다.
‘유더야, 유더야. 아무래도 같이 가야겠지?’
밥도 사준다잖아.
어차피 제일검이랑은 친해져야 하고.
아니, 꼭 밥 사준다고 그래서 그러는 게 아니라.
아무튼 같이 가야 하니까.
코델리아의 눈빛에 유더는 아주 잠깐 침묵했고,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어쩔 수 없지.’
‘응응, 오늘은 제일검이랑 같이 먹자.’
코델리아의 달래는 것 같은 눈빛을 마주한 유더는 바로 제일검을 돌아보는 대신 잠시 동안이나마 그녀의 얼굴에 시선을 고정하였다.
파란 눈동자에 섞인 아쉬움이란 감정.
유더는 그것에 만족했다. 작게나마 미소를 머금은 뒤 제일검을 돌아보았다.
“제안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일검 님과의 식사라니, 무척 영광스러운 일이죠.”
“그래, 선뜻 수락해줘서 고맙다.”
제일검이 다시 능글맞게 말하는데, 얼굴을 보면 알 수 있었다.
‘아주 신이 났구만.’
‘능구렁이 같아.’
유더와는 비슷하면서 다른 스타일.
어찌되었든 유더와 코델리아가 수락하자 제일검은 희희낙락하며 두 사람 곁에 다가서더니 그대로 코델리아에게 손을 내밀었다.
“코델리아 양, 제게 에스코트의 영광을 주시겠습니까?”
제일검의 뻔뻔한 제의에 코델리아는 일단 유더를 돌아보았고, 이내 미소 지었다. 백작가의 영애로서 17년을 살아온 몸답게 우아한 자태를 보여주었다.
“빛의 검성께서 에스코트 해주신다니, 저야말로 영광인 걸요. 하지만······.”
코델리아는 그대로 다시 유더를 보았고, 장난스러운 눈빛을 보내더니 제일검에게 사죄의 예를 표했다.
“질투심 많은 약혼자가 옆에 있어서요. 부디 양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약간의 애교까지 섞인 코델리아의 대답에 제일검은 크크큭 웃더니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군요. 하지만 코델리아 양, 질투심이 많다고 너무 오냐오냐만 해주면 안 된답니다. 버릇을 잘 들여야 해요. 아셨죠?”
“황금과 같은 조언, 정말 감사합니다.”
코델리아는 이번에도 예쁘게 답했고, 제일검은 만족스러운 미소와 함께 물러섰다. 이러나저러나 유더에게 한 방 먹였으니 됐다는 얼굴이었다.
“자, 그럼 제가 앞장서도록 하죠.”
제일검은 그대로 빙글 돌아서더니 성큼성큼 발걸음을 내디뎠다.
제법 보폭이 큰 터라 얼른 쫓아가야 할 것 같았다.
‘유더야?’
웃음기 섞인 코델리아의 시선에 유더는 눈을 가늘게 뜨더니 대뜸 코델리아의 손을 꽉 붙잡았다.
“가시죠, 공주님.”
그저 능구렁이만 같던 평소와는 조금 다른, 속내를 들킨 아이와 같은 얼굴.
코델리아는 애써 웃음을 참은 뒤 고개를 끄덕였다.
“네, 질투 많은 약혼자님. 에스코트 해주세요. 네?”
마지막에 놀리듯 살짝 애교를 부리자 유더는 대답하는 대신 발걸음을 내디뎠고, 코델리아는 결국 소리 내어 웃고 말았다.
유더의 귓불이 발갛게 달아올라 있었으니 말이다.
“아, 갑자기 제일검이 막 좋아지려고 해. 마음에 들었어, 저 아저씨.”
코델리아의 혼잣말 아닌 혼잣말에 유더는 반응하지 않았다.
아니, 약간은 반응한 게 분명했다. 맞잡은 손에 힘이 좀 더 들어갔으니 말이다.
‘귀여우셔라.’
쿡쿡 웃은 코델리아는 맞잡은 유더의 커다란 손 안에서 손가락을 몇 번 꼼지락 거린 뒤 다시 정면- 저만치에 서서 이쪽을 보는 제일검을 보았다.
어쩐 일인지 방금까지만 해도 신나 죽을 것 같던 양반이 무척이나 썩은 표정을 짓고 서 있었다.
왜일까.
왜 저러는 것일까.
코델리아는 굳이 의문에 답을 구하는 대신 발걸음을 내디뎠다.
왕도의 맑고 차가운 공기가 오늘따라 달게 느껴지는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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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자의 가호는 과연 명성만큼의 맛을 자랑하는 곳이었다.
한 입 깨문 순간, 그야말로 입 안에서 고기가 사르르 녹아내렸으니 말이다.
