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66장 - 섬머 페스티발 >
제66장 - 섬머 페스티발
왕실의 나이트 풀.
일단 그렇게 부르긴 했지만, 계단을 오르며 유더는 확신했다.
‘옥외 온천이네.’
까놓고 말해 그냥 목욕탕.
‘음··· 두근두근하군.’
비록 수영복 차림이긴 했지만 목욕탕에 코델리아와 함께 간다는 사실 때문에 두근두근하다는 것이 아니었다.
‘물론 그것도 좀 있지만.’
아니, 어쩌면 생각 이상으로 비중이 클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두근두근 거리기 시작한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모르는 곳이야.’
왕실에 있는 옥외 온천.
들어본 적도 없고 가본 적도 없었다.
현실이 아닌 게임이었다면 최초 발견 업적이 떠도 이상하지 않을 미지의 장소.
‘나도 많이 변했구나.’
예전에는 이렇게 모르는 장소에 오게 되면 긴장부터 했는데.
혹시 모를 위험을 찾아내기 위해 신경이 바짝 곤두서서는.
그런데 지금은 미지의 장소에 방문한다는 사실에 두근두근하고 있으니 그야말로 천지차이였다.
[유더야, 유더야. 다 왔어. 긴장 빡 해. 알았지?]
유더가 감상에 빠져들려는 찰나 메시지 마법으로 코델리아가 말했고, 덕분에 정신을 차린 유더는 코델리아의 머리를 장식한 하얗고 커다란 리본에서 눈을 뗀 뒤 정면을 보았다.
“유더 바이엘 님과 코델리아 체이스 님. 방문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입구에 서 있던 집사 차림의 궁내부원이 허리를 숙이며 예를 표했다.
유더와 코델리아 역시 간략하게나마 예를 표하자 안내가 시작되었는데, 역시 유더의 예상대로 평소에는 목욕탕으로 쓰는 곳이 분명해 보였다.
“언니! 오빠!”
나무로 만들어진 가림막들을 지나자 잘 꾸며진 옥외 온천이 나타났고, 안에 몸을 푹 담그고 있던 이들 가운데 하나가 발딱 일어서며 소리쳤다.
초록색 수영복을 입고 있는 다리안 왕녀였다.
“다리안 왕녀님.”
코델리아가 부드럽게 웃으며 예를 표했다.
긴장하던 와중에 아는 얼굴을 본 덕인지 평소보다 훨씬 더 반갑게 느껴지는 그녀였다.
“헤헤헤, 두 사람 모두 빨리 들어와요.”
어린 아이다운 천진함이었지만, 애석하게도 바로 따라줄 수는 없었다.
온천에 몸을 담그고 있는 것은 그녀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바이엘 백작가의 유더 바이엘과 체이스 백작가의 코델리아 체이스가 왕세녀님과 왕자님께 인사드립니다.”
유더가 대표로 말했고, 코델리아는 다시 한 번 다소곳이 예를 표했다.
그리고 그 인사에, 하얀 원피스 수영복을 입고 있던 다프네 왕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보아 좋구나. 이쪽은 내 동생이자 왕실의 자랑인 디온 왕자다.”
“디온이다.”
다프네 왕녀의 소개에 이어 디온이 스스로를 밝혔다.
흐릿한 온천수 안에 몸을 담그고 있어 온전히 볼 수는 없었지만, 마법사 치고는 제법 건장한 몸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얼굴도 잘생겼구.’
다프네 왕녀의 동생답게 ‘멋지다’라는 느낌이 드는 얼굴이었다.
여기에 더해진 것이 색이 진하고 밝은 황금과도 같은 금발. 물에 젖었기 때문인지 살짝 섹시하기까지 했다.
‘마음에 안 드는군.’
코델리아의 시선이 디온 왕자에게 닿자 저도 모르게 생각한 유더는 다시 다프네 왕녀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녀는 이제 막 스무 살이 되는 어린 나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무척이나 연륜 있어 보이는 눈으로 유더와 코델리아를 마주하더니 가볍게 손짓하며 말했다.
“밤공기가 차구나. 어서 들어 오거라.”
“황송합니다.”
유더와 코델리아는 다시 예를 표한 뒤 조심스럽게 온천수 안에 발을 집어넣었다.
