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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딩메이커-177화 (177/473)

< 제65장 - 검은 달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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쾅! 쾅! 쾅!

연속된 폭발에 건물 전체가 뒤흔들렸고, 창이란 창은 모조리 다 깨져나갔다.

“보스!”

폰이 커다란 덩치에 안 맞게 기겁한 얼굴로 소리쳤지만 카라드 본은 동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얼굴에는 확신에 찬 미소까지 그려져 있었다.

“당황하지 마라, 폰. 이건 로그 마스터의 함정이다.”

“함정이요?”

“그래, 소란을 일으켜 우리를 분산시키려는 거다. 하지만 폰, 잊지 말아라. 로그 마스터의 목표는 이 금고방의 보물들이다. 밖에서 무슨 지랄을 하든 그 앙큼한 년은 결국 이 방에 올 수밖에 없다.”

그러니 대기한다.

참고 인내한다.

결국 자신들의 눈앞에 나타날 로그 마스터를 붙잡는다.

“오오, 과연······.”

폰이 감탄했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자 카라드 본은 미소지었고, 필리아를 제외한 다른 다섯 손가락들 역시 저마다 미소를 지으며 핑크폭탄을 비웃었다.

“와라, 네년의 얕은 수 따위 통하지 않으니.”

낮게 말한 카라드 본은 그대로 음산한 웃음을 흘렸다.

그리고 10분.

다시 20분.

아싸리 30분.

폭발은 이미 멈췄다.

건물 밖에서 들려오던 요란한 소리도 끊긴 상태였다.

그런데 핑크폭탄은 금고방에 나타나지 않았다.

‘뭐지?’

왜지?

왜 오지 않는 거지?

방심 시키려는 건가?

다 끝났다고 생각한 순간 기습을 하려는 건가?

과연.

과연 로그 마스터.

우스꽝스러운 이름을 쓰지만 그래도 실력은 있구나.

“동요하지 마라. 이 또한 로그 마스터의 함정이니. 다 끝났다고 생각하게 해서 우리를 방심시키려는 수작이다.”

“오오······.”

카라드 본의 말에 폰은 재차 감탄했고, 다른 다섯 손가락들은 일단 침묵을 유지했다.

뭔가 말리는 기분이 들었지만 카라드 본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10분.

다시 20분.

마침내 30분이 지났을 때.

“보스?”

“마스터?”

폰에 이어 조용히 침묵하던 필리아까지 입을 열었고, 다른 다섯 손가락들 역시 미심쩍다는 눈으로 카라드 본을 보았다.

어떻게 된 것일까.

어째서 핑크폭탄은 나타나지 않는 것일까.

‘뭐지? 설마 포기한 건가?’

아무리 기다려도 자신들이 움직이지 않으니까?

자신들이 지키는 금고방에 침투할 엄두가 나지 않아서?

‘과연, 그런 것인가.’

주제파악을 할 줄 아는구나.

저도 모르게 큭큭큭 기꺼운 웃음을 흘린 카라드 본은 자신의 생각을 다섯 손가락들에게 들려주었고, 다섯 손가락 대부분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끝까지 방심하지 마라. 아침 해가 떠오를 때까지 우린 이 방을 나서지 않는다. 알겠나?”

“예, 보스.”

“알겠습니다.”

폰에 이어 필리아가 답했고, 다른 다섯 손가락들 역시 고개를 끄덕이거나 대답하는 것으로 카라드 본의 뜻을 받들었다.

‘로그 마스터.’

아무래도 이번엔 나의 승리인 것 같구나.

카라드 본은 만족한 얼굴로 구겨진 예고장을 보았고, 흐뭇한 미소를 머금었다.

그리고 같은 시각.

전혀 다른 장소.

나란히 뜬 셀레네와 헬레네 아래 선 스칼렛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뭐야? 대체 어떻게 훔친 거야?”

“우후훙. 그건 말이죠.”

“그건?”

“로그 마스터의 영업 비밀이랍니다?”

얄밉게, 하지만 귀엽게 답한 코델리아는 ‘미리 챙겨갔던 서류’를 서류의 작성자인 유더에게 넘겼고, 서류를 훑어보는 시늉을 한 유더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캐지 말라고, 스칼렛. 다음엔 로그 마스터의 이름을 걸고 경쟁해야 하잖아? 장사 밑천을 함부로 털어줄 수는 없지.”

“맞아, 스칼렛은 강력한 경쟁자니까. 방심하면 안 돼. 그렇지?”

예쁘게 말한 코델리아가 유더가 아닌 스칼렛을 보며 고개를 기울였고, 스칼렛은 입술을 삐쭉였다.

“칫, 알아. 안다구.”

하지만 아는 것과 달리 불만은 있는지 스칼렛은 계속해서 틱틱 거렸다.

누가 봐도 삐진 얼굴을 한 채 발끝으로 지면을 탁탁.

‘으휴, 귀여워라.’

키도 크고 나이도 더 많지만 귀여운 건 귀여운 거니까.

스칼렛을 보며 엄마 미소를 지은 코델리아는 웃는 얼굴로 그대로 유더에게 메시지 마법을 보냈다.