‘맛있당.’
코델리아의 고기 써는 속도가 조금 더 빨라졌고, 유더는 습관적으로 고기의 종류와 부위, 구운 정도 등을 분석하였다.
그리고 제일검은 그런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
“맛있지? 스테이크 하나는 왕도에서 최고라 해도 좋을 곳이야. 왕도 들를 때 마다 꼭 방문하는 가게라구.”
“네, 정말 맛있어요. 소개해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기분이 좋아진 코델리아가 하이텐션으로 답하자 제일검의 얼굴에도 만족스러운 미소가 번졌다.
유더를 때리는 것도 재미있었지만, 꽃처럼 아름다운 소녀의 미소 쪽이 좀 더 가치 있게 느껴진 탓이었다.
“아무튼 마음껏 먹으라구. 그 정도 능력은 있으니까.”
제일검의 제안에 코델리아는 뺨을 살짝 붉히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양이 그리 많은 편은 아니었지만, 이런 맛이라면 적어도 한 접시는 더 먹어줘야 할 것 같아서였다.
‘거기다 공짜고!’
무척이나 고급스러운 가게 분위기를 보았을 때 스테이크 한 접시의 가격이 바보같이 비쌀 게 분명했다.
‘그래서 그런가 더 맛있는 거 같아.’
제일검 돈으로 먹는 고기였으니까.
코델리아는 기쁜 마음으로 다시 고기 한 점을 입에 넣었고, 유더는 그런 코델리아의 모습에 조금 더 집중력을 끌어올렸다.
이 가게의 맛을 최대한 분석하기 위함이었다.
‘완벽에 가까운 카피.’
해내고 만다.
유더가 그렇게 다소 쓸데없는 방향으로 재능을 쏟아 붓기 시작한지 얼마나 지났을까.
어느 정도 식사가 마무리 되자 제일검이 이야기를 꺼냈다.
“갑작스러운 이야기지만, 너··· 진짜 검사 맞냐?”
대뜸 들어온 질문에 유더는 당황하는 대신 태연한 얼굴로 답했다.
“예, 검사 맞습니다.”
“아니, 그러지 말고. 검사 아니라고 막 각하가 주신 상금 뺏거나 하지 않을 테니까.”
“정말이에요. 유더의 스승님도 검사신걸요.”
코델리아가 옆에서 첨언하자 제일검은 유더 대신 그녀를 돌아보며 말했다.
“하긴, 그래. 란디우스 님도 일단 검사시긴 하지.”
일단은 말이야.
제일검의 뚱한 발언에 코델리아는 작게 웃었다.
‘1편 때만 해도 진짜 검사였는데.’
무지 큰 대검을 호쾌하게 휘두르는 파워풀한 검사.
그런데 어쩌다 지금 같은 모습이 된 것일까.
‘유더는 그렇게 되지 않게 해주세요.’
강해지는 건 좋은데, 그렇게 막 우락부락하게 거대한 건 좀··· 제발······.
코델리아가 뜬금없이 기도하기 시작한 그때 제일검은 다시 유더를 돌아보며 물었다.
“그러고 보니 게일은 잘 지내나?”
“예, 잘 지내고 있습니다.”
삼십대 초반인 제일검과 이십대 후반인 게일이었으니, 둘 사이에는 대여섯 살 정도 나이 차가나는 터라 같은 세대라 하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검문의 기린아로서 매년 검의 연회에 참석한 제일검인 터라 게일과는 이미 면식이 있는 사이였다.
“그래, 그 녀석도 장가 좀 가야할 텐데.”
이십대 후반이면 백작가의 장자 치고는 혼기가 꽉 차다 못해 그냥 지나버린 수준이었으니까.
제일검이 걱정하듯 말하자 때마침 기도를 끝마친 코델리아가 부드럽게 답했다.
“이제 곧 가실 거예요. 저희 언니랑.”
“그래, 너희 언니··· 잠깐, 뭐라고? 게일이 장가를 간다고? 그것도 황금야차··· 아니, 아델리아랑?!”
제일검이 깜짝 놀라 되묻자 코델리아는 이번에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저희 언니랑.”
황금야차.
지옥의 마녀.
모두 근위마법병단 제7단장인 아델리아 체이스를 가리키는 말이었고, 그렇기에 제일검은 너털웃음을 지었다.
“이거 진짜 놀랍군. 아델리아 양도 아델리아 양이지만··· 게일 녀석이 결혼이라니. 이제야 극복한 건가?”
낮은 중얼거림에 유더와 코델리아는 약간이지만 놀란 얼굴로 제일검을 보았다.