생각보다 뜨거웠지만, 다프네 왕녀의 말마따나 밤공기가 차가운 탓인지 저도 모르게 발이 쑥하고 들어갔다.
“따뜻하죠?”
다리온 왕녀가 생글생글 웃으며 묻자 어깨까지 푹 담그고 앉은 코델리아가 마찬가지로 웃으며 답했다.
“네, 왕녀님. 무척 따뜻하고 좋아요.”
어린 아이인 다리온 왕녀가 들어갈 수 있을 정도니 바닥이 그리 깊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앉는 각도를 조정하면 충분히 몸을 다 담글 수 있었다.
“초대해 주셔서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유더가 새삼 다시 예를 표하자 다프네 왕녀는 손을 내저었다.
“격식 차리기는 그 정도면 되었다. 조금 더 허물없이 친해지고 싶어서 이 자리에 초빙한 것이니.”
수영복을 입고 있기는 했지만, 함께 온천수에 몸을 담그고 있으니 확실히 파격적인 대우이기는 했다.
‘페어리 핑계를 대기는 했지만······.’
말 그대로 핑계에 불과할 뿐, 진짜 목적은 스스로 말했듯이 보다 친해지기 위해서일 터였다.
‘이쪽으로서는 환영이긴 한데.’
다프네 왕녀가 왜 자신과 코델리아에게 생각 이상의 관심을 보이는 것일까.
다리온 왕녀 덕분일까?
아니면 다프네 왕녀에게도 무언가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일까.
‘어찌되었든 기회는 기회.’
애당초 친해져야 하는 대상이 이쪽에 호감을 갖고 있다면 금상첨화였다.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새삼스럽지만··· 정말 귀엽구나. 아니, 사랑스럽구나. 그렇지 않나? 디온?”
다프네 왕녀가 코델리아를 보며 그리 말하자 디온 왕자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예, 누님. 소문 이상인 것 같습니다.”
“그쵸? 제 말이 맞죠?”
디온 왕자의 차분한 목소리에 이어 다리온 왕녀의 활기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좋아하는 언니 오빠들 사이에 있어서 그런지 평소보다 텐션이 높은 그녀였다.
“가, 감사합니다.”
코델리아가 빨개진 얼굴로 고개를 조아리자 다프네 왕녀가 다시 웃었다.
“귀엽기도 하지, 태어나서 지금까지 예쁘다는 이야기를 질리도록 들었을 터인데도 매번 부끄러워하는 모습이 무척 사랑스럽구나.”
“네? 어··· 네······.”
그렇지 않아도 빨갛던 코델리아의 얼굴이 조금 더 빨개졌고, 그 모습에 다프네 왕녀는 물론이고 디온 왕자와 다리온 왕녀의 얼굴에도 흐뭇함이 번졌다.
‘코델리아가 귀엽긴 하지.’
사랑스럽고.
격렬하게 동의한 유더는 흐뭇하게 웃었고, 어쩌다보니 고립무원의 처지가 된 코델리아는 탕 속에 몸을 조금 더 깊이 담갔다.
“아무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좋지만 바로 시작해봤으면 한다. 애당초 이곳에 모인 목적이 있으니 말이다.”
하필 저녁에, 그것도 평소에는 목욕탕으로 쓰는 장소에 모인 이유.
“저도 보고 싶어요, 페어리. 디온 오라버니도 그래서 오셨다고 해요.”
다리온 왕녀가 활짝 웃으며 말하자 디온 왕자가 차분한 목소리를 이었다.
“무언가 특별한 의식이 필요한 것인가? 절차라든지.”
분명 단정한 자세 그대로였지만 기분 탓인지 아까보다 눈빛이 강렬해진 느낌이었다.
때문에 유더는 이리저리 말을 돌리는 대신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단순하긴 하지만, 필요한 의식이 하나 있기는 합니다.”
“오, 어떤 의식이지?”
“나도 궁금하구나.”
“저도요!”
왕족들 모두가 관심을 표하자 유더는 무척이나 자랑스러운 얼굴이 되어 말을 이었다.
“일단 밤이어야 합니다. 그것도 셀레네와 헬레네가 밝은 빛을 발하는, 달빛이 밝은 밤이어야 하죠.”
“그리고?”