[네 말대로 금고방에 틀어박혀서 아예 나오질 않더라고.]

[잘 된 일이지. 카라드 본이 인내심이 강한 성격이라 다행이야.]

지피지기면 백전불태니.

싸움에 임하기 전에 상대를 분석하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었다.

카라드 본의 성격.

그가 검은 달을 왕도 최고의 길드로 만들기 위해 걸어온 길들.

자료는 충분했고, 분석은 유더의 특기였으며, 그에 따른 프로파일링은 언제나와 같이 정확했다.

‘어차피 목표는 핑크폭탄이 도둑질을 감행했다는 사실을 만드는 거니까.’

굳이 진짜 금고방을 공격해 카라드 본이나 다섯 손가락과 싸울 필요는 없었다.

물론 검은 달 측에서는 당한 적이 없다며 멀쩡한 금고방을 증거로 제시하겠지만 그게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어차피 중요한 것은 핑크폭탄이 검은 달 본부를 습격했다는 사실과 검은 달이 테러를 꾸미고 있다는 증거였으니 말이다.

‘완벽하진 않아.’

루카스나 카이사로는 왕족 몰살 사건의 전모를 완벽히 파악할 수 없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하여 정보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루카스와 카이사는 완전히 같은 루트를 걷지 않았으니까. 두 사람의 시점을 종합하면 생각 이상으로 많은 정보들을 얻어낼 수 있었다.

‘거기에 시네마틱 무비들까지.’

사건의 전모까지는 무리더라도 검은 달의 주요 타깃과 사건의 전반적인 흐름 정도는 쉽게 알아낼 수 있었다.

‘그리고 이를 통한 추론.’

검은 달의 은신처들.

검은 달이 숨기고 있는 각종 무기들.

몇 번이나 말했듯이 전부는 아니었다.

일부에 불과했다.

‘하지만 유용하지.’

랑게스트에서 악마 추종자들을 붙잡았을 때와 같은 맥락이었다.

일단 놈들의 은신처를 알게 되면 공략은 쉬웠다.

이러나저러나 범죄자들이었으니 말이다.

불법적인 물건들을 숨기고 있는 장소를 들춰내면 놈들은 은신처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고, 아무리 검은 달이라 한들 갑자기 열 개도 넘는 은신처들을 새로 마련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방해할 자들도 있고.’

왕실이나 왕도 경비대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었다.

푸른 달을 중심으로 한 왕도의 나머지 어둠들.

검은 달의 몰락을 바라는 그들은 열정적인 조력자들이었다.

‘아무리 로그 마스터의 이름을 댄다고 해도 도둑은 도둑.’

우리 손으로 왕도를 지키자고 아무리 소리쳐봤자 씨알도 먹히지 않을 터였다.

그래서 유더는 대신 다른 슬로건을 준비했다.

‘검은 달에게 몰락을.’

‘왕도의 어둠을 사냥개가 아닌 늑대에게.’

‘푸른 달의 시대가 온다.’

푸른 달을 비롯한 도둑들로 하여금 왕도를 지키게 하는 것은 불가능했지만 검은 달을 공격해 망하게 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했다.

“아무튼 좋아. 난 약속을 지켰어.”

스칼렛의 말에 유더와 코델리아는 누가 먼저랄 것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응응, 잘해줬어. 그러니 약속대로 다음에는 로그 마스터의 이름을 걸고 승부를 하자.”

“누가 이기든 군말하지 않고 상대를 인정하는 걸로. 이런 조건이면 너도 좋지?”

“흥.”

차례대로 코델리아, 유더, 스칼렛.

새삼 도도한 척 흥흥 거린 스칼렛은 핑크폭탄의 상징과 같은 토끼 귀와 꼬리를 떼어낸 뒤 머리칼을 다시 붉게 만들며 말했다.

“승부의 날을 기다릴 테니까 저번처럼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하지는 마.”

“응, 조만간 연락할게.”

코델리아가 마치 친구를 대하듯 손을 흔들자 스칼렛은 마지못한 척 마주 손을 흔든 뒤 지붕을 박차 사라졌다.

그리고 남겨진 두 사람.

유더와 코델리아는 서로를 보았고, 오랜만에 서로의 주먹을 맞부딪혔다.

“그럼 돌아가 보실까요, 아가씨?”

“네, 공자님.”

오늘 하루도 수고하셨습니다.

서로에게 예를 표한 직후 유더가 돌아서자 코델리아는 폴짝 뛰어올라 그런 유더의 등에 올라탔다.

“옥상합체! 유델리아!”

성공적인 임무 수행 덕분에 하이텐션이 된 코델리아가 장난스럽게 외치자 유더는 코델리아를 고쳐 업으며 말했다.

“야, 너 솔직히 말해봐.”

“뭐가?”

“사실 핑크폭탄이란 이름 마음에 들지?”

딱 네 취향이지?

“아니거든? 그런 취향 아니거든? 속이 까만 블랙망토 씨가 완전 오판하고 있는 거거든?”

“뭐, 그렇게 생각해줄게.”