제일검과 게일 간의 교류가 생각 이상으로 깊은 것 같았기 때문이다.
“뭐, 아무튼 축하할 일이지. 내가 축하한다고 좀 전해줘.”
“그리하겠습니다.”
유더가 정중히 답하자 제일검은 다시 평소의 건들건들한 자세로 돌아가더니 이번에도 툭 던지듯 말했다.
“전에도 말했지만 내가 남기로 한 이유 중에는 너희 두 사람의 지분이 무척 크다. 너흴 보고 있으면 어쩐지 내가 왕도에 남아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거든.”
“저희도 제일검 님 뵐 때마다 막 친해지고 싶어요.”
코델리아가 애교 있게 말하자 제일검은 기분 좋게 웃었다.
“그래, 어쩌면 정말 연이 있는 걸지도 모르지. 일단 나도 너희 둘이 무척 마음에 든단 말이야. 재능이 넘치는 천재들이라 그런가?”
“과찬이십니다.”
“겸양하기는.”
유더의 부드러운 응대에 킥하고 웃은 제일검은 새삼 의자 등받이에 몸을 묻으며 말을 이었다.
“콘웰에게 들었지? 내가 제국에 갔다가 괴물들을 봤다고.”
“네,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막시밀리언 데 아비스와 레온 가드리엘.”
제일검이 언급한 두 이름에 유더와 코델리아의 눈이 가늘어졌다.
이미 예상한 이름들이었기 때문이다.
천재들로 구성된 플레이어블 캐릭터들 사이에서도 격이 다른, 영웅전기2의 진정한 주인공이라 불리는 괴물 같은 재능의 소유자와 그런 괴물에게 그나마 맞상대할 수 있는 검의 재능을 타고난 천재.
“살면서 천재라 불리는 놈들을 여럿 보았지만 그런 놈들은 처음이었다. 특히 놀란 건 나이에 맞지 않는 강함이었지.”
지금 당장이라면 제일검 자신이 더 강하다.
하지만 십년 뒤에는 어떨까.
이십 년 뒤에는 또 어떠하고.
“십검호니 검성이니 해도 결국엔 인간. 나이를 먹으면 약해질 수밖에 없는 노릇이니까. 과거에는 십검호 가운데서도 발군의 실력을 자랑하셨던 호국공도 요즘엔 예전만 못 하시듯이 말이야.”
두서없이 말을 잇던 제일검은 이내 씁쓸한 미소를 끝으로 감정을 추슬렀다. 다시 유더를 보며 말을 이었다.
“콘웰이 이미 말했는지 모르겠지만, 난 네 녀석한테 꽤 기대를 하고 있어. 제국만이 아니라 왕국에도 괴물이 하나쯤은 있어야 할 테니 말이야.”
제일검의 말에 유더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기대에 응하듯 진지한 얼굴로 답하였다.
“더욱 정진하겠습니다.”
“그래, 욕봐라. 란디우스 님만 아니었어도 내가 데려가서 제자 삼았을 텐데.”
“좋게 봐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예의 차리기는.”
다시 킥킥 웃은 제일검은 더 말을 잇는 대신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무튼 그럼 한 끼 든든히 먹기도 했고, 인사도 했으니 불청객은 슬슬 빠져줘야겠군. 마음 같아서는 그냥 너희 집에 들어갈 때까지 붙어 다니고 싶지만 말이야. 음··· 어떻게 생각해?”
“마음만 받겠습니다.”
유더가 경직된 미소를 보이자 제일검은 왁자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래, 그렇게 튕기는 맛도 있어야지. 아무튼 그럼 다음에 보자고. 코델리아 양, 다음에 뵙겠습니다.”
“식사 정말 감사했습니다. 다음에 뵐 날을 기대하고 있을게요.”
“저 역시.”
코델리아에게 연극풍으로 답례한 제일검은 마지막으로 유더와 인사를 나눈 뒤 돌아섰고, 유더는 그런 그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제일검.
빛의 검성.
밝고 활기차며 장난기가 넘치는 유쾌한 사내.
유더가 계속해서 제일검을 바라보자 코델리아가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왜? 계산 안 하고 그냥 갈까봐?”
“그것도 있고.”
이러나저러나 이번 퀘스트의 최중요 인물 가운데 하나였으니까.
“아, 계산했다.”
코델리아가 말했고, 유더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야 다시 코델리아를 돌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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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행복해. 진짜 진짜 맛있었어.”
제일검이 나가고도 다시 30여분 뒤.
디저트에 이은 홍차까지 마시고 난 뒤에야 가게를 나선 코델리아는 무척이나 만족스러운 얼굴로 배를 통통 두드렸다.
“흠, 확실히 평소보다 좀 나온 거 같기도 하고.”