“굉장한 미녀가 필요합니다. 평범한 미녀가 아닌, 굉장한 미녀가.”
그야말로 절세라는 수식어가 앞에 붙어야 할 정도로.
유더의 설명에 모두의 시선이 코델리아의 얼굴로 향했고, 거의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그것도 이미 준비된 셈이구나.”
“인정이에요.”
한 마디씩 이어진 말에 코델리아의 얼굴은 더욱 달아올라 이제는 목까지 빨개지고 말았다.
온천수에 몸을 담근 채 어깨를 움츠리며 얼굴을 붉히는 청초하며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소녀.
“그리고 노래가 필요합니다. 아름다운 소녀의 노래가요.”
유더의 설명에 디온 왕자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납득이 되는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국가와 문화를 초월하여, 수많은 제례와 의식 속에서 노래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더욱이 페어리들은 춤과 노래를 즐기는 것으로 알려진 종족이니까요.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입니다.”
“그렇구나.”
디온 왕자의 설명에 적당히 맞장구를 치듯 고개를 끄덕인 다프네 왕녀는 다시 코델리아를 보며 말했다.
“그럼 여기서 이제 코델리아가 노래를 부르면 되는 건가?”
“예, 이 근방에 정말 페어리들이 거하고 있다면, 코델리아의 미모와 노래에 반응하여 모습을 드러낼 것입니다.”
이미 전례가 몇 번이나 있었으니까.
유더가 확신에 찬 얼굴로 말하자 정도 차이는 있을지언정 왕족 모두의 얼굴에 기대와 흥분이 떠올랐다.
“어서 듣고 싶구나.”
“저도요.”
그리고 당연히 이어진 재촉.
유더는 물속에서 슬쩍 코델리아의 손을 잡아당겼고, 움찔한 코델리아는 입술을 살짝 깨물며 유더를 돌아보았다.
‘야! 이 나쁜 놈아!’
일을 더 크게 벌리면 어떡해!
아니, 설명을 그렇게 하면 어떡해!
‘왜, 전부 사실이잖아.’
‘아니이! 그렇긴 해도!’
‘그리고 이렇게 될 거 알고 있었잖아? 그래서 연습도 한 거고.’
‘우그으······.’
사실 전부 정해진 수순이기는 했다.
생각 이상으로 부끄러운 것이 문제일뿐.
코델리아는 다시 우물쭈물 다프네 왕녀 쪽을 보았고, 다프네 왕녀는 그런 코델리아를 화려한 미소로 반겨주었다.
“어서 해보렴.”
부끄러워서 빼고 싶은 마음은 잘 알겠지만 듣고 싶으니.
아니, 그래서 더 시키고 싶으니.
“언니, 저도 듣고 싶어요. 디온 오라버니도 그렇죠?”
“그래, 나도 듣고 싶구나.”
다리온 왕녀와 디온 왕자까지 말을 보태니 코델리아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궁지에 몰린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여기에 이어진 메시지 마법이 하나.
[안 선생님이 그러셨어. 포기하면 편하다고. 그냥 포기하렴.]
유더의 메시지.
코델리아는 안 선생님이 누구냐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아니, 그보다는 유더 너마저?!라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애써 스스로를 진정시켰다.
유더의 말마따나 이리 될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
어차피 해야만 하는 일이니까.
‘그래, 그냥 포기하자.’
뭘 포기한다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후우······.”
코델리아는 일단 숨을 길게 토한 뒤 자리에서 일어섰다.
환상적인 달빛 아래 물에 젖은 머리칼을 길게 늘어트린 아름다운 소녀.
그 자체만으로도 한 폭의 그림과 같았기에 장난기 가득하던 왕족들의 얼굴에 절로 감탄의 빛이 번졌다.
‘역시 코델리아.’
유더 역시 흐뭇한 얼굴로 코델리아는 바라보았고, 코델리아는 다시 몇 번인가 숨을 골랐다.
그리고 마침내 입술을 열기 직전.
‘잠깐.’
코델리아는 순간 모든 동작을 멈추고 입술을 움츠렸다.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이 떠오른 탓이었다.
‘여, 여기서 불러야 해? 그걸?’
반짝반짝 작은 별을?
뭔가 아름답고 애잔한 노래가 아니라, 듣기만해도 마음이 고결해지는 성스러운 노래가 아니라.
