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엔딩메이커-182화 (182/473)

< 제67장 - 폭풍전야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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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계속해서 흘렀다.

건국 기념 무도회까지 여드레.

귀족파의 거두인 보탄 공작가의 다과회를 끝으로 매일 같이 이어지던 사교계 행사가 얼추 마무리되었다.

이유는 단순했는데, 앞으로 일주일간은 공식적인 행사들이 줄을 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도 일정이 있어.”

유더의 말에 코델리아는 배시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러나저러나 꽤 기대하고 있던 행사이기 때문이다.

“모레지?”

“어, 모레야.”

“신난다.”

“그렇게 좋아?”

“그럼 안 좋아? 공자님은 작위 받기 싫어요?”

“좋지, 나도.”

작위.

유더 자신과 코델리아의 작위 수여식.

“흥흥, 흥흥흥. 체이스 남작님.”

코델리아는 콧노래를 부르듯 작게 중얼거리더니 이내 부르르 몸을 떨며 좋아했다.

“헤헤헤, 체이스 남작님이야. 작위를 가진 몸이시라구?”

“그러게요, 체이스 남작님. 축하드립니다.”

“저도 감사합니다, 바이엘 남작님. 남작님도 축하드려요.”

유더가 허리를 숙이며 예를 표하자 코델리아는 치맛단을 살짝 들어 올리며 똑같이 예를 표했다.

남작위.

소위 말하는 오작위 중에서는 가장 말단에 위치한 작위였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작위는 작위였다.

‘평귀족하고는 하늘과 땅 차이지.’

코델리아가 아이처럼 좋아하는 이유는 전생보다는 현생의 영향이 컸다.

귀족에게 있어 작위는 정말 중요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개인의 영달만이 아니야.’

남작이 된다 해서 갑자기 막 엄청난 부와 권력을 누리는 것은 아니었다. 특히 이번에 유더 자신과 코델리아가 받기로 한 작위에는 영지가 딸려 있지 않았으니, 사실상 명예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의미는 있었다.

‘평귀족이 계속되면 결국 귀족의 계보가 끊어지고 마니까.’

세일룬 왕국에서 아버지의 작위를 물려받을 수 있는 것은 집안을 물려받을 한 명뿐이었다.

보통은 장남 아니면 장녀가 작위를 물려받았고, 물려받지 못한 자식들은 귀족은 귀족이되 작위가 없는- 소위 말하는 평귀족이 되었다.

‘평귀족의 자식까지는 똑같이 평귀족 대우를 해주지만······.’

자식의 자식, 즉 3대부터는 이야기가 달랐다.

작위를 얻지 못 하면 그 이후부터는 귀족이 아닌 평민 대우를 받게 되어 있었다.

귀족의 숫자를 조절하기 위해 만들어진 법안이었는데, 물론 샛길이 얼마든지 있기는 했다.

‘기사 작위만 따도 평민이 되는 건 막을 수 있고··· 여차하면 그냥 돈으로 작위를 사면 되었으니까.’

하지만 기사 작위를 딸 연줄이나 실력도 없고, 하다못해 작위를 살 돈도 없다면?

‘평민이 되는 거지.’

세일룬 왕국의 경우 평민의 삶이 그렇게까지 막 시궁창인 것은 아니었다.

돈 많은 상인들이나 대학의 지식인 중에는 평민들도 많이 있었고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 할지라도.’

좋아서 귀족 자리를 반납하는 사람은 드물 수밖에 없었다.

이러나저러나 세일룬 왕국은 신분제 사회였고, 여러모로 귀족이 평민보다 유리한 구조였으니 말이다.

“흥흥, 남작. 체이스 남작.”

체이스 백작가의 계승자인 장남 에드워드 체이스는 미래의 백작이었고, 장녀인 아델리아 체이스는 본인의 실력으로 근위마법병단 제7단장 자리에 오름으로써 자작위를 손에 넣었다.

즉, 가족 중에 코델리아만 실질적인 평귀족인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평귀족 코델리아’가 아니라 ‘코델리아 체이스 남작’이 되었으니, 신이 나는 것도 당연했다.

“우리 애도 이제 걱정 없겠네?”

“응! 남작위가 두 개니까 두 명까지 문제 없··· 어?”

잠깐.

지금 뭔가 이상한 이야기를 한 거 같은데?

해맑게 답했던 코델리아는 눈을 깜박였고, 유더는 뭐 이상한 거라도 있냐는 듯 능청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갸웃했다.

우리 애.

우리 아이.

유더와 코델리아 자신의 아이.

‘마, 말도 안 돼.’

애라니.

그걸 누가 낳는데.

내가?

내가?

코델리아는 잠시 아기를 안고 있는 자신을 상상해보았고, 이내 빨개진 얼굴로 도리질을 했다.