“뭐래? 뒈지고 싶다고?”
“그럴 리가. 아무튼 맛있긴 하네. 다음에 한 번 더 들르자.”
“음··· 기각. 너무 비싸. 낭비는 죄악이야.”
디저트 시킬 때 메뉴에 적힌 가격표 보고 기겁을 했으니까.
제일검이 사줬으니 먹은 거였지, 자기 돈 주고 먹으라고 하면 절대 먹을 생각이 없는 코델리아였다.
“은근 짠순이란 말이지?”
“내가 이상한 게 아니라 유더 네가 이상한 거거든? 아주 사치랑 낭비가 몸에 배였어. 아이템 사는 것도 아니고 옷이랑 먹을 거에 바보 같을 정도로 돈을 쓴단 말이야.”
“아이템은 괜찮고?”
“아이템은 괜찮지. 전투력을 높이기 위한 거니까. 목숨과 직결된 거라구.”
생각보다 합리적인 코델리아의 주장에 유더가 고개를 끄덕이자 코델리아는 기운차게 말을 이었다.
“아무튼 이번 일로 결심했어. 나중에 돈 관리는 내가 할 거야.”
“나중에?”
“어, 나중에.”
“무슨 나중에?”
“어?”
“아니, 나중이라며. 어떤 나중에?”
유더의 물음에 코델리아는 눈을 깜박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
어떤 사건 뒤에.
그러니까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나, 나중이 나중이지 무슨 나중이 따로 있어. 아무튼 야경 보러 가자. 응응, 야경. 밤의 풍경. 야, 신난다.”
빨개진 얼굴로 횡설수설하는 것이 언제나와 같은 코델리아였다.
때문에 유더는 크크큭 웃다가 말했다.
“그래, 하지만 중간에 잠깐 들를 곳이 있어.”
“들를 곳?”
“어, 아까 핑크폭탄의 세 번째 범행 이야기 했지?”
“응. 아, 예고장 보내려고?”
“어. 아무래도 일단 왕궁에 들어가면 밤에 나오기 힘드니까. 남은 일정이나··· 기타 등등 고려하면 오늘 예고장 보내고, 내일 털고, 모레에 다프네 왕녀를 만나야 할 거야.”
“바쁘네.”
“디데이가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
건국 300주년 기념 무도회가 끝난 뒤.
절정 이후의 시간.
“좋아, 내일이면 마침 딱 스칼렛 보기로 한 날이기도 하네. 이번엔 목표가 어딘데? 훔칠 건 뭐고?”
“상가로 위장하고 있는 검은 달의 본부를 강습할 거야. 목표물은 검은 달이 건국 기념회 날 저지를 테러 계획서고.”
“응? 그런 게 있어?”
“어, 여기 있어.”
자연스럽게 답한 유더는 품안에 넣어두었던 서류를 꺼내 코델리아에게 보여주었고, 코델리아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 그런 유더를 보았다.
“저기요, 바이엘 백작가 차남 유더 군. 지금 들고 계신 물건이 검은 달의 테러 계획서인가요?”
“네, 체이스 백작가 차녀 코델리아 양. 우리가 검은 달의 본부에서 훔쳐낼 예정인 테러 계획서죠.”
“훔쳐낼 건데 이미 들고 계시네요?”
“네, 중요한 건 검은 달 본부에서 테러 계획서를 탈취했다는 그럴싸한 이야기지, 진짜 테러 계획서의 유무 같은 게 아니니까요.”
랑게스트 때와 같은 요령이었다.
거짓 증거.
하지만 검은 달을 큰 곤경에 빠트릴 수 있는 진짜 정보를 담고 있는 물건.
코델리아는 또르르 눈동자를 굴려 유더의 손에 들린 서류를 보았고, 다시 유더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유더야.”
“응, 코델리아야.”
“넌 진짜 진짜 나쁜 놈이야.”
“그래서 좋지? 나쁜 남자라 막 끌리지?”
유더의 뻔뻔한 되물음에 코델리아는 어이가 없다는 얼굴이 되었지만 이내 활짝 웃었다. 유더의 팔을 끌어안으며 답해주었다.
“일단 좋다고 해줄게.”
“일단?”
“어, 일단.”
코델리아는 제법 도도하게 말한 뒤 턱짓을 했고, 유더는 바로 알아들었다.
“그럼 가시죠, 아가씨.”
“네, 공자님.”
오늘과 내일 다시 한 번 정의로운 도둑이 되기 위해.
호국공과 검은 달의 속을 뒤집어 놓기 위해.
환상의 커플은 사이좋게 발걸음을 내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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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64장 - 카운트다운 #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