반짝반짝 작은 별을?!
당황한 코델리아는 바쁘게 눈동자를 굴려 주변을 보았다.
잔뜩 기대한 얼굴로 이쪽을 보고 있는 왕족들과 무슨 문제라도 있냐는 얼굴을 하고 있는 유더.
그리고 이쪽을 보고 있지는 않지만 은근히 기대 어린 얼굴로 귀를 쫑긋 세우고 있는 궁내부원들과 왕궁 시녀들.
‘너무해! 아무튼 너무해!’
여기서, 이 상황에, 반짝반짝 작은 별을 부르라니!
물론 반짝반짝 작은 별이 나쁜 노래라는 것은 아니었다. 아주 좋은 노래였다.
하지만 그래도.
하지만 그래도!
[코델리아? 뭔가 문제라도 있어?]
[몰라! 너 미워! 너 싫어!]
[코델리아?]
얘가 갑자기 왜 이러지?
유더가 당황하든 말든, 일단 원망부터 쏟아낸 코델리아는 다시 숨을 골랐다.
어찌되었든 부르긴 불러야 했으니 말이다.
다프네 왕녀를 더 기다리게 할 수는 없었다.
‘그래, 포기하자.’
누군지는 잘 모르겠지만 안 선생님이 그러셨다고 하니까.
어깨를 늘어트린 코델리아는 조금이라도 창피함을 줄이기 위해 눈을 감았고, 그대로 입술을 열어 노래했다.
“반짝반짝 작은 별~ 아름답게 비치네~ 서쪽 하늘에서도~ 동쪽 하늘에서도~ 반짝반짝 작은 별~ 아름답게 비치···네~”
살짝 불안한 음색과 빨개진 얼굴과 귀여운 가사와 어쩐지 계속 괴롭히고 싶어지는 사랑스러움이 한데 섞인 환상의 콜라보레이션.
다프네 왕녀는 웃음을 참기 위해 입술을 깨물었고, 디온 왕자는 돌아서서 웃었으며, 다리온 왕녀는 그냥 해맑게 웃었다.
유더는 스크롤을 찢었고 말이다.
‘녹화 완료.’
멋진 영상을 찍을 수 있어 다행이야.
그렇게 코델리아를 제외한 모두가 나름대로 만족한 그 순간이었다.
“와, 진짜 예쁘다.”
“완전 예뻐~.”
“뺨 꼬집고 싶다.”
익숙하기 짝이 없는 대사.
그리고 계속해서 이어지는 조잘대는 목소리들.
“말캉말캉할 거 같아.”
“얘, 우리랑 놀지 않을래?”
수면 위를 미끄러지듯이 이동하는 작고 귀여운 요정들.
어지간히 대범한 다프네 왕녀조차도 순간이지만 눈을 크게 떴고, 다리온 왕녀는 아예 탄성을 토했다.
“우와아?”
진짜 페어리.
손바닥만한 크기에, 날개가 달린 소녀 모습의 요정들.
디온 왕자는 깜짝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고, 궁내부원들과 왕궁 시녀들은 지금까지와 달리 아예 대놓고 이쪽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유더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빙고! 역시! 섬머 페어리!’
햇볕에 태운 것 같은, 라틴계를 연상시키는 부드러운 갈색 피부와 곱슬진 머리칼이 바로 그 증거였다.
“후아아······.”
페어리들의 목소리에 눈을 뜬 코델리아는 안도의 숨을 길게 토하더니 그대로 무너지듯 주저앉았다. 긴장이 풀린 탓이었다.
“이제 보니 예쁜 애들이 많네?”
“완전 꽃밭이야!”
페어리들이 저마다 까르르 웃어대자 디온 왕자가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노래인가? 별에 관한 노래가 페어리들을 부르기 위한 필수 조건? 그래서 지금까지 누님께는 반응하지 않았던 건가?”
사실 이 옥외온천은 다프네 왕녀가 한 달에 적어도 열 번은 방문하는 장소였으니까.
그런데 지난 십여 년의 세월 동안 페어리가 나타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었다.
“그냥 노래는 안 되는 건가? 하긴, 그쪽이 가능성이 더 높겠군. 콧노래 정도는 누님께서도 가끔씩은 흥얼거리셨을 터이니.”