“야, 진짜 아니거든?”

“예, 예. 그러시겠죠.”

“아니이! 아, 진짜 짜증나려고 해!”

“우쭈쭈, 우쭈쭈. 우리 공주님 화나쪄요?”

“죽어! 그냥 죽어! 죽으란 말이야!”

코델리아가 유더의 목을 열심히 조르기 시작했고, 유더는 켁켁 거리는 와중에도 재주 좋게 지붕 위를 바람처럼 달렸다.

그리고 그 날 새벽.

검은 달의 테러 계획과 각지의 은신처들에 대한 정보가 왕도 곳곳에 발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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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꾸미기는 어렵지만 망치기는 훨씬 쉬운 법이었다.

왕실이 테러 계획을 진지하게 생각해 검은 달을 일망타진할 가능성은 낮았다.

하지만 그래도 움직일 터였다.

건국 기념회가 얼마 안 남은 시점이었으니까.

평소라면 무시했을 정보도 한 번 더 돌아볼 수밖에 없는 시기였으니까.

그러면 되었다.

설사 전부가 아닌 일부라 할지라도 검은 달은 타격을 입을 터였고, 이는 곧 푸른 달을 비롯한 나머지 어둠들이 검은 달을 공격하기 쉬워진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리고 테러 계획.

‘비밀은 드러난 순간 가치를 잃는 법이지.’

비밀은 비밀이기 때문에 가치가 있는 것이니까.

일단 알려진 테러 계획은 수정될 수밖에 없었고, 호국공과 검은 달에게는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았다.

새로운 계획의 수립은 그만큼 새로운 테러의 조잡함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았다.

‘호국공의 손발을 끊는다.’

그의 입지를 좁히고, 본래 준비해두었던 일을 하지 못 하게 한다.

그리고 제일검으로 호국공을 막는다.

‘아버지와 아버님, 게일 형님과 아델리아 형수님 같은 강자들 역시 저마다의 역할을 해준다면.’

왕족 몰살 사건이라는 비극을 막을 수 있으리라.

‘그러기 위해 필요한 것이 또 하나.’

사전에 호국공의 배신을 알리는 것은 의미가 없었다.

호국공은 구국의 영웅이었으니까.

그런 말을 입에 담는 순간 오히려 궁지에 몰리는 것은 유더 자신이 될 터였다.

그러니 너무 욕심을 내지 않는다.

그저 당일 날 왕족들이 보다 자신들의 말을 잘 듣도록, 괜한 고집을 부리지 않도록 그들과 보다 친밀한 관계를 구축한다.

‘그래, 그러니 이건 반드시 필요한 일.’

사적인 욕심이 아닌, 공적으로 필요한- 나아가 세계를 구하기 위한 거룩하고 또 거룩한 역사적 사명과도 같은-

“어울려?”

귀여운 프릴이 달린 하얀 원피스 수영복을 입은 코델리아가 수줍게 말했고, 조각상 같은 몸매를 과시하듯 딱 달라붙는 검정색 트렁크 팬츠를 입은 유더가 고개를 끄덕였다.

“완전 어울려.”

“흥흥.”

괜히 흥흥 거린 코델리아는 슬쩍 유더를 돌아보더니 입꼬리를 올리며 얼굴을 더욱 붉혔다.

언제 봐도 멋진 유더의 근육이었으니 말이다.

‘잔근육이라고 했나?’

스칼렛이 중요하다고 몇 번이나 강조한 포인트가.

‘만져보고 싶다.’

하얗고 단단하고 탄력적인 유더의 근육.

‘막 바위처럼 딱딱하려나?’

그래도 사람 몸인데 부드럽지 않을까?

잠시 망상하던 코델리아는 이내 고개를 흔들어 잡념을 떨쳐냈다.

지금 중요한 것은 유더의 근육 강도 같은 것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검은 달의 본부를 습격하고 바로 다음 날 저녁.

아직 밤공기가 차가운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수영복을 챙겨 입은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손을 잡은 뒤 나란히 발걸음을 내디뎠다.

저만치 보이는 나이트 풀에서 기다리고 있을, 문자 그대로의 로열 패밀리와 친해지기 위해서 말이다.

다프네 왕세녀와 디온 왕자. 그리고 다리안 왕녀.

세 사람의 얼굴을 떠올린 유더는 여기에 한 가지 목적을 더 추가했다.

‘가능하면 섬머 페어리도 낚고.’

다프네 왕녀의 이야기 외에는 페어리에 대한 단서가 딱히 없는 장소였지만, 어쩐지 모르게 페어리를 만날 수 있을 거란 기분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오늘밤의 코델리아는 그야말로 완벽했으니까.

‘이 정도면 없던 페어리도 나타날 정도가 아닐까?’

코델리아의 머리에 자리한 하얗고 커다란 리본을 슬쩍 내려다본 유더는 시선을 다시 멀리하였다.

금방이라도 쏟아져 내릴 것 같은 별의 바다 아래, 뜨거운 증기가 피어오르는 나이트 풀에 몸을 담근 다프네 왕녀가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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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65장 - 검은 달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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