‘아, 아니야. 아직 멀었어. 응, 아직 멀었고 말구.’

먼 미래의 일.

아직은 한참 남은, 그러니까 당장은 생각할 필요 없는 일.

‘응응, 그러니까 일단은 머릿속에서 아웃!’

달리아가 알았다면 ‘그래도 부정은 안 하시네요.’라고 말했을 법한 생각들을 잇던 코델리아는 숨을 크게 골라 스스로를 진정시킨 뒤 다시 유더를 보았다.

“아무튼.”

“아무튼?”

“어, 아무튼.”

아무 말이나 해서 주의를 좀 환기한 코델리아는 손가락을 꼼지락 거리며 말을 이었다.

“작위 수여식 가야하니까 또 예쁘게 꾸며야겠지?”

“당연한 말씀을. 아주 기를 팍 죽여주고 오자고.”

“맨날 기죽인데.”

피식 웃은 코델리아는 자리에서 일어나 두 팔을 벌렸다.

그간 다과회에 하도 많이 참여하다보니 이제는 ‘인형’이 되는 것에 꽤 익숙해진 그녀였다.

“자, 그럼 공자님. 모레의 코디를 알려주시죠.”

“그렇지 않아도 준비해두었답니다, 공녀님.”

빙긋 웃더니 그대로 돌아서서 옷장 문을 여는 유더의 뒷모습에 코델리아는 저도 모르게 말했다.

“와··· 완전 신나 보여.”

코델리아 자신을 꾸미는 게 그렇게 재미있나?

“그야 꾸민 만큼 성과가 나오니까. 달리아랑 마이아도 불러야겠다. 안 부르면 나중에 서운해 할 거야.”

“저기요, 공자님. 저만 나가는 게 아니라 공자님도 나가거든요?”

“네, 공녀님. 공녀님 다 꾸미고 나면 공녀님을 위한 얌전한 인형이 되어줄 테니 그때 마음껏 가지고 노시죠.”

뻔뻔한 얼굴로 답한 유더는 옷장에서 드레스를 꺼낸 뒤 마이아를 부르기 위해 종을 울렸다.

“하여간 진짜.”

으휴-하며 자리에 앉은 코델리아는 희희낙락하며 드레스를 고르는 유더를 보다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런데 유더야.”

“어, 코델리아야.”

“너 전생에 뷰티샵 원장이라도 했어?”

“아니.”

“근데 어떻게 그렇게 잘 알아?”

미용법도 그렇고 코델리아 자신의 머리손질도 그렇고.

코델리아의 물음에 유더는 여전히 드레스들을 바라보며 답했다.

“공부했거든.”

“전생에?”

“아니, 현생에. 전생 기억 각성한 뒤에.”

샴푸와 린스 같은 몇몇 화학제품들이 없을 뿐이지, 플레이아데스에서도 미용법 자체는 제법 발달된 상태였다.

하지만 유더의 대답에 코델리아는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일부러 따로 배웠다고? 왜?”

“너 꾸며주려고.”

“어?”

“코델리아는 소중하니까.”

유더의 말에 코델리아는 다시 입술을 움츠렸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저런 말 하면 지랄하지 말라고 받아칠 수 있었는데, 요즘에는 어쩐지 모르게 싱숭생숭한 기분이 먼저 들었다.

“흠흠, 코델리아가 소중하기는 하지.”

“어, 세상에서 제일 소중해.”

“뭐, 뭐라는 거야.”

왜 저런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거야.

얼굴색이라도 좀 변하면서 하든가.

작게 꿍얼거리던 코델리아는 불쑥 다시 고개를 들었다.

한 가지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 있어서였다.

“잠깐, 미용법이야 공부했다 치고. 머리 손질한 건?”

“그거야 천무지체니까.”

“엉?”

“몸으로 하는 건 다 잘한다니까 그러네?”

유더가 손으로 가위질하는 흉내를 내자 코델리아는 어처구니가 없어 헛웃음을 지었다.

“하여간 치트 덩어리라니까. 사기야, 사기.”

“여러모로 유용한 사기니 좀 봐주시죠.”

능청스럽게 답한 유더는 고개를 들었다. 문 밖에서 마이아와 달리아의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다.

“자, 그럼 시작해볼까요?”

문이 열렸고, 유더는 코델리아를 돌아보았으며, 코델리아는 얌전히 자리에서 일어나 두 팔을 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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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 기념 무도회까지 엿새.

유더와 코델리아는 마차를 타고 본궁으로 향했다.

작위 수여식이 있는 밤이었기 때문이다.

“저거, 저거. 입꼬리 올라간 것 좀 봐.”