딱히 누군가에게 묻는다기 보다는 연구자 특유의 혼잣말이었지만 워낙 다들 가까이 모여 있었던 터라 모두에게 들렸다.
디온 왕자의 가설.
별에 관한 노래를 불러야만 페어리들이 나타난다.
근거는 지금까지 다프네 왕녀는 페어리들을 불러내지 못 했다는 것.
제법 납득이 되는 이야기에 다프네 왕녀와 다리온 왕녀가 고개를 끄덕였고, 궁내부원들과 왕궁 시녀들 또한 이해했다는 얼굴이 되었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이었다.
“뭐래?”
“우린 그냥 예쁜 애 있으면 나타나는데?”
“노래 별로 안 중요한데?”
“아무거나 불러도 되는데?”
“그냥 얘가 완전 예뻐서 나와 본 건데?”
“지금까지 안 나온 건 노래 때문이 아닌데?”
페어리들의 거침없는 발언과 그를 통해 유추할 수 있는 것.
디온 왕자의 눈에 살벌한 빛이 어렸고, 다리온 왕녀는 어색하게 웃었으며, 이쪽을 구경하던 궁내부원들과 왕궁 시녀들은 얼른 시선들을 돌렸다.
그리고 이 와중에 제일 가시방석에 앉게 된, 잘못한 것이라고는 그저 너무 예쁘게 태어난 것뿐인 코델리아는 울고 싶은 심정이 되어 물속에서 손을 더듬었다. 유더의 손을 찾기 위함이었다.
[으아앙! 어떡해, 어떡해 유더야. 우리 사형 당하는 거 아냐?]
저도 모르게 토한 메시지 마법에 바로 답하기 앞서 유더는 코델리아의 손을 꽉 잡아주었다. 그리고 정면을 보며 속삭이듯 메시지 마법을 보냈다.
[괜찮아. 다프네 왕녀는 대인배라고.]
[그게 무슨 소리야!]
[워워, 진정해. 그리고 우린 잘못한 게 없잖아?]
그냥 불러서 시킨대로 했을 뿐이니까.
사고를 친 건 페어리들이지 코델리아가 아니니까.
[그래두.]
[괜찮아. 왕녀님 웃고 계시잖아?]
[완전 경직된 미소인데?!]
딱딱함 그 자체인 미소.
하지만 유더의 말대로 다프네 왕녀는 대인배- 아니, 아량이 넓은 여인이었다.
“취향이라는 것이 있는 법이니까. 이해하도록 하겠다.”
어쩐지 모르게 질척질척한 기분도 들었지만, 어찌되었든 넘어가겠다는 선언에 궁내부원들과 왕궁 시녀들은 안도의 숨을 토했고, 코델리아 역시 어깨를 늘어트렸다.
그리고 유더는 틈을 놓치지 않았다.
평소처럼 구렁이 담 넘듯이 화제를 바꿔버렸다.
“섬머 페어리들아, 이쪽에 계신 분들은 인간의 왕족 분들이시란다. 그래서 그런데 너희 여왕님을 뵐 수 있겠니?”
“우리 여왕님?”
“어, 너희 여왕님.”
유더의 말에 섬머 페어리들은 눈을 껌벅였고, 왕족들 역시 새로운 전개에 집중하였다.
페어리들을 만난 것도 신기한데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페어리 퀸을 만날 지도 모를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그럴까?”
“하긴, 완전 예쁘니까.”
“여왕님도 좋아하실 거야.”
익숙한 대화의 흐름.
여기에 유더는 약을 조금 치기로 하였다.
“여왕님께 데려다주면 좋은 걸 줄게.”
“좋은 거?”
“어, 아주 좋은 거.”
이미 폴 페어리들을 통해 임상 실험까지 끝난 아주 좋은 것들을.
유더는 무척이나 친근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고, 저들끼리 돌아보며 고민하던 페어리들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럴게!”
“같이 가자!”
“다 같이 밤놀이 하는 거야!”
페어리들은 천진하기 짝이 없는 얼굴로 소리쳤고, 유더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유더에게 콩깍찌가 꽤 씌인 코델리아가 보기에도 사악한, 하지만 듬직하기 짝이 없는 사기꾼의 미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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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66장 - 섬머 페스티발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