게일과 나란히 앉은 아델리아가 킥킥 웃으며 말했고, 게일과 아델리아의 깍지 낀 손을 쳐다보던 코델리아는 입술을 삐쭉이며 말했다.

“입꼬리 올라가는 게 당연하잖아?”

“그래, 나도 올라가네. 우리 코델리아가 남작님이라니. 자꾸만 웃음이 나.”

아델리아는 다시 킥킥 웃었고, 결국엔 코델리아도 따라 웃었다.

기분이 좋으니 그냥 툭 치기만 해도 웃음이 나올 것만 같았다.

그리고 여성진들의 반응이 이러했으니, 자연 남성진들의 반응도 비슷했다.

아까부터 말없이 실실 웃기만 하는 유더와 게일 형제였다.

두 마리 말이 끄는 마차 안.

저만치 앞서가는 마차에는 바이엘 백작과 체이스 백작, 체이스 백작가의 장자이지만 어쩐지 존재감이 옅은 에드워드 체이스가 타고 있었고, 뒤따라오는 마차에는 마이아와 달리아가 타고 있었다.

‘가족이나 다름없는 두 사람이니까.’

그러니 이런 경사스러운 자리에 빼놓을 수 없지.

‘그런데 얘는 아까부터 왜 저러지?’

평소와 달리 묘하게 손을 꼼지락 거리는 코델리아였다.

손이 간지럽기라도 한 걸까?

“아무튼 신난다고 너무 열 내다가 실수하지 말고. 너희만 있는 자리가 아니니까. 알았지?”

“알았어, 내가 뭐 애인가.”

“애 맞지. 그런 네가 어른이야? 어린애처럼 저도 이제 다 컸거든요?-같은 소리라도 하려고?”

역시 언니는 언니였다.

아델리아의 말에 반박할 말이 궁해진 코델리아는 다시 입술을 삐쭉였고, 게일이 작게 웃으며 말했다.

“다프네 왕녀님의 첫 공식행사이기도 하니까. 하지만 너무 긴장하지는 마렴. 이번에 작위를 받는 사람들이 너희 둘뿐인 건 아니니 말이다.”

기사 작위까지 합치면 열댓 명 정도 될까.

사실 오늘 행사의 진정한 주인공은 작위를 수여받는 이들이 아닌, 작위를 수여하는 다프네 왕녀라 할 수 있었다.

그녀가 한 사람의 성인으로서 임하는 첫 공식 업무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래도 작위 받는 사람들 중에는 너희가 주인공이야. 남들처럼 기사 작위가 아니라 남작위를 받는데다가 행사에 참여하는 사람들 중에 나이도 제일 어리니까. 부담 주는 걸 수도 있지만··· 충분히 자랑스러워할만한 일이야. 응, 그래. 너희가 무척이나 자랑스러워.”

“언니이.”

“안아주고 싶지만 드레스 망가지니 안 돼.”

두 팔을 벌리는 코델리아에게 딱 잘라 말한 아델리아는 눈웃음을 지었고, 코델리아는 삐진 척 눈을 흘기다 까르르 웃었다.

‘주인공이라.’

유더 역시 동의하는 바였다.

이러나저러나 유더와 코델리아는 이번에 작위를 받는 이들 가운데 최연소였기 때문이다.

‘더욱이 기사 작위를 넘어 남작 작위.’

미성년자가 말석이라고는 해도 바로 오작위 가운데 하나를 자력으로 따내는 것은 무척이나 드문 일이었다.

더욱이 작위를 따게 된 연유 역시 특별했다.

‘군공.’

야생의 땅에서의 활약은 북부- 나아가 세일룬 왕국의 안위와 연관된 일이었으니까.

야생의 땅에서 있었던 일들을 액면 그대로 전달하지는 못 했지만, 각색된 이야기들만으로도 유더와 코델리아가 상을 받기에는 충분했다.

‘바이엘 남작이라.’

거기에 체이스 남작까지.

남작 커플의 탄생 자체가 드문 일인데, 그 커플이 여러 가지 의미로 이름 높은 세기의 커플이니, 아델리아 말처럼 작위 수여식의 주인공이 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좋네.’

공을 인정받는다는 것이.

지금까지 해온 일이 잘못되지 않았다고, 칭찬받아 마땅한 일이라고 사람들이 말해주는 것이.

빙긋 웃은 유더는 다시 코델리아를 보았고, 여전히 꼼지락 거리는 그녀의 손을 슬쩍 잡아보았다.

하지만 왜일까.

손을 잡은 이후에도 코델리아가 계속 손가락을 꼼지락 거리는 이유는.

유더는 고개를 갸웃했지만 코델리아는 그런 유더를 돌아보지 않았고, 마차 바퀴는 계속해서 굴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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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67장 - 폭풍전